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 77가지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도다 도모히로 지음 / 도서출판 더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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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그들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모르는 것을 이들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이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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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 77가지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도다 도모히로 지음 / 도서출판 더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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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삶의 지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혜를 말하기 위해 우화(寓話, fable)나 중국 고전 등에서 저자 도다 도모히로가 임의로 선정해 테마별로 나눠 소개하고 주석을 달아준 77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화는 인간 이외의 동물 또는 식물에 인간의 생활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꼭 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빚는 유머 속에 교훈을 나타내려고 하는 설화(說話)이다. 대부분 문학(문자) 이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온 것이 많은 것으로 비춰볼 때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삶'의 발전시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이 교육적 차원에서 가르치는 교훈과 진리 안에는 '쓴 말'이 담겨 있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 많다. 특히 어린아이에게 가르칠 때는 거부감을 느끼면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맛있게(즐겁게) 듣고 교훈을 받아들이도록 지어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때 동식물을 문학적 수사법으로는 '의인화'라고 한다. 어린아이들에게 쉽게 친근감이 들도록 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즐거운 이야기로 교훈이나 진리를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교훈이나 진리가 추상적이라면 이야기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화를 읽거나 듣는 독자들은 등장인물이나 동물에 동화되어 인생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다. 철학자 플라톤은 대화편 “티마이오스”(플라톤 전집 12)에서 우주 전체의 생성 과정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는 것은 초인간적인 문제이며, 엄밀하고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우화”를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즐겁게 이야기를 읽고 작가의 관점과 해석이 나와 같은지 다른지 생각하다 보면, 독자의 인생과 삶, 더 넓게는 세계를 향해 발돋움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우화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우화에 대한 백과사전적 풀이를 잠깐 살펴본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우화는 의도하는 바는 이야기를 빌려 인간의 약점을 풍자하고 처세의 길을 암시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테면 이야기를 육체로 하고 도덕을 정신으로 하는 설화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일상 친근할 수 있는 한 마리의 생쥐이며 역시 한 마리의 까마귀이기 때문에 그들이 연출하는 기지와 유머에는 도덕적인 딱딱한 맛은 가셔지고 독자들을 흥미 속으로 이끌어 도의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옛날부터 동물을 이용하여 인간사회를 풍자하는 방법은 적지 않지만 그런 경우 주인공인 동물들은 인간의 능력과 줄을 긋고 절대로 자기 본래의 영역을 넘지 못하는 데 비해 우화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모든 기능을 구비한 인격으로서 자유스럽게 지껄이며 행동하는 것이 상례이다. 여기에 우화의 기교상 특색이 있는 것이다. 우화 작가로서 유명한 사람은 『이솝 이야기』의 작가로 알려진 이솝인데, 그야말로 시대적으로나 또는 작품의 우수성으로나 동물우화의 제1인자이다. 물론 그의 모든 작품이 독창(獨創)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소재를 널리 그리스 이외의 곳에서까지 구한 것은 작품 속에 나타나는 동물의 종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들 소재에 혼(魂, 도덕관)을 불어넣어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다듬어내었다.

 


 

그의 우화들은 간결하고 소박한 문체(文體) 속에서도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간직하고 있으며 교묘하게 인생기미(人生機微)를 찌르면서 일상생활에 도덕적 기조를 제공하고 있다. 그의 우화는 그리스에서 유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파에도르스의 라틴어역(譯)으로 로마시대에도 읽혔고, 학교의 교과서로도 쓰였다. 근세에 와서는 많은 우화작가가 나타났지만 프랑스의 라 퐁텐을 우선 들 수 있다. 17세기에는 왕족들의 호화판 사치생활과는 딴판으로 백성은 곤궁에 빠지고, 좋은 점보다는 결점이 많았으며 사자처럼 무서운 군주 밑에 원숭이 같은 궁정관리가 많았던, 이를테면 이런 심한 대조 속에서 화려한 인간 모습들을 전개한 시대였는데, 그런 속에서 라 퐁텐은 세련된 기지와 유머로 풍자의 붓을 날렸다. 이 책은 모두 15장의 주제에 77가지의 우화가 소개돼 있다. 폭넓은 인식, 총명함, 창의적인 일 등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촘촘히 읽어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예를 들면 1장 「시야와 관점」의 소제목을 설정하고 6개의 우화를 다룬다. 가장 먼저 〈여섯 명의 맹인과 코끼리〉다. 독자들도 한 번쯤 모두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 여섯 명의 맹인이 코끼리를 직접 만지고 그 정체를 알아 맞추는 일이다. 맹인들은 볼 수 없으니 만져서 코끼리의 정체를 알아맞추기 위해 논쟁을 벌인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은 맹인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로 부분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갖고 있다. 또 부분적인 총합은 전체가 될 수 없다는 철학적 사고도 이끌어낼 수 있다.

