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배워야 합니다 -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마법의 세로토닌 테라피!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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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겪고 있는 우리에겐 행복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간절하다. 평범한 일상의 우울을 떨쳐주고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략) 이 책은 세로토닌 이론보다도 특별히 테라피를 중심으로 썼다. 정신과 의사로서 사람들이 많이 하는 호소를 듣고 내가 권하는 세로토닌적 처방전과 세로토닌 워킹, 세로토닌 다이어트도 함께 실었다.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마법의 세로토닌 테라피’ 라는 부제목 아래 쓰인 책이라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이 책 『행복도 배워야 합니다』의 저자 이시형은 '세로토닌 박사'로 일컬어질 만큼 세레토닌에 천착한다. 행복의 실체는 세로토닌이다. 세레토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책을 읽어나가면 훨씬 이해도 쉽고 경우에 따라선 동기부여도 될 터이다. 세레토닌의 기능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자연의 리듬과 체내 리듬을 조절한다

- 뇌내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할을 한다

- 몸을 아이돌링 상태로!

- 뇌를 냉철하게 각성시킨다

- 자율신경에도 영향

- 스트레스에 강한 몸으로 만든다

- 항중력근에 작용한다

- 심신을 젊게 한다

- 아픈 통각을 경감시켜 준다

- 조절력

- 면역력 강화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호되게 겪고 있는 우리는 앞으로 그저 편안하고 행복해지고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제대로 ‘행복’을 ‘공부’해야 한다. 행복이 솟아나는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이뤄질까? 저자는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웃에 있는 상담심리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우울증이니까 정신과 의사를 찾아 항우울증 치료제 처방을 받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우울증 같지는 않습니다. 우울증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는데, 내 마음과 정신 상태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는 게 재미가 없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 같고 매일의 연속입니다. 정서적으로 메말라버려 달달 소리가 나는 듯합니다.

- 세로토닌 처방전 : 작은 일에도 감동하세요.

감동은 웃음보다 6배나 강한 힐링 효과가 있습니다. 감동하는 순간 뇌에는 세로토닌이 넘쳐납니다. 감동은 인간만이 갖는 고급 감정이며 전신, 전뇌의 반응이지만 특히 인간 최고의 사령부 전두엽에 가장 강하게 반응합니다. 쉽게 감동하는 사람은 그만큼 대뇌의 유연성과 감수성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감동에는 잔잔한 감동과 벅찬 감동이 있습니다. 감동할 때 어떤 느낌이냐고 물으면 아주 복잡합니다. 왜냐면 감동은 대뇌변연계와 신피질의 상호작용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정서적 측면, 인지적 측면의 혼합으로 감동이 생겨납니다. 감동은 사전에서 ‘느껴서 마음이 움직인다’로 풀이되는데, 영어에선 적당한 말이 없습니다. Touched(느낌) & Moved(동, 움직이다)로 표현됩니다.

잔잔한 감동은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침 여명, 저녁노을이 얼마나 화려한가요. 감동 없는 삶은 인생이 아니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습니다. 감동은 우리에게 삶의 환희, 사는 맛, 멋, 보람을 안겨줍니다. 벅찬 감동은 사람을 바꾸게 하는 강력한 모티브를 제공합니다.(…) 잔잔한 감동에는 세로토닌이 주로 분비되지만, 벅찬 감동에는 긍정감정이 더 격해져서 세로토닌뿐만 아니라 도파민, 엔도르핀 등도 분비됩니다. (p. 19~21)

 


 

최근 발달한 뇌 과학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마음이 뇌에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마음은 대뇌변연계와 대뇌의 전두전야에 있다.

마음의 3요소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 세로토닌의 분비량에 따라 우리 마음이 결정된다. 세로토닌은 마음, 머리, 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뇌 속에 이러한 신경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마음의 기본은 감정이다. 괴롭다, 즐겁다, 아프다… 우리는 매일 그런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살고 있다. 뉴노멀 시대, 우리는 마음과 몸을 어떻게 지키면서 살아내야 할까?

저자의 얘기를 들어본다. 세로토닌 기능에서 제일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이 조절력이다. 노르아드레날린의 화난 공격성을 조절하는 것도 세로토닌이고 도파민, 엔도르핀 등으로 너무 흥분한 상태를 가라앉혀 평상심을 유지시켜준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평상심을 유지할 때 공부도 잘된다. 세로토닌 공부 호르몬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잘 씹어먹으면 뇌간의 세로토닌을 직접 자극하여 식욕이 조절된다. 비만한 사람은 예외 없이 밥 먹는 속도가 빠르다. 다이어트 제1조가 잘

씹어 천천히 먹으라는 것이다. 수면조절, 강박성을 조절하여 정신건강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가끔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는 대형 사건들, 보복 운전, 묻지 마 살인, 홧김 방화사건 등은 모두가 세로토닌 부족으로 조절력이 발동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세로토닌을 국민운동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p. 109)

 


 

책에 따르면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우리 뇌 속 신경전달 물질 중 하나다. 뇌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균형과 조절 역할을 함으로써 평상심을 유지하여 편안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물질이다.

