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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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자신의 ‘수명 계획’을 밝힌 이후에, 엄마는 한숨을 쉬고 또 쉬었다. 한숨을 쉬는 것만으로 정말 땅이 꺼질 수 있다면 이십일 층에 위치한 우리 집이 꺼지고 꺼져, 지면 아래로 가라앉을 만큼의 깊은 한숨이었다. 나는 이따금 적당히 하라고 짜증을 내고, 대체로는 엄마를 달래면서 그 주를 보냈다. (p.25)

 

화면 속 아나운서는 십 년 전인 지난 2018년부터 시행되었던 일명 ‘웰다잉법’과 오늘 통과된 법안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웰다잉법은 사망이 임박한 상태의 환자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 호흡기 착용 같은 인위적인 연명 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주요 골자였다고 했다. 이와 같은 형태는 임종을 목전에 둔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업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였다고 아나운서는 덧붙였다. 그렇게 임종 과정에 돌입한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의 제한이 완화될 것이라는 의학 전문 기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p.46)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지금까지 한순간도 할머니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온전히 다 알지 못한 채 말이 앞섰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 순간 처음으로 했다. 할머니는 말수가 없어진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나는 당장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할머니의 손이었다. 할머니는 무릎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쳤다. 이제 정말 숟가락 들 힘도 안 남았어.” (p.75)

 

엄마는 할머니가 임종 일정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더욱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매일의 기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부모고 자식이고 소용없고 어차피 인간은 다 혼자야.” 하면서 몇 시간이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아빠가 애써 장난스럽게 “그래도 남편은 좀 다르지 여보. 부부는 촌수도 무촌이잖아.” 하고 말을 걸었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또 어느 날은 청소를 한다고 욕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기에 가보았더니 타일 바닥에 주저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세제 거품이 묻은 엄마의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운 뒤에 나는 말했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남은 시간은 많지 않으니 나와 할머니 집에 가자고 말이다. 그러나 엄마는 언짢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저렇게 자기 감정만 우선일까, 나는 좀 신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마음 깊은 곳 한구석에는 자기 분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울고 화풀이하며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엄마를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다. (p.93)

 

 

2018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예 은모든 작가의 세 번째 작품 <안락>. 책은 벌써 구 년 가까이 요양원에서 생을 연명하고 있는 아흔일곱의 이모할머니와 자발적으로 수명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려는 여든여덟의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와 이를 지켜보는 딸 지혜의 이야기로 죽음을 앞에 두고 떠나려는 사람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선들을 여과 없이 생생하게 그려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외가의 삼대가 모두 모인 자리. 할머니의 충격적인 선언이 이어진다. 앞으로 오년 안에 나머지를 싹 정리하고 개운하게 갈 예정이니 모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말이다. 이것은 할머니 본인이 오 년 안에 자의로 당신의 생을 마감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도 아니고, 어디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면서 본인의 의지로 생을 마감하겠다니 미리 언질을 받은 언니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쉽게 이 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정작 할머니 본인은 이런 엄청난 말을 하고서도 너무나 태연하다. 이 와중에 국회에서는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할머니의 폭탄선언으로 집이 발칵 뒤집힌 지혜네 가족에게 이 일은 점점 심각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 사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법안이 국민 투표를 거쳐 제정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안락사 법안 통과를 위한 국민 투표의 진행 결과 할머니는 쾌재를 불렀다.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두고 어느 곳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인가.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안락사 문제.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는 분명 달라지겠지. 그럼 이제 죽음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으려나? 당연히 죽음을 선택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그 결정하는데 있어서 곁에 서 있는 가족들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직까지 더 크다. 솔직히 할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어느 누가 자식들에게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을까. 본인도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평온한 모습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내 자신이 할머니 정도의 나이가 된다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건강하게 생존해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개인적인 감정이 더해져 마음이 점점 더 격해진다. 내게 책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은 일이 덮쳐온다면 혼자서 감당해낼 수 있을까. 내 곁에 가족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별개의 일로 치부될 것임을 알기에 자신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당연히 너무나 슬펐고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다. 이금래 할머니는 분명 행복하게 두 눈을 감으셨겠지. 마지막에 이르자 쉼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작가님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을 쓰신 걸까. 죽음, 언제든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임에도 딱히 당장에 나에게 일어날 일이 아니라 여기며 소홀히 대했던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죽음이라고 해서 모두가 슬픈 것은 아니었다. 선택하기에 따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과정은 모두에게 정말이지 큰 고통이었다. 안락사가 과연 개인에게 안락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나는 답을 내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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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샘터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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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누는 지금도 잘 울지 않는다. 처음에는 방랑 여행 중에 하도 울어서 목소리를 잃은 줄 알았는데, 언제던가 내 뒤를 쫒아와서는 큰 소리로 울어서 깜짝 놀랐다. 남자 친구와 대화할 때도 귀여운 목소리로 울었다. 한심하게도 멍청해서 쥐도 잡지 못한다. 기누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한 인간을 믿고 절대 의심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기누가 가슴 위에 앉는 바람에 나는 괴로워하며 잠에서 깰 때가 자주 있다. 기누는 이불 위에서 커다란 눈으로 나를 빤히 내려다본다. 그래서 기누의 이름이 또 늘었다. 이노우에 기누코 씨다. 나는 “이노우에 씨가 되면 안 되잖니.”하고 혼내지만, 그 무게가 기누가 주는 애정의 무게라고 믿는다. (배 위에 올라앉아 위장을 압박하는 고양이어서 붙은 별명) (p.13)

