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앗코짱 시리즈 2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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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휴일이 언제였는지, 이제 생각도 나지 않는다. 동기들은 몸과 마음을 다치고 하나둘 그만두었다. 그 땜빵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마침보니 어느새 입사 5년차가 되었다. 지하철의 축축한 공기가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온몸에 불어 닥쳤다. 아케미는 기력을 총동원해서 애써 의식을 붙들어 맸다. 빠아아앙, 하고 명치를 울리는 지하철 주행음이 벽과 발밑을 흔들었다. 마침내 에스컬레이터는 아케미를 플랫폼으로 밀어넣었다.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는데 차가운 콘크리트가 스니커 바닥을 통해 열을 빼앗아가는 것 같았다. 주위에 사람들 모습은 드물었다. 며칠 전에 생긴 주스 판매대에 아케미 정도의 키 큰 여자가 무표정하게 정면을 보고 서 있었다. 여자 앞에는 믹서가 다섯 대. 빨강, 보라, 노랑, 오렌지, 초록. 각기 다른 색의 재료가 들어 있다. 색채가 빈곤한 플랫폼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보아도 그 색의 조합은 눈에 띄게 선명하고 산뜻하며 촉촉하게 빛났다. (p.8)

 

“어이, 거기 감색 셔츠 아가씨!”

의아한 생각으로 검지를 얼굴에 대고 돌아보았다. 그래, 너, 하는 식으로 주스판매대 안쪽에 선 체격이 큰 여성이 턱을 깊이 당겼다.

“이리로 와봐요.”

덩 빈 플랫폼에 낮은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이타와 그룹이었다면 당장 클레임일 이 거만한 태도. 애초에 서비스업에서 이런 말투는 용서되지 않는다. 점장 시절, 연신 고객의 안색을 살피며 오로지 저자세로 행동해온 만큼 어이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강한 마력에 이끌리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주스 판매대에 다가갔다.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 자신은 누군가의 호의를 받을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그래도 그 여자 앞까지 가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자신보다 몸이 큰, 조금도 귀엽지 않은 단발머리의 중년여성. 참으로 일본에서는 비주류일 것이다. 그런데 주눅 든 모습 하나 없이 왕처럼 당당했다. (p.16)

 

 

순조로울 거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까지 노동청에 고소하거나,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다 실패하여 갖은 힘든 일을 강요받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동료를 많이 보아왔다. 일단 앗코 씨에게 소개받은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해보자. 괜찮을 것이다. 회사만 그만둘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 있는 아파트 월세만 낼 수 있다면, 아버지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아케미는 자립하기 위해 일을 할 것이다. 일을 꼭 찾을 것이다. 정사원이 아니어도 좋고, 아르바이트를 두 탕 세 탕씩 뛰어도 좋다. 수면과 최소한의 생활, 삼시세끼를 확보할 수 있는 노동환경. 자는 것과 먹는 것과 말하는 것. 그것을 욕심내는 것은 어리광도, 제멋대로여서, 주제를 몰라서도 아니다. 진지하게 일하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앗코 씨가 해주었듯이 언젠가 자신이 먼저 누군가에게 마음의 자양이 되는 일을 해줄 수 있다면······. 어쩌면 앞으로 친구나 애인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이 판단이 크게 잘못됐다 하더라도 아버지나 다카하시 팀장에게 욕을 먹더라도, 아케미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려 하고 있다. (p.62)

 

 

