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고 싶어서
이훈길 지음 / 꽃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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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실려 오는 봄 향기에 취하며, 기분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걷다보면 도시 곳곳에 어려 있던 추억과 기억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다가온다. 꾹꾹 눌러쓴 손편지 같은, 꿈마루 등 도시 속 길 따라 30곳의 추억 읽기에 푹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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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고 싶어서
이훈길 지음 / 꽃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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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인간의 본능과 습관을 통해 얼마만큼 건강과 삶에 에너지를 주는지 알게 해주는 잣대로 사용될 정도로 좋은 행동이다. 몸이 약한 사람들도 걷기를 통해 건강을 회복할 수 있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걷기는 큰 도움을 준다고 의사들은 말하고 있다. 걷기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지만 습관을 들이면 건강을 도움이 되는 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2년 이상 노출된 상태에서 걷기는 부족한 운동량을 보충해준다. 실내 운동은 감염될 우려가 더 크지만 걷기는 실외 운동으로서 감염 확률도 줄여주고 속도에 따라 운동 대체 효과도 겸할 수 있어 '1석2조'의 행위다.

걷기는 이외에도 기분 전환 등으로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의사들이 말하고 있어 마스크를 쓰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동네 공원이나 산책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걷기는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장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예술인이나 학자 등이 영감을 끌어내기에도 무척 좋은 것 같다. 많은 세계적 철학자나 예술가, 심지어 과학하는 학자들에게도 '걷기'는 습관이고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일상 행위로 알려지고 있다.

 


 

이 책 『혼자 걷고 싶어서』의 저자 이훈길은 건축과 공간에 관심이 많다. 그는 시간이 생기면 새로운 공간과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발견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세월을 읽고, 역사를 보고, 감정을 얻는다. 카메라와 떠나는 매일매일의 일정이 새롭고 경이롭다고 느끼는 이유다. 그렇게 ‘혼자 걷고’ 또 ‘걷는’ 삶의 방식을 통해 삶의 일부분을 채워나간다고 믿는 사람이다. 저자는 건축사이며, 도시 공학박사로 자신 스스로를 도시의 산책자이자 공간을 읽는 남자라고 말한다.

건축 전문가이자 작가, 사진가, 모든 수식어를 내려 놓고 매일 도시를 걸었던 이훈길, 그는 현실의 차갑고 답답하게 느껴지던 공간마저 특별함을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도 그와 같은 시선으로 학교를, 직장을, 집을 바라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상의 공간들이 주는 행복을 잊고 바삐 움직이는 것만이 목적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혼자 걷고 싶어서』를 읽고 고개를 드는 순간 바라본 세상은 평소와 다른 뒤틀림이 생긴다. 건축물과 그 안의 공간이 주고 있는 의미를 관심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30가지의 장소는 그런 저자만의 시선을 알아볼 수 있는 열쇠가 되어준다.

 


 

저자는 '꿈마루'에서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선유도 공원을 걸으며 바람결에 실려오는 향기를 맡고, 종로타워에서는 종로의 랜드마크인 종로타워가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상징성을 지녔는지 생각한다. 혼자 갔던 덕수궁에서는 삶의 작은 쉼표를 발견하고, 동묘에서는 낡고 오래된 것들이 제각각 빛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오래된 역사와 기억을 가진 공간을 넘어, 새로운 세대들에게 환영받는 새로운 건축물로의 발걸음도 멈추지 않는다. 사람 이훈길은 파이빌99를 통해 컨테이너 속에 숨겨진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서교 365,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을 통해 젊음과 풍경이 어우러진 현대의 조각을 엿보기도 한다.

