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 아우렐리우스편 세계철학전집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을 읽은 적이 있다. 당연히 번역본이고, 번역본은 영어로 쓰인 판본이다. 고대 로마 문장(라틴어)은 해석고, 번역한 사람마다 다소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해석이 달랐다는 것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뜻을 이해하기에 바빴고 어떤 것이 잘 된 번역인지는 알 길이 없었기에 그렇다. 결국 독자는 영어 번역본 『명상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덮곤 했다. 이 책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는 편저자 이근오가 〈서문〉을 썼다. 편저자는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해줄까"를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며 살지는 않는다. 물론 '무엇을 하고 싶다', '어떻게 살까' 정도는 하고 살지만··· 그러나 편저자처럼 깊은 생각에 빠지면 명쾌한 답이 내려지기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 이 같은 질문을 오래 하지 않는다. 편자의 경우 깊은 생각이 오히려 자신을 더 외롭게 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때 만난 사람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편저자는 밝힌다. 

편저자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였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엄격하게 돌아보며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고요한 마음을 지키려 애썼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원래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니었다. 하루의 끝에서 자신을 다잡기 위해,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그저 조용히 스스로에게 써내려간 문장들이었다. 그런 글이 편자에게는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생애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낸 황제였다. 전쟁터에서 『명상록』을 집필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살륙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전장(戰場)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글을 썼다는 사실은 보통의 황제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아우렐리우스는 훌륭한 황제로서, 후계자를 세습하기보다 로마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나라의 지도자로서 훌륭한 황제이자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한 철학자였다. 

편저자는 『명상록』을 읽을 때마다 황제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불안과 조급함이 엿보였던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글들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미 오래 전 모든 사람을 다스렸던 황제이자 한 명의 철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외로움이 편자의 외로움과 결이 같다고 느꼈을까?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 것,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 갈 것,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말 것, 묵묵히 나의 길을 갈 것 등이 절절하게 전해졌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도 다가온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행동이 아니라면 철학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은 자기의 본성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본성은 이성적이고, 공동체적이며,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아우렐리우스는 말을 남겼다. 그는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한 철학자였다. 로마의 황제라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는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이 올바르게 살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철학은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그의 신념은,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을 접하는 현대인들이 그의 태도를 배워,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이 곧 편자의 말임을 독자에게는 읽힌다.

『명상록』이 편자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함께 준 책이었다는 말과 일치되는 부분이다. 편자는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문장들, 그리고 편자가 살아오며 겪은 마음의 조각들을 조금씩 꺼내어 책으로 엮었다고 밝히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이자 철학자로 『명상록』이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전을 남겼다. 황제가 『명상록』을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지만, 전쟁과 정치도 굉장히 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은 물론 그의 치적을 영화 등의 예술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명상록』은 황제로서 겪은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깊이 깨달은 성찰을 담아 쓴 책이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삶이 어렵거나 답답할 때 읽으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고전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필독서로 꼽히며 넬슨 만델라와 빅터 프랭클도 이 책을 읽고 살아야 할 용기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이 책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는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말 중에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핵심적인 주요 골자를 가려 뽑아 『명상록』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가려 뽑아 묶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하려는데 지혜가 필요할 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문제로 고민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기를 권유한다.



이 책은 『명상록』의 문장 가운데 주제별로 묶어 모두 5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왜 당신은 상처받지 않아도 될 말에 아파하는가〉, 2장 〈당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마라〉, 3장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4장 〈나를 지키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5장 〈삶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등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통에서도 10년에 걸쳐 일기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외세의 침략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그였지만 삶의 길을 찾기 위해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늘 고민했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진실한 인간이 되기 위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이 우주에 존재하는 한 영원불변의 법칙이다”라고 말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1장 첫 번째 「나를 아프게 한 건 나의 해석이다」에서는 살다보면 상대방에게 까닭없이 비난 받을 경우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게속해서 시간을 쏟는 경우가 잦다. 이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외부의 일로 인해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고통은 그 일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당신이 언제든지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편저자의 해석이 이어진다. "처음엔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를 괴롭힌 말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서 왔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말이 옳고 안 옳고의 문제보다, 내가 그 단순한 말에 어떤 무게를 부여햇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p.17) 

편저자의 의견이 이어진다. 말은 그저 말일 뿐이다. 내가 받지 않으면, 어떤 말이든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강아지가 아무리 짖어도 내 마음에 어떤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를 보며 계속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며 같이 짖고 있었던 것이다. 길을 지나가다가 짖는 개를 보고 나도 같이 짖는다면 목적지에 절대 도착할 수 없다. "타인의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깊이로 받아들이냐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p.18)


2장 네 번째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의 글은 흥미롭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선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좋은 점을 말하며 관심을 끌려고 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았다고 편저자는 쓰고 있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마음먹고,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단 한 번이라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편저자는 지적한다. 그렇게 꾸준히 생각하고 애쓰며 만든 결과로 인품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싶다. 사람들은 완벽을 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완벽보다는 노력을 통한 변화를 더 좋아하고, 말로만 하는 배려보다는 진심이 보이는 행동에 더 감동받는다. 그렇기에 꼭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고 꼭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부족함에도 매일 조금씩 더 괜찮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족하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는 먼저 찾아가 얼굴을 마주 보는 것. 도와주고 싶다는 말보다는 먼저 그 짐을 덜어주는 것. 아낀다는 말보다는 정말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런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태도는 결국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편저자는 강조한다.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라."(p.71)

3장 첫 번째 「남의 일에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라는 글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류 공통의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저자는 지적한다. 남의 삶을 궁금해하다 보면 결국 가장 소홀해지는 것은 나의 삶이다. 내가 더 신경 쓰고 생각해야 할 것들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점점 더 빈 수레가 되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자기 계발에 신경 써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성장시키는 삶을 살고, 누군가는 남 얘기만 ㅎ며 변화 없는 삶에 머문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을 편저자는 『명상록』에서 찾아 적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하며,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신경 쓰지 마라. 오직 당신 자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하라."(p.99)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할 것은 남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이다. 오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며, 어떤 태도를 지키며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3장 다섯 번째 「네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너의 태도를 바꿔라」라는 제목의 글이 인상적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관계로 인한 불편함을 겪게 된다. 누군가의 태도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낀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감정 소모는 더 커진다. 실망과 불편함 속에서도 참아내는 것이 배려이고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하며, 이해되지 않아도 억지로 받아들이려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불편함을 무조건 참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분명하게 상황을 구분하라고 했다. "네게 일어난 일을 바꾸는 것이 네 힘으로 불가능하다면, 네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에 대한 너의 태도뿐이다."(p.114)