 


 

2장 「폭넓은 인식과 유연한 사고」에는 〈나스라딘의 열쇠〉 이야기가 나온다. 동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미 알고 있는 논리나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난 곳에 해답이 숨겨져 있다"는 교훈을 갖고 있는 이야기다.

 

나스라딘이라는 남자가 집 앞의 땅을 파며 물건을 찾고 있다. 이 광경을 본 친구가 물었다.

"무엇을 찾고 있는 거야?"

"열쇠를 찾고 있어." 나스라딘은 대답했다.

"어디서 열쇠를 잃어버렸는지 말해봐."

"집안에서 잃어버렸어." 나스라딘이 대답했다.

"근데 왜 밖에서 찾고 있어?"

"집 안보다 여기가 더 밝아서 찾기 쉬우니까."

 

나스라딘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이 이야기는 저자의 해석을 거쳐 우리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로 모습을 바꾼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가정할 때 보통 사람들은 사업 아이템을 찾을 경우 자신의 위치에서 밝은 곳, 곧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 일하기 쉬운 분야에 도전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해서 사업을 성공시킨 사례는 적다. 새로운 일은 이전에 알고 있던 논리나 과거의 경험에 꼭 들어맞지 않는 영역으로부터 탄생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경영학자 헨리 민츠버그의 『H. 민츠버그의 경영론』에서 '계획은 좌뇌로, 경영은 우뇌로'라는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이 정도 되면 지혜의 샘으로 데려가준 셈이다.

 


 

같은 장의 「눈을 잃어버린 하마」 이야기도 재밌다. 하마가 강을 건널 때 한쪽 눈을 잃었다. 하마는 필사적으로 눈을 찾았다. 앞뒤를 둘러보고 왼쪽 오른쪽으로 찾아다녔고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눈을 찾을 수 없었다. 강변에 있는 새나 동물들은 하마에게 조금 쉬면서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영원히 눈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빠진 하마는 쉬지 않고 계속 눈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눈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하마는 너무 지쳐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하마가 움직이기를 멈추자 강물이 정적을 찾았다. 하마가 휘젓고 다녀서 탁해진 물속의 진흙이 가라앉으면서 물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마는 잃어버린 눈을 찾을 수 있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 놓는 흙탕물을 가라앉혀보자는 의미로 저자는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불교의 '참선', 요즘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것 '멍을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며 너무 바쁘게만 사는 삶을 사는 것보다 마음을 잠깐동안 가라앉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삶에서 중요한 요소임을 말하기 위해 책에 써 넣었다. 저자의 말대로 인생은 계속 달리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달리면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자신의 달린 길을 되돌아 보는 것이 현명하다. '일일일지(一日一止)'는 하루 중에 한 번은 자신의 걸음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노라니 푸른 눈의 스님의 유명한 책 이름이 생각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멈춰보지 않으면 결코 알기 어려운 것이죠. 한 번쯤 시도해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이란 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책을 읽기를 권해본다. 아는 이야기는 다시 한 번 복습해 자신의 삶에 적용하도록 실천하고 반복하고... 삶의 지혜는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경험하지 않고, 스스로 의도하지 않은 실천에서의 경험도 지혜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특히 책을 읽고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덮은 후 그것으로 끝낸다면 지혜를 터득하기에는 점점 먼 길을 가는 것이리라. 그러나 우선 처음 시작인 이 책을 촘촘히 읽을 것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추천한다. 이 책의 15개 장이 내용을 모두 소개할 수 없으니 소제목만 여기에 적는다. 독자들이 참고할 사항이다.