여자들의 우정에 천착해온 작가로, 여자들의 따뜻한 우정뿐만 아니라 서늘한 관계까지 그려내며 다양한 여성캐릭터를 창조해온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앗코라는 별칭을 가진 가수 와다 아키코를 닮아 앗코짱으로 불리는 구로카와 아쓰코. 소심한 파견직원 미치코의 성장을 일주일 동안 점심 바꿔먹기라는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도왔던 앗코짱이 이번에는 지하철 역 안에 스무디 가게를 차려 회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또 다른 미치코인 아케미에게 앗코짱은 고압적이고 불쾌한 사람이다. 다짜고짜 ‘이리로 와보라’는 앗코짱의 말에 강한 마력에 끌리듯 다가선 아케미는 앗코짱이 내미는 정체모를 음료를 거절 한 마디 못하고 받아들고 마시게 된다. 그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이 강압적인 상황은 반복되지만 저항 한 번 못한다. 이는 아케미가 회사에서 보이는 태도와 동일하다. 상사의 폭압적인 태도에도 성희롱에도 저항 한 번하지 못하고, ‘내가 부족해서 혼나는 거야’, ‘이건 친근감의 표현일 뿐이야’라며 자신을 죽여 왔다. 하지만 앗코짱의 반복되는 간섭에 수요일에는 “제발 상관 말아달라”는 말을 겨우 내뱉는데, 이때 앗코짱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큰 소리를 낼 줄도 아네. 좋아요. 그런 습관을 길러요.” 회사에서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들을 수 없는 말이다.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세상의 아케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는 존재인 앗코짱은 매우 직접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여 더욱 매력적인 선배로 돌아온 앗코짱! 이번에 그녀는 사회초년생은 물론이고 취업준비생의 상황과 마음을 무심한 듯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며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작은 실마리를 풀어놓는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27살 직장여성 아케미에게 어느 날부터 모르는 여자가 출근길에 스무디를 건넨다. 처음에는 고압적이고 불쾌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겪어보면 안다고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거만한 말투로 스무디를 건네도, 상대방은 절대 거부할 수 없다. 그게 바로 앗코짱만이 가진 마력이다. 출근길에서 연거푸 한숨을 들이쉬며 힘들어하는 아케미의 모습에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숱하게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한 이들의 이야기. 지하철 곳곳에는 아케미와 같은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런 곳에 앗코짱과 같은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출퇴근 길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을텐데,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듬뿍 안겨다주는 앗코짱의 이야기에 오늘도 힘을 내어 본다. 앗코짱의 응원의 손길이 마음이 문득문득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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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프리퀄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선 옮김 / 에이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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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하고 아름다운 꿈, 그 속에 흐릿하고 아름다운 남자가 있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차려 입고 레몬나무 과수원에 서 있던 모습. 캐서린은 그 남자가 뭔가 자신에게 속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선명한 감각을 느꼈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돌려받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하지만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남자는 멀리 더 멀리 뒷걸음질 쳤다. 소름이 드레스 뒷부분을 미끄러지듯 타고 달렸다. 캐서린은 마음을 낚아채는 듯한 그 호기심을, 남자를 쫓아가야만 한다는 그 간절한 마음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남자의 눈동자는 마음에서 절대 떠나지 않았다. 노랗게 빛나는,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눈동자. 나무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레몬처럼 눈부신 눈동자. (p.10)

 

절박함이 캐서린의 목구멍을 할퀴었다. 왕. 단세포적인, 우스꽝스러운, 행복한, 행복한 왕.

내 남편? 내 하나뿐인?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생 함께할 단 한 사람?

캐스는 여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왕은··· 여왕은 가장 친한 친구랑 같이 베이커리를 열지 못한다. 여왕은 눈에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고양이와 뒷소문을 속닥대지 못한다. 여왕은 노란 눈동자의 남자에 대한 꿈을 꾸고 잠에서 깨면 침대 위로 레몬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캐스는 침을 삼키려고 했지만 입 속이 마치 퀴퀴한 케이크처럼 말라버렸다. (p.69)

 

“괜찮으신가요?”

캐스가 숨을 삼키며 팔을 도로 거둬들였다. 심장이 천둥처럼 쿵쾅되는 것을 느끼며 흰 장미나무 가지 틈새를 엿보았다. 어둠 탓에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내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조커가 낮게 드리운 나뭇가지 위에 누워 있었다. 손에 플루트를 들고 있었지만, 그걸 연주하고 있었다 해도 캐서린은 정신이 없어서 듣지 못했을 것이다.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머리카락 절반이 쪽진 머리에서 빠져나와 어깨에 드리워졌다. 살갗이 불타는 듯 뜨거웠다. 세계가 미치 듯 핑핑 돌았다. 레몬 타르트와 보이지 않는 고양이와 굽은 도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갔다. 긴장한 조커가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레이디?”

