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미래를 조형할 새로운 기술의 지평 EBS 과학 교양 시리즈 비욘드
김명철 지음 / EBS 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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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이 발달되어 온 과정을 보면 대체로 발견과 발명의 역사다. 인간이 '불'을 발견한 것이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고, 현재까지 가장 큰 발명은 '전기'로 통칭된다. 불의 발견으로 고기를 구워 먹고 더 많이 먹을 수 있었으며 입안에서 씹는 과정을 통해 생체공학적으로 뇌의 발달을 가져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전기는 에너지 부분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평가돼 왔다. 전기의 발명은 어둠 속에서의 생활을 가져왔고, 이는 여러가지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지금의 컴퓨터도 전기 발명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란 사실은 굳이 관련 전문가나 학계에 묻지 않아도 현대인들은 알고 있다. 전기 발명이 없었다면 트랜지스터도 발명되지 않았을 것이고, 트랜지스터가 없었다면 컴퓨터 칩도 발명할 수 없었을 터다. 이런한 발명품은 우수한 두뇌의 발달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손에 의해 한 치의 오차 없이 발명의 범위를 무한적으로 넓혔다. 지금은 그 범위를 지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주로 확대되고 있다.

 


 

이같이 강력한 에너지는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행복을 열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머리와 손의 진보다. 생물학적으로는 진화에 해당된다. 이 진화는 끝간 데 없이 계속 추구될 것이고 이젠 인류에 의해 발전된 기술이 인류를 통제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마저 생기는 시점에 이르렀다.

역사학자들은 "인류의 역사는 일보 후퇴와 이보 전진이 어우러진 소용돌이의 역사다"고 말한다. 지난 100년간 공학 기술은 과학과 심리학, 철학까지 흡수하며 역사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우리는 기술이 인류의 꿈과 욕망을 먹고 자라 정련되고 융합하며 진화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깨달았다. 이대로 자원을 개발하고 인구를 불리고 땅을 갈아엎어 거대한 도시를 짓고 인간만을 위한 낙원을 만들려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각성을 토대로 이 책은 21세기의 첨단 기술들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 자연과의 공존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점이 저자의 집필 이유다.

 


 

저자나 학계, 전문가 등 세계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에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그 이유가 분명해졌다고 주장한다. 2019년 12월 한 시골마을에서 시작된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몇 달 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 수천만 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백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는 누구나 공공장소에 나설 때 마스크를 써야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원격수업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모임과 행사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게임 플랫폼이나 유튜브를 통해 콘서트와 팬미팅을 하고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로 신작 영화를 본다. 매장에는 인간 직원 대신 무인결제기(키오스크)가 들어섰고 택배 배달 물량은 늘었으며 극장과 전시장은 텅 비었다.

세상은 사회적 접촉을 최소화하는 ‘언택트’ 시대로 바뀌었다. 전 세계인이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교육, 생활, 문화, 경제, 사회, 국제 관계까지 격변하는 과정을 동시에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지 궁금해했고 바이러스의 정체와 방역 과정,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관한 정보를 탐독했다. 제대로 알아야 이해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의 시대가 곧 도래해 우리의 삶이 확 바뀔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실상은 사람들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 말잔치에 불과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2020년 팬데믹을 계기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정보통신 기술과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이처럼 빠르게 언택트 방식으로 전환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제아무리 번성한다 한들 인간 또한 자연선택이 지배하는 생태계의 환경압에 취약한 존재다. 다만 인간에게는 놀라운 공학 기술을 창조할 수 있는 뛰어난 지적 능력이 있으며 그로부터 비롯된 성취가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선상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도록 이끌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바꿔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이 바꿔놓을 미래에 대해 공부하고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전문가의 강연을 듣는다.

 


 

이 책 『우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저자 김명철은 우리 상상력의 무한함을 이끌어내 높은 문명을 이룩한 인류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갈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제공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4차 산업혁명이 불가피하게 앞당겨지는 역설적인 현상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배터리, 자율주행, 웨어러블 로봇, 3D 프린팅, 레이저, 나노 로봇, 생물 모방 기술 등 7개 분야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가며 기술 혁명의 방향을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화석연료 사용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다 효율 높은 에너지원을 찾아내려 노력해왔다. 땅을 개간하고 콘크리트를 끼얹어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인구를 불렸다. 사람들이 살기에는 더없이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만 그사이 지구는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벌목과 개간으로 숲은 사라지고 플라스틱과 각종 쓰레기로 바다는 오염되었다. 자동차와 난방 기구, 공장에서 쏟아낸 미세먼지는 대기의 질을 떨어뜨렸고 이산화탄소는 지구를 온도를 높였다. 온난화는 극지의 얼음을 녹이고 사막화를 가속했으며 지엽적인 폭우를 쏟아부었다. 숲을 파괴하고 야생동물들의 터전에까지 난입한 인간의 욕망이 인류 사회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선진국 대도시에서 더 큰 피해를 낳았다. 인구밀도가 높은 거대 도시가 바이러스나 기후 변화의 역습에 훨씬 취약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환경과 자원을 무작정 섭취하고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빌려 쓰고 가능한 한 원상태를 보존해야 한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자연과의 공존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21세기를 이끌 새로운 철학, 공존의 뉴노멀이다.

