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쓰는 법 - 내가 보고 듣고 맡고 먹고 느낀 것의 가치를 전하는 비평의 기본기
가와사키 쇼헤이 지음, 박숙경 옮김 / 유유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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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고 싶은 욕심
저는 글을 잘 쓰고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책 리뷰를 쓰거나 영화 리뷰를 써보는 연습을 간간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내 안에 담긴 경험이나 배움의 정도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글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기 때문에 <리뷰 쓰는 법>을 보자마자 찜했었습니다.

#리뷰? 비평?
이 책의 부제는 <비평의 기본기>입니다. 리뷰와 비평은 무엇이 다를까요. 같은 건가요? 그런데 왜 저에겐 다르게 느껴질까요? 먼저 이런 의문을 떠올린 이유는 제가 이 책을 <리뷰 쓰는 법>이라는 제목만 확인하고 샀지만 본문에선 ‘리뷰‘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고 ‘비평‘ 쓰기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기본적 의미‘로 둘은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느낌이 들까?-했더니 두 번째 의미가 각각 달랐습니다. 리뷰는 [전체를 대강 살펴보거나 중요한 내용이나 줄거리를 대강 추려 냄.]이라는 두 번째 뜻이 있었고, 비평은 [남의 결점을 드러내어 좋지 않게 말함.]이라는 두 번째 뜻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다르게 느낀 건 이 두 번째 뜻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목이 <비평 쓰는 법>이었다면 전 이 책을 사지 않았을지 모릅니다.(일본어 원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는 비평의 숨은 뜻을 알게 되었고, 그 부분이 앞으로 저의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가치를 전달하는 글
책은 비평의 의미부터 짚고 넘어갑니다. 그 뒤로는 준비 과정, 쓰는 과정, 단련하는 법 등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비평‘이 곧 ˝가치를 전달하는 글˝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첫 장을 읽으며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서 내가 왜 글을 쓰는 것에 의미를 찾지 못했는지 또 남의 글을 볼 때 왜 불편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비평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비난의 세상에서 비평하기
저자는 맺음말에서 ‘현대인들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면서 ‘수신자는 발신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되돌려 주어야 하고, 발신자는 수신자에게 답해야 하는 책임을 다 가져야 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언어와 표현과 주장이 쌍방향의 상태에 있는 것이며 이것은 늘 무언가를 발신하고 수신해야 하는 쌍방향성에 대한 회의로 나아가고 있다‘라 평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 백번 공감했습니다. 트위터,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 등. 글, 사진, 그림, 영상을 모두 업로드하는 시대에 ‘나의 비평‘과 ‘누군가의 비평‘들은 끝없이 계속되어 갑니다. (‘기레기‘라는 말도 이러한 쌍방향성의 피곤함이 녹아있는 신조어라 생각됩니다)

저는 이런 상황들이 비평보단 비난을 더 많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 보면 되지‘라는 생각도 하지만 이런 비난이 주류로 인정받고 컨텐츠로 만들어져 결국 나에게 전달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삶이 지쳐버립니다. 그런 면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으로써 올바른 비평 방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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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서동수 옮김 / 세미콜론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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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적인 서점과의 만남. 4월 27일. 한 달 내내 설레며 기다린 그 날은 아주 화창한 초여름 날씨였다. 사장님은 쿨하게도 내가 도착할 때까지 문자 하나 없었다. 상담을 받는 한 시간 동안 책과 관련된 내 이야기가 정제되지 않은 채 막힘없이 나왔다. 십분 같은 한 시간이 지나고 서점 문을 나와서야 상담 중에 오고 간 생각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2.
5월 10일. 정성스레 쓰인 편지와 함께 궁금했던 처방책이 도착했다. 사적인 서점 사장님은 ‘유연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싶어 하는‘ 나에게 <모든 날이 소중하다>를 처방해 주셨다. 남의 인생 스토리를 좋아하고 그 속에서 내 삶의 방향을 찾고자 하는 나에게 ‘그레고리의 삶‘을 선물로 준 것이다. 덧붙여 ˝이해하려면 여백이 필요하다˝는 다른 책의 구절도 함께 쓰여 있었다.

3.
이 책은 그레고리가 직접 그린 아기자기한 그림과 꼬불꼬불한 글씨로 채워진 책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았던 책은 첫 이야기부터 충격이었다. (사전에 어떤 정보도 보지 않고 읽었기에 더욱 그랬다) 전체적으로 그림책에 가깝지만, 내용이 주는 무게감이 더 묵직했다.