저자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 《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편역 : 이근오


오늘날의 언어로 새롭게 와닿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발의 철학자 - 타고난 철학자 '개'에게 배우는 단순명료한 행복의 의미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팡세』의 서두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말했다.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인간만이 하는 고유의 행위다. 즉 인간이 아닌, 지구상의 다른 어떤 동물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을 표현한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행위로서 인류 출현 이후 짧은 기간에 지구의 모든 생물종 최상위층에 우똑 섰다. 단순히 경쟁하는 상황에서 가장 최고의 계층에 자리한 정도가 아니라 다른 종이 범접할 수 없는 창조주 '신의 대리인'이라는 오만한 생각까지 해냈다. 물론 인간의 생각하는 힘이 인류를 창조하는 능력이 다른 종에 비할 수 없이 탁월한 관점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 『네 발의 철학자』는 '개'가 인간보다 철학자로서는 더 우위에 있다는 점을 주장하는 무척 도발적인 가설에서 출발한다. 저자 마크 롤랜즈가 세운 가설이지만 내용 자체는 독자들이 읽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관찰과 연구, 사색이 응집된 탐구를 통해 정립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저자 롤랜즈는 전작 『철학자와 늑대』에서 『철학자~』는 야성을 간직한 채 인간 세계에 동참한 늑대와 그의 소울메이트 괴짜 철학자인 저자와의 우정에 관한 놀라운 실화를 담았다. 『철학자~』에서는 인간의 세계에 동참해 상상 초월의 세상살이를 했던 한 마리 늑대의 삶이 펼쳐진다. 대학 강의실에, 도로 위에, 쇼핑 센터에, 비행기에, 페리의 갑판 위에서 늑대는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문명 세계에 거뜬히 적응한 늑대 브레닌은 어느새 철학자의 인생과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성의 대표주자 철학자는 야성의 대표주자 늑대에게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배우고 늑대라는 거울에 비춰진 인간의 진실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철학자~』를 통해 과연 지성과 야성은 공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변을 보여주었다. 또 세상에 길들여져 잃어버린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인간이 규정한 인간의 모습을 넘어 나아가는 법을 들려주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 『네 발의 철학자』를 통해 개와의 삶으로부터 얻은 통찰을 심도 있게 담아냈다. 이 책은 개와의 삶에서 얻은 깨달음을 시대를 아우르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흄, 스피노자,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까지 인간계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개의 삶과 견주어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특히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으로 여기는 ‘성찰’이 오히려 삶을 불행하게 한다고 말하는 이 책은 성찰하는 인간과 몰입하는 개를 대비하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찰한다. 이 책과 함께 견생(犬生)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본다면, 잃어버렸던 인간의 본성과 삶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철학 강의」란 제목의 〈추천사〉에서 "반려견과 함께하면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가르침"이라며, "이 단순한 가르침이야말로 반려견이 반려인인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한다.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개들은 타고난 철학자이다. 만약 인간이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각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개들은 살아가면서 알게 된다. 인간은 철학적 질문을 던져놓고 생각을 시작하지만 개는 그 질문을 온몸으로 살아낸다. 개는 철학이 무엇인지 몰라도 삶을 통해 철학적 교훈을 실천한다. 개들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가 추구하는 철학이 답이다. 최 교수는 이 책이 개의 행동을 관찰하며 의식, 본성, 성찰, 도덕, 자유, 행복, 우연과 필연, 주관과 객관, 그리고 삶의 의미까지 철학의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분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결국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철학은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우리 삶의 근본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 『네 발의 철학자』에서 자신과 함께했던 개들을 관찰해 답을 찾아 나간다. 특히 수색‧구조‧보호견종 슈츠훈트 혈통인 섀도의 일상 행동을 살피다 ‘유레카’를 외친다. 섀도는 운하 변에 사는 파충류 이구아나를 잡으려는 질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언제나 허탕을 치지만 아침마다 이를 즐겁게 반복한다. 이처럼 반복적인 일로도 충만한 기쁨과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은 결실 없는 반복을 정신적 고문으로 여긴다. 인류에게 불을 전했다가 신의 미움을 사서 바위를 언덕 위로 올리다 굴러떨어지곤 다시 시작하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형벌을 받았다는 ‘시지포스의 바위’ 신화가 은유하는 바다. 이처럼 인간은 반복적이고 소소한 일상에도 전념하는 개와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차이의 원인을 자기성찰이 가능한 인간이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며 불만을 제기하는 데서 찾는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철학자를 찾는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철학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데서 출발하고, 계몽철학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에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캐묻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성찰과 거리가 있는 개의 단순명료한 삶이라 해서 과연 무의미한 것일까?"


저자는 자신이 함께한 반려견을 통해 "개는 남의 눈을 의식해 자신의 삶을 검열하거나 캐묻거나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원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지 않으냐"는 특성을 밝혀낸다. 저자는 또 인간과 개는 본성의 분출 방식에서도 대조적이라고 주장한다. 저먼 셰퍼드를 훈련해 사냥‧경비를 맡기면 본성을 풀풀 뿜어낸다는 것이다. 섀도가 매일같이 이구아나와 다람쥐를 쫓으면서도 지루해하지 않고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이를 통해 공격과 보호의 본성을 발산하는 기쁨을 누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인간은 본성이 약해져 다양한 사건의 의미를 따지고 진행 중인 상황의 과정과 결과를 과도하게 고민할 뿐이라고 대조적인 행동에 대해 주시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행동양식에선 행복이 분출될 도약대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인간을 ‘불완전한 철학자’로 부르는 까닭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인간은 도덕 덕분에 개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개도 도덕적으로 행동한다고 반박한다. 위험한 상황을 무릅쓰면서 다친 동료의 곁에 있어 주고, 먼 거리를 오가며 먹이를 구해와 새끼나 주변 동물과 나누는 자기희생적 사례는 드물지 않다. 개의 도덕적 행동은 다른 개체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공감 능력과 가치에 맞춰 행동하는 억제 능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설명이다. 개는 인간 같은 복잡한 자기성찰 없이도 행동으로 도덕과 연민, 공존을 실천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성찰’하는 인간과 ‘몰입’하는 개를 대비하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찰하기 위해 쓰여졌다. 특히 인간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철학적 ‘성찰’의 능력이 오히려 삶을 불행하게 한다고 말하며 우리가 치르고 있는 성찰의 대가란 무엇인지 알아본다.

