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계절 1 - 어느 교수의 전쟁 잊혀진 계절 1
김도형 지음 / 에이에스(도서출판)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직 검사로부터 “인생 망가지기 싫으면 조심해라”라는 협박성 말을 듣게 된다면 누구든 위축되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인데, 저자는 자신을 협박하던 신흥종교단체 소속의 현직 검사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 결국 그 검사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면직되게 만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잊혀진 계절 2 - 어느 교수의 전쟁 잊혀진 계절 2
김도형 지음 / 에이에스(도서출판)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에서도 사건을 눈여겨보게 되고 김도형은 중국 국가안전국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정명석을 쫓다가 해방국 가극원에서 JMS의 대규모 공연이 있을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정명석이 참석할 확률이 높다는 판단 하에 만반의 준비를 한다. 하지만 당일 정명석은 참석하지 않는다. 다만 정명석의 도피 생활을 물심양면 돕고 있던 문도청이 참석했었고 이후 문도청이 체포되고, 얼마 후 2007년 5월 정명석도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된다. 중국은 죄와 벌이 우리나라보다 엄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을 알고 있던 저자는 내심 정명석이 중국에서 재판을 받기를 바랐지만 2008년 한국으로 송환된다. 그렇게 재판이 진행되고 1심 6년,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으면서 마침내 정명석은 감옥에 수감된다. 사이비 교주 정명석은 2018년 출소했다.

 

잠시 뜸을 들인 재판장.

“그래서 … 결론적으로 … 1심 판결 선고 중, 피해자 ‘장 양’에 대한 공소사실에 대하여는 1심과 같이 공소기각을 유지하기로 하고, 나머지 부분은 파기해서 … 피고인에

대하여 … 징역 10년을 선고하기로 하고 ….”

‘징역 10년’이라는 말이 법정에 울려 퍼지는 순간, 법정에 있던 수백 명의 JMS 광신도들이 뱉어내는 장탄식과 한숨이 법정을 가득 메웠다.(p.233)

 


 

사실 독자도 책 속의 피의자 '정명석'에 대해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 언론에도 뉴스뿐만 아니라 기획탐사보도 프로그램에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단체의 사이비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JMS(Jesus Morning Star)를 독자의 기억으로는 이름의 이니셜로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저스 모닝 스타'의 약자였던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공중파 방송의 TV 'PD 수첩'과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JMS 사건을 본 기억이 있다. 이 방송들 또한 책을 읽어보니 김도형의 노력이 뒷받침된 것도 알 수 있었다.

당시 수많은 신도들이 방송국 앞과 교회 광장에서 연좌 농성을 했다는 방송을 본 기억이 있다. 종교는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사이비 종교는 경계해야 한다. 이 책에 따르면 JMS라는 종교 집단은 사이비 종교집단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신도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해도 수많은 피해자가 있는 '타락한' 교주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분명 이 책에서도 저자 자신도 한때는 JMS에 가입해 석 달 정도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때문에 신도들에게 비난을 하는 게 아니라, 정명석이라는 교주가 세운 사이비 종교 집단의 악랄한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다. 신도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만일 잘못된 게 있다면 그들이 선택한 종교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신을 섬기는 종교에 있어서 그 믿음은 정말이지 너무나 견고하고 튼튼하다. 결속력도 강하다. 이를 악용하는 악랄한 교주가 문제다.

 


 