그의 에세이를 단순한 ‘건축가의 글’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건축과 공간이라는 자신만의 안경을 통해 세상을 읽고, 또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 읽기’의 영원한 동반자는 자신의 두 다리이다. 이 책에는 혼자 ‘걷고 또 걸으며’, 공간이 주는 메시지와 쉬지 않고 손 잡으려는 그의 노력과 열정이 담겨 있다. 독자들도 그와 함께 공간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지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독자는 주저없이 이 책을 권한다. 그 이유가 『혼자 걷고 싶어서』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10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각 주제는 재생, 옛것, 소통, 활용, 상징, 조우, 유동, 존재, 지역, 노정 등이다. 서울 강북 지역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산책 코스로 자주 이용하는 곳이 덕수궁 쪽인데 덕수궁에 대한 유래가 이 책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덕수궁은 조선 시대를 통틀어 크게 두 차례 궁궐로 사용됐다. 임진왜란 때 피란을 갔다가 돌아온 선조가 머무를 곳이 없어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곳을 임시 거처(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정릉동 행궁에 새 이름을 붙여 경운궁이라 불렀다. 경운궁을 다시 궁궐로 사용한 것은 조선말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다. (중략)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준 뒤 경운궁은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뜻에서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독자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걷게 되면 헤어지게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지만 꺼리기도 하는 묘한 풍습이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이 있던 자리에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는 말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독자는 덕수궁 돌담길을 갈 일이 생길 땐 그 생각에 씁쓸한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각 테마별로 10개 장(章)에 3곳씩 모두 30곳이 소개된다. 가장 먼저 '재생'의 장에서는 '꿈마루'가 등장한다. 「꾹꾹 눌러쓴 손편지 같은, 꿈마루」란 소제목에

기억하고 싶은 공간과 기억되는 공간이 있다.

어떤 공간이라도 기억될 수는 있지만,

기억하고 싶은 공간은 그렇지 않다.

기억하고 싶은 공간을 만나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

코로 맡아지는 냄새, 입 안에 머무는 미감

그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촉감까지도 기억하게 된다.

내게는 어린이대공원 안에 있는 꿈마루가 그러하다.

 

저자는 이어 "꿈마루는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원래 어린이대공원은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 민씨의 능을 모신 공간이었다. 하지만 1927년 일본 강점기에 골프장으로 개발되었다. 이곳의 지형이 매우 넓은 평지였기 때문이다. 1968년에는 한국 현대 건축가인 나상진에 의해 서울 컨트리클럽 하우스가 설계되어 골프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되었다. 어린이대공원으로 조성된 것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때이다. 그 후 내부를 개조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 전시 공간인 교양관으로 사용하다가 2011년에 꿈마루라는 이름으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변천사를 간략하게 소개한다(p.10~11)

 


 

또 조우의 장에서 「작은 도시를 담아낸, 웰컴시티」란 소제목으로 장충단 공원에서 퇴계로로 넘어가는 언덕길을 안내한다.

도시의 산책자가 되어 건축물을 관찰해보면

보이지 않던 공간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다채로운 풍경을 담은 웰컴시티는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시간을 들여 오래 둘러보았다.

장충단공원에서 퇴계로로 넘어가는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내후성 강판으로 이뤄진 4개의 매스가 눈에 들어온다.

미로 같은 길의 구성 때문에 공간을 천천히 살펴보게 된다.

 

광고회사 (주)웰커뮤니케이션즈의 사옥인 ‘웰컴시티(Welcomm City)’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 지금은 디자인하우스 사옥으로 바뀌었다. ‘웰컴시티’라는 이름은 ‘Well + Communication City’의 조어다. ‘소통이 잘 되는 도시’라는 뜻으로 의뢰인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이름에서부터 ‘도시’를 표방한 이 건축물은 도시적 공간 조직을 품고 도시의 풍경과 활기를 담고 있다. 도로 방향에서 웰컴시티를 보면 노출 콘크리트의 기단과 그 위에 내후성 강판으로 된 네 개의 건물이 공존한다. 네 개의 건물 사이에 세 개의 빈 공간이 있는데, 건축가는 이를 ‘어반 보이드(Urban Void)’라 부른다. ‘어반 보이드’는 건물을 세우고 우연히 남은 공간이 아니다. 도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의도적으로 비워 도시와 소통시키고자 한 공간이다. 이 공간이 건물을 살아 있게 만든다. 미세하게 서로 다른 각도를 가진 세 개의 보이드는 각기 독립적이며 크기와 모양에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도시와 소통하기 위해 열려 있는 동시에 닫혀 있는 공간이다.(p.142~143)

 


 

서울살이를 오래 한 독자로서는 이 책에 소개된 30곳 중 20여 곳을 가봤지만 오래된 추억과 기억이 한데 뭉쳐 가슴이 아릿하기도 하고, 설렘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도 있다. 다만 수십 년 살아온 도시 어느 곳을 못 가본 유명한 장소가 남아 있다는 게 서울시민으로 조금은 멋적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책으로나마 뒤늦게 알게 된 것은 걸으면서 공간과 건축을 생각하는 '도시의 산책자' 이훈길 저자에게 감사한다. 사진은 물론 건축가이어서인지 스케치도 일품이다. 고이 간직하고 싶은 추억과 함께 집에 보관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 : 이훈길

