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더비가 사랑한 책들 - 소더비 경매에서 찾은 11편의 책과 고문서 이야기
김유석 지음 / 틈새책방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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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비' 하면 '경매 회사'라고 자동 연상되지만 그 이상의 것은 별로 독자의 기억에 없다. 경매에 한 번도 참여해 본 적이 없고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모르는 데다, 경매 현장에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다. 그런데도 소더비가 독자의 기억 속에 이름이 남아 있는 이유는 아마 뉴스에 자주 나오기 때문이리라. 특히 유명 화가의 그림 〈OOO〉이 사상 최고 경매가를 경신했을 때는 꽤 비중 있는 뉴스로 전 세계로 타전되는 탓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리라. 한마디로 뉴스나 독자나 '최고 경매가'에 관심이 더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사실 크게 놀랐다. 그림 한 점에 몇 백억 원이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몇 백억 원'이라는 것도 지금은 큰 뉴스거리도 안 된다. 수천 억 원을 기록하는 시대이니... 돈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인류가 만들어낸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에 아는 대로 말해 보라고 요구받는다면 선뜻 예술 작품을 꼽는 경우는 독자도 자주 접해봤다. 그러나 화폐 가치로 계산하니 영 실감이 안 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세계의 걸작이라고 하더라도 그림 한 점을 수천억 원을 주고 샀다면 과연 "잘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런 것을 집에 걸어놓고 감상한다면 하루가 달라질까? 아니면 안 좋은 기분을 좋은 기분으로 바꾸어 줄까? 별별 생각이 들지만 "돈이 너무 많아 쓸 데가 없구만" 하고 일축하고 만다.

재산 가치로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천억 원씩 투자해 갖고 있을 가치가 있을까? 아, 돈이 필요할 때 되팔면 되겠구나... 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돈 버는 방법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될 경우 과연 그림의 가치를 화페로 누가 환산하는 것일까? 경매의 의미도 제대로 모른 독자에게 이 책 『소더비가 사랑한 책들』은 소더비 회사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그동안 소더비가 경매에 올려 팔렸던 고가의 상품 목록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문서가 남아 있는 것을 단순히 가치로만 평가가 가능할까 하는 새로운 숙제를 독자에게 안겨주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김유석은 세계 최고의 경매 회사로 손꼽히는 소더비(Sotheby’s)에서 거래된 책과 고문서에 얽힌 이야기를 추적한다. 소더비는 크리스티와 함께 세계 경매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소더비는 미술품, 크리스티는 보석류가 유명하다. 특히 소더비는 경매 역사에 남을 마케팅을 통해 최고의 미술품 경매 회사로 거듭났다. 지금 우리가 고가의 미술품 경매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는 모두 소더비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명사들이 이브닝 파티를 즐기며 경매에 참여하는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소더비의 근본이자 진가는 책과 고문서 경매에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1744년에 설립된 소더비는 원래 책 경매에서 시작한 회사다. 그래서 책과 고문서에 관한 이름난 경매들은 대부분 소더비의 몫이었다. 서구에서 고서적이나 문서 경매의 대명사는 소더비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소더비의 역사를 장식한 책과 고문서 경매들 중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굴해 내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이 책 『소더비가 사랑한 책들』은 소더비의 역사와 지금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과정을 소개하는 글로 시작해, 크게 세 파트로 소더비의 역사를 장식한 경매들을 소개한다. 모두 3개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1부 〈희소성이라는 보물〉, 2부 〈신에게 바치다〉, 3부 〈세상을 바꾸다〉 등이다. 1부는 희소성이 만들어지는 서사에 관한 내용이다. 1장(章) 「황제 나폴레옹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책을 찾아서」에서는 황제 나폴레옹의 메모를 찾아 경매에 뛰어든 영국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2장 「‘문화 전쟁’을 야기한, 단테가 쓰고 보티첼리가 그린 『신곡』」 이야기다. 보티첼리가 『신곡』에 그린 그림을 두고 영국과 독일이 벌인 자존심 싸움을 소개한다. 3장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책에 따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유일무이한 원본에 숨겨진 비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당연히 원작에 대한 이야기다. 바로 루이스 캐럴이 직접 손으로 쓰고 삽화를 그려 만든 『땅속 나라의 앨리스』다. 하나하나 손수 써 내려간 글과 서툴지만 꼼꼼하게 채색까지 되어 있는 삽화들. 이 책의 맨 앞 장에는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채색한 서체로 이렇게 쓰여 있다.