4.
중요한 것은 그 무거움을 끌고 나가는 그레고리에게 있었다. 고민하고 변화하는 그의 모습. 그 모습을 따라 많은 생각을 불러낼 수 있었다.

5.
그레고리는 침착하고 담담하게 글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분노와 좌절의 결과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는 담담하게 ‘받아들임‘과 ‘비움‘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판단하지 않는 것. 그가 깨우친 삶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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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7
왜냐는 질문 없이 항해하고 초연함으로 나아가겠다면서 뗏목이, 일련의 규칙이 필요해졌으니 말이다.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 허무로다, 허무! 이 망할 놈의 뗏목조차 허무다. 문제는 내가 위로와 안전, 즐거움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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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이라고 모든 생각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다. 계획의 노예가 되지 말고, 목표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나중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재에 조금 더 충실하자는 뜻이다.

6.
‘받아들임‘과 ‘비움‘을 생각하다보니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이 생각났다. 거기서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책을 읽고 난 이후에도 계속 힘들었었다. 특히 감정이 문제였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따라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통제할 수 없으니 내려놓기 힘들었다. 그레고리는 그걸 ‘그림 그리기‘를 통해서 극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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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는 그리는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법에 있었다. 나는 내가 그리는 대상을 눈으로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듯 했다. 내 시선은 모든 굽이와 도드라진 곳들에 정성스럽게 머물렀고 표면을 따라 그늘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렇게 바라볼 때,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 중요한 것은 그 느리고, 애정이 담긴 바라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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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미지와 기호를 사용해 모든 것을 나누고 구분한다. (...) 이 상징들은 우리들이 세계를 보는데있어 하나의 장막이 된다. (...) 내가 생각하던 비참한 삶도 어쩌면 그저 나만의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7.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구석기 사람들이 그렸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실력과 묘사가 뛰어나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다. 어떻게 그 사람들이 고대나 중세의 예술가보다 잘 그릴 수 있었을까? 고대 이집트 벽화나 중세 프레스코화와 비교해보면 인류의 그림 실력은 퇴보되었다고 봐야 맞다. 이점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인간 의식구조의 기호와 상징화를 지적한다. 언어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확실히 많은 사물과 상황을 글자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와 의식 체계의 발전이 인류의 그림 실력을 퇴보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앞에 놓인 사건과 상황들도 왜곡적이게 받아들이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뇌가 왜곡적으로 판단한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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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헛된 생각들이다. 몽테뉴가 말한 것처럼, ˝나의 삶은 지독한 불행으로 가득한데, 그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내 삶의 충만함을 있는 그대로 360도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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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줄지를 정할 수 없으며 단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만 결정할 수 있다. (...) 나는 지금도 슬퍼지고는 한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와 마찬가지로, 떨어진 말에 다시 오르면 그만큼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성숙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음 주에 내가 다시 바보가 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삶은 변화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의 깊게 깨어있어야 한다. 다행한 일은 삶이라는 마차는 당신이 거기에서 떨어져도 다시 기어오를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점이다.

8.
나는 ‘삶의 문제‘에 대해서 ‘그리는 방법‘만을 찾아 왔는지 모른다. 반면 그레고리는 ‘바라보는 방법‘이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 삶을 앞으로 어떻게 잘 그려갈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면 좋은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아직도 나는 정확히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몇 년 전부터 취하고 있던 자세를 이제는 변화시켜 볼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차이는 그리는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법에 있었다. 나는 내가 그리는 대상을 눈으로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듯 했다. 내 시선은 모든 굽이와 도드라진 곳들에 정성스럽게 머물렀고 표면을 따라 그늘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렇게 바라볼 때,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 중요한 것은 그 느리고, 애정이 담긴 바라봄이다.

사람은 이미지와 기호를 사용해 모든 것을 나누고 구분한다. (...) 이 상징들은 우리들이 세계를 보는데있어 하나의 장막이 된다. (...) 내가 생각하던 비참한 삶도 어쩌면 그저 나만의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헛된 생각들이다. 몽테뉴가 말한 것처럼, "나의 삶은 지독한 불행으로 가득한데, 그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내 삶의 충만함을 있는 그대로 360도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말이다.

