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9.1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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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간의 선물을 안고 새해가 밝아오겠지요. 새해엔 우리 모두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좀 더 겸손해지기로 해요. 보다 큰 사랑을 위해 조금만 더 낮아지는 연습을 하기로 해요. 겸손하고 낮아지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잘 죽는 연습을 해야겠지요?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방향을 돌리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기에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언제나 진심 가득한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해주시는 이해인 수녀님. 이제 수녀님을 앞으로 매달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 한 편을>이라는 코너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이달에 이해인 수녀님이 들려주는 시 한 편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복효근 시인의 <버팀목에 대하여>.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워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다. 그렇게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린다.이윽고 버팀목은 삭아 없어지고 큰 바람이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는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 버팀목을 생각하니 절로 아버지가 떠오른다. 거센 풍파로부터 가족들을 지켜내고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자처하여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으로 홀로 가족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앞서 말한 버팀목과 닮아있다. 수녀님의 말처럼 나도 우리 가족에게 그런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조금씩 더 낮아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아버지는 한국 스타일로 저를 키우셨어요. 누구보다 가정적이고 인자한 분이었지만 교육이나 예절 면에서는 매우 엄격하셨죠. 친구들은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데 전 그럴 수 없었어요. 어린 시절엔 친구들의 아버지와 다른 제 아버지를 원망한 적도 많았는데 요즘은 왜 좀 더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많이 돼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아들은 아버지의 고향으로 건너가 이제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다. 아버지의 조국에서 모델로 인정받아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스페인에 혼자 남겨질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지만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다짐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아버지의 나라는 어떤 곳일까? 젊은 시절 스페인으로 이민 간 한국인 아버지와 스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럽, 태국, 미국 등에서 활동하던 모델 장민(28)이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많은 고민 끝에 온 한국인만큼, 그는 누구보다 독하게 마음먹었다.처음 그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뿐이었다. 원활한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는 한편, 헬스와 수영, 등산, 조깅 등으로 몸을 다져나갔다. 그 결과 그에게 곧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그동안의 경력이 빛을 발하며 점점 인지도가 높아져 ‘PTA’나 ‘엘르골프’ 등의 유명 의류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었으며 최근에는 자동차, 스마트폰 등의 영상광고 분야에도 뛰어들어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한국어 공부와 창의적인 유튜브 콘텐츠 구성은 물론 모델의 기본이 되는 몸매를 다듬기 위해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그는 요즘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열정적인 청춘의 한때를 보내고 있다. 189센티미터의 키와 다부진 몸매 그리고 얼굴이 아닌 진정한 실력으로 승부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를 꿈꾸며 오늘도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나간다. 이제 한국에 정착한 3년, 직접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자신을 엄격하게 공부시키고 예의를 강조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모델, 크리에이터, 배우 등 이루고 싶은 게 참 많은 장민. 그중에서도 그의 가장 간절한 꿈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 그의 뜨거운 열정이라면 그 꿈도 머지않아 꼭 이루어질꺼라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정말 눈부시게 멋있어 보인다.

 

 

 

 

