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기도가 될 때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수녀 지음 / 파람북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독자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림을 감상할 때 그림에서 얻은 영감이 많아 그림 보기를 즐기는 편이다.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직접 그리기는 서툴러서 보기만 주로 한다. 가끔은 그림 공부를 해볼까 생각도 하지만 취미로 배우기에는 경제적인 면에서 어려움이 예상돼 아예 그림 그리기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자주는 못 가지만 가끔씩 전시회에 직접 가서 보는 일도 적잖다. 작년부터는 코로나로 인해 전시도 많지 않았고, 직접 관람하는 일도 뜸해졌다. 대신 미술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서 서양미술사와 화가들의 삶과 작품 감상을 위한 조언들이 많이 배웠다. 그림 감상을 읽으면서 오히려 눈의 호사도 누렸다.

인쇄된 책을 통해 그림을 감상할 땐 '영감'이 많지는 않았지만 몰랐던 에피소드를 알게 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고, 미적 감상 포인트를 배울 땐 풍요로운 느낌을 받아 그만큼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되었다. 그림 감상을 취미로 삼은 데 대해 큰 만족감을 느낀 때가 최근 1년 반 정도의 기간이었다. 독자가 영감을 얻을 때 이 책 『그림이 기도가 될 때』의 저자 장요세파 수녀는 빛이나 생명의 신비로움을 발견하나 보다. 저자는 「머리글」을 통해 그림을 통해 얻는 점을 명확히 썼다.

 


 

“그림 앞에 서면 눈이 환해집니다. 침침했던 눈에서 무엇인가 걷히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그림은 제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고, 제 몸이 무거워 들어가지 못했던 신비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은 가만히 있는 저를 잡아당겨 세웁니다. 우선 화가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고, 더 들어가면 화가 자신마저 넘어 저 먼 어떤 것, 인간의 눈에 희미한 어떤 것 혹은 실재가 우리 앞에 턱 놓이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설픈 종교체험보다 훨씬 강렬하게 인간을 초월적 실재 앞에 놓아줍니다. 더욱이 형식적인 예배, 틀에 박힌 기복적 기도로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할 세계를 열어줍니다."

 


 

저자인 요세파 수녀는 봉쇄수도원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수행과 노동의 삶을 살아간다. 요세파 수녀가 수행하는 시토회는 인간 존재 안의 사막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은거하며 공동생활을 하는 성 베네딕도 규칙을 적용한 수도회로, 엄격한 규칙을 지키며 수행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일과 무관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라고 밝힌다.

봉쇄수도원을 정주생활을 원칙으로 하지만 수정만 STX 조선소 건립 반대를 위해 봉쇄를 풀고 수정리 주민들과 항의 데모에 나서기도 했다. 사회정의와 영성은 분리될 수 없는데, 수도회가 봉쇄를 풀고 거리에 나선 것은 모든 것을 다 잃은 할머니 안에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세파 수녀는 시인이기도 하다. 늘 하느님을 생각하고, 세상과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여정을 매일 시로 써 내려간다. 요세파 수녀의 그림 묵상은 독자를 전혀 다른 차원에 놓인 그림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림 속에 깊게 스며든 작가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일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의 오류를 다잡아 준다. 독자는 아름다움이란 눈으로 보아 '예쁘다'거나 '고운' 것이지만 저자의 눈은 '신비로움'에 다가가는 것, '진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중요한 점을 배운 느낌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요세파 수녀에게 어떤 그림은 눈을 밝게 해주고 침침했던 눈에서 무엇인가 걷어내며 신비의 세계로 초대해준다.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글과 형상이 이미지로 압축되는 어느 지점, 그 공동의 땅에 도달한다. 그러나 저자는 경계한다. 지나치게 아름다움만 강조되는 그림에서는 그러한 신비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쁘고 곱고 고상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계속 찾다 보면 구부러지고 못나고 일그러진 것은 자꾸 배제하게 되며, 장애인, 사회 저변의 불우한 이들, 난민을 배제하면서 외면하게 된다는 것. 요세파 수녀에게 자신을 잡아당겨 세우는 그림은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이라는 저자의 인식이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이 책에는 어떤 그림을 통해 이런 체험을 하는지, 어떤 때 이런 그림을 감사하게 되는지 이 책에 저자의 심경과 그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세심하게 언급돼 있다.

