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아이』는 저자 로미 하우스만의 데뷔작이다. 첫 소설이 나오기까지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간 횟수가 무려 스물다섯 번이었고,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그러니만큼 저자가 갈고 또 다듬었는지 스토리의 구성과 문장체의 완성도가 높아 원숙미를 보인다. 스토리의 유기적 구성이 돋보이고 결코 길지 않은 간결한 문장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이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될 만하다. 이 소설은 오두막에 갇혀 살아가는 인물들의 절망, 공포,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소재는 스릴러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설정이다. 사이코패스와 연쇄살인마에게 납치돼 혹독한 시련을 겪다가 탈출한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다룬 소설 역시 많다.

이 소설 『사랑하는 아이』는 잔혹한 범죄, 비인간적인 폭력에 초점을 맞춘 스릴러라기보다는 결코 벗어나기 쉽지 않은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탈출을 모색하는 인간의 강한 의지와 인내심,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소설의 끝 부분을 읽어보면 명확해진다.

"바로 그것이 희망이다. 내 희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내가 가진 힘이다. 당신은 우리를 가둘 수 없다. 소유할 수 없다. 이 오두막은 당신의 감옥이다. 결코 우리의 감옥이 아니다."(p. 445)



이 소설의 화자는 세 사람이다. 14년 동안 실종된 딸을 간절히 찾아 헤맨 마티아스, 열세 살이 되기까지 오두막에 갇혀 살았지만 남달리 뛰어난 두뇌와 엄마의 교육으로 탁월한 지적 능력과 어른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논리를 갖춘 한나, 어느 날 오두막에 납치돼 레나가 되길 강요당했던 야스민이 저마다의 시각으로 오두막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두들 레나 실종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이고, 회복하기 쉽지 않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레나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지 마티아스와 한나의 시선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파티를 좋아하고, 자유연애를 즐긴 여대생 레나이지만 오두막에 갇혀 아이들의 미래에 필요한 교육을 시키고, 딸의 상상력을 자극해 세상에 대한 간접 경험의 길을 열어준다. 자유분방한 여성이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목숨을 버릴 수도 있을 만큼 모성애가 지극하다. 오두막에 잡혀온 첫날부터 단 한순간도 탈출을 포기하지 않고 자유를 갈망하는 야스민의 강한 의지와 열망 또한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녀보다 앞서 오두막에 잡혀있었던 레나와 심정적인 동질감을 이루며 납치범과 대적해가는 모습을 보자면 마치 아마존 전사처럼 당당하고 용감하다.



『사랑하는 아이』는 결코 벗어나기 힘든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탈출을 모색하는 레나와 야스민의 강한 의지, 자존감, 가족에 대한 사랑, 모성애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레나와 야스민은 탈출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 오두막에 갇힌 인물들이다. 납치범은 레나와 야스민이 의도한 대로 따라주지 않을 경우 가차 없이 폭력을 가하지만 그녀들은 절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연약하고 순종적인 인물들이 아니다.

오랜 시간 절망적인 환경에 처해 있다 보니 잠시 나약하고 소극적인 심리 상태에 빠져들긴 해도 끝내 용기를 내 인간의 존엄을 찾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모험의 여정에 뛰어든다. 레나와 야스민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밀어닥쳐도 물러서지 않는 의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 설령 자신은 다치더라도 자식들에게만은 부조리하고 절망적인 환경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새삼 인간의 존엄과 긍지, 어머니의 무한한 모성애를 발견하는 동시에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14년 동안 단 하루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지내온 마티아스는 게르트 브륄링 경감으로부터 귀가 솔깃한 연락을 받는다. 체코와의 국경 지대인 캄의 숲속 길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차에 부딪쳐 의식을 잃고 입원한 피해자의 인상착의가 레나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마티아스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교통사고 피해자가 입원한 캄의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레나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다. 레나와 같은 금발인 데다 이마에 상처가 있지만 아버지이기에 딸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아볼 수 있다.

