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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거짓말 :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평점 :






성적 권리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성적 권리는 없어도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은 하찮은 부속품과 같은 권리가 아니다. 성적 권리를 실행하고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위험 없이, 기쁨의 원천인 채로, 모든 강제로부터 자유로운 채로 성생활을 누리는 것. 그것은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절대로 양도해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요구이자 권리인 것이다. (p.19)
“이런 말을 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어머니들이여, 만일 당신의 아들이 자라서 성추행범이나 강간범, 폭행 가해자, 쓰레기, 악랄한 남편, 마초가 된다면 그건 사회와 문화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어머니, 당신들 또한 책임자입니다. 당신의 딸들더러 남자들의 먹잇감이 되려고 그러느냐 입이 닳도록 닦아세우는 대신 당신의 아들에게 ‘너는 여자 사냥꾼’이라고 충고하는 걸 그만두세요. 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대신 아들들에게 ‘듣는 법’을 가르치세요. 딸들에게 치마를 입지 말라고 하는 대신 아들에게 치마는 섹스 초대가 아니라는 걸 이해시키세요. 딸들에게 전신을 가리라고 강요하는 대신 아들에게 설명해 주세요, 여성은 몸뚱이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걸.” (p.38)
우리 어머니 세대가 했던 페미니즘 운동은 실패했고, 세대 교체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철저하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법과 제도에 맞서야 해요. 기존의 이 모든 시스템을 거부해야 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여전히, 끊임없이 불법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거겠죠. 만일 누군가 나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꼬투리를 잡아 나를 감옥에 넣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의 풍습과 문화가 우리를 불법 속으로 밀어 넣고 있어요. 바로 그 때문에 투쟁을 끝까지 해낼 수가 없어요. 우리도 무서우니까요. (p.86)
저자는 자신의 고향인 모로코의 열악한 여성 인권을 주제로 하여 욕망을 가질 권리조차 가져본 적 없는 여성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부제목 그대로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의 이야기다. 꾸밈없이 날 것 그대로 보여지는 여성들의 삶이다. 파르르 몸이 떨릴 정도로 강렬함을 남긴 말들, 때로는 흥분시키고 때로는 감동을 준 이야기들, 분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서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들. 많은 남성과 여성이 똑바로 바라보기보다는 외면하고 싶어 하는 사회 속 삶의 고통스러운 파편들이 세상 밖으로 떠밀려 나온다.
모로코 사회는 집단 의존성이 상당히 강하다. 모로코인들에게 집단이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자 동시에 기회가 된다. 그것이 기회이기도 한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든 집단의 결속력이라는 것에 기댈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집단과 개인이 맺는 관계란 그러므로 철저하게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모로코 사회에는 ‘춤마’라는 개념이 있다. 치욕 또는 불편함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는 모로코인에게 어린 시절부터 주입된다. 곧게 자라는 것, 순종적인 아이가 되는 것, 올바른 시민이 되는 것. 그건 수치심을 인식한다는 말이며 동시에 부끄러움과 억제를 증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를 위반한 대가는 혹독하며 ‘신성한 경계’를 넘은 여자는 호된 벌을 받고 사회에서 냉정하게 내동댕이쳐진다.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여성들은 대부분의 모로코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반항하며 자아 해방을 모색하지만 곧 고개를 숙이게 된다. 모두가 생존을 도모한다.
현존하는 법과 도덕에 따르면 모로코의 모든 미혼 여성은 처녀여야 하고, 모로코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젊은 남녀에게는 혼전 성관계가 금지되어 있다. 내연 관계도, 동성애도, 성매매도 존재할 수 없다. 모로코라는 나라에서 간음 즉 ‘지나’에 대한 금지는 도덕적 명령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혼인 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남녀가 성관계를 맺을 경우 1개월에서 1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동성 간의 모든 유혹 행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는 징역 6개월에서 3년형에 처한다.” 등 형법으로 철두철미하게 규정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 지배적인 법률 조항들이 매일, 매시간, 도처에서 자신들을 우롱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직시하거나 맞서지 않는다. 모두가 우습게 알지만 당국은 공공연한 용인은 철저히 거부한다. 권력과 권위를 쥔 모든 이들 즉 정부, 부모, 교사들은 전부 같은 말을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들키지만 말고.” 모로코와 같은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체면이 우선이다.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지금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일이고, 부모에게서 자녀로 또 그들이 낳은 자녀에게로 이런 일들이 당연한 듯이 대물림 되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화가 난다. 그들의 권리는 아주 오래전에 바닥으로 떨어졌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무르며 마치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재력이 있고 성 문제에 대해 제한을 받지 않는 남성들은 마음껏 성을 이용하며 착취하고, 반대로 어느 곳에서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한 여성들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변화는 없었다.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권리임에도 남성과 여성들은 외면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언제까지 현실을 외면할 수 있을까? 모든 여성들의 삶은 더없이 중요하며, 또 중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한다. 침묵과 강요로는 더 이상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고 개인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 이를 두고 비판하기보다는 이제라도 그들의 권리가 올바르게 개선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이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는 권한이다. 그러니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성적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일을 겪어야 한다는 건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