 

1장 시야와 관점

2장 폭넓은 인식과 유연한 사고

3장 깊은 사고와 정확한 판단

4장 총명함과 창의적인 일

5장 강한 조직의 정신

6장 일하는 자세와 일의 의미

7장 정의로운 마음과 공동체

8장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

9장 인생의 도리와 감사

10장 희망에 가까워지는 법

11장 배우는 마음가짐과 배우는 이유

12장 도전과 지속가능성

13장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방법

14장 삶과 죽음의 연결

15장 어떤 상황에서든 세상만사를 생각하라

 


 

저자 도다 도모히로는 책의 「머리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가르침을 담고 있고, 두 번째는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재료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동서 국가의 우화를 통해 재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우화를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이야기 끝부분에 추가된 문장을 읽어보면 내가 우화의 재료를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연상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도다 도모히로

 

홋카이도대학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후 비철금속 제조회사에 취업했으나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3년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법정대학 사회학부에 편입했고, 졸업 후에는 ㈜프레스얼터너티브에서 5년간 근무하며 공정무역, 시민은행, 친환경 소재 케나프 종이 개발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뒤 출판업에 뛰어들어 단행본 편집과 영업에 종사했고, 30대 후반부터는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니혼복지대학 복지경영학부 교직원 및 여러 비영리기관 이사직을 역임하고 있다. 45세에 커리어 컨설턴트 자격증을 땄다. 그때 마음속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일이란 나의 능력과 취향, 가치관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미국의 직업 심리학자 도널드 슈퍼의 말이었다.

그는 이 말에서 누구나 자신의 천직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깨닫고, 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커리어 컨설팅 전문 자료들을 모아 뼈대를 만들고 그동안의 경험과 수많은 위인들의 명언에서 영감을 얻어『내가 일하는 이유』를 저술했다. 『내가 일하는 이유』는 출간 후 취업과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입소문이 확산되면서 필독서로 자리잡아 지금까지 15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이어 출간한 『계속 일하는 이유』도 5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최근 같은 시리즈로 『끊임없이 공부하는 이유』를 출간했다. 그 밖의 저서로는 『50세부터 시작하는 해외 봉사활동』 『아내가 행복해지는 남편의 유언장』 등이 있다. 저자는 방황과 모색 속에서 어렵게 길을 찾으며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자신의 꿈에 다가갔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 즐겁게 생활하며 타인들과 연결되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은 저자 자신의 인생으로 실현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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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현상청 사건일지 안전가옥 오리지널 18
이산화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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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사건들을 조사하고 해결하고 기록하고 관리하는 ‘기이현상청‘이라는 기관에 소속된 공무원과 하청업체 및 협력업체 직원들이 겪은 일들중 몇 가지를 추려낸 책. 가상의 정부기관이지만 ‘기이한 나라‘가 된 대한민국에 대한 몇 가지 취약점을 드러내 지적하는 일도 포함한 소설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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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현상청 사건일지 안전가옥 오리지널 18
이산화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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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 『기이현상청 사건일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새 담당이에요?”

서류 더미를 한 아름 들고 사무실에 빼꼼 고개를 들이민 여자를 보자마자 나는 물었다. 항상 보던 사람을 보게 될 거라고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담당자가 바뀐 모양이었다. 승진했는지, 아니면 일을 그만뒀는지. 정장을 입고 있다기보단 차라리 붙잡혀 있단 표현이 적합할 듯한 여자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선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네, 처, 처음 뵙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기이현상청 행정3팀 영희예입니다.”

"반가워요, 앞으로 얼굴 자주 보겠네. 기획재정부 특수예산과의 미정연이라고 해요."(p.9)

 

평범하다. 여느 사무실처럼 정부의 한 사무실 풍경이다. 업무차 만나려 찾아온 손님, 그리고 맞이하는 공무원. 조금 특이하다면 '기이현상청'이란 이름과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그들의 이름은 왠지 낯설다. 우리가 가진 성씨가 있긴 하겠지만... 오히려 거꾸로 읽는다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이나 등장인물의 이름들, 그리고 관청의 명칭 등은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요즘 소설 문학의 대세를 이루는 SF 소설이라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오히려 평범할 정도로 안온한 느낌을 준다.

 


 

이 책 『기이현상청 사건일지』는 결국 공무일지다. 그것도 철저히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실정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노을을 아름답게 할지는 모르나 치명적인 환경문제인 미세먼지, 공과 관에 스며든 사이비 신앙, 권력자 우상화,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이권 대립, 공조직의 목적전도, 국가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화, 합의에 이르지 않는 시위, 내정된 지원사업 수혜 등 상당히 복잡한 동시대 문제들이 한데 논의된다. 공조직에는 시스템이 있고, 시스템은 시스템이 되었으므로 굳어져 간다. 그럼에도 여기 일하는 공무원들의 개인성과 도덕의식 덕분에 이 조직은 아직은 어떻게 해볼 만한 이끼들을 달고 굴러간다.