세계가 심하게 기우뚱하더니 이윽고 암흑에 잠겼다. (p.71)

 

그 순간 캐스는 하트의 왕이 자기 앞에 서서 손을 마주잡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작고 축축한 손을 쥐는 상상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이어 요청을 듣게 되겠지. 자기 아내가 되어달라는. 그렇지만 왕이 자신을 향해 웃음 짓는 모습을 정확히 그려볼 수 있었다. 얼마나 가련해 보일지. 얼마나 희망에 차 있을지··· 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거기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차를 한 모금 홀짝일 때, 더 중요한 질문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p.102)

 

제스트는 싱긋 웃었다. 캐스는 어둠 속에서도 제스트의 눈동자가 어떤 색을 띠고 있을지 정확히 짐작이 갔다. 캐스는 숨을 삼키며 모자를 벗어 도로 제스트의 머리에 올려 놓았다. “고마워.” 그 인사가 단지 나무를 타고 창으로 들어오도록 도와준 것에 대해서만이 아님을 제스트가 알아주길 바랐다. 그 모든 것에 대한 감사임을. 그 짜릿함, 그 웃음, 제스트가 털어 놓은 비밀들. 비록 공황과 공포의 순간들이 있었다 해도, 그날 밤은 캐스가 후작의 딸일 필요가 없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제스트는 캐스를 내려놓지 않았다. 놓아주지 않았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제스트가 속삭였다. 캐스는 뱃속이 간질거렸다. 제스트가 나를 다시 보고 싶어 한다. 행복감이 온몸으로 번졌다. 어쩌면 제스트가 하트에 남고 싶은 이유가 자신일 수도 있었다. 그러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그 생각과 함께, 자신의 상황으로 인한 아픔이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p.251)

 

하트 왕국 최고의 제빵사이자 베이커리를 여는 게 평생 꿈인 귀여운 소녀 캐서린 핑커튼. 빵과 디저트에 대해 남다른 사랑 가진 그녀는 숫자 계산이 빠른 하녀 메리 앤과 평생 친구로 지내며 미래에 둘이 같이 빵집을 열기로 약속한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 캐서린은 방에서 레몬 나무가 자라난 걸 발견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꾸어온 꿈을 이루기 위해 그 레몬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레몬 타르트를 만들어 왕에게 선물한다. 그날 밤 하트의 왕이 주최하는 무도회에 초대된 캐스는 무도회장에서 모든 것이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궁정 조커 제스트를 만난다. 조커의 공연에 넋을 놓고 즐기던 캐서린은 갑작스런 왕의 구애에 정원으로 도망치다가 잔디밭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녀를 깨운 건 신비로운 궁정 조커 제스트. 그의 레몬색 눈빛을 본 순간, 캐서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알 수 없는 운명적 끌림을 느낀다.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뭔가가 캐스 안에서 깨어났다. 뭔가 아찔한 것, 그렇지만 또한 불안한 것. 궁금하면서도 겁나는 것. 캐서린은 제스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그 사이 궁은 갑자기 나타난 재버워크의 습격으로 혼란에 휩싸이면서 결국 왕의 결혼 발표는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못한다. 그 이후 하트 왕은 친히 캐서린의 집으로 찾아와 그녀에게 구애를 요청하고 제스트는 하트 왕과 궁정 조커 사이에서 고민하는 캐서린을 찾아와 모자장수의 다과회로 초대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둘의 관계는 한층 더 깊어져간다. 왕의 구애도, 부모의 기대도 저버린 채 위험한 사랑을 키워가는 캐서린. 그녀는 자신의 오랜 꿈과 사랑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하트 여왕’의 이야기 <하트리스>. 이 책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하트 여왕이 어떻게 참수형을 즐기는 냉혹한 미치광이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프리퀄(원작의 과거 이야기를 다룬 속편) 스토리로 단순히 하트 여왕의 소녀 시절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고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고양이 체셔와 회중시계 토끼, 가짜 바다거북에서 미치광이 모자장수 등 원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그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와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보인다. 제빵사를 꿈꾸던 귀여운 소녀는 왜 심장을 잃었을까? 이제 하트 여왕의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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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도 지음 / 새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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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아늑해진다. 키패드의 0을 네 번 누르는 게 무섭다. 한 번을 더 누를까 봐. 아니면 한 번을 덜 누를까 봐 너무 무섭다. 이 금액이 맞다는 사실이 무섭다. 비현실적인 금액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사실이 너무 무섭다. 이런 주문을 넣는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무섭다. 혹시나 그와 얼굴을 마주하게 될까 너무 무섭다. 무섭다. 모든 것들이 너무나 무서워 심장이 멈출 것만 같다. 차라리 이대로 심장이 멈춰, 책상 위에 이마를 처박고 눈을 감아버릴 수만 있다면······! (p.15)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수많은 고층 빌딩들……. 여의도에 출근하던 첫날, 익현에게 그것은 마치 앞으로 우뚝 솟을 자신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저 많은 건물들 중에 내 것 하나 없다는 현실이, 아니 심지어 저 건물의 단 1평조차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더없이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엘리트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 왠지 가까운 미래 어느 날에는 이곳에 있는 빌딩 중 하나 정도는 소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렇다, 솔직히 그는 바퀴벌레 서식지 같은 자신의 비좁은 자취방 월세를 내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었다. 하루에 몇 억씩 보이지 않는 돈을 거래하는 전문직 종사자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통장은 아주 척박하고도 쓸쓸하다는 진실……. 무엇보다 짜증나는 것은, 그런 아이러니한 자신의 처지에 매일 아침마다 쓴웃음을 짓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p.97)