독자는 종교가 없다.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 등 위대한 종교에 들어갈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믿음이 부족해서 어느 한 곳에 귀의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예수나 석가의 가르침을 비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들의 가르침을 설교해주는 목회자나 경전들을 보아도 범접하기 어려운 고귀한 말들이 적혀 있다. 문제는 성인들을 팔아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교회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종교를 갖든 그것은 온전히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선택이다. 어떤 계기로 그 위대한 종교를 선택하는 데에는 비난의 여지가 없다. 그것을 빌미로 탐욕을 채우는, 그것도 개인의 탐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의도는 책 곳곳에 잘 나타나 있고 그런 문장을 읽을 때마다 저자의 입장에 공감이 간다. 제 식구 감싸기의 검찰, 오직 돈에 눈이 먼 변호사, 그리고 정의보다 돈을 택한 피해자.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시스템의 부조리가 너무 크게 작동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예수가 저지르지 말라는 인간의 죄악 7가지가 만연한 것 같아 씁쓸하다. 또 사이비 교주뿐만 아니라 그들을 상대로 일당 백으로 싸운 김도형을 다시 한 번 생각케 한다. 저자 김도형도 인간이기 때문에 수많은 좌절과 포기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전쟁을 불사했던 이유는 뭘까에 대해 잠시 고민도 해본다. 정명석 체포나 검사 면직, 국정원 직원 해임, 테러범들 검거 등은 한 의로운 사람이 오랜 시간 무수한 협잡질과 테러와 소송을 당하면서도 굽히지 않고 끝까지 맞섰던 저자에게 박수와 감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김도형의 염려와는 달리 중국의 국가안전국,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정보기관의 외곽조직으로부터 김도형에게 연락이 왔다. 일본 언론에 불을 지폈던 김도형의 작전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 드디어 온 것이다. 김도형은 김형진과 함께 이번에는 중국 북경으로 향했다.(p.121)

 

재판 후, 항소심 담당 공판 검사는 김도형과 김형진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명석보다 그 변호인들이 더 미워! 어떻게 인간들이 그럴 수 있나? 해도 해도 너무하더구먼.” 경력이 25년이 넘는 현직 고등검찰청의 부장 검사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정명석의 변호인들은 거액의 성공 보수에 목숨을 걸었는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재판 내내 어린 피해자들을 악랄하고 모질게 괴롭혔다(p.212)

 

저자 : 김도형

 

경기과학고등학교 2년을 조기 수료하고 KAIST 로 진학, 물리학을 전공하던 중 수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잊혀진 계절 1 - 어느 교수의 전쟁 잊혀진 계절 1
김도형 지음 / 에이에스(도서출판)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잊혀진 계절』은 현직 대학교수가 자신이 젊은 시절 직접 경험한 사실들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이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가벼운 읽을거리라기보다 거대한 신흥 사이비 종교집단과 그 교주를 상대로 한 싸움을 내용으로 한다. 저자 김도형은 대학생이던 시절, 신흥 종교단체를 접하게 된 1995년부터 그 교주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2009년까지의 14년 세월 동안의 사연을 자서전 형식으로 적었다. 책의 가장 앞 부분에 등장 인물 중 저자 김도형과 김형진, 교주 정명석 그리고 일부 언론인을 제외한 모든 이름은 가명 처리했음을 밝힌다. 내밀한 프라이버시까지 숨김 없이 드러내는 사안이기 때문이리라. 14년의 시간차가 말해주듯이 그 사연을 일일이 논하자면 장편소설 시리즈로도 부족할 듯하다. 그래서 저자는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사실 위주로 기술하고자 '나'라는 1인칭 주어 대신 '김도형'이라는 3자적 시점에서 기술했다.

 

"황주연이 강제로 질질 끌려서 봉고차에 실려 떠나는 것을 모두 목격한 친구 이수정이 경찰에 곧바로 신고한 것이고 112 상황실은 차적 조회를 통해 납치범들의 주소지가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 월명동인 것을 확인하고, 충남경찰청에 범인 검거의 지령을 내린 것이다. 마침내, 봉고차 문이 열리고, 황주연은 경찰에 구조되었다. ‘아, 나 살았구나. 나 정말 살았구나.’ 긴장감이 풀리자 황주연은 정신을 잃었다. 무참히 폭행을 당하며 납치되어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던 황주연은, 이렇게 친구 이수정의 신고로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이 사건은 다음 날 새벽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구중궁궐 JMS의 비밀인 정명석의 성 행각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p.83)

 


 

