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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샘터사 / 2018년 11월
평점 :




기누는 지금도 잘 울지
않는다. 처음에는 방랑 여행 중에 하도 울어서 목소리를 잃은 줄 알았는데, 언제던가 내 뒤를 쫒아와서는 큰 소리로 울어서 깜짝 놀랐다. 남자
친구와 대화할 때도 귀여운 목소리로 울었다. 한심하게도 멍청해서 쥐도 잡지 못한다. 기누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한 인간을 믿고 절대 의심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기누가 가슴 위에 앉는 바람에 나는 괴로워하며 잠에서 깰 때가 자주 있다. 기누는 이불 위에서 커다란 눈으로 나를 빤히
내려다본다. 그래서 기누의 이름이 또 늘었다. 이노우에 기누코 씨다. 나는 “이노우에 씨가
되면 안 되잖니.”하고 혼내지만, 그 무게가 기누가 주는 애정의 무게라고 믿는다. (배 위에 올라앉아 위장을 압박하는 고양이어서 붙은 별명)
(p.13)
나는 혼자 있을 때 더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좀 이상하긴 해도 거짓 없는 진실이다. 원래 서툰 사람이 야무진 사람들을 쫓아가려면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끊어내고 아무 말이나 대충 입에 담으며 먼저 걸어가야 한다. 언제나 어중간하고 조잡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p.43)
전쟁은 점차 심각해졌다. 나도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동분서주했고, 마당의 나무를 전부 베어 밭을 만들까 생각하기도 하고 실제로 이웃집 사람과 함께 마당 절반쯤에 무나 고구마를 재배하느라 상당히 바빴는데, 잠깐 앉아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아하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산소가 부족한 물속에 사는 금붕어처럼. ‘어라, 내가 지금 한숨을 쉬네’라는 생각이 들면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 금붕어와 송사리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물고기를 지켜보았다. 우리 집 금붕어와 송사리는 허우적대지 않았다. 느긋하게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었다. 살아서 성장하고 늘어났다. (p.152)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가 사랑한 작가 이시이 모모코. 그녀가 써내려 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 책에는 그녀가 편집자, 번역가, 작가로 활약하며 써온 따뜻하고 감성적인 39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계절이 바뀌어 가는 시간들, 어린 시절의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던 추억, 전쟁이 끝난 직후 도호쿠의 시골로 내려가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던 시절의 기억, 크게 다쳐서 마당에 흘러들어와 강제로 집 안까지 들어오게 된 고양이 기누와 콜리 종 강아지 이야기를 글로 쓴 인연으로 누군가가 “당신, 개 좋아하죠? 얘 줄게요.”라며 두고 간 강아지 듀크와의 인연 등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따뜻한 위로의 손길로 책 곳곳에는 따스함이 가득 묻어난다. 책 한 권으로 잠시 들여다본 그녀의 일상은 정말이지 유쾌했다.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빠르게, 빨리 빨리! 천천히 가기보다 서두르길 바라고 눈에 띄는 결과는 바라는 사회에서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기 마련. 이리저리 바쁘게 지내다 보면 어느샌가 해는 저물어 있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 잠에서 깨어나면 어김없이 다시 시작되는 하루. 허둥지둥 급하게 시간들을 흘려 보내고 잠시 여유를 되찾았을 때의 느낌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책을 읽다 보면 바쁜 시간을 비집고 여유라는 녀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고 들어온다. 상처 입은 고양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부터 시작해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천방지축 강아지 듀크의 이야기며 전쟁이 끝난 해 농촌으로 내려가 먹을 것이 부족하여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나름의 유쾌함으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집을 짓기도 하고 떡을 만들어 먹으며 어려운 상황을 즐겁게 바꾸어 나가는 이야기 등 특별하기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평범해서 사이좋게 어울려 키득키득 웃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녹아든다. 책 곳곳에 자리 잡은 기쁨과 행복 그리고 여유 덕분에 이 시간만큼은 그 어떤 걱정도 잠시 내려놓은 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쉬고 싶을 때 읽으면 딱 좋을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