 

그는 기업이라는 곳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회사는 항상 극대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곳이었다. 직원 개개인의 노력과 인맥 같은 것은 회사로서는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회사는 직원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높은 효율을 발생시키는 데에만 늘 관심이 많았다. 100만 원의 월급을 주면, 150만 원의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이다. 즉, 브로커로서 석준이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의 계좌들 역시 언젠가는 임찬명 상무가 다시 낚아채 갈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석준 또한 최근 반폐인이 된 1팀의 박시은처럼 버려질 게 분명했다. 그것은 더럽고 치사한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라는 곳은 항상 그랬다. 선(先) 회사의 이익, 그리고 아주, 매우 아주 후(後)의 직원의 이익. (p.139)

 

고위험 고수익 High Risk, High Return. 누가 지어낸 말인지 꽤나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이다. 고수익 고위험 High Return, High Risk. 그렇다, 엄청난 보상 뒤에는 항상 그에 상응하는 무시무시한 대가가 따라온다. 악마는 인간에게 고통만을 주지 않는다. 악마는 인간의 낙(樂)이 최고조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속삭인다. 달콤하게, 항상 승리에 취해 있게, 그리고 그 행복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도록……. 그 속삭임은 귀가 마비되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질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렇게 한 인간이 기쁨에 취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착각이 든 바로 그때, 악마는 그 승리자에게 근사한 선물을 선사한다. ‘절망’이라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선물을……. (p.214)

 

 

 

근사한 증권가 엘리트의 삶을 꿈꿨지만, 현실은 소심한데다 연줄까지 없어 낮은 인센티브를 한탄할 뿐인 신입 브로커 조익현. 그는 이내 곧 해고 직전의 처지로 몰리지만 위기의 순간 베일에 싸인 번호표를 만나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거래 참여를 제안받는다. “그와 일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 손잡는 순간 막대한 이익금을 얻게 된다는 수수께끼의 인물 ‘번호표’. 평범한 청년에게 다가온 뭉칫돈의 유혹, 과연 인생 역전의 기회인가, 파멸로의 초대장인가.

 