 


 

레이저는 인간이 만들어 낸 세상에 없던 빛이다. 레이저는 대기오염을 측정하거나 암세포를 추적해 제거하는 수준을 넘어 5단계 자율주행의 꿈을 이루어줄 도구이자 환상적인 증강현실을 구현하는 만능 연장으로 활용될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레이저를 이용하는 이러한 기술들이 벌써 거의 성취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나노 로봇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 암세포를 제거하는 한편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어치우기도 한다. 인간이 부여한 임무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나노 스케일의 최정예 부대 건설은 아직 이론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과학자들은 오히려 그 점에 더 열광하고 의욕을 불태운다. 우리가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는 나노 기술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더욱 다이내믹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여섯 가지 공학 기술과 다방면으로 결합하고 응용될 수 있는 것이 생물 모방 기술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선택을 겪으며 찬란한 다양성을 이룩한 생명체들은 종의 존망을 걸고 생존의 아이디어를 축적해왔다. 우리는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새로운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특히 자연과의 공존이 뉴노멀이 된 이 시대에 생물 모방 기술은 우리의 따뜻한 상상을 한층 효율적으로 구현시킬 수 있다.

모든 기술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를 무시하고 기술을 남용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악용하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우리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좋은 과정을 거쳐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이 좋은 결과를 낳도록 보살펴야 한다. 아무리 효율적인 엔진을 만든다 해도 기존 엔진에 비해 환경을 더 많이 파괴하고 공해를 증가시킨다면 냉정하게 외면해야 한다. 다소 불편하고 성능이 떨어져도 지구 환경에 더 도움이 되는 기술이 주목받고. 모두가 그런 기술을 소비하고 싶어 한다면 기술은 더 나은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줄 것이다.

 


 

사실 저자 김명철은 심리학자이다.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심리학 관련 학위를 받은 심리분석 전문가이다.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첨단 기술의 미래는 놀랍도록 유쾌하고 흥미롭다. 그러나 저자는 생명체에게 가장 가혹하다는 소금사막을 리튬 산지로 활용하는 인간의 모습을 경이로우면서도 두려운 대상으로 바라본다. 인공위성에서 레이저를 쏘아 지상의 미사일을 격추하겠다는 황당무계한 계획으로 국민을 선동한 정치 캠페인을 비판하고, 웨어러블 로봇의 발전이 근로자에게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할 수도 있음을 우려한다. 반면에 나만의 피규어를 갖고 싶다는 열망에 생소하기 그지없는 3D 프린터에 도전하는 키덜트에게는 격려를 아끼지 않고,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돕기 위해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을 만드는 이들의 선량한 의지를 북돋는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와 영화, 드라마, 책, 게임 등의 콘텐츠를 넘나들며 21세기에 주목할 공학 기술의 기본 개념에서부터 기술이 바꿔놓을 미래상, 연구자들이 갖추어야 할 윤리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런 기술들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통찰을 펼쳐 보인다. 친절한 설명과 재치 있는 글솜씨에 웃음 지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두가 물어야 할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것은 인간이 지구와 공존하는 데 적합한 기술인가?” 저자는 더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앞으로 세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이 기술들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존재이며 그럼으로써 때로는 결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의 본성을 바꾸기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는 옛사람들의 후손이지만 결코 그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은 과거의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목표를 지향한다. 새로운 삶의 목적을 향해, 새로운 문명의 목표를 향해 우리가 이어가는 노력들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다."

 

저자 : 김명철

 

여행을 좋아하고 성격에 꽂힌 심리학자. 서울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성격심리학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는 ‘웃기는 심리학자’로 불릴 정도로 유머와 재치가 넘친다. 성격심리학, 사회심리학 관점에서 창의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관심이 많다. 개성과 성격을 소중히 여기며, 창의성의 원천으로 주목한다. 세상에 나쁜 성격은 없다고 생각하는 심리학자이다. 또한 지식과 사회와 인간이 융합되어 만들어지는 인류 문명의 창조적 진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아시아를 두루 여행하며 심리학과 여행을 결합한 『여행의 심리학』을 썼고, 빅히스토리 『과학과 기술은 어떻게 발전해왔을까?』를 집필했다. 옮긴 책으로 『성격심리학》(공역), 『정서심리학』(공역)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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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 평균 나이 55세, 첫 무대에 오른 늦깎이 배우들의 이야기
안은영 외 지음 / SISO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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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백세 시대'는 요즘 나온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서면서 나왔던 시대의 신조어다. 독자 추정(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지 못해서)으로는 20년쯤 전인 듯 싶다. 물론 100세 시대라 해서 평균 수명이 100세란 뜻은 아니다. 그러나 예전에 백수(百壽)란 미수(米壽)와 같은 뜻으로 쌀 '미(米)'의 문자에서 여덟 팔(八)자가 두 개 들어가서 '88세'를 의미했다. '백세 시대'가 유행어가 된 건 아마도 모 가수의 같은 제목의 노래가 크게 히트 친 이후부터일 것이다. 아무튼 눈부신 의학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난 것은 누구라도 반길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수명이 무조건 늘어난다고 좋은 사회는 아닌 것도 같다. 급격한 고령화가 가져온 사회 문제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 70~80대 노령층은 대체로 자녀를 많이 두지 않았다.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의 시대에 사회 주도층이었던 분들이기에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 지나면 30~40대 부부들은 한 자녀가 많다. 지난해 처음으로 하루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보다 적은 첫 해로 기록된 것으로 이전 세대와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거기에 21세기 들어서는 결혼 자체를 포기하는 청년층이 늘어나 사회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인구와 노령층의 변화는 천천히 연착륙해야 부작용이 적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한 차이를 보여 문제가 된 것이다. 인구 문제야 어떻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살 바엔 잘 살아야 한다.

잘 살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준비는 나이 50, 중년이 시작되는 시기가 적당하다.