마티아스는 실망할 겨를도 없이 놀라운 광경을 목도한다. 어린 시절 레나와 판박이처럼 닮은 아이가 간호사와 함께 병원 복도를 걷고 있다. 레나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딸을 빼닮은 아이를 대한 마티아스의 마음속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아이는 누구일까? 레나와 어쩜 저리 똑같이 생겼을까?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한 야스민, 레나를 빼닮은 열세 살 아이 한나, 두 살 터울의 동생 요나단을 통해 숲속 오두막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야스민은 4개월 전 오두막에 납치되었다. 납치범은 야스민을 레나라 부르고, 머리카락을 금발로 물들이고, 칼로 이마에 상처를 냈다. 오두막에 사는 아이들인 한나와 요나단은 야스민을 엄마라고 부른다. 야스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나 황당하고 이상한 일이었지만 마치 신처럼 오두막을 통제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탈출의 기회를 엿본다.




어린아이 같지 않게 조숙한 아이 한나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오두막에 대해 언급한다. 뭔가 몰래 감추고 있는 계획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어른들 머리 위에 올라앉은 듯 당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나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보통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의식 세계를 접할 수 있다. 한나는 일반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의식을 보여준다. 열쇠 구멍을 통해서만 밖을 내다볼 수밖에 없었던 한나의 의식 세계는 현실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모호한 경계를 이루는 가운데 서로 뒤죽박죽으로 혼재되어 있다. 엄마(레나)로부터 들은 이야기들, 가령 상상 속에서 나들이를 한 이야기들이 한나의 머릿속에서는 실제의 경험으로 자리 잡고 있고, 고양이 인형을 실제의 고양이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한나는 실질적인 체험은 부족하지만 오두막에서 매일이다시피 엄마와 함께 공부를 했고, 지적 호기심이 남달라 궁금한 게 있을 경우 백과사전을 들춰본 탓에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박식하다. 다만 오두막에서 신과 다름없는 존재인 아빠(납치범)로부터 받은 세뇌 교육과 딸이 언젠가 밖으로 나가 살게 될 것이라 기대하며 끊임없이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상상력을 자극했던 엄마(레나)의 교육이 내면에서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면서 독특한 심리적 특성을 가진 아이로 성장했다. 한나의 심리와 밖으로 꺼내놓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두막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의 진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작가가 되길 소망했지만 앞날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세월을 견뎌내며 완성한 원고가 바로 『사랑하는 아이』다. 저자는 아무리 열심히 써도 출판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일상화되다시피 했지만 소설 쓰기를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과제로 인식하고 매진한 결과 마침내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로미 하우스만은 『사랑하는 아이』를 탈고하고 나서 에이전시에 보냈고, 독일을 대표하는 대형 출판사 10여 곳에서 동시에 출간 의사를 보였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독일 《슈피겔》지 집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쾰른 크라임 어워드 2019〉을 수상했고, 전 세계 23개국에 판권이 팔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나는 자유를 찾을지, 그의 손에 죽을지 결판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끔찍하게 무서웠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질식할 듯 심장을 옥죄었고, 귀에서 계속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언제 스노볼을 집어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장 봐온 음식 재료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는지, 아니면 난로에 남아있는 재를 휘젓고 있을 때였는지 정확하지 않았다. 어쨌든 등을 구부린 자세로 내 앞에 있는 그가 보였다.(p. 316)



저자 : 로미 하우스만(ROMY HAUSMANN)

1981년 구동독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국가의 통제와 억압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고, 이후 자유는 그의 내면에 가장 뿌리 깊게 자리한 주제 의식이 되었다. 뮌헨의 TV방송 제작 회사에서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성폭행 당한 여성들, 소말리아 전쟁 난민들, 학대받는 아동 등 100여 명을 인터뷰했고, 그 경험이 이 소설을 쓰게 된 자양분이 되었다. 현재 가족과 함께 슈투트가르트 근교 숲속에서 살고 있고, TV방송국 프리랜서로 일하며 소설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이》는 로미 하우스만의 데뷔작으로 《슈피겔》지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쾰른 크라임 어워드 2019〉을 수상했다.

