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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ㅣ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제인 오스틴 지음, 송은주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평점 :
소설의 시대 배경으로 추정되는 18세기 말 영국사회는 산업혁명과 식민지개척으로 물질적 부를 쌓은 신흥 부자들이 출현하고, 전통 귀족 문화를 동경하던 이들이 귀족의 작위 거래를 통해 자신들의 신분을 세탁하던 시대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인 ‘앤 엘리엇’의 신분, 즉 사회적 계급을 대변하는 그녀의 아버지 ‘월터 엘리엇’ 준남작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다음의 문장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무수히 함축된 의미를 전달해준다.
“월터 엘리엇 경은 허영심을 빼면 시체나 다름없었다.” -9쪽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살던 1650년대에 이미 국왕의 부족한 재정 충당을 위해 제한된 귀족 작위의 남발을 피하면서 가장 낮은 작위인 남작에 준하는 ‘준남작’을 판매했다는 얘기가 있다. 엘리엇 가문도 이러한 범주의 한미(寒微)한 가문으로 추정될 수 있을 것 같다. 월터 경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외모(얼굴과 피부)와 옷차림이며, 이를 통한 재산의 많고 적음을 구별하여 상대할 대상인지를 판별한다. 아마 이러한 가치관이 당대 영국 주류 사회의 지배적인 인식이었던 것 같다.
‘준남작 명부’라는 변변찮은 가문 소개 책자만을 읽는 ‘켈린치 홀’로 불리는 저택과 영지의 주인인 월터 경을 묘사하는 소설 첫 문장부터 그가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신분적 권위의 집착은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존재임을 역설적으로 부각시킨다. 이 명부에 기재된 내용을 통해 아내 레이디 엘리엇의 사망, 엘리자베스, 앤, 메리, 세 명의 딸이 자연스레 소개되며 소설 무대에 등장한다.
작품의 서사는 이 시대의 허영과 위선적 가치, 즉 월터 엘리엇 가문에서 소외된 둘째 딸 ‘앤 엘리엇’의 사랑의 귀결을 쫓는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작가 ‘제인 오스틴’은 이 사랑의 여정을 통해 시대적 가치를 세련된 비판으로 녹여낸다. 월터 엘리엇 가문의 법적 승계자인 먼 사촌 ‘윌리엄 엘리엇’이란 인물은 아마 당대의 사람들이 지니던 가치관을 대표하는 인물이랄 수 있다. 그는 작위나 영지의 승계, 월터 경 가문과의 교우 등에 대해 혐오를 보이며, 이들과의 만남조차 회피하며, 부(재산)의 가치를 삶의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러한 태도는 후일 급격하게 변질되어 적극적으로 월터 엘리엇 가문에 친화적 자세로 돌변하는데, 이러한 변화 또한 부정하게 쌓은 부를 완전하게 과시하기 위한 신분의 확보를 위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앤은 결혼한 동생 메리의 간호 요청으로 가족과 함께 새로운 거처에 동행하지 못하고 동생의 집에서 머물게 되는데, 이 때 메리의 시댁인 ‘머스그로브’ 집안은 중산층의 화목함, 서로 응원하는 가족으로서 그 평범성의 안정감을 월터 가문과 대비하여 비춘다. 스물일곱 살의 앤은 사랑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헤어져야 했던 칠 년 전 연인 ‘프레더릭 웬트워스’의 누이가 켈린치 홀의 세입자인 크로프트 제독의 아내임을 알게 되고, 웬트워스와의 불가피한 마주침을 고통스럽게 가다리게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약혼을 반대했던 이유가 당시 무일푼의 보잘 것 없는 해군 장교라는 것이다. 하찮은 준남작이라는 귀족의 신분을 내세우며, 상대의 신분과 재산을 싸잡아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앤을 비롯한 월터 가문의 보호자인 ‘레이디 러셀’은 다소 지성을 겸비한 이성적 여인으로 앤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보살핌을 자처하는 인물이지만 그녀 역시 이러한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앤은 러셀 부인의 극력한 만류로 인해 연인과 헤어지는 결정을 했었음을 회고한다.