"어느 여름날을 추억하며, 사랑하는 아이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A Christmas Gift to a Dear Child in Memory of a Summer Day).)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판본이 나오기 약 1년 전, 루이스 캐럴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 한 소녀에게 선물한 책이었다. 그리고 소더비에 등장한 이는 바로 캐럴에게 직접 선물받은 소녀였던 앨리스 플레전스 리들(1852~1934) 자신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경매장에는 전쟁터 같은 긴장감이 흘렀을 것이다. 낙찰 금액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로젠바흐 박사라는 한 미국인 수집가에게 1만5,400파운드, 한화로는 약 18억 원이라는 경이로운 금액이다.

 


 

희소성을 다룬 이 파트에서는 단테의 『신곡』 이야기가 적지 않은 비중으로 다루어진다. 단테가 쓰고 보티첼리가 그린 삽화가 들어간 책이라면 기존 다른 경매품에 비해 굉장한 가치를 가질 만하다는 생각이 경매 문외한인 독자에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이전 문제도 확인되어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보티첼리와 단테가 친했다는 사실이다. 아니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한 단테와 보티첼리가 친분 관계가 있었을 것은 추정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소더비 전시회에 참석한 한 학생이 전시회 해설사에게 물어 듣게 된 답변을 저자가 옆에서 함께 들었다는 것. 그 해설사는 "사실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전제하고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지만 보티첼리는 단테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했고, 마치 자신의 이루지 못한 이야기와 동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신곡』에 삽화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는 설명이다. 『신곡』에서의 단테의 사랑 이야기가 보티첼리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야기와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단테는 다른 여타 귀족 가문들이 그렇듯 관습에 따라 13세의 어린 나이에 당시 피렌체의 유력 가문의 딸과 약혼했고, 9년 후인 1286년에 그녀와 혼인했다. 그러나 단테는 아홉 살에 아버지를 따라 방문한 은행가의 집에서 자신보다 한 살 어린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를 만난 것이다. 첫눈에 반했던가, 그녀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보티첼리 역시 비슷한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보티첼리는 자신의 영원한 마돈나였던 시모네타 베스푸치(1453~1476)가 있었다. 제노아의 카타네오라는 유력 가문에서 태어난 세모네타는 베스푸치 가문의 마르코와 결혼하기 위해 피렌체로 왔고, 그때 보티첼리의 눈에 띄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결국은 그리워하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2살 되던 해에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사랑의 서사는 단테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이런 일로 단테의 『신곡』에 삽화를 그려넣은 이유가 됐다니 그들의 예술혼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와 사랑 가운데 고통을 당했을 것이란 짐작은 쉽게 할 수 있을 듯하다.

 


 

두 번째 파트 4장 「프랑스 왕국의 첫 여왕이 될 뻔한 여인의 책, 『잔 드 나바르의 기도서』」에서는 유럽에서 기독교 문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책과 문서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희대의 간통 사건에서 시작된 막장 드라마가 프랑스의 여왕이 될 뻔했던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 주는 『잔 드 나바르의 기도서』, 5장 「신의 소명으로 완성한 미국 최초의 인쇄물, 『베이 시편집』」은 신의 소명을 받아 미국으로 인쇄기를 들고 건너가 최초의 책을 찍어 낸 일화를 다룬다. 6장 「‘마지막 연금술사’ 아이작 뉴턴의 노트」는 과학자 뉴턴이 아닌 연금술사이자 신학자의 면모를 밝혀낸 불에 탄 노트에 관한 이야기다. 7장 「구텐베르크의 사업가적 집념이 담긴 『성경』과 〈면죄부〉」는 구텐베르크가 찍어 낸 〈면죄부〉가 종교 개혁까지 이어졌음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종교와 신앙이 역사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준다.

