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의 ‘아이히만’들 - 실미도 사건 50주기에 부쳐
안김정애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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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실미도의 ‘아이히만’들』은 이른바 '실미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2000년대 초 정부가 설치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위원으로 참여했던 저자 안김정애가 당시 사건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침묵과 부인으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데 따른 기록을 남기고자 쓴 보고서 성격의 책이다.

실미도 사건에 '아이히만' 이름이 왜 들어갔을까. 실미도 사건의 명백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에 성실한 증언은커녕 "윗사람이 시켜서 한 일", "기억에 없다', "나는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등 모두 허위 거짓 증언으로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의 거짓 증언과 침묵이 역사에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인지 밝히는 것도 진상 규명 못지 않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다시는 실미도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경각심과 경계심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의 발간 의의이다.






책 제목에 들어가 있는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독일군 장교다. 종전 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숨어 살다가 붙잡혀 종전 15년만에 예루살렘 재판정에 새워졌다. 이때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실미도 사건의 책임자들처럼 침묵, 부인, 윗사람 탓으로 미루었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을 학살한 죄뿐만 아니라 '역사의 죄인'이 된 점을 이 책에서 제목에 끌어쓴 것으로 보인다. 실미도 사건 진상에 앞서 간략하게 아이히만의 죄를 살펴보는 것은 실미도 사건의 방관, 침묵,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역사의 죄인으로 비유함으로써 그들의 잘못을 꾸짖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50대 중반의 평범한 남자가 법정에 섰다.

“도대체 무엇을 인정하란 말입니까?”

잡혀 올 당시 그가 하던 일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자동차 공장에서 기계를 고치는 일이었다. 몸에 지니고 있던 신분증에 적혀 있던 이름은 리카르도 클레멘트였다. 그러나 그의 원래 국적은 독일이고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 군인 출신이다. 그는 법정에서 항변했다.

“저는 지시받은 업무를 잘 처리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제가 제작한 ‘열차’ 덕분에 우리 조직은 시간 낭비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었죠.”




그가 고안해 낸 것은 가스실이 설치된 열차다. 수많은 유태인이 열차에 설치된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제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권한이 아니었으니까요.저는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하나의 인간이자 관리자였을 뿐입니다.”

수백만 명의 죽음을 방관하며 가스실이 달린 열차를 개발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란 판사의 질문에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결코 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그의 답변이었다. 재판을 지켜본 6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는 나보다 더 정상이며 준법 정신이 투철한 국민이었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8개월간 계속된 지루한 재판······ 하나 둘 자리를 떠나는 방청객들 속에서 끝까지 재판을 지켜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나 아렌트는 강조한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그리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우리나라에서 실미도 사건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제기된 이유는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다. 지난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의 서울 영화관엔 영화 〈실미도〉가 개봉됐다. 이 영화는 1968년 창설된 ‘실미도 684부대’에 관한 영화이며, 영화 속 훈련병들의 출신 성분이나 상황 설정이 과거 혹은 현재의 북파공작부대나 북파공작원과는 무관함을 자막을 통해 알린다.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진상 규명엔 한계가 따라 상상력을 동원해 영화를 제작했음을 밝힌 것이다.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인간대접 받을 수 없었던 강인찬(설경구 분) 역시 어두운 과거와 함께 뒷골목을 전전하다가 살인미수로 수감된다. 그런 그 앞에 한 군인이 접근, '나라를 위해 칼을 잡을 수 있겠냐'는 엉뚱한 제안을 던지곤 그저 살인미수일 뿐인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는데... 누군가에게 이끌려 사형장으로 향하던 인찬, 그러나 그가 도착한 곳은 인천 외딴 부둣가, 그곳엔 인찬 말고도 상필(정재영 분), 찬석(강성진 분), 원희(임원희 분), 근재(강신일 분) 등 시꺼먼 사내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그렇게 1968년 대한민국 서부 외딴 섬 '실미도'에 기관원에 의해 강제차출된 31명이 모인다. 영문 모르고 머리를 깎고 군인이 된 31명의 훈련병들, 그들에게 나타난 의문의 군인은 바로 김재현 준위(안성기 분),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는 한 마디를 시작으로 냉철한 조중사(허준호 분)의 인솔하에 31명 훈련병에 대한 혹독한 지옥훈련이 시작된다. '684 주석궁폭파부대'라 불리는 계급도 소속도 없는 훈련병과 그들의 감시와 훈련을 맡은 기간병들...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구호하에 실미도엔 인간은 없고 '김일성 모가지 따기'라는 분명한 목적만이 존재해간다. 조국의 부름에 목숨을 걸고 응답한 청년 기간병들과 분단 조국이 내몰았던 사지의 땅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울부짖으며 죽어간 서른 한 명 훈련병들의 영혼 앞에 이 영화를 바친다며 막은 내린다.



