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끝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앤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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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알고 있는 중국 문학은 노신(魯迅)의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멈췄다. 이후 중국의 문학은 공산주의 사상에 반하는 작품은 배척됐으며 사상 검열을 종용당하는 바람에 제대로 발표된 적도 없다고 한다. 어쩌면 쓸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후의 문학 작품은 당송(唐宋)의 문학 이전으로 후퇴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워낙 책으로 출판돼 나온 작품들이 없어 중국 문학에 대해서는 전문가나 교수들이 아니고는 접하기가 어려워 제대로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직접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쉽다. 아무튼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다면 문학이 문학으로 제대로 설 수가 없을 터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에 중국 소설이 많이 번역돼 나온 것을 보니 대부분 SF판타지물이 대부분이고 그 다음이 타임슬립 같은 것으로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를 오가는 SF판타지의 일종이다. 간혹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활하는 도시인의 야망이나 여성들의 서구화 모습을 담은 것들이 출판되지만 그 수가 적고 내용도 제한적이라는 생각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문학 작품을 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이름만 들어본 적이 있는 작가이다.



이 작품 「그해 여름 끝」도 출판 금지, 판매 금지 당하는 등 억압을 당했다고 들었다. 논란이 되고, 작가는 더 이상 책을 낼 수 없어 시골로 낙향하는 내용이 외신을 통해 가끔씩 들리는 중국 문학계의 소식에 곁들여 들어와 작가 이름과 제목 정도만 들은 기억이 있다. 이 작품과 작가는 중국에서나 외신 문학 담당 기자들 사이에서는 루쉰문학상, 라오서문학상, 카프카문학상 수상자이자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켜세우는 바람에 더 유명해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옌롄커의 대표 소설집 『그해 여름 끝』이다. 중편소설 1편과 단편 2편이 들어 있다.

"양띠 해 1월 초, 보병 3중대에 커다란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이처럼 시작하는 이 소설은 출간 즉시 금서 조치됐고 그래서 더욱 폭발적 이슈를 일으킨 작품이라고 한다. 원제는 「夏日落」인데 우리말로 번역해 「그해 여름 끝」으로 정해졌다.

저자 옌렌커는 “내 모든 문학의 변고와 운명은 전부 「그해 여름 끝」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만큼,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또한 저자가 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고통과 절망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작품을 읽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만큼 깊은 울림과 감동을 경험했다. 독자로서는 오랜만에 문학의 향기가 배어 있는 작품을 대하는 것 같아 호기심과 신비감마저 들기도 했다.

저자가 “내 모든 문학의 변고와 운명은 전부 「그해 여름 끝」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만큼,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책에는 중편소설 「그해 여름 끝」과 미공개 단편소설 두 편 「류향장」, 「한쪽 팔을 잊다」가 추가 수록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어판 특별 서문이 실려 있어 읽을거리가 한층 더 풍성해졌다.


「그해 여름 끝」의 이야기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제한적 공간, 군대에서 총기가 분실되며 시작된다. 두 주인공 중대장과 지도원에게는 진급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강제 전역을 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잃어버린 총을 찾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서로의 과오를 들쑤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하지만 그 순간 하늘을 가를 듯한 총성이 울리고 그들의 삶은 또 다른 변화를 맞는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바로 우리의 뜻과 다르게 인생의 방향이 마음대로 바뀌는 때, 중대장과 지도원의 의사와 상관없이 총기가 분실된 것 같은 때 말이다. 지도원이 중대장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우리가 살면서 뭘 더 바라겠나? 자기 인생의 몫을 살아내는 것뿐이지. 자네도 자신을 너무 속박하지 말았으면 좋겠네.”

