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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울수록 풍요로운 삶
노혜령 지음 / 한사람북스 / 2023년 7월
평점 :
독자는 '비움'이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과 괴로움이 교차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비우라는 말을 들을 때도 그렇고, 많이 살기 위해서 비우라는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덕담으로 들린다는데 왜 독자에게는 악담으로 들리는 걸까? 독자가 비움에 대해 들은 것도 스무 해가 넘었다. 우리가 잘 아는 법정 스님이 생전에 '무소요'를 가르치셨다고 한다. 무소유는 '갖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구도자 스님으로서는 당연한 가르침이라고만 생각했다.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욕심이고, 남보다 많이 갖고자 한다면 죄악이라고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속세든 구도자들이 사는 절이든 소유는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의 책을 읽었을 때 '무소유'의 본뜻에 조금 다가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 이상을 갖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이해됐다. 마침 다른 책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설명하실 때 후자의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줌으로써 더 이상의 의심은 필요없었다. 독자는 원래 욕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했다. 그리고 원래 가진 것이 없지만 필요한 것까지 갖지 않을 필요는 없다고 나름대로 생각하면 더 이상 무소유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는 것, 보이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마다 "남보다는 적은데 뭘?", "이 정도는 가져야 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함도 인지하게 됐다. 생각이 조금 바뀌자 소유욕은 점점 커졌다. 나이 들어 결혼할 때쯤엔 '남보다 예쁜 배우자'를 찾게 되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자 내 자녀에게 이 정도 해주는 것은 과욕이 아니야, 당연한 의무지'라는 합리화도 더 심해졌다. 그리고 좌절이 올 때 걷잡을 수 없는 욕심이 눈앞에 어른거릴 정도로 뚜렷하게 다가왔다. 예전에 없던 돈 욕심도 자라나고, 먹을 것도 더 먹게 되고, 잠자리도 더 호화로워지기를 바랄 정도가 됐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가 살아온 삶이 그랬다고 고백한다. 법정 스님이 왜 무소유를 가르치셨는지 새삼 느꼈을 때는 많이 늦은 때였다. 생각하기에 너무 많은 것을 가진 후에는 무소유를 실천해야 할 의무감도 없어졌고, 더 많이 벌어서 풍요롭게 살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무소유를 시작하면 돼, 어렵지만 노력하면 가능하다는 조언도 들었다. 이 책 『비울수록 풍요로운 삶』의 의미도 선뜻 한눈에 안 들어온다. 두 번, 세 번 되뇌이고서야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 독자는 이미 선을 넘는 욕심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욕심이란 것은 삶의 수단이란 핑계로 많을수록 좋다는 무한욕심을 갖게 하면서 커진다. 당초 작았을 때 잡지 않는다면 어쩌면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로 커질 수 있는 게 욕심이다. 책의 저자 노혜령은 '마음을 비울수록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의미로 쓴 것으로 읽힌다. “비운다는 것은 적게 소유하며 풍요롭게 사는 일이다.”
저자는 삶의 커다란 위기와 좌절이 찾아왔는데 우리가 지나온 2008 금융 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IMF 때는 독자도 직업에 이상이 생겼고 직접 어려움을 느꼈기에 잘 알지만 2008 금융 위기는 독자와 별 상관 없이 지나왔다. 때문인지 2008 금융 위기를 말하는 것을 들어도 별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남편의 사업이 흔들리고 타격을 받아 주거 보증금만 손에 쥔 채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한 듯하다. "고심 끝에 나 자신에게 내린 처방은 '삶을 단순화하라'는 것이었다"고 책의 〈여는 글〉을 통해 털어놓고 있다.(p.9) 그 질문은 저자에게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위기는 기회로 바뀌게 되었다고 말한다.
"낯선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비워내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할 의무감이 들었습니다."고 쓰고 있다. 적은 돈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책'에서 구하는 답을 찾았다고 말한다. 과정이 많이 생략된 탓에 쉽게 답에 접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른 느낌이다.