이제 정말 얼마남지 않은 새해. 이번 달 특집에서는 해가 바뀌고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새해에도 잊히지 않고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들과의 추억들을 소개한다. 정말 찢어질 듯 가난하여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초가집에서 남포등을 켜고 오 남매가 어둠을 밝히며 공부를 하던 시절 따스한 정으로 유년기를 장밋빛으로 물들여주신 선생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네 살 때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그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준 고마운 아저씨, 감당하기 벅찬 삶의 무게로 앞이 막막해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찾은 산행에서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건내준 부부의 넉넉한 인심, 대학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이제 곧 사회로 나간다는 두려움에 떨던 나에게 중요한 삶의 의미를 전해준 아주머니 등 힘들었던 시절 아낌없이 도움을 주었던 은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2019년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은 샘터! 정말 내가 아는 그 샘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월간 샘터의 표지가 눈에 띄게 확 달라졌다. 전보다 더 멋스러워진 것은 물론이요, 화사해보여 자꾸 눈길이 간다. 그리고 표지만큼이나 내용도 더 다채로워졌는데 2019년에는 참된 쉼의 가치를 선사하는 <휴식의 기술>, 날씨에 깃든 인생시를 이야기하는 <날씨 인문학> 근대 문화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는 <역사 타임캡슐>, 케이팝과 가요로 삶을 성찰하는 <케이팝으로 읽는 세상> 등 인문학적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교양 칼럼을 강화하고 인성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인성의 재발견>과 매달 함께 실천하는 <샘터 캠페인> 코너를 신설하는 등 다양한 분야로 손을 뻗어 보다 이야기가 풍성해졌다. 거기다 모두가 사랑하는 이해인 수녀가 건내는 따뜻한 위로까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콘텐츠를 팟캐스트 <샘터 라디로>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 <팟빵>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거나 <팟빵 홈페이지>에서 샘터 라디오를 검색하면 매달 소개되는 <샘터>의 다채로운 소식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갈수록 번쩍번쩍 빛이 나는 샘터. 2019년도 샘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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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곱 개 가방
정미형 지음 / 알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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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재순은 자신이 이렇게도 판단력이 생긴 것이 기뻤다. 내일은 먹지 않았던 그 아보카도를 잘라 먹어 보리라 생각했다. 새로운 것에 대해 용기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모든 나쁜 것을 물리친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지 않은가? 그 모든 것이 다 밤에 읽는 이 책들 덕분이라는 것을 아침에 일어나면 관장에게 말하리라 마재순은 다짐했다. (p.43)

 

여기저기서 꺼내온 일곱 개의 가방은 조금씩 낡고 빛이 바래져 있었다. 그리고 모든 가방에는 시간을 되돌리는 열쇠가 있었다. 이 가방들이라면 기억을 잃어버린 어머니에게 기억을 일깨울 수 있지 않을까? 어머니의 악어가죽 가방은 약간은 붉고 엷은 커피 빛이 도는 태국산으로, 한가운데 악어의 등껍질 돌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손질은 그런 대로 잘 되어 있었다. 나는 가방의 손잡이를 쥐고 거울 앞에 서 보았다. 이십 년 넘게 사용한 악어 가방은 어머니가 모임을 가고는 할 때 마지막에 레이스 장갑과 함께 선택하던 것이었다. 아버지의 선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던 것이었다. (p.92)

 

나는 네게서 들었던 파이프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막혀진 벽 속에 숨어 있는 파이프. 그러고 보면 너는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인데 어쩌면 사는 것에 지쳐 너를 스스로 돌보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너의 몸 속의 파이프를 말이다. (p.113)

 

너는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 있는가? 내가 너를 잠깐 만나고 너를 생각하고 일상의 시간 속에서 너와 얘기를 나누지만 이 모든 게 꿈 같다는 것을 안다. 너는 따스한 불빛이 그리워 이곳을 다시 찾아와 사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네게 너 말고도 이렇게 다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너는 이미 네가 한 번 죽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p.124)

 

이제 늙은 아버지는 천천히 마늘을 까거나 라디오를 고치거나 벽의 못을 뽑으며 산다. 어두운 구름이 창가를 덮고 있는 집에서 엄마는 보랏빛 콩을 수도 없이 쏟아내 놓는다. 콩 한 알, 콩 두 알. 그러는 사이 아버지는 마늘 한 쪽 마늘 두 쪽을 가르며 까놓는다. 이래저래 엄마 말대로, 사는 것은 모두 샘샘이고, 부끄러운 것이 많이지는 것은 살아온 시간이 많아서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까? 낮은 음성으로 느리게 부르던 그 자장가를 먼 훗날 내가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내게 자장가로 남는 단 한 사람이다. (p.178)

 

 

 

<당신의 일곱 개 가방>은 병환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간호하며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그녀의 삶과 마주한다. 재봉질을 하는 어머니의 의자 옆에 기대서서 바지런히 심부름을 하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온 그녀. 어린시절 그녀 귀에 익숙하게 들려왔던 재봉틀의 실이 끊임없이 돌아가고 젊은 어머니의 인생의 시간은 길고도 질겨서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빨로 질끈 물어 뜯어서야 툭 끊어졌다. 마치 실을 끊어 내듯이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목욕탕에서 쓰러지던 순간 그 실은 영영 끊어져 버렸다. 풍을 맞아 뻣뻣해진 어머니의 몸은 하루 삼십 분씩 경사침대에 묶여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발사대에 서서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우주인처럼 보인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세 번의 뇌수술로 찌그러진 머리통을 가지게 된 늙은 어머니. 어머니의 이야기들과 기억들과 시간들은 어머니가 평소 쓰시던 일곱 개의 가방 속에 차곡차곡 들어 있다. 악어 가죽 가방, 구슬 가방, 은색 가방 등 각각의 사연을 담은 이 가방들은 어머니의 삶 그 자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어디 멀리 가냐” 이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진다.