영화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가 꾸려져 활동에 들어갔다. 이 책은 당시 신문 기사 및 언론 보도, 부대 창설 및 운영 관계자들, 부대원들의 유가족 등 모든 증언과 증인을 확보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 끝에 밝혀낸 사건의 실체이다. ‘1971년 8월 23일 서울 영등포로터리’에서 저지되었던 실미도 부대원들의 ‘중앙청으로 가는 길’과 그 이후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나 언론 보도, 그리고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00년대 초의 진상규명 과정에서 일관되게, 전형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진상에 대한 축소, 조작, 은폐, 왜곡이었다. 이 사건은 원인을 규명하려면 ‘북한군 특수부대에 의한 1·21사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民族保衛省)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이 일어난다. 청와대를 기습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북한군 침략 행위이다.

이에 따라 남한의 보복 차원에서 평양 주석궁에 파견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준비된 특수부대를 창설한다. 이른바 '684부대'다. 1968년 4월 창설된 부대여서 북한 특수부대 식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이들은 청와대 기습을 위해 파견된 무장침투조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돼 인천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인 실미도에서 훈련에 들어간다. 이로 인해 '실미도 부대'란 명칭으로도 불리웠다.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지시에 의해 공군이 책임을 맡아, 공군 내에 대북 보복으로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한 특수임무부대가 684부대이다. 1968년 말 베트남 전쟁 종결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며 등장한 닉슨이 3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닉슨이 미ㆍ중, 미ㆍ소 화해정책을 채택하면서 냉전체제의 최전선에 놓여 있던 동북아 정세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1969년 미국이 제시한 '괌 독트린'은 대중 화해 정책을 통해 미국이 동맹국인 대한민국에 대한 안보 책임을 줄여 가겠다는 닉슨 정부의 정책이었으며, 구체적으로 주한미군 철수가 가시화되기에 이르렀다. 박정희 정권은 닉슨 정권에 의해 대북 화해를 강요받았고, 이 과정에서 실미도 부대의 창설 목적과 임무는 폐기되었다. 중정과 공군의 무책임한 방기가 진행되면서 예산 전횡과 부대 관리 소홀이 이어졌고, 공작원들은 허기와 무력감을 느끼며 불만을 쌓아 가고 있었다.





훈련을 시작한 지 3개월 후 국제 정세는 변화해 실미도 부대의 존재를 비밀로 붙인 당국의 →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용도 폐기되고 잊힌 부대가 된 실미도 부대 → 부당한 처우 → 중앙청으로 가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자 봉기 → 군경의 저지에 막혀 대치 중 폭사 →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생존자들을 비밀 재판 후 처형, 일부 사망자들은 암매장 → 50주년이 될 때까지 축소, 조작, 은폐, 왜곡이 이 사건의 기본 골격이다.

남북한 간의 대치 상황만으로는 이 사태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저자는 한국 정부 뒤의 미국 정부, 베트남 전쟁, 그리고 박정희 독재 정부의 광기 어린 대응, 무엇보다 국가가 그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근본적인 사태가 이 사건에 내포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이 국가폭력에 의해 어떻게 뒤틀리는지를 극명히 풀어냄으로써 현재의 역사에서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각심과 경계심을 일깨우기 위해 집필했다고 진상 규명 활동에 참여했던 저자는 강조한다.