 

나는 혼자 있을 때 더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좀 이상하긴 해도 거짓 없는 진실이다. 원래 서툰 사람이 야무진 사람들을 쫓아가려면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끊어내고 아무 말이나 대충 입에 담으며 먼저 걸어가야 한다. 언제나 어중간하고 조잡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p.43)

 

전쟁은 점차 심각해졌다. 나도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동분서주했고, 마당의 나무를 전부 베어 밭을 만들까 생각하기도 하고 실제로 이웃집 사람과 함께 마당 절반쯤에 무나 고구마를 재배하느라 상당히 바빴는데, 잠깐 앉아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아하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산소가 부족한 물속에 사는 금붕어처럼. ‘어라, 내가 지금 한숨을 쉬네’라는 생각이 들면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 금붕어와 송사리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물고기를 지켜보았다. 우리 집 금붕어와 송사리는 허우적대지 않았다. 느긋하게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었다. 살아서 성장하고 늘어났다. (p.152)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가 사랑한 작가 이시이 모모코. 그녀가 써내려 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 책에는 그녀가 편집자, 번역가, 작가로 활약하며 써온 따뜻하고 감성적인 39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계절이 바뀌어 가는 시간들, 어린 시절의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던 추억, 전쟁이 끝난 직후 도호쿠의 시골로 내려가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던 시절의 기억, 크게 다쳐서 마당에 흘러들어와 강제로 집 안까지 들어오게 된 고양이 기누와 콜리 종 강아지 이야기를 글로 쓴 인연으로 누군가가 “당신, 개 좋아하죠? 얘 줄게요.”라며 두고 간 강아지 듀크와의 인연 등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따뜻한 위로의 손길로 책 곳곳에는 따스함이 가득 묻어난다. 책 한 권으로 잠시 들여다본 그녀의 일상은 정말이지 유쾌했다.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빠르게, 빨리 빨리! 천천히 가기보다 서두르길 바라고 눈에 띄는 결과는 바라는 사회에서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기 마련. 이리저리 바쁘게 지내다 보면 어느샌가 해는 저물어 있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 잠에서 깨어나면 어김없이 다시 시작되는 하루. 허둥지둥 급하게 시간들을 흘려 보내고 잠시 여유를 되찾았을 때의 느낌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책을 읽다 보면 바쁜 시간을 비집고 여유라는 녀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고 들어온다. 상처 입은 고양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부터 시작해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천방지축 강아지 듀크의 이야기며 전쟁이 끝난 해 농촌으로 내려가 먹을 것이 부족하여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나름의 유쾌함으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집을 짓기도 하고 떡을 만들어 먹으며 어려운 상황을 즐겁게 바꾸어 나가는 이야기 등 특별하기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평범해서 사이좋게 어울려 키득키득 웃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녹아든다. 책 곳곳에 자리 잡은 기쁨과 행복 그리고 여유 덕분에 이 시간만큼은 그 어떤 걱정도 잠시 내려놓은 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쉬고 싶을 때 읽으면 딱 좋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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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배우는 흥미진진 리코더 (리코더 1개 + 연습용 13곡 수록 악보집)
앤서니 마크스 지음, 에리카 살세도 외 그림 / 어스본코리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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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로 멋진 소리를 내고 싶다고요?

