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지음, 강미경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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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그릇을 받쳐 든 작은 두 손과 분홍색깔 배경의 예쁘게 장정된 책,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가 내 시선을 잡아당긴 이유는 이것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작은 손에 느껴지는 공손함과 그 이면의 두려움, 조심스러움, 연약함이, 그리고 강제된 어떤 힘에 대한 것이.

감정의 과잉일까? 이미 소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배경 지식 때문일지는 모르겠다. 에밀의 저자 ‘J.J.루소아이는 자연이다.”라 말했다. 조작된 어떠한 것도 끼어들지 않은 그것, 그런데 이 인위적인 것들이 자연을 다른 무엇으로 변화시킨다. 굴종을, 겸손을, 불필요한 정념들에 주눅 든 존재로, 소설은 바로 이 조작을 자연이라는 선으로 회귀시키려는 놀라운 희생과 믿음, 사랑을 이야기 한다.

   

 

 

1. 범죄를 생산하는 사회

 

산업자본가들의 광기가 고조되던 노동 착취적 환경, 이로 인한 극심한 빈곤이 대중화되던 19세기 영국사회가 배경인 작품이다. “경비절감, 수지타산”, 이 단어들은 아홉 살 어린아이를 팔아먹기 위해 구빈원 위원들의 비밀회의에서 들려오는 음절들이다. 또한 먹이를 주지 않아도 살수 있다는 괴상한 논리를 실험하여 아이 10명중 여덟 명을 저세상으로 보내는 보육원장의 탐욕스러움까지 더해진 파렴치와 잔혹함이 사회의식을 장악한 세계이다.

 

죽 한 그릇 더 주세요, 원장님.”

올리버 트위스트가 죽을 더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아이는 교수형을 당할 거요.” (P 30)

    

어쩌다 주어지는 멀건 죽 한 그릇, 그마저도 혹독한 매질이 대신하는 극한의 생존환경, 아이는 구빈원의 탁월한 자본가적 계산에 의해 노동력이 필요하던 장례사에게 떠 넘겨진다. 계층의 밑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약자들 간의 잔인함은 더욱 증폭된다. 거짓과 위선, 질시와 경계의 감정이 더해지고 굶주림과 폭력은 늘어난다.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그것들이 편협과 무지, 악과 지배욕에 올라타 아이에게 불행을 요구한다.

 

아이는 도망친다. 광기와 불행이 너울대는 고향, ‘머드포구를 벗어나 런던으로. 농촌에서 쫓겨난 도시빈민들로 득실대는 대도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이 올리버를 이끈다. 먹을 것도, 잠 잘 곳도 없는 아이에게 구빈원을 대신한 곳은 소매치기 집단이다. 악을 생산하는 사회 구조에서 그야말로 자연스러움 자체일 뿐이다. 집단의 우두머리인 페이긴은 범죄의 종착점인 교수대를 설명함으로써 올리버를 위협하고 속박한다. 사회의 모든 계층이 뒤질세라 범죄를 양산하고, 또한 이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선서 시키시오

입 다무시오.”

쇼를 하는구먼.”

판결을 하겠소.”

“3개월간 중노동형에 처한다. 퇴정하시오.” (P 136~137)

 

단지 두려워서 내달린 어린 아이를 잡아와 벌이는 즉결심판의 모습이다. 왜곡된 지식, 부재하는 도덕, 하찮은 권위들이 팽배한 세계, 올리버를 단지 수지타산의 물건으로만 여겼던 구빈원교구(敎區)직원 범블이나, 소매치기 우두머리 페이긴’, 즉결심판 판사, 이들 모두는 자신들이 악인이라 생각지 않는다. ‘선한 이웃이라 자처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추악한 세계의 이율배반(antinomy), 개인의 선한 신념이 악을 축조하는 우리네의 투영일 것이다.

 

2. 사랑이라는 믿음, 그리고 희생

 

이처럼 그 경계를 구분키조차 어려울 만큼 얽혀있는 집단과 계층의 부도덕성이 점령한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임에도 소설은 아름다움과 자연이라는 선의 충만한 감동으로 가슴에 파고든다.

 

브라운로’, ‘로즈’, ‘메일리 여사로 등장하는 인물들에 의해 아이는 구원되고, 보호받는다. 이들은 버려진 채로, 외면 된 채로, 이용과 착취의 대상으로, 냉담함과 밀려드는 공포의 환경이기만 했던 세상에서 안전과, 위로와 평온의 존재함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사람들이다. 아이의 고통을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 아이라는 자연에 대한 조건 없는 믿음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소설의 강렬함은 간신히 벗어났던 구렁텅이로 어린 올리버를 다시금 소매치기집단에 넘겨주었던 낸시라는 여성이 발휘하는 죄에 대한 자기이해와, 그로부터 시작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처참한 죽음의 장면이랄 수 있다. 매춘, 좀도둑질, 밀고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여인이 새로운 삶의 무대로 나갈 수 없을 만큼의 악의 조밀한 얽매임은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이란 것이 짐작할 수 없는 용기와 고통임을 보여준다.

 

세상에서 버려졌던 아이, 그 자연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에는 무수한 사람들 공동의 협력과 노력, 그리고 생명을 건 분투여야만 한다. 이 소설이 발산하는 감동의 울림은 이처럼 진정함, 정의, 믿음의 회복을 위한 지난한 헌신과 희생임을 발견케 하는 데 있는 것이지 않을까?

 

고작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인간됨을 잃지 않고 행복을 찾아가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라는 이 소설에 오랫동안 달린 계도(啓導)적 해석들은 사회와 기성의 인간 공동체가 자신들은 책임이 없음을 회피하는 몰염치가 될 것이다. 디킨스의 이 문학작품은 단순한 아동문학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어린아이 올리버 트위스트로 대변되는 자연의 순수성과 도덕적 가치의 고귀함에 대한 환기이며, 이의 회복을 위한 자기반성을 상실한 사회와 인간 구성원들에 대한 비판이라 해야 할 것이다. 때 묻은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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