'실미도 사건'이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당시 28명이 사망하고 4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는 등 수많은 민ㆍ경ㆍ군이 사망한 이 사건의 진상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채 반세기의 세월만 흘렀다. 이 책 『실미도의 ‘아이히만’들』은 2000년대 초 '실미도 사건 진상규명'에 참여했던 저자 안김정애가 조사 과정에서 면담했던 당시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실미도 부대 창설 과정, 즉 창설의 배경과 부대원 모집 과정을 재구성했다. 특히 진상규명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무책임한 태도와 목소리를 그대로 전함으로써 이 사건의 축소, 조작, 은폐, 왜곡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실미도 부대원들의 최후 폭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4명의 심문 기록, 그리고 그들이 사형장에서 남긴 최후 유언도 그대로 담아냈다.

저자 : 안김정애

월남민과 이산가족이라는 가족사를 배경으로 한반도 분단사를 공부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은 여전히 한반도 평화,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 침해, 여성인권과 군사주의의 폐해, 외세의 분단 규정력 등의 주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다할 미디어),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사』(도서출판 중심), 『세계화와 여성안보』(한울아카데미), 『한국여성평화운동사』(한울아카데미), 『女性·戰爭·人權』(京都, 行路社), 『끝나지 않은 국가의 책임: 산청·함양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선인) 등의 공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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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기도가 될 때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수녀 지음 / 파람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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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그림 너머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수도원에서 온 그림 편지. 저자는 그림을 통해 순간과 영원, 세속을 넘어선 신비의 세계로의 초대에 응하고 절망에서 희망을, 죽음에서 삶을 길어내는 치유의 힘을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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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기도가 될 때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수녀 지음 / 파람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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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림을 감상할 때 그림에서 얻은 영감이 많아 그림 보기를 즐기는 편이다.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직접 그리기는 서툴러서 보기만 주로 한다. 가끔은 그림 공부를 해볼까 생각도 하지만 취미로 배우기에는 경제적인 면에서 어려움이 예상돼 아예 그림 그리기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자주는 못 가지만 가끔씩 전시회에 직접 가서 보는 일도 적잖다. 작년부터는 코로나로 인해 전시도 많지 않았고, 직접 관람하는 일도 뜸해졌다. 대신 미술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서 서양미술사와 화가들의 삶과 작품 감상을 위한 조언들이 많이 배웠다. 그림 감상을 읽으면서 오히려 눈의 호사도 누렸다.

인쇄된 책을 통해 그림을 감상할 땐 '영감'이 많지는 않았지만 몰랐던 에피소드를 알게 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고, 미적 감상 포인트를 배울 땐 풍요로운 느낌을 받아 그만큼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되었다. 그림 감상을 취미로 삼은 데 대해 큰 만족감을 느낀 때가 최근 1년 반 정도의 기간이었다. 독자가 영감을 얻을 때 이 책 『그림이 기도가 될 때』의 저자 장요세파 수녀는 빛이나 생명의 신비로움을 발견하나 보다. 저자는 「머리글」을 통해 그림을 통해 얻는 점을 명확히 썼다.

 


 

“그림 앞에 서면 눈이 환해집니다. 침침했던 눈에서 무엇인가 걷히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그림은 제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고, 제 몸이 무거워 들어가지 못했던 신비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은 가만히 있는 저를 잡아당겨 세웁니다. 우선 화가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고, 더 들어가면 화가 자신마저 넘어 저 먼 어떤 것, 인간의 눈에 희미한 어떤 것 혹은 실재가 우리 앞에 턱 놓이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설픈 종교체험보다 훨씬 강렬하게 인간을 초월적 실재 앞에 놓아줍니다. 더욱이 형식적인 예배, 틀에 박힌 기복적 기도로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할 세계를 열어줍니다."

 


 

저자인 요세파 수녀는 봉쇄수도원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수행과 노동의 삶을 살아간다. 요세파 수녀가 수행하는 시토회는 인간 존재 안의 사막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은거하며 공동생활을 하는 성 베네딕도 규칙을 적용한 수도회로, 엄격한 규칙을 지키며 수행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일과 무관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라고 밝힌다.