 

건축사이자 건축 사진·스케치 작가. 숭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사로서 설계·디자인 일뿐만 아니라 건축 사진과 스케치가 융합된 독특한 작품을 내세우며 대학에서의 강의와 전시회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아트 경기’ 작가로 선정되어 일상 속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찍고, 그리고, 쓰며 예술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도시계획과 건축 사진, 일러스트 등 다양한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저서로 『도시를 걷다(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가 있다. 현재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천산건축 대표로 건축 및 도시설계를 하고 있으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영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디노마드에서 <건축, 사진과 스케치로 이야기하다>를 주제로 강의하였으며, 《에이블 뉴스》 《The Big Issue Korea》 《문화+서울》 등 여러 잡지에 도시건축 칼럼을 연재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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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 대한 탐구 깨어있음 - 틱낫한과 에크하르트, 마음챙김으로 여는 일상의 구원
브라이언 피어스 지음, 박문성 옮김 / 불광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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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깨어있음』을 읽게 된 것은 종교적 이유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오랜 시간 지내오다 보니 불안감과 소통 부재에서 오는 막연한 답답함 때문이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 '깨어 있기' 위해서다. 깨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만 남길 뿐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안 될 것이란 나름의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히 명상을 조금씩 하다보니 생각 밖의 소득이 있었다. 복잡한 마음이 씻은 듯 없어지고 불안감도 사라졌다. 마음의 거리낌도 없어지는 일이 하루 5분간의 명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깨어있음』은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영적인 생각과 지혜를 하나로 묶는 데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브라이언 피어스 신부가 쓴 책이다. 저자에게 영감을 준 두 명의 영성 대가는 14세기 독일의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부와 얼마 전 입적하신 현대의 틱낫한 스님이다. 저자는 시대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게다가 아주 다른 종교적 전통에 속해 있는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 대화를 시도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불교의 마음챙김(MINDFULNESS).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 저자는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 하느님 나라는 오직 지금뿐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종교간 대화를 통해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했다고 한 저자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교 전통에 잠들어 있던 보석 같은 가르침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불교도들은 마음챙김이라는 익숙한 수행이 불교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타당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챙김 수행이야말로 해탈로 가는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책 전반에 흐르는 두 종교의 조용하고 평온한 어울림은 자신과 다른 것에 마음을 여는 ‘관대함’ 덕분이다. 두 영성가의 지혜와 깨달음이 담긴 아름다운 언어들은 우리를 단순히 도량 넓은 인간이 아니라 균형 잡힌 인간으로 이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그리스도교와 불교도만이 아니라 분열과 다툼, 갈등으로 메말라가는 현대 사회를 구원해줄 깊은 물줄기가 되어 줄 것이다.