저자가 개와 함께하며 도출해낸 탐구 결과 중 하나가 「노래하는 법을 잊지 않는 타고난 철학자」라는 제목의 〈서문〉에 알베르 카뮈를 인용한다. 개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반복 훈련을 많이 하는데, 이는 매일 반복되는 교훈이며 이를 철학 이외의 다른 것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삶의 의미에 관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철학적 문제는 모두 장난이라고 했다. 이 질문은 삶의 의미를 묻는 하나의 방식이다. 카뮈의 생각은 힘든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삶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찾는다면 삶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다. 답할 질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새도는 이미 답을 했고, 카뮈와 내게는 없을 확신까지 있었다. 대답은 간단하다. 모든 것! 철학적 질문에 대한 개들의 답변이다. 그러하듯, 정교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정교함이 개의 두드러진 강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대답에는 근본적인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정답이 아닐지는 모르나, 정답에 가깝거나 정답 쪽을 가르킨다. 즉 영리하고 정교한 영장류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를 제공하는 셈이다. 개들은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창의적이다. 나는 큰 그림의 세부 사항을 채우는 일개 영장류에 불과하다. 

삶의 의미는 개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철학적 탐구와는 거리가 멀다. 잘 관찰하면 개들이 의식과 이성의 본질, 도덕성의 의미, 자유의 범위와 한계 같은 문제를 깊이 고민하는게 보인다. 개들은 철학적 논쟁은커녕 그들이 고민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않고도 이런 난제들에 힘들이지 않고 답한다. 그리고 그 모든 답을 완전체로 통합시키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과 행동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과 그 유사 개념인 행복, 전념 같은 것은 모든 '개 철학'의 초석을 이룬다.(p.12~13) (중략) 개들은 타고난 철학자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 뭔가를 알게 되지만, 개들은 살아가면서 알게 된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섀도의 바위〉, 2장 〈캐묻지 않는 삶〉, 3장 〈거울아, 거울아〉, 4장 〈도박꾼의 자유〉, 5장 〈착한 개〉, 6장 〈삶의 설계〉, 7장 〈입스를 겪는 개〉, 8장 〈가끔 에덴을 바라보다〉 등이다. 2장 〈캐묻지 않는 삶〉에서 저자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다가올 일은 걱정을 낳고 지나간 일은 후회를 부르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행복은 멀어져간다고 밝힌다. 반면 개에게는 매 순간이 행복 그 자체다. 후회도 걱정도 없이 오직 현재에 머물 뿐이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변함없이 기뻐하는 개를 바라보며 저자는 몰입하는 삶의 행복이란 무엇인지 살핀다. 책에 따르면 매일같이 언덕에서 이구아나 떼를 추격하는 반려견 섀도의 일상을 시시포스의 신화와 견주며 그가 우리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생각해본다. 섀도와 시시포스는 되풀이되는 일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한쪽은 삶의 의미로 넘쳐흐르고, 다른 한쪽은 무의미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의미와 무의미, 즉 섀도와 시시포스를 가르는 것은 ‘본성’이다. 외부의 개입 없이 본성에서 비롯된 행복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것은 본능에 충실하여 이구아나를 쫓는 섀도처럼 존재와 행동이 정확히 일치할 때 가능하며 거기에는 어떤 고민도 의심도 자기 검열도 끼어들지 않는다. 


이에 따라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찾는다면 삶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다. 답할 질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새도는 이미 답을 했고, 카뮈와 내게는 없을 확신까지 있었다. 대답은 간단하다. 모든 것! 철학적 질문에 대한 개들의 답변이다. 그러하듯, 정교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정교함이 개의 두드러진 강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대답에는 근본적인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정답이 아닐지는 모르나, 정답에 가깝거나 정답 쪽을 가르킨다. 즉 영리하고 정교한 영장류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를 제공하는 셈이다. 개들은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창의적이다. 나는 큰 그림의 세부 사항을 채우는 일개 영장류에 불과하다. 

삶의 의미는 개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철학적 탐구와는 거리가 멀다. 잘 관찰하면 개들이 의식과 이성의 본질, 도덕성의 의미, 자유의 범위와 한계 같은 문제를 깊이 고민하는게 보인다. 개들은 철학적 논쟁은커녕 그들이 고민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않고도 이런 난제들에 힘들이지 않고 답한다. 그리고 그 모든 답을 완전체로 통합시키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과 행동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과 그 유사 개념인 행복, 전념 같은 것은 모든 '개 철학'의 초석을 이룬다.(p.12~13) (중략) 개들은 타고난 철학자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 뭔가를 알게 되지만, 개들은 살아가면서 알게 된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섀도의 바위〉, 2장 〈캐묻지 않는 삶〉, 3장 〈거울아, 거울아〉, 4장 〈도박꾼의 자유〉, 5장 〈착한 개〉, 6장 〈삶의 설계〉, 7장 〈입스를 겪는 개〉, 8장 〈가끔 에덴을 바라보다〉 등이다. 2장 〈캐묻지 않는 삶〉에서 저자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다가올 일은 걱정을 낳고 지나간 일은 후회를 부르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행복은 멀어져간다고 밝힌다. 반면 개에게는 매 순간이 행복 그 자체다. 후회도 걱정도 없이 오직 현재에 머물 뿐이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변함없이 기뻐하는 개를 바라보며 저자는 몰입하는 삶의 행복이란 무엇인지 살핀다. 책에 따르면 매일같이 언덕에서 이구아나 떼를 추격하는 반려견 섀도의 일상을 시시포스의 신화와 견주며 그가 우리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생각해본다. 섀도와 시시포스는 되풀이되는 일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한쪽은 삶의 의미로 넘쳐흐르고, 다른 한쪽은 무의미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의미와 무의미, 즉 섀도와 시시포스를 가르는 것은 ‘본성’이다. 외부의 개입 없이 본성에서 비롯된 행복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것은 본능에 충실하여 이구아나를 쫓는 섀도처럼 존재와 행동이 정확히 일치할 때 가능하며 거기에는 어떤 고민도 의심도 자기 검열도 끼어들지 않는다. 