역자 : 송경은

성신여자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독일 바이에른주 경제 협력청 한국 사무소와 독일 회사에서 근무했다. 현재 독일어 통번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지옥이 새겨진 소녀》, 《죽음을 사랑한 소년》, 《여름의 복수》, 《죽음의 론도》, 《파리는 언제나 사랑》, 《꿈꾸는 탱고클럽》, 《너무 예쁜 소녀》, 《그가 돌아왔다》, 《식욕 버리기 연습》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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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끝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앤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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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고통과 절망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작품을 읽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만큼 깊은 울림과 감동이 온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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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끝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앤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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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알고 있는 중국 문학은 노신(魯迅)의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멈췄다. 이후 중국의 문학은 공산주의 사상에 반하는 작품은 배척됐으며 사상 검열을 종용당하는 바람에 제대로 발표된 적도 없다고 한다. 어쩌면 쓸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후의 문학 작품은 당송(唐宋)의 문학 이전으로 후퇴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워낙 책으로 출판돼 나온 작품들이 없어 중국 문학에 대해서는 전문가나 교수들이 아니고는 접하기가 어려워 제대로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직접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쉽다. 아무튼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다면 문학이 문학으로 제대로 설 수가 없을 터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에 중국 소설이 많이 번역돼 나온 것을 보니 대부분 SF판타지물이 대부분이고 그 다음이 타임슬립 같은 것으로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를 오가는 SF판타지의 일종이다. 간혹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활하는 도시인의 야망이나 여성들의 서구화 모습을 담은 것들이 출판되지만 그 수가 적고 내용도 제한적이라는 생각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문학 작품을 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이름만 들어본 적이 있는 작가이다.



이 작품 「그해 여름 끝」도 출판 금지, 판매 금지 당하는 등 억압을 당했다고 들었다. 논란이 되고, 작가는 더 이상 책을 낼 수 없어 시골로 낙향하는 내용이 외신을 통해 가끔씩 들리는 중국 문학계의 소식에 곁들여 들어와 작가 이름과 제목 정도만 들은 기억이 있다. 이 작품과 작가는 중국에서나 외신 문학 담당 기자들 사이에서는 루쉰문학상, 라오서문학상, 카프카문학상 수상자이자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켜세우는 바람에 더 유명해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옌롄커의 대표 소설집 『그해 여름 끝』이다. 중편소설 1편과 단편 2편이 들어 있다.

"양띠 해 1월 초, 보병 3중대에 커다란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이처럼 시작하는 이 소설은 출간 즉시 금서 조치됐고 그래서 더욱 폭발적 이슈를 일으킨 작품이라고 한다. 원제는 「夏日落」인데 우리말로 번역해 「그해 여름 끝」으로 정해졌다.

저자 옌렌커는 “내 모든 문학의 변고와 운명은 전부 「그해 여름 끝」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만큼,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또한 저자가 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고통과 절망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작품을 읽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만큼 깊은 울림과 감동을 경험했다. 독자로서는 오랜만에 문학의 향기가 배어 있는 작품을 대하는 것 같아 호기심과 신비감마저 들기도 했다.

저자가 “내 모든 문학의 변고와 운명은 전부 「그해 여름 끝」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만큼,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책에는 중편소설 「그해 여름 끝」과 미공개 단편소설 두 편 「류향장」, 「한쪽 팔을 잊다」가 추가 수록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어판 특별 서문이 실려 있어 읽을거리가 한층 더 풍성해졌다.


「그해 여름 끝」의 이야기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제한적 공간, 군대에서 총기가 분실되며 시작된다. 두 주인공 중대장과 지도원에게는 진급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강제 전역을 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잃어버린 총을 찾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서로의 과오를 들쑤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하지만 그 순간 하늘을 가를 듯한 총성이 울리고 그들의 삶은 또 다른 변화를 맞는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바로 우리의 뜻과 다르게 인생의 방향이 마음대로 바뀌는 때, 중대장과 지도원의 의사와 상관없이 총기가 분실된 것 같은 때 말이다. 지도원이 중대장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우리가 살면서 뭘 더 바라겠나? 자기 인생의 몫을 살아내는 것뿐이지. 자네도 자신을 너무 속박하지 말았으면 좋겠네.”