세 번째 파트는 '세상을 바꾼 문서'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문서들이 실제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영국의 보물이어야 할 〈마그나카르타〉를 영국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미국, 2021년 소더비 경매에서 4,317만 3,000달러(약 500억 원)의 경매가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문서가 된 미국의 〈헌법〉 사본, 〈노예 해방 선언문〉에 대한 링컨의 진의는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 마오쩌둥이 영국 노동당 당수에게 보낸 편지의 수수께끼를 끈질기게 추척해 풀어내는 부분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소더비가 주목한 11개의 경매는 인류가 만들어 낸 기록 문화가 어떻게 세상과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가치가 어찌 부여되는지 보여 준다. 역사적으로도 경매 회사나 경매 응찰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많은 생각거리까지 던져주는 셈이다. 책과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물론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소더비를 통해 문서와 책들은 텍스트와 텍스트의 가치와 존재에서 엄청난 역사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경매 회사가 국내 언론에 소개될 때는 보통 유명 미술품이나 보석류의 최고가가 경신되었을 때라고 저자는 밝힌다. ‘고흐의 작품이 얼마에 낙찰되어 최고가를 경신했고, 이전 최고 기록은 얼마였다’는 식의 기사다. 그런데 경매에 관한 이런 기사들을 보면 궁금해진다. 인류의 문화유산급인 작품들이니 비싸다곤 하지만, 그렇게 정해진 가치는 보편적인 것일까. 저자도 앞서 독자가 언급한 의문에 새로운 시각으로 답을 주려 한다.

예를 들어보자. 영국인들과 미국인 중 누가 더 〈마그나카르타〉를 소중하게 여길까. 소중함의 척도를 가격으로 삼는다면, 미국이 승자가 될 것이다. 영국에서 〈마그나카르타〉는 잊혀진 문서였지만 이를 발굴해 현대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삼은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경매에 올라온 적이 없는 이 문서는 미국에서 미국인에 의해 2,130달러라는 가격이 매겨졌다. 즉 〈마그나카르타〉는 미국인들에게 더욱 가치가 있는 종잇조각이라는 의미다.

소더비와 같은 경매장에서 거래되는 물건들 중 눈길을 끄는 것들은 희소성과 함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서사를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유명인이 소장했거나 손길이 묻은 물건, 역사적인 사건에 연루된 물건, 최초로 만들어진 물건에 담긴 사연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곧 물건에 담긴 시간과 역사를 소유하는 것이다. 이 책 『소더비가 사랑한 책들』은 바로 물건에 담긴 역사, 그중에서도 책이나 문서들에 얽힌 사연을 추적하는, 텍스트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소더비의 경매품 중 책과 문서들을 선택한 이유는, 소더비가 원래 책 경매로 시작된 회사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고서나 고문서 경매라면 소더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만큼 중요한 경매, 역사적인 경매가 많았다. 황재 나폴레옹의 서재, 보티첼리가 삽화를 그린 유일무이한 『신곡』,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일컬어지는 『잔 드 나바르의 기도서』, 구텐베르크가 자신의 발명품으로 찍어낸 『성경』과 〈마그나카르타〉, 미국 〈헌법〉, 〈노예 해방 선언문〉 같은 역사의 변곡점을 만든 문서들까지, 소더비는 인류의 기록 문화의 정수를 거래하는 장터였다.