저자는 이처럼 단순하지만 명료한 개의 행복을 보여주는 이 책은 성찰하지 않는 삶이 단지 살 만하다는 것을 넘어 끝없이 캐묻고 의심하는 삶보다 가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어지는 챕터에서 저자는 자기 인식, 자유, 도덕성, 이성 등의 철학적 개념이 과연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를 질문하고, 우리가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 여겨왔던 개념들이 동물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저자는 개의 행동에 기대어 철학자들의 사상과 개념을 새롭게 해석한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을 알아보는 거울 실험이나 후각 실험의 결과를 통해 개는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에 관심이 없을 뿐 자기 인식 능력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스피노자와 사르트르가 정의한 ‘자유’를 토대로 개와 인간의 자유는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스피노자가 말한 ‘본성의 필연성에 의한 자유’가 개의 자유에 가깝고, 사르트르가 주장한 각자의 해석과 의미 부여에서 비롯되는 자유는 인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받아들이는 자유의 의미조차 우리 생각과 해석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인간만이 도덕적이라는 생각도 뒤집는다. 복잡한 사고의 과정 없이 무리의 다른 개체를 구하거나 반려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여러 사례를 통해, 행동의 근거가 다를 뿐 동물 역시 도덕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개의 도덕성은 공감과 억제라는 두 가지 기둥에 근거하고 있음을 전한다. 또 논리적 추론을 거치지는 않지만 인간의 이성을 수단 삼아 원하는 바를 얻는 개의 능력을 짚으며, 인간은 개의 ‘확장된 마음’이라는 결론에까지 다다른다. 즉 개는 이성을 사용하는 방식이 인간과는 다르다는 것을 일러둔다.

우리는 개의 경우보다 삶을 사랑하기 어렵다. 삶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하고 집중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삶과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특히 성찰은 인간의 삶을 두 개로 나눈다. 우리는 실제로 삶을 사는 주체이자 스스로를 관찰하는 객체로 분열되어 두 개의 삶을 산다. 삶의 배우이자 관객인 것이다. 배우로서 삶에 몰입하지만 관객으로서 삶을 바라보고 평가하기도 하는 우리는 두 삶 중 어느 하나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반면 성찰하지 않는 개는 오직 주체로서 하나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매 순간에 몰입하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사랑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체와 객체라는 삶에 대한 두 관점을 살펴보며, 주체로서의 경험을 늘려가야 삶을 사랑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활기 넘치던 젊은 시절 늑대와 함께한 성장기를 그려낸 『철학자와 늑대』 이후 저자가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개와 걸어가는 여정을 담은 이 책은, 끝을 알 수 없는 삶이라는 길을 보다 의미 있게 걷는 법을 알려준다. 이 책과 함께 견생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본다면, 잃어버렸던 인간의 본성과 삶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삶에는 ‘객체로서의 삶’과 ‘주체로서의 삶’이 있다. 객체로서의 삶은 내가 생각하는 삶, 그것에 대해 희망과 두려움, 만족과 후회를 품는 삶이다. 이는 외부에서 바라본 나의 삶이다. 시간적 경계는 태어날 때 시작되어 죽음에서 절정에 이른다. 공간적 경계는 다소 불분명하겠지만 내 삶은 일반적으로 내 몸 주변에서 일어나고, 비교적 내 몸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p.231)


저자 : 마크 롤랜즈(Mark Rowlands)


영국 웨일스 뉴포트 출신의 괴짜 철학자이자 현재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 철학과 교수이다. 그가 11년간이나 동고동락했던 그의 오랜 친구 늑대 브레닌 이야기는 세계 15개국에서 출간되고 전 유럽 아마존 6년 연속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대표작 『철학자와 늑대』 덕에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젊고 매사 삐딱했던 저자는 이 놀라운 책에서 가슴 찡한 늑대의 철학을 빌려 우리 인간의 모습을 날것으로 보여 줘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제 두 아이의 아빠이자 나이 오십을 2년 앞둔 저자는 한편으로는 여전히 까칠하지만 전반적으로 완숙해진 중년의 철학자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섰다. 이번에는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웨일스의 돌산에서, 프랑스의 해변에서, 플로리다의 늪지에서 그리고 마이애미의 마라톤 출발선에서 달리고 달리면서 깨달은 인생의 의미를 전한다. 특히 나이 들어 비로소 얻게 되는 진정한 자유와 끝없이 반복되는 환희의 세계로 안내한다.

주요 저서로 대표작 『철학자와 늑대』를 비롯해 『동물권』 『동물의 역습』 『동물은 윤리적일 수 있는가』 『SF철학』 『내가 아는 모든 것은 TV에서 배웠다』가 있다.


