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 인류의 재앙과 코로나를 경고한 소설, 요즘책방 책읽어드립니다
알베르 카뮈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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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페스트)의 공포는 유럽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긴 글이나 그림은 너무나 생생한 기록 즉 페스트가 남긴 공포의 기록뿐이었다. 이 시대에 수많은 흑사병 관련 작품이 전해 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흑사병(黑死病, plague)이 페스트임을 대부분 잘 안다. 이 병은 쥐벼룩이 옮기는 병이니 주위에 쥐를 없애면 걸릴 염려가 없다. 물론 21세기에 들어서 흑사병이 창궐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요즘 늘어가는 야생동물의 주요 식량인 쥐를 너무 못살게 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흑사병이 사람과 사람을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역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흑사병의 창궐에 쥐벼룩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동물학자 크리스토퍼 던컨과 사학자 수잔 스콧이 공동 저작한 『흑사병의 귀환』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림 위 : 〈자파의 페스트하우스를 방문하는 나폴레옹〉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림 아래 : 177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창궐한 페스트. 두 그림은 사전에서 독자 임의로 캡처.

 

지식사전에 따르면 흑사병은 14세기 중반, 그러니까 1347년 무렵 킵차크(Kipchak) 군대가 제노바 시를 향해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쏘아 보냄으로써 유럽에 전파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동방 원정에 나섰던 십자군 병사들이 보석과 동방 문화를 약탈해 오면서 부수입으로 한센씨병(나병)과 흑사병을 얻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때부터 순식간에 퍼져 나간 흑사병은 불과 수년 동안 시칠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과 프랑스, 유럽 중부의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을 거쳐 벨기에, 네덜란드로, 그리고 처음 선보인 지 고작 3년여 만에 스칸디나비아 국가에까지 이르렀다. 그 무렵 기록은 전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서 4분이 1이 사망했다고 적고 있다. 숫자로는 2500만에서 6000만 명에 이르는 유럽인이 이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 숫자 사이의 간격은 페스트가 지속된 기간과 지역별 사망자 수의 집계 등의 차이에 기인한다. 여하튼 서유럽의 인구는 16세기가 되어서야 페스트 창궐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에도 페스트의 위력은 심심찮게 계속되었으니 1664~1665년에는 런던 인구의 20퍼센트 정도가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19세기 말에는 중국에서도 엄청난 인명을 앗아갔다.

 


 

이 소설 『페스트』는 생의 마지막을 처참하게 마감하는 감염자들의 실상과 그 앞에 당면한 천태만상의 인간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 내려간 처절한 드라마이자 긍정의 기록이다. 80여 년 전 소설 『페스트』는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와 너무나 닮았다. 도시 봉쇄의 대처방식과 지역 이기주의까지도 비슷한 세균의 공습을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예방하고 대비해야 할 것인지를 시사해주는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알제리의 오랑시에 페스트가 발생했다. 비틀거리며 죽어가는 쥐들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순식간에 두려움이 몰려온다. 쥐 떼가 페스트를 전염시키는 바람에 사람들은 길 위에서든 집안에서든 가리지 않고 죽어가는 것이었다. 처음에 전염병이 나돌 때는 몇 명의 의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것이 무슨 병인지 알지 못했다. 시 당국자들은 엄중한 조처를 취했다. 시의 문을 굳게 닫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해 버렸다. 이러한 일련의 조처로 의사 리외는 피서지에 가 있는 아내와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또한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파리에 있는 연인과의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리외는 아내의 일이 몹시도 마음에 걸렸으나, 비참한 환자에 대한 연민의 정과 직무에 대한 애정과 열성 때문에 사설 위생 기관을 설치하여 전력을 다해 병과 싸웠다.

 


 

리외의 주위에는 여러 계층에서 선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타루는 인생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자가 되려고 했다. 공무원인 글랑은 아득한 연인에 대한 추억 속에 살고 있는 노인이었다. 파늘루 신부는 지금 온 시가지에 번지고 있는 이 페스트야말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형벌이며, 이 형벌이 만약에 자각과 회개의 기회가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설교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설교도 잠시뿐이었다.

너무나 비참한 광경 앞에 처음의 생각을 고쳐먹고 열심히 방역과 간호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비록 그 방법에 있어서는 제각기 다른 길을 택했으나, 페스트 예방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선 그들 모두가 똑같았다.

그러던 중 타루와 파늘루 신부가 끝내 페스트로 쓰러지고 말았다.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페스트 초기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탈출을 시도했지만, 나중에는 시민의 운명에 연대감을 느껴 리외의 사업에 협력하게 되었다. 이윽고 극성스럽던 페스트도 점점 약화되기 시작했다. 굳게 닫혔던 시의 성문도 열렸다.

리외는 한없이 피곤한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환자에게나 의사에게는 휴가는 없는 것이고, 페스트균은 결코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금 행복한 이 거리에 습격해 오리라는 것을 일깨운다.

비참한 현실 앞에 작가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선 리외를 빌려 “이 난파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빈손에 비통한 마음뿐, 무기도 없고 대책도 없이 또다시 이렇듯 참담한 패배 앞에서 그는 그저 강 저편에 그대로 있어야 했다”라고 이야기한다. 무기력하고 참담한 이 소설을 통해 카뮈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대한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은 도시 봉쇄라는 조치가 따르고 여기엔 종교를 대표하는 신부, 기자, 의사인 리외, 미지의 인물까지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과 행동을 비추어 인간이 할 수 있는 방어의 노력과 이를 넘어선 한계들을 보인 장면들이 고루 담겨 있어 섬뜩함을 지니게 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바이러스의 창출이 인간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경고로 보낸 신의 신호인가, 아니면 인간들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자연에 대한 도전인가.