이 장터는 인류가 쓰고 기록한 것들에 가치를 부여한다. 가치를 부여받은 물건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어쩌면 문명의 발전은 옛것들에 가치를 부여할 줄 알게 되면서일지 모른다. 옛것들 중에서도 책과 문서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서 머물렀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래서 오래된 책과 문서를 뒤적이는 일은 인류가 지나온 역사의 지도를 펼치는 일과 같다. 이 책은 그 작업 중 일부를 들춰내 텍스트가 가진 역사적인 의미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곰팡내 나는 물건들에 천문학적인 가격이 매겨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소더비가 경매에 올린 물건에 얽힌 작은 역사들은 우리 문명이 닿아 있는 곳을 찾아가는 추적기다. 책과 역사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이 추적기는 지적인 즐거움과 역사를 읽는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 김유석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1960년대 미국 서남부 치카노 운동의 성격’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네이버에 ‘뜻밖의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역사 칼럼을 연재했고, 현재는 영국에 머물며 일상 속 역사적 소재를 찾아 헤매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읽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역사 이야기를 쓰는 게 목표다. 저서로는 《국기에 그려진 세계사》(2017), 《Q&A 세계사: 서양사편》(2010)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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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참 멋있다 - 당신에게 남기는 첫 번째 댓글
김현 지음, 줄리아 조 그림 / 스토리텔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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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서는 이 책 『당신 참 멋있다』의 저자 김현을 처음 만난다. 일면식도 없는데 책을 통해 독자와 저자로 만났지만 '참 멋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가 글을 잘 쓰는지, 아니면 잘생겼는지, 그렇잖으면 매너 좋은 신사 스타일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글 몇 편과 〈작가의 말〉을 통해 그는 멋있는 사람이란 확신이 든다. 출판사 측을 통해 내놓은 〈작가의 말〉에 “거리를 걷다가 들려오는 노래 한 곡에 한참을 멈추었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다시 걸음을 옮긴 적이 있었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Old and Wise〉였다. 늘 들었고 좋아하는 노래였지만, 새삼 걸음을 멈추게 했던 아름다운 선율과 인생을 관통하는 가사에 나도 그러한 ‘인생작’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썼다. 이른바 '인생 노래'도 밝힌다. 영화 〈비열한 거리〉(2006)의 OST로도 사용한 곡이다. 가사 일부를 인용한다.

 

내 눈이 볼 수 있을 때까지

날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들이 있어

내가 떠날때 쯤에, 네가 알아줬으면 해

난 내 가장 속에 있는 얘기를 너와 함께 했고 너는 내가 가는 곳으로 따라와줬어

그리고, 내가 나이를 먹고 현명해진 순간에는

쓰디쓴 말들은 내겐 별 의미가 없어지더라

가을 바람은 나를 향해 불겠지

그러고는 점차 시간에 묻혀갈거야

그것들이 나에게 너를 아냐고 묻거든 너는 내 하나뿐인 친구였다고 웃으며 말할 거야

그러면 내 눈가에서 슬픔은 사라지겠지

 


 

독자가 최근의 읽은 책 중의 하나인 『음악은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가』는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른바 '인생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 노래가 어떻게 인생 노래가 되었나? 어떤 노래가 인생 노래가 되려면 '네 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며 네 박자의 조건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결정적 시기다. 남들이 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했고, 그 순간에 어떤 음악을 만났다면 그 음악은 잊지 못할 노래로 남는다. 그러나 특별한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 노래를 만나는 결정적 시기는 엇비슷하다고 말한다.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이 결정되는 시기도, 정치적 성향이 확립되는 시기도, 그리고 인생 노래가 각인되는 시기도 정해져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정치적 견해가 형성되는 시기는 유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시기, 즉 투표권이 생길 때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의 대통령 선거 때의 사례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인생 노래가 결정되는 시기는 언제일까? 저자는 최고의 시기를 빛나게 해준 순간이어었거나 반대로 최악의 순간에 위로받았던 노래일 가능성이 높다고 단언한다.

기나긴 줄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더라도 꼭 먹고 싶은 맛집, 휴가 때 방문하리라 마음먹은 SNS 명소,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세계 각국의 노래, OTT로 골라볼 수 있는 높은 평점의 영화들. 삶의 여력이야 사람마다 차이가 크지만 소비의 삶은 평행에 가까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에 반해 일상에서 쉼 없이 벌어지는 사건들,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사람들은 마치 밀물과 썰물 같다. 그런 우리 인생에서 엔딩은 멀고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가려면 비상은 필요하다. 세상은 복잡하고 관계는 위태롭고 평평하지 않다.

 


 

그렇게 문득 기우뚱해졌을 때 이 책 『당신 참 멋있다』를 한 권 내밀어보면 이 책이 가진 위로의 힘을 충분히 실감할 것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잔잔하고 평평한 파동과 그 물결에 실린 위로가 이 책에는 가득 차 있다. 그것도 아주 쉬운 말로, 또 우리가 흔히 겪는 감정의 적절한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담고 있다.

