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고 싶어서
이훈길 지음 / 꽃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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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인간의 본능과 습관을 통해 얼마만큼 건강과 삶에 에너지를 주는지 알게 해주는 잣대로 사용될 정도로 좋은 행동이다. 몸이 약한 사람들도 걷기를 통해 건강을 회복할 수 있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걷기는 큰 도움을 준다고 의사들은 말하고 있다. 걷기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지만 습관을 들이면 건강을 도움이 되는 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2년 이상 노출된 상태에서 걷기는 부족한 운동량을 보충해준다. 실내 운동은 감염될 우려가 더 크지만 걷기는 실외 운동으로서 감염 확률도 줄여주고 속도에 따라 운동 대체 효과도 겸할 수 있어 '1석2조'의 행위다.

걷기는 이외에도 기분 전환 등으로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의사들이 말하고 있어 마스크를 쓰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동네 공원이나 산책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걷기는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장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예술인이나 학자 등이 영감을 끌어내기에도 무척 좋은 것 같다. 많은 세계적 철학자나 예술가, 심지어 과학하는 학자들에게도 '걷기'는 습관이고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일상 행위로 알려지고 있다.

 


 

이 책 『혼자 걷고 싶어서』의 저자 이훈길은 건축과 공간에 관심이 많다. 그는 시간이 생기면 새로운 공간과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발견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세월을 읽고, 역사를 보고, 감정을 얻는다. 카메라와 떠나는 매일매일의 일정이 새롭고 경이롭다고 느끼는 이유다. 그렇게 ‘혼자 걷고’ 또 ‘걷는’ 삶의 방식을 통해 삶의 일부분을 채워나간다고 믿는 사람이다. 저자는 건축사이며, 도시 공학박사로 자신 스스로를 도시의 산책자이자 공간을 읽는 남자라고 말한다.

건축 전문가이자 작가, 사진가, 모든 수식어를 내려 놓고 매일 도시를 걸었던 이훈길, 그는 현실의 차갑고 답답하게 느껴지던 공간마저 특별함을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도 그와 같은 시선으로 학교를, 직장을, 집을 바라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상의 공간들이 주는 행복을 잊고 바삐 움직이는 것만이 목적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혼자 걷고 싶어서』를 읽고 고개를 드는 순간 바라본 세상은 평소와 다른 뒤틀림이 생긴다. 건축물과 그 안의 공간이 주고 있는 의미를 관심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30가지의 장소는 그런 저자만의 시선을 알아볼 수 있는 열쇠가 되어준다.

 


 

저자는 '꿈마루'에서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선유도 공원을 걸으며 바람결에 실려오는 향기를 맡고, 종로타워에서는 종로의 랜드마크인 종로타워가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상징성을 지녔는지 생각한다. 혼자 갔던 덕수궁에서는 삶의 작은 쉼표를 발견하고, 동묘에서는 낡고 오래된 것들이 제각각 빛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오래된 역사와 기억을 가진 공간을 넘어, 새로운 세대들에게 환영받는 새로운 건축물로의 발걸음도 멈추지 않는다. 사람 이훈길은 파이빌99를 통해 컨테이너 속에 숨겨진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서교 365,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을 통해 젊음과 풍경이 어우러진 현대의 조각을 엿보기도 한다.

그의 에세이를 단순한 ‘건축가의 글’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건축과 공간이라는 자신만의 안경을 통해 세상을 읽고, 또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 읽기’의 영원한 동반자는 자신의 두 다리이다. 이 책에는 혼자 ‘걷고 또 걸으며’, 공간이 주는 메시지와 쉬지 않고 손 잡으려는 그의 노력과 열정이 담겨 있다. 독자들도 그와 함께 공간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지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독자는 주저없이 이 책을 권한다. 그 이유가 『혼자 걷고 싶어서』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10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각 주제는 재생, 옛것, 소통, 활용, 상징, 조우, 유동, 존재, 지역, 노정 등이다. 서울 강북 지역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산책 코스로 자주 이용하는 곳이 덕수궁 쪽인데 덕수궁에 대한 유래가 이 책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덕수궁은 조선 시대를 통틀어 크게 두 차례 궁궐로 사용됐다. 임진왜란 때 피란을 갔다가 돌아온 선조가 머무를 곳이 없어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곳을 임시 거처(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정릉동 행궁에 새 이름을 붙여 경운궁이라 불렀다. 경운궁을 다시 궁궐로 사용한 것은 조선말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다. (중략)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준 뒤 경운궁은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뜻에서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독자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걷게 되면 헤어지게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지만 꺼리기도 하는 묘한 풍습이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이 있던 자리에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는 말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독자는 덕수궁 돌담길을 갈 일이 생길 땐 그 생각에 씁쓸한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각 테마별로 10개 장(章)에 3곳씩 모두 30곳이 소개된다. 가장 먼저 '재생'의 장에서는 '꿈마루'가 등장한다. 「꾹꾹 눌러쓴 손편지 같은, 꿈마루」란 소제목에

기억하고 싶은 공간과 기억되는 공간이 있다.