우리는 삶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줄지를 정할 수 없으며 단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만 결정할 수 있다. (...) 나는 지금도 슬퍼지고는 한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와 마찬가지로, 떨어진 말에 다시 오르면 그만큼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성숙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음 주에 내가 다시 바보가 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삶은 변화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의 깊게 깨어있어야 한다. 다행한 일은 삶이라는 마차는 당신이 거기에서 떨어져도 다시 기어오를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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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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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는 제목처럼 오쿠다 히데오의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가볍지만 친근한
책 중에는 위대하면서 멀어 보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가볍지만 친근하게 다가오는 작품도 있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처음 <공중그네>를 읽었을 때의 느낌도 그랬었다. 가볍게 툭툭 던지는 말들 속에 현실의 문제들이 녹아있어 더욱 와 닿았던 오쿠다의 소설을 또 이렇게 읽어 보게 되었다.

#단편들
▶<나는 사장이다> <매번 고맙습니다> 두 편은 직장 퇴사 후 사장이 되어가는 과정을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다룬 연작 소설이다. 뒷 부분에 어린 딸이 학교 숙제로 아빠에게 돈 버는 것에 대해서 인터뷰하은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드라이브 인 서머>는 읽다 보면 어의없는 상황과 답답한 맘에 한숨과 쓴웃음이 저절로 나는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 밖 우리 현실이 더 답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로아티아vs일본>은 한 축구광의 모순적인 모습을 채치 있게 잘 표현한 진짜 짧은 글이다. ▷<더부살이 가능>은 오쿠다 히데오가 쓴 잘 짜여진 스릴러 한 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작가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세븐틴> 열 일곱살 사춘기 딸을 둔 엄마의 내적 갈등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사춘기 자녀를 가지기 전에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의 앨범>은 아련한 추억을 자극하는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와 가슴 뭉클한 가족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오쿠다 히데오 x 잇세 오가타> <오쿠다 히데오 x 야마다 다이치>는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 깊이 있게 알지는 못했지만, 공감 가는 부분들도 많았고 배울 점도 많았던 대담 두 편이었다. 인터뷰 형식이라 작가의 스타일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해학과 풍자
오쿠타 히데오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건 해학과 풍자의 대가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지로 그의 소설을 읽으면 현실의 문제를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어서 좋았었다. 이번 <버라이어티>를 읽으면서도 역시 그런 면모를 느낄 수 있었고 그와 더불어 그의 다양한 스타일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더 좋았던 건 ‘대담‘ 두 편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평소에 어떤 걸 추구하고 어떠한 생각으로 작품을 집필하는지 대화 중간중간에 스며져 나오는데 그걸 읽으면서 작가가 더 친근하게 다가왔고, 그가 왜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작품을 풀어나가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에 ‘후기라기보다 변명입니다.‘로 시작해서 ‘저는 앞으로 16년 후면 죽습니다‘로 이어지는 <작가 후기>는 그의 인간다운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해학과 풍자는 사회 현상이나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공감과 비판이라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의 작품과 작품을 집필하는 자세를 통해 살면서 추구해야 할 ‘공감적 시각‘과 ‘비판적 시각‘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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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 보낸 아날로그 라이프 365일
송은정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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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끝자락
나와 동갑인 작가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건 특별했다. 20대라는 동시간대에 나와는 다른 선택과 삶을 살아온 작가를 보면서 많은 생각에 빠졌다. 작가와 달리 나의 20대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내가 기준도 방향도 없이 떠다녔던 시절에 작가는 캠프힐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독립서점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내가 막 독서에 관심을 가졌을 당시에 작가는 서점을 닫았다. 삶에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하고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캠프힐
하정 작가님의 <이런 여행 뭐, 어때서> 이후 다시 읽는 캠프힐의 이야기이다. 다른 장소의 캠프힐이지만 <이런 여행 뭐, 어때서>를 읽을 당시에 보고 느꼈던 그 감각들을 또 한 번 불러올 수 있어서 좋았다. 캠프힐은 역시 아름다운 자연과 여유,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있으면서도 외로움과 갈등, 사람들 사이의 애증이 공존하는 적당한 삶의 모습을 가진 곳이었다. 사실 송은정 작가가 이야기하듯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따뜻한 감옥‘일지 모른다. 또 거길 찾는 코워커들도 잠시 스치는 봉사 활동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과 함께 삶을 살아내려는 캠프힐의 모습이 너무나 멋지고 정상적으로 보였다.