14년이 넘는 세월의 싸움동안 저자가 겪었던 사연은 소설책에서나 볼 듯한 사연들로 가득하다. 특히 사이비 신흥종교단체의 광신도들이 저자의 아버지를 상대로 잔혹하고 처참한 테러를 가했던 사실, 저자의 아버지가 테러로 대학병원에 입원하자 바로 그 종교단체의 신도가 저자의 아버지를 진료했던 사실, 그리고 교주가 숱한 여성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러 한국은 물론, 대만, 홍콩의 언론과 일본의 언론 및 호주의 언론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었던 부분에서 독자들은 전율이 일 만큼의 악랄한 범죄에 경악하게 된다. 저자가 한국, 대만, 그리고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과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교주를 추적하는 장면에서는 무슨 추리소설 같은 사이비 교주와 종교집단의 활동 무대의 넓음에 놀라게 되고, 한국 인천공항에서부터 홍콩 첵랍콕 공항까지 미행작전을 펼쳐서 교주를 체포하는 장면, 그리고 중국 북경의 극장에서 교주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을 벌이는 모습에서는 첩보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증인은 300명이 넘는 여성을 정명석에게 성상납했고, 그 피해자 중 상당수를 증인이 다시 성추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돈을 뜯어내고, 강간하기까지 했지요?”

“…….”

“증인은 피해자들에게 고등학생, 유부남, 택시기사 등 닥치는 대로 남자들과 관계를 갖고, 어떤 체위로 했는지 증인에게 보고하라고 괴롭혔죠?”

“…….”

“말을 듣지 않는 여성들에게는 ‘니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냐?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보여 주겠다’고 협박하며 강제로 여관으로 끌고 가서 강간한 일이 있죠?”

“…….”

“그러고도 그들을 이용해 JMS에서 받은 돈 2억 1천만 원을 혼자 착복했죠?”(p.142)

 


 

현직 검사로부터 “인생 망가지기 싫으면 조심해라”라는 협박성 말을 듣게 된다면 누구든 위축되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인데, 저자는 자신을 협박하던 신흥종교단체 소속의 현직 검사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 결국 그 검사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면직되게 만들었으니, 저자가 거대 신흥종교단체와 싸우며 겪게 되는 스토리는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그 어떤 소설에서도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저자는 다수의 수사기록, 판결문과 사진, 그리고 한국, 대만, 일본, 홍콩, 호주의 언론을 모두 인용하여 보여주고 있다.

한편,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하면서 “종교단체가 이 책의 출간에 대하여 사소한 소송 한 개라도 제기하는 순간, 전면전을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공언하는 만큼, 종교단체가 이 책의 출간을 빌미로 출판사나 저자를 상대로 과연 소송을 제기할지 그리고 소송이 제기되었을 때 그 결과가 어찌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 에세이는 사건 수사 기록, 주인공인 김도형의 사이비 신흥 종교단체에 대한 폭로 및 피해자 입장에서 법적 대응, 도주하는 범죄자를 찾아내는 수사관 같은 행적 등 한편의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르포 문학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또 범죄 행위의 악랄성을 폭로하기 위한 세세한 부분을 대하는 심리 묘사 등으로 사건 팩트를 기반으로 문학적 표현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이비 신흥 종교의 폐해, 교주의 위법 행위 및 범죄의 악랄함까지 모두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일부 선정적 묘사로 비쳐질 수 있는 사실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는 탁월한 문학적 기법을 갖추고 있다.

사건 수사 기록으로도 '범죄 구성'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매우 설득력 있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추리소설을 뛰어넘는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저자가 직접 뛰어다니며 얻은 자료와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정의로운 태도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육하원칙과 범죄 구성 요건, 동기, 과정, 결과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며 피의자 신문 조서로서의 성격도 잘 갖추고 있다. 사실이 오히려 더 극적이라는 점, 피해자가 다수라는 사건의 중대함 등 우리 사회의 일부 부조리한 시스템마저 고발하고 있어 문학의 사회적 기능도 함께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펄프픽션
조예은 외 지음 / 고블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원괴담, 뱀파이어, 조직폭력배, 동양 오컬트, 살인 청소로봇 등 장르문학을 이끌어나가는 다섯 작가의 시선으로 해석된 키치와 마이너의 세상 풍자가 돋보이는 한국단편소설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펄프픽션
조예은 외 지음 / 고블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펄프픽션』은 21세기 대한민국식 펄프픽션을 정립해보고자 기획된 앤솔로지다. 엔솔로지란 편집자가 기존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을 모아 다시 수록한 문학 작품집으로, 선집(選集)이라고도 한다. 한 작가의 작품 가운데서 선별해 엮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여러 작가가 하나의 주제로 쓴 글을 엮은 앤솔로지 문학 작품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앤솔로지 문학은 신인 작가와 신생 출판사의 진입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시사상식사전)