역자 : 강수희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외 유수 기업의 통·번역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철학자와 늑대』, 『철학자가 달린다』, 『인생은 불친절하지만 나는 행복하겠다』, 『속도의 배신』, 『지금 생각이 답이다』, 『마음에 대해 달리기가 말해 주는 것들』 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 - 신병주 교수의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한민국은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나라임에도 역사적인 유적이 많지 않은 점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유럽 여행을 처음 가서 그들의 문화 유적을 보고 느낀 점이다. 그들은 선진국이었고, 우리는 개발도상국이어서였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럽의 문화 유적은 우리와 비슷한, 혹은 우리보다 덜 된 역사임에도 찬란하고 웅장했다. 특히 건축 문화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대단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본 것들이 관광지 이곳 저곳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데 보는 것마다 대단했다. 높이 치솟은 성당, 웅장한 그리스·로마 시대의 공공건물··· 볼수록 주눅이 들 정도였다. 물론 건축물은 해당 지역의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란 인식은 있었지만 돌 건축물에 치장된 장식의 솜씨는 우리의 다보탑에 못지 않았고, 크기는 보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관광객 입장에서 볼 때는 유럽인들은 "조상 덕에 먹고 산다"고 독자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화 유적은? 주변 나라나, 지형, 기후 조건을 따져야겠지만, 우선 외관상 크기는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질투심이었는지, 위축감이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란 자긍심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의 문화 유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온 것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부족해 보였다. 이와 반대로 우리 역사마저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나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린 역사상 강대국임을 자처한 적이 없다. 먼 과거 고대 삼국시대 때가 유일하게 정복자로서의 나라의 위상이 크게 높았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 왕조를 능가하는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중국까지 침략해 들어가 정복하려는 침략의 역사는 없었다. 유럽 선진국들은 전쟁에서 이긴 '승전의 역사'였다. 이처럼 유럽의 역사와 우리 역사가 다른 점은 분명하다.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해 나라가 부강해지는 일은 우리 민족 역사에 없다는 말이다. 당연히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란 최고의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찬란하고 웅장한 역사 유적을 갖지 못한 점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민족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비춰 본다면 우리도 자랑할 만한 역사 유적이 숱하게 많다. 좁은 영토지만 5,000년 동안 쌓이고, 흔적을 남긴 유적들은 한반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상징성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우리는 근대 이후의 역사가 침략 당해 억압받고, 외부 세력에 의해 이념적으로 분단됐다. 이념이 다른 두 강대국에 의해 영토마저 강제로 분단된 이후 겪은 한국전쟁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그러나 역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일제 강점기의 피지배 민족으로 가혹한 수탈과 우리 민족성의 훼손이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끊임없이 침략을 당해 왔다. 중국, 일본, 러시아뿐만 아니라 근대 들어 세계 강국으로 등장한 미국도 우리에겐 호의적이지 않았다. 강대국이 가진 힘의 논리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민족성이나 나라에 대한 자긍심은 우리의 자랑할 만한 정신 자산이다. 정신 자산은 유형의 물적 유산을 남기지 않아 눈에 띄이지 않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우리 삶이 파괴될 위험 앞에선 단결력과 끈끈한 유대감, 그리고 남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있는 인내력이 큰 힘을 발휘한다. 바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자산이다. 

이런 민족성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길 곳곳에도 역사적 흔적을 남겼다. 그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면 그 길은 더 이상 그저 그렇고 그런 곳이 아니다. 그때의 인물, 그때의 사건, 그때의 공간이 연결되면서 생생한 역사적 장면과 마주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에게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또 그럴수록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선조들의 정신적 강인함을 찾아내 널리 알려야 하는데 일제강점기 지배는 민족적 정신력을 말살하려 했기에 더욱 잔인한 식민주의라고 배척해야 한다. 그러나 이때 강제된 식민주의 역사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일부 집단의 그릇된 역사관도 이젠 하나씩 정리돼 가고 있다. 이 책 『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은 "과거와의 만남도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라는 주장을 가진 저자 신병주의 신념의 산물이기도 하다. 서사적 인과관계에 치중한 묵직한 역사서와는 또 다른 매력이 이 책에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다.


'그때의 현장'을 실제로 마주하게 함으로써 생생한 진짜 역사를 알게 하는 이 책 한 권을 들고 지금 당장 뛰어나가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거닐어볼 것을 저자는 권유한다. 그 길에 뜻밖의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고, 현재와의 연결선상에서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이 멀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켜켜이 쌓인 역사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따라가면서 선조들의 멋스러운 지혜와 품격을 엿보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얻게 되는 깨달음은 그야말로 민족적 자산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활동은 현장 답사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역사를 만들어 간 인물과 공간은 그 존재만으로 생생한 사건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이 역사 현장 답사의 가치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저자가 실제로 현장 답사를 나가 설명한 내용과 그때의 경험과 느낌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실제 답사가 가능하도록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 각 지역별로 파트를 나누었다. 둘째, 역사의 현장에서 만나는 인물, 사건, 공간을 키워드로 하여 서술한 만큼 생동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셋째, 각 장(章)마다 현장을 찾아가는 길과 관련 정보를 박스로 표기하여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역사는 씨줄과 날줄로 경험된 사건, 인물, 그리고 공간을 파악한다. 그리고 파악된 내용을 바탕으로 씨줄과 날줄로 빈틈없이 엮어 완전한 원형에 맞추어 낸다. 이것이 역사관이고 역사 기술이다. 이렇게 잘 맞추어진 역사는 우리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힘을 준다. 과거를 교훈 삼아 실수는 되풀이하지 말고, 과거의 장점은 다시 사용하도록 추출해낸다. 공자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이고, 신채호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념이 우리에게 주는 묵직한 가르침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역사의 현장에서 만나는 인물, 사건, 공간을 키워드로 하여 서술한 만큼 보다 생동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고, 현장을 찾는 안내까지 부기하여 책을 읽으면서 답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들이 현장 답사를 통해 역사가 주는 즐거움과 의미를 얻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을 쓴 이유"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역사관과 역사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의 흔적을 모두 7장(章)으로 나누어 기술한다. 1장 〈왕실의 역사, 궁궐 속으로〉, 2장 〈갈등과 변화의 공간, 서울〉, 3장 〈외곽의 역사, 경기도〉, 4장 〈선비의 고장, 경상도〉, 5장 〈유배지에서 꽃핀 학문, 전라도〉, 6장 〈청백리와 천주교의 흔적, 충청도〉, 7장 〈허난설헌과 김만덕, 강원도·제주도〉 등이다. 우리 5,000년의 역사를 다 담을 수 없는 이유는 한민족 역사 중 분단된 후 80년 동안 남한의 역사학자가 확실하게 정사(正史)를 분석하고 고증, 확증할 수 있는 부분이 조선시대 우리 역사뿐이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앞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올바른 역사 쓰기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계속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1장는 근정전·집현전과 같이 익숙한 공간 이외에 내의원, 종친부, 창덕궁 후원의 설경 등 새로운 공간을 주로 다룬다. 2부에서는 칠궁, 왕의 잠저, 흥덕이 밭, 인조별서유긷비 등 조선왕조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수 소개한 점이 눈에 띈다. 3부에서는 추사 김정희와 과천, 정몽주, 조광조와 경기도 용인과의 인연 등을 설명한다. 4부는 안동 하회마을, 한산도대첩과 노량해전의 현장들, 조식과 지리산 산천재 등을 소개한다. 또 5부는 정약용과 강진, 정약전과 흑산도, 유형원과 부안의 학문적 인연 등을, 6부에서는 성삼문과 윤봉길 의사의 당진 솔뫼성지 등을 찾아간다. 마지막으로 7부에서는 허난설헌, 신사임당, 김만덕의 행적을 짚어본다. 

