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 자르기 Fired K-픽션 13
장강명 지음, 테레사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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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도덕관
예뻐 보이는 직원이란 뭘까? (남녀 구분 없이 이 말은 다 작동한다) 항상 미소 띤 얼굴에 싹싹하고 업무를 찾아서 하는 직원? ‘싹싹하다‘라는 말을 찾아봤다. ‘눈치 빠르고 사근사근하다‘라는 뜻이 나온다. 이번엔 ‘사근사근하다‘라는 말을 찾아봤다. ‘생김새나 성품이 상냥하고 시원스럽다‘라는 뜻이 나온다.
우리는 흔히 얼굴 생긴 것과 업무는 별개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싹싹한 직원을 두고 일을 잘한다 여긴다. 또한 ‘눈치가 빠른 것과 업무를 하는 것은 연결고리가 약하다. 눈치가 빠르다는 말에는 이해하는 능력도 포함되겠지만, 우리가 이 말을 사용하는 접점은 ‘업무를 찾아서 하는 직원‘, ‘상사의 비위를 잘 알아채는 능력‘에 닿아있지 않은가? 특히나 우리는 직장은 배우는 장소가 아니라는 말을 자주 한다. 가르침이 있어야 이해도 수반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의미는 약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시 돌아가 (예뻐 보이는 직원이라는 말 자체도 너무 시각적이다) ‘일 잘하는 직원‘이라는 것은 자기 일을 하는 것과 더불어 +생김새 +성품,성격 +눈치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합친 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느낀다. 과연 직장 생활 속 우리의 도덕 감정은 합리적이고 올바른 것일까? 정의를 지키는 영화 속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면서, 현실 생활 속에서의 우리는 과연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일까.

#모순
한국 직장의 구조적 문제와 모순된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화자가 은영 과장이라서도 그렇겠지만, 이 작품의 독자들은 사장이나 알바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쉽게 은영의 처지만을 쫓아간다. 작가의 의도적 기획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든 자신을 피해자와 동일시 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장강명
너무 좋아하는 작가다. 장강명 작가는 현실인지 소설인지 모르게 너무나 현실 속 문제를 잘 잡아낸다. <댓글부대>도 그랬었다. 실제로 온라인 마케팅을 다뤄 본 사람이라면 느꼈을 일들을 소설에 풀어놓았고, 그리고 실제로 국정원 댓글 사건이 알려지기도 했다. 작가가 11년 동안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했던 게 도움이 되었을까? 하지만 장강명 작품의 본질적 글솜씨는 자신이 조사하고 알게 된 사실을 풀어내는 것 이상으로 미묘한 인물들의 감각을 잡아내며 독자가 그걸 느끼도록 전달해내는 능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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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My Clint Eastwood K-픽션 4
오한기 지음, 전승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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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개척시대의 정신
나는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살면서 마카로니(스파케티) 웨스턴 장르나, 서부 총잡이가 나오는 작품을 전혀 접하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지만, 이 소설을 통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와 더불어 우리나라 여느 할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는 구시대의 꼬장꼬장함을 보면서도 불편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그 시대를 알고 싶은 학구열 비슷한 걸 느꼈다.

