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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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작가 페터 빅셀은 나에겐 참 생소한 작가이다. 1935년생이라는데 그러면 우리나라 나이로 대체 몇살인고, 1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그는 이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 스위스 문학상, 요한 페터 헤벨 문학상, 고트프리트 켈러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그의 작품이 스위스의 모든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스위스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이다. 그런 그의 글이 궁굼하다. 무엇이 그를 존경 받게 했을까?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슈바이처 일루스트리어테>라는 스위스 유력 주간지에 실렸던 칼럼들을 모아 만든 그의 산문집이다. 짧은 이야기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글들은 어쩌면 정말 마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비롭다. 길지 않은 그의 이야기들은 강한 교훈을 남겨 준다거나 미치도록 흥미진진 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의 글들을 읽고나면 한동안 마법에 걸린 것처럼 멍하니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기다림을 기다리며
기다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기다리기를 싫어 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기다릴까? 스물한 밤만 더 자면 오는 생일 기다리기, 크리스마스 기다리기 학교 입학 기다리기, 스무살이 되기를 기다리기 그리고 또 기다리기. -P15- 

우리는 항상 매번 무언가를 기다린다. 심지어 우리집 개인 별님이까지도 음식을 먹을 때 마다 나에게 "기다려!!기다려!!" 소리를 들으며 기다림의 인내를 겪어야만 한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다리고 또기다린다. 아마 작가는 기다림에 대해 시간이 쓰임에 대해 말하려 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불필요한 기다림, 설렘이 없는 쓰디 쓴 기다림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그 불필요한 기다림에 대한 집착은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작은 세상, 큰 세상 
어쩌면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세상을 자기 집 안으로 가져다준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이 그들에게 큰 세상을 열어 보이는 듯이 속이는 동안 그들의 세상은 아주 작아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은 여기 술집에서도 작아졌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더 작아진다. -P83-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생활기록부에는 장래희망란이라는 것이 있다. 아마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꿈이 동일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남자 아이들은 대통령을 여자 아이들은 선생님을 적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 이라는 직업은 알다시피 TO가 많은 자리가 아니며 선생님이라는 직업 또한 요즘같은 공무원 선호시대에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벽앞에 우리의 가능성과 희망은 점점 작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문제는 우리의 마음가짐 일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도 감사하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투정 부리고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요는 당신 스스로의 작은 세상과 큰 세상은 당신의 상황이 아닌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거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는 전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하루가 어찌 그리도 길었던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여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을줄만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엔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이 많고 싶다는 것은 아마 여유를 찾고 싶다는 것일 것이다.  인생을 한참 더 사신 75세의 작가 펙터 빅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삶을 잠시 쉬어가는 기분이 든다. 여유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노작가의 사는 이야기를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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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초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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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초는 일본의 어느 지역 지명이며, 현재는 도쿄의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진 곳이다. <가스미초 이야기>는 사라진 도시의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마 작가가 제목을 사라진 지역인 가스미초로 지은것은 사라진 것들을 추억하기 위함일 것이다. 

 
<가스미초 이야기>는 총 8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엔 이것이 각각의 다른 이야기 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8편의 이야기는 모두 한 가족의 이야기 였다. 죽은 아내의 첫사랑의 영정사진을 찍어준 사진사 할아버지, 첫사랑이 건내준 꽃다발을 눈물과 함께 강물로 던져 보낸 할머니, 스승인 할아버지의 사진사의 대를 가족 대신 이어준 아버지, 외국인 교사와 사랑에 빠진 친구와 이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또 다른 친구, 청춘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픈 주인공 나 이노.  

 
참 이 소소한 것들이 돌아보니 너무나 아름답다.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향수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 만큼 참 지나간 것들은 지독하게 아름답다. 이노의 사랑은 풋사랑에 가깝다. 물론 수줍움과 설레임이라는 순수한 말을 사용하기엔 일본인의 자유분방한 성생활 때문인지 고등학생 아이들의 하룻밤이 심심치 않게 등장 해 낯뜨겁기는 했지만 어쩌면 2010년을 바라보는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도 그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이노의 서투른 사랑과 이별은 그 시절 한번쯤 누구나 경험해 봤음직한 아련한 이야기들이다.  