인간의 뇌에 있는 약 150억 개의 신경세포 중, 세로토닌 신경은 불과 수만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세로토닌 신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평온을 가져다주는 걸까? 세로토닌은 대뇌 신피질의 활동을 적절하게 억제함으로써 걱정거리와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자율신경의 조정 균형에도 큰 역할을 한다. 스트레스 경감에 큰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노르아드레날린의 공격성, 도파민과 엔도르핀 등으로 흥분한 상태를 가라앉혀 평상심을 유지시켜 주는 것도 세로토닌이다.

이처럼 『행복도 배워야 합니다』에서는 세로토닌과 행복의 연관관계를 뇌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행복이 ‘운’이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행복하고 싶다면 세로토닌을 공부하라. 그러면 행복이 따라올 것이다. 걷기 위해선 일상의 공간을 떠나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뇌 속에 새로운 회로가 생긴다. 일단 하는 일을 접고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 들면서 스트레스가 가신다. 이게 기분 전환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침침한 방에서 나오면 밝은 태양 빛이 직접 망막을 자극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킨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웅크린 자세가 걸을 때는 반듯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 거기다 바람과 하늘을 느끼면 감정 뇌인 대뇌변연계의 편도체가 자극되어 쾌적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활력이 넘친다. (p. 187)

 


 

배고픔과 뭔가를 먹고 싶은 식욕은 아주 다르다. 배고픈 걸 못 참아 다이어트를 그만두었다는 환자를 본 적이 없다. 즉, 다이어트 실패의 원인은 배고픈 굶주림이 아닌 먹고 싶어 하는 식욕 때문이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맛있는 것을 보면 식욕이 자극된다. 이것이 문제다. 먹고 싶은 식욕을 못 견뎌 실패한다.

배고파서 먹느냐 식욕 때문에 먹느냐를 구분해야 한다. 식욕 신호가 오면 배고픔보다 먹고 싶은 것을 못 참아 먹는다. 이것을 억지로 참으려니 엄청난 의지의 힘이 필요하다. 애를 쓰다가 결국 의지가 약해져 먹게 된다. 다이어트 실패의 원인은 먹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 하는 의지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로토닌 파워 다이어트는 의지의 힘이 아니라 뇌의 힘으로 식욕을 조절한다. 세로토닌이 저절로 식욕을 조절해준다. (p. 146)

우리가 보통 피곤하다고 말할 때는 대체로 몸이 피곤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럴 땐 휴식을 취하거나 하룻밤 푹 자고 나면 피로 회복이 된다. 하지만 뇌 피로에는 휴식이 오히려 더 피로를 가중시킬 수도 있다. 쉬지 말고 가벼운 일을 해야 피로 회복이 빠르다. 단 머리를 너무 쓰는 일 말고 정원 손질, 청소, 정리 등 가벼운 일이 좋다. 하고 나면 깔끔하고 기분이 좋다. 특히 요즘은 만성 피로가 오래가면 면역계 약화로 코로나19나 독감에 걸리기 쉽다. (p. 226)

 


 

저자에 따르면 뇌 과학에서 본 인간 유형은 세로토닌형 인간, 노르아드레날린형 인간, 도파민형 인간으로 나뉜다. 이 책에는 세로토닌형 인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우리가 왜 세로토닌형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세로토닌형 인간은 한마디로 세로토닌이 언제나 뇌에 넘치는 사람이다. 겉보기엔 부드러운 것 같지만 속으로는 불타는 열정과 힘을 소유한 인간, 소극적인 것 같으면서도 적극적인 인간, 상황에 따라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균형 잡인 삶의 전형이다. 세로토닌형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이야말로 21세기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세로토닌형 인간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행복의 나라, 이상향이 된다.

이는 평범한 이들에게 마치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완벽한 인간상처럼 보일 것이다. 또는 비현실적이도록 멀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로토닌의 중요성과 세로토닌 신경을 강화하는 방법만 안다면 어렵지 않다. 당신도 세로토닌형 인간이 될 수 있다. 『행복도 배워야 합니다』를 읽는 동안 독자들은 단순한 지식 쌓기용 독서가 아닌, 세로토닌형 인간을 향한 첫걸음을 떼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꼽는다. 행복한 마음으로 살면 삶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생각 때문으로 풀이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매 순간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감정에는 만족감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짜증나고 화가날 때도 있고, 슬프고 속상할 때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스스로 잘 극복하고 이겨내서 다시 행복한 마음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독자로서는 특히 인간에겐 '감정 뇌'가 있어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것을 관장한다는 것을 안 것은 굉장한 수확이다.