 


 

누구나 추하게 늙고 싶지 않다. 잘 늙는다는 건 뭘까.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저자 7인은 오랫동안 꿈꿨던 일을 당장 실행하며 중년을 재미나게 통과하고 있다. 그들이 간절하게 바랐던 일은 바로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금전적, 정신적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이나 시도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럴까. 배우들 7명의 면면을 보자. 일단 그들은 연극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후천적인 지체 장애, 갱년기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 경력단절, 생활고, 이석증, 천식 등을 안고 살아왔다. 오히려 흔히 떠올리는 불행한 사람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렇지만 “우리가 젊음이 없지 흥이 없나, 흥!”을 외치는 유쾌한 중년들이다.

리더 안은영은 연출가인 동시에 나머지 6인을 연극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뭉치게 한 주인공이다. 이 책도 그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7인의 목소리를 하나로 엮은 것은 대표 저자 안은영이다. 각 장은 리더 안은영이 연출 노트라는 이름으로 화두를 제시하고, 이후 6인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쓴 글이 이어지게 구성됐다. 중년들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수록된 연극 연습 장면, 연극 무대 사진 등은 글에 생생함을 더해준다.

배려심을 장착한 긍정의 아이콘 최정주, 치매 걸린 시어머니 보필하다가 뒤늦게 온전한 자신의 삶을 누리는 최상옥,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해 호기심을 잃어버렸다 연극으로 자아실현 중인 김영희, 반전 매력의 소유자 마기원, NG 없는 연기가 특기인 완벽주의자 정호정, 콤플렉스를 날리고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팀의 막내 윤현정까지, 달라도 많이 다르게 살아온 그들이 연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그들은 체력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쭉 무대에 설 예정이란다. 사이다처럼 톡톡 튀는 그들의 연극 노트를 보자. 그들이 무엇을 위해, 중년을 열정적으로 보내는지 알아낼 수도 있다. 더 자세히 보면 당신의 중년으로서의 앞날도 들여다보고 설계할 수 있다. 독자들도 그들처럼 즐거운 중년으로 살아보고 싶다면 찬찬히 읽어보면 영감이라도 받을 수 있음을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한마디로 연극을 통해 성장하고, 삶의 새로운 면을 발굴한 중년 배우들의 땀의 결실이다. 삶의 의지와 노후 대비에도 유효한 삶의 기록이다.

책은 연극의 시작, 과정, 마무리를 순차적으로 서술한다. 첫번째 장은 공동 저자 7인의 그간의 삶을 서술한다. 각자 다른 삶의 굴곡, 가치관 속에서 그들의 상처를 혹은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업적을 늘어 놓고,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을 담아 그간의 삶을 소개했다. 두번째 장은 연극을 시작할 때의 수필들이 담겨 있다. 긴장과 낯섦 속에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소망 하에 사람들은 쭈뼛쭈뼛 하면서도 용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번째 장은 각각의 저자들이 자신의 배역을 소개한다. 강 여사, 황 간호사, 치매 노인, 박영순, 양 선생, 한 선생. 자신의 인생을 담아, 과거를 반성하면서, 혹은 누군가를 이해하면서 점차 교훈을 얻어 가상의 인물을 이해해 나간다. 네번째 장은 연극의 준비과정, 어려움과 고난을 담았다. 사람들과의 다툼, 의견 불일치, 연극과 생활의 조율. 이러한 과정 속에서 조별과제가 생각나 아찔했다. 다섯, 여섯 번째 장은 무대 상연과 그 후의 변화을 다룬다. 그간의 노력과 고난들이 작품으로 실현되는 순간, 배우들은 삶의 생동감, 벅참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 이후의 배우 생활로, 또 다른 도전으로 연결된다.

 


 

50대, 60대, 70대. 그 이후의 나이쯤 되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독자로서는 가늠이 안 된다. 젊어서가 아니라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란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 때쯤 나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지만 중년에 들어선 지금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불만 때문인지 두려움만 앞선다. 그 두려움은 의욕 상실로 이어진다. 독자의 대부분의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온다. 나는 무언가를 이루어 놓고 있을까? 건강은 괜찮을까?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돈은 부족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 능력이 뒷걸음치기 시작하고 있다. 나는 겁 먹지 않을 수 있을까? 막연한 질문이지만 현실적으로 감당하기에 힘들어 두려움을 회피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쓰고 있지 않을까. 중년이 들어섰는데도 노년과 관련된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어렵다. 더욱이 급격히 변한 기술, 환경, 사회상의 차이로 일치점을 만들기 어렵다. 중년은 그만큼 어려운 시기다.

인생 1막을 갈무리하고 2막을 살아가며 3막을 준비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버겁다. 아니, 두렵다고 말하는 게 정직한 표현이다. 독자는 이 때문에 이 책을 그렇게 읽으려 별렀는지 모른다. 중년은 어렵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왜 연극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매달렸는지 책을 다 읽은 후에야 겨우 감이 잡힌다. 큰 소득이다. 책 한 권 읽은 것치고는 과분한 보상이다.

 


 

이 책은 중년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깨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간 살아온 삶의 생채기들이 ‘고집’이라 불리는 편견을 만들었다. 독자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들이 과거의 아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일, 돈, 사람, 사랑, 직업 등등 세월을 겪으면서 이런 저런 일을 겪다 보면 사람은 점점 바뀌어 간다. 그들의 삶을 모두 알거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중년의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가지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결국 이 책은 중년도 언제나 마음 먹으면, 기회를 잡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도전과 역경, 성취와 실패는 사실 젊은이들을 나타내는 주요 단어라고 생각했다. 사회는 이러한 과정을 청년들에게 요구하고, 또 청년들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사회 속에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사람들이 사는 사회의 시스템이다. 중년이 도전하고, 계속 배워 나가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쉬운 배움이 아니다. 이 책의 교훈, 메시지를 읽으려면 찬찬히 읽어나가면 가능하다. 같은 중년에게도 힘을 줄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중년의 중요성과 해야 할 일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번엔 무대 양 끝에서 천사 두 명이 흰 천을 휘날리며 등장했다. 강렬한 레퀴엠과 함께 진혼무가 펼쳐졌다. 판타지 속 인물들 같은 천사들이 떠나가자 3막의 영순이가 무대를 장악했다. 69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은 다름과 같은 극중 인물 영순의 독백으로 강한 울림을 준다.