요즘이야 심플 라이프(단순함), 비우는 삶(무소유) 등이 다시 떠오르고 삶의 이유로까지 부각되고 있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교과서에나 나오는 현실 무시한 물정 모르는 소리였다. 그러나 저자처럼 가진 것에 감사하며 소박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사실 글 몇 줄 읽었다고, 책 몇 권 읽었다고 비움이란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 간단하다면 왜 구도자들이 비움의 실천을 강조하겠는가? 책의 지면이 한정돼 있어서 저자는 말로 쓰는 것보다 경험으로 실천했던 것을 책의 주요 내용으로 적었다. 저자는 "단순한 삶을 선택하면 굳이 돈을 더 벌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독자의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사실적이다. 저자는 이로써 생활을 간결하게 만들어 적은 돈으로도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그 기술을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독자도 이젠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며 말 그대로 마음을 많이 비웠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생각도 하게 된 것이다. 마음이 욕심으로 채워져 있다면 돈을 버는 비결이 담긴 책이 아니라면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욕심이 있는 자리에는 욕심 그 자체만으로도 자리는 항상 모자라고 부족하다. 다른 무슨 행위도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관심 밖이다. 만약 이 말에 의심이 간다면 어떤 욕심이 많은지 한 번 생각해볼 것을 독자로서 제안해본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이든 옆에 세워놓고 비교해 볼 것을 권한다. 원래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 한 다른 어떤 것을 채워도 선택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독자의 경험으로 감히 하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많이 소유할수록 삶은 복잡해집니다. 진정한 부는 소유가 아닌 내면의 부입니다."(p.10)
이 책은 모두 4부로 이뤄져 있다. 1부 〈돈 걱정 없이 살기〉, 2부 〈집〉, 3부 〈음식〉, 4부 〈비움으로 채우는 삶〉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원리는 돈을 굴러가면서 커지고,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자본이 가치 척도의 기준이 되며, 모든 경제 행위는 돈을 벌어야 한다. 이는 기업이 이윤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만큼 명백한 자본주의 원리이다. 그 안의 개인은 돈보다 더 큰 무게를 갖지 못하며 투자된 가치 이상의 돈을 벌어야 가치 있는 인간으로 인정된다. '돈의 노예'란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돈을 위해서는 사람 죽이는 일도 별 의식 없이 행하는 사람도 많이 나온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란 말도 나올 수 있는 이유다. 또 일부는 합리적인 일이라고도 한다. 돈을 벌어서 가치 있는 곳에 쓴다고 말이다. 저자는 돈의 가치를 사회적 통념에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적은 돈으로도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주장이 모순된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독자의 개념에도 딱 들어맞는다. 부의 척도를 '삶에 필요한 만큼 가진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래야 비로소 법정의 무소유 개념에 접근해 갈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니라 필요없는 것을 갖지 말라였다는 의미라고 독자도 이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저자는 2부와 3부에서 집과 음식을 등장시키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집은 뭔가? 집의 목적은 휴식과 치유 또는 자유의 공간이다. 추위와 더위 등 외부 환경이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은 집을 지어 살았다. 물론 그 전에는 집 지을 기술이 없어 동굴이나 나무 밑 등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살았을 것이다. 이 집은 현대적 의미로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원래 목적을 버리지 않았다. 원래 목적에 문명이 발달해 편리함이 추가됐을 뿐이다. 그런데 집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서 많은 것이 변했다.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집의 원래 목적을 버릴 수는 없다.
3부 음식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움직이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몸에서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에너지가 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 그런데 부가 쌓이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부자들은 쓸 데가 별로 없다. 그러니 먹는 것에 많은 돈을 들인다. 이른바 '맛있는 것'을 찾아 지나치게 먹는 것이다. '탐식'이다. 원래 인간 세상에는 탐식만 없으면 먹는 것이 인간에 골고루 돌아만 간다면 굶는 사람 없이 삶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는 먹을 것이 남아 버리는데도 굶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심지어는 굶어죽는 사람도 많다.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들도 과식은 절대 하지 말라고 말한다. 과식은 만병의 근원이라고도 한다. 무절제한 식습관은 몸을 상하게 할 뿐 자신의 건강에 결코 이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고단백 저칼로리로 일정 기간 문제가 안 되지만 지속할 경우 그것도 병이 된다고 한다. 또 과식 습관은 포만감 부족으로 계속 과식하는 습관으로 굳어질 경우 각종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정신적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의사들은 경고하고 있다. 굳이 단식이나 식이요법 등을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현대인들은 잘 알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 책은 책의 제목에 딱 맞게 욕심에 대해 지나침이 없게 하라는 교훈서라고 읽어도 어색할 게 없다.
저자 : 노혜령
미니멀라이프 8년 차 주부로 금융위기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단순한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독서와 재테크에 몰두하며,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면서 적은 것으로도 부족함 없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적게 소유해도 만족할 수 있고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물건을 비울수록 소유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짐을, 식탐을 비울수록 몸과 마음이 건강해짐을 체험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서 알게 된 ‘비움’이라는 단순한 철학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 글을 썼다. 지금도 그녀는 살림을 간소화해 효율적으로 일하고 여가를 즐기며 사는 방법을 생각한다. 풍요로움은 소유보다 존재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말하며 텃밭 가꾸기,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행복한 삶을 지속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