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도 지음 / 새움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정신이 아늑해진다. 키패드의 0을 네 번 누르는 게 무섭다. 한 번을 더 누를까 봐. 아니면 한 번을 덜 누를까 봐 너무 무섭다. 이 금액이 맞다는 사실이 무섭다. 비현실적인 금액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사실이 너무 무섭다. 이런 주문을 넣는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무섭다. 혹시나 그와 얼굴을 마주하게 될까 너무 무섭다. 무섭다. 모든 것들이 너무나 무서워 심장이 멈출 것만 같다. 차라리 이대로 심장이 멈춰, 책상 위에 이마를 처박고 눈을 감아버릴 수만 있다면······! (p.15)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수많은 고층 빌딩들……. 여의도에 출근하던 첫날, 익현에게 그것은 마치 앞으로 우뚝 솟을 자신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저 많은 건물들 중에 내 것 하나 없다는 현실이, 아니 심지어 저 건물의 단 1평조차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더없이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엘리트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 왠지 가까운 미래 어느 날에는 이곳에 있는 빌딩 중 하나 정도는 소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렇다, 솔직히 그는 바퀴벌레 서식지 같은 자신의 비좁은 자취방 월세를 내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었다. 하루에 몇 억씩 보이지 않는 돈을 거래하는 전문직 종사자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통장은 아주 척박하고도 쓸쓸하다는 진실……. 무엇보다 짜증나는 것은, 그런 아이러니한 자신의 처지에 매일 아침마다 쓴웃음을 짓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p.97)

 

그는 기업이라는 곳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회사는 항상 극대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곳이었다. 직원 개개인의 노력과 인맥 같은 것은 회사로서는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회사는 직원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높은 효율을 발생시키는 데에만 늘 관심이 많았다. 100만 원의 월급을 주면, 150만 원의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이다. 즉, 브로커로서 석준이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의 계좌들 역시 언젠가는 임찬명 상무가 다시 낚아채 갈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석준 또한 최근 반폐인이 된 1팀의 박시은처럼 버려질 게 분명했다. 그것은 더럽고 치사한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라는 곳은 항상 그랬다. 선(先) 회사의 이익, 그리고 아주, 매우 아주 후(後)의 직원의 이익. (p.139)

 

고위험 고수익 High Risk, High Return. 누가 지어낸 말인지 꽤나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이다. 고수익 고위험 High Return, High Risk. 그렇다, 엄청난 보상 뒤에는 항상 그에 상응하는 무시무시한 대가가 따라온다. 악마는 인간에게 고통만을 주지 않는다. 악마는 인간의 낙(樂)이 최고조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속삭인다. 달콤하게, 항상 승리에 취해 있게, 그리고 그 행복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도록……. 그 속삭임은 귀가 마비되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질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렇게 한 인간이 기쁨에 취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착각이 든 바로 그때, 악마는 그 승리자에게 근사한 선물을 선사한다. ‘절망’이라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선물을……. (p.214)

 

 

 

근사한 증권가 엘리트의 삶을 꿈꿨지만, 현실은 소심한데다 연줄까지 없어 낮은 인센티브를 한탄할 뿐인 신입 브로커 조익현. 그는 이내 곧 해고 직전의 처지로 몰리지만 위기의 순간 베일에 싸인 번호표를 만나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거래 참여를 제안받는다. “그와 일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 손잡는 순간 막대한 이익금을 얻게 된다는 수수께끼의 인물 ‘번호표’. 평범한 청년에게 다가온 뭉칫돈의 유혹, 과연 인생 역전의 기회인가, 파멸로의 초대장인가.

 

20대 후반까지 금융가에서 법인 브로커로 일하다가, 비합법적 사금융업체인 ‘부티크’를 설립하여 젊은 나이에 자신만의 힘으로 단 일 년 만에 1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모집하여 운용하지만, 돈과 탐욕의 노예가 되어 큰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경험했던 작가 장현도. 그는 전작 <트레이더>에 이어 특유의 대담한 필력으로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 금융에 비전문가인 독자들에게도 흥미를 유발한다. 오직 돈이 중심인 금융가의 세계와 그 속에서 변화되는 신입 사원 조익현의 모습은 돈의 세계에 대한 보고서이며 한 인간의 사회생활 분투기라 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의 대가가 무엇인지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한 주인공 조익현. 그는 그것을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인가. 소설에 등장하는 증권가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모두 실화다. 심지어 황당하기 그지없는 검은 음모들도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저자가 철저하게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기반으로 거기에다 살을 붙였을 뿐이다. 금융이라는 것에 판타지 따위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고 멋진 모습만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금융가의 민낯?! 주인공 익현과 번호표 일행을 쫓는 금융감독원의 사냥개 한지철, 익현을 열등감에 빠뜨리는 입사 동기 장석준, 색기 흐르는 외모로 몸로비를 일삼는 3년차 브로커 박시은, 익현의 여자친구 문예지 등 책은 이같은 인물들을 통해 돈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아주 리얼하게 그려낸다. 재미는 물론 다채롭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바짝 뒤쫓아 가다 보면 어느새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정주행! 돈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 돈을 두고 벌이는 숨막히는 두뇌 대결에서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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