#지나간 정신
탈이념 시대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도 하나의 의견이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오히려 내가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나도 구식이 되면 신세대들에게 무시당할 거라는 두려움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내 안에 일어난 변화를 보면서 희망을 조금 선물 받은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면 필요한 시대정신은 계속 바뀌겠지만 지나간 정신이라고 해서 폐기되는 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랜토리노
책을 읽은 후에 <그랜 토리노>를 봤다. 영화 <그랜 토리노>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건국의 위대한 정신만 훼손하지 않는다면 흑인이든, 황인이든, 젊은이든, 여자든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유되고 이어져야 한다.‘ <그랜 토리노>에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소설 속의 모습과 비슷했다. 과거의 영광에 심취해 있고, 변화된 시대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모습. 하지만 <그랜 토리노>에서는 이 소설보다는 훨씬 성숙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힘든 시기에 힘들게 만든 영화라는 걸 대충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가치관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들이 보였던 것 같다. 보수라고 하면 변화를 싫어하고 지키려고만 하는 성향만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 건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잘 보여 준다. 예의를 갖추고, 여자를 지키며,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 올바른 정신.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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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벌룬 Hot Air Balloon K-픽션 3
손보미 지음, 제이미 챙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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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이란 시스템
부모님의 죽음. 가족과의 헤어짐. 마지막 여인의 떠남. ‘그’를 중심으로 상실되어 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문제는 주인공이 그런 상실들을 모두 자기 탓이라 여긴다는 점이다. 무리하게 자신을 출산하다 병약해져 죽은 어머니, 자신을 보호하다 평생 장애를 안고 죽은 아버지, 불안정한 자신 때문에 집에 불을 낼 뻔한 사고로 헤어지게 된 딸과 아내.
죽음, 헤어짐, 상실을 겪은 사람들은 그 원인이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믿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어떤 시스템에 의해서 작동하는 건 아닐까? 인정하고 내려놓기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돌아가는 시스템에 우리가 너무 마음을 크게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머니는 그가 아니더라도 무리해서 아기를 낳길 바랐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가 아니더라도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을 것이다. 잘 사는 집안의 아내는 그가 아니더라도 수준에 맞지 않으면 딸을 데리고 떠났을 것이다.

#상실에 대한 파토스
내가 느끼기에 마지막 여인은 실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의 고통이 만들어 낸 애드벌룬 같은 환상이 아니었을까? 그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음을 느끼는 또 다른 자아인 건 아닐까? 상실이 만들어 낸 파토스이지 않을까?
마지막에 그 여인은 ‘당신, 나랑 헤어지려고 하는 거지?‘ ‘다른 세상에서는 나만 사랑해 줄래?‘라는 말을 남긴다. 왠지 이 말이 자살처럼 느껴졌다.

#손보미 작품의 특징
좀 독특한 소설이다. 내용 전개에서 정합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고 꿈과 현실을 넘나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 읽고 나서는 바로 느낌이 안 왔고, 해설을 보고서야 이해가 됐다. 노지영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손보미의 <애드벌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데뷔작인 <담요>를 끌어오지 않을 수 없다. 손보미의 새로운 작품에는 전작들의 ‘혼령‘이 깃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가장 적극적인 상호텍스트로 기능하는 예가 바로 <애드벌룬>이다.˝ 그러면서 <담요>에 대한 설명이 조금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확실히 이야기와 의미가 풍성해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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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판 Arpan K-픽션 2
박형서 지음, 김소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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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창작물)과 표절에 대한 이해


#문화의 전파와 표절
박형서 작가는 소설 아르판을 쓰면서 세 가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문화의 전파‘, ‘표절‘ 그리고 ‘둘이 얼마나 다르며,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다.
나도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문화의 전파‘라고 하면 일단 단어의 뉘앙스가 긍정적인 느낌이 들며, 문화를 전파하는 주체가 내 공동체라면 우쭐한 기분이 날 것이다. 요즘 K-Pop, K-Drama 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영향을 받는 입장으로 보면 나의 문화가 잠식당할 수 있기에 불안할 것이다.
‘표절‘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고 문화를 주고받는 관계가 반대로 형성되어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전파‘와 ‘표절‘에서 공수가 뒤바뀐다는 점이 흥미롭고 둘의 차이점이 확연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 세계에서 이 둘의 구분이 힘들다는 것이다. 한, 중, 일 역사만 살펴보아도 그렇다. 우리가 인정하기 싫은 ‘영향을 받은 것‘과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영향을 준 것‘의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박형서 작가가 그랬듯 나도 말하기 힘든 일이다. 역사는 퇴보나 진보라는 잣대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문화나 창작물이 역사의 흐름 속에 서로 섞이며 호흡해 왔다는 것이다.

