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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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구라는 행성 위에 살아가는 인간들을 잠식한 세상의 모든 가치들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진정 인간 개체 하나 하나를 위한 절대적 필요인가? 인간 행위를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명령은 항상 올바른가? 소설은 아마 이런 물음을 요청하고 인간 세상의 윤리적 구조에 강렬한 의심을, 그리고 극단적인 실현의 양태(樣態)를 통해 엄청난 충격을 가한다.

 

이 작품 지구별 인간무라타 사야카의 흥행작이었던 편의점 인간을 계승하고 있다는 비평이 있지만, 내게는 인간 행위에 규정된 윤리관을 새롭게 정의한 사회를 배경으로 살의(殺意)가 미래로 생명을 이어가는 사회를 그린 중편소설 살인출산의 또 다른 변형, 아니 도래(到來) 전의 에피소드처럼 여겨진다.

 

나는 인간을 만드는 공장에 살고 있다. (...) 이곳은 육체로 이어진 인간 공장이다.

나 같은 아이들은 언젠가 이 공장 밖으로 출하된다.” -44

 

중학생 여자 아이 나쓰키에겐 자신이 사는 지구라는 세계가 자신의 별()인 것 같지 않다. 이 세계의 지식과 문화에 어떤 비판도 할 줄 모르고 그저 맹신하고 복종하는, 속물의 화신인 부모에게 고집 센 멍청이로 불리며, 어떠한 이해도 받지 못하는 소외된 아이다.  그녀에겐 이 세계가 번식력 갖춘 인간을 출하하는 인간공장 같기만 하다. 소설의 첫 문장으로 묘사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삼림으로 한 낮에도 밤의 조각이 사라지지 않는 웅장한 산속 외딴 아키시나의 집은 나쓰키가 유일하게 평온을 느끼는 공간이다.

 

매년 백종절이면 친척들이 모이는 곳, 여기서 만나는 사촌인 유우와의 만남은 나쓰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확인하며, 새로운 감각을 갖게 하는 즐거움의 시간인 까닭이다. 소녀와 소년은 지구별 인간(地球星人)’이 아닌 외계인(포하피핀포보피아 별)으로서 인간 세계를 바라본다. 세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대로 뇌를 발달시키고, 몸을 성장시키도록 강제되는 것에 두 아이는 순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성장해서 독자적으로 온전히 살아남을 때까지 그러한 어른들의 세계에 복종하여야 함을 안다. 이러한 나쓰키에게 학원 선생의 성폭행이 저질러진다. 잘 생긴 낯 덕택에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흠모의 시선을 한껏 받는 남자는 나쓰키를 유인하여 버젓이 악행을 저지른다. 아이는 이를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다.

 


학원 선생의 폭력을 엄마에게 말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어린 게 벌써 그딴 생각이나 하고라는 말과 함께 슬리퍼로 얼굴, 머리 등을 내리치는 또 다른 폭력이다. 이러한 나쓰키에게 어린 시절을 마감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아키시나에서 재회한 우유와 나쓰키는 최초의 섹스를 하고, 이들의 발가벗은 채 엉킨 모습이 발견되는 것이다. 이에 반응하는 어른들의 난리법석을 나쓰키는 이렇게 대꾸한다.

 

어른은 아이를 성욕 처리에 이용하면서, 아이가 자기 의지로 섹스를 하면 멍청이처럼

난리 법석을 떤다.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다. 세상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주제에.” -109

 

지구별 인간들의 자기기만과 타자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맹목적 윤리관에 대한 냉정한 혐오의 변()일 것이다. 시간은 20년을 훌쩍 건너뛰어 각방 쓰는 건조한 결혼 생활, 성행위 완전 배제, 가사 완전 분담을 계약 내용으로  결혼 생활을 하는 나쓰키와 남편 도모오미의 삶의 방식을 비춘다.