“원래는 다 말해 드리면 안 되는 건데, 이렇게 촉이 좋은 사람은 어차피 살다 보면 다 알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말씀을 드릴게요. 혹시 귀신 믿어요? 요괴, 이매망량, 이스시, 버닙, 에너지 생명체, 뭐 그런 종류.”

기이가 판치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공조직 ‘기이현상청’이 존재한다. 이곳을 둘러싼 상당히 초현실적인 존재들과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들에 관한 가감 없는 기록이 바로 이산화 작가의 연작소설 『기이현상청 사건일지』다. 기지 넘치는 SF 작가가 초현실의 존재를 빌려 이야기하는 동시대 현실들은 꽤 무게가 나가지만, 이를 처리하는 방식은 예리하고 가뿐하다. 그러나 조금은 앞뒤 안 맞은 부분이 발견돼 약간의 걱정을 안은 채 책을 읽는다.

 


 

『기이현상청 사건일지』에는 당연하게도 기이가 등장한다. 기이는 귀신, 정령, 흡혈괴물, 괴현상 등 영토, 문화,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영적 존재들이다. 기이는 그 기원과 특성에 따라 이름 붙었고, 종종 불렸으며, 불릴 때마다 믿어질 때마다 실질적인 힘을 행사해왔다. 기이를 다루되, 일지 형식으로 다룬다는 점이 이 소설의 미덕이다. 기이에게도 기이와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하루가 있고, 이 하루는 반복되며, 생활이 되고 환경을 이룬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그날그날은 기록된다. 기이해서, 기이라서, 대단하고 특수해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이들의 일상과 생활이므로 성실하게 관찰되고 정리된다.

비인간 존재에 관한 집요한 기록만큼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텍스트도 없을 것이다. 『기이현상청 사건일지』는 하나의 시스템을 채우는 다채로운 역할들을 서술해 나간다. 「노을빛」에는 특수예산과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지난 지출을 점검하는 기재부 직원이 있고, 「주문하신 아이스크림 나왔습니다」에는 아케메네스 왕조 시기 항아리에 살며 아이스크림 신제품을 개발하는 두 정령을 이해하기 위해 파견 나온 기이현상청 직원 및 생성적 적대 신경망 원리를 배우고 적용하는 개발자가 출연한다.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에는 광명 연구개발특구에서 시제품을 만들고 이를 유출한 직원과 그 해프닝을 해결하는 수사관이, 「마그눔 오푸스」에는 지역 신흥 종교의 교주와 신도, 이를 해결하러 온 하청 업체 직원과 그 부사수가 등장한다. 이들은 정령과 귀신을, 그러니까 사건을 기록하는 존재들이지만, 『기이현상청 사건일지』 역시 기록이라는 점에서 작품의 주인공은 현상청을 이루는 낱낱의 존재들로 옮겨간다.

 


 

당시에 내가 비희와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람이 아닌 존재까지 합쳐야 겨우 여섯 명이 되었다. 그중에서 넷은 전 애인이었으며, 둘은 애인 사이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제로라는 이유로 내 신뢰를 받는 친구들이었고, 직장 동료는 한 명도 없었다. 비희와 사귀는 동안 나는 연애 사실이 직장에 알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대화를 얼버무렸고, 휴대전화 화면을 감추었으며, 심리 상담을 앞두고선 예행연습까지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이현상청 소속의 공무원이 사람으로 변신하는 이족보행 파충류와 사귄단 건 그런 일이었다.(p.51)

처음 만났을 당시에 비희의 표면적인 신분은 모 대형식품 제조 업체 직원이었다. 직책은 경기도 광명시 연구개발특구에 위치한 제3광명신제품연구소의 시니어 매니저. 주요 업무는 전 국대형마트와 편의점 매대에놓일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 관리. 하지만 연구소 소재지가 하필 광명 연구개발특구라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제3광명신제품연구소의 진짜 주인은 식품 제조 업체가 아닌 광명회, 즉 일루미나티였다. 파충류 인간들의 범국가적 카르텔로 악명 높은 일루미나티가 직접 운영하는 시설인 만큼, 기이현상청에서는 연구소를 포함한 특구 전체를 1급 지정기이 단체로 분류해 매년 두 차례씩 담당 공무원을 통해 정기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의 담당 공무원이 바로 나였다. -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 중에서