 

저자 : 이시형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그리고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박사후과정(P.D.F)을 밟았으며,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과장, 경북의대ㆍ서울의대(외래)ㆍ성균관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다. 2007년 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건립하고 국민들의 건강한 생활습관과 행복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수십 년간 연구, 저술,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른답게 삽시다』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 『세로토닌하라!』 『배짱으로 삽시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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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 나와 너를 이해하는 관계의 심리학
신고은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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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독자들 자신도 그런 경험을 했다거나 혹시 그 상처가 너무 커서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말할지 모른다. 연애하다 이별해서, 친구와 가장 가깝게 지내다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로 마음의 상처가 된 사람도 많다. 꼭 사랑이나 우정을 배신해서가 아니라 가벼운, 지나가는 듯한 말 한마디 때문에 관계를 끊고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는 사람도 많다. 전문가에 따르면 마음의 상처는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크게 입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상처의 원인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채 '그런 것 같다'를 '그렇다'로 오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다.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렇게 말하고 저렇게 행동할까?”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등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드는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의 층위는 생각보다 깊고 다양해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또 타인의 마음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사실은 자신이 생각하는 딱 그만큼만 상대를 통해 보는 것뿐이다. 나와 타인을 안다는 섣부른 판단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상처를 주었음에도 그게 왜 상처가 되는지 모르고,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상처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등 우리는 관계에서 받는 상처에 점점 무뎌지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학문으로서의 심리학뿐만 아니라 삶에 직접 적용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심리학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심리학자로 정평이 나 있는 신고은 저자는 심리학만큼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좋은 수단은 없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행동을 상대방을 통해 발견하는 ‘투사’, 어렸을 적 양육자와의 불안정한 애착 형성으로 인해 성인이 된 후 관계에서 보이게 되는 ‘회피성 성향’, 일단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예전에 자신이 생각했던 여러 가능성 중 결과와 일치하는 가능성 하나만 선택해 그것만이 자신의 예측이었던 것처럼 확신하는 경향을 뜻하는 ‘사후 확신 편향’ 등은 나도 몰랐던 나를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심리학은 마음의 매뉴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발달하고, 어떤 행동에 대한 원인과 결과는 무엇인지 잘 정리된 설명서와 같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았을 때 ‘아, 이게 내 잘못이 아니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닌 게 되고, 상처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타인에게 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나를 치유하고 앞으로 받을 상처를 예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의 '자두씨 설명'에 공감이 가고 논리적으로 보아도 설득력을 갖는다.

“나도 모르게 삼킨 자두씨가 마음에 상처를 내고 있을지도 몰라.” 자두는 강아지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라고 한다. 특히 자두씨의 동그란 부분은 장을 잘 빠져나오지만 뾰족한 부분은 장을 긁으면서 내려와 출혈을 일으키고 상처를 낸다. 우리는 모두 이 자두를 통째로 삼킨 강아지처럼 살아간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누군가 주는 자두가 상처인 줄도 모르고 꿀떡 삼키기도 하고 악의 없이 자두를 상대방에게 건네기도 한다는 말을 위해 저자가 꺼낸 '이론'이다.

하지만 자두씨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떨까? 누군가 주더라도 먹지 않을 것이고, 상대방에게 굳이 주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도 똑같다. 자두씨는 ‘나만 옳다’는 마음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내 생각이 맞고,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정말 이해가 안 돼” 상대의 말과 행동을 내 기준에서 판단하고 틀렸다고 재단하는 순간 관계는 어그러지고 내 마음은 괴로워진다. 또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상대가 의도 없이 던진 말이나 행동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는데, 대부분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지레짐작함으로써 확대 해석하는 데서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는 행위를 멈추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만 옳다’는 자두씨를 과감히 뱉어버리면 그만이다. 산뜻한 결론이다. 다만 그렇게 쉽게 뱉을 수 있을까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성숙한 어른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여러 접근법이 있겠지만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학문 중 심리학만큼이나 쉽고 재미있는 학문도 없다. 아홉 번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화를 내는 이유인 ‘부정성 편향’, 상대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끔 유도하는 ‘손다이크의 효과의 법칙’,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다는 ‘검은 양 효과’,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리액턴스 효과’ 등은 일상의 다양한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예를 들어 아홉 번의 칭찬보다 한 번의 비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가중치를 두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인간의 본능이자 선천적인 마음가짐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상대를 볼 때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할 수 있다. 또 나와 같은 집단에 소속된 사람을 더 사랑하고 높이 평가하게 되는 ‘내집단 편애’를 인식한다면 나와 같은 편을 대할 때 좀 더 객관적인 기준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할 수 있다. 이렇게 심리학은 우리 일상에 아주 밀접한 사례이자 이야기로서 타인을 이해하는 노력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나도 몰랐던 나의 마음을 발견하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다. '~ 법칙' '~ 효과'라고 붙이니 어려운 듯하지만 대개 한 번쯤은 들어본 실례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고민 없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타인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게 먼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때 타인을 이해하는 힘도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렸을 적 양육자와 불안정한 애착 형성을 맺었다면 성인이 되었을 때 회피성 관계를 맺을 확률이 높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면서도 ‘저 사람은 언제든지 내 곁을 떠날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회의적인 시각에서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경우 깊고 진지한 관계로 발전되기 어려운데, 자신의 인간관계가 매번 이러한 패턴을 반복한다면 자신의 어렸을 적 애착 관계를 돌아보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고민해볼 수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또 하나의 자기는 없으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족 앞에서의 나와 친구 앞에서의 나, 직장 동료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나는 각각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자기 복잡성이 높다고 말하는데, 어느 하나의 자기가 실패하거나 좌절했을 때 툭툭 털고 있어날 수 있는 힘은 또 다른 자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나를 이해하고, 관계 속에서 그 다양한 나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유의미한 방식이다. 내가 누군인지 알 때, 비로소 타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욕구와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포용이 생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들이 나와 너를 이해하는 '관계의 심리학'에 대해 알지 못하면 결국 서로 상처만 받고 분노하고 시기질투하다 안 좋은 결과를 남기기 마련이다. 저자는 "우리 마음에도 통풍이 필요합니다"며 상처만 가득했던 관계를 치유하는 38가지 심리학을 이 책에서 소개한다.