 
<가스미초 이야기>의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인 고등학생 이노를 통한 시선으로 진행된다. 할머니를 따라나선 길에 만나게 된 할머니의 첫사랑 노신사와 할아버지와의 어색한 만남은 이노의 눈을 통해 그들 스스로가 떠나보낸 과거를 추억하게 한다. 게이샤 였던 할머니와 사랑을 나눴던 노신사, 그리고 할머니를 사랑해 기적에서 빼내 자신의 여자로 만든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부부의 연을 맺고 같이 사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그 노신사를 만나왔으며, 할아버지는 이것을 묵인해 왔었다. 할머니가 돌아기신 뒤 얼마 후 노신사는 할아버지를 찾아와 영정사진을 찍어줄 것을 부탁하고 할아버지는 손수 노신사의 영정사진을 찍어주게 된다. 그런 그들의 껄끄러운 관계는 할머니의 죽음 앞에 그리고 그들의 늙음앞에 세월앞에 모두 추억이 되고 만 것이다.

 
청춘의 기억은 오래된 영화의 스틸 사진과 비슷하다. .......... 하지만 기억은 스틸 사진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더러워진 만큼 교묘하게 각색되고 수정되며, 때로는 황당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P124-

 
그래 이 말은 일본 영화 <뷰티풀 라이프>를 보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일 거다. 영화 <뷰티풀 라이프>는 사후세계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위해 대기하는 통로쯤이라고 하면 될까? 그곳에서 사람들은 죽어서도 간직하고픈 인생의 한 컷을 영상으로 다시 담는 작업을 한다. 내 머리속에 들어있는 내 인생의 찬란했던 그 순간을 재연배우들을 통해 다시 영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가졌던 것은 실제 그사람들의 삶에 기록이 영상으로 보관되어 있음에도 왜?? 또다시 찍느냐는 것이었다. 바로 위에 글귀에서 이야기 했듯이 교묘하게 각색되고 수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그저 그런 일상이 나에겐 시간이 멈춘것 같은 벅찬 아름다움 이었을 테니까. <가스미초 이야기>의 가족들도 아마 각자의 추억을 교묘하게 각색하고 수정해 본인들이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은대로 간직해 놓지 않았을까? 모든 사라지는 것들이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가스미초 이야기>는 <철도원>으로 유명한 일본작가 아사다 지로의 작품이다. 소설을 쓸때 쉽고 아름답게 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아사다 지로의 글은 역시 쉽고 아름다웠다. 요즘 한창 번역서들이 잘 읽혀지지 않아 불만이었는데 우리나라 작가의 글이 아님에도 아사다지로의 글은 읽기 쉬웠고 쉽게 공감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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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비>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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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건 말도 안돼!. 이건 소설이니까 가능한 동화같은 이야기 이다. 라고 생각했던 모든 이야기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얼마전 읽은 공지영의 도가니가 그랬듯이, 리틀비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 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한동안 멍했고 무기력 했다. 힘들다 투정부리며 원망했던 내 지난 삶의 흔적들이 가볍게만 느껴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며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갖는다. 그러다 아주 가끔 연말 불우이웃 돕기 프로그램이나 주위의 노숙자나 장애인들을 바라보게 되면 그래도 나는 살만한거야 감사히 살아가자 라고 주기적으로 다짐을 한다. 나에게 또 그런 주기가 온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주기는 조금 더 오래 갈 것 같다. 활자의 힘이란 그런거 같다.  
 
아프리카 석유 전쟁으로 영국으로 건너온 나이지리아 난민 소녀 리틀 비, 암흑같은 수용소 생활을 끝낸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불법체류자 라는 도망자 타이틀 뿐이었다. 그렇게 도망자가 된 그녀는 우연한 계기에 알게 된 영국인 앤드류 새라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들에게 전화를 건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전화를 받은 앤드류는 몇일 후 목을 매 자살을 하고 만다.