#삶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의 삶과 미래의 삶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 것 같다. 생각해본다고 해서 결론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 나를 정리하고 준비시키면서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일이 나에겐 중요하다. 이 책 제목처럼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천국 같은 곳은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살 만한 곳이라면, 그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잘 살다가 가고 싶은 마음이다.

#프롤로그
책의 맨 앞장에 나오는 프롤로그를 맨 나중에 읽었다. 처음엔 안 읽혀서 지나갔던 그 내용들이 하나하나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P4
"지난 1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는 것.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된다는 것."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P7
캠프힐에서 그랬듯 여전히 나는 어제의 나와 이별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것은 곧 오늘의 나와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매일 조금씩 더 나다운 모습으로, 조금씩 매일.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출구 없는 이별을 기꺼이 되풀이할 생각이다. 그렇게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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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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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이혼, 종국엔 인생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소설.


김숨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고민을 징그럽게 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 책은)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혼이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한다. 합의이혼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혼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제도를 벗어나 더 완전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혼을 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소개
가끔 출판사 광고나 서점의 홍보로 눈에 띄었지만 구매는 하지 않았던 책이다. 그러다 뜻밖의 선물로 받았다. 읽는 내내 많이 아프고, 공감되고,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소설이었다. [이혼], [읍산요금소], [새의 장례식] 3편 모두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와 이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혼]은 현실적이고, [읍산요금소]는 몽상적이고, [새의 장례식]은 환상적인 소설이었다고 하면 괜찮을까? 읽다 보면 3편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결혼과 이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와 생활을 공유한다는 건 개인의 삶에서 아주 커다란 사건이다. 하지만 타인은 절대 내가 될 수 없다. 지내다 보면 상대가 아니라 내가 많은 걸 내려놓아야 함을 알게 된다. [이혼]에서 민정은 남편 철식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결혼은 어느 한쪽만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관계를 왜 권위로 누르려 하는 것일까. 민정의 어머니는 지속적인 구타에 평생을 고통에서 살았지만 결국 이혼을 하지 않는다. 답답한 민정은 ‘이혼이 소원이라고 그러지 않았냐‘며 다그치지만 어머니는 ‘모르겠다...‘라는 말만 남긴다. 이혼 소송을 준비하는 대기실에는 오십삼 년을 함께한 노부부도 나온다. 무엇이 그들을 함께 살게 만들고 못 살게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먼저 이혼한 영미 선배는 이렇게 고백한다. ˝부부가 뭔지 모르겠어 (...) 결혼해 사는 내내 수억 광년 떨어진 행성처럼 서로 겉도는 느낌이었거든. (...) 새벽에 잠에서 깨, 그 사람 손을 슬그머니 그러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옆에 누워 잠든 그 사람이 이생에서는 만날 수 없는 존재처럼 멀고멀게 느껴져서.˝
나도 가끔 운명이나 인연을 믿을 때가 있다. 하지만 잠에서 깬 것처럼 혼자라는 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연인과의)사랑도, (친구와의)다툼도, (자녀와의)헤어짐도 모두 그 끝에는 혼자라는 자리가 있다. 우리는 각자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인생‘을 공전하는 고독한 행성일지도 모르겠다.


부부든 연인이든 친구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능력, 공감이 필요한 게 아닐까.

#공감
지대넓얕 - 도덕감정론과 멘탈파워에서 공감의 특성에 대해 들었다. 공감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①공감은 상대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상황에 대입시켜서 느끼는 역지사지 능력이라는 점. ②상대가 느끼는 것보다 공감하는 사람의 감정 자체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 ③따라서 공감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고, 완전한 공감이란 있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고.
혼자뿐인 인생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감‘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공감의 특성이 사랑과 닮았다. 저절로 이루어지지도 않으며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고 완전한 사랑이란 없다는 것. 결혼은 그런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
결혼은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는 것이 아닐까.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이해를 해나가는 과정으로 살겠다는 약속. 그것이 결혼서약이지 않을까.


#마치며
김숨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 내년 여름에도 그리고 내후년 여름에도 계속될 것 같았던 일들은 대개 그해 여름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계속되는 것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되리라는 환(幻)만 있을 뿐.˝
소설의 내용은 비록 힘들었지만, 이 글을 통해 ‘좋아지고 있는 거’라고, ‘지금보단 나아질 거’라고 말하는 듯한 희망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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