가장 먼저 프롤로그를 통해 이 책을 쓴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맛도 향도 너무 좋은 자두가 끝이 뾰족한 씨만 남았을 때, 누군가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저자의 '자두씨 설명'부터 독자는 마음이 가 닿는다.

수많은 심리학 용어는 굳이 외우거나 시험 공부 하듯이 읽고 또 읽고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대하는 현상을 심리학적 시선으로 보면 그런 이론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구나 생각하면 된다. 머릿속에 오래 남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에서 심리학 용어를 원용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어렸을 때 덧셈 뺄셈을 잘 못하는 어린이에게 사과를 생각해서 셈을 가르칠 때를 돌이겨보면 된다. 한 가지 더 특기할 점은 설명을 존대어로 한다는 것이다. 보통 책에서는 존대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존대어는 길어서 쓸데없이 지면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속설 때문에 보통 반말을 쓴다. 독자들도 익숙해 있어서다. 삽화나 사진은 따로 게재하지 않는 대신 설명을 매우 맛깔나게

하는 데 힘입어 독자 자신의 '마음의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될까해서 읽었는데 무척 재밌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심리학 용어들을 드라마, 웹툰, 유명한 노래 가사 등을 활용해 모두가 접근하기 쉽게 이야기를 써내려 간 점도 이 책에 마음이 가 닿은 이유리라.

 


 

'내집단 편애'는 생존을 위한 본능입니다. 하지만 그 본능이 깨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단점이 도드라지는 사람이 들어올 때입니다. 집단의 구성원을 챙기고 편애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향한 애정과 사랑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얻게 될 집단의 이익 때문이지요. 그래서 더 이상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잔인하게 돌변합니다. 장애가 있는 새끼가 태어났을 때 동물들이 어떻게 하는지 아시나요? 버리고 떠납니다. 포식자를 만나면 무리 전체가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얀 양 떼에 검은 양 한 마리가 끼어 있으면 어떨까요? 맹수 등 천적의 주의를 끌게 됩니다. 무리에 속한 모두에게 위협이 되겠죠. 그래서 검은 양은 흰 양 무리에서 배척당합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협이 되는 사람을 배척합니다. 다른 집단에 소속된 사람보다 내집단에 소속된 사람의 단점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런 현상을 ‘검은 양 효과’라고 부릅니다. 정리하자면, 내집단 구성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이익이 될 때에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따지면 인맥이라는 건 꽤나 합리적인 판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순전히 학문적으로 봤을 때 말이죠). 자체적 검열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p. 223~224)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해석된 고통이지요. 고통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될 수 있지요. 이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접근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 속에 있는지와 관계없이, 어떠한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좋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나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요. 아찔한 높이의 낭떠러지에 서서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를

해본 적이 있나요? 어떤 사람은 번지점프를 하나의 즐거운 놀이로 여깁니다. 번지점프대 위에서 느끼는 두근거림을 흥분과 기대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번지점프를 공포스러운 벌칙처럼 생각합니다. 놀려대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서 나는 못한다고 도망가려 하지요. 이 경우에는 두근거림을 공포와 불안으로 해석한 것 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생각을 고쳐먹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스트레스로 볼지 도전으로 볼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겠지요?(p. 333)

 

저자 : 신고은

 

충남대학교, 단국대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학문으로서의 심리학뿐만 아니라 삶에 직접 적용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심리학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심리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교뿐만 아 니라 고등학교, 평생학습센터 등 다양한 기관에서 수천 명의 학생과 일반인, 직장인을 만나왔다. 심리학 연구만큼이나 드라마와 영화 보기, 책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곳에서 만난 일상의 장면들을 심리학으로 설명하는 걸 유난히 즐겨 글로 옮기기 시작했으며, 카카오 브런치와 네이버 밴드를 통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많은 사람과 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 ‘마음공방’을 제주도에 마련하고자 하는 소박하지만 큰 꿈을 꾸며 살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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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 인류의 재앙과 코로나를 경고한 소설, 요즘책방 책읽어드립니다
알베르 카뮈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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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페스트)의 공포는 유럽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긴 글이나 그림은 너무나 생생한 기록 즉 페스트가 남긴 공포의 기록뿐이었다. 이 시대에 수많은 흑사병 관련 작품이 전해 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흑사병(黑死病, plague)이 페스트임을 대부분 잘 안다. 이 병은 쥐벼룩이 옮기는 병이니 주위에 쥐를 없애면 걸릴 염려가 없다. 물론 21세기에 들어서 흑사병이 창궐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요즘 늘어가는 야생동물의 주요 식량인 쥐를 너무 못살게 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흑사병이 사람과 사람을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역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흑사병의 창궐에 쥐벼룩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동물학자 크리스토퍼 던컨과 사학자 수잔 스콧이 공동 저작한 『흑사병의 귀환』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림 위 : 〈자파의 페스트하우스를 방문하는 나폴레옹〉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림 아래 : 177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창궐한 페스트. 두 그림은 사전에서 독자 임의로 캡처.