인생의 방향이 틀어진 것 같을 때, 스스로 자책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에는 종종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나게 마련이니까.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총 3편의 작품을 다룬 소설집으로 그중 첫 번째 이야기인 「그해 여름 끝」이 가장 긴 분량이다. 중편소설로는 조금 길고, 장편에는 크게 모자라는 분량이다. 보병 3중대에서 벌어진 총기 도난 사건과 이 총을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끊은 사병에 대한 문제를 두고 두 주인공인 중대장 자오린과 지도원 가오바오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농촌 출신으로 중국과 베트남 전쟁을 치른 두 사람의 인연, 그들에겐 각자의 꿈이 있었으나 총기사건과 사병의 자살로 인해 졸지에 구금 과정을 거쳐 윗선의 처분을 기다리는 상황이 된다. 서로의 입장이 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해결이 되는 상황, 어려운 전장에서 서로의 목숨과 승진을 위해 도운 두 사람이었지만 이런 상황이 닥치자 서로가 외면하면서 각자도생의 꿈을 꾸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인 「류향장 이야기」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면 찾을 수도 없는 산골 마을의 젊은이들을 도시로 나가게 유도하면서 마을을 재건하는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인 「한쪽 팔을 잊다」는 공사장에서 건축 중인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망한 동료 진방의 팔을 발견한 인즈가 그의 고향에 들러 장례를 통해 묻어주려 하지만 유족들은 이미 받은 보상금 외에 잃은 팔 손가락에 낀 반지마저 눈을 돌리는 세태를 그린다. 아직까지 이 작품집은 본토인 중국에서 출간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일명 신군국주의 세태를 그린 작품이라는 것으로 작가 자신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음을 밝힌 이 작품들은 중국의 농촌사람들의 열망인 도시로의 진출, 한 자녀만 낳기, 군대 내의 리베이트, 사건이 터지고 각자가 살기 위해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익을 추구하는 상황들이 주인공들의 심리와 대사를 통해 현재의 중국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다. 특히 고도의 발전을 추구하는 시대에 접어든 중국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위해 벌어지는 촌사람들의 성공담은 왠지 씁쓸함을 전해주고 마지막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는 생각지도 않는 가족들의 탐욕이 담긴 모습들을 통해 각기 다른 상황인 중국 내의 현실을 보인 중국 소설 초기작이라 인상 깊게 다가온다.

같은 중국이라는 문학의 세계인 홍콩, 대만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책, 진지하면서도 은유와 해학을 통한 대사와 설정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세 편의 소설을 통해 현재 중국 사회의 삶의 모습과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아직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답답함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독자가 알고 싶은 내용을 일부 읽을 수 있었던 게 큰 수확이다.


저자 : 옌롄커

1958년 중국 허난성 쑹현에서 태어났다. 스물한 살 때부터 28년을 군인으로 살았다. 1978년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다수의 장편소설과 중단편소설, 산문 등을 발표했다. 1979년 군대 내 문학창작반에서 활동하던 중 [전투보]에 단편 「천마 이야기(天麻的故事)」를 실으며 데뷔했다. 그후 1985년 허난대학 정치교육학과를 거쳐 1989년 해방군예술대학 문학과를 졸업했다.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지금까지 11편의 장편소설과 8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비롯한 다수의 수필과 산문을 발표했다.

작가의 주요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출간 즉시 당국으로부터 판금조치와 함께 전량 회수된 일화로 유명하다. 2005년 봄 광저우의 문예지 [화청 花城]에 게재된 이 작품은 마오쩌둥의 사상과 위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출간 되자마자 출판,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는 이른바 '5금(禁)'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강압적인 탄압이 국내외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오히려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 자국 내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몰래 돌려보는 금서로, 국외로는 미국과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 전 세계 10여 개국에 소개되었다.

세계 여러 매체들에 의해 ‘가장 폭발력 있는 중국 작가’라는 극찬을 받는 한편, 주요 작품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정신오염’과 같은 수상한 명분으로 수차례 판금조치를 당해, 문단과 정치문화계를 뒤흔들며 ‘중국에서 가장 쟁의가 많은 작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제1회, 제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 2014년 프란츠 카프카상을 비롯하여 이십여 건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온 중국의 대표 작가다.

현재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고등연구원 교수, 중국인민대학교 문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며, 여러 나라를 돌면서 문학 강연 및 포럼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중국 평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으며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현재 옌롄커는 중국작가협회 위원, 북경시 작가협회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여름 해가 지다(夏日落)』, 『일광유년(日光流年)』, 『물처럼 단단하게(堅硬如水)』, 『레닌의 키스(受活)』,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사서(四書)』, 『작렬지炸裂志』, 『풍아송(風雅頌)』 등이 있으며, 산문집 『나와 아버지(我與父輩)』, 『그녀들(_們)』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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