어떤 공간이라도 기억될 수는 있지만,

기억하고 싶은 공간은 그렇지 않다.

기억하고 싶은 공간을 만나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

코로 맡아지는 냄새, 입 안에 머무는 미감

그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촉감까지도 기억하게 된다.

내게는 어린이대공원 안에 있는 꿈마루가 그러하다.

 

저자는 이어 "꿈마루는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원래 어린이대공원은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 민씨의 능을 모신 공간이었다. 하지만 1927년 일본 강점기에 골프장으로 개발되었다. 이곳의 지형이 매우 넓은 평지였기 때문이다. 1968년에는 한국 현대 건축가인 나상진에 의해 서울 컨트리클럽 하우스가 설계되어 골프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되었다. 어린이대공원으로 조성된 것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때이다. 그 후 내부를 개조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 전시 공간인 교양관으로 사용하다가 2011년에 꿈마루라는 이름으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변천사를 간략하게 소개한다(p.10~11)

 


 

또 조우의 장에서 「작은 도시를 담아낸, 웰컴시티」란 소제목으로 장충단 공원에서 퇴계로로 넘어가는 언덕길을 안내한다.

도시의 산책자가 되어 건축물을 관찰해보면

보이지 않던 공간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다채로운 풍경을 담은 웰컴시티는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시간을 들여 오래 둘러보았다.

장충단공원에서 퇴계로로 넘어가는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내후성 강판으로 이뤄진 4개의 매스가 눈에 들어온다.

미로 같은 길의 구성 때문에 공간을 천천히 살펴보게 된다.

 

광고회사 (주)웰커뮤니케이션즈의 사옥인 ‘웰컴시티(Welcomm City)’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 지금은 디자인하우스 사옥으로 바뀌었다. ‘웰컴시티’라는 이름은 ‘Well + Communication City’의 조어다. ‘소통이 잘 되는 도시’라는 뜻으로 의뢰인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이름에서부터 ‘도시’를 표방한 이 건축물은 도시적 공간 조직을 품고 도시의 풍경과 활기를 담고 있다. 도로 방향에서 웰컴시티를 보면 노출 콘크리트의 기단과 그 위에 내후성 강판으로 된 네 개의 건물이 공존한다. 네 개의 건물 사이에 세 개의 빈 공간이 있는데, 건축가는 이를 ‘어반 보이드(Urban Void)’라 부른다. ‘어반 보이드’는 건물을 세우고 우연히 남은 공간이 아니다. 도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의도적으로 비워 도시와 소통시키고자 한 공간이다. 이 공간이 건물을 살아 있게 만든다. 미세하게 서로 다른 각도를 가진 세 개의 보이드는 각기 독립적이며 크기와 모양에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도시와 소통하기 위해 열려 있는 동시에 닫혀 있는 공간이다.(p.142~143)

 


 

서울살이를 오래 한 독자로서는 이 책에 소개된 30곳 중 20여 곳을 가봤지만 오래된 추억과 기억이 한데 뭉쳐 가슴이 아릿하기도 하고, 설렘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도 있다. 다만 수십 년 살아온 도시 어느 곳을 못 가본 유명한 장소가 남아 있다는 게 서울시민으로 조금은 멋적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책으로나마 뒤늦게 알게 된 것은 걸으면서 공간과 건축을 생각하는 '도시의 산책자' 이훈길 저자에게 감사한다. 사진은 물론 건축가이어서인지 스케치도 일품이다. 고이 간직하고 싶은 추억과 함께 집에 보관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 : 이훈길

 

건축사이자 건축 사진·스케치 작가. 숭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사로서 설계·디자인 일뿐만 아니라 건축 사진과 스케치가 융합된 독특한 작품을 내세우며 대학에서의 강의와 전시회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아트 경기’ 작가로 선정되어 일상 속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찍고, 그리고, 쓰며 예술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도시계획과 건축 사진, 일러스트 등 다양한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저서로 『도시를 걷다(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가 있다. 현재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천산건축 대표로 건축 및 도시설계를 하고 있으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영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디노마드에서 <건축, 사진과 스케치로 이야기하다>를 주제로 강의하였으며, 《에이블 뉴스》 《The Big Issue Korea》 《문화+서울》 등 여러 잡지에 도시건축 칼럼을 연재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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