 

지식사전에 따르면 흑사병은 14세기 중반, 그러니까 1347년 무렵 킵차크(Kipchak) 군대가 제노바 시를 향해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쏘아 보냄으로써 유럽에 전파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동방 원정에 나섰던 십자군 병사들이 보석과 동방 문화를 약탈해 오면서 부수입으로 한센씨병(나병)과 흑사병을 얻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때부터 순식간에 퍼져 나간 흑사병은 불과 수년 동안 시칠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과 프랑스, 유럽 중부의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을 거쳐 벨기에, 네덜란드로, 그리고 처음 선보인 지 고작 3년여 만에 스칸디나비아 국가에까지 이르렀다. 그 무렵 기록은 전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서 4분이 1이 사망했다고 적고 있다. 숫자로는 2500만에서 6000만 명에 이르는 유럽인이 이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 숫자 사이의 간격은 페스트가 지속된 기간과 지역별 사망자 수의 집계 등의 차이에 기인한다. 여하튼 서유럽의 인구는 16세기가 되어서야 페스트 창궐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에도 페스트의 위력은 심심찮게 계속되었으니 1664~1665년에는 런던 인구의 20퍼센트 정도가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19세기 말에는 중국에서도 엄청난 인명을 앗아갔다.

 


 

이 소설 『페스트』는 생의 마지막을 처참하게 마감하는 감염자들의 실상과 그 앞에 당면한 천태만상의 인간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 내려간 처절한 드라마이자 긍정의 기록이다. 80여 년 전 소설 『페스트』는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와 너무나 닮았다. 도시 봉쇄의 대처방식과 지역 이기주의까지도 비슷한 세균의 공습을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예방하고 대비해야 할 것인지를 시사해주는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알제리의 오랑시에 페스트가 발생했다. 비틀거리며 죽어가는 쥐들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순식간에 두려움이 몰려온다. 쥐 떼가 페스트를 전염시키는 바람에 사람들은 길 위에서든 집안에서든 가리지 않고 죽어가는 것이었다. 처음에 전염병이 나돌 때는 몇 명의 의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것이 무슨 병인지 알지 못했다. 시 당국자들은 엄중한 조처를 취했다. 시의 문을 굳게 닫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해 버렸다. 이러한 일련의 조처로 의사 리외는 피서지에 가 있는 아내와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또한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파리에 있는 연인과의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리외는 아내의 일이 몹시도 마음에 걸렸으나, 비참한 환자에 대한 연민의 정과 직무에 대한 애정과 열성 때문에 사설 위생 기관을 설치하여 전력을 다해 병과 싸웠다.

 


 

리외의 주위에는 여러 계층에서 선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타루는 인생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자가 되려고 했다. 공무원인 글랑은 아득한 연인에 대한 추억 속에 살고 있는 노인이었다. 파늘루 신부는 지금 온 시가지에 번지고 있는 이 페스트야말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형벌이며, 이 형벌이 만약에 자각과 회개의 기회가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설교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설교도 잠시뿐이었다.

너무나 비참한 광경 앞에 처음의 생각을 고쳐먹고 열심히 방역과 간호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비록 그 방법에 있어서는 제각기 다른 길을 택했으나, 페스트 예방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선 그들 모두가 똑같았다.

그러던 중 타루와 파늘루 신부가 끝내 페스트로 쓰러지고 말았다.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페스트 초기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탈출을 시도했지만, 나중에는 시민의 운명에 연대감을 느껴 리외의 사업에 협력하게 되었다. 이윽고 극성스럽던 페스트도 점점 약화되기 시작했다. 굳게 닫혔던 시의 성문도 열렸다.

리외는 한없이 피곤한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환자에게나 의사에게는 휴가는 없는 것이고, 페스트균은 결코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금 행복한 이 거리에 습격해 오리라는 것을 일깨운다.

