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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평점 :
■ 이 리뷰에는 소설의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참고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들어보겠습니다. 삼십 분 드리겠습니다.” -「드라마」,13쪽
이 작은 체호프의 소설선집 표제작을 단편 「드라마」로 배치한 것은 아마 체호프의 작품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지니기에 맞춤인 까닭일 것이다. 누군가가 상대의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에게만 열중하여 그칠 줄 모르는 장광설을 늘어놓을 때, 급작스럽게 몰려오는 참을 수 없는 지루함과 의미 없음이 격렬함으로 딱하고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는 경우가 있다. 대개는 그저 마음속으로 짜증을 삭이지만 말이다.
주인공 ‘파벨 바실리비치’는 유명한 작가인 듯하다. 그에게 한 여인이 자신이 쓴 희곡을 들고 와 읽고 작품을 검증해 주기를 부탁한다. 내키지 않지만 간절한 부탁에 두툼한 노트를 받아들고 한 번 읽어보겠다고 하지만 여인은 바로 지금 자신이 낭독할 테니 듣고 판단해 줄 것을 다시금 요청한다. 영감도 없고 이해할 수 도 없으며 하품만 연신 나오는 하찮은 이야기들이 그칠 줄 모르고 낭독되고 있다. “오 맙소사! 십분만 더 이 고통이 계속된다면 비명을 지르게 될거야....., 참을 수 없구나!(16쪽)” 파벨은 가슴속으로부터 치솟는 비명을 지르며 묵직한 문진을 집어들고...., “배심원들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냉소적이고 지극히 간결한 이 마지막 문장으로 이야기는 종료된다. 입이 절로 씰룩거리게 하는 공감의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수록된 여섯 편 중 예외적으로 긴 단편작인 「베짱이」는 자기 욕망의 이상을 늘 새롭고, 지적 허영의 무리에서 찾으려 하는 ‘올가 이브노브나’라는 여인이 삶에서 진정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부한 소재로 이끌어감에도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속도감, 상황의 짧은 순간의 스치듯 변화하는 표정과 언어로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올가의 남편 ‘오시프 드이모프’는 의사이자 9등 문관으로 보잘것 없는 수입을 버는, 그러나 성실한 인물로서 주변에 재능있고 점잖은 지인들이 있는 사람이다.
반면 올가는 문학, 미술, 음악 등의 나름 저명한 인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이 모든 예술 방면에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하지만 정작 어느 것에도 재능을 지니지 못한 낭만적 허영으로 그득한 여인이다. 드이모프는 이러한 아내의 분주한 활동과 소비를 지원하기 위해 생계 벌이와 학문적 열정을 묵묵히 수행한다. 올가는 여러 사교 활동 중 금발의 미남 청년 화가인 ‘랴보프스키’와 불륜을 맺으며 남편을 자신의 자유로운 연애 활동의 수단이자, 평온한 배경으로 활용할 뿐이다. 여자는 허영의 모임에서 으스대듯 말하곤 한다. “그 남자(남편)는 자신의 관용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어!”라고. 랴보브스키와의 지속되는 불륜에 대한 자기 양심의 목소리를 남편의 억압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사실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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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북클럽 에디션; 안톤 체호프 단편선】
어느 날 드이모프는 아내 올가에게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음을, 병리학 강의를 맡게 될 수도 있음을 자랑스레 말하지만 올가는 랴보브스키와 만날 상상에 빠져 건성으로, 무심한 반응을 보인다. 아내의 불륜, 올가의 기만을 인식하기 시작하지만 그는 디프테리아에 전염되어 눕고 만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아는 드이모프의 친구 코로스텔료프는 올가를 향해 혼자 말이듯 중얼거린다. “이렇게 무모한 인간들은 정말이지 재판을 받아야 해.(76쪽)” 그가 왜 전염되었는지 올가에게 알고 싶은지 묻는다. 아내의 허영을 위해 쉴 새 없이 벌이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선량하기만 하고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고통 받고 누워있는 친구로 인한 분노이다.