"사람들이 꼭 뭘 해야만 쓸모가 있고 그래야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고 믿어요.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네,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믿어요."(p. 69)

 


 

일곱 명의 배우들은 연출부터 스탭, 행정팀의 역할까지 모든 것을 맡아 한다. 군말 없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멤버가 해야 할 일이라서 스스로 나서서 일한다. 멤버십 강화에도 좋고 믿음과 사랑이 함께 차곡차곡 쌓여서 서로간에 눈빛만 마주쳐다 할 말이 무엇인지, 뭘 원하는지 알 정도다. 그들 각자의 이력은 별 내세울 게 없다. 그래서 한 글자 한 글자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7명의 배우들의 힘찬 내일을 위한 파이팅을 기원하면서 여기에 싣는다.

 

김영희

내일모레면 예순이 되는 이팔청춘. 어린 나이에 경제적 가장 역할을 짊어지느라 잃어버렸던 호기심과 자유분방함이 갱년기와 함께 대폭발 중이다. 머리 터지게 ‘나’를 찾는 중에도 불굴의 의지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현재는 논술 과외 선생으로 활약 중. 연극에 발을 내디디며 예술 감수성이 솟아나기 시작했고 몸 연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 중이다. 연극판에서 만난 사람들이 참 좋아서 오래도록 함께 수작하고 싶단다. 오늘도 시적(詩的)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마기원

하얀 얼굴과 긴 목선, 영락없는 여배우의 실루엣에 속으면 안 된다. 그는 언제나 반전을 안겨준다. 화려한 스펙을 떨쳐낸 채 동두천에서 새벽 출근하는 요양보호사로, 고단한 몸 이끌고 연극연습장으로 달려 나오는 건, 역할을 맡아 무대조명을 받는 것보다 동료 배우들 만나는 재미가 더 좋아서란다. 하지만 아나운서 뺨치고도 남을 목소리와 발성, 명확한 감정표현으로 무대 중심을 꿰찼다. 전직 영어 강사로서 뒤풀이 때 주사를 영어로 하는 엉뚱 발랄 캐릭터.

안은영

숨길 수 없는 예술가 기질이 있는 건지 대단히 예민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기다려주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다. 특히, 누군가의 눈이 밝아지고 삶이 달라지는 순간, 황홀해 한다. 10여 년 전의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재활 중에 첫 책 『참 쉬운 시 1 - 무명본색』을 펴냈다. 무모하게 도전하고 꿈을 현실화하는 재주 덕분인지, 54세에 치유적 글쓰기 강사, 표현력UP훈련 강사, 연극연출가, 극작가, 초단편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엔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자로 출연했다.

 


 

윤현정

소싯적에 미스코리아 감이란 소리 좀 들었던 여자. 지금은 외모의 망가짐을 불사하는 연기파 배우로 무대에서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 일상에선 우아한 화법과 태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랫동안 가정살림꾼으로만 살다가 쉰 살 다 돼서 연극과 표현의 세계를 만나, 숨어있던 코믹 본능과 미적 감각이 튀어나오는 중이다. 공연 시 의상 및 분장 스텝으로도 활약한다. 1년여의 글쓰기 작업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보여준 그는 이제 두 번째 도약을 꿈꾼다.

정호정

드러내길 꺼리면서도 조명이나 카메라 앞에선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NG 없이, 탁월한 생활연기까지 얄미울 정도로 소화해내는 여우과 배우. 하지만 남모르게 엄청난 땀을 흘리는 노력형 여우. 돌직구를 입에 달고 사는데도 주변의 환대와 호감을 퍼담는 예측불허 돌아이 캐릭터. 상상 불가의 독서량을 쌓아온 그는 글쓰기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여행 에세이와 역사 동화책을 집필 중이다. 천식, 공황장애, 우울증을 앓았지만, 연극을 하면서부터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

최상옥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해낸다. 그것도 동시에 여러 가지를 용광로 급 열정으로. 치매 시어머니를 10년 넘게 모신 후로는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덕분에 등단 시인, 심리상담사, 치매 가족 전문강사, 사회적기업 직원, 보드게임 강사, 늦깎이 배우 등으로 불리며 펄펄 날아다닌다. 틈틈이 그림동화를 쓰고 산과 들로 놀러 다니는 에너자이저.

나이 오십 넘어 만난 연극무대를 열렬히 사랑한다.

최정주

나이 가늠이 안 되는 외모에 상쾌한 웃음, 세련된 패션 감각까지 갖춘 멋쟁이 중년. 늘 주변을 챙기는 배려의 아이콘이자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두려움 없는 맏언니. 스무 살 이후 20년은 간호사로 또 20년은 전업주부로 지냈다. 이젠 노래, 춤, 악기연주, 운동, 연기, 여행을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누리는 중이다. 연극을 향한 애정으로 누구보다 먼저 대본 암기를 완료하고 연습실엔 일찍 도착한다. 참별난극단 B2S 단장인 그는 배우 송강호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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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특별판 리커버 에디션, 양장) -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 75
장원청 지음, 김혜림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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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심리학이 언제부터 우리 생활 공간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지난 한햇동안 심리학 책이 부쩍 늘었다는 것은 큰 서점이 정기적으로 집계하는 판매부수를 분야별로 정리해놓은 기사를 접한 적이 있어 심리학 관련 많은 책이 저술되고 번역돼 국내에 많이 나왔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인간은 각자 삶을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 또한 각각 다르다. 인간은 자신의 기준과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가정, 직장, 사회, 국가를 형성해왔다. 이렇게 이루어진 조직은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친밀해지기도 하고, 적대시하기도 한다. 또 사회 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사고 팔지에 대한 투자와 소비, 그날의 감정 조절을 어떻게 할지 등 수많은 문제에 부딪친다.