 


 

조선의 가장 큰 성군 세종대왕을 길 잃은 정령으로 묘사하는 「왕과 그들의 나라」는 이 소설집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저자는 경복궁 내에서 상습적으로 무허가 제례를 벌인 지정기이 단체가 승인 취소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단편이지만, 경복궁 전체가 세종의 정신세계에 집어삼켜진다는 작중 전개는 순전한 저자의 상상이라고 밝힌다.(p.286) 저자에 따르면 세경이 사용하는 상고 부적술에 대한 묘사 역시 마찬가지다. 한편 광명 연구개발특구에서는 살상용 무기를 개발하지 않으며, '노자의 콧노래'는 어디까지나 휴대용 전자레인지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제품의 코드네임이다. '상처이빨 랏지' 역시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음을 알려 드린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반증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반증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과학의 본령이라 말한 바 있다. 비판할 수 있는 왕, 권력을 잃을 수 있는 왕일 때, 비로소 지도자일 수 있다고 이 소설은 과감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절대’와 ‘결코’의 굳고 고이는 세계에서 ‘설마’와 ‘혹시’의 굴러가는 세계로 『기이현상청 사건일지』는 독자를 안내한다. 그곳은 비관도 낙관도 아닌, 기이와 환상이 거하는 공간이다.

 

“선배,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세종대왕님이 백성을 왜 해쳐요?”

한순간의 여유를 틈타 녹즙을 빨아 먹던 세경이 그 말에 나루를 빤히 쳐다보았다. 비록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그 눈빛은 명백히 ‘무슨 당연한 소리냐’란 말을 하고 있었다.

“아, 진짜! 옛날에 한국사 공부했다면서, 왜 뭐만 물어보면 반응이 그래요? 제 말은, 다른 혼이야 우리가 많이 다뤄 봤어도 이번엔 세종대왕님이잖아요. 한글 만드신 성군. 그런 분이 왜 저렇게 안개를 치고, 백성을 가둬서 때리고 그러느냔 얘기예요. 설마 맞춤법 안 지켰다고 이러시나?”(p.186)

 


 

송영은 논산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기이현상청 공무원의 말을 떠올렸다. 귀신이 보이는 체질도 아니고, 하다못해 잘 씌는 체질도 아닌데, 딱 목소리 하나에만 영적인 울림이 있다고. 귀신과 요괴와 정령들이, 각종 기이하고 불길한 존재들이 송영의 목소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인생에서 그토록 나쁜 일을 많이 겪어야 했던 것이라고. 구령을 한 번 외칠 때마다 훈련소에 득시글대는 온갖 것들의 눈길을 일시에 받았을 테니 기절을 안 하고 배겼겠느냐고. 그 목소리 자체는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 어쩌다가 큰 소리라도 잘못 내면 바로 몸이 차갑게 굳어 버리는 것도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송영이 이번에 기절하지 않고 버틴 것은, 단지 비명을 들어 줄 다른 누군가가 이 어둠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p.113) - 「마그눔 오푸스」 중에서

 

저자 : 이산화

 

화학을 전공하였고 SF를 쓴다. 사이버펑크 장편소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와 단편집 『증명된 사실』을 출간하였으며, 이외에도 다수의 앤솔로지에 작품을 수록하였다. 단편 「증명된 사실」은 2018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신제품 아이스크림을 발견하면 일단 집어 든 다음 먹으면서 후회하는 습관이 있다. 양쯔강돌고래가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단편 「아마존 몰리」가 온라인 연재 플랫폼 브릿G의 2017년 2분기 출판지원작에 선정되었고, 이후 제2회 브릿G 작가 프로젝트에 당선된 「증명된 사실」을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에 실었다. 2018년에 출간한 사이버펑크 장편소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는 온라인 서점의 SF 분야에서 3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조금 신맛이 나는 과일 디저트를 좋아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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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책 : 문학 편 1 - 르몽드, 뉴욕타임스 선정, 세기를 대표하는 100권의 책
디오니소스 지음 / 디페랑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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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서와 글쓰기의 커뮤니티가 많아진 시절에 그 대표적인 활용 표집으로 공증된 세계문학이기도 하기에, 한 번쯤은 그 제목을 들어봤음 직한 문학들에 대한 해설로 접근성을 높이고, ‘책 속에 꽂혀 있는 책’이란 기능성까지 장착한 ‘책에 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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