비참한 현실 앞에 작가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선 리외를 빌려 “이 난파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빈손에 비통한 마음뿐, 무기도 없고 대책도 없이 또다시 이렇듯 참담한 패배 앞에서 그는 그저 강 저편에 그대로 있어야 했다”라고 이야기한다. 무기력하고 참담한 이 소설을 통해 카뮈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대한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은 도시 봉쇄라는 조치가 따르고 여기엔 종교를 대표하는 신부, 기자, 의사인 리외, 미지의 인물까지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과 행동을 비추어 인간이 할 수 있는 방어의 노력과 이를 넘어선 한계들을 보인 장면들이 고루 담겨 있어 섬뜩함을 지니게 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바이러스의 창출이 인간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경고로 보낸 신의 신호인가, 아니면 인간들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자연에 대한 도전인가.

카뮈가 그린 오랑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의 사람들을 대비함으로써 한때 잠시 소강상태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인 페스트의 존재에 대한 다각적인 시선을 끌게 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그 안에서 인간들의 사투를 건 싸움을 통해 스스로가 지닌 인간의 고귀한 생명력,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모색을 그려낸 책이란 생각이 든다.

독자로서는 사실적 묘사,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참상에 대한 표현, 인간의 심리와 부조리에 대한 적확한 묘사 등 그의 문체를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것이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은 이유이자 멋진 보답이었다. 여기에는 옮긴이의 역할도 한몫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쥐들의 사건을 가지고 그렇게 떠들어대던 신문도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쥐들은 눈에 띄는 거리에 나와 죽었지만 사람들은 방 안에서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문은 오직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만 문제 삼는다. 그러나 현청과 시청에서는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제각기 기껏 두세 가지 경우 정도만 알고 있을 때는 누구 하나 움직이려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두를 더해본다는 데 생각이 미치기만 하면 충분히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모두 합하면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불과 며칠 동안에 사망 건수가 몇 배로 불어났으니 그 해괴한 병에 깊이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진짜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리외와 같은 의사이지만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카스텔이 리외를 만나러 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 중에서

 

오랑시의 봉쇄가 발표된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저마다의 일상을 누리던 생활에서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그때까지는 그 이상한 사건들로 생긴 놀라움과 불안에도, 시민들은 저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맡은 자리에서 그럭저럭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상태는 그대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시의 출입문들이 폐쇄되자 그들은 모두가 같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으며 거기에 그냥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도 공포심이 더해지면서 저 오랜 귀양살의 주된 고통거리가 되었다.

「드디어 봉쇄된 오랑시」 중에서

 


 

페스트라는 저 꼭대기 지점에서 내려다보면 교도소장에서부터 말단 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을 선고받은 사람들이고, 아마 사상 처음으로 감옥 안에 절대적인 정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시당국은 그런 평등한 세계 속에 위계질서를 도입하려고 직무 수행 중에 순직한 간수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구상을 해보았지만 결국 헛일이었다. 계엄령이 발령되어 있었고, 또 어떤 각도에서 보면 그 간수들은 동원된 자들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죄수들이야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지만 군 관계자들은 그 일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일반 대중의 머릿속에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당연한 지적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죽음의 묵시록」 중에서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되어버린 두 손이 침대 가장자리를 살며시 긁적거리고 있었다. 그 손이 다시 올라가서 무릎 근처의 담요를 긁었고, 그리고 갑자기 아이는 두 다리를 꺾더니 넓적다리를 배 근처에 갖다 대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는 이때 처음으로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리외를 보았다. 이제는 잿빛 찰흙처럼 굳어버린 그 얼굴의 움푹한 곳에서 입이 벌어졌다. 그러더니 곧 한 마디의 비명과 호흡에 따른 억양조차 거의 없이 갑자기 단조로운 불협화음의 항의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마치 모든 인간들에게서 한꺼번에 솟구쳐 나오는 것만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살벌한 삶의 현장」 중에서

 


 

멀리서 어두우면서도 불그레한 빛이 그곳에 불빛 찬란한 큰길과 광장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해방된 밤 속에서 욕망은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게 되었다. 리외의 발밑에까지 으르렁거리며 밀려오는 것은 바로 그 욕망의 소리였다. 어두침침한 항구로부터 공식적인 축하의 첫 불꽃이 솟아올랐다. 온 도시는 길고 은은한 함성으로 그 불꽃들을 반기고 있었다. 코타르도 타루도, 리외가 사랑했으나 잃고 만 남자들과 여자들도, 죽은 자들도, 범죄자들도 모두 잊혀졌다. 노인이 말한 대로였다. 인간들은 언제나 똑같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리외는 모든 슬픔을 넘어서 자신이 그들과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힘차고 더 긴 함성이 테라스 밑에서 발밑에까지 밀려와 오래도록 메아리치는 가운데, 온갖 빛깔의 불꽃 다발들이 점점 그 수를 더해가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희망의 날이 밝았다」 중에서

 

저자 : 알베르 카뮈

 

