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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 1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9년 3월
평점 :





“무로이 씨가 원하는 건 뭡니까?”
“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이 곪을 대로 곪아 버린 세상을 바꾸고 싶어. 단지 그뿐이다.”
나는 창밖의 칠흑 같은 어둠을 보았다. 그의 말대로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곪은 세상이었다.
“나를 따라와 주겠나?”
그 목소리에 나는 무로이를 쳐다봤다. 상냥한 눈빛 속에 숨은 정체 모를 힘에 자석처럼 이끌렸다.
“따라와 준다면 지금껏 본 적 없는 근사한 세상을 보여 주지. 자신이 태어나 살아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이 있다면 한번 보고 싶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만 약속해 주게.”
“약속이라뇨?”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나는 너와 똑같은 걸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보다 진한, 신이 내려 준 운명 말이다. 그게 있는 한 나는 널 위해 무엇이든 할 거다. 너도 날 위해 그리 해 주겠나?”
“그런 세상을 보여 준다면 나는 당신을 따를 겁니다.”
내가 대답하자 무로이가 미소를 머금었다. (p.22)
경찰차 안에서 창밖에 펼쳐지는 칠흑 같은 어둠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수년간 온갖 지식을 쌓아 왔지만 그 답은 알지 못했다.
인도를 터벅터벅 걷는 몸집 큰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이렌 소리에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기억이 또 하나의 시야에 비친 채 좀처럼 떠난 줄을 몰랐다. 내가 인간을 구별하는 기준은 단 하나밖에 없다.
머리가 좋은 인간인가, 나쁜 인간인가---- 그뿐이다.
미노루는 내가 처음 접한, 구별이 되지 않는 인간이었다.
나는 창밖에서 눈길을 거두고 앞을 향했다. (p.36)
마치다가 살아온 18년의 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물론 마치다만이 알 것이다. 이 조사기록은 가정법원 조사관과 소년 분류 심사원 심사관 등이 마치다에 대해 조사하여 작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도대체 마치다에 대해 얼마나 알아냈다는 걸까. 마치다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학교 교사나 동급생, 가족에게 마치다에 대해 물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 서류에 기록된 것은 거의 대부분 마치다 본인이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다. 마치다가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리가 없다. 마치다를 체포한 경찰도, 그를 조사하여 소년원에 송치한 가정법원도, 그리고 자신들 법무교도관도--- 누구도 마치다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걸어왔는지 알지 못한다. 튤립이라는 꽃의 이름조차 모르는 소년. 그는 어떤 세계에서 살아왔을까. (p.77)
무로이는 사리사욕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는 숭고한 이념이 있다고 믿었다. 그 증거로 무로이는 혜택 받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지원 단체를 설립하고 그곳을 통해 전국의 시설 등에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간부에게 들었다. 불행한 인간을 조금 행복하게 하고 행복한 인간을 조금 불행하게 한다---. 무로이는 그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신이 조화를 부리듯 범죄를 이용해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무로이는 어떤 의미에서 범죄라는 수단으로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려 하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다면 그 일의 한 부분을 맡고 있는 아마미야 일행은 ‘신의 아이’인 셈이다---. (p.101)
본명도 없고 호적도 없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출생 신고도 없이 방안에서 방치된 채 살아온 주인공 마치다. 그를 낳아준 여자는 정상적인 사고조차 못할 만큼 머리가 나쁜 여자였다. 머리 나쁜 남자에게 걸려 덜컥 임신을 하고 전후 사정도 헤아리지 않고 그를 낳았다. 일단 그에게 히로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법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견한테 바둑이나 방울이 등 편의상 이름을 지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그의 아이큐는 160 이상! 자신이 본 것을 사진 촬영하듯이 기억에 되새기는 직관상 기억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매일 학대를 받으며 살아오던 어느 날 그는 동네 공원에서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미노루를 만난다. 미노루는 늘 배고픔에 허덕이던 마치다에게 항상 주먹밥을 만들어 주었다. 마치다가 인간을 구별하는 기준은, 머리가 좋은 인간인가, 나쁜 인간인가 하는 것뿐이었지만 미노루는 마치다가 처음 접한, 구별이 되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와 다시 재회한 것은 마치다가 가출한 지 1년쯤 지났을 무렵. 호적이 필요했던 그는 미노루의 호적으로 주민표와 면허증을 취득해 둘이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미노루가 갖고 있다 해도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다 자신이 벌어 매일 배불리 먹고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마치다에게 뒷골목 세계를 이끄는 무로이 진은 특별한 애착을 가진다. 그 역시 어린 시절 호적이 없는 채로 발견돼 시설에서 살아왔고 지능지수가 아주 높은 천재였던 것이다. 부모에게는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지만, 신으로부터 높은 지능을 선물받았다고 여기는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마치다에게 집착하고 급기야 자신의뜻을 거역하고 소년원에 입소한 그를 다시 자신의 곁으로 데려오기 위해 조직원 아마미야를 소년원으로 투입시킨다.
<신의아이>는 비뚤어진 세계관을 가진 조직의 우두머리 무로이 진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마치다를 소유하기 위해 사건을 벌이는 미스터리 추리소설로 1권에서는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버린 마치다를 갖기 위해 일을 벌이는 무로이와 사람을 머리가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으로 나누어 구별하던 마치다가 타인과 관계를 맺어나가며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곪을 대로 곪아 버린 세상을 범죄를 이용해 바꾸고 싶어하는 무로이와 제대로 된 부모도,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호적도, 어떤 관계도 없이 홀로 살아온 소년 마치다의 삶은 마음에 돌덩이를 올려다 놓은 듯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중 특히 마치다가 자신이 살아온 가정환경 탓에 주위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는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아이큐가 우수하기도 하지만 의존할 데 없이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그러는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인물인 미노루와 야마미아, 이소가이도 마찬가지. 그들의 삶도 마치다 못지 않게 각박한 터라 한숨이 연신 쏟아져 나온다. 그들을 거두어 줄, 그러니까 그들의 잘못을 혼내키고 도와주려고 한 이가 한 사람만 있었어도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이제껏 자신의 속이야기를 하지 않던 마치다가 지금부터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 한다. 2권에서는 단단하게 묶인 감정의 매듭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너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