#아르판
소설에서 표절하는 주체는 한국인 화자이고 갈취당하는 자는 소수민족의 아르판이다. 소설 중반에 화자가 아르판에게 자신의 정당성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화자의 주장은 ‘국가의 힘‘이나 ‘문화력‘ 같은 힘의 논리였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인정했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가 다른 강대국의 영향을 받고 빼앗길 것들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는 씁쓸함을 동시에 맛보았다. 이 소설은 작가의 말대로 답을 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정답이 나오진 않는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아르판의 뒷모습이었다.

"바보야, 세상 모두가 와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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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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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

#식물
식물의 생애와 자신의 삶을 연결시켜 보여 준 점이 인상적이다. 식물 연구자다운 방식이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내용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나무의 꽃과 낙엽만 감상하던 나에게서 벗어나 살아있는 한 생명체로서 나무를 느끼게끔 해 주었다.

#여성 과학자
책 속에 등장한 여성 차별 내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읽어서 그런지 더 크게 와닿았다. 이런 걸 볼 때면 과학은 이성적이지만 사회는 차별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대학생들처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병원에서 많은 시간 일을 한다거나 비정규직처럼 연구비 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그녀의 모습은 과학자라는 나의 환상을 깨고 친근함으로 다가와 주었다. 그 속에서도 당당하게 현실과 대면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순수 에너지
순수한 열정.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녀다. 그녀도 나도 쉬운 건 없고 실수투성이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서려는 몸짓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이 그 몸짓의 에너지를 느꼈을 것이다. 그녀의 에너지는 하와이에 마련한 집이나 연방 정부의 연구비 계약이나 교수 자리에 있지 않다. 국경을 넘나들며 끌고 다닌 실험기구들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 빌과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식물들과 항상 옆자리를 지켜주는 남편과 아들에게 있다.


#자연에 대한 단상 01
늦여름 아침, 어린 나는 잠자리들이 주차된 자동차 보닛 위를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걸 볼 때가 많았다. 개중에는 꼬리 끝으로 다른 잠자리 목을 감싸진 ‘커플 잠자리‘들도 있다. 커플 잠자리들은 비행하다가 보닛을 살짝살짝 치면서 날아간다. 타수산란이라고 하는 산란 모습인데, 비행하며 수면 위에 알을 떨구는 방법이다. 한마디로 그 잠자리 커플은 햇살에 반짝이는 보닛을 물 표면으로 착각하고 산란을 하는 것이다. 어린 나지만 그 모습을 볼 때면 슬픈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현실(물) 위를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공간(보닛)에서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며 사는 게 아닐까? 그렇게 자연은 날 흔들어 깨워준 존재였다.



#자연에 대한 단상 02
요즘에 보이는 자연이라곤 집 속 화분이나 도로 한복판에 놓인 흙먼지 속 가로수가 전부다. 한강을 나가도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와 인공적인 잔디밭만 보일 뿐이다. 사실 자연은 그런 게 아니다. 잘 정리되어 있고, 깔끔하고, 위생적이고, 안전한 것은 자연이 아니다.
<가만한 당신>에 소개된 더글러스 톰킨스와 크리스는 2억 7500여만 달러 (약 3250억 원)에 땅을 사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 것‘이라고는 그 땅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사유지 야생공원과 국립공원을 만들어냈다. 그들이 보여준 행동과 결과는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

P175
(...) 15킬로그램의 이파리가 필요한 만큼의 영양분들을 흙에서 모으려면 나무는 적어도 3만여 리터의 물을 흙에서 빨아들여 증발시켜야 한다. 그 정도면 유조차를 채우기에 충분한 양이고, 스물다섯 명의 사람이 1년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이며, 다음에 언제 비가 올지 걱정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양의 물이다.

P241
과학자들도 나무들이 사람이 아니고, 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해 감정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를 향해서는. 그러나 어쩌면 서로에 대한 감정과 관심은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위기가 닥치면 나무들은 서로를 돌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P329
그러나 다 자란 단풍나무가 자손들에게 제공하는 한 가지 믿을 만한 부모의 사랑이 있다. 매일 밤 자원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자원인 물을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려 약한 어린 나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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