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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프리퀄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선 옮김 / 에이치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흐릿하고 아름다운 꿈, 그 속에 흐릿하고 아름다운 남자가 있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차려 입고 레몬나무 과수원에 서 있던 모습. 캐서린은 그 남자가 뭔가 자신에게 속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선명한 감각을 느꼈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돌려받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하지만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남자는 멀리 더 멀리 뒷걸음질 쳤다. 소름이 드레스 뒷부분을 미끄러지듯 타고 달렸다. 캐서린은 마음을 낚아채는 듯한 그 호기심을, 남자를 쫓아가야만 한다는 그 간절한 마음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남자의 눈동자는 마음에서 절대 떠나지 않았다. 노랗게 빛나는,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눈동자. 나무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레몬처럼 눈부신 눈동자. (p.10)
절박함이 캐서린의 목구멍을 할퀴었다. 왕. 단세포적인, 우스꽝스러운, 행복한, 행복한 왕.
내 남편? 내 하나뿐인?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생 함께할 단 한 사람?
캐스는 여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왕은··· 여왕은 가장 친한 친구랑 같이 베이커리를 열지 못한다. 여왕은 눈에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고양이와 뒷소문을 속닥대지 못한다. 여왕은 노란 눈동자의 남자에 대한 꿈을 꾸고 잠에서 깨면 침대 위로 레몬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캐스는 침을 삼키려고 했지만 입 속이 마치 퀴퀴한 케이크처럼 말라버렸다. (p.69)
“괜찮으신가요?”
캐스가 숨을 삼키며 팔을 도로 거둬들였다. 심장이 천둥처럼 쿵쾅되는 것을 느끼며 흰 장미나무 가지 틈새를 엿보았다. 어둠 탓에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내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조커가 낮게 드리운 나뭇가지 위에 누워 있었다. 손에 플루트를 들고 있었지만, 그걸 연주하고 있었다 해도 캐서린은 정신이 없어서 듣지 못했을 것이다.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머리카락 절반이 쪽진 머리에서 빠져나와 어깨에 드리워졌다. 살갗이 불타는 듯 뜨거웠다. 세계가 미치 듯 핑핑 돌았다. 레몬 타르트와 보이지 않는 고양이와 굽은 도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갔다. 긴장한 조커가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레이디?”
세계가 심하게 기우뚱하더니 이윽고 암흑에 잠겼다. (p.71)
그 순간 캐스는 하트의 왕이 자기 앞에 서서 손을 마주잡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작고 축축한 손을 쥐는 상상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이어 요청을 듣게 되겠지. 자기 아내가 되어달라는. 그렇지만 왕이 자신을 향해 웃음 짓는 모습을 정확히 그려볼 수 있었다. 얼마나 가련해 보일지. 얼마나 희망에 차 있을지··· 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거기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차를 한 모금 홀짝일 때, 더 중요한 질문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p.102)
제스트는 싱긋 웃었다. 캐스는 어둠 속에서도 제스트의 눈동자가 어떤 색을 띠고 있을지 정확히 짐작이 갔다. 캐스는 숨을 삼키며 모자를 벗어 도로 제스트의 머리에 올려 놓았다. “고마워.” 그 인사가 단지 나무를 타고 창으로 들어오도록 도와준 것에 대해서만이 아님을 제스트가 알아주길 바랐다. 그 모든 것에 대한 감사임을. 그 짜릿함, 그 웃음, 제스트가 털어 놓은 비밀들. 비록 공황과 공포의 순간들이 있었다 해도, 그날 밤은 캐스가 후작의 딸일 필요가 없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제스트는 캐스를 내려놓지 않았다. 놓아주지 않았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제스트가 속삭였다. 캐스는 뱃속이 간질거렸다. 제스트가 나를 다시 보고 싶어 한다. 행복감이 온몸으로 번졌다. 어쩌면 제스트가 하트에 남고 싶은 이유가 자신일 수도 있었다. 그러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그 생각과 함께, 자신의 상황으로 인한 아픔이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p.251)
하트 왕국 최고의 제빵사이자 베이커리를 여는 게 평생 꿈인 귀여운 소녀 캐서린 핑커튼. 빵과 디저트에 대해 남다른 사랑 가진 그녀는 숫자 계산이 빠른 하녀 메리 앤과 평생 친구로 지내며 미래에 둘이 같이 빵집을 열기로 약속한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 캐서린은 방에서 레몬 나무가 자라난 걸 발견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꾸어온 꿈을 이루기 위해 그 레몬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레몬 타르트를 만들어 왕에게 선물한다. 그날 밤 하트의 왕이 주최하는 무도회에 초대된 캐스는 무도회장에서 모든 것이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궁정 조커 제스트를 만난다. 조커의 공연에 넋을 놓고 즐기던 캐서린은 갑작스런 왕의 구애에 정원으로 도망치다가 잔디밭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녀를 깨운 건 신비로운 궁정 조커 제스트. 그의 레몬색 눈빛을 본 순간, 캐서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알 수 없는 운명적 끌림을 느낀다.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뭔가가 캐스 안에서 깨어났다. 뭔가 아찔한 것, 그렇지만 또한 불안한 것. 궁금하면서도 겁나는 것. 캐서린은 제스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그 사이 궁은 갑자기 나타난 재버워크의 습격으로 혼란에 휩싸이면서 결국 왕의 결혼 발표는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못한다. 그 이후 하트 왕은 친히 캐서린의 집으로 찾아와 그녀에게 구애를 요청하고 제스트는 하트 왕과 궁정 조커 사이에서 고민하는 캐서린을 찾아와 모자장수의 다과회로 초대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둘의 관계는 한층 더 깊어져간다. 왕의 구애도, 부모의 기대도 저버린 채 위험한 사랑을 키워가는 캐서린. 그녀는 자신의 오랜 꿈과 사랑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하트 여왕’의 이야기 <하트리스>. 이 책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하트 여왕이 어떻게 참수형을 즐기는 냉혹한 미치광이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프리퀄(원작의 과거 이야기를 다룬 속편) 스토리로 단순히 하트 여왕의 소녀 시절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고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고양이 체셔와 회중시계 토끼, 가짜 바다거북에서 미치광이 모자장수 등 원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그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와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보인다. 제빵사를 꿈꾸던 귀여운 소녀는 왜 심장을 잃었을까? 이제 하트 여왕의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