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2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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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스마일 카다레는 자신의 소설을 필연적으로 오독하기를 견인하려는 의도로 쓰지 않았을까? 역사(歷史)에서 기억의 문제를 논점화하였던 잘못된 만찬이나, 순환하는 피의 복수라는 관습을 통해 전체주의 권력의 내재화된 공포를 우화적으로 펼쳐냈던 부서진 사월, 그리고 대중의 몽매성과 던적스런 권력지향성을 지펴냈던 아가멤논의 딸, 이들 작품과 같이 피라미드또한 고대 이집트의 대역사(大役事) 과정을 빗대어 인간 사회의 우매성과 권력의 교활성, 폭력성을 우화적으로, 그래서 문자 뒤의 의미를 해석하기를, 다시 말해 독자인 대중의 지성이 생각의 게으름을 떨치고 깨어나기를 촉구하려는 지향으로 말이다.

 

어느 늦가을 아침, 왕위에 오른 지 몇 달밖에 안 된 새 파라오 쿠푸가 어쩌면 자신은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흘리자...” - 7

 

소설은 심리적 복잡성과 은폐된 권력 욕구, 공포를 내재한 위 문장과 같은 파라오의 의미심장한 발설로 시작된다. 피라미드는 으레 왕의 무덤으로 축조되던 이집트의 관례인데 새로운 왕이 이 같은 말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 아니라 넌지시 흘린 것이다. 이는 대신과 제사장을 비롯한 측근들에게 그 저의에 대한 근심을 주입하고, 피라미드 축조에 대한 당위성, 그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일종의 암시이자, 이를 봉합하려는 신하들의 충성심을 확인하고 피라미드 축조라는 고난의 역사(役事)에 대한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교활한 언명인 것이다.

 

당연히 파라오의 의중을 간파할 수 없는 대신들은 눈치만을 살피며, 이 재앙적 발설의 의도를 검토하고 분석하며 협의한다. 권력자의 심중이 실행되기 위한 권력집단의 정당화 논리는 이렇게 확립되는 터일 것이다. 피라미드 축조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 고문서, 증언들, 칙령들, 유적들..,등등을 통해 피라미드의 탄생을 주도한 관념과 존재이유를 추적하지만 실체는커녕 그 그림자도 찾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아는 인간들은 기어코 만들어 낼 수 있다.

 

피라미드는 거대한 묘소임에는 틀림없지만 원래의 의도는 무덤이나 죽음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음을, 단지 위기의 시대에 구상된 상징물임을 파라오에 말한다. 피라미드의 높이니 비밀통로니, 화강암 덩이의 크기에 대한 보고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자가 이 윈래 의도에 대한 설명에 반응을 보인다.

 

이 위기란 국가의 대기근이나 나일강의 범람, 흑사병의 창궐 등으로 인한 것이 아닌 풍요, 안락한 생활이 야기하는 위기이며, 풍요가 인민의 자유로운 정신의 증가, 권위 일반에 대한 반항을 확산시켜 파라오 권력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위기보다 권력에 심중한 위협이 되는 인민의 자유와 반()권위주의 정신, 풍요를 고갈시키고 인민의 기를 꺾어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언젠가는 마무리되는 동시에 절대로 끝나지 않는 무엇으로서의 거대한 피라미드의 필요성이란 합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피라미드를 만들겠노라. 가장 높은 피라미드, 더없이 웅대한 피라미드를.” -18

 

피라미드를 만든다는 소식이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가는 것은 인간 세상의 섭리이다. 이 끔찍한 불행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집트 백성들의 반응이란 어떤 것인가? 거룩하고 숭고하며 신성한 축조물의 건설에 환호하는 자들이 있음은 마치 오늘 자신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집단을 향해 태극기를 흔드는 저 우매한 인간들이 존재하듯이 출현하기 마련이다. 피라미드 축조를 불행으로, 인민의 노예화로 직시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 것인지, 그 처리 수단과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은 고대 이집트 역사의 고증이 아니다. 피라미드 축조라는 역사적 실체를 통해 그것에 내재된 본성을 들여다보는 것이기에 문자적 표현은 시대성을 넘나든다. 결국 문자와 분열된 소문의 통제를 위한 비밀경찰의 악마적 행동을 수반한다.

 

소설은 마치 피라미드 축조의 현장에 있듯이 돌의 채석, 운반과정에 개입될 수 있는 각양의 음모, 피라미드 경사로로 엄청난 하나의 돌을 밀어 올리며 발생하는 수없는 죽음, 동원된 인부들과 그를 감독하는 자들과의 갈등과 채찍질, 스멀스멀 피어나는 계획된 소문들이 인민 집단에게 미치는 공포와 침묵의 상관관계, 대역사의 설계자들과 지휘자들의 반복되는 숙청과 축조 행위에 대한 증오와 찬사의 반비례적 역설성을, 그 비이성적 전체권력의 폭력성과 은밀성, 조작적 공작성을 현실적 삶의 공간에 생생하게 풀어 놓는다.