 


 

저자는 실례로 고흐의 〈낡은 구두 한 켤레〉를 언급한다. 힘겨운 노동을 감내하며 고달프게 살았을 한 사람을 떠올리며, 누가 구두의 주인일지 생각하게 한다는 것. 요세파 수녀는 구두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인간이 신고 신어 낡아진 구두,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고 헌신한 후 생명마저 내어놓고, 그 몸을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신 하느님의 모습을, 또 인간에게 신겨 그것도 처절한 삶을 산 이의 발에 신겨 함께 처절한 시간을 보내고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구두에서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런 파격적 해석은 고흐가 누구보다 종교적인 인물이었음을 고려할 때, 꽤 설득력을 얻는다. 삶을 사랑하고, 참된 것을 추구하며, 사람과 친교를 갈망했으며, 단순한 외적 아름다움이 아닌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진짜 생명을 찾아내고 묘사할 줄 알았던 고흐이기 때문이다. 고흐의 그림에서 하느님과 예수의 모습을 찾아내는 저자의 해석은 독자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준다. 그림 감상에 대한 영감과 그림을 대하는 태도 등에 대해 독자는 마음을 가다듬는 기회를 갖는다.

 


 

아들 예수를 잃은 마리아의 그림에서는 애끓는 어머니의 고통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평온함의 승화를 엿보게 해준다. 그런 승화는 비단 자신만의 고통뿐만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고통을 끌어안고 보듬어주는 강력한 치유의 힘으로 작용한다. 요세파 수녀가 수많은 그림에서 끊임없이 찾아내고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깊은 절망에서 희망을 길어내고 죽음 안에서 삶을 길어내고자 하는 갈망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종교의 핵심이기도 할 텐데, 굳이 종교를 뛰어넘어서도 인간사의 온갖 고통과 한계를 염두에 두었을 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해주는 힘으로 작용한다. 종교적 서사가 함축된 그림 묵상은 사실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깊게 맞닿아 있다.

독자가 중학교 다닐 때 미술 교과서에도 실리고, 이발관 액자에 걸려 있던 그림도 여기에 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밀레의 〈만종〉이다. 그림 속 부부는 곡식이 담긴 바구니 앞에서 기도한다. 하지만 원래 그림에는 바구니 안에 그들의 ‘죽은 아기’가 있었다고 하니, 놀라운 사실이다. 아기의 싸늘한 시신 앞에 선 그들의 자세에는 한없는 고요함이 깃들어 있으나, 고통의 울부짖음으로 무너지고 일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깊은 고통 속에서 기도하는 이 부부 뒤로 해는 이미 넘어가고 붉게 물든 노을로 삶의 잔인함과 처연함이 더 짙게 배어 나오는 풍경이다. 이 풍경 속에서 요세파 수녀는 고통마저 녹이는 불, 깊어가는 저녁, 깊어가는 겨울에도 꺼지지 않는 내면의 불을 발견한다. 고통은 이들에게 이 불을 끄는 찬물이 아니라 불을 더 타오르게 하는 기름이 되고 만다. 종교와 미술이 하나 되는 느낌이다.

 


 

요세파 수녀의 그림 이야기는 깊고 묵직하며 우리 안의 잠들었던 감각세포를 깨워준다. 단순한 작품 감상이나 고상한 평을 넘어 맑고 평온한 그림의 세계에 빨려들어가게 해준다. 그렇게 하나의 그림을 통해 삶을 더욱더 깊게 들여다보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와 살아가는 힘을 얻게 해주는 치유의 힘을 선사해준다.

 

저자 : 장요세파

 

일본 홋카이도의 트라피스트 여자수도원에 입회. 현 창원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봉쇄수녀원에서 수도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시집 『바람 따라 눕고 바람 따라 일어서며』와 그림 에세이 『수녀님, 서툰 그림읽기』, 『수녀님, 화백의 안경을 빌려 쓰다』가 있다. 트라피스트 봉쇄수녀원은 11세기 프랑스에서 창설된 ‘시토회(ORDO CISTERCIENSIUM STRICTIORIS OBSERVANTIAE)’ 소속으로, 새벽 3시 30분 기상해 밤 8시 불이 꺼질 때까지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수도를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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