“모든 종교의 뿌리에는 하나의 수맥이 흐른다.” 종교간 대화를 통해 이웃 종교의 가르침에 진지하게 접근하면, 그 이웃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 내 종교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브라이언 피어스 신부는 종교간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풍요로운 결실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저자 브라이언 피어스 신부는 틱낫한 스님이 설명하는 마음챙김 수행에 주목하는 한편, 불교의 마음챙김 수행을 연상시키는 ‘깨어있음’이라는 신앙적 실천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특히 중세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이 책의 목표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종교간 대화라는 관점에서 불교의 마음챙김과 그리스도교의 ‘깨어있음’을 비교하고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의 ‘깨어있음’이 갖는 중요성에 주목할 것과, ‘깨어있음’을 일상의 영성생활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을 주문한다. 이 책은 그것이야말로 우리들 자신의 삶으로 예수를 부활시키는 제도권 교회에 갇혀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참된 생명력을 불어넣는 길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느님이 누구이고 어떻게 이 현실에 역사하는지에 대한 답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된다. 영원한 하느님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만 현존한다. 우리는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을 실천함으로써 그러한 하느님과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을 통해 우리는 분열된 세계 일치를 이루어 낼 수 있고, 서로의 경계를 초월한 참된 사랑을 할 수 있으며, 불가항력적인 고통 속에서도 평정을 누릴 수 있다. 우리의 삶을 구원하고 우리의 시대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열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이에 따라 그리스도인과 불교도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는 종교간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했다고 고백한다. 저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교 전통에 잠들어 있던 보석 같은 가르침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발견을 통해 더 깊이 있는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도들은 이 책을 통해 마음챙김이라는 익숙한 수행이 불교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타당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음챙김 수행이야말로 해탈로 가는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브라이언 피어스 신부는 틱낫한 스님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된 불교 전통의 수행인 마음챙김(mindfulness)에 주목한다. 마음챙김 수행에서 영감을 받은 저자는 그리스도교 전통의 여러 가르침, 특히 중세 독일의 신비주의자였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부의 가르침에 나타나는 그리스도교적 '깨어있음'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영성생활의 길을 찾아 나선다. 예수는 악마에게 사로잡힌 딸을 치유해 줄 것을 청하는 이방인 여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종교와 전통이 다른 이방인과 대화하는 것은 당시의 문화적, 종교적 규범에 위배되는 것이었지만, 예수는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저자는 마태오복음에 기록된 이 일화를 예수가 몸소 보여준 좋은 대화의 사례로 든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본래 있던 대화의 정신은 한때 희미해지기도 했으나 현대에 들어와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톨릭교회가 선포한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 우리시대'에 보이는 이웃 종교에 대한 존중의 태도로 부활한다. 그리고 40년 후, 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종교간 대화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고 강조하기에 이른다. 가톨릭 신부인 저자는 자신이 속한 전통 안에 숨 쉬고 있었던 이러한 대화의 정신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라는 범주를 넘어 불교의 가르침에 접근해 간다.

 


 

틱낫한의 가르침을 통해 저자는 불교의 마음챙김(mindfulness) 수행을 발견한다. 마음챙김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일상의 매 순간을 생기 넘치고 깊이 있게 사는 것이다. 마음챙김을 통해 삶을 성심성의껏 살아가면 참된 삶을 맛볼 수 있다. 이것이 삶에서 일어나는 참된 기적이다. 불교의 마음챙김 수행은 그리스도교 전통의 ‘깨어있음’이 갖는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스도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깨어있음을 설명한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구원사업을 완성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취한 강생(降生)의 신비는 하느님의 말씀이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깨어있음이다.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구절, 그리고 신랑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열명의 신부들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 또한 이 깨어있음이다. 현대의 영성가인 토머스 머튼 또한 깨어 있으면서 주시하는 것이 영성생활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에크하르트는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을 ‘민첩한 인식’이라고 부른다. 에크하르트는 이것을 “모든 일에서 자기 자신과 자기 내적 존재에 대한 민첩한 인식”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집중하여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인지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 숨겨진 경이로움을 보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오늘을 무엇이라 말할까?”라고 자문하고 “영원”이라고 답한다.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하느님이 영원이다. 바로 이 순간이 영원한 현재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과 공간은 오로지 지금 여기뿐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의 ‘민첩한 인식’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

 


 

잠든 사람은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예수가 죽은 뒤 걱정과 슬픔에 사로잡혀 엠마오 마을로 가던 예수의 두 제자가 그들이 만난 나그네가 예수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삶의 온갖 걱정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도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 있는 하느님을 만날 때 비로소 자유롭게 된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따뜻한 환대를 받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성심성의껏 살아감으로써 참된 자기를 발견할 때 은총을 받게 된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난 두 제자는 자문한다. “우리의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예수의 두 제자의 마음속에 타올랐던 불길, 즉 살아 있는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만남은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항상 타올라야 한다. 그때 하느님 나라는 먼 곳에, 혹은 먼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현존하면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즉 “하느님 나라는 바로 지금이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교는 ‘이런 이런 것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윤리적 계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 결과 영성생활이 즐겁고 마음 벅찬 삶의 한 형태임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전통의 깨어있음을 실천한다면, 즉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항상 인식하며 살아간다면 활기찬 영성생활을 되살려낼 수 있다.

 


 

저자 : 브라이언 피어스(Brian J. Pierce)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제도의 도미니코 가족수도회의 성소 담당자, 도미니코 관상수녀회 총장의 지도신부였다. 이후 전임 순회 설교사로 돌아왔다. 가톨릭과 불교, 두 종교의 영적인 생각과 지혜를 하나로 묶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2005년 출간한 이 책을 통해 종교간 대화가 서로의 목표와 영적 실천을 더 풍부히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저서로 『예수와 탕자 : 전적인 자비의 하느님(JESUS AND THE PRODIGAL SON: THE GOD OF RADICAL MERCY)』이 있다.

