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역사가 되다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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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인격적인 교제, 또는 인격 이외의 가치와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특히 미움의 대립개념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근원적인 생명적 원리로는 그러한 것도 포괄한다. 사랑은 역사적·지리적으로, 또 교제 형태에서 여러 양상을 취한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사랑은 에로스로 불렸는데, 이것은 육체적인 사랑에서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동경·충동을 포함한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사랑, 즉 아가페는 인격적 교제(이웃에 대한 사랑)와 신에게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이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자기희생에 의하여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르네상스에서의 사랑은 또 다시 인간 구가(謳歌)의 원동력으로 보았으나 이것은 사랑의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공업화가 진척되어 가는 현대는 그 경향을 차차 강조한다.

사랑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라는 데서 힌두교에서의 카마, 유교에서의 인(仁), 불교에서의 자비 등 모든 문화권에서 보인다. 또한 사랑의 표현방법은 한결같지 않으며 성애(性愛)와 우애·애국심·가족애 등 교제 형태에 따라 다르다. 교제관계가 치우칠 경우에는 이상성애(異常性愛)나 증오에 가까운 편집적(偏執的) 사랑으로 변할 수 있으나, 이것은 이미 사랑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두산백과의 풀이다. 독자가 굳이 사전의 해석을 서두에 올리는 것은 최근 사랑에 대한 개념이 너무 혼탁해지는 느낌이어서 명확한 구분을 위해서다. 이 책 『사랑, 역사가 되다』에서의 사랑은 분명 에로스의 개념이다. 이것은 깊어질수록 아가페로 발전될수도, 편집적 사랑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자 함이다.

 


 

저자 최문정 작가는 '머리말'을 통해 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가지 사랑의 개요(槪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세기의 사랑은 내 주변의 사랑과 다를 거라 생각했다. 다르긴 했다. 부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그들의 사랑은 내가 가진 이상적인 관념을 완벽하게 깨뜨렸다. 레너드 울프는 성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하면서 버지니아 울프와 결혼했다. 결혼의 기본 관계에 대한 상식 따위는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지 못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가족들이 반대하자 로버트 브라우닝과 몰래 결혼해서 도망친다. 오노 요코와 심프슨 부인의 사랑은 사랑의 가장 기본원칙인 신뢰를 깨뜨리는 불륜에서 시작되었다. 세상이 손가락질했지만 그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정략결혼으로 시작했다. 프리다 칼로는 끊임없이 바람피우는 디에고 리베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맞바람을 피웠다. 세기의 사랑이라 불리는 그들의 사랑은 치정 불륜 막장극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세기의 사랑이라 불린다. 그들의 사랑을 반가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그들이 함께하는 걸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의문과 불신을 신뢰와 선망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 울프의 월경 주기까지 신경 쓸 정도로 버지니아 울프의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로버트 브라우닝은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유명세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함께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방 안에서 꼼짝도 못 하던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아이를 낳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오노 요코는 자신을 하찮은 스토커로 취급하는 존 레논을 미친 듯이 쫓아다닌 끝에 그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한다. 에드워드 8세는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영국의 왕위를 버렸다. 앨버트 공은 아이를 싫어하는 데다 늘 바쁜 빅토리아 여왕을 대신해 육아와 살림을 맡았다. 프리다 칼로는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른 디에고 리베라와 결국 재결합했다.”

- 〈머리말〉 중에서

 


 

저자는 일곱 가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며 '맺음말'에서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보기에 따라 세기의 사랑일 수도, 막장극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글을 썼다는 것을 독자에게 밝힌다. 그러나 독자들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소망하는 것들 가운데 사랑과 행복 그리고 행운에 대해 자신을 돌아보는 뜻 깊은 계기가 될 것이다고 덧붙인다.

 

“진정한 사랑은 기적처럼 드물지도 모른다. 그 기적의 기회가 나를 비켜 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사랑이라는 기적이 어디에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니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나처럼 다시 사랑을 믿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니까.”

- 〈맺음말〉 중에서

각 편의 소설이 끝나고 후기 형식의 〈그 뒤의 이야기〉와 〈연보〉, 평균 35컷의 도판 자료(총 257컷)와 함께 등장인물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까지 펼쳐 보이고 있다. 또한 전체 2도 인쇄와 일부 컬러 인쇄(프리다 칼로)로 제작하여 읽는 재미를 더했다.