이 책의 설명을 따라

리코더 부는 방법을 익혀요.

그런 다음, 책에 실린 곡들을 연주해 보세요.

누구나 멋진 연주자가 될 수 있답니다.

 

 

 

 

 

 

 

 

 

 

 

 

 

 

 

 

 

 

사실 이번 여름에 아이가 학교에서 처음으로 리코더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시작함과 동시에 수행평가가 이루어졌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라 손가락에 힘도 없고 요령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아이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음은 바로 낮은 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낮은 도가 많이 포함된 노래만을 어떻게든 피하려 한다고 아이에게 전해 들었다. 물론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 그리고 다음으로 힘든 것이 바로 호흡 조절. 불기는 잘 부는 데 갈수록 힘이 빠져서 소리가 컸다가 줄어들었다 들쑥날쑥. 그때 이 책을 알았더라면 좀 더 쉽게 리코더를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책은 제목 그대로 쉽게 리코더를 배울 수 있게끔 도와주는 책이다. 정말 받아들이기 쉽게 아주 자세히 쓰여있다. 리코더를 부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해 악보를 보는 방법 그리고 숨 쉬는 법과 깨끗한 소리 내는 법, 손가락 위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을 초보 연주자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은 물론, 배운 음계만을 이용해 연주할 수 있는 곡과 유용한 팁들까지 곳곳에 주어져 있어 책에서 일러주는 대로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충분히 독학이 가능할 만큼 누구나 쉽게 혼자서도 악보를 보며 리코더를 연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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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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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은 이제 못 보게 된 아이들은 영영 못 보게 될 아이들처럼 여겨졌다. 아이는 사람의 인생에서 너무 짧은 시기여서 못 보게 된 아이들은 영영 만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뭔가 빼먹은 얼굴이 돼서 만난다. 그건 못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전혀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사람으로 다음 장면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겠지. (p.26)

 

이름을 감추고 여러 가지를 속여도 주민등록은 지나치게 촘촘했다. 모두 때가 되면 관공서로 가 지문을 등록하고 피할 수 없는 국민의 망 속으로 들어갑니다. 어떤 식으로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요? 누구는 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피하고 여권을 위조하고 얼굴을 바꾸고 그렇게 살아가기도 한다고. 그렇지만 그렇다는 것은 밝혀져버렸다는 것이잖아요? 어떻게 주민등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물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었다. 사라질 생각은 없지만,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어떻게 한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숨을 수 있을까 혹은 한국을 빠져나가 외국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p.36)

 

사람들은 나를 해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를 붙잡지 않는다. 나미는 그런 확신을 얻기 위해 어쩌면 열차 옆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교단에 누가 끌고 간 것도 아니고 거기서 채찍질을 당하거나 감금을 당한 것도 아니다. 굶기지도 않았고 강압적으로 요구 받은 것도 없었다. 학교도 다녔고 외출도 했다. 다만 교묘하게 일상이 교단을 중심으로 짜이게 되었고 점점 공동생활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사라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문득 주변이 다르게 보였다. 나미는 어쨌거나 도망을 쳤다. 그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p.64)

 

 

나는 혼자 서 있는 사람이야.

→ 나는 혼자 서 있고 가끔 벼랑 끝에 서 있고 지금도 혼자 있다. 외롭거나 고독한 것, 처참하고 우울한 것과 무관하게 모든 개인처럼 혼자 서 있다. 혼자 서 있는 사람으로 서 있다. 나는 모든 혼자 서 있는 사람처럼 서 있나? 아니면 나는 다른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과 다르게 혼자 서 있나? 아니 나는 혼자 서 있고 멀리 다른 혼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p.91)

 

 

 