서울 지역은 오랫동안 조선의 수도 역할을 했던 만큼 곳곳에 의미 있는 유적지가 가득하다. 서울 중심지에는 왕과 왕비가 살았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5대궁뿐 아니라 그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 나아가 왕을 낳은 어머니들의 신주를 모신 칠궁 등이 모여 있다. 북촌은 양반들이나 고관들이 주로 거주했던 공간이다. 북촌의 헌법재판소가 있는 자리에는 『열하일기』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와 개화파 정치인 홍영식의 집터 표지석이 있고 1885년에 설립된 최초의 병원 제중원 표지석도 있다. 서촌은 조선 후기 양반과 평민 사이에 위치한 중인들이 시와 문장 등의 문화를 즐기는 곳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시인 천수경이 주인이었던 ‘송석원’으로, 친일파 윤덕영은 그 자리에 한양의 아방궁이라 불리던 ‘벽수산장’이라는 저택을 짓기도 했다. 지금은 박노수미술관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박노수미술관 주변에는 시인 이상이 20년간 살았던 집터에 자리한 ‘이상의 집’, 연희전문학교 학생 윤동주가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음을 알려주는 ‘윤동주 하숙집’ 표지판도 찾아볼 수 있다.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산, 낙산, 인왕산, 남산, 백악산을 연결한 한양도성, 한명회의 화려했던 정치 인생과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압구정동의 유래가 된 정자 압구정, 석촌호수 쪽으로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삼전도비를 찾아볼 수 있다.


경기도 여주에는 세종대왕의 영릉이 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무덤 헌릉(서초구 내곡동)의 서쪽으로 자신의 무덤 자리를 생전에 정한 왕이었고 사후 그곳에 묻혔다. 하지만 풍수지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계속 지적되고 문종, 단종, 의경세자 등 적장자 출신들이 연이어 요절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경기도 여주로 옮겨졌다. 용인에는 성리학의 수용과 실천에 공을 세운 정몽주와 조광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과 구리시의 동구릉은 왕과 왕비를 모신 대표적인 왕릉군이다. 강화도는 고대 유적인 고인돌부터 고려시대 유적인 고려궁궐 터, 조선시대 유적인 정족산사고와 외규장각 등 시기별 유적을 잘 갖추고 있는 곳이다. 외규장각은 정조 때 지어진 것으로 궁궐 안은 전쟁이나 화재의 안전지대가 아니었기에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지어 왕실의 도서를 보존했다.

경상도 안동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과 퇴계 이황 학문의 산실로 꼽히는 도산서원 및 퇴계종택이 있다. 근처에는 이황의 후손인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의 생가를 복원한 육우당도 있다. 산청에는 이황과 더불어 영남학파 양대산맥인 조식의 생가, 산천재가 있다. 경의 상징인 방울과 의의 상징인 칼을 찬 선비로 기억되는 조식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곽재우 등 많은 의병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남해로 가면 이성계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금산의 보리암, 노량해전의 이순신을 기린 관음포, 『사씨남정기』의 작가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를 만날 수 있다.

전라도 담양에는 호남 선비의 풍류와 멋이 담긴 소쇄원이 있다. 소쇄원은 조선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 조광조의 문인이었던 양산보가 스승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자 정자를 짓고 은거했던 곳이다. 흑산도는 정약용의 형이자 『자산어보』의 저자인 정약전의 유배지로 정약전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책을 집필한 공간인 사촌서실이 있다.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는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사건인 신유박해로 유배길에 올랐고 그들이 유배 기간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지금까지 전해온다. 강진은 정약용의 유배지다. 정약용은 강진에 다산초당을 짓고 거처로 삼았다. 외가인 해남 윤씨 종택인 녹우당이 인근에 있어 많은 책을 얻을 수 있었고, 근처 백련사에 거처하는 혜장, 초의 등의 고승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약용은 유배의 시간을 실학 완성의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 전주는 이성계의 고조부가 살았던 곳으로 전주 한옥마을 안에 위치한 오목대는 황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돌아가는 길에 들러 승전을 자축한 곳이다.


충청도 아산에는 조선시대에 가장 이상적이고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청백리 맹사성 고택이 있다.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맹씨행단이라고도 불린다. 본래 고려 후기 장군 최영의 집이었는데 손녀사위였던 맹사성이 물려받은 곳이다. 공주에는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의 능인 무령왕릉이 있다.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원형의 형태로 발견되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옥천에는 「향수」를 쓴 시인 정지용의 생가가 있고, 그 인근에는 육영수 여사의 생가도 있다. 당진에 있는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으로 증조부 김진후,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 부친 김제준까지 4대의 순교자를 배출한 천주교의 성지다.

강원도 강릉에는 오죽헌이 있다. 조선 전기까지는 여성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재산 상속에서도 남녀가 똑같이 재산을 물려받았고 처가살이가 관행적으로 행해졌는데 신사임당의 친정이자 이이가 태어난 곳이 오죽헌이다. 강릉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인물은 허난설헌이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이기도 했던 허난설헌은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뛰어난 재주에 비해 순탄하지 못한 결혼생활 끝에 27세에 요절했다. 허균은 외우고 있거나 친정에 흩어져 있던 누이의 시를 모아 『난설헌고』를 만들었다. 이 시집은 명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해져 허난설헌의 이름을 알렸다. 또한 오대산사고를 찾아볼 수 있다. ‘사고’는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던 서고로, 혹시라도 모를 화재나 변란으로 소실될 것을 우려하여 임진왜란 이후에는 보다 안전한 산간 지역에 설치했다. 그중 하나가 오대산사고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은 1913년에 일본에 유출되는 비운을 맞기도 했지만 2023년에 오랜 타향살이를 마치고 오대산에 돌아와 자료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제주도 애월에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침입에 맞서 삼별초가 최후까지 저항을 했던 향파두리성이 있다. 제주시에는 김만덕기념관이 있는데 김만덕은 1795년 제주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천금을 내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여 『정조실록』에 실린 여성 상인이다. 여성이 재물을 풀어 백성을 구제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것이 국가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서귀포시로 가면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가 1840년에서 1848년까지 유배생활을 했던 추사유배지를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청나라 사신으로 갔다 올 때마다 잊지 않고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을 위해 고마움을 담아 그린 김정희의 역작 〈세한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저자 : 신병주(申炳周)