 

<초록 아보카도가 있던 방>에서는 폭설로 인해 고립되어 버린 두 사람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세운 도서관을 물려받아 운영하던 도서관장인 나와 그곳에서 일하는 마재순.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려 가방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데 반해 마재순은 한 번도 가방을 챙긴 적이 없다. 이 둘은 눈에 푹 싸인 도서관에서 구호물품에 의지하여 삶을 연명해나가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나는 그속에서 어릴적 자신이 떠나온 옛집으로 가는 길을 떠올리려 그 기억이 떠오를 만한 책을 도서관에서 찾으려 하지만 결코 쉽지않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을 떠나지 않을거라는 마재순. 두 사람은 많은 이들이 떠나 버린 이곳에 쓸쓸히 남아 삶을 이어나간다. 눈이 이 도시를 재앙으로 빠트리고 얼려 버려 하루하루가 불안한 이 시점에 어울리지 않게 그들에게 구호물품으로 전달된 초록 아보카도.

 

저자는 이 상황들을 그저 담담히 써내려간다. 여덞 편의 이야기로 묶여진 책은 작가가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이 떠나는 자들이거나 혹은 어딘가를 거쳐 온 이들의 이야기로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호한 공간 속에서 떠나와 어딘가 모를 곳으로 걸어 나가는 이들이 많다. 간추려서 말하자면 이곳을 떠나는 이들과 지나간 과거에서 돌아오는 이들이 모여 지금 이 소설 속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나간다. 저자는 이 소설집을 두고 오직 그들이 왔다 간 것을 기록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각 이야기마다 등장인물들은 고단함과 두려움, 그리움, 나약함 등 저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좀처럼 그곳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 이야기는 정말 읽으면서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내용이 상당히 몽환적이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하나같이 힘겹고 어렵다. 각자가 마주한 상황에서 겨우 숨통을 틔우고 간당간당 삶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숨이 턱턱 막혀온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내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켜 좀처럼 그들의 삶에 스며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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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산 : 소보로별 이야기 이야기 파이 시리즈
정옥 지음, 유영근 그림 / 샘터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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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로별은 너무 작아서 산도 하나, 숲도 하나, 호수도 하나뿐이에요. 하지만 겨울에는 산이 두 개가 돼요. 첫눈이 오는 날, 호수 너머 들판에 눈 덮인 산이 하나 더 생겨나거든요. 그 산은 겨울 내내 우뚝 솟아 있다가 휘파람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봄날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려요. (p.3)

 

해가 머리 위에서 비출 때쯤, 드디어 꽁꽁산 기슭에 도착했어요. 두 친구는 나란히 앉아 눈신발을 신었어요. 그런 다음 수북수북 쌓인 눈길을 자박자박 걸어서 올라갔어요. 산을 오르는 동안에도 눈이 계속 내려, 발자국은 금방 눈에 묻혀 버렸어요. 가도 가도 하얀 눈밭뿐이에요. (p.16)

 

눈 폭포 뒤 좁다란 길을 따라가니 동굴이 나왔어요. 동굴 안은 정말 깜깜했어요. 보보는 천장을 더듬어 작은 고드름을 하나 닸어요. 달콤한 딸기 맛이네요. 할머니가 좋아하는 새콤한 고드름을 찾아 깊숙이 들어갔어요. 손으로 동굴 벽을 더듬으며 걸음을 옮겼어요. 마침내 온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새콤한 고드름을 찾았어요. 보보는 신이 나서 고드름을 똑, 똑, 땄어요. 그때 동굴이 쩌렁쩌렁 울렸어요. (p.31)

 