몇 해전 나이지리아로 휴가를 떠났던 앤드류와 새라는 산책길에 유전 이권 다툼에 의한 살인을 목격하고 사냥개와 추격자들로 부터 도망치던 리틀비와 그녀의 언니를 만나게 된다. 어린 소녀들을 도와주고 싶었던 앤드류와 새라는 추격자들께 간청하지만 추격자들은 어린 소녀들을 살리는 댓가로 엄청난 것을 요구한다. 

나이지리아에서의 여행을 잊을 무렵 리틀비가 새라 앞에 나타난다. 앤드류의 장례식이 있던 그날, 남편의 이유를 알수 없는 자살로 혼란스럽기만 한 그녀에게 말이다.  

2001년 영국으로 건너와 4년 동안 난민 보호소를 요청하다 예고 없이 이민국으로 송환되어 결국 계단에서 목을 매 자살하고 만 앙골라인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작가는 대학 시절 자신이 살던 동네에 있는 줄도 몰랐던 난민 수용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 지옥에서 도망쳤지만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 불합리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추방되어 사형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던 경험과 충격을 전하며,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써야만 했다고 이야기한다.-예스24 책 소개 -

 몇해 전 인가 tv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 태국등의 탈북자수용소를 접한 기억이 있다. 한민족의 아픔은 둘째치고 인간으로서의 인격이 존재 하지 않는 그곳의 풍경은 정말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 이 보잘 것 없는 한국, 그것도 반으로 쪼개진 남한에서 태어난 것이 뼈 속 깊이 싫을 때가 있었는데... 같은 민족인 북한의 탈북자들의 모습은 나의 원망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책 속의 리틀 비의 상황도 이들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위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곳, 환경은 둘째치고 인권이 짓밟히는 그곳. 더욱더 답답한 것은 그들은 살인자도 도둑도 사기전과범도 아니라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결국 남겨진 수순은 사형 일 것이다. 

리틀 비 또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고국으로의 이송을 피하기 위해 새라에게 숨겨줄 것을 간청한다. 법과 이념, 사랑 양심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그것을 선택 할 용기는 남아 있는 것일까? 

새라에게는 어린 아들 찰리가 있다. 찰리는 언제나 악당을 처치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배트맨이 되기를 꿈꾸며 배트맨 옷을 즐겨 입고 마치 현실세계가 고담시인냥 살아간다. 그런 찰리에게 다정한 리틀 비는 어느덧 같은편이 되었다.  그녀를 지켜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녀는 이제 한 가족이다. 언제나 정답은 그 자리 그곳에서 그렇게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세월은 정답을 바꿔 놓는다. 정의가 정답이 아닌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정답이 되고 마는 것이다. 

"타협? 성숙해진다는 것 참 슬프지 않아? 다들 찰리처럼 시작해. 악당을 모두 죽이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로 출발하는 거야. 그러다가 조금 더 나이를 먹게 되면, 아마 리틀 비 나이쯤 될까, 세상의 악의 일부가 자신안에 있다는 것, 자신이 악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 그리고 좀 더 나이를 먹게 되면 좀 더 편안해지고 자신 안에서 발견한 악이 정말 그렇게 악한 건지 자문하기 시작해."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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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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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주위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나는 꽤나 정의로운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중학교 때 반 아이들에게 돌린 롤링페이퍼에 “정의감에 불타는 친구” 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 했을까?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짱가 처럼, 짠 하고 나타나 오지랖을 자랑한다. 바람난 친구의 남자친구를 찾아가 녀석의 멱살을 잡는가 하면, 고등학교 시절 학교재단의 비리를 선생님께 따져 물어 선생님들의 눈밖에 난적도 있다. 나의 이런 오지랖은 비단 현실세계에서만 존재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책, 심지어 음악의 가사까지도 나의 먹이감이 되어 옳고 그름의 심판을 받곤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정의감은 지나친 감정이입에서 시작된 것 같다. 현실 혹은 가상의 상황 속에 버려진 주인공은 어느새 내가 되고, 어김없이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이러한 지나친 감정이입은 주인공의 시련과 슬픔을 나의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결국 나는 아파하고, 분노한 후, 행동하는 3단계의 절차를 밟는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를 반복한다. 공지영의 <도가니>를 읽으며, 나는 또 그 상황 속에 나를 가두어 놓는다. 그리고는 주인공 강인호가 되었다 유리가 되었다 서유진이 되었다를 반복하며 대답하기를 기다린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 인지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강인호 입니다. -P29-