카뮈가 그린 오랑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의 사람들을 대비함으로써 한때 잠시 소강상태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인 페스트의 존재에 대한 다각적인 시선을 끌게 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그 안에서 인간들의 사투를 건 싸움을 통해 스스로가 지닌 인간의 고귀한 생명력,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모색을 그려낸 책이란 생각이 든다.

독자로서는 사실적 묘사,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참상에 대한 표현, 인간의 심리와 부조리에 대한 적확한 묘사 등 그의 문체를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것이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은 이유이자 멋진 보답이었다. 여기에는 옮긴이의 역할도 한몫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쥐들의 사건을 가지고 그렇게 떠들어대던 신문도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쥐들은 눈에 띄는 거리에 나와 죽었지만 사람들은 방 안에서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문은 오직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만 문제 삼는다. 그러나 현청과 시청에서는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제각기 기껏 두세 가지 경우 정도만 알고 있을 때는 누구 하나 움직이려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두를 더해본다는 데 생각이 미치기만 하면 충분히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모두 합하면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불과 며칠 동안에 사망 건수가 몇 배로 불어났으니 그 해괴한 병에 깊이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진짜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리외와 같은 의사이지만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카스텔이 리외를 만나러 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 중에서

 

오랑시의 봉쇄가 발표된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저마다의 일상을 누리던 생활에서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그때까지는 그 이상한 사건들로 생긴 놀라움과 불안에도, 시민들은 저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맡은 자리에서 그럭저럭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상태는 그대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시의 출입문들이 폐쇄되자 그들은 모두가 같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으며 거기에 그냥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도 공포심이 더해지면서 저 오랜 귀양살의 주된 고통거리가 되었다.

「드디어 봉쇄된 오랑시」 중에서

 


 

페스트라는 저 꼭대기 지점에서 내려다보면 교도소장에서부터 말단 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을 선고받은 사람들이고, 아마 사상 처음으로 감옥 안에 절대적인 정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시당국은 그런 평등한 세계 속에 위계질서를 도입하려고 직무 수행 중에 순직한 간수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구상을 해보았지만 결국 헛일이었다. 계엄령이 발령되어 있었고, 또 어떤 각도에서 보면 그 간수들은 동원된 자들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죄수들이야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지만 군 관계자들은 그 일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일반 대중의 머릿속에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당연한 지적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죽음의 묵시록」 중에서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되어버린 두 손이 침대 가장자리를 살며시 긁적거리고 있었다. 그 손이 다시 올라가서 무릎 근처의 담요를 긁었고, 그리고 갑자기 아이는 두 다리를 꺾더니 넓적다리를 배 근처에 갖다 대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는 이때 처음으로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리외를 보았다. 이제는 잿빛 찰흙처럼 굳어버린 그 얼굴의 움푹한 곳에서 입이 벌어졌다. 그러더니 곧 한 마디의 비명과 호흡에 따른 억양조차 거의 없이 갑자기 단조로운 불협화음의 항의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마치 모든 인간들에게서 한꺼번에 솟구쳐 나오는 것만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살벌한 삶의 현장」 중에서

 


 

멀리서 어두우면서도 불그레한 빛이 그곳에 불빛 찬란한 큰길과 광장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해방된 밤 속에서 욕망은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게 되었다. 리외의 발밑에까지 으르렁거리며 밀려오는 것은 바로 그 욕망의 소리였다. 어두침침한 항구로부터 공식적인 축하의 첫 불꽃이 솟아올랐다. 온 도시는 길고 은은한 함성으로 그 불꽃들을 반기고 있었다. 코타르도 타루도, 리외가 사랑했으나 잃고 만 남자들과 여자들도, 죽은 자들도, 범죄자들도 모두 잊혀졌다. 노인이 말한 대로였다. 인간들은 언제나 똑같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리외는 모든 슬픔을 넘어서 자신이 그들과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힘차고 더 긴 함성이 테라스 밑에서 발밑에까지 밀려와 오래도록 메아리치는 가운데, 온갖 빛깔의 불꽃 다발들이 점점 그 수를 더해가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희망의 날이 밝았다」 중에서

 

저자 : 알베르 카뮈

 

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Mondovi, Dr?an)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대전 중에 사망한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1918년에 공립초등학교에 들어가 뛰어난 교사 루이 제르맹의 가르침을 받았고, 이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알제 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 카뮈는 이 시기에 장 그르니에를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적 갈등을 겪다 탈퇴한다. 1936년에 고등 교육 수료증을 받고 교수 자격 심사에 지원해 대학 교수로 살고자 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교수직을 포기했다. 이후 진보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다. 알베르 카뮈는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같은 해에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발표하여 철학적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또한 1944년에 극작가로서도 《오해》, 《칼리굴라》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47년에는 칠 년여를 매달린 끝에 탈고한 《페스트》를 출간해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며 이 작품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1951년 그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반항하는 인간》을 발표했다. 이 책은 사르트르를 포함한 프랑스 동료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1957년에 카뮈는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이때의 수상연설문을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이끌어준 선생님에게 바쳤다. 삼 년 후인 1960년 겨울 가족과 함께 프로방스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후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오던 중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숨졌다. 사고 당시 카뮈의 품에는 발표되지 않은 《최초의 인간》 원고가, 코트 주머니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전철 티켓이 있었다고 한다. 《이방인》 외에도 《표리》, 《결혼》, 《정의의 사람들》, 《행복한 죽음》, 《최초의 인간》 등을 집필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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