특히 인간의 심리 상태는 의식적으로 숨겨도 말과 글, 행동이나 표정 등에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이것을 잘 파악하면 상대에 비해 우월적 위치를 좀더 쉽게 점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즉 심리학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발전시킨 학문이 아니라 경제 생활에서 더 많은 소유를 하기 위해 발전된 학문이라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심리학을 잘 알지 못하면서 심리학의 이용도를 보고 판단한 독자의 잘못일 수도 있다.

최근 심리학에 관한 책이 엄청 많이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 팬데믹에 의한 영향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루가 멀다하고 각각의 시점에서 학자가, 전문가가, 경영인이 책을 내기도 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학문인 것처럼. 심리학은 별로 신뢰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던 독자가 꽤 의독적인 제목의 책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를 펴든 이유다.

 


 

이 책은 인간 심리와 관련된 최신 연구 결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75가지를 중국인 저자 장원청(심리와 경제 분야 도서 저술가, 번역가)이 정리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취를 이루는 방법부터 행복을 위한 심리법칙까지 살아가는 데 꼭 알아둬야 할 인간 심리법칙이다. 이 책은 세상을 살다가 뜻밖의 고난과 부딪칠 때, 내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나와 타인의 심리 속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를 알아내 대처할 수 있게 해주고, 단점을 장점으로 끌어올려 성공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법칙을 소개한다. 또한 인간관계를 술술 풀리게 하기 위한 심리기술과 평범함을 넘어서는 탁월함은 어디서 오는지도 알 수 있다. 자아 인식, 인간관계, 투자와 소비, 행복, 직장 생활, 감정 조절 등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에 심리학이 답한다. 그밖에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깨달음을 주는 내용이 가득하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확대되고 사람의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저자 장원청이 이 책을 쓴 이유도 명쾌하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사람의 마음도 세상도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다. 수많은 문제 앞에서 막막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복잡한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이 책을 쓰게 됐다. 수많은 심리 법칙은 무엇보다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 물정을 이해하는 데 크나큰 도움을 준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당신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심리학적 효과를 의심하지 마라. 이 책은 당신을 괴롭히는 인생의 문제들을 잘 설명해줄 것이다. 이 책으로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여 행복한 삶에 한 발 더 다가가기를 바란다."

심리학의 쓸모를 최대한 살린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는 중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수많은 독자의 관심을 끌어 15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수십만 개의 독자 리뷰가 달리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저자는 다양한 심리법칙들을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들어가면서 쉽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실용적이다. 그리고 몇 가지 분야에 편중된 심리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계발부터 인간관계, 상대방을 설득하는 법, 금융투자 시스템 속에 숨어 있는 심리적 함정,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행복을 찾는 법까지 다양한 내용을 폭넓게 다룬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며 자신의 마음은 물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까지 흥미진진하게 깨닫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싶다면 자신 있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일례로 책 중에 '통제의 환상'이란 심리 법칙이 있다. 통제의 환상이란 객관적으로 외부 환경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을 말한다.

저자는 '통제의 환상'에 빠지면 안 된다며, 직감으로 내린 결정은 그저 직감일 뿐이고, 이성적인 의사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복권이 이미 번호가 인쇄돼 있는 것을 고르는 것보다, 기계가 자동으로 선택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숫자를 고르면 당첨 확률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복권은 확률로 당첨되는 게임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파악하면 그 사람은 복권을 절대 사지 않을 것이란 문제는 별도다.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계획하지 않은 행동을 자꾸 반복한다. 자신의 마음이 왜 원래 의도와는 다른,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자꾸 이끄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면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또 사회생활에 수반되는 인간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매끄럽게 대화를 풀어가고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를 얻어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꾸 상대방의 말에 따라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상대방은 인간 심리의 비밀과 근본 원리를 잘 이해한 상태에서 접근하는데 순진하게 마음이 가는 대로 대응했다가는 자신이 원하는 바와 상관없이 휘둘리기만 할 뿐이다.

