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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에서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7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월
평점 :
2021년 지구촌 인류는 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며 각종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기세와 인간의 능력으로 본다면 이젠 지구뿐만 아니라 태양계의 주인공이 될 날도 멀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시시대에도 있었던 자연재해, 산업발전의 보복으로 평가되는 지구온난화로 지구 곳곳이 아날로그적 역습을 받고 있다. 대규모 자연재해는 물론 스스로 만든 문명의 이기의 과다사용으로 빚어진 지구온난화에도 쩔쩔매는 역설적이고 무력한 인간의 참모습을 보고 있다.
이 같은 대재앙을 겪을 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성찰을 하면서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우주탐사 등 과학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자연재해든 인공재해든 대재앙 앞에서 너무나 무력한 인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처참한 피해는 늘 힘 없는 사회 피지배층의 몫이다. 우리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TV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구조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고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가족들의 한맺힌 절규를 오래도록 들어야 했다. 이처럼 재난은 우리 기억 속에 크게 자리잡는다. 트라우마로 죽을 때까지 엄청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재난 전으로 돌아가서 재난을 막고 희생자들을 구해낸다면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하릴없는 넋두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다. 어쩌면 인간 능력 개발은 상상력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시간 여행을 용인한다고 해서 재난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듯싶다.
그러나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을 달라질 가능성이 충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 소설은 해미, 다미, 수아라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시간 여행을 통해 재난에 대응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설은 허구(fiction)이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기반으로 한다. 작가 개인의 감정과 생각이 소설에 배어들 수밖에 없다. 그 감정과 생각은 현실에 존재한다.
그리고 각종 배경과 설정에도 사실적 요소가 빠질 수 없다. 특히 SF소설의 경우 현재의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이다. 사실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아마 일반 독자들의 경우 SF소설이 다소 낯설기는 하다. 예전에는 상상력에만 의존했지만 지금은 상상력뿐만 아니라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줄 과학적 지식과 입증한 근거 등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SF소설은 과학기술과 문학적 상상력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이미 예전에 재난영화로 다뤄졌던 부산 해운대 지역의 이야기다. 부산 해운대는 대표적인 한국의 항구도시이다. 인근에 원자력 발전소가 많이 있고, 인구 450만 명이 넘는 메트로폴리스다. 일본과 가깝다는 이유로 지진의 피해로부터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을 도시이기도 하다.
재난은 항상 비극을 불러오지만 대도시에서 일어날 경우 더욱 그렇다. 우리는 과학기술을 믿지만 그 과학기술을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실수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과거로 돌아가서 실수를 바로잡으면 다 해결될까. 아마 또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인터스텔라」 등 각종 재난 영화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항상 답을 찾는다. 반복되는 실수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으면서 다음에는 더 낫길 바란다. 시간 여행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가능성을 늘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시간 여행만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재난재해 뉴스를 보면서 느꼈던 안타까움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겐 시간 여행 소설이지만 안타까움을 덜고, 시간의 흐름을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묘한 매력도 있다.
#1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자력 폭발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 앞에 한반도는 일대 혼란에 휩싸이고 믿고 있던 컨트롤 타워마저 사정없이 흔들린다. 방사능 유출의 공포는 점차 극에 달하고 최악의 사태를 유발할 2차 폭발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발전소 직원인 재혁(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은 목숨 건 사투를 시작한다. 지난 2016년 개봉한 한국영화 「판도라」는 대재앙의 시작을 화면 가득히 담았다.
#2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 우리는 모두 함께 행복할지도 모르는데… 엄마 대신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2045년의 해미(주인공)에게 시간을 거슬러 2025년의 엄마를 살릴 기회가 주어진다.
위 두 가지 상황은 서로 다른 사건이다. 한 가지 공통점은 지진에 의한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을 다룬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가정법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 세계에 매몰된 누군가는 평생 도돌이표처럼 후회하며 불행을 자처하기도 한다. ‘만약 그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곳에서 좀 더 일찍 벗어났더라면….’ 다시는 나처럼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듯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생명을 떠나보낼 때마다 거듭 상처 입으며 살아가고 있는 2045년의 해미. 그런 그녀에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온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 2025년의 그날 그곳으로 가서 엄마를 살릴 수 있는 기회. 과연 그녀는 엄마를 살리고 엉망으로 뒤틀려 버린 인생을 구할 수 있을까? 타임슬립을 다룬 이 소설은 장르상 SF로 분류되지만 모험보다는 감동에 중점을 둔다.