넓고 넓은 우주 귀퉁이에는 노랗고 동글납작한 별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너무 작아서 산도 하나, 숲도 하나, 호수도 하나뿐인 소보로별. 하지만 겨울이 되고 첫눈이 오는 날, 호수 너머 들판에는 산이 하나 더 생겨난다. 그 산은 겨울 내내 우뚝 솟아 있다가 휘바람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봄날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데 사람들은 늘 있는 산을 그냥 ‘산’, 겨울에만 나타나는 산을 ‘꽁꽁산’이라고 부른다. 첫눈이 내리는 날 아침,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난 꽁꽁산. 아이들은 모두 썰매를 타러 가 버려 온 마을이 조용한 가운데 보보는 혼자 고민에 휩싸여있다. 오늘이 바로 할머니의 생신인데 아직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보보네 할머니는 이 별, 저 별 다니면서 모험을 즐기는 우주 탐험가로 일 년 내내 우주를 돌아다니다 봄에만 소보로별에 잠깐 들리는데 이번 생일은 보보네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엽서를 보내왔다. 할머니에게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주고 싶었던 보보는 긴 고민 끝에 친구 코코아의 의견에 따라 꽁꽁산 동굴에서 열리는 무지개 고드름을 따다가 할머니의 선물로 드리기로 하고 친구 코코아와 함께 꽁꽁산으로 모험을 떠난다.

꽁꽁산? 추운 겨울에 이보다 더 어울릴 만한 동화책이 있을까. 아니 추위보다도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 탓에 뿌연 하늘만 바라보다 눈부시게 맑은 하늘이 펼쳐진 이 책을 만나니 너무나 반갑다. 책은 앞서 얘기했듯이 주인공인 보보와 그의 친구 코코아가 보보의 할머니에게 멋진 선물을 하고 싶어 꽁꽁산의 동굴에서만 열린다는 무지개 고드름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꽁무니에서 차가운 바람을 뿜어내는 반딧꽁이라던지 첫눈이 내리는 날 나타나는 꽁꽁산 그리고 무지개 색깔의 고드름 등 그림뿐만 아니라 기발한 상상력과 신나는 모험담으로 순식간에 아이들을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신기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겁이 나긴 하지만 할머니를 위해 용기를 내어 길을 떠나는 주인공 보보와 그런 친구의 곁에서 든든하게 힘이 되어 주는 조력자 코코아의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더 신이 나고 흥미진진해진다. 그리고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할머니가 손주들을 위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 한편이 따뜻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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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와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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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개구리가 집으로 돌아왔다. 먼 곳은 실망스러웠다. 아주 가까이, 정말 코앞에 가서 보았다. 그러나 뭔가 특별한 걸 본 건 아니었다. 사실 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먼 곳에 가 봤다는 것만으로도 개구리는 기뻤다. (p.46)

 

다람쥐는 생각했다. 만약 그곳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여기가 전부라는 말이네. 그는 하늘과 평야, 멀리 있는 숲, 옆에 있는 개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야. 더 이상은 뭐가 없는거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알아낸 것에 만족했다. 더 이상 뭔가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미는 여전히 벌겋게 달아올라 쭈그렸다 이리저리 움직였다 했다. 그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고 계속, 그러나 점점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있어야 해. 뭔가. 뭔가.” (p.64)

 

아주 멀리 가 버려야겠다, 더 이상 누구도 생각할 수 없도록. 아주 먼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세상 저편도 충분히지 않을 만큼. 그는 다시 눈을 꼭 감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곳보다 멀리 떨어진 곳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는 무엇이나 누군가에 대해 반드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p.91)

 