지난해 닥친 불경기의 여파로 실직자가 된지 6개월째인 강인호는 아내 동창 일가가 이사장으로 있는 무진시의 자애학원 기간제 교사로 임시발령을 받게 된다. 자애학원은 청각장애, 지적장애 등에 장애를 이중 삼중으로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다니는 장애학교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장애학교처럼 인자한 원장수녀님의 모습이나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자애학원. 나는 이미 강인호가 되어 자애학원의 생기 없는 풍경에 그와 함께 불편해 하고 있었다. 그래 자애학원의 풍경은 낯설기 보다는 이상했다. 신입교사의 등장에 환영 보다는 경계태세를 갖추는 그들, 청각장애우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수화를 구사할 수 있는 선생이 존재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 강인호 자신도 포함되어 있는 부끄럽고 이상한 풍경, 강인호의 눈에 비췬 자애학원의 첫인상은 난생 처음 와본 무진의 지독한 안개만큼이나 모든 것이 흐릿하고 모호했다.

출근 첫날, 서울 조카 애의 친구라 작은 거 다섯 장으로 하겠다던 행정실장 이강복에 말에 강인호는 본인의 발령에 뒷돈이 거래되어야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지만, 서울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를 생각한다. 그리고는 여기서 돌이킬 수 없음을, 이미 돌아가기엔 늦었음을 깨달으며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모욕을 받아 들인다.

얼마 전 임용고시를 앞둔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나 아는 친구가 사립고등학교 소개시켜 준데, 강원도라서 멀긴 하지만 거기 갈까?”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바보야 너 돈 있어?” 가시 같은 질문에 동생은 당황해 하며 대답했다. “돈은 무슨 돈? 친구가 소개시켜 준다니까?” 동생의 대답에 강인호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동생과 강인호를 한데 묶어 생각했다. 순진한 사람들……

나는 강북에 위치한 사립고등학교 C학교 출신이다. 앞에서 얘기 했듯이 학교에 비리를 들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던 나는 그때 이미 사립학교에 존재하는 잡다한 비리들을 알고 있었다. C학교의 교장선생님은 <도가니>의 이강석, 이강복 형제와 같이 부모님께서 닦아 놓은 학교재단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운영하는 교장이었다. 국립중학교를 나온 나에게 교장 선생님 이라는 자리는 평교사로 시작해 교감에서 교장으로 한 단계씩 상승하는 진정한 교육자의 것이었었다. 하지만 내가 들어간 사립고등학교는 달랐다. 학부모회에서 선생님들께 돈을 걷어 드리자며 집에 전화가 걸려 왔었고, 조금 늦게 등교하시던 50대가 넘으신 국어선생님께 교장선생님은 발길질까지 하셨었다. 심지어 시험도중 제 시간에 듣기평가를 틀어주지 않아 전교생에 원성을 샀던 영어선생님은 이를 묵인해 줄 것을 조건으로, 한 학년의 에어컨을 바꿔줬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듣기평가 사건 이후 그 학년의 에어컨이 전부 교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때부터 나는 선생님에 대한 경애심 보다 측은지심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때의 충격들 때문이었을까? 나는 강인호가 받았을 충격보다는 조금 덜 놀랬던 거 같다. 강인호에게 심한 욕설을 내 뱉었던 행정실장의 언행도…… 서로 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외면해왔던 교사들의 행동들도 적어도 강인호 그 보다는 덜 충격적이었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현실이니까, 나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라면? 나라면? 나라면 이걸 어떻게 해야하지? 의 질문이 짧은 순간 몇 십 번도 넘게 마구 쏟아져 나왔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부터 이다.