이 책은 우리시대 젊은 문학을 이끌어가는 작가 조예은, 한국 블랙코미디의 최전선에서 각종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류연웅, 명실공히 SF계의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 홍지운, 다양한 장르를 변주하며 정르문학을 선도하는 이경희, 청소년 소설과 동화에서 SF의 족적을 남긴 최영희의 작품들을 한데 엮어 출간했다. 펄프픽션이나 'B급 영화' '독립영화' '실험정신' 등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각 작품의 뒷 부분에 각 작품의 「작가 후기」를 실어 작품에 대한 이해와 작가의 말을 게재한 것은 독자를 위한 배려로 보인다. 작가를 꿈꾸거나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어둘 만한 내용이 적잖게 들어 있다.

 


 

펄프픽션(Pulp Fiction)이란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싸구려 잡지인 펄프매거진(Pulp Magazine)에 실리는 소설을 뜻했던 용어로, ‘싸구려 소설’ 혹은 ‘삼류소설’을 의미한다. 한편으론 소설의 질적 수준을 뜻하기도 했으나, 시대가 지나며 주류문학의 협소한 기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양태의 소설(특히 장르소설)을 조롱하는데 오용되기도 했다. ‘B급 영화’가 이제는 삼류 영화나 싸구려 영화 아니라 ‘주류 소제가 아닌’ 영화의 의미이자 하나의 장르작 형태로 확장되었듯, ‘펄프픽션’ 또한 재발굴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별도의 의미를 갖는다.

출판사에 따르면 『펄프픽션』은 21세기 대한민국식 펄프픽션을 정립해보고자 기획된을 통해 독자들은 현시대 장르문학을 선도하는 다섯 작가들이 만들어낸 21세기식 ‘펄프픽션’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펴냈다. 이 책은 이에 따라 햄버거와 얽힌 학원괴담, 한국에서 노동을 하는 뱀파이어, 느닷없는 외계인 출현, 조직폭력배, 알고보니 오컬트적인 기이한 능력을 쓰는 지하철 노인들, 살인청소로봇 등, 흔히 B급 영화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소재가 각 작가들의 손에서 한국적 상황과 걸맞게 자유자재로 쓰이고 있다. 실험적 시도라는 데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앤솔로지의 첫 번째 테마가 ‘펄프픽션’이라면, 두 번째 테마는 바로 ‘마이너’이다. 펄프픽션이 그간 협소한 기준 아래 장르문학을 저속한 것으로 격하시키는데 오용되어온 역사를 생각했을 때, 주류문학의 기준에서 마이너 취급을 받아온 장르와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이 말하는 ‘저속한’ 장르 속에서 새로운 의미, 그들이 발견해내지 못한 의미를 발굴해 드러내 보이는 작업이 바로 이 펄프픽션 앤솔로지의 목적이기도 하다. 동시에 ‘마이너’는 우리시대에서 충분히 대변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뜻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이 앤솔로지에서 키치한 요소들은 우리시대의 마이너들이 오로지 마이너들로 남을 수 없게 되는 상황, 사회가 그들을 약자의 위치로 몰아내는 상황을 풍자한 기획이기도 하다. 재수학원에서 꿈을 이뤄보려 하지만 오히려 무기력해지기만 하는 청소년들, 무급에 가까운 노동으로 이용만 당하는 뱀파이어, 조직폭력배에게 팔려온 조선족 여성, 사회의 언저리에서 갈등하는 노인들, 성공한 사업가 아래서 탄생한 청소로봇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청소노동자… 2020년대 한국,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마이너가 펄프픽션적 요소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살펴는 것은 독자들로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다섯 작가의 다섯 작품이 등장한다. 류연웅의 「떡볶이 세계화 본부」은 한국에서 가장 맵고 맛있는 떡볶이를 만드는 우리의 주인공 김신전. 그는 영국에서 내한한 배우들에게 무심코 떡볶이를 먹였다가 너무 매워서 배우들이 즉사하고 만다. 우연한 사고였지만 대중의 질타로 떡볶이 장사를 접고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데. 그에게 찾아온 국정원 요원. 영국에서 김신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말인즉슨 영국에서 활개 치는 뱀파이어들에게 피로 만든 떡볶이인 척, 겁나 매운 떡볶이를 먹여 죽여 달라는 것이었다. 또 홍지운의 「정직한 살인마」는 어두운 새벽. 외딴 저수지를 찾아가는 나. 자동차 트렁크에는 조직폭력배의 시체가 들어 있다. 내가 시체를 저수지에 버리고 가려는 순간, 굉음과 함께 거대한 쇳덩어리가 등장해서 말한다. “선생님께서 떨어뜨린 시체는 이 금으로 된 시체입니까, 아니면 이 은으로 된 시체입니까?” 쇳덩어리는 자신이 행성 크루통에서 온 외계인이며,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을 시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한다. 나는 과연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대답하여 금 시체와 은 시체를 포상 받을 수 있을까?