왠지 먼 곳에 특별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 같아 숲속에 사는 동물들은 저마다 지금 이 곳을 떠나 여행을 하려고 한다. 코끼리는 떠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 다람쥐는 여행을 갈지 말지 계속해서 망설이다 개미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만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벽을 맞이하고는 절망에 빠지고, 개미는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스러워 계속해서 투덜거리고, 먼 곳이 너무 궁금해 길을 떠난 개구리는 먼 곳에 가도 별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으며 실망스러워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먼 곳까지 가봤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떠나려고 결심하고 또 망설이고 다시 먼 곳을 꿈꾸는 이들의 여행 아닌 여행. 잘 다녀와, ‘어느 곳에 갔다가 돌아오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이 말에는 부디 잘 갔다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걱정스레 기다리는 애틋함과 그리운 마음이 동시에 묻어난다. 흔히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 말하지만 그래도 떠나면 돌아오고 싶고 돌아오면 또 떠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고민과 갈등에 대한 정답을 여행이 알려 주지는 않는다고. 맞다. 이곳을 떠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돌아오면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하지만 여행 그 자체가 주는 효과는 대단히 강렬하다. 힘들었던 마음을 흥분으로 가득 채우고 여행을 하는 동안 만큼은 잠시 그 사실을 잃어버리게 만드니까 말이다. 동물들 역시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익숙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새로운 풍경을 만난다는 설렘과 흥분. 이것이 바로 여행만이 가질 수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아닐련지. 귀여운 동물 이야기에 빠져들어 책장을 넘기다보니 순식간에 이야기가 끝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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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니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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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는 우울했다. 바람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 반가운 편지 같은 건 전해 주지 않았다. 아무도 내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다람쥐는 생각했다. 정작 나는 수많은 동물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개미, 하마, 모기 심지어 수달과 사자, 까치, 곰, 말벌, 코끼리 그리고 쥐도 생각하고 있다. 다람쥐는 정말 모든 동물들을 생각했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동물이 있을까 싶을 만큼. (p.7)

 

편지를 읽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고슴도치”를 읽고 또 읽었다. 사랑하는 고습도치, 사랑하는 고슴도치. 그래 나는 사랑하는 고습도치야.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편지를 이마 제일 아래에 있는 가시에 찔러 두었다. 바로 눈앞에 편지가 걸려 있어, 그가 사랑하는 고슴도치라는 데에 의심이 생길 때마다 볼 수 있도록 (p.38)

 

 

다람쥐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바로 지금 존재할 뿐인데. 나중으로는 가 본 적이 없고,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다람쥐는 항상 자기 자신보다 앞서 나갔던 생각들을 더 이상 좇을 수가 없게 되자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지금이 아니면 아무 때도 아닌 거야.” 그러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p.67)

 

 

잘 지내니?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기 위해 처음 건내는 인사말. 책에서는 그 말을 서로의 편지로 대신한다. 아무도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우울한 다람쥐에게 부엉이가 직접 가져온 편지에는 다람쥐가 생각한 것과 다름없는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제서야 자신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다람쥐. 먼저 다가서야 상대방도 자신의 마음을 들려줄 텐데 어리석게도 다람쥐는 그걸 몰랐다. 그저 그들의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릴 뿐. 방구석에서 홀로 앉아 친구들의 소식을 기다리던 다람쥐에게 부엉이와의 만남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사실 그 한 걸음이 어렵다.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항상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궁금하다면 먼저 다가가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속으로만 애를 태워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잘 지내니? 습관처럼 되묻는 말, 내겐 이 한마디가 아주 가끔 무겁게 여겨진다. 전해지지 못한 마음이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색감도 그렇고 작고 아기자기해 보여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닌가 싶지만, 사실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다. <잘 지내니> 속의 동물들은 저마다 자신과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 고민한다. 친구들이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우울한 다람쥐, 자신의 모습이 지겨워 메뚜기에게 서로 몸을 바꾸자고 제안하는 하마, 남의 눈에 띄는 것만 빼고는 뭐든 하고 싶어 하는 등점박이 말파리,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그저 편지만 갖다 주었으면 하는 고슴도치, 모든 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쓸모없다 싶은 것들을 모조리 내다 버리는 흰개미, 가능한 한 많은 일을 미리 계획해 시간을 전부 실행하는 데만 쓰고 싶은 귀뚜라미 등 좀 엉뚱하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고민들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는 고민들과 닮아있다. 그래서 가벼이 읽혀지지 않는다. 작고 귀여운 표지와는 다르게 묵직묵직한 울림이 있다. 잘 지내니, 이 말은 누구를 향한 말일까? 동물 친구들에게 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전한 말이었을까. 안부를 묻기 위해 서로 주고 받은 인사말이 제법 무겁게 여겨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걸까. 아직도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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