 




불의한 권력, 권력 유지와 보존에 혈안이 된 인간들은 불안을, 언제 뒤엎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인민의 혀를, 증오를 잘라버리기를 원한다. 건축일지의 장에 이르면 돌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으며, 몇째 단의 몇 번 돌마다 그 기재된 이력을 보여준다. “193번 째 돌. 카르나크 채석장에서 채취, 관인 하자 없음. 그럼에도 몇 군데 낙서가 발견되어 석축작업 지연. 일각에서는 시시한 낙서로 간주한 반면 정치적 암시가 담긴 낙서라는 견해로 그대로 베껴 상부에 올림....(82)” 아마 권력의 불안이 어디에까지 미치는지, 그 불의성에 대한 주도면밀한 천박성의 은유일 것이다


반면에 인민 대중의 무지는 이러한 전체주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절대적 유익이 되어 자신들의 속박과 축적된 고통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빛나는 이집트의 탄생이라는 권력의 선전에 동화되어 칭송하며, 이집트를 통째로 먹어치우는 피라미드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쏟아내는 이웃을 죽음으로 내몬다. 인간의 역사는 항상 이처럼 바보들이 현명한 인간들을 잡아먹음으로써 지탱해온 어리석음의 반복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꼭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 현실과 같다. 조중동 황색 미디어를 앞세운 전방위적 소문의 확산을 이용하여 비밀경찰처럼 행동하는 검찰 권력이 벌이는 이 땅의 퇴행적 현상들이 대중의 우매함을 기반으로 활개치는 모양 말이다.

 

이러한 권력의 악의에 감추어진 진실에 직면한 인간은 어떻게 될까? 안티피라미드장에 이르면 피라미드 도굴꾼들이 마주한 파라오의 미라에 남겨진 사인(死因)의 발견이다. 진실의 앎 자체가 유죄가 된다. 이 앎, 지식, 혹은 깨달음은 전체 권력에게 의심과 폭력의 대상이며, 제거할 무엇 이상이 아니다. 인민의 교양 자체가 유죄가 된다. 무지가 세력을 휘두르는 세상, 그것, 인민간의 혐오를 증폭하고 증오를 심어 분열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보수 기득권 집단이 먹고사는 양식이다.

 

피라미드는 수십 년을 소요하는 그야말로 대() 역사(役事). 피라미드의 밑단, 초석을 놓던 인간들은 노쇠하거나 죽고, 우뚝 선 피라미드를 바라보는 세대는 피라미드가 가시화되기 이전의 끔찍한 시기, 인민들의 정신과 육신을 갈가리 찢어 놓았던 시기의 공포를 이해하려 않는다. 현재의 모습이 너무 자명해 부모 세대들이 느꼈던 공포를 과장된 무언가로 질책(91)”하며, 불의한 권력을 옹호하기까지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지성, 이것이 곧 게으른 지성이다. 한국 사회에 넓게 퍼진 이 무지, 사유하지 못함이 사회의 퇴행을 이끈다.

 

과거의 독재 세력이 피라미드 건설에서 이득을 원했듯이 새 권력 역시 

당연히 이 해체 작업을 이용해 먹을 수 있을 터였다.” -151

 

단 하나의 생각으로 모두의 뇌를 연결시키자는 이 오래된 권력의 욕망은 변함없는 생식력을 과시하며 인간 세계 여느 곳에서 그 실체를 감지하지 못하는 인민들을 양식 삼아 그 생명을 이어간다. 권력의 오용과 남용, 전체주의 사회로의 유혹과 그 악의, 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맹목성과 기만의 대가에 대해서 무언가를 느끼기를 바라는 이 작품은 이들 치밀하고 인상적인 알레고리를 연결하고 해석하는 즐거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또한 전체주의 권력의 기만성과 폭력성의 전시장이라 하겠지만, 이에 못지않은 주제는 인민의 이기심과 몽매성이라는 사회적 토양에 대한 각성의 요구이기도 하다. 카다레의 소설은 읽는 재미를 결코 놓지 않으며 관통하는 의식을 기막히게 이면에 박아 놓는다. 아마 읽어나가며 그 신랄한 지성을 외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는 그런 또 한 편의 걸작일 것이다.

 

 

모래와 풍문, 이것이 이집트다. 아버지 스네프루가 임종 직전 그에게 말했다. 그것들을 지배하면 넌 이 나라를 지배할 거다. 나머지는 모두 허상에 불과해.”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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