소설의 제목인 ‘설득’은 이러한 중대 사안, 또는 선택을 하여야 하는 어떤 상황에서 상대를 자신의 의견으로 복속시키는 언어이다. 이것은 월등한 지성과 경험, 사회적 권위를 지닌 존재의 언어가 미성숙한 상대에게 행해질 때 그 효과가 성립한다. 결국 소설의 이야기들마다 전환적 상황을 맞이할 때 독자는 이러한 설득의 장면을 거듭 목격하게 되는데, 앤의 약혼 상대자 반대라는 부정의 설득이 많은 설득의 장면을 거쳐 연인의 사랑 확인을 만들어내는 긍정적 설득으로 맺는 것도 흥미롭다.
이 긍정의 설득은 권위에서 평등의 주체로의 이동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서사의 삽입 구절처럼 이어지는 머스그로브 집안의 두 딸과 웬트워스 대령, 그리고 그의 해군 동료들인 하빌, 벤윅 대령에 얽힌 배려와 우정, 우연한 사랑의 결실 등은 인간 내면의 예측 불가능성, 연민과 사랑의 우연성에 대한 아름다운 풍경들을 양념처럼 비추어준다.
아마 소설 속에서 하빌 대령 부부가 사는 라임 지역 여행은 가장 밝은 햇살이 비치는 장면들이며, 서사적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매개적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웬트워스와 앤, 두 사람 각자 옛 사랑에 대한 자기 검증, 확인의 시간이기도 한데, 이것은 앤의 주변인 귀족적 신분이나 부의 높낮음 등을 벗어난 오직 사람 자체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자기 발견의 순간이기도 하다. 또한 어렴풋한 사랑의 회복이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갑자기 거리를 산책하던 앤 일행이 비를 마주하게 되어 잠시 건물 내에서 마차를 기다리는 장면이 있다. 앤과 웬트워스는 확인하지 못한 서로의 감정으로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고통을 안고 있던 차에 다시금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마주하는 것인데, 이때 앤은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너무 놀란 탓에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은 (...中略...) 동요, 고통, 기쁨, 희열과 비참 그 사이 어딘가의 감정이었다.(161쪽)” 이 구절은 제인 오스틴의 빼어난 묘사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 같기만 하다.
두 연인의 옛 사랑의 확인을 향한 오르고 내리는 감정의 기복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의 한 요소이긴 하지만 시대적 가치관을 내재한 인간 상(像)을 읽는 것도 또 다른 흥미의 요소이다. 사실 월터 경과 큰 딸 엘리자베스는 전통적 신분이 지니는 허영과 위선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들이랄 수 있다. 이들이 먼 집안 사람들인 달림플 자작 부인과 그 영애에 친분을 맺으려는 경박함 등은 그네들의 사치스런 복장과 우아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천박한 무엇으로 다가올 뿐이다.
한편 가문의 승계 내정자인 월터란 인물은 사람의 지성과 품격 보다는 재산을 최선의 가치로 하며, 실제 미천하지만 재산이 많은 여인과 결혼하여 부를 차지하고, 아내가 죽자 이를 과시하기위한 안정적 위신, 즉 가문의 작위와 영지를 차지하기 위해 예전에는 하찮게 여기던 월터 경의 집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린다. 더구나 품위와 지성을 겸비한 앤 엘리엇의 발견은 자신의 지위를 돋보이기 위한 배경으로 맞춤이라는 생각이다. 그에게 여성은 상품이며 배경이지 사랑과 존경, 배려를 나누는 상호 평등한 인격관계가 형성되는 그런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빈곤한 처지에 시달리는 옛 동창인 스미스 부인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말벗이 되어 준다던가,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 연민이 일상화된 앤과 대척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이러한 시대성의 중립적 인물은 러셀 부인이라 통하는 레이디 러셀일 것이다. 그녀는 신분제와 재산이라는 정형화된 인간 범주화의 인식을 지니고 있지만, 겸허한 지성을 갖춘 시선의 소유자로서 앤의 영향으로 점차 새로운 시선, 평등한 인간관, 사람 자체에 대한 가능성의 시각으로 관대한 사유의 이전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연인 앤과 웬트워스가 신분적 차별이라는 장벽과 사람들이 지닌 시대적 편협성을 넘어서고 자신들이 평등한 두 주체의 만남으로서의 결실을 이루어내는 결정적 장면까지 묘사하지는 않겠다. 반복하여 읽을수록 시대성을 돌파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다. 그것은 단지 여성의 독립적인 주체성 발견만이 아니라 물질과 형식적 예절이 뒤범벅되어 허영에 찬 위선이 선으로 행사되는 그러한 시대에 대한 자각과 비판이다. 단순함 속에 인간 의식의 다양성을 품어내는 유쾌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