“며칠 전에 그 애가 학교에서 성추행을 당했대. 교장한테 말이야. 학교 화장실로 끌려들어가서…… 거의 성폭행 직전까지 간 모양인데…… 내 생각에는…… 실패한 모양이야. 애가 너무 어려서. ” –P 69~70-

교장 이강석과 행정실장 이강복 그리고 생활지도교사 박보현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수년간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일을 벌여왔다. 성폭행을 당한 아이들이 그 순간을 회상하며, 힘겨운 고백을 해 나갈 때 나의 심장 소리는 내 몸 밖으로 나와 울리는 듯 커졌고, 목은 마치 가시가 걸린 듯 삼켜지지가 않았다. "이건 소설이니까. 그래 어디까지나 소설이니까" 라고 자신을 달랬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작가의 말'을 읽으며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모든 내용은 몇 해전 광주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영화든 책이든 어떠한 이야기든 “이 이야기는 실화야” 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것에 대한 감정은 몇 배 아니 수십 배로 증가 한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더러운 기득권 자들의 행태와 말 못하고 가진 것 없는 자들에 대한 안쓰러움에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강인호가 되었다 유리가 되었다 서유진이 되었다를 반복하며, 나라면? 이라고 자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강인호와 서유진 이었다면 그들을 고소할 거야. 아이들을 구하고 이 세상에 그들의 추악함을 퍼트리겠어. 그리고 내가 유리와 민수라면 진실을 말할 거야. 다시는 그런 일 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킬 거야. 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강인호와 서유진 그리고 아이들은 그들을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이내 진실이 모습을 드러 낼 것 만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나와 그들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기득권자 그들 무리와의 싸움은 얇아 보였지만 높았다.

이강석, 이강복 형제는 무진에 위치한 영광제일교회에 장로이자 절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또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장애우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인자한 중년의 남성들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엄청난 재산의 소유자로서 무진의 실세이기도 하다. 이는 이강석, 이강복을 바라보는 사회와 무진의 시선이며, 그들을 포장하고 있는 포장지이다. 때문에 이들의 추악함을 고발하기 위해 찾아간 장학사와 교육청 공무원 그리고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 김순경 까지도 강인호 측의 진실고발을 외면하려 할 뿐이었다. 얽히고 설킨 권력의 상호관계 속에서 진실은 그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그들의 고발이 쉽지 않자, 강인호와 서유진은 미디어를 통해 이 사실을 무진 밖으로 꺼낸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래 바로 이거 야를 외치며 이제 너희들 다 죽었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력이, 돈이 무서운지는 알았지만 이정도 일줄은 정말 몰랐다. 진실은 왜 진실 대접을 받지 못 받는 걸까? 그들의 죄가 세상 밖으로 나오며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작가 공지영의 말을 빌리자면 진실은 게으르다. 진실은 진실이라는 이유로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지 않는다. 밝히려 노력하지 않아도 진실은 진실 이니까. 나도 여태껏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언제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늘은 알 거야 라며 나만 아니면 된다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생각들은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만 진실이다. 너만 알고 혹은 너와 나만 아는 진실은 결코 진실이 되지 못한다. 이제보니 진실 위에는 수많은 우선순위가 존재했다. 권력, 권모술수, 돈, 인맥 이 모든 것이 진실 보다 위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다 쳐 내야만 진실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강인호 서유진 그리고 아이들에게 진실 보다 위에 있는 수 많은 그것들을 밀쳐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들을 끝내 밀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지쳐있는 그들만큼이나 나 또한 자신이 없어진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지루한 법정싸움을 지켜보며 나는 마치 언젠가 보았던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머리 속에 떠도는 무언가 때문에 책을 읽는데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뭘까? 내가 이런 일을 겪었는데 내 기억 속에 없을 리는 없자나? 어디서 봤나? 도대체 뭐지? 라는 생각에 머리가 터지려던 무렵 ‘아 그래 장준혁’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나름 괜찮은 시청률과 배우 김명민의 명연기에 시청자들의 호평을 한 몸에 받았었던 드라마. 내 머릿속에 맴돌던 그 데자뷰는 드라마 <하얀거탑> 이었다.