우리에겐 ‘시절 인연’이 있고, ‘시절 음악’이 있다. 앞으로도 시절 따라 변함없이 나타날 테고 분명 추억의 한 장면으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할 것이다. 이 책의 구절들이 ‘시절 인연’과 ‘시절 음악’과 함께 ‘시절 구절’이 되기를 저자는 바란다. 그 시절, 그날, 그 시간의 구절을 남기고 또 되뇌고 싶은 독자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고 느끼라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시간이 하락할 때 부담 없이 들춰볼 수 있는 페이지들이 되었으면 하면서. ‘신파’이거나 ‘참신’하거나 관계없이 가슴 짠해지게 말이다.

 

우리 사는 동안에 무수한 인연 중에 단 하나가 되었으니

헛된 꿈을 꾸기보다 살고 있는 이야기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고

네 탓 내 탓 하기보다 우리 함께 해결하자며 진실로 위로해 주고

힘이 들어 흔들릴 때 튼튼하고 촘촘하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밉더라도 티 내지 말고 싸우더라도 먼저 손 내밀며 마주 앉아 속내 터놓고

한순간의 틈이 굳건한 바위를 쪼개지 않도록 믿음을 거스르지 말며

오늘 울어도 같이 울고 내일 웃어도 같이 웃고 서로의 마음을 진실로 이해하며

우리 사는 동안에 무조건 사랑하자.(p.118)

- 「우리 사는 동안에」 중에서

 


 

저자 김현은 〈프롤로그〉를 통해 "인생은 좋아하는 영화를 닮는다"고 말한다. 대세가 바뀌어 버림받은 스파이나 의리를 따르다 배신을 당해 최후를 맞는 갱스터, 주군에게 토사구팽을 당하는 최측근 공신. 그러한 일들은 너무나 현실에 기반한 사실이었음을 모진 세월을 겪으며 알 수 있었고 사랑 역시 그 시련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음을 알았다고 털어놓는다. 허구를 담은 영화로 보고 좋아했는데 어느 날 자신에게 현실로 다가온 영화 같은 이야기들. 그래서 인생은 좋아하는 영화를 닮는다. 남루한 티셔츠에 닳은 운동화를 신고 쓰디쓴 소주 한 잔을 앞에 둔 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무슨 상관이 있냐는 듯 겪어야 했으니 이젠 원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당신이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는 인생이 던진 수많은 시험과 시련에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어.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지.

자랑스럽게 걸고 다녀야 할 전리품들이니까…….

살다 보면 사람이 참 우습고도 싫어질 때가 많지?

그런데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은

그 사람한테도 타격을 주지만 나 또한 타격을 받더라고.

우습게도 싫어하는 사람 생각하느라 정신 에너지랑 시간 허비하는 게 타격이고

삶의 질마저 떨어뜨리는 거지.

(중략)

그저 좋았으면 추억이고 나빴으면 경험이야.

아브라카다브라. 멋있게 살자고.(p.148~149)

- 「당신 참 멋있다」 중에서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하나가 저자의 여린 마음이다. 여린 마음이라 세상의 상처를 누구보다 많이 받고, 많이 받다 면역력도 커졌다. 그래 이젠 다른 사람의 상처를 씻어주고 치유해줄 자체 면역력을 가졌다. 슬픔과 고통, 괴로움과 좌절은 그렇게 저자의 면역력을 키웠으리라. 저자는 평소 독서를 할 때도 소심함이 드러나는 성격이었다. 〈에필로그〉를 통해 고백한다. '내일 하루 읽을 것이 있고 볼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때란 생각을 했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추리소설이라도 딱 멈추고 내일을 위해 살짝 남겨둔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서 '너는 새까만 오지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았는데 그 울림들이 삶에 큰 힘이 되는구나 여기기도 하는 때다고 자신의 성장을 풀어놓는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각오 대신 체념으로

하루하루 맞이하는 우리의 공허함.

힘내라는 말을 매일같이 다른 이에게 하면서

한 번쯤 힘차게 안아 주지 못하는 우리의 건조함.

진심이란 단어는 참 쉽게 쓰면서도

정작 그 마음은 생각조차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무심함.