20대 후반까지 금융가에서 법인 브로커로 일하다가, 비합법적 사금융업체인 ‘부티크’를 설립하여 젊은 나이에 자신만의 힘으로 단 일 년 만에 1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모집하여 운용하지만, 돈과 탐욕의 노예가 되어 큰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경험했던 작가 장현도. 그는 전작 <트레이더>에 이어 특유의 대담한 필력으로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 금융에 비전문가인 독자들에게도 흥미를 유발한다. 오직 돈이 중심인 금융가의 세계와 그 속에서 변화되는 신입 사원 조익현의 모습은 돈의 세계에 대한 보고서이며 한 인간의 사회생활 분투기라 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의 대가가 무엇인지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한 주인공 조익현. 그는 그것을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인가. 소설에 등장하는 증권가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모두 실화다. 심지어 황당하기 그지없는 검은 음모들도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저자가 철저하게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기반으로 거기에다 살을 붙였을 뿐이다. 금융이라는 것에 판타지 따위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고 멋진 모습만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금융가의 민낯?! 주인공 익현과 번호표 일행을 쫓는 금융감독원의 사냥개 한지철, 익현을 열등감에 빠뜨리는 입사 동기 장석준, 색기 흐르는 외모로 몸로비를 일삼는 3년차 브로커 박시은, 익현의 여자친구 문예지 등 책은 이같은 인물들을 통해 돈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아주 리얼하게 그려낸다. 재미는 물론 다채롭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바짝 뒤쫓아 가다 보면 어느새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정주행! 돈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 돈을 두고 벌이는 숨막히는 두뇌 대결에서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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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 선택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아우름 36
류대성 지음 / 샘터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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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청소년기의 몰입과 덕질을 ‘공부’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생각하며,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더라면’이라고 아쉬워하죠. 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공부에만 몰두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실컷 놀고 즐겁게 지내며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 채운 그 시절을 진정 후회하고 있을까요? 모든 사람에게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입니다. 후회는 가능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현재’뿐입니다. 그리고 미래는 현재의 선택에 따른 결과입니다. (p.16)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믿기 때문에 종종 실수를 저지릅니다. 타인이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자신을 속이고 합리화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선택일수록 먼저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숨은 욕망을 확인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절대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조건은 참고 사항에 불과한 게 아닐까요? (p.33)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면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고 모든 걸 내려놓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부터 어떤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일까지 ‘아름다운 마무리’는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생의 원리가 아닐까요?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됩니다. (p.58)

 

시대와 세대는 변하지 않는 삶의 조건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태도로 살아갑니다. 그 선택은 오롯이 각자의 몫입니다. 세상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선택할 수 있는 일도 외면하며, 누군가는 선택할 수 없는 일 속에서도 자신의 관점과 태도를 돌아옵니다. 우리 인생에서 ‘선택’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스스로 움직이고 노력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주어진 조건이 다르고 선택 불가능한 상황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과 태도의 차이에 따라 각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p.127)

 

 

 

 

각계 명사에게 ‘다음 세대에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인지 묻고 그 답을 담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의 서른여섯 번째 주제는 ‘선택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책은 “우리의 삶은 선택 가능한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중요한 선택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조언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선택의 기준과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선택을 마주하는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또한 금수저 논란, 페미니즘 논란 등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부모나 성별, 국가, 인종 등 선택할 수 없는 것들로부터 받는 좌절과 상처 혹은 분열과 대립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선택 불가능한 것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인간의 삶이 과연 선택 가능한지, 선택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오랜 생각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채영, 연우, 태균, 혜진, 영기, 경화, 명옥이 겪는 선택의 순간과 갈등 상황은 우리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들이다. 나의 친구, 가족, 이웃들의 이야기. 1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별로 고민이 다르고, 선택해야 할 것들에도 차이가 있다. 각각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 무수한 선택의 결과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싶다면 선택의 기준과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선택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고 비난하고 자학한다면, 개인에게는 좌절과 상처만, 사회에는 분열과 대립만 남을 뿐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자학 대신 남은 시간을 향한 실천과 노력, 이것이 선택을 마주하는 최선의 방법. 선택은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인생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고 고민한 뒤 내린 선택은 그 결과가 무엇이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한 고민 없이 타인 또는 사회가 원하는 대로 선택한다면, 결과가 좋든 나쁘든 결국에는 후회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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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 흔들리는 어른을 위한 단단한 심리학의 말
구마시로 도루 지음, 정혜주 옮김 / 샘터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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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시점에서 보이지 않는 것, 청년일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중년이 되어서 보인다거나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직업이나 결혼과 같은 표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무엇을 바라고 살아가는지,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등 인생 전반이 크게 변화합니다. 그와 더불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나 삶의 보람도 크게 달라집니다. (p.19)

 