 

역자 : 박문성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995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한국인이 가진 종교적 심성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1998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인도철학과에 학부 편입, 2007년 논문 「『깨달음 달의 출현』의 해탈관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가톨릭대학교 동양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2007년부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으로서 종교간 대화에 참여해 왔으며, 2019년부터 동 위원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 역서로 『산스크리트어 통사론』이 있다. 약 15년간 번역에 매달린 이 책은, 불교경전 연구에 필수인 산스크리트어 문법서로, 타 종교의 언어를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진리를 평화롭게 나눌 수 있다는 평소의 신념이 담겨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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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평전 - 호랑이를 탄 군주
박현모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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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BS 사극 〈태종 이방원〉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중간에 드라마 촬영상 문제로 잠깐 중단됐던 후 다시 방송이 재개되고 있다. 지금까지 조선 태종 이방원은 사극의 중심에 선 인물로 많이 다뤄져왔다. 드라마 횟수로만 보면 조선 태종이 가장 많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그는 조선 시대 사극의 중심인물이다. 아마 성군(聖君)이어서기보다 가장 격동기의 주된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가장 극적 요소를 많이 가진 임금이란 뜻이다. 아버지 태조 이성계로부터 왕위를 찬탈하다시피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태종이었기에 드라마틱한 요소가 가장 많다.

특히 조선 창업의 정신적 기반을 다진 정도전과의 불화는 권력을 누가 쥐느냐에 따른 물러설 수 없는 권력 다툼의 양상에다 세자로 모든 적자를 제치고 어린 이복동생에게 물려준 데 대한 반발도 있었기 때문에 극적 요소를 가장 많이 안고 있다. 왕위에 오른 뒤 18년간 집권하면서 신하들의 권력을 왕에게 집중시키면서 폈던 정책들이 강력한 군주 아래서 백성들의 평안을 원하는 왕권체제를 굳히는 데 주력해 다음 왕 세종에 꽃을 펼 수 있는 기반을 세운 왕으로 평가되고 있어 사극의 인물로는 이보다 좋은 왕이 드물 것이다. 태종 이방원은 앞서 〈용의 눈물〉,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 〈나의 나라〉 등에서 주요 인물로도 등장했다.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조선 제3대 국왕인 태종이 주인공 혹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사극들이다.

 


 

사극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태종 이방원만큼 드라마나 소설 등에 자주 소환되는 왕도 드물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이들 매체에서 태종 이방원은 위화도회군, 최영·정몽주 같은 고려 충신들의 죽음에서부터 조선 개국, 정도전 숙청, 제1·2차 왕자의 난에 이르기까지 여말선초 격동하는 역성혁명의 한복판에서 그 누구보다 비정하고 차가운 칼날을 휘둘렀던 인물로 그려진다. 잔인무도한 권력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가운데, 정작 정치가로서 그가 추구했던 가치와 ‘피의 숙청’을 통해서라도 왕권 강화를 이루고자 했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온전히 알려지지 못했다.

이 책 『태종 평전』은 정조와 세종, 정도전과 최명길 등 조선시대 국왕과 재상의 리더십을 꾸준히 연구해온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이 10여 년간 《태종실록》을 파고들어 조선왕조의 창업과 수성에 그 어느 국왕보다 깊이 관여했던 태종 리더십의 진면목을 조명한 책이다. 태종은 위기 경영 측면에서 매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군주였다. 그는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처럼 과감하면서도 재빠르게 일을 추진하는 데 능했다. 정적을 제거할 때나, 사병 혁파처럼 난관에 직면했을 때마다 태종은 늘 기호지세(騎虎之勢)의 돌파력을 발휘했다. 이 책에 담긴 태종의 강명한 리더십을 통해 독자들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도자를 뽑은 지금, 뛰어난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조선 제3대 국왕인 태종은 조선의 역대 왕들 중 후세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자신과 길을 달리했던 인물(정몽주, 정도전 등)들을 비롯해 자신이 보위에 오르는 데 공헌한 바가 있는 외척(민무구·민무질 등)과 공신들을 거리낌 없이 숙청했던 사실들로 인해 그는 잔인무도한 권력욕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그의 서늘한 칼날은 이복형제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피의 숙청 과정은 후일 세종이 정치적 안정 속에서 태평성대의 치세를 이어갈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여말선초, 왕조가 뒤바뀌던 혼란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권력의 화신’과 ‘수성의 군주’라는 극단의 면모를 두루 보여줬던 태종의 삶은 굉장히 드라마틱한 지점이 있다. 오늘날에도 그를 주요 인물로 삼은 드라마와 소설 등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다.