 


 

그러나 압권은 일곱 가지 사랑의 주인공으로 직접 저자 자신을 투영시킨다. 1인칭 시점으로 세기의 스캔들의 주인공 일곱 명에 감정이입이 되어 더더욱 진한 여운을 준다. 먼 나라의 남의 이야기 같은 일들을 일곱 편의 연작소설로 엮어 마치 저자의 자전소설처럼 읽히는 독특한 작품이 탄생했다. 역사적 사실을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훨씬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역사소설에서는 잘 쓰이지 않은 소설기법이다. 소설은 '허구'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저자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해설하는 듯한 인상을 줄 때 독자들을 설득할 만한 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자칫 소설이라는 점을 내세워 역사적 사실 자체를 훼손하는 것은 아무리 작가의 상상력이라 하더라도 칭찬 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선정한 일곱 가지의 사랑은 색깔은 아래와 같이 표현된다. 일곱 가지라 하여 무지개색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무지개색처럼 저마다의 다른 특성은 있지만 '사랑' 앞에서는 한 가지 색일 뿐이다. '자기 희생'의 색깔.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서 사랑해 주세요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하얀 웨딩드레스 - 빅토리아 여왕

마지막 편지 - 애덜린 버지니아 울프

심프슨 블루 - 베시 월리스 워필드 스펜서 심프슨 윈저 공작부인

세상에 없는 아이 - 가네코 후미코

아홉 개의 화살 - 프리다 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예술가 - 오노 요코

 


 

일곱 가지 사랑은 테마별로 구분된 것도 아닌 듯하고 작가의 임의 선정으로 봐야 할 터 어떤 사실을 어떤 상상력으로 엮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지는 작가의 능력에 달린 일이다. 독자는 이 가운데 가장 에로스적인 사랑과 적과의 사랑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 그야말로 인간 본성에 의한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선 아래 사진과 함께 일제강점기의 박열(독립운동가)과 일본여인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이 가슴 아프고 절절하다. 사랑을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지고지순한 사랑, 희생적 사랑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박열과 어떻게 만났는가?” 박열은 나와 함께 세이소쿠영어학교에 다녔다. 그와 만난 건 늦겨울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벌써 봄이 온 것만 같았다. 첫사랑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과거의 상처까지 노곤하게 감싸 주었다. 그의 나이 스물, 내 나이 열아홉. 그해 봄 우린 도쿄의 신발 가게 2층 다다미방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내가 제시한 ‘공동 생활 서약’에 박열은 기꺼이 동의했다. (중략)

하지만 박열은 달랐다. 무정부주의에 대해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다가도 돌아서서는 조선의 독립에 관해 눈을 반짝였다. 박열을 처음 사랑하던 그 순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박열의 식민지 조선 독립운동에 휘말릴지 모른다고. 아무리 독립운동이 나의 사상에 반하는 것일지라도. 나는 박열을 사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타인이 될 수 없었다. 사랑하는 박열 속에는 이미 나 자신이 들어 있었다. 사랑은 자아의 확대를 의미했다. 박열이 사랑하는 조선을 나도 사랑해야만 했다.

- 「세상에 없는 아이(가네코 후미코)」 중에서

 


 

불세출의 가수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사랑은 에로스적이다. 물론 두 사람의 감정에 독자가 개입할 필요는 없지만 곁으로 드러난 사실과 모습은 두 사람 사이가 열정적 사랑을 보여주는 본보기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격렬하고 치열하다. 상대의 어떤 다른 조건을 구분하지 않고 오롯이 서로를 온몸으로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다. 저자의 1인칭 시점으로도 이러한 두 사람의 감정이 잘 드러난다.

 

아무도 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가 날 떠나갔다. 상관없었다. 세상 모두가 떠나도…. 나에겐 존이 세상이었으니까. 상관없었다. 누구의 비난도, 누구의 조롱도. 나에겐 존만이 중요했다. 나의 별, 나의 스타, 존. 존은 나의 유일한 별이었고, 난 그 별을 도는 행성이었다. 존은 나의 태양이었고, 난 태양에 묶인 지구였다. 너무 뜨겁다고 태양을 멀리할 수 없듯이, 너무 눈부시다고 태양을 가려 버릴 수 없듯이 난 존 없이 살 수 없었다. (중략)

내가 전남편들에게 준 상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아파도 울지 않았다. 내가 그랬듯이 존도 자기 사랑에 솔직할 권리가 있었다. 잃어버린 주말의 시작이었다. 난 존을 완전히 떠날 수 없었다. 술과 마약, 폭력과 난동만이 존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존은 벌써 모든 걸 가지고 있었다. 돈도 명예도 성공도. 존은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었다.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팬들, 항상 그와 작업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 언제든 섹스를 제공할 준비가 된 미인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아내인 나까지.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예술가(오노 요코)」 중에서

 


 

에드워드 8세와 베시 월리스 위필드 스펜서 심프슨 윈저 공작부인과의 사랑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애절한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점을 생각해보면 시공을 초월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의 사랑은 어느 정도였을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좋은 독서가 되었다.