심리학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 무기가 됐다. 심리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 심리의 작동 원리와 그 비밀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다양한 심리 현상을 설명해준다. 썸을 타는 연인이 있다면 상대방이 왜 좋은지,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고, 직원을 둔 사장이라면 조직 구성원이 임금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생산성을 올리는 데 쌓인 감정을 푸는 것이 왜 중요한지, 정말 간절한 부탁을 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927년 미국의 서던 회사는 세계 최초로 편의점을 설립했다. 그리고 1946년에는 ‘7-Eleven’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는 매장의 영업시간이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라는 것을 뜻했다. 1974년 이토요카도는 편의점을 일본에 도입해 영업시간을 365일 24시간으로 바꿨다. 이후 이러한 24시 편의점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이렇게 365일 영업하는 상점은 일반 슈퍼마켓보다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조명, 저녁 교대근무 직원의 급여, 재고 관리자의 초과 근무 수당 등으로 인해 실제 이윤율은 일반 슈퍼마켓보다 낮았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상점들은 왜 여전히 새벽 운영을 유지하는 걸까? 이것은 심리학에서 ‘의존성 법칙’과 관련이 있다. 의존성 법칙은 인간 사회의 기술 발전이나 제도의 변화가 물리학의 관성처럼 일단 어떤 경로로 들어가면, 이 경로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물리 세계처럼 인류 사회에도 수익 증가와 자기 강화 체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면, 마치 돌아오지 않는 길을 걷는 것처럼 관성의 힘은 이 선택을 끊임없이 강화하고 쉽게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24시간 편의점은 의존성 법칙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고객들은 일상용품을 살 때 자기가 제일 익숙한 가게에 가고 자신의 요구에 맞는 가게를 한 번 선택하면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인 토마스 모리아티는 경마장의 도박꾼에게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한 도박꾼이 자신이 고른 말에 판돈을 걸면 그는 곧 이 말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며 이 말은 틀림없이 모든 말 중 최고일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리아티는 우리가 어떤 결정 혹은 선택을 하면 자신이 내린 결정 혹은 선택을 합리화하고 그에 부합하도록 스스로에게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모리아티는 한 가지 실험을 계획했다. 그는 바닷가에서 무작위로 20명의 관광객을 고른 후 한 연국원을 도둑으로 위장하여 바닷가로 내보냈다. 그러고는 그가 선택한 관광객 앞에서 자고 있는 또 다른 관광객의 지갑을 하나씩 훔쳐 가도록 했다(물론 잠자는 관광객 역시 연구원이었다). 그 결과 20명의 관광객 중 단지 4명만 용감하게 도둑을 제지했다.

이어서 모리아티는 실험 내용을 조금 바꾸어 다시 진행했다. 피해 관광객으로 가장한 연구우너은 잠들기 전 피실험자에게 자신의 지갑을 살펴 달라고 간단하게 부탁했다. 피실험자가 이에 대해 승낙한 수 '도둑'이 등장했다. 이번엔 20명의 피실험자 중 19명이 용감하게 '도둑'의 절도 행위를 제지했다.

이에 따라 모리아티는 우리가 한 가지 결정(승낙) 후 취하는 행동은 자신도 모르게 기존의 약속에 따라 진행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를 '대답 일관성의 원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경제학 용어 중에 '박리다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소비심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모두가 진리라고 여긴 이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한 사람이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자신의 저서인 『유한계급론』에서 박리다매와는 정반대의 개념을 제시했다. 상품의 가격이 비쌀수록 소비자의 구매욕이 더욱 상승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가리켜 '베블런 효과'라고 한다.

베블런 효과가 나타난 주요 배경으로는 20세기의 소비주의를 꼽을 수 있다. 구매자의 소비행위가 단순히 물질적 만족이 아닌 대부분 심리적 만족감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고급 차를 구매하며 높은 지위를 과시하고 명화를 사들이며 고상한 취미를 자랑하는 등 몇몇 제품은 베블런 효과가 현저하게 드러났다. 과시욕을 만족시키는 사품일수록 가격이 비싸도 수요는 증가했다. 상품의 가격이 곧 구매자의 부와 지위를 드러내는 유일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행태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중략) '좋은 물건이라서 비싸다.'라는 일반적인 논리가 소비자의 관점에서 심리학적으로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특히 자유 경쟁 시장에서 가격은 상품의 가치를 드러내는 수단이자 품질을 보증하는 근거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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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역사가 되다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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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주인공은 여성이고, 여성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저자의 탐구와 고찰을 더해 세기의 사랑 일곱 가지 색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1인칭시점 소설이다. 큰 얼개는 사실이고 세부적인 대화 등은 저자의 상상이 가미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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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역사가 되다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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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인격적인 교제, 또는 인격 이외의 가치와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특히 미움의 대립개념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근원적인 생명적 원리로는 그러한 것도 포괄한다. 사랑은 역사적·지리적으로, 또 교제 형태에서 여러 양상을 취한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사랑은 에로스로 불렸는데, 이것은 육체적인 사랑에서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동경·충동을 포함한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사랑, 즉 아가페는 인격적 교제(이웃에 대한 사랑)와 신에게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이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자기희생에 의하여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르네상스에서의 사랑은 또 다시 인간 구가(謳歌)의 원동력으로 보았으나 이것은 사랑의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공업화가 진척되어 가는 현대는 그 경향을 차차 강조한다.

사랑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라는 데서 힌두교에서의 카마, 유교에서의 인(仁), 불교에서의 자비 등 모든 문화권에서 보인다. 또한 사랑의 표현방법은 한결같지 않으며 성애(性愛)와 우애·애국심·가족애 등 교제 형태에 따라 다르다. 교제관계가 치우칠 경우에는 이상성애(異常性愛)나 증오에 가까운 편집적(偏執的) 사랑으로 변할 수 있으나, 이것은 이미 사랑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두산백과의 풀이다. 독자가 굳이 사전의 해석을 서두에 올리는 것은 최근 사랑에 대한 개념이 너무 혼탁해지는 느낌이어서 명확한 구분을 위해서다. 이 책 『사랑, 역사가 되다』에서의 사랑은 분명 에로스의 개념이다. 이것은 깊어질수록 아가페로 발전될수도, 편집적 사랑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자 함이다.