봉쇄수도원을 정주생활을 원칙으로 하지만 수정만 STX 조선소 건립 반대를 위해 봉쇄를 풀고 수정리 주민들과 항의 데모에 나서기도 했다. 사회정의와 영성은 분리될 수 없는데, 수도회가 봉쇄를 풀고 거리에 나선 것은 모든 것을 다 잃은 할머니 안에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세파 수녀는 시인이기도 하다. 늘 하느님을 생각하고, 세상과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여정을 매일 시로 써 내려간다. 요세파 수녀의 그림 묵상은 독자를 전혀 다른 차원에 놓인 그림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림 속에 깊게 스며든 작가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일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의 오류를 다잡아 준다. 독자는 아름다움이란 눈으로 보아 '예쁘다'거나 '고운' 것이지만 저자의 눈은 '신비로움'에 다가가는 것, '진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중요한 점을 배운 느낌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요세파 수녀에게 어떤 그림은 눈을 밝게 해주고 침침했던 눈에서 무엇인가 걷어내며 신비의 세계로 초대해준다.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글과 형상이 이미지로 압축되는 어느 지점, 그 공동의 땅에 도달한다. 그러나 저자는 경계한다. 지나치게 아름다움만 강조되는 그림에서는 그러한 신비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쁘고 곱고 고상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계속 찾다 보면 구부러지고 못나고 일그러진 것은 자꾸 배제하게 되며, 장애인, 사회 저변의 불우한 이들, 난민을 배제하면서 외면하게 된다는 것. 요세파 수녀에게 자신을 잡아당겨 세우는 그림은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이라는 저자의 인식이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이 책에는 어떤 그림을 통해 이런 체험을 하는지, 어떤 때 이런 그림을 감사하게 되는지 이 책에 저자의 심경과 그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세심하게 언급돼 있다.

 


 

저자는 실례로 고흐의 〈낡은 구두 한 켤레〉를 언급한다. 힘겨운 노동을 감내하며 고달프게 살았을 한 사람을 떠올리며, 누가 구두의 주인일지 생각하게 한다는 것. 요세파 수녀는 구두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인간이 신고 신어 낡아진 구두,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고 헌신한 후 생명마저 내어놓고, 그 몸을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신 하느님의 모습을, 또 인간에게 신겨 그것도 처절한 삶을 산 이의 발에 신겨 함께 처절한 시간을 보내고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구두에서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런 파격적 해석은 고흐가 누구보다 종교적인 인물이었음을 고려할 때, 꽤 설득력을 얻는다. 삶을 사랑하고, 참된 것을 추구하며, 사람과 친교를 갈망했으며, 단순한 외적 아름다움이 아닌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진짜 생명을 찾아내고 묘사할 줄 알았던 고흐이기 때문이다. 고흐의 그림에서 하느님과 예수의 모습을 찾아내는 저자의 해석은 독자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준다. 그림 감상에 대한 영감과 그림을 대하는 태도 등에 대해 독자는 마음을 가다듬는 기회를 갖는다.

 


 

아들 예수를 잃은 마리아의 그림에서는 애끓는 어머니의 고통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평온함의 승화를 엿보게 해준다. 그런 승화는 비단 자신만의 고통뿐만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고통을 끌어안고 보듬어주는 강력한 치유의 힘으로 작용한다. 요세파 수녀가 수많은 그림에서 끊임없이 찾아내고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깊은 절망에서 희망을 길어내고 죽음 안에서 삶을 길어내고자 하는 갈망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종교의 핵심이기도 할 텐데, 굳이 종교를 뛰어넘어서도 인간사의 온갖 고통과 한계를 염두에 두었을 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해주는 힘으로 작용한다. 종교적 서사가 함축된 그림 묵상은 사실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깊게 맞닿아 있다.