아무리 외모나 육체를 젊게 유지한다고 해도 ‘사회적인 연령에 상응하는 나이가 되었는가’의 여부, 즉 ‘연공’을 쌓은 어른이 되었는가에 대해 아랫사람들의 가차 없는 추궁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이 윗세대를 바라볼 때의 시선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어른인데도 어른이 아닌 중년이나 노인을 봤을 때, ‘어른답지 않다’라든가 ‘꼰대’라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런저런 이유로 어른들을 비난하는 여러분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중년이 된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어린 사람들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윗사람에 걸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심판대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중년이 되었는데도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반복한다면 주위의 시선은 냉담할 테고, 아랫사람들이 ‘꼰대’로 간주하더라도 불평할 까닭이 없습니다. (p.21)

 

청년을 끝내고 어른이 시작되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가치란 무엇인가’ 하는 논점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봤을 때 생기 넘치게 활약하는 어른은 많든 적든 그런 가치관의 전환을 겪은 듯 보입니다. 청년의 관점에서는 손해인 것, ‘가성비’가 나쁜 것에 주력하고 있는 어른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보거나 머리가 나쁜 존재로 보지는 말아주세요. 그들의 행복이나 인생의 ‘가성비’ 방정식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뀐 것입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의 방정식도, 그렇게 바뀌어갈지 모릅니다. 청년의 관점으로는 새카만 암흑처럼 보이는 삶이 어른의 관점으로 보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일 수 있습니다. (p.40)

 

인생은 보이지 않는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것과 같아서 백발백중일 리 없습니다. 그때마다 완벽하게 자기 평가를 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종종 그릇된 자기 평가로 결과가 잘못되거나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자기 평가의 잘못이 오래 지속되면, 인생에 화근을 남길 정도의 타격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청년이든 어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과한 ‘자아 찾기’로 중년으로의 전환이 늦은 청년도 직장이나 가정의 인간관계를 소홀히 한 어른도 그것이 10년 단위로 계속되면 나중에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의 손실이 발생하거나 길을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잘못을 빨리 깨닫는 찰지력(헤아려 아는 힘-옮긴이)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미세한 수정도 포함하여 고치려는 의지나 능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인생은 통제할 수 있고 궤도를 수정하는 것도 쉬워지며,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에도 큰 타격 없이 끝낼 수 있습니다. (p.177)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어른이란 무엇인가, 청년을 끝내고 어른이 시작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른이란 대체 어떤 존재일까? 현대사회에는 아이와 청년, 청년과 어른, 어른과 노인을 확실히 구분하는 경계선이 없어졌다. 환갑을 맞았어도 여전히 청년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20대나 30대를 어른이라는 범주에 포함 시킬 수도 있지만, 청년이라는 범주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아이’에 포함 시킬 수도 있다. 이제 사회는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게 되었지만, 나이를 기준으로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어려워졌다. 저자의 나이 43세. 그 역시 50대나 60대가 되었을 때 어떻게 될지 아직은 모른다. 그 대신 청년이 끝나고 어른이 시작되었을 때의 마음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청년 시절에는 ‘선택하는 것’이 두렵다.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몰라 망설인다. 반면, 나이가 들면 선택의 여지가 줄어드는 것이 두렵다. 인생의 중반부를 넘기면 지금까지 축적된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는 일은 적어지고 대담하게, 혹은 신중하게 자신의 인생을 걸어갈 뿐이다.

 

 

솔직히 나는 어른이 되기 싫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청년으로 남고 싶다. 날이 갈수록 나이가 주는 무게는 늘어만 가고 점점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지면서 덩달아 겁도 많이 진다. 이런 내가 어른이 된다니.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누구나 나이가 들어간다. 아이에서 청년 그리고 어른에서 노인으로 체감하는 속도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 순서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일. 저자는 인생을 “보이지 않는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내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대비한다고 해도 인생은 결코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우리가 ‘어른’에 대한 이상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평생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각자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저마다 고유의 인생을 걷고 있다. 좋은 어른의 ‘원형’에 자신의 모습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나이 듦의 모습을 그려가야 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지 않는다. 어른?!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숙제와도 같은 이 말. 골똘히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데 구태여 다가오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머리 아파하기보단 어른이고 뭐고 그냥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련다. 그때 걱정은 그때 가서! 어차피 준비된 어른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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