참을 수 없는 우리의 가벼움.(p.18)

- 「참을 수 없는 우리의 가벼움」 중에서

 


 

저자의 글은 책의 글 전편을 통해 하나의 사실로 수렴되고 있다. ‘당신 참 멋있다’이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책들과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감성 글귀들을 보며 저자는 더는 같은 말을 하지 않는 참신한 글들을 쓰겠다 했었다. 중요할 것 같지도 않은 톤으로 누군가 건넸던 한마디가 가슴에 유난히 남았던 기억처럼 휘발되지 않는 글들을 쓰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은 힘 나는 댓글 같은, 무심해 보여 전혀 뜻밖이었던 사람의 격려와 응원 같은 글들을 말이다. 그리고 댓글처럼 말하고 싶었다. ‘당신 참 멋있다’라고. 그 결심이 실현되고 있다.

 

잡초가 새싹과 꽃들이 서 있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라 생각지 마라.

뿌리로부터 초록으로 먼저 깨어나 눈을 뜰 새싹과 피어날 꽃들을 품는,

봄이 봄답게 하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잡초가 단풍잎과 은행잎이 누울 자리를 줄이는 것이라 생각지 마라.

뿌리로부터 힘차게 손에 손잡고 여름의 태풍과 폭우로부터 토양을 지켜 내

가을을 맞게 하는 고마운 배려를 지녔으니까.

억세고 하찮다고 막사는 인생 같다고 결코 함부로 말하지 마라.

잡초로 인해 더 귀하게 여겨지는 화려한 꽃들과 아름드리 뽐내는 나무들아,

잡초가 살아가는 낮은 자리까지 빼앗지는 마라.(p.161)

- 「잡초」 중에서

 


 

인생은 말줄임표처럼 신중히 침묵하고

인생은 물음표처럼 끝없이 질문하고

인생은 느낌표처럼 한없이 감탄하고

인생은 따옴표처럼 때로는 특별하고

인생은 쉼표처럼 가끔은 쉬어가야 하는 것.(p.63)

- 「인생」 중에서

 

저자 : 김현

 

대학 문예창작과 재학 중에 ‘아동문예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동쪽나라 아동문학상’을 수상했고, 동시집 《우리 둘이》와 《가위바위보》를 출간했다. 감성 시집 《너를 만난 이후에》, 《다음사랑》, 《그대를 만난 날 난 오늘과 같은 내일을 생각합니다》, 산문집으로는 《까까머리 바람났네》, 《사랑하니까 눈물이 난다》, 《고맙다 사랑, 그립다 그대》를 출간했다. 이 책들에 실린 사랑에 관한 글들은 오래도록 회자되고 유명 가수의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이번에 출간한 《당신 참 멋있다》는 작가의 흥미로운 인생 항해 일지이기도 하다.

 

그림 : 줄리아 조(Julia Cho)

 