이 책 『태종 평전』은 조선 건국 후 창업기를 거쳐 수성기로 진입하는 역사의 전환기에 그 중심에 있었던 태종의 언행들을 실록을 비롯해 다양한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되살려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태종은 여러 지점에서 탁월성을 보인 인물이었지만, 무엇보다 ‘위기 경영’에 매우 능했다. 특히 왕위에 오르기 전, 1388년 5월 위화도회군 때부터 1400년 1월 ‘제2차 왕자의 난’까지의 12년간은 그의 정치적 생명이 백척간두에 매달린 듯 위태로운 시기였는데, 그때마다 태종은 늘 ‘선발제지(先發制之, 먼저 나서 사태를 진압한다)’의 방식으로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한 문제의 싹을 제거해버리며 사태를 유리한 방향으로 반전시켰다.

 


 

저자는 책의 앞 부분 「여는 글」을 통해 “이상적인 군주란 온갖 도전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굳센 의지와 함께 일의 이치를 꿰뚫는 눈을 가진 존재다. 이 군주상에 걸맞은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사람을 말할 수 있겠다. 바로 조선의 제3대 국왕인 태종 이방원이다. 500년 조선왕조의 기틀을 닦아낸 정치 비전과 국가 기강 정립, 그리고 무엇보다 인재 경영 측면에서 태종을 따라갈 지도자가 없다.”고 밝혔다.

『태종 평전』은 부록들의 구성도 알차고 옹골지다. 책의 말미에는 『태종실록』에 기록된 태종의 언행 중 그의 정치적 비전과 삶의 지향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구절 7개를 추려내어 담았다(‘태종 어록 7선’). 말은 사람의 성품과 기질을 담아내는 투명한 그릇이다. ‘태종의 말’ 속에서 백성의 삶을 위해 그가 걸머졌던 책임감과 신중함, 인사(人事)를 만사로 보았던 인재 중시의 철학, 비합리적 관행을 타파하고자 했던 유연한 사고, 적절한 시점에 과감히 권좌에서 물러날 줄 알았던 자기 절제력 등을 두루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태종 관련 학술 논문 현황을 한데 모은 부록도 눈여겨봄직하다. 대중매체에서는 굉장히 자주 다루어지는 역사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1962년)부터 지금까지 약 60년간 태종을 주제로 삼은 학술 논문은 채 100편이 되지 않는다(2021년 기준, 총 83편). 또한 기왕의 연구들도 특정 분야에 치우쳐져 있어 태종시대에 이룩한 경제·국방·국가 기간(基幹) 정립에 대한 조명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저자에 따르면 『태종실록』에 실린 풍부하고 다양한 국가 경영 사례는 앞으로 더 다각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보기 좋게 갈무리해둔 ‘태종 연구 논저’ 리스트는 후속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태종을 더 깊이 독해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귀중한 자료로 기능할 것이다.

 


 

『태종 평전』은 총 7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정치가 태종’)에서는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의 역사를 조명한다. 위화도회군으로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부터 1400년 즉위하기까지 태종은 총 다섯 번의 위기를 맞이한다. 회군(回軍)과 건국(建國)과 즉위(卽位)라는 엄청난 정치적 소용돌이를 헤치며 나아가는 동안 그가 보여줬던 도전과 응전의 장면들은 이후 태종이 왕좌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서막이다. 제2장(‘왕의 여자들과 인간 이방원’)과 제3장(‘태종 재상 3인방’ 이야기)에서는 그가 왕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 중 한 명인 부인 원경왕후 민씨를 비롯해 태종 재위 시절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신생 국가 조선의 기틀을 만들어나간 명재상 조준, 하륜, 권근 등 ‘태종의 사람들’을 다룬다. 왕권과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외척과 공신은 과감히 숙청하되, 정치적 비전이 일치하고 능력이 출중했던 이들은 품 안으로 거둬들여 끝까지 책임졌던 모습에서 ‘가(家)’보다 ‘국가(國家)’를 우선시했던 태종의 절대적 국가관과 인재 등용의 원칙을 이해할 수 있다.