인생의 방향이 틀어진 것 같을 때, 스스로 자책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에는 종종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나게 마련이니까.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총 3편의 작품을 다룬 소설집으로 그중 첫 번째 이야기인 「그해 여름 끝」이 가장 긴 분량이다. 중편소설로는 조금 길고, 장편에는 크게 모자라는 분량이다. 보병 3중대에서 벌어진 총기 도난 사건과 이 총을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끊은 사병에 대한 문제를 두고 두 주인공인 중대장 자오린과 지도원 가오바오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농촌 출신으로 중국과 베트남 전쟁을 치른 두 사람의 인연, 그들에겐 각자의 꿈이 있었으나 총기사건과 사병의 자살로 인해 졸지에 구금 과정을 거쳐 윗선의 처분을 기다리는 상황이 된다. 서로의 입장이 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해결이 되는 상황, 어려운 전장에서 서로의 목숨과 승진을 위해 도운 두 사람이었지만 이런 상황이 닥치자 서로가 외면하면서 각자도생의 꿈을 꾸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인 「류향장 이야기」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면 찾을 수도 없는 산골 마을의 젊은이들을 도시로 나가게 유도하면서 마을을 재건하는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인 「한쪽 팔을 잊다」는 공사장에서 건축 중인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망한 동료 진방의 팔을 발견한 인즈가 그의 고향에 들러 장례를 통해 묻어주려 하지만 유족들은 이미 받은 보상금 외에 잃은 팔 손가락에 낀 반지마저 눈을 돌리는 세태를 그린다. 아직까지 이 작품집은 본토인 중국에서 출간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일명 신군국주의 세태를 그린 작품이라는 것으로 작가 자신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음을 밝힌 이 작품들은 중국의 농촌사람들의 열망인 도시로의 진출, 한 자녀만 낳기, 군대 내의 리베이트, 사건이 터지고 각자가 살기 위해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익을 추구하는 상황들이 주인공들의 심리와 대사를 통해 현재의 중국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다. 특히 고도의 발전을 추구하는 시대에 접어든 중국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위해 벌어지는 촌사람들의 성공담은 왠지 씁쓸함을 전해주고 마지막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는 생각지도 않는 가족들의 탐욕이 담긴 모습들을 통해 각기 다른 상황인 중국 내의 현실을 보인 중국 소설 초기작이라 인상 깊게 다가온다.

같은 중국이라는 문학의 세계인 홍콩, 대만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책, 진지하면서도 은유와 해학을 통한 대사와 설정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세 편의 소설을 통해 현재 중국 사회의 삶의 모습과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아직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답답함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독자가 알고 싶은 내용을 일부 읽을 수 있었던 게 큰 수확이다.


저자 : 옌롄커

1958년 중국 허난성 쑹현에서 태어났다. 스물한 살 때부터 28년을 군인으로 살았다. 1978년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다수의 장편소설과 중단편소설, 산문 등을 발표했다. 1979년 군대 내 문학창작반에서 활동하던 중 [전투보]에 단편 「천마 이야기(天麻的故事)」를 실으며 데뷔했다. 그후 1985년 허난대학 정치교육학과를 거쳐 1989년 해방군예술대학 문학과를 졸업했다.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지금까지 11편의 장편소설과 8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비롯한 다수의 수필과 산문을 발표했다.

작가의 주요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출간 즉시 당국으로부터 판금조치와 함께 전량 회수된 일화로 유명하다. 2005년 봄 광저우의 문예지 [화청 花城]에 게재된 이 작품은 마오쩌둥의 사상과 위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출간 되자마자 출판,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는 이른바 '5금(禁)'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강압적인 탄압이 국내외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오히려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 자국 내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몰래 돌려보는 금서로, 국외로는 미국과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 전 세계 10여 개국에 소개되었다.