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Mondovi, Dr?an)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대전 중에 사망한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1918년에 공립초등학교에 들어가 뛰어난 교사 루이 제르맹의 가르침을 받았고, 이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알제 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 카뮈는 이 시기에 장 그르니에를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적 갈등을 겪다 탈퇴한다. 1936년에 고등 교육 수료증을 받고 교수 자격 심사에 지원해 대학 교수로 살고자 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교수직을 포기했다. 이후 진보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다. 알베르 카뮈는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같은 해에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발표하여 철학적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또한 1944년에 극작가로서도 《오해》, 《칼리굴라》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47년에는 칠 년여를 매달린 끝에 탈고한 《페스트》를 출간해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며 이 작품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1951년 그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반항하는 인간》을 발표했다. 이 책은 사르트르를 포함한 프랑스 동료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1957년에 카뮈는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이때의 수상연설문을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이끌어준 선생님에게 바쳤다. 삼 년 후인 1960년 겨울 가족과 함께 프로방스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후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오던 중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숨졌다. 사고 당시 카뮈의 품에는 발표되지 않은 《최초의 인간》 원고가, 코트 주머니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전철 티켓이 있었다고 한다. 《이방인》 외에도 《표리》, 《결혼》, 《정의의 사람들》, 《행복한 죽음》, 《최초의 인간》 등을 집필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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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에서 안전가옥 오리지널 7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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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시신은 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아마도 딸을 찾아 거기까지 간 것이리라. 엄마는 과학자였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몰랐을 리가 없었다. 거기서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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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에서 안전가옥 오리지널 7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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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지구촌 인류는 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며 각종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기세와 인간의 능력으로 본다면 이젠 지구뿐만 아니라 태양계의 주인공이 될 날도 멀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시시대에도 있었던 자연재해, 산업발전의 보복으로 평가되는 지구온난화로 지구 곳곳이 아날로그적 역습을 받고 있다. 대규모 자연재해는 물론 스스로 만든 문명의 이기의 과다사용으로 빚어진 지구온난화에도 쩔쩔매는 역설적이고 무력한 인간의 참모습을 보고 있다.

이 같은 대재앙을 겪을 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성찰을 하면서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우주탐사 등 과학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자연재해든 인공재해든 대재앙 앞에서 너무나 무력한 인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처참한 피해는 늘 힘 없는 사회 피지배층의 몫이다. 우리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TV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구조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고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가족들의 한맺힌 절규를 오래도록 들어야 했다. 이처럼 재난은 우리 기억 속에 크게 자리잡는다. 트라우마로 죽을 때까지 엄청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재난 전으로 돌아가서 재난을 막고 희생자들을 구해낸다면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하릴없는 넋두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다. 어쩌면 인간 능력 개발은 상상력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시간 여행을 용인한다고 해서 재난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듯싶다.

그러나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을 달라질 가능성이 충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 소설은 해미, 다미, 수아라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시간 여행을 통해 재난에 대응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설은 허구(fiction)이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기반으로 한다. 작가 개인의 감정과 생각이 소설에 배어들 수밖에 없다. 그 감정과 생각은 현실에 존재한다.

그리고 각종 배경과 설정에도 사실적 요소가 빠질 수 없다. 특히 SF소설의 경우 현재의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이다. 사실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아마 일반 독자들의 경우 SF소설이 다소 낯설기는 하다. 예전에는 상상력에만 의존했지만 지금은 상상력뿐만 아니라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줄 과학적 지식과 입증한 근거 등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SF소설은 과학기술과 문학적 상상력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이미 예전에 재난영화로 다뤄졌던 부산 해운대 지역의 이야기다. 부산 해운대는 대표적인 한국의 항구도시이다. 인근에 원자력 발전소가 많이 있고, 인구 450만 명이 넘는 메트로폴리스다. 일본과 가깝다는 이유로 지진의 피해로부터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을 도시이기도 하다.

 


 

재난은 항상 비극을 불러오지만 대도시에서 일어날 경우 더욱 그렇다. 우리는 과학기술을 믿지만 그 과학기술을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실수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과거로 돌아가서 실수를 바로잡으면 다 해결될까. 아마 또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인터스텔라」 등 각종 재난 영화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항상 답을 찾는다. 반복되는 실수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으면서 다음에는 더 낫길 바란다. 시간 여행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가능성을 늘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시간 여행만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재난재해 뉴스를 보면서 느꼈던 안타까움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겐 시간 여행 소설이지만 안타까움을 덜고, 시간의 흐름을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묘한 매력도 있다.

#1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자력 폭발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 앞에 한반도는 일대 혼란에 휩싸이고 믿고 있던 컨트롤 타워마저 사정없이 흔들린다. 방사능 유출의 공포는 점차 극에 달하고 최악의 사태를 유발할 2차 폭발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발전소 직원인 재혁(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은 목숨 건 사투를 시작한다. 지난 2016년 개봉한 한국영화 「판도라」는 대재앙의 시작을 화면 가득히 담았다.

#2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 우리는 모두 함께 행복할지도 모르는데… 엄마 대신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2045년의 해미(주인공)에게 시간을 거슬러 2025년의 엄마를 살릴 기회가 주어진다.