 

소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6월 모의고사 성적이 참담했던 한 학생이 단군 신화의 곰처럼 백 일 동안 햄버거를 먹고 S대에 입학했다는 것. 그 주인공이 플래카드의 제일 꼭대기에 붙은 실존인물이라는 것. 그런 소문이 공공연하게 교육열 높은 학부모들 사이에 퍼져 고액으로 햄버거 공구가 들어가기도 하고, 햄버거 때문에 굳이 다른 유명 프랜차이즈 학원을 두고 이 허름한 곳에 들여보낸다는 것이다. 낡아빠진 학원이 오십 년 전통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다름 아닌 햄버거 때문이었다니. 세상이 참 이상하고 웃기게 돌아가는구나 싶었다.(p.24)

 


 

또 이경희의 「서울 도시철도의 수호자들」은 고객과의 싸움으로 사고를 밥 먹듯이 치는 한나. 팀장은 특급 민원인 이명헌을 종일 응대해주면 이제까지 일은 없던 셈 치고 특별 수당까지 준다고 한다. 한나가 보기에 이명헌은 어느 꼰대 할아버지들과 다를 바가 없어보이는데… 마침 지하철이 멈추는 사고가 일어나고, 이명헌은 ‘태극’의 기운이 시청 앞 광장에 모이고 있는 게 원인이라고 한다. 즉 광장의 태극기 시위는 한양에 잠든 용을 깨우기 위해 누군가 태극의 균형을 흐트러트리고 있다는 건데…! 할아버지의 지나친 상상이라고 생각하는 한나. 하지만 한양에 잠은 무언가의 정체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여태 노인들이 어떤 싸움을 벌여왔는지, 그 힘겨운 과정이 드러난다.

조예은의 「햄버거를 먹지 마세요」에서는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재수생 기숙학원에 갇히게 될 듯한 루루. 그리고 대학에 갈 성적이 충분하지만, 어머니의 새 연인 김 사장 때문에 등록금이 탕진된 제이. 이 둘은 연인이다. 햄버거 집에 모여 서로 망했다고 한탄하던 무렵 루루가 기발한 방법을 고안한다. 루루가 재수하원에 들어가고 제이는 그 기숙학원의 근로장학생으로 아르바이트 하면서 돈을 모으는 것이다. 기숙학원은 도심과 동떨어진 외지에 있었는데… 뭔가 으스스하고 경직된 분위기가 오싹한 학원. 원생들은 맛 없는 급식을 피해 매점에서 파는 햄버거를 먹으러 달려간다. 심지어 입시생들을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특효약이라고까지 소문난 이 햄버거는 이 학원에서만 유통되고 있다. 루루와 제이는 햄버거와 기숙학원에 얽힌 오싹한 진실에 접근하게 된다.