세계 여러 매체들에 의해 ‘가장 폭발력 있는 중국 작가’라는 극찬을 받는 한편, 주요 작품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정신오염’과 같은 수상한 명분으로 수차례 판금조치를 당해, 문단과 정치문화계를 뒤흔들며 ‘중국에서 가장 쟁의가 많은 작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제1회, 제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 2014년 프란츠 카프카상을 비롯하여 이십여 건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온 중국의 대표 작가다.

현재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고등연구원 교수, 중국인민대학교 문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며, 여러 나라를 돌면서 문학 강연 및 포럼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중국 평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으며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현재 옌롄커는 중국작가협회 위원, 북경시 작가협회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여름 해가 지다(夏日落)』, 『일광유년(日光流年)』, 『물처럼 단단하게(堅硬如水)』, 『레닌의 키스(受活)』,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사서(四書)』, 『작렬지炸裂志』, 『풍아송(風雅頌)』 등이 있으며, 산문집 『나와 아버지(我與父輩)』, 『그녀들(_們)』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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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여기, 내 안 - 평온함이 나를 채울 때까지 마음을 봅니다
진세희 지음 / SISO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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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우리 자신과 따로 분리되어 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존재할 때만 우리의 의식 안에서 상영되는 영화에 불과하다. 우리가 보지 않고 인식하지 않으면 이 현실도, 우주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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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여기, 내 안 - 평온함이 나를 채울 때까지 마음을 봅니다
진세희 지음 / SISO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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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에 대한 답이 나올 때까지 그 질문을 줄곧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를 계속 질문하도록 삶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도 삶이 힘들다고 생각될 때 가끔씩 삶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한다 해도 명쾌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일분 일초를 다투는 삶의 현장에서 일손을 놓고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느 삶의 현장에서 허용하지는 않을 터다. 그래서 좀 더 쉬운 방법을 찾는다. 그것은 독서다. 책을 통해 삶이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를 배우는 것이다. 수많은 책을 읽어도 설득력 있는 명쾌한 답을 내놓은 책을 본 적이 없다. 적지 않은 책을 읽었지만 꽤 의미 있는 답을 내놓은 일부 철학이나 종교인, 명상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서 얻은 삶의 모습을 말하고 그것은 그대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할 뿐이다.



철학자나 삶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삶'과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이 삶에 대해, 또 스스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것은 대개 명상을 통해서다. 아주 고요한 마음의 상태에서 나름대로의 답을 얻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철학자나 종교인, 혹은 명상가들이 그들이다. 이 책 『지금 이 순간, 여기, 내 안』의 저자 진세희는 명상을 통해 삶과 죽음, 나와 우주 등 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고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깊은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독자도 명상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깊이에 있어 아직 '나'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쉽게 답을 얻으리라 생각하며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간단하지 않은 일이란 점은 깨닫게 됐다.



저자에 따르면 ‘내가 지금 맡고 있는 ‘나’라는 캐릭터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일까? 이게 진짜 내 모습의 다인 걸까? 이렇게 내가 맡은 이 역할을 꼭두각시처럼 연기하다가 죽는 게 삶의 전부인 것일까? 이 몸도 내가 아니고, 내 이름도 내가 아니고, 내 직업이나 역할도 내가 아닌 것은 분명 알겠는데,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일까?’

