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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니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다람쥐는 우울했다. 바람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 반가운 편지 같은 건 전해 주지 않았다. 아무도 내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다람쥐는 생각했다. 정작 나는 수많은 동물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개미, 하마, 모기 심지어 수달과 사자, 까치, 곰, 말벌, 코끼리 그리고 쥐도 생각하고 있다. 다람쥐는 정말 모든 동물들을 생각했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동물이 있을까 싶을 만큼. (p.7)
편지를 읽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고슴도치”를 읽고 또 읽었다. 사랑하는 고습도치, 사랑하는 고슴도치. 그래 나는 사랑하는 고습도치야.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편지를 이마 제일 아래에 있는 가시에 찔러 두었다. 바로 눈앞에 편지가 걸려 있어, 그가 사랑하는 고슴도치라는 데에 의심이 생길 때마다 볼 수 있도록 (p.38)
다람쥐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바로 지금 존재할 뿐인데. 나중으로는 가 본 적이 없고,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다람쥐는 항상 자기 자신보다 앞서 나갔던 생각들을 더 이상 좇을 수가 없게 되자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지금이 아니면 아무 때도 아닌 거야.” 그러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p.67)
잘 지내니?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기 위해 처음 건내는 인사말. 책에서는 그 말을 서로의 편지로 대신한다. 아무도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우울한 다람쥐에게 부엉이가 직접 가져온 편지에는 다람쥐가 생각한 것과 다름없는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제서야 자신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다람쥐. 먼저 다가서야 상대방도 자신의 마음을 들려줄 텐데 어리석게도 다람쥐는 그걸 몰랐다. 그저 그들의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릴 뿐. 방구석에서 홀로 앉아 친구들의 소식을 기다리던 다람쥐에게 부엉이와의 만남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사실 그 한 걸음이 어렵다.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항상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궁금하다면 먼저 다가가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속으로만 애를 태워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잘 지내니? 습관처럼 되묻는 말, 내겐 이 한마디가 아주 가끔 무겁게 여겨진다. 전해지지 못한 마음이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색감도 그렇고 작고 아기자기해 보여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닌가 싶지만, 사실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다. <잘 지내니> 속의 동물들은 저마다 자신과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 고민한다. 친구들이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우울한 다람쥐, 자신의 모습이 지겨워 메뚜기에게 서로 몸을 바꾸자고 제안하는 하마, 남의 눈에 띄는 것만 빼고는 뭐든 하고 싶어 하는 등점박이 말파리,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그저 편지만 갖다 주었으면 하는 고슴도치, 모든 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쓸모없다 싶은 것들을 모조리 내다 버리는 흰개미, 가능한 한 많은 일을 미리 계획해 시간을 전부 실행하는 데만 쓰고 싶은 귀뚜라미 등 좀 엉뚱하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고민들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는 고민들과 닮아있다. 그래서 가벼이 읽혀지지 않는다. 작고 귀여운 표지와는 다르게 묵직묵직한 울림이 있다. 잘 지내니, 이 말은 누구를 향한 말일까? 동물 친구들에게 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전한 말이었을까. 안부를 묻기 위해 서로 주고 받은 인사말이 제법 무겁게 여겨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걸까. 아직도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