서울외국인학교(Seoul Foreign School) 1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국내외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열린 여러 미술대회에서 입상하였다. 평소 감성적인 시와 에세이 읽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김현 작가의 《당신 참 멋있다》 글들에서 받은 감동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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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울수록 풍요로운 삶
노혜령 지음 / 한사람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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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울수록 삶은 더 단순해지고 명료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가진 것에 감사하며 의연하게 살면 존재만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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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울수록 풍요로운 삶
노혜령 지음 / 한사람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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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비움'이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과 괴로움이 교차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비우라는 말을 들을 때도 그렇고, 많이 살기 위해서 비우라는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덕담으로 들린다는데 왜 독자에게는 악담으로 들리는 걸까? 독자가 비움에 대해 들은 것도 스무 해가 넘었다. 우리가 잘 아는 법정 스님이 생전에 '무소요'를 가르치셨다고 한다. 무소유는 '갖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구도자 스님으로서는 당연한 가르침이라고만 생각했다.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욕심이고, 남보다 많이 갖고자 한다면 죄악이라고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속세든 구도자들이 사는 절이든 소유는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의 책을 읽었을 때 '무소유'의 본뜻에 조금 다가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 이상을 갖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이해됐다. 마침 다른 책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설명하실 때 후자의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줌으로써 더 이상의 의심은 필요없었다. 독자는 원래 욕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했다. 그리고 원래 가진 것이 없지만 필요한 것까지 갖지 않을 필요는 없다고 나름대로 생각하면 더 이상 무소유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는 것, 보이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마다 "남보다는 적은데 뭘?", "이 정도는 가져야 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함도 인지하게 됐다. 생각이 조금 바뀌자 소유욕은 점점 커졌다. 나이 들어 결혼할 때쯤엔 '남보다 예쁜 배우자'를 찾게 되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자 내 자녀에게 이 정도 해주는 것은 과욕이 아니야, 당연한 의무지'라는 합리화도 더 심해졌다. 그리고 좌절이 올 때 걷잡을 수 없는 욕심이 눈앞에 어른거릴 정도로 뚜렷하게 다가왔다. 예전에 없던 돈 욕심도 자라나고, 먹을 것도 더 먹게 되고, 잠자리도 더 호화로워지기를 바랄 정도가 됐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가 살아온 삶이 그랬다고 고백한다. 법정 스님이 왜 무소유를 가르치셨는지 새삼 느꼈을 때는 많이 늦은 때였다. 생각하기에 너무 많은 것을 가진 후에는 무소유를 실천해야 할 의무감도 없어졌고, 더 많이 벌어서 풍요롭게 살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무소유를 시작하면 돼, 어렵지만 노력하면 가능하다는 조언도 들었다. 이 책 『비울수록 풍요로운 삶』의 의미도 선뜻 한눈에 안 들어온다. 두 번, 세 번 되뇌이고서야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 독자는 이미 선을 넘는 욕심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욕심이란 것은 삶의 수단이란 핑계로 많을수록 좋다는 무한욕심을 갖게 하면서 커진다. 당초 작았을 때 잡지 않는다면 어쩌면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로 커질 수 있는 게 욕심이다. 책의 저자 노혜령은 '마음을 비울수록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의미로 쓴 것으로 읽힌다. “비운다는 것은 적게 소유하며 풍요롭게 사는 일이다.”

저자는 삶의 커다란 위기와 좌절이 찾아왔는데 우리가 지나온 2008 금융 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IMF 때는 독자도 직업에 이상이 생겼고 직접 어려움을 느꼈기에 잘 알지만 2008 금융 위기는 독자와 별 상관 없이 지나왔다. 때문인지 2008 금융 위기를 말하는 것을 들어도 별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남편의 사업이 흔들리고 타격을 받아 주거 보증금만 손에 쥔 채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한 듯하다. "고심 끝에 나 자신에게 내린 처방은 '삶을 단순화하라'는 것이었다"고 책의 〈여는 글〉을 통해 털어놓고 있다.(p.9) 그 질문은 저자에게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위기는 기회로 바뀌게 되었다고 말한다.

"낯선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비워내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할 의무감이 들었습니다."고 쓰고 있다. 적은 돈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책'에서 구하는 답을 찾았다고 말한다. 과정이 많이 생략된 탓에 쉽게 답에 접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른 느낌이다.

 


 

요즘이야 심플 라이프(단순함), 비우는 삶(무소유) 등이 다시 떠오르고 삶의 이유로까지 부각되고 있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교과서에나 나오는 현실 무시한 물정 모르는 소리였다. 그러나 저자처럼 가진 것에 감사하며 소박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사실 글 몇 줄 읽었다고, 책 몇 권 읽었다고 비움이란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 간단하다면 왜 구도자들이 비움의 실천을 강조하겠는가? 책의 지면이 한정돼 있어서 저자는 말로 쓰는 것보다 경험으로 실천했던 것을 책의 주요 내용으로 적었다. 저자는 "단순한 삶을 선택하면 굳이 돈을 더 벌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독자의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사실적이다. 저자는 이로써 생활을 간결하게 만들어 적은 돈으로도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그 기술을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독자도 이젠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며 말 그대로 마음을 많이 비웠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생각도 하게 된 것이다. 마음이 욕심으로 채워져 있다면 돈을 버는 비결이 담긴 책이 아니라면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욕심이 있는 자리에는 욕심 그 자체만으로도 자리는 항상 모자라고 부족하다. 다른 무슨 행위도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관심 밖이다. 만약 이 말에 의심이 간다면 어떤 욕심이 많은지 한 번 생각해볼 것을 독자로서 제안해본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이든 옆에 세워놓고 비교해 볼 것을 권한다. 원래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 한 다른 어떤 것을 채워도 선택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독자의 경험으로 감히 하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많이 소유할수록 삶은 복잡해집니다. 진정한 부는 소유가 아닌 내면의 부입니다."(p.10)