 


 

최영희의 「시민 R」에서 청소로봇 알옛은 스타워즈의 알투디투와 똑 닮은 최신기종의 귀여운 인공지능 청소기다. 문제는 이 청소 로봇이 폐기처분을 한 대상이 인간 주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 시대의 인플루언서이자 해당 청소 로봇을 개발한 기업의 오너 강희원이 피해자라는 것. 인간을 죽인 청소 로봇에 대한 세기의 재판이 열리는 가운데, 청소 로봇의 회상과 겹친다. 여태껏 로봇이 주인을 살해하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 가운데, 전혀 새로운 주제와 이야기로 소설은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청소로봇이 주인을 살해하고 시민임을 자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언론사들이 인공지능의 위험성과 살인사건에 초점을 두는 반면 데일리K의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청소로봇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R은 그 점이 맘에 들었다. 청소로봇 대신 시민 R로 불리길 바라지만 R은 자신이 청소부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사실 자부심도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청소부 R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온 터였다.(p.227~228)

 


 

저자 : 조예은

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서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우수상을, 제4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시프트』로 대상을 수상했으며 최근작으로는 안전가옥의 첫 번째 장편소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이 있다. 좋은 이야기에 대해 고민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중이다.

 

저자 : 류연웅

근본 있는 Z세대. 인문계도 실업계도 싫어서 낭만적 도피처로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뒤로 꿈이 생겼다. 소설을 써서 대학도 가고, 돈도 벌었다. 자전소설 『내가 나이에 따라 변할 사람 같냐』를 독립출판물 형태로 만들고, 안전가옥과 함께 오디오북 『류연웅 단편선』도 출시했다. 현재 한국 문학판에서 ‘블랙코미디’ 장르를 개척해 내겠다는 꿈과 함께, 정말이지 열심히 쓰고 있다.

 

저자 : 홍지운

영화배우 김꽃비의 팬, SF 작가. 본명 홍석인. 오랫동안 필명 dcdc로 활동해왔다. 『무안만용 가르바니온』으로 제2회 SF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구미베어 살인사건』과 『월간주폭초인전』 등의 단편집을 여러 권 냈다. ‘덴마 어나더 에피소드 시리즈’ 『물리적 오류 발생 보고서』, 『별을 수확하는 자들』, 『무간도 가이아의 성소』를 쓰기도 했다.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 『이웃집 슈퍼히어로』, 『냉면』 등 다수의 앤솔로지에 작품을 실었다.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만화컨텐츠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 : 이경희

죽음과 외로움, 서열과 권력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필진.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가 황금가지 제4회 타임리프 공모전에 당선되어 데뷔하였고,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으로 황금가지 제6회 작가프로젝트 공모전, 「χ Cred/t」로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을 수상했다. SF와 판타지 양쪽에서 활동 중이며, 대표작으로는 『테세우스의 배』,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마음 여린 땅꾼과 산에 깔린 이무기 설화」, 논픽션 『SF,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등이 있다. 첫 번째 장편소설 『테세우스의 배』가 2020 SF 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에 선정되었다. 동양 판타지와 시간여행이 뒤섞인 단편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가 2019년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 당선되었고, 단편소설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은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2019 올해의 SF’에 선정되었다.

 

저자 : 최영희

2013년 [어린이와 문학]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꽃 달고 살아남기』로 2015 제8회 창비청소년문학상, 단편소설 「안녕, 베타」로 제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단편소설 「그날의 인간병기」로 2016 SF어워드 우수상 등을 수상했으며, 단편소설 「침출수」가 제7회 황금가지ZA문학상 우수작에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구달』, 『너만 모르는 엔딩』, 『알렙이 알렙에게』, 『인간만 골라골라 풀』, 『너만 모르는 엔딩』, 『검은 숲의 좀비 마을』 등이 있다. 청소년 테마 소설 『성장의 프리즘』에 「돌부리」를 수록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