이러한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하며, 나름대로 그 답을 찾아간 여정의 기록이다. 관찰일기를 남겨 글을 모아 이 책을 펴냈다. 저자는 어느 날, 아이 셋을 차에 태우고 가다가 차가 그 자리에서 폐차될 정도의 큰 사고를 겪은 후 죽음이 먼 곳의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옆에서 가까이 동행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경험했다고 한다.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이 마치 영원한 것처럼 착각에 빠져 살고 있었는데, 그것이 산산조각 깨어지는 경험 이후에 그동안 마음에만 묻어두었던 질문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사유한 결과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젠 자신의 관찰일기로 독자에게 자신의 사유를 통한 삶과 죽음, 나와 우주 등에 관한 지금까지의 사유의 편린들을 모아 전하기 위해 책으로 엮었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 세상과 현실에 대한 적잖은 의문점과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그런 본질적인 질문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이 책은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주고 내 안의 해답을 얻을 기회를 만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새벽에 일어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관찰 일기를 쓰고, 명상을 하고,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알아차림과 깨어 있음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순간순간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연습을 할수록 삶의 대부분을 잠든 채로 무의식의 프로그램대로 살고 있음이 분명해졌다고 한다. 고정되고 단단한 실체라고 여겨지는 현실 세계가 실은 우리의 생각으로 이루어진 에너지 파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내가 보고 느끼는 이 세상은 나와 분리되어 따로 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내가 존재할 때 내 의식 안에서 상영되는 나만의 영화이다. 내가 보지 않고 인식하지 않으면 이 세상도, 우주도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숨쉬고 존재하기에 지금 이대로의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절대적인 관찰자이고, 이 세상은 온전히 나에 의해서,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저자의 말이 한 번에 읽히지 않는 것은 독자의 자아 찾기나 자아 탐구가 부족해 빚어진 현상일 수 있고, 저자가 다소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해서일 수도 있다.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좀더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말로 보완해준다.

"깨닫지 못하고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이미 고정된 거대한 세상의 무력한 희생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삶의 모든 일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미 조건 지어진 대로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뿐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조금만 깨어서 찬찬히 바라보면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시간을 참든 채로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미처 의문을 가질 사이도 없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삶의 트레드밀 위에서 내려오는 길은, 밖으로만 향해 있는 나의 눈을 내 안으로 돌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책은 6개의 장으로 나뉘어 구성됐다. 각 장의 제목만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되다면 삶과 '나'에 대해 많은 사유를 해본 독자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들은 얼핏 뜻은 이해되지만 정확하게 표현해보라면 "각 개인인 '나'는 하나의 '우주'이며 세상의 모든 일은 나로 인해 일어나기에 행복 역시 내 안에 있다. 내가 매일 일상을 살아가는 일은 그것 자체가 '기적'이다."라고 읽힌다. 독자도 명상에는 아직 문외한에 속할 터다. 거기다가 '나'에 대한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해 더 많은 질문에 대해 생각조차 못하고 있으니 문외한이고, 초보자이다. 그러나 명상을 통해 '나'와 '삶'에 대한 탐구를 지속한다면 훨씬 높은 단계의 명상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1장. 매 순간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일어납니다

2장. 오직 우리의 마음이 좋고 나쁨을 만듭니다

3장. 우리는 각자가 완벽한 우주입니다

4장.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세요

5장. 행복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6장. 우리 삶은 기적의 연속입니다



“나비가 되는 순간은 애벌레와 번데기의 구차하고 지루한 시기를 견뎌낸 후에 얻게 되는 그 어떤 특정한 한순간이 아니라, 온몸으로 세상과 현실을 껴안고 체험해내는 모든 순간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비를 꿈꾸느라 지금의 자신과 현실을 외면한다면, 우린 결코 삶이 주는 보물을 볼 수 없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지만 결국 집 안 새장에서 파랑새를 찾았다는 동화처럼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나비가 된 나’는 언제나 내 안에 항상 함께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진세희

아들만 셋인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직업은 약사이지만 물질을 다루는 이과적인 마인드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관한 탐구에 더 관심이 많은 여자입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지금 이 모습으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이렇게 살다 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늘 이런 의문들을 품고 살다가, 어느 날 실제로 죽음과 맞닿는 경험을 한 이후 내가 언제든지 이다음 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머리가 아닌 몸으로 직접 깨닫게 됩니다. 그 일을 계기로 이젠 이 숙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누구이고, 내가 인식하는 이 현실의 실체는 무엇인지’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관찰 일기를 쓰고 명상을 하며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는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 이야기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공감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이 책을 펴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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