 


 

저자 최문정 작가는 '머리말'을 통해 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가지 사랑의 개요(槪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세기의 사랑은 내 주변의 사랑과 다를 거라 생각했다. 다르긴 했다. 부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그들의 사랑은 내가 가진 이상적인 관념을 완벽하게 깨뜨렸다. 레너드 울프는 성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하면서 버지니아 울프와 결혼했다. 결혼의 기본 관계에 대한 상식 따위는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지 못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가족들이 반대하자 로버트 브라우닝과 몰래 결혼해서 도망친다. 오노 요코와 심프슨 부인의 사랑은 사랑의 가장 기본원칙인 신뢰를 깨뜨리는 불륜에서 시작되었다. 세상이 손가락질했지만 그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정략결혼으로 시작했다. 프리다 칼로는 끊임없이 바람피우는 디에고 리베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맞바람을 피웠다. 세기의 사랑이라 불리는 그들의 사랑은 치정 불륜 막장극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세기의 사랑이라 불린다. 그들의 사랑을 반가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그들이 함께하는 걸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의문과 불신을 신뢰와 선망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 울프의 월경 주기까지 신경 쓸 정도로 버지니아 울프의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로버트 브라우닝은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유명세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함께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방 안에서 꼼짝도 못 하던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아이를 낳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오노 요코는 자신을 하찮은 스토커로 취급하는 존 레논을 미친 듯이 쫓아다닌 끝에 그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한다. 에드워드 8세는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영국의 왕위를 버렸다. 앨버트 공은 아이를 싫어하는 데다 늘 바쁜 빅토리아 여왕을 대신해 육아와 살림을 맡았다. 프리다 칼로는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른 디에고 리베라와 결국 재결합했다.”

- 〈머리말〉 중에서

 


 

저자는 일곱 가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며 '맺음말'에서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보기에 따라 세기의 사랑일 수도, 막장극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글을 썼다는 것을 독자에게 밝힌다. 그러나 독자들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소망하는 것들 가운데 사랑과 행복 그리고 행운에 대해 자신을 돌아보는 뜻 깊은 계기가 될 것이다고 덧붙인다.

 

“진정한 사랑은 기적처럼 드물지도 모른다. 그 기적의 기회가 나를 비켜 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사랑이라는 기적이 어디에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니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나처럼 다시 사랑을 믿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니까.”

- 〈맺음말〉 중에서

각 편의 소설이 끝나고 후기 형식의 〈그 뒤의 이야기〉와 〈연보〉, 평균 35컷의 도판 자료(총 257컷)와 함께 등장인물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까지 펼쳐 보이고 있다. 또한 전체 2도 인쇄와 일부 컬러 인쇄(프리다 칼로)로 제작하여 읽는 재미를 더했다.

 


 

그러나 압권은 일곱 가지 사랑의 주인공으로 직접 저자 자신을 투영시킨다. 1인칭 시점으로 세기의 스캔들의 주인공 일곱 명에 감정이입이 되어 더더욱 진한 여운을 준다. 먼 나라의 남의 이야기 같은 일들을 일곱 편의 연작소설로 엮어 마치 저자의 자전소설처럼 읽히는 독특한 작품이 탄생했다. 역사적 사실을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훨씬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역사소설에서는 잘 쓰이지 않은 소설기법이다. 소설은 '허구'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저자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해설하는 듯한 인상을 줄 때 독자들을 설득할 만한 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자칫 소설이라는 점을 내세워 역사적 사실 자체를 훼손하는 것은 아무리 작가의 상상력이라 하더라도 칭찬 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선정한 일곱 가지의 사랑은 색깔은 아래와 같이 표현된다. 일곱 가지라 하여 무지개색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무지개색처럼 저마다의 다른 특성은 있지만 '사랑' 앞에서는 한 가지 색일 뿐이다. '자기 희생'의 색깔.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서 사랑해 주세요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하얀 웨딩드레스 - 빅토리아 여왕

마지막 편지 - 애덜린 버지니아 울프

심프슨 블루 - 베시 월리스 워필드 스펜서 심프슨 윈저 공작부인

세상에 없는 아이 - 가네코 후미코

아홉 개의 화살 - 프리다 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예술가 - 오노 요코

 


 

일곱 가지 사랑은 테마별로 구분된 것도 아닌 듯하고 작가의 임의 선정으로 봐야 할 터 어떤 사실을 어떤 상상력으로 엮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지는 작가의 능력에 달린 일이다. 독자는 이 가운데 가장 에로스적인 사랑과 적과의 사랑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 그야말로 인간 본성에 의한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선 아래 사진과 함께 일제강점기의 박열(독립운동가)과 일본여인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이 가슴 아프고 절절하다. 사랑을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지고지순한 사랑, 희생적 사랑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박열과 어떻게 만났는가?” 박열은 나와 함께 세이소쿠영어학교에 다녔다. 그와 만난 건 늦겨울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벌써 봄이 온 것만 같았다. 첫사랑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과거의 상처까지 노곤하게 감싸 주었다. 그의 나이 스물, 내 나이 열아홉. 그해 봄 우린 도쿄의 신발 가게 2층 다다미방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내가 제시한 ‘공동 생활 서약’에 박열은 기꺼이 동의했다. (중략)

하지만 박열은 달랐다. 무정부주의에 대해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다가도 돌아서서는 조선의 독립에 관해 눈을 반짝였다. 박열을 처음 사랑하던 그 순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박열의 식민지 조선 독립운동에 휘말릴지 모른다고. 아무리 독립운동이 나의 사상에 반하는 것일지라도. 나는 박열을 사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타인이 될 수 없었다. 사랑하는 박열 속에는 이미 나 자신이 들어 있었다. 사랑은 자아의 확대를 의미했다. 박열이 사랑하는 조선을 나도 사랑해야만 했다.

- 「세상에 없는 아이(가네코 후미코)」 중에서

 


 

불세출의 가수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사랑은 에로스적이다. 물론 두 사람의 감정에 독자가 개입할 필요는 없지만 곁으로 드러난 사실과 모습은 두 사람 사이가 열정적 사랑을 보여주는 본보기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격렬하고 치열하다. 상대의 어떤 다른 조건을 구분하지 않고 오롯이 서로를 온몸으로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다. 저자의 1인칭 시점으로도 이러한 두 사람의 감정이 잘 드러난다.