 


 

이 책은 모두 4부로 이뤄져 있다. 1부 〈돈 걱정 없이 살기〉, 2부 〈집〉, 3부 〈음식〉, 4부 〈비움으로 채우는 삶〉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원리는 돈을 굴러가면서 커지고,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자본이 가치 척도의 기준이 되며, 모든 경제 행위는 돈을 벌어야 한다. 이는 기업이 이윤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만큼 명백한 자본주의 원리이다. 그 안의 개인은 돈보다 더 큰 무게를 갖지 못하며 투자된 가치 이상의 돈을 벌어야 가치 있는 인간으로 인정된다. '돈의 노예'란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돈을 위해서는 사람 죽이는 일도 별 의식 없이 행하는 사람도 많이 나온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란 말도 나올 수 있는 이유다. 또 일부는 합리적인 일이라고도 한다. 돈을 벌어서 가치 있는 곳에 쓴다고 말이다. 저자는 돈의 가치를 사회적 통념에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적은 돈으로도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주장이 모순된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독자의 개념에도 딱 들어맞는다. 부의 척도를 '삶에 필요한 만큼 가진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래야 비로소 법정의 무소유 개념에 접근해 갈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니라 필요없는 것을 갖지 말라였다는 의미라고 독자도 이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저자는 2부와 3부에서 집과 음식을 등장시키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집은 뭔가? 집의 목적은 휴식과 치유 또는 자유의 공간이다. 추위와 더위 등 외부 환경이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은 집을 지어 살았다. 물론 그 전에는 집 지을 기술이 없어 동굴이나 나무 밑 등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살았을 것이다. 이 집은 현대적 의미로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원래 목적을 버리지 않았다. 원래 목적에 문명이 발달해 편리함이 추가됐을 뿐이다. 그런데 집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서 많은 것이 변했다.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집의 원래 목적을 버릴 수는 없다.

 


 

3부 음식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움직이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몸에서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에너지가 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 그런데 부가 쌓이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부자들은 쓸 데가 별로 없다. 그러니 먹는 것에 많은 돈을 들인다. 이른바 '맛있는 것'을 찾아 지나치게 먹는 것이다. '탐식'이다. 원래 인간 세상에는 탐식만 없으면 먹는 것이 인간에 골고루 돌아만 간다면 굶는 사람 없이 삶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는 먹을 것이 남아 버리는데도 굶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심지어는 굶어죽는 사람도 많다.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들도 과식은 절대 하지 말라고 말한다. 과식은 만병의 근원이라고도 한다. 무절제한 식습관은 몸을 상하게 할 뿐 자신의 건강에 결코 이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고단백 저칼로리로 일정 기간 문제가 안 되지만 지속할 경우 그것도 병이 된다고 한다. 또 과식 습관은 포만감 부족으로 계속 과식하는 습관으로 굳어질 경우 각종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정신적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의사들은 경고하고 있다. 굳이 단식이나 식이요법 등을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현대인들은 잘 알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 책은 책의 제목에 딱 맞게 욕심에 대해 지나침이 없게 하라는 교훈서라고 읽어도 어색할 게 없다.

저자 : 노혜령

 

미니멀라이프 8년 차 주부로 금융위기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단순한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독서와 재테크에 몰두하며,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면서 적은 것으로도 부족함 없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적게 소유해도 만족할 수 있고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물건을 비울수록 소유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짐을, 식탐을 비울수록 몸과 마음이 건강해짐을 체험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서 알게 된 ‘비움’이라는 단순한 철학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 글을 썼다. 지금도 그녀는 살림을 간소화해 효율적으로 일하고 여가를 즐기며 사는 방법을 생각한다. 풍요로움은 소유보다 존재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말하며 텃밭 가꾸기,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행복한 삶을 지속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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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지음 / 파람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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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니 세상이 보인다는 말은 참이다. 독자가 장요세파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화가의 작품세계와 삶, 성과 속, 소박함과 화려함의 경계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이 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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