독자가 중학교 다닐 때 미술 교과서에도 실리고, 이발관 액자에 걸려 있던 그림도 여기에 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밀레의 〈만종〉이다. 그림 속 부부는 곡식이 담긴 바구니 앞에서 기도한다. 하지만 원래 그림에는 바구니 안에 그들의 ‘죽은 아기’가 있었다고 하니, 놀라운 사실이다. 아기의 싸늘한 시신 앞에 선 그들의 자세에는 한없는 고요함이 깃들어 있으나, 고통의 울부짖음으로 무너지고 일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깊은 고통 속에서 기도하는 이 부부 뒤로 해는 이미 넘어가고 붉게 물든 노을로 삶의 잔인함과 처연함이 더 짙게 배어 나오는 풍경이다. 이 풍경 속에서 요세파 수녀는 고통마저 녹이는 불, 깊어가는 저녁, 깊어가는 겨울에도 꺼지지 않는 내면의 불을 발견한다. 고통은 이들에게 이 불을 끄는 찬물이 아니라 불을 더 타오르게 하는 기름이 되고 만다. 종교와 미술이 하나 되는 느낌이다.

 


 

요세파 수녀의 그림 이야기는 깊고 묵직하며 우리 안의 잠들었던 감각세포를 깨워준다. 단순한 작품 감상이나 고상한 평을 넘어 맑고 평온한 그림의 세계에 빨려들어가게 해준다. 그렇게 하나의 그림을 통해 삶을 더욱더 깊게 들여다보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와 살아가는 힘을 얻게 해주는 치유의 힘을 선사해준다.

 

저자 : 장요세파

 

일본 홋카이도의 트라피스트 여자수도원에 입회. 현 창원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봉쇄수녀원에서 수도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시집 『바람 따라 눕고 바람 따라 일어서며』와 그림 에세이 『수녀님, 서툰 그림읽기』, 『수녀님, 화백의 안경을 빌려 쓰다』가 있다. 트라피스트 봉쇄수녀원은 11세기 프랑스에서 창설된 ‘시토회(ORDO CISTERCIENSIUM STRICTIORIS OBSERVANTIAE)’ 소속으로, 새벽 3시 30분 기상해 밤 8시 불이 꺼질 때까지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수도를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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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는 나에게 달려 있다 - 익숙한 내 삶의 패턴을 바꾸는 마음 성장 수업
황시투안 지음, 정은지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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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도서는 물론 자기계발 책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말은 생각-행동-습관-인생의 공식이다. '공식'이란 표현은 독자의 개인적 표현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패턴'이란 표현을 해도 같은 뜻이다. 즉 생각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반복돼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뜻이다. 심리학에서 가장 먼저 다뤘을 이 패턴이 지금은 삶의 변화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하고, 생각이 삶을 변화시킨다는 패턴으로 '공식'처럼 이용되고 있다는 의미로 독자는 공식이란 표현을 쓴다.

중요한 핵심 단어만 추출해 본다면 생각-행동-습관-인생이 공식처럼 일정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만일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서 지금 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불평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을 바꿔 실천해 볼 것을 주문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과 불공평한 운명에 대해 불평할 때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쩌다가 지금 이 길을 걷게 되었나? 내 안의 어떤 패턴 때문에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가?” 이 책은 이같은 질문에 해답을 줄 것이고 독자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 '나답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이 책 『모든 관계는 나에게 달려 있다』는 '패턴'이란 표현을 썼지만 독자가 제시한 '공식'과 동의어로 보면 될 것이다. 이 책 소개글에서 패턴에 대해 설명해준다. 책 소개글에서 우리는 왜 반복해서 곤경에 빠지고 마는 걸까?라는 질문을 한다. 이 글에 따르면 그건 바로 우리 인생의 패턴과 관련이 있다. 인생 패턴이란 소위 말하는 ‘성격’ 또는 ‘습관’으로 그 배경에는 한 사람의 신념이 깔려 있다. 신념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은 결과로 이어진다. 당신이 오늘 마주하는 어려움은 과거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이며, 당신이 가진 신념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인간 내면의 고통, 혼란, 실망 그리고 피로 등은 모두 신념과 관련이 있다. 저자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념을 ‘인생 소프트웨어’라고 부른다. 만약 이 소프트웨어가 바뀌지 않는다면 삶은 계속해서 과거의 패턴을 그대로 반복하고 만다고 단언한다. 즉 잘못된 생각(신념)을 바꾸고 행동을 거듭하면 습관이 바뀌고 결과적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는 뜻이다.