 

아무도 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가 날 떠나갔다. 상관없었다. 세상 모두가 떠나도…. 나에겐 존이 세상이었으니까. 상관없었다. 누구의 비난도, 누구의 조롱도. 나에겐 존만이 중요했다. 나의 별, 나의 스타, 존. 존은 나의 유일한 별이었고, 난 그 별을 도는 행성이었다. 존은 나의 태양이었고, 난 태양에 묶인 지구였다. 너무 뜨겁다고 태양을 멀리할 수 없듯이, 너무 눈부시다고 태양을 가려 버릴 수 없듯이 난 존 없이 살 수 없었다. (중략)

내가 전남편들에게 준 상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아파도 울지 않았다. 내가 그랬듯이 존도 자기 사랑에 솔직할 권리가 있었다. 잃어버린 주말의 시작이었다. 난 존을 완전히 떠날 수 없었다. 술과 마약, 폭력과 난동만이 존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존은 벌써 모든 걸 가지고 있었다. 돈도 명예도 성공도. 존은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었다.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팬들, 항상 그와 작업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 언제든 섹스를 제공할 준비가 된 미인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아내인 나까지.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예술가(오노 요코)」 중에서

 


 

에드워드 8세와 베시 월리스 위필드 스펜서 심프슨 윈저 공작부인과의 사랑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애절한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점을 생각해보면 시공을 초월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의 사랑은 어느 정도였을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좋은 독서가 되었다.

 

영국 국민들이 나를 싫어할 이유는 많았다. 나는 영국인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고, 이혼 경력도 있으며, 그때까지도 심프슨이라는 남자와 이름을 공유하는 유부녀였다. 그들은 그저 내가 부러운 것뿐이었다. 시기심, 질투심… 우스웠다. 그런 악한 감정은 사랑을 파괴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이 깊은 만큼 우리의 사랑에 대한 거부감과 반항심도 깊었다. 영국 국민은 날 싫어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영국 국민은 나를 공식적인 영국의 왕비로 맞아들이느니 차라리 왕실을 없애라고 요구했다. (중략)

엘리자베스 왕비는 내 이름조차 불경스럽다는 듯 나를 ‘그 여자(that woman)’라고 불렀다. 아무리 엘리자베스가 왕비라 해도 난 손윗동서였다. 그들이 날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들을 인정할 필요가 없었다. 난 엘리자베스 왕비를 미세스 템플(Mrs. Temple)이라고 불렀다. 남들이 물으면 템플(사원)처럼 심지가 굳건하다는 뜻이라고 변명했지만, 사실 그 똥고집이 싫어서 비꼬는 거였다. 게다가 엘리자베스는 셜리 템플과 비슷하게 생겼다. 기분이 좋을 때면‘쿠키’나 ‘케이크’라고 불러 주기도 했다. 엘리자베스의 취미는 과자 굽기였다. 엘리자베스도 두 딸도 과자 먹기가 또 다른 취미였다. 취미 덕분에 모두가 참으로 통통했다. 사람은 부유할수록 좋고 몸은 날씬할수록 좋다는 내 가치관과는 어긋난 취미였다.

- 「심프슨 블루(베시 월리스 워필드 스펜서 심프슨 윈저 공작부인)」 중에서

 


디에고와의 재결합을 상징하는 그림 <뿌리, 왼쪽>과

디에고가 프리다 칼로를 위로하기 위해 그린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과 벌새>.

 

"틀린 사랑은 없다, 다른 사랑이 있을 뿐."

위에 소개된 일곱 가지 사랑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비난 받을 일 없는 사랑의 스캔들이다. 스캔들이 추문을 의미하지만 이것은 추문이 아니다. 뒤에 스캔들이라고 붙인 사람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셕해 폄훼된 것들이다. 일곱 가지 사랑은 모두 에절했고, 순수한 인간의 사랑 그 자체였다. 권력, 돈, 명예 등 세속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 앞엔 한낱 꿈처럼 허무한 것들이다. ;일곱 개의 사랑에 대한 저자의 고찰;이라고 별제(別題)를 붙여 저자에게 선물하고 싶다. 사랑꾼 저자의 면모를 과시한 작품이라 특별한 애정이 간다. 그리고 깊고 숭고한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의 기회를 준 데 대해 독자로서 뜨거운 감사를 표한다. 그의 건필을 기원한다.

 

저자 : 최문정

 

최문정(본명 유경愈景) 작가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조기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최문정 작가는 여성과 가족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삼대에 걸쳐 세 여자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과정을 통해 애절한 모성애를 그린 『바보엄마 1, 2』(SBS-TV 주말드라마로 방영)와 발레리나인 딸과 군인 아버지의 오래된 갈등과 뜨거운 화해를 그린 『아빠의 별』, 불우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네 자매의 뜨거운 우애를 다룬 『허스토리』(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가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백제의 딸이 일본의 태양신이 되었다는 도발적 팩션소설 『태양의 여신 1, 2』(원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있다. 에세이로는 지치지 않고 사랑을 위해 싸웠던 세기(世紀)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 닿지 못해 절망하고 다 주지 못해 안타까운』, 『나를 찾아 떠난 스페인』(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등 10여 권이 있다.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 편』의 최문정 작가는 오랫동안 『조선왕조실록』을 관심 있게 읽어왔다. 그러던 중 ‘성공한 자가 아니라 실패한 자의 시각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작가는 나쁜 남자에 이어 좋은 남자, 나쁜 여자, 좋은 여자 편도 쓸 계획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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