제4장(‘태종의 나라, 조선’)과 제5장(‘실용 외교와 국방’)에서는 권력 쟁탈이라는 정치사 위주의 서술 속에 가려졌던 태종식 국가 경영의 실제를 국내외로 나눠 묘파한다. 태종은 온 백성이 ‘가족같이 화합하고 잘 사는 나라’, 즉 ‘소강(小康)의 나라’를 정치 비전으로 제시하고, 국가 통속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개혁 입법을 추진했다. 신문고 운영, 전국의 토지 전수 조사, 오늘날의 주민등록증제에 해당하는 호패법 도입과 실행, 불교 개혁, 노비종부법 시행 등 태종 재위 시절에는 민생 안정과 국가 기강 정립을 목표로 각 분야에서 다양한 입법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또한 사대교린의 원칙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실용 외교로 혼란한 동아시아 국제 정세 속에서 국경에서의 소요를 진압하고 국익을 지켜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독도 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도발이 계속되는 요즘, 우리나라 영토 이슈와 관련해 『태종실록』에 담긴 기록들은 이들 지역을 우리 영토로 지켜내게 하는 중요한 역사적 근거로 작용한다(『태종실록』은 ‘백두산’과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이다). 태종 재위 시절 조선왕조는 경상도와 전라도에 창고를 증설해야 할 정도로 국가 재정이 튼튼해졌고, 외척 세력 제거로 왕실이 안정되었으며, 명나라와 단단한 신뢰를 구축한 상황이었다. 태종의 이런 치적들은 국내외적 정치 안정이 성공적 개혁 달성의 조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태종이 일군 일련의 성과들 중 그의 일생 최대의 업적을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성공적인 왕위 승계 작업이다. 만일 태종이 충녕대군을 포함해 왕자들을 보호하지 않았거나, 마지막에 과감히 세자 교체를 단행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세종 치세’는 불가능했으리라. 제6장(‘성공적인 전위, 리더십의 대단원)에서는 태종이 왕위를 승계하는 과정을 면밀히 살피면서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의 화신이라는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킨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취했던 일련의 조치들, 예컨대 정적의 척살, 내외척 제거와 같은 행동들은 많은 오해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이미 충분하다[已?·이족]’라면서 권좌에서 스스럼없이 물러남으로써 태종은 자신이 권력 중독자가 아님을 증명한다.

 


 

나라를 부강하게 이끌 큰 틀의 아젠다를 제시했던 정치 거목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정치에 대한 경멸과 조롱이 채우고 있는 듯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한 정치적 비전과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리더의 존재가 절실하다. 물론 창업과 수성을 두루 이룬 위대한 군주였던 태종에게도 한계는 존재한다(제7장 ‘태종 정치의 빛과 그늘’). 왕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던 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추진력은 있었으나(‘강거목장’의 리더십), 국왕의 생각을 뛰어넘는 창의력 있는 인재의 출현은 일정 부분 가로막았다. 세종의 위대함은 부왕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부왕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점이다. 무엇보다 세종 재위 기간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척살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이는 정치에 대한 당대 대소신료와 신민들의 신뢰를 회복시켰다.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종시대 인재들은 저마다의 능력을 자유로이 꽃피웠고 이는 태종에서 시작해 세종으로 이어지는 50여 년(1400~1450년)이 ‘한국 문명의 위대한 축(pivot)’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다.

 

저자 : 박현모

 

1999년 서울대학교에서 ‘정조(正祖)의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1년부터 14년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조와 세종, 정도전과 최명길 등 왕과 재상의 리더십을 연구했다. 2013년부터는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 일본 ‘교토포럼’ 등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형 리더십’을 강의하는 한편, 시민강좌 ‘실록학교’를 운영해 왔다(2018년 기준 2,600여 명 수료). 현재 여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및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세종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정치가 정조』, 『정조 사후 63년』, 『세종처럼』등이 있고, 『몸의 정치』와 『휴머니즘과 폭력』을 우리말로 옮겼다. 「경국대전의 정치학」, 「정약용의 군주론 : 정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국왕의 동선과 정치재량권의 관계에 대한 연구: 정조와 순조」 등 80여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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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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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고, 여행을 떠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저자의 고백이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게 다가오게 하는 문학 기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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