그래 드라마 <하얀거탑> 속에도 있었다. 이 법정싸움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립. 필사적으로 묻으려 하는 자, 지켜보는 자, 그리고 밝히려는 자. 하지만 이곳의 법정싸움은 도가니의 그것과는 다른 것들이 존재 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위치였다. 예로부터 우리들의 이야기 속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물구도가 있다. 바로 착한 주인공과 나쁜 악당, 그리고 착한 편의 무리들과, 나쁜 편의 무리들 이다. 도가니 속에 강인호는 착한 사람으로, <하얀거탑> 속 장준혁은 나쁜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위치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이 둘은 모두 주인공 이라는 것이다.

<하얀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병원인 명인대학병원 외과과장 이다.환자의 돌봄 보다 신분상승을 중요시한 장준혁은 진료를 등한시 한다. 그의 성의 없는 진찰은 결국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환자의 가족들은 장준혁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을 낸다. 그때부터 강자와 약자의 싸움은 시작된다.

<도가니> 속에 법정싸움에서 무진의 수 많은 사람들이 이강석과 이강복의 권력 앞에 진실을 외면한 채 입을 다물어야 했던 것처럼, <하얀거탑> 속 그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장준혁을 외과과장으로 모시고 있는 외과의사들은 장준혁의 회유에 그의 잘못을 묵인한다. 그리고 장준혁의 실수를 알고 있는 결정적 증인인 의사 염동일은 장준혁에게 탄탄한 미래를 보장받고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하는 법정에서 진실을 은패 하고 만다. 염동일의 결정적 진술 은패로 인해 기득권 세력인 장준혁은 무죄판결을 선고 받고 고인이 된 환자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나약함을 원망하며 좌절한다. 그런데 이때 또 다른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있는 유간호사가 등장한다. 환자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된 간호사는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며 환자 가족들의 편이 되어 진실을 진술 할 것을 약속한다. 이를 알게 된 장준혁은 유간호사를 불러 그간 함께 일해온 정에 호소하고, 유간호사는 진실을 떠나 동료애와 유대감을 무시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환자 가족들에게 진술을 할 수 없음을 통보한다. 그런데 얼마 후 유간호사의 마음을 흔들 사건이 생긴다. 유간호사의 진술 포기를 알지 못했던 장준혁의 변호사가 유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 낸 것이다. 그간에 정에 장준혁의 죄를 묵인하려 했던 유간호사는 이에 격분해 환자가족들의 입장이 되어 증인이 되어줄 것을 결심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결국 유간호사의 진술 그리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괴로워했던 염동일선생의 진술 번복으로 장준혁은 유죄판결을 선고 받고 만다.

어떠한 상황도 나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지나친 감정이입은 언제나 나의 정의감을 부추겼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깨닫는다. 나의 정의는 정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도가니를 읽으며 이강석, 이강복 형제들의 더러운 행태에 주먹을 불끈 쥐며 가만 잊지 않으리라를 외쳤던…… 돈에 매수돼 고소를 취하하려던 유리 할머니를 보며, ‘할머니 정말 이러시면 안되 자나요, 진실은 밝혀야 하는 거 자나요.’ 를 마음 속 깊이 외쳤던 나는 정말 우습게도, <하얀거탑>에 장준혁에 실수가 들키지 않기를 바랬다. 모든 것이 마무리 됐다고 생각했을 무렵 장준혁측 변호사의 실수로 유간호사의 마음이 바껴버린 그때.. 나는 심지어 안타까워했다. ‘이제 다 끝났는데 저 변호사 일을 망쳤어.’ 라면서 말이다. 하얀거탑에 장준혁은 분명 나쁜 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준혁을 응원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가 <하얀거탑> 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이기 때문 이었다. 나는 99%의 주인공이 착한 사람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며 그저 주인공이 이기기만을 바랬던 시청자에 불과했다. 나의 정의감은 착각이었고 위선이었다.

