긋닛 3호 : 노동과 우리 긋닛 3
이상헌 외 지음 / 이음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간지 형식을 지닌 소설집 긋닛의 존재를 3호가 발간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게재되는 소설들의 주제를 포괄하는 발문격인 에세이 한 편과 세 편의 단편 소설로 엮인 문학지다. 아마도 노동과 우리라는 3호의 주제어가 내 시선에 들어온 이유일 것이다. 책은 푸른 못, 마르지 않는 눈물이라는 에세이로 시작되는데, 이 제목은 소설가 강경애가 1934년에 쓴 장편소설 인간문제의 제재인 원소라는 이름을 갖게 된 어느 마을의 연못에 서린 전설에서 길어 온 것이다. 본디 메마른 땅이었던 곳이 기만당하고, 억압받으며, 배제된 이들의 설움의 눈물이 뿌려져 생긴 못이다. 그것이 얼마나 깊었는지 푸른색을 띨 정도이니 가해진 폭력과 착취의 강도와 빈도를 말해서 무엇하리요.

 

예나 지금이나 저 원소의 물은 푸르고 푸르다.

흰 옷감을 보면 물들이고 싶게 그렇게 푸르다.”   -강경애 ,인간문제에서

 

그런데 이 푸른 못은 취약한 자들의 한()을 누적시킨 인간 악()의 상징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식인풍습에 포박된 노동자들이 찾아가 물의 주체였던 수많은 넋을 위로하고 위로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90년 전 식민지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던 문제는 21세기 바로 지금도 변화없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동일한 질서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수록된 세 편의 소설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감상을 마쳐야겠다.

 

오른쪽 어깨가 아프다. 뭔가 흘러 내렸어. 피가 흐르는 것 같다,...”

민병훈 작, 그들이 하지 않은 일들에서

 

민병훈 작가의 그들이 하지 않은 일들은 비행기 이착륙 시 활주로 및 항로 인근 영역에 날아드는 조류를 퇴치하여 항공 운항의 안전을 도모하는 조류 퇴치작업자의 이야기다. 공포탄을 쏘아 새들을 항공영역에서 몰아내는 반복되는 노동이다. 주인공은 이 직업에 자기 인생을 거는 일에 회의적이다. 기숙 생활을 하며 공항에 매여지내며 같은 노동을 반복하고, 몸의 고통이 늘어만 가는 삶. 자본의 속성이 무엇이라 했던가. 자기 축적이다. 효율성, 즉 이윤이 주도하는 질서다. 최저임금으로 무한 노동을 이용하며, 투입 노동력 가치에 훨씬 밑도는 임금도 아까운 것이다. 자본의 자기충동은 갈 데까지 가려고 한다. 새들의 천적을 닮은 로봇 새, 팔콘을 투입하기로 결정하고 퇴치반원들의 줄어 든 노동시간만큼 임금 삭감의 통보를 받는다.

 

소설은 이로인해 야기되는 퇴치반원들이 부딪치는 사회적 문제들을 보여준다.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의 이른 귀가와 미래에 드리워진 암울함, 세상의 변화를 단지 치열해진 경쟁과 생존투쟁의 장이라는 추상적 변화로만 인지하는 부모세대와 그 변화의 구체성을 현실로 마주하는 청년세대의 불통의 문제, 그리고는 인간의 기계에 대한 질투라는 단순 논리로 이해하는 자본이라는 세상이 갖는 인간에 대한 몰이해의 무지를 짚어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인간 존엄에 대한 이해를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것 같다. 인간의 소망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강제되는 양상이 급격하게 전개되고 있음에도 그 영역들이 취약한 이들에게 벌어지고 있다보니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바로 지금도 어디선가 이러한 추이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라는 실험용 유리컵(beaker)을 알콜 램프가 데우고 있다. 우리가 그 점진적인 열기를 체감할 때에는 이미 세계에 모든 일이 벌어진 후일 것이다.

 


천현우 작가의 임자는 무식한 꼰대, 그야말로 현실에 대한 이해를 조금도 지니지 못한 치명적 결점을 지닌 인간이 등장한다. 종업원 14명의 주물공장 운영주인 쉰다섯 살 차봉필은 단 한 번도 출근한 적 없는 자신의 딸을 직원으로 올리고 임금과 상여금을 지급하지만, 직원들에게는 철저하게 인색한 인물이다. 사건은 1년 남짓 근무했던 직원이 출근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어느 날들을 얘기한다.

 

한 명이라도 출근하지 않으면 작업 공정에 차질이 발생하고, 주문 물량을 납기에 맞추어 생산하는 데 지장을 받을 만큼 노동밀도가 높은 공장이다. 며칠 째 출근하지 않던 직원이 나타나 사직서를 제출한다. 작가노트에 언급되고 있듯이 한국 사회의 대다수 영세 공장주들의 인식이란 대개 엇비슷하다. 자신들은 중산층의 삶을 살면서 민주화 시대 이전의 인식에 머물러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 변화된 세계에 대한 인식능력이 그들 젊은 시절의 영화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의 법적 준수는 이들에겐 자유의 억압이고, 노동자의 연차 요구나 정당한 임금지급을 요구하는 놈은 후레자식이다. 자기 이익에 반하는 모든 것은 공산주의자가 대통령이 된 까닭이다. 소설가 강경애가 말한 인간 문제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일하는 자와 부리는 자의 앙상한 관계‘, 이 불변의 인식이 존재하는 한 이 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을 수가 없다. 차봉필의 자유는 검찰정치를 하는 현 정권의 우두머리의 자유와 닮았다. 자신을 위한 자유,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자유, 자기 편익과 쾌락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자유. 이 반동적 자유가 이 사회의 저변에 넓게 깔려있다.

 

연속되는 근무시간에서 중간에 휴식시간으로 빼냄으로써 편법으로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지급하는 곳이 즐비하다. 이것이 오늘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이를 지켜보던 한 노동자는 마음을 다진다. 역시 기계는 고쳐 써도 사람은 고쳐서 못 쓰는 법. 올해는 반드시 사직서를 내고 말리라.” 차봉필, 자신이 저지르는 불의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깡그리 적으로 돌리는 인간, 꺼져, 너 말고도 일할 놈 많아!”, 이 사회가 썩은 내 풀풀 풍기는 이러한 관성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평등한 존엄이라는 정의를 토대로 한 민주화된 국가의 도달은 아마 요원할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한유주 작가의 커뮤니티는 한 동네의 풍경을 미시적으로 관찰하며, 그 속에서 삶을 연기하는 인간들의 자기연민, 이기적 욕망, 소유의 허기, 피해망상적인 불신의 세계, 신산한 노동의 일상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인간들의 그 소소한 일상들에 배어있는 정형화된 모습들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가련하고 외로운 군상들, 그럼에도 다가가 따뜻한 위로의 행위를 베풀기에는 왠지 아깝게 느껴진다. 대체 오늘 우리들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 무엇이 그렇게 불안하게 하는 것일까? 이 사회가, 이 세계가 우리 인간들을 불편하게 하는 불온한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을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인간 삶의 진보를 저해하고, 이 시대의 불의를 촉발하는 요인들을 압축적으로 사유하도록 이끄는 글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겠다. 비대면, 기후위기에 이은 노동, 아마 다음 이슈는 지방문제와 부채()의 얘기가 될 것 같다.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학을 읽으며 현재의 우리들을 돌아보게 하는 맞춤의 문집(文集)이 되어 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