서울대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 활용 심의위원, 외교부 의전정책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KBS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연산군과 광해군’ 편 외 다수, EBS 「클래스 e」 ‘조선 왕을 만나는 시간’ 시리즈, CJ ENM,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역사 읽어드립니다’ 시리즈 등에 출연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평전』, 『왕으로 산다는 것』, 『참모로 산다는 것』, 『왕비로 산다는 것』, 『우리 역사 속 전염병』, 『56개 공간으로 읽는 조선사』, 『서울의 자서전』 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민을 닮은 대통령, 세종 -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그 국정의 길에 답하다
이영달 지음 / 가디언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정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사과가 아니라 설계이고, 회피가 아니라 회복이며, 무엇보다 국민의 삶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한 구조여야 한다. 대한민국 국정 방향과 국민약속 정책 등 21대 대통령의 과제는 심상찮다. 누가 ‘세종‘이 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민을 닮은 대통령, 세종 -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그 국정의 길에 답하다
이영달 지음 / 가디언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가 이 책 『국민을 닮은 대통령, 세종』의 서평을 쓰고 있는 시점은 선거 이틀 전인 6월 1일이다. 독자는 아직 투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투표할 후보는 내심 정해놓고 있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투표에 도움을 받을까 하고 읽었다. 이 책의 주제는 "이제는 ‘세종의 방식’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설계해야 할 때다.”로 압축된다. 저자 이영달이 이 책을 쓴 이유는 탄핵으로 멈춰 선 헌정에 국민이 던진 간절한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밝히고 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처참했던 군사 독재의 사슬에서 풀려나면서 다시 썼던 우리 헌법이 불과 40년 만에 다시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이른바 '멘붕' 상태를 겪었다. 

구시대의 유물이라 생각했던 비상계엄이 21세기도 25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또 선포돼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뒤통수를 친 격이다. 2024. 12. 3 계엄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려는 계엄군의 국회 본청 진입과 선거관리위원회 침탈의 현장을 생중계로 모두 지켜봤다. 다행히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의연한 자세로 막아낸 시민들의 필사적 저항과, 국회 본희의장 난입을 막는 보좌관 및 국회 사무처 직원들의 필사적 항거로 상황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 계엄군의 일부는 시민들에게 미안하다고 연거푸 절을 하고 가는 모습을 보여 무지막지하게 시민을 두들겨 패는, 심지어 총칼을 휘둘러 죽이는 과거의 비상계엄과는 다른 분위기여서 한숨은 돌렸다. 

군부 독재 정권의 무자비하고 참혹한 시민 진압을 빚어낸 80년 5.17 비상계엄에 비해 이번 계엄군은 이상하게도 적극적인 실행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당일로 계엄은 해제되고 국회 특별조사위원회의 청문회를 거쳐 국회에서 의결한 대로 대통령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을 함으로써 불안하고 숨가쁘던 정국은 일단락된 듯해 다소 안정된 분위기가 찾았다.


그러나 정치는 말을 잃었고, 국정은 동력을 잃었다. 대통령 파면으로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하는 문제가 묵직하게 남아 있었다. 더욱이 비상계엄 선포로 추락된 국격은 둘째 치더라도 당장 불안정한 정국에 따른 주식시장 폭락, 환율 급등은 위축된 소비와 겹쳐 타격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가계부터 충격을 주었다. 당연히 국내 소비는 하염없이 위축돼 결국 자영업자들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IMF 때보다 더 어려운 실정이라고 호소가 잇따랐다. 더욱이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미국의 관세 압박까지 시시각각 조여오는 일촉즉발의 한국 경제 상황이다. 이미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 아직도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버티며 삶을, 가족을, 그리고 공동체를 지키고 있긴 하지만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에 놓여 있다. 『국민을 닮은 대통령, 세종』은 그런 국민의 눈높이에서 시작되는 정치, 구호보다 구조를, 감정보다 설계를 먼저 이야기하는 새로운 시대의 국정 설계서다.

이 책은 민족 최고의 성군 ‘세종’을 현재로 소환한다. 하지만 그를 기념비로 불러 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의 등대로 세우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세종이 다스림보다 구조를, 감동보다 지속 가능한 제도를 중시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백성을 위로하는 대신 쓰러지지 않도록 정책을 고쳤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정신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이 절실히 되찾아야 할 정치의 품격이라는 논리다. 이 책은 정치의 언어가 단절된 시대에 왜 정치가 필요한지, 국정이 어떤 구조로 작동해야 하는지를 단호하면서도 섬세하게 짚는다.


「정치와 국정의 본령을 묻다: 왜 지금, 다시 세종인가?」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정치적 침묵과 헌정의 공백기를 돌아본다. 

"우리는 지금, 다시 처음을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된 두 번째 봄, 헌정은 멈춰 섰고, 

정치는 말을 잃었고, 국정은 길을 놓쳤다.

그러나 국민은 멈추지 않았다.

그 침묵의 한가운데, 국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p.8)


그리고 국민의 '깨어 있음'으로 아직 대한민국의 기회는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이젠 다시 대한민국을 앞에서 이끌 지도자를 기다린다는 것. 그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긴 설명보다는 우리 역사의 왕조의 한 사람의 이름을 되살려낸다. '세종'이다. 그리고 왜 세종이 이 시대에 다시 소환되는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담는다. 

"그는 명령보다 질문을 믿었고, 

다스리는 일보다 구조를 세우는 데 집중했다.

감동을 연출하지 않았고, 

삶이 감당할 수 있는 형식을 먼저 마련했다.(p.10)


저자는 다시 세종이 국가 지도자의 으뜸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실패한 국민을 꾸짖지 않았고 다시 설 수 있는 제도를 먼저 세웠다고 밝힌다. 또 통치의 권위를 말하지 않았고 국가가 낮게 손 내밀 수 있는 구조부터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기존의 진보나 보수의 세력으로는 다시 설 정부의 국가 지도자가 역량 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진보의 정치는 오랫동안 

공감과 포용으로 시대를 해석해 왔다.

