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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탑의 살인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2년 7월
평점 :





마음속 깊은 곳의 열기가 급속도로 식어갔다. 그렇다, 코즈시마는 이런 인간이었다. 자신의 이익만 우선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 아닌가. 대체 뭘 기대한 거람. 건조한 웃음소리가 입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동정한 걸까. 같은 미스터리 애호가로서 공감한 걸까. 바보 같기는. 애초에 결심하고 이 남자에게 접촉한 것 아닌가. (p.52)
정면 현관으로 되돌아와 유리 터널을 통과해 홀로 들어가자, 사람들은 비통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몸을 떨고 있었다. 처참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외부와 연락이 차단됐으며, 산에서 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빼았겼다. 고작 몇십 분 사이에 상황이 일변해 사람들의 분위기가 무겁고 침침해졌다. (p.159)
“밀실······.” 유마의 입에서 그 단어가 새어 나왔다. 또다. 또 밀실에서 사람이 살해당했다. 이 저택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람. 유마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쥐어 뜯었다. (p.302)
유명한 의학 연구자이자 대부호이며, 열혈 미스터리 마니아인 코즈시마 타로가 만든 저택, ‘유리관’. 깊은 산 속에 있는 유리탑 모양의 이 기묘한 저택에 개성 가득한 손님들이 초대된다. 명탐정, 형사, 영능력자, 미스터리 소설가, 잡지 편집자 등······. 그중 의사인 이치조 유마는 코즈시마를 살해할 음모를 꾸민다. 겉으로 보기엔 성공적으로 실행된 것처럼 보였던 그의 계획, 하지만 명탐정 아오이 츠키요가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하는 바람에 그의 계획은 전혀 생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저택은 고립되고, 밀실에서는 살인이 연이어 일어나는데······.
눈보라 치는 산속에 고립된 기묘한 저택, 개성 가득한 초대 손님들, 수수께끼를 감추고 있는 저택의 주인까지. 작가가 시작부터 불을 뿜었다. 이 정도면 아주 작정을 한 듯! 소위 말하는 두꺼운 벽돌책임에도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오히려 흥미진진해서 책을 덮을 수가 없을 정도다. 읽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시간순삭! 책장이 제법 빠른 속도로 넘어간다. 작가의 풍부한 표현력과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 기이한 저택에서 일어나는 밀실 살인은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얼마든지 들어본 소재. 하지만 이 책은 여느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 뭐랄까. 훨씬 더 스릴이 넘친다고나 할까. 등장인물들이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 심장이 고동을 친다. 느닷없이 독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명탐정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은 이후 어떻게든 추리를 해보려 노력했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꽁무니에 매달려 따라갈 수밖에······. 끝까지 긴장감을 누그러뜨릴 수가 없었다. 특히 마지막 반전에서는 정말 깜짝 놀랐다! 추리,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