올해로 등단 10년을 맞은 박솔뫼 작가의 여덞 번째 작품 <인터내셔널의 밤>. 책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만난 한솔과 나미, 이 두 여행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름 모르는 사람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곳 기차역. 기차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곳에서 내리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만 한솔과 나미는 알 수 없는 끌림에 그곳에서의 만남을 인연으로 이어나가며 대화를 통해 세상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한다. 한 달 전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청첩장을 받고 거절을 할 것인지 아니면 참석을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을 하다 조금씩 변해갈 자신의 모습을 친구에게 자주 보여주고 싶어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은 한솔과 사이비 교단에서 도망친 이후 도무지 도망갈 곳을 찾지 못하다 가까스로 이모를 떠올리고는 무작정 이모가 일하는 병원으로 찾아가 도움을 구하고 그날 이후 이모의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숨어 살다가 이모의 소개로 부산에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부산행 기차를 탄 나미. 한솔은 수술로 인해 달라져 버린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숨으려고 하기보다는 눈에 띄고 싶어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을 인정하며 나름 보편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나미는 그와 반대로 이제껏 자신을 보호해주던 곳에서 빠져나와 누군가 자신을 붙잡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자신을 숨기려고 한다. 하지만 한솔을 만나며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여유가 생겨나고 그제서야 주변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수술과 호르몬 투여를 하면서 새로운 성을 부여받고 앞으로 자신이 살아가면서 부딪쳐야 하는 상황들에 혼란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선택한 그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한솔과 자신을 구속하던 곳에서 벗어나 이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려는 나미의 삶은 다른 듯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삶을 개척해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 말이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흔하디흔한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도망치듯 떠나와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모습들을 떠올리는 두 사람의 삶은 오히려 평범하지 않기에 안타까움이 더해져 그들의 사연이 더 눈에 밟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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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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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윤희 씨한테만 얘기할게요.”

정말 나만 알고 있어야 하나··· 왜 굳이 나에게···.

익명으로라도 소개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일기장이 아닌 라디오에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알리고 싶지 않지만, 한편으론 홀가분히 털어내고 싶은 그 마음을 짐작해본다. 오늘도 크고 작은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찾아올 이들. 그들이 조금씩 파놓은 이 깊고도 얕은 구덩이에 시름 하나, 한숨 한 모금씩 던져 넣고 잠들 수 있길 바라본다. 이제는 당신만의 짐이 아니니 걱정말고 편히 쉬기를. (p.20)

 

밤새 기막힌 여행을 하고도

눈을 뜨는 순간 날아가버리는

꿈의 조각들을 붙잡아두고 싶다.

                                       

언젠가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이 지겨워질 때,

너무 익숙해져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있을 때,

그 한 조각을 꺼내어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도록.

누군가를 향한 미움을 내려놓지 못해 괴로운 어느 밤에 머리맡에 두고 편히 잠들 수 있도록. (p.69)

 

외로움은 비워낸 만큼 더 간절히 채우고 싶은 감정이었고

우리는 늘 이 반복 속에서 살아왔다.

필요한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니었다.

가뿐히 털어내지 못했던 관계와 시선들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 설 수 있는 작은 공간.

깊은 고요 속에서 용기 있게 나를 마주한 뒤

원래 있던 그 자리로 기꺼이 돌아갈 수 있는 잠시의 시간.

그정도면 오늘을 마감하고 새로운 내일을 꿈꾸기에

충분한 조건이 아닐까. (p.93)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지 않더라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더라도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보폭으로 걷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

드디어 도착한 긴 터널의 끝에서

웃으며 서로의 등을 토닥여줄 수 있는 사람.

단 한 명이면 된다.

그로 인해

그가 건넨 작은 위로로

우린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다. (p.98)

 

힘내라는 말까지도 필요 없었다.

그저 내 하루의 수고를 이해해주고

흐르는 눈물을 가만히 닦아주는 사람이면 되었다.

고생했어요.

수고 많았어요···.

그 짧은 한마디에 담겨있는 온기는

금세 깊숙하게 스며들어

몸과 마음의 긴장을 완전히 풀어내리게 했다.

그건 내 존재를, 내 노력을 인정받는 순간이었으며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p.178)

 

 

 

매일 밤 10시, 열두 해 동안 애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꿈과 음악 사이에> 허윤희의 첫 번째 에세이 <우리가 함께 듣던 밤>. 책을 펼치자 눈앞으로 갖가지 다양한 사연들이 쏟아져 내린다. 직접 사연을 고르고, 대본을 만지고, 음악도 선곡하며, 그렇게 매일 찾아오는 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소중한 시간을 그대로 책 속으로 옮겨다 놓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라디오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고민이나 걱정 거리에 조언을 하기보다는 힘겹게 하루를 보낸 그들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응원.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예요’, ‘여기 든든한 당신 편이 있어요.’라며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이야기에 추웠던 마음에 이내 따스한 온기가 맴돈다.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책은 이야깃거리가 제법 풍성하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연에 재미있어 웃기도 하고 같은 고민을 나누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연에 함께 공감하며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점점 더 빠져든다.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자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그녀의 진심 어린 마음이 담겨있기에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진다.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 따뜻함으로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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