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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나리오 1 - 의문의 피살자
김진명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3월
평점 :





직업 : 소설가
가족 관계 : 부인(교사)과 아들(중학생)
특기 사항 : 2004년 7월 20일 인천공항에서 뉴욕으로 출국
인적 사항을 유심히 살펴보던 장 검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엇보다 피살자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뉴욕으로 평양으로 베이징으로 날아다니다 프로에게 피살당한 사람의 행적은 소설가라는 직업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p.14)
사실 난감한 일이었다. 느낌으로 보아서는 그 전화가 피살자의 죽음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대통령안보보좌관실이란 데가 불확실한 상황을 가지고 함부로 전화를 걸거나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또 하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비행기 꼬리표에 있던 바로 그 전화번호였다. 류삼조라는 사람은 장 검사가 벌써 몇 번이나 음성을 남겼는데도 전혀 응답이 없었다. 장 검사는 내친김에 다시 한 번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여전히 메시지를 남기라는 음성만 들려올 뿐이었다. 이번에는 음성조차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장 검사는 조금씩 사건에 깊이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검사라는 직업에서 오는 의무감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뭔지 모르지만 깊숙한 비밀이 이 사람의 죽음에 연관되어 있을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다가오고 있었다. (p.24)
“이 나라에 대통령도 못 건드리는 사건이 있단 말인가?”
장 검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 청와대, 검찰, 한나라당, 민주당, 국정원, 대한민국 최고의 기관들이 모두 도청 사건을 한 자락씩 붙들고 있지만 그 진정한 실체는 접근 불가능이라는 얘기지.”
“무슨 말이야? 도청 자체는 분명히 있었잖아?”
“있었지.”
“그런데 대통령이 지시하고 검찰이 사건을 맡았는데 해답이 없다니?”
“범인은 제삼자야.”
“제삼자라구?”
“그래. 모두가 제삼자의 장단에 놀아난 거지.” (p.65)
장 검사는 자신도 모르게 눈길을 들어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하늘 깊숙이 숨겨져 있는 인공위성에서 자신을 도청했다는 방문객의 말이 도저히 실감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황으로 봐서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장 검사는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자신이 소설가 이정서의 피살과 관련해 로저를 의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자신이 로저에게 도청당했다는 사실에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곰곰 생각을 거듭하던 장 검사는 저들이 베이징의 위안 검사를 도청하다 자신에게로 도청 마이크를 옮겨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박두칠과 관련해 자신을 도청할 수도 있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또 하나의 강력한 가능성은 이정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위안 검사를 감시하다 자신에게로 도청의 고리가 연결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정서 사건의 배후가 이리도 복잡하단 말인가’ (p.173)
소설가 이정서는 뉴욕으로 떠나던 날 밤, 청와대 안보보좌관실에 전화 한 통을 남긴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베이징에서 피살된 채 발견된다. 뉴욕으로 떠난 사람이 왜 베이징에서 살해된 것일까? 그의 시신은 이내 곧 한국으로 공수돼 오고 베이징 검사 위안의 연락으로 그와 공조수사를 벌이던 한국의 검사 장민하는 피살에 얽힌 배후를 찾고자 동분서주하면서 진실에 다가갈수록 이정서의 죽음은 단순한 살인 사건을 넘어 엄청난 정치적 음모가 숨어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검사로서의 앞날을 생각하면 마땅히 무시하고 지나가야만 한다. 그러나 자신이 포기하면 아무도 이런 일에 달려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장 검사의 뇌리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실체적 진실은 땅에 묻히고 만다. 게다가 이 사건은 누구를 상대로 어떤 수사를 해야 할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는 데다가 미국의 정부부 요원이 개입되어 있다. 장 검사는 순간 망설였다. 위안 검사가 사건에서 손을 놓아버린 이상 자신도 손을 놓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모두 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는 절대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어떤 본능 같은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미국은 왜 침묵하는가, 북한은 정말 핵을 포기하고 평화 협정에 손을 잡을 것인가. 한반도 위기를 소재로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열강들의 패권 격돌’이라는 커다란 프레임에서 국제 정세를 묘사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밀리언셀러 작가 김진명. <제3의 시나리오>는 베이징에서 살해된 소설가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 간에 얽힌 이해관계를 다룬 작품으로 2004년에 출간되었다가 15년 만에 개정되어 재출간되는 이 작품 속 실존 인물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역학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팩트 소설임이 분명하다. 대중 소설로서는 드물게 국가 간 대치되는 상황을 치밀하게 묘사해 CIA 학술정보지에도 등제된 화제의 도서로 2006년에는 일본에 수출되었을 만큼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지난해 전 세계가 주목했던 판문점에서의 역사적인 만남 이후 모두가 급진적으로 이 관계가 변화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사실상 지금 어느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는 가운데 앞으로 어떻게 점진 되어 나갈 것인가를 두고 세계가 끊임없는 관심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북미회담 결렬에 담긴 진짜 메시지는 무엇인가? 소설의 배경이 故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이라 다소 시대적 괴리를 느낄 수도 있지만 사실인지 허구인지 모를 정도로 치밀하게 짜여진 구성으로 눈과 귀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역시 김진명 작가!! 읽는 순간 책속으로 빠르게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