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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와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밤이 되자 개구리가 집으로 돌아왔다. 먼 곳은 실망스러웠다. 아주 가까이, 정말 코앞에 가서 보았다. 그러나 뭔가 특별한 걸 본 건 아니었다. 사실 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먼 곳에 가 봤다는 것만으로도 개구리는 기뻤다. (p.46)
다람쥐는 생각했다. 만약 그곳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여기가 전부라는 말이네. 그는 하늘과 평야, 멀리 있는 숲, 옆에 있는 개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야. 더 이상은 뭐가 없는거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알아낸 것에 만족했다. 더 이상 뭔가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미는 여전히 벌겋게 달아올라 쭈그렸다 이리저리 움직였다 했다. 그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고 계속, 그러나 점점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있어야 해. 뭔가. 뭔가.” (p.64)
아주 멀리 가 버려야겠다, 더 이상 누구도 생각할 수 없도록. 아주 먼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세상 저편도 충분히지 않을 만큼. 그는 다시 눈을 꼭 감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곳보다 멀리 떨어진 곳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는 무엇이나 누군가에 대해 반드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p.91)
왠지 먼 곳에 특별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 같아 숲속에 사는 동물들은 저마다 지금 이 곳을 떠나 여행을 하려고 한다. 코끼리는 떠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 다람쥐는 여행을 갈지 말지 계속해서 망설이다 개미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만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벽을 맞이하고는 절망에 빠지고, 개미는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스러워 계속해서 투덜거리고, 먼 곳이 너무 궁금해 길을 떠난 개구리는 먼 곳에 가도 별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으며 실망스러워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먼 곳까지 가봤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떠나려고 결심하고 또 망설이고 다시 먼 곳을 꿈꾸는 이들의 여행 아닌 여행. 잘 다녀와, ‘어느 곳에 갔다가 돌아오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이 말에는 부디 잘 갔다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걱정스레 기다리는 애틋함과 그리운 마음이 동시에 묻어난다. 흔히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 말하지만 그래도 떠나면 돌아오고 싶고 돌아오면 또 떠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고민과 갈등에 대한 정답을 여행이 알려 주지는 않는다고. 맞다. 이곳을 떠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돌아오면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하지만 여행 그 자체가 주는 효과는 대단히 강렬하다. 힘들었던 마음을 흥분으로 가득 채우고 여행을 하는 동안 만큼은 잠시 그 사실을 잃어버리게 만드니까 말이다. 동물들 역시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익숙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새로운 풍경을 만난다는 설렘과 흥분. 이것이 바로 여행만이 가질 수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아닐련지. 귀여운 동물 이야기에 빠져들어 책장을 넘기다보니 순식간에 이야기가 끝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