부산을 통째로 집어삼켜 버린 끔찍한 원전 폭발 사고, 안타깝게 엄마를 잃고 방황하며 살아가던 그녀에게 과거를 바꿀 기회가 찾아온다.
"해미 씨가 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20년 전 사고 당일의 해운대로 돌아가 해미 씨의 어머님, 진수아 씨를 살릴 것."
2025년의 어느 날, 부산 해운대에서 거대한 재난이 벌어진다. 원자력발전소 아래 활성단층에서 발생한 규모 6.2의 지진. 연료건물 화재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고 반경 30킬로미터 지역에 즉시 대피 명령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펼쳐진 가운데, 그날 그곳에서 해미와 다미, 어린 자매는 엄마를 잃었다. 엄마는 혼자 떨어져 있던 해미를 찾으러 갔다가 그대로 재난의 여파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20년이 흐른 2045년. 어린 시절 프리러닝(도심 속 다양한 장애물과 상호 작용하게 빠르게 이동하는 스포츠) 유튜버로 활동했던 언니 해미는 특유의 운동 신경을 살려 군인 출신 잠수사로서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게 됐지만 거듭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과학자 엄마를 닮아 유난히 기억력이 비상했던 동생 다미는 유명 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했지만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한다. 엄마에게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을 뱉은 뒤 제대로 사과하지도 못했는데, 심지어 엄마는 그런 못난 딸을 구하겠답시고 제 발로 사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날 그곳의 기억이 질리지도 않고 집요하게 해미를 괴롭히는 이유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얼른 언니를 찾아 돌아오겠다고 했던 엄마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다미가 그날 그곳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해미를 한없이 원망하는 이유다.
그런 해미와 다미에게 믿을 수 없는 기회가 찾아온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 그날 그곳으로 돌아가 엄마를 살리고 세 식구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다. 해미는 타임 다이브 머신에 들어가 과거로 뛰어들어 진수아 구출 작전을 수행하는 다이버로서, 다미는 과거의 해미와 현재의 해미가 만나지 않고(패러독스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엄마를 구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는 브레인으로서 시간여행에 뛰어들게 된다. 과연 이들은 과거를 되돌려 미래를 수정할 수 있을까?
"어떤 슬픔은 시간의 바깥에 있습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 속에 남지요. 그리고 긴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곤 해요. (…) 하지만 나쁜 것만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 거예요. 우리는 분명 좋은 것들도 똑같이 이어받고 있을 테지요. 어쩌면 조금씩, 미세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쌓아 가며 미래를 바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언젠가 우리는 비극의 고리를 끊게 될 거예요."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작품에서 작가는 불행을 관조하지도, 전시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집필에 앞서 “어떤 현실의 재난 사건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것, 재난에 대한 묘사를 일부러 과장하지 않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를 무능하게 그리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을 세웠다는 작가는 독자들을 향해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 달라고 호소한다.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진정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제발 생각해 달라는 듯.
해미와 다미의 시간여행은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해피엔드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를, 수억만 분의 1의 확률일지도 모르는 해피엔드를 꿈꾸며 뜨겁게 도전하는 여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재난의 한복판으로, 시간여행의 전장으로 치열하게 뛰어드는 이 이야기에 기어코 빠져들고 말 것이다.
“중요한 건 과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거라고. 우리가 발버둥 친 시간들은 무의미하지 않아. 그러니까 분명 이게 정답일 거야. 누군가는 이 모든 일을 기억해야 해. 우리가 서로를 위해 노력했다는 걸.
저자 : 이경희
환상문학웹진 거울 필진.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가 황금가지 제4회 타임리프 공모전에 당선되어 데뷔하였고,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으로 황금가지 제6회 작가프로젝트 공모전, 「χ Cred/t」로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을 수상했다. SF와 판타지 양쪽에서 활동 중이며, 대표작으로는 『테세우스의 배』,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마음 여린 땅꾼과 산에 깔린 이무기 설화」 등이 있다. 그는 SF와 판타지의 팬보이로 10대를 보내며 오랜 세월을 방황한 끝에 작가를 꿈꾸게 되었고, 1980~1990년대 걸작 애니메이션과 만화들, <스타트렉> 에피소드들, 톨킨과 이영도, 르 귄과 젤라즈니, 알프레드 베스터와 코드웨이너 스미스, 듀나, 배명훈, 곽재식, 김보영, 이서영 등 위대한 장르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자신만의 샛길을 발견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