 


 

위 두 가지 상황은 서로 다른 사건이다. 한 가지 공통점은 지진에 의한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을 다룬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가정법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 세계에 매몰된 누군가는 평생 도돌이표처럼 후회하며 불행을 자처하기도 한다. ‘만약 그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곳에서 좀 더 일찍 벗어났더라면….’ 다시는 나처럼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듯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생명을 떠나보낼 때마다 거듭 상처 입으며 살아가고 있는 2045년의 해미. 그런 그녀에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온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 2025년의 그날 그곳으로 가서 엄마를 살릴 수 있는 기회. 과연 그녀는 엄마를 살리고 엉망으로 뒤틀려 버린 인생을 구할 수 있을까? 타임슬립을 다룬 이 소설은 장르상 SF로 분류되지만 모험보다는 감동에 중점을 둔다.

 


 

부산을 통째로 집어삼켜 버린 끔찍한 원전 폭발 사고, 안타깝게 엄마를 잃고 방황하며 살아가던 그녀에게 과거를 바꿀 기회가 찾아온다.

"해미 씨가 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20년 전 사고 당일의 해운대로 돌아가 해미 씨의 어머님, 진수아 씨를 살릴 것."

2025년의 어느 날, 부산 해운대에서 거대한 재난이 벌어진다. 원자력발전소 아래 활성단층에서 발생한 규모 6.2의 지진. 연료건물 화재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고 반경 30킬로미터 지역에 즉시 대피 명령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펼쳐진 가운데, 그날 그곳에서 해미와 다미, 어린 자매는 엄마를 잃었다. 엄마는 혼자 떨어져 있던 해미를 찾으러 갔다가 그대로 재난의 여파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20년이 흐른 2045년. 어린 시절 프리러닝(도심 속 다양한 장애물과 상호 작용하게 빠르게 이동하는 스포츠) 유튜버로 활동했던 언니 해미는 특유의 운동 신경을 살려 군인 출신 잠수사로서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게 됐지만 거듭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과학자 엄마를 닮아 유난히 기억력이 비상했던 동생 다미는 유명 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했지만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한다. 엄마에게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을 뱉은 뒤 제대로 사과하지도 못했는데, 심지어 엄마는 그런 못난 딸을 구하겠답시고 제 발로 사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날 그곳의 기억이 질리지도 않고 집요하게 해미를 괴롭히는 이유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얼른 언니를 찾아 돌아오겠다고 했던 엄마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다미가 그날 그곳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해미를 한없이 원망하는 이유다.

 


 

그런 해미와 다미에게 믿을 수 없는 기회가 찾아온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 그날 그곳으로 돌아가 엄마를 살리고 세 식구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다. 해미는 타임 다이브 머신에 들어가 과거로 뛰어들어 진수아 구출 작전을 수행하는 다이버로서, 다미는 과거의 해미와 현재의 해미가 만나지 않고(패러독스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엄마를 구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는 브레인으로서 시간여행에 뛰어들게 된다. 과연 이들은 과거를 되돌려 미래를 수정할 수 있을까?

 

"어떤 슬픔은 시간의 바깥에 있습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 속에 남지요. 그리고 긴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곤 해요. (…) 하지만 나쁜 것만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 거예요. 우리는 분명 좋은 것들도 똑같이 이어받고 있을 테지요. 어쩌면 조금씩, 미세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쌓아 가며 미래를 바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언젠가 우리는 비극의 고리를 끊게 될 거예요."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작품에서 작가는 불행을 관조하지도, 전시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집필에 앞서 “어떤 현실의 재난 사건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것, 재난에 대한 묘사를 일부러 과장하지 않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를 무능하게 그리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을 세웠다는 작가는 독자들을 향해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 달라고 호소한다.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진정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제발 생각해 달라는 듯.

해미와 다미의 시간여행은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해피엔드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를, 수억만 분의 1의 확률일지도 모르는 해피엔드를 꿈꾸며 뜨겁게 도전하는 여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재난의 한복판으로, 시간여행의 전장으로 치열하게 뛰어드는 이 이야기에 기어코 빠져들고 말 것이다.

“중요한 건 과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거라고. 우리가 발버둥 친 시간들은 무의미하지 않아. 그러니까 분명 이게 정답일 거야. 누군가는 이 모든 일을 기억해야 해. 우리가 서로를 위해 노력했다는 걸.

 


 

저자 : 이경희

 

환상문학웹진 거울 필진.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가 황금가지 제4회 타임리프 공모전에 당선되어 데뷔하였고,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으로 황금가지 제6회 작가프로젝트 공모전, 「χ Cred/t」로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을 수상했다. SF와 판타지 양쪽에서 활동 중이며, 대표작으로는 『테세우스의 배』,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마음 여린 땅꾼과 산에 깔린 이무기 설화」 등이 있다. 그는 SF와 판타지의 팬보이로 10대를 보내며 오랜 세월을 방황한 끝에 작가를 꿈꾸게 되었고, 1980~1990년대 걸작 애니메이션과 만화들, <스타트렉> 에피소드들, 톨킨과 이영도, 르 귄과 젤라즈니, 알프레드 베스터와 코드웨이너 스미스, 듀나, 배명훈, 곽재식, 김보영, 이서영 등 위대한 장르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자신만의 샛길을 발견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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