저자는 ‘인생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심리 수업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삶의 난제와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발생한 일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10만 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자신들이 겪는 어려움 이면의 패턴을 발견하고 나서 새로운 삶을 찾았고 그로 인해 답답한 삶이 개선되었다. 삶의 패턴이란 우리 삶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 사람의 고유한 행동이나 생각, 정서적 반응 등을 포괄하여 이르는 말이다. 거기에는 감정 패턴, 사고 패턴, 관계 패턴 등이 있다.

이 책에는 문제에 반복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의 패턴을 들여다보고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보여 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간 상담한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 각 사례의 심도 있는 분석과 검토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있는 패턴이 어떠한지 탐구하고 알아볼 수 있게 돕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생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과정으로 안내한다.





책에 따르면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매번 후회하면서도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불리한 결과를 받아들이곤 한다. 이를테면, 알코올 중독 아버지 밑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란 여성이 비슷한 성격의 남편을 선택하거나 항상 위압적인 연인을 만나오던 복종적인 남성이 또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여성을 애인으로 삼는 경우 등이다.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조언을 해주고 본인도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해보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대체 이런 일은 왜 생기는 것일까?

20년 넘게 심리학 강의에 전념하면서 10만 명 이상의 수강생을 거느린 저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가 매번 고난을 겪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 패턴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패턴을 보고 깨달아야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난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일어나는 자신의 '감정 패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2장에서 어린 시절부터 외부 환경과 부모와의 상호작용으로 몸에 밴 '사고 패턴'을 다룬다. 3장에서는 부모와 자녀, 직장, 연인, 친구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는지 '관계 패턴'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하나의 대응 패턴이 자리 잡으면 그 사람은 어디서나 같은 패턴으로 문제 상황에 대응하기 때문에 비슷한 어려움이 계속 반복된다. 우리가 내 안의 패턴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책에서 저자는 한 가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미국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클린턴과 힐러리가 어딘가로 향하다가 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게 됐다. 그런데 그들은 주유를 도와준 주유소 직원이 힐러리의 대학 시절 전 남자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자 클린턴은 의기양양하게 힐러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이 남자에게 시집을 갔으면 주유소 직원 아내로 살 뻔했네.” 그러자 힐러리는 다음과 같이 날카롭고 지혜롭게 받아쳤다. “내가 그와 결혼했다면 미국 대통령은 그가 됐을걸.”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 알다시피 힐러리는 그녀 자신이 미 국무부 장관을 거친 후 비록 낙선하긴 했지만 미국 대통령 후보로 경쟁했다.




저자 : 황시투안

베테랑 심리학 멘토. 20여 년간 심리학 교육을 응용하는 데 전념해 심리학 이론을 기업 관리, 결혼, 가정, 자녀교육 등에 성공적으로 접목했다. 중국의 유명 심리학 플랫폼인 ‘이신리(壹心理)’를 창립하고 투자하여 재미있고 따뜻한 실용적인 방식으로 사회와 조직, 그리고 개개인에게 가치 있는 심리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즈후이창싱, 우한심 등의 심리학 단체를 만드는 데도 투자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안하무인 때문에』, 『권층돌파』 등이 있다.

역자 : 정은지

중학생 시절 중국 현지 학교에 다니며 중국어를 공부했다. 명지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공부하며 번역 일을 시작했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며 사회와 문화 이슈에 관심이 많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행복 시크릿』, 『하버드 인생 지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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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분의 1은 비밀로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금성준 지음 / &(앤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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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영치창고에서 발견된 9억 원을 둘러싸고 그들은 전전긍긍하지만 결국 비밀은 하찮은 것이 되어버리고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은 넥서스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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