그 언어는 따뜻했지만, 

감성만으로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울 수 없었다.

보수의 정치는 책임과 문제해결의 실력으로

국가를 지탱해 왔다.

그러나 지금, 그 책임은 희미해졌고,

그 유능함은 침묵하고 있다.(p.13)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 중심에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의 정치 철학부터 책임의 한계에 대한 인식 변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묻는다. 

“정치는 왜 존재하는가?”

“대통령은 국민의 어디까지를 책임져야 하는가?”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10가지 국민정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선거용 공약이 아닌, 책임 있는 설계도로 제시한다. 이는 말의 정쟁이 아닌 실천을 위한 정책의 경쟁으로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2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사표〉, 2장은 〈국민을 닮은 대통령의 약속〉이다. 1장은 '국민정책'을 말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해야 할 공약이다. 이런 일을 통해 국민의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서로 협력을 통해 이 위기를 넘기고,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내세우는 국민약속은 모두 10가지로 나뉘어져 있지만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역량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어 2장은 앞서 언급한 대로 다음의 10가지의 '국민정책'이 제시된다. 

① 「대통령의 '세 가지 책임’: 국민의 오늘, 내일, 그리고 장래의 삶에 대한 책임」 

② 「오늘 삶을 지탱하고, 내일을 짓는 경제: 2029년,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의 대한민국을」

③ 「삶을 지탱하는 복지: 더 많이가 아닌 더 정확히」

④ 「교육이라는 구조: 한 사람의 미래 삶을 설계하는 국가의 약속」 

⑤ 「과학기술: 국가의 운명을 다시 설계하는 일」 

⑥ 「국토를 넘어 국민을 지키는 군: 총보다 무거운 명예와 구조의 재설계」 

⑦ 「외교와 국제관계: 관계의 기술로 세계를 설계하는 나라」 

⑧ 「국정을 바꾸는 첫 번째 손길: 정부 조직을 바꾸는 일부터」 

⑨ 「연방의 나라, 통일을 준비하는 정치: 나라의 지도부터 바꾼다」 

⑩ 「새로운 세대를 위한 국가 설계: 인재를 세우는 나라」


이 정책들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는 “정책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책은 국민의 언어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삶의 자리에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책에 대한 그의 신념이다. 저자 이영달은 경영학자이자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모두에서 혁신정책을 설계해 온 진짜 실무형 브레인이라고 한다. 국가교육위원회, 2050탄소중립위원회, 기재부 혁신성장자문단, 국토부·중기부·문체부 위원회까지. 그가 만든 정책과 설계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곳곳에 새겨져 있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누구보다 많은 실패를 가까이서 봐 왔고, 그 실패에 대한 구조적 처방을 고민해온 실용적 지식인이다. 그의 정치 철학은 ‘진보냐 보수냐’를 묻기 이전에, “이 나라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라는 국민적 물음에 가장 현실적으로 답할 수 있는 설계 중심 사고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 정책의 출발점은 단 하나라고 말한다. 삶. 재도전, 돌봄, 교육, 배움, 주거, 일자리, 지방의 미래까지. 이 정책들은 국민의 일상 깊은 곳에 스며 있는 불안과 가능성의 교차점에서 태어났다고 밝힌다. 정치는 표를 얻기 위한 약속이 아니라, 삶의 조건을 재구성하는 행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정책들을 ‘국민참여형 정책 플랫폼’을 통해 공개할 것이라고 언급한다.(p.25) 저자는 주거를 더 이상 경쟁의 결과가 아닌, 존엄한 삶의 전제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이 '국민정책'에 담고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의 아홉 번째 국민정책이다. "주거는 선택이 아니라 삶의 기초다. 그 기초가 안정되어야 일도, 교육도, 가족도, 미래도 제자리를 찾는다."(p.74)

저자는 국민의 오늘의 삶, 내일의 삶, 그리고 장래의 삶에 대한 책임. 이것이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세 가지 책임이라고 촉구한다. 그 구조는 반드시 국민의 언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이란 책상 위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의 불안, 청년의 주저함, 노동의 고단함, 노인의 침묵. 그 모든 현실의 낮은 언어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p.87)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나는 꿈꾼다. 2029년,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의 대한민국을. 연평균 6.4%의 성장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세 배 이상의 성장률을, 단 한 해도 놓치지 않고 쌓아올려야 가능하다. 그러나 그 숫자는 단순한 목표치가 아니다. 그것은 자영업자의 새벽이 다시 희망으로 일어서고, 청년이 머뭇거림 없이 내일을 설계할 수 있는 구조의 전환을 의미한다(p.101~102)는 주장을 2호 '국민약속'으로 담았다.


국정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사과가 아니라 설계이고, 회피가 아니라 회복이며, 무엇보다 국민의 삶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한 구조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그 국민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마주 묻는다. 정치는 왜 존재하는가. 국정은 누구를 위해 작동해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이름을 꺼낸다. 세종.(p.9~10)


대한민국 전역에 과학기술 기반의 혁신 슈퍼 클러스터를 확산한다. 거점국립대와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지역 전략 산업의 중추가 되고, 통합 과학기술원은 국가 연구인재의 핵심 허브가 된다. 지식이 실험실에 갇히지 않고 지역과 기업, 산업과 공동체를 이끄는 구조. 그것이 우리가 설계할 대한민국의 다음 엔진이다.(p.123~124) - 5호 '국민약속' 


국가 인사는 이제 정치적 보은이나 지역 안배가 되어선 안 된다. 나는, 학연도 없고, 파벌도 없고, 계보도 없다. 다만, 이 나라에 필요한 사람을 찾고, 그들이 헌신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만들 것이다. 정부조직이, 인사의 구조가,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 지도자 양성 플랫폼이 되도록 하겠다.(p.151) - 10호 '국민약속'


저자는 주장한다. “정치는 설계이고, 구조는 곧 철학이다.” 이 책은 정치의 무너진 구조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실망하고 떠났지만 그래도 이 나라를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보수의 간절함을 담아 제안하는 국정 리셋 선언이다.

“이번 생도 괜찮을 수 있다.”

“우리가 다시 살아볼 만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대한민국 정치에 보내는 가장 현실적이고 따뜻한 초대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