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 - 2018 제12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1
조우리 지음 / 비룡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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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일어나 보니 창밖이 어둑어둑하다. 거실은 폭탄 맞은 모습이고 하운이는 부엌 바닥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다. 아이의 얼굴은 눈물과 침 자국으로 엉망이다. 아이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운 없는 아이, 그 많은 준비된 엄마들 다 놔두고 하필 나에게 와서. 하지만 손을 뻗어 아이를 만지거나 안지 못한다. 그 애보다 더 불쌍한 건 나니까. (p.46)

 

너희들의 비밀이란 것과 나의 비밀이란 것은 애초에 레벨이 너무나도 달라. 공격력도 다르지. 심한 외로움과 동시에 피로감을 느꼈다. 영원히 아침이 밝지 않길. 이곳은 난파된 잠수함이고 우리가 해저 2만 리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해. 그 누구도 다시는 뜨는 해를 볼 수 없을 거야. (p.60)

 

그래, 그런 시간도 있었는데. 감정은 다 그렇게 변하는 것일까. 부패하는 것일까. 그 어떤 마음도 다, 십 년을 사랑해 영원히 함께 지내고 싶어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고 살아도, 그렇게 사라질 수 있는 걸까. 그런 감정의 흐름을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나도 알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날 오빠가 억지로 끝까지 읽어 줬던 시의 내용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한 줄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당신이 아니라면 어찌 내가 사막을 보았겠습니까’ 오빠는 내게 그 구절을 읽어 주고 싶었던 걸까. (p.149)

 

이 길이 끝나면 우리는 어른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 닥치든 우리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 해결해 나갈 것이다. 재경은 멀고 낯선 나라로 떠나지만 자기 꿈을 찾을 것이고 나는 보육교사가 되어 적지만 안정적인 월급을 받고 아이를 내 힘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만나지 못해도 괜찮아, 이것이 마지막이라도 괜찮아. 언젠가 서로의 존재로 인해 그 시절을 좀 더 잘 견뎠다는 것을 깨달을 테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기억할 거야. 가장 좋았던 그때를. 가장 좋은 지금을. (p.214)

 

 

 

서로의 존재로 인해 그 시절을 견뎌 낸, 스무 살을 앞둔 우리들의 찬란한 고백. 저마다의 은밀한 소리를 지닌 일곱 가지 비밀이 담긴 연작소설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 이 책은 비룡소 제12회 블루픽션상 수상작으로 고등학교 2학년 한 반의 아이 여섯 명이 등장하여 일곱 편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건강식품 신봉자인 엄마가 먹인 약초액을 먹고 발기가 멈추지 않아 곤란한 일을 겪는 <이재경>, 자신이 낳은 아들을 동생으로 숨겨야 하는 <김하연>, 엄마와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이수영>, 실종된 아버지를 추적하는 <천현준>, 병원중독에 약물중독인 자신을 알아채 주기를 바라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연보라>, 악플로 고소를 당하는 <최민기>의 이야기가 졸업과 스무 살을 앞둔 시점까지 펼쳐진다.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목소리가, 언제든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가 되고 싶었다는 저자. 10대라면 누구나 겪을 지금 이 순간. 정말 머나먼 일처럼 여겨졌던 일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어느 누가 침착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저마다 내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내보이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친한 아이들끼리는 사정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비밀을 온전히 다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그 비밀의 크기가 너무나도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렇게 탈도 많고 걱정도 많았던 십대에 이별을 고한다. 심사위원으로부터 “요즘 청소년들의 삶을 생생한 날것으로 보여 준 점이 흥미롭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안정된 문장에 잘 녹인 프로 이야기꾼의 솜씨”가 돋보인다는 평을 들었던 저자답게 이 상황을, 바야흐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불안한 십대 아이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잘 표현해낸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처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날뛰는 십 대의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었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저자 또한 이미 겪고 지나왔을 테지만 그때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이야기로 엮어내기가 여간 쉽지 않았을 텐데 십 대 아이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정말 남다르다. 작가의 바람대로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어 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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