남편이야말로 올가가 선망하는 고귀한 지성인인 “선하고 순수한 사랑을 담은 영혼, 불을 밝히고 뒤져봐도 못 찾아낼 대단한 학자(81,82쪽)”였음을 올가는 코스텔료프를 통해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뒤늦게 남편의 비범함과 위대함을 깨닫고 누워있는 병실로 달려가지만 그는 이미 시신이 되어있다. 기회는 사라지고 없다. 사실 시사하는 주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갖지 못한 저 먼 곳에 손을 뻗지만, 소중한 것은 늘 자기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들에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곤 항상 뒤늦은 후회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선집 제일 끝에 배치된 「내기」는 이 같은 인간적 한계에 도사린 어리석음이라는 눈 먼 욕망과 그에 대한 혐오, 이것, 즉 삶의 의미의 무상성, 공허함에 대한 극단의 얘기일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범죄자의 사형과 종신형에 대한 윤리적 논쟁에서 비롯된다. 모임의 주최자인 부자 은행가는 말한다. 사형은 단 숨에 죽이지만 종신형은 서서히 죽이기에 사형이 더 인간적인 처벌이라 주장한다. 반면에 한 변호사는 둘 다 비윤리적이라고 반박한다. 생명의 박탈이라는 권리는 국가가 되었던 그 무엇이 되었건 인간생명을 죽일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흥분한 은행가는 변호사에게 즉석에서 내기를 건다. 만일 15년간 갇혀 지낸다면 당신에게 200만 루블의 거금을 주겠다고.
내기에 합의한 변호사는 은행가의 집 정원에 지어진 작은 장소에 엄중한 감시와 함께 감금된다. 변호사는 첫 해에 가벼운 소설책들을 요구한다. 둘 째 해는 고전 서적들을, 오년 째에는 술을, 육년 반이 되었을 때에는 외국어와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십 년 째는 복음서만을, 그리곤 종교사와 신학 서적들을, 마지막 이년 동안은 자연과학, 의학, 화학 등 엄청난 책들을 읽는다. 은행가는 세월이 감에 따라 여러 투자에 실패하고 재정 상태가 악화되어, 변호사가 15년을 모두 채워 200만 루블 지급 의무를 지게 될 것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윽고 약속된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오자 그를 몰래 죽여 부담을 영원히 소멸시키기로 다짐한다.
이윽고 살해하기 위해 감금된 자가 있는 곳에 잠입하기 위해 상황을 살핀다. 수인(囚人;변호사)은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다. 그러나 그 몰골은 더부룩한 수염을 달아놓은 해골, 살가죽을 입혀 놓은 노인처럼 쇠락한 인간이다. 가볍게 죽일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들어갔을 때 책상 위에 뭔가 빼곡하게 써진 종이를 발견한다. 15년에 걸친 왕성한 독서가 수인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사고 능력으로 몇 세기에 걸쳐 이룩해 낸 모든 것들이 그의 두개골 속에서 작은 언덕으로 쌓였을(127쪽)” 때, 그것은 그 모두가 시시하고 무상하며 신기루처럼 공허하고 기만적인 것일 뿐이라는 깨달음이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지혜를 경멸한다!”, 책 속에서 지상의 축복이라 불리는 모든 것을 경멸하게 된 것이고, 꿈꾸듯 갈망하던 약속된 200만 루블이 하찮아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권리를 박탈하기 위해 약속 기한이 도래하기 전에 스스로 나갈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살해하려 잠입한 은행가가 읽은 것은 그의 물욕과 삶의 방식에 대한 혐오와 자괴감에 대한 거울이었음이다. 그는 잠든 수인의 머리에 입을 맞추고 그냥 돌아선다.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재화에 대한 욕망을 갈구했던 인간이나, 자기 재화를 위해 타인을 죽일 결심을 하는 인간에 대한 이 강렬한 우화는 삶의 의미를 찾겠다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허무함과 함께 어떤 우주적 부조리함의 심연을 거닌 느낌을 선사한다. 체호프의 소설은 간명하고 기지가 빛나는 촌철살인의 삶에 대한 해명이 번뜩인다. 이야기는 재미있고, 주제는 깔끔하고 선명하다. 어쩌면 그의 모든 작품들은 작가이자 개업 의사로 생계를 위한 분주함을 떨쳐내지 못했던 자기 연민이 승화되어 빚어진 위대한 생의 철학적 산물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편「거울」의 주인공 넬리가 바라보는 꿈 속 거울에 반영되는 비(非)실존적 풍경들, 잿빛 풍경 속에 전개되는 “인간사란 단지 죽음에 대한 어리석고 불필요한 서문(序文),96쪽"에 불과한 것, 그것인지도.
“문학이라는 벌 통 속엔 제가 짜낸 꿀 한 방울도 들어있지요....” - 「드라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