<도가니>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고로 사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권력과 재산을 등지고 진실을 덮으려는 그들을 보며 하나같이 거지발싸개 같은 놈들이라며 욕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소설이 실화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이 소설의 주인공이 강인호와 서유진 그리고 나약한 아이들이 아닌, 이강석, 이강복 형제들이었다면 우리의 마음은 과연 누구를 응원 했을까?

나는 나를 꽤나 정의감 넘치는 사람 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이제는 버리려 한다. 그리고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지론도, 이제 모두 버리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모든 이들은 진실을 밝혀야 된다고 말 할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정의감에 다소 상기돼 소설 속 악당들을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강석, 이강복의 가족이라면? 기득권의 힘을 빌어 생계를 유지하여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때도 진실을 운운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가 자신만은 진실하다고 정직하다고 믿고 살 것이다. 혹은 내 가족만은 정직하다고 믿고 살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가만히 있어도 밝혀질 나는 진실이니까를 믿는 진실의 게으름처럼 착각의 도가니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실을 밝히고 이강석, 이강복과 같은 사회의 악을 벌할 수 있으리라는 강인호의 착각의 도가니처럼 말이다. 나는 이 소설이 너무 좋다. 강인호의 마지막 선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의 게으름을 버리기 위해 묵묵히 자신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불편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낸 공지영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당신도 착각의 도가니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또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진실이 아닌 현실을 즉시하고 눈을 뜰 것인지, 눈을 감을 것인지, 등을 돌려 버릴 것인지를.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나는 정의롭다’는 착각 속에 언제나 내가 나서야 한다 생각했던 조급했던 나의 마음은 현실에 벽을 인정하자 되려 고요의 상태가 되었다. 나라도 어쩔 수 없었음에 나라도 강인호와 다를께 없었음을.. 이제 알기에…… 그렇다고 내가 염세주의가 되었다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나는 그저 게으른 진실을 독려하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던 착각을 한 커플 벗으려 한다.

안개도 오래 겪다 보면 앞이 보입니다. 이 세상은 늘 투명하고 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안개는 장벽이겠지만, 원래 세상이 안개 꼈다고 생각하면 다른 날들이 횡재인 거죠. 그리고 가만히 보면 안개 안 낀 날이 더 많잖아요? - P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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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
에트가 케렛 지음, 이만식 옮김 / 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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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모음집은  흥미롭다. 한숨에 읽어내려야 그 맛을 느낄수 있는 장편에 비해 쉬엄쉬엄 한 테마씩 읽어도 무방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어 장편과는 또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는 총 22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책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22편의 이야기는 모두 현실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을만한 혹은 일어났으면 좋을만한 상상력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의 이야기는 모두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엉뚱한 상상력  속에 기쁨, 슬픔, 분노, 그리움, 사랑 등 바로 우리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감정선을 충실히 담아 표현해 내며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절대로 늦게 오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버스 운전사가 있다. 아무리 다급한 눈빛과 제스쳐를 보내도 그의 이러한 결심을 바꿔놓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버스운전사 참 인정머리 없다 생각하겠지만 그의 신념 또한 일리가 있는 것이 그가 뒤늦게 온 승객을 위해 또 다시 문을 연다면 이미 탑승하고 있는 모든이들의 시간을 뺏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그의 신념을 바꾸고 늦게 도착한 승객에게 호의를 배풀게 되는데.. 이유는 과연 무엇이 었을까? 

현재 이스라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는 에트가 케렛은 글 이외에도 40편이 넘는 단편 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의 단편들을 영화한 한다면  전혀 색다른 느낌의 몽환적 풍경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기발한 상상력을 접하며, 일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의 여행은 이색적이었으나 사실 그의 단편들은 상상력 그대로의 화두만 던질뿐 뚜렷한 이야기 결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의  상상력을 온전히 받쳐주지 못한 심심한 결말은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야 할 이야기의 한쪽 날개가 꺽여 버린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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