 

두 사람은 이 세계라는 보이지 않는 공장(Factory)’의 일원이 되는 것에 결코 세뇌되지 않는다. 이들은 공장으로부터 배제되지 않도록 끝없이 연기를 펼치며, 그들의 부모와 친척, 친구와 이웃이 믿는 공장의 일부가 되리라는 시선에서 도망친다. 여성의 자궁은 공장의 부품이며, 마찬가지로 부품인 누군가의 정소(精巢)와 연결되어 아이를 제조할 것”(126)을 엄중한 규칙이라 압박하고, 공장의 정상적 부품임을 끊임없이 입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장에 공헌하는 모습의 가장(假裝)된 어필은 그들의 부모에 의해 의심되고, 조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비어 있는 아키시나의 산속 집에 홀로 살고 있는 우유가 있는 곳으로 도피하듯 탈주한다. 우유와 나쓰키가 어린시절 찾던 자신들을 데려가주기 위한 우주선, 즉 인간 굴종의 삶이 강요되는 지구별이라는 공장을 벗어나 새로운 감각으로의 이동 공간인 아키시나에서 외계의 감각을 가진 새로운 종으로서의 삶의 시도에 착수한다.

 

나쓰키를 비롯한 이들 세 사람은 공장의 노예인 삶, 죽은 거나 다름없는 인생으로부터의 도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이 말하게 하는 말을 자기 말이라 믿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으리라(234)”는 이들의 생각을 부정하기란 그리 쉬운 명제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나 또한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그저 올바르다는 믿음에 저항하고 있으니 말이다. 실상 내 생각이라는 것이 집단의 지혜가 위임한 판결의 무기력한 집합소에 불과한 것 아닐까? 하는 것이며, 단지 이것들을 암송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소설의 대단원은 그야말로 당혹과 전복의 서사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체를 섭식하는 행위를 통해 공장의 질서에 반란을 일으킨다. 인간사회의 윤리의식에 철저한 의심, 강력한 반기를 전시함으로써 세계라는 인간 공장에 대한 종교적 맹신, 그 무사유를 뒤집어엎는다. 폭설과 산사태로 차단되었던 아키시나의 공간에 지구별 인간들이 들이닥쳤을 때 그들의 눈앞에 있는 전경은 벌거벗은 채 배가 산처럼 부은 세 마리의 낯선 종족이다. 그리곤 우주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지구별 인간의 울음소리가 대기를 채운다.

 

그러나 이들은 지구성인들을 향해 괜찮다고 말한다. 당신들 안에도 우리들의 모습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매일 불어날 것이라고.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맹종하는 이 세계의 잔혹한 질서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신()인간이 늘어 날 것임을 선언하는 이 문장은 새로운 정체성의 존재에 대한 어떤 가능성의 희구처럼 보인다. 무라타 사야카는 의심을 잃어버린 사유(思惟)없는 이 세상을 향해 묵시적 외침을 계속 할 모양이다. 공장의 정상적 부품임을 입증하라는 세상의 강요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포하피핀포보피아주문, 번식 없는 감염의 확산, 자멸, 종말의 외침이 서늘하게 온 몸을 파고든다. 인간의 세계에는 더 이상 구원 같은 것은 없다는 웅변일까?




註1) 포하피핀포보피아의 의미: 나쓰키의 사촌 우유가 상상한 외계의 별이지만, 이 별은 인간을 도구화한 지구별의 윤리적 의심을 통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존재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나쓰키, 우유, 도모오미 세 사람의 실천적 행위의 변신적 실체이기도 함. 즉 새로운 감각의 신인류의 은유적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임. 어원은 분명치 않으나 마법적 존재인 피핀과 공포증을 의미하는 포비아의 조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註2) 村田 沙耶香 (Murata Sayaka) :


무라타 사야카의 글쓰기는 인간을 길들여 온 모든 습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정신을 위해, 


너무 자명해서 증명조차 필요없으리라 여겨지는 이 시대의 보편적 가치들이 실은 아무런 토대도 지니고 있는 것이 없다는 그 맹목과 독단을 깡그리 전복한다. 


그렇게 해서 획득하는 것, 초인간적이고 비인간적인 신체 상태, 어쩌면 니체의 위버멘쉬가 되기위한 집요한 실천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소설들은 이렇듯 변모의 예술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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