 

영국 국민들이 나를 싫어할 이유는 많았다. 나는 영국인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고, 이혼 경력도 있으며, 그때까지도 심프슨이라는 남자와 이름을 공유하는 유부녀였다. 그들은 그저 내가 부러운 것뿐이었다. 시기심, 질투심… 우스웠다. 그런 악한 감정은 사랑을 파괴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이 깊은 만큼 우리의 사랑에 대한 거부감과 반항심도 깊었다. 영국 국민은 날 싫어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영국 국민은 나를 공식적인 영국의 왕비로 맞아들이느니 차라리 왕실을 없애라고 요구했다. (중략)

엘리자베스 왕비는 내 이름조차 불경스럽다는 듯 나를 ‘그 여자(that woman)’라고 불렀다. 아무리 엘리자베스가 왕비라 해도 난 손윗동서였다. 그들이 날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들을 인정할 필요가 없었다. 난 엘리자베스 왕비를 미세스 템플(Mrs. Temple)이라고 불렀다. 남들이 물으면 템플(사원)처럼 심지가 굳건하다는 뜻이라고 변명했지만, 사실 그 똥고집이 싫어서 비꼬는 거였다. 게다가 엘리자베스는 셜리 템플과 비슷하게 생겼다. 기분이 좋을 때면‘쿠키’나 ‘케이크’라고 불러 주기도 했다. 엘리자베스의 취미는 과자 굽기였다. 엘리자베스도 두 딸도 과자 먹기가 또 다른 취미였다. 취미 덕분에 모두가 참으로 통통했다. 사람은 부유할수록 좋고 몸은 날씬할수록 좋다는 내 가치관과는 어긋난 취미였다.

- 「심프슨 블루(베시 월리스 워필드 스펜서 심프슨 윈저 공작부인)」 중에서

 


디에고와의 재결합을 상징하는 그림 <뿌리, 왼쪽>과

디에고가 프리다 칼로를 위로하기 위해 그린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과 벌새>.

 

"틀린 사랑은 없다, 다른 사랑이 있을 뿐."

위에 소개된 일곱 가지 사랑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비난 받을 일 없는 사랑의 스캔들이다. 스캔들이 추문을 의미하지만 이것은 추문이 아니다. 뒤에 스캔들이라고 붙인 사람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셕해 폄훼된 것들이다. 일곱 가지 사랑은 모두 에절했고, 순수한 인간의 사랑 그 자체였다. 권력, 돈, 명예 등 세속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 앞엔 한낱 꿈처럼 허무한 것들이다. ;일곱 개의 사랑에 대한 저자의 고찰;이라고 별제(別題)를 붙여 저자에게 선물하고 싶다. 사랑꾼 저자의 면모를 과시한 작품이라 특별한 애정이 간다. 그리고 깊고 숭고한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의 기회를 준 데 대해 독자로서 뜨거운 감사를 표한다. 그의 건필을 기원한다.

 

저자 : 최문정

 

최문정(본명 유경愈景) 작가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조기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최문정 작가는 여성과 가족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삼대에 걸쳐 세 여자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과정을 통해 애절한 모성애를 그린 『바보엄마 1, 2』(SBS-TV 주말드라마로 방영)와 발레리나인 딸과 군인 아버지의 오래된 갈등과 뜨거운 화해를 그린 『아빠의 별』, 불우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네 자매의 뜨거운 우애를 다룬 『허스토리』(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가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백제의 딸이 일본의 태양신이 되었다는 도발적 팩션소설 『태양의 여신 1, 2』(원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있다. 에세이로는 지치지 않고 사랑을 위해 싸웠던 세기(世紀)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 닿지 못해 절망하고 다 주지 못해 안타까운』, 『나를 찾아 떠난 스페인』(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등 10여 권이 있다.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 편』의 최문정 작가는 오랫동안 『조선왕조실록』을 관심 있게 읽어왔다. 그러던 중 ‘성공한 자가 아니라 실패한 자의 시각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작가는 나쁜 남자에 이어 좋은 남자, 나쁜 여자, 좋은 여자 편도 쓸 계획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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