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 아우렐리우스편 세계철학전집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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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을 읽은 적이 있다. 당연히 번역본이고, 번역본은 영어로 쓰인 판본이다. 고대 로마 문장(라틴어)은 해석고, 번역한 사람마다 다소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해석이 달랐다는 것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뜻을 이해하기에 바빴고 어떤 것이 잘 된 번역인지는 알 길이 없었기에 그렇다. 결국 독자는 영어 번역본 『명상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덮곤 했다. 이 책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는 편저자 이근오가 〈서문〉을 썼다. 편저자는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해줄까"를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며 살지는 않는다. 물론 '무엇을 하고 싶다', '어떻게 살까' 정도는 하고 살지만··· 그러나 편저자처럼 깊은 생각에 빠지면 명쾌한 답이 내려지기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 이 같은 질문을 오래 하지 않는다. 편자의 경우 깊은 생각이 오히려 자신을 더 외롭게 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때 만난 사람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편저자는 밝힌다. 

편저자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였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엄격하게 돌아보며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고요한 마음을 지키려 애썼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원래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니었다. 하루의 끝에서 자신을 다잡기 위해,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그저 조용히 스스로에게 써내려간 문장들이었다. 그런 글이 편자에게는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생애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낸 황제였다. 전쟁터에서 『명상록』을 집필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살륙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전장(戰場)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글을 썼다는 사실은 보통의 황제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아우렐리우스는 훌륭한 황제로서, 후계자를 세습하기보다 로마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나라의 지도자로서 훌륭한 황제이자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한 철학자였다. 

편저자는 『명상록』을 읽을 때마다 황제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불안과 조급함이 엿보였던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글들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미 오래 전 모든 사람을 다스렸던 황제이자 한 명의 철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외로움이 편자의 외로움과 결이 같다고 느꼈을까?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 것,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 갈 것,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말 것, 묵묵히 나의 길을 갈 것 등이 절절하게 전해졌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도 다가온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행동이 아니라면 철학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은 자기의 본성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본성은 이성적이고, 공동체적이며,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아우렐리우스는 말을 남겼다. 그는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한 철학자였다. 로마의 황제라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는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이 올바르게 살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철학은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그의 신념은,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을 접하는 현대인들이 그의 태도를 배워,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이 곧 편자의 말임을 독자에게는 읽힌다.

『명상록』이 편자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함께 준 책이었다는 말과 일치되는 부분이다. 편자는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문장들, 그리고 편자가 살아오며 겪은 마음의 조각들을 조금씩 꺼내어 책으로 엮었다고 밝히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이자 철학자로 『명상록』이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전을 남겼다. 황제가 『명상록』을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지만, 전쟁과 정치도 굉장히 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은 물론 그의 치적을 영화 등의 예술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명상록』은 황제로서 겪은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깊이 깨달은 성찰을 담아 쓴 책이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삶이 어렵거나 답답할 때 읽으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고전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필독서로 꼽히며 넬슨 만델라와 빅터 프랭클도 이 책을 읽고 살아야 할 용기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이 책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는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말 중에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핵심적인 주요 골자를 가려 뽑아 『명상록』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가려 뽑아 묶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하려는데 지혜가 필요할 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문제로 고민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기를 권유한다.



이 책은 『명상록』의 문장 가운데 주제별로 묶어 모두 5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왜 당신은 상처받지 않아도 될 말에 아파하는가〉, 2장 〈당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마라〉, 3장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4장 〈나를 지키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5장 〈삶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등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통에서도 10년에 걸쳐 일기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외세의 침략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그였지만 삶의 길을 찾기 위해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늘 고민했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진실한 인간이 되기 위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이 우주에 존재하는 한 영원불변의 법칙이다”라고 말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1장 첫 번째 「나를 아프게 한 건 나의 해석이다」에서는 살다보면 상대방에게 까닭없이 비난 받을 경우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게속해서 시간을 쏟는 경우가 잦다. 이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외부의 일로 인해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고통은 그 일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당신이 언제든지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편저자의 해석이 이어진다. "처음엔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를 괴롭힌 말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서 왔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말이 옳고 안 옳고의 문제보다, 내가 그 단순한 말에 어떤 무게를 부여햇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p.17) 

편저자의 의견이 이어진다. 말은 그저 말일 뿐이다. 내가 받지 않으면, 어떤 말이든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강아지가 아무리 짖어도 내 마음에 어떤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를 보며 계속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며 같이 짖고 있었던 것이다. 길을 지나가다가 짖는 개를 보고 나도 같이 짖는다면 목적지에 절대 도착할 수 없다. "타인의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깊이로 받아들이냐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p.18)


2장 네 번째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의 글은 흥미롭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선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좋은 점을 말하며 관심을 끌려고 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았다고 편저자는 쓰고 있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마음먹고,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단 한 번이라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편저자는 지적한다. 그렇게 꾸준히 생각하고 애쓰며 만든 결과로 인품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싶다. 사람들은 완벽을 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완벽보다는 노력을 통한 변화를 더 좋아하고, 말로만 하는 배려보다는 진심이 보이는 행동에 더 감동받는다. 그렇기에 꼭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고 꼭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부족함에도 매일 조금씩 더 괜찮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족하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는 먼저 찾아가 얼굴을 마주 보는 것. 도와주고 싶다는 말보다는 먼저 그 짐을 덜어주는 것. 아낀다는 말보다는 정말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런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태도는 결국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편저자는 강조한다.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라."(p.71)

3장 첫 번째 「남의 일에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라는 글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류 공통의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저자는 지적한다. 남의 삶을 궁금해하다 보면 결국 가장 소홀해지는 것은 나의 삶이다. 내가 더 신경 쓰고 생각해야 할 것들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점점 더 빈 수레가 되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자기 계발에 신경 써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성장시키는 삶을 살고, 누군가는 남 얘기만 ㅎ며 변화 없는 삶에 머문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을 편저자는 『명상록』에서 찾아 적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하며,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신경 쓰지 마라. 오직 당신 자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하라."(p.99)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할 것은 남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이다. 오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며, 어떤 태도를 지키며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3장 다섯 번째 「네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너의 태도를 바꿔라」라는 제목의 글이 인상적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관계로 인한 불편함을 겪게 된다. 누군가의 태도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낀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감정 소모는 더 커진다. 실망과 불편함 속에서도 참아내는 것이 배려이고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하며, 이해되지 않아도 억지로 받아들이려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불편함을 무조건 참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분명하게 상황을 구분하라고 했다. "네게 일어난 일을 바꾸는 것이 네 힘으로 불가능하다면, 네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에 대한 너의 태도뿐이다."(p.114)


저자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 《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편역 : 이근오


오늘날의 언어로 새롭게 와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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