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 - 상2 - 얽혀진 혼동의 권세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이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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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의 흡인력은 이번에도 강력했다. 오히려 전편보다 더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다. 당연한 구성이겠지만. 중국 소설을 옛 고전 아니고는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책을 읽고 중국 드라마까지 보고 싶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끝날 때까지 참았다가 마지막 책을 덮고 드라마 시청을 결정할 예정이다.

상1은 판시엔이 황실의 딸인 린완알과 혼인해 궁에 입궐하면서 끝을 맺었다. 부부가 된 두 사람 다 사연 있는 몸으로 앞으로 본격적인 권력 다툼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 책이 빨리 나오기를 기대한 덕분에 거침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부제도 '얽혀진 혼동의 권세'라여서 예상 적중의 기분부터 흥분된다.

사실 독자는 학교 다닐 때 무협지는 읽지 않았다. 무협지를 좋아하던 어떤 친구들은 시험공부한다고 함꼐 모여 무협지를 여러 권 앉은 자리에서 독파한 이도 있었다. 그때 무협지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독자는 "시험공부 하려고 모여서 무협지만 보다 갈 거냐"고 핀잔을 주었던 적이 있다.

그때 친구의 답변은 기상천외했다. 무협지를 읽고 내공을 쌓으면 답이 몇 번인지 다 보인다는 것이다. 모두 웃고 말았지만 그 친구는 묘하게 시험 전날 그렇게 딴짓을 하고도 시험은 무난히 치렀다. 성적이 내려가거나 지적을 받을 만큼 이상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지나서 웃으며 한 말이지만 '신기하다'고 생각은 했다. 다른 날을 잡아 무협지를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그때는 세로로 씌어 있는 데다 한 면에 열 줄 정도밖에 써 있지 않았다. 빨리 읽으면 만화보다 속도가 빠를 정도였다. 그래서 옆에 20~30권을 쌓아놓고 밤새워 읽는구나... 처음 알았다. 독자는 6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접었다.

도무지 만화보다 재미가 없었다. 만화는 그림이나 재미 있게 볼 수 있지만 이건 한자말에서 따온 것인지 한자어가 많고(물론 한글로 썼지만 '금라수'란 단어도 보이고 무슨 뜻인지도 몰랐었다) 줄거리도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설이라고는 학교나 선생님이 지정해주신 세계명작, 혹은 한국 유명 소설이 읽은 게 전부니 중국의 무협소설이 어떤 줄거리인지조차 모르는 것은 당연했을 터다. 이후로 무협지와는 완전 불통했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달랐다.

물론 무협지가 아니라 판타지 무협소설이며 타임슬립물이다. 요즘말로 SF판타지이다. 주인공 판시엔이 현대에서 병에 걸려 병원 침대에만 누워있다가 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다른 세계에서 환생하는 이야기. 우리나라 소설이 아니라 중국스타일이어서 약간은 스토리의 진전에 익숙지 않지만.

중국소설이라고는 삼국지나 반금련전(나중에 금병매라는 걸 알았다)밖에 못 읽어봤으니 좀 생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빠른 전개에 반전의 반전이 나온다. 더 햇갈릴 것 같지만 정독을 해서인지 등장인물을 복사해서 옆에 놓고 읽어서인지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판시엔과 황제를 둘러싼 음모와 사건들, 뻔할 것 같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소설이어서 독서의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앞서 상1권에 나온 이야기지만 이 소설은 2019년 88억뷰 최대 화제 드라마 <경여년>의 원작소설이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미지의 세계에 초대받은 손님. 알 수 없는 이유로 해하려 하고, 또 알 수 없는 이유로 도우려는 자들로부터, 그는 자라난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품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속에서 신비의 존재들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가고,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시간 속, 숙명같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진정한 나의 동지와 나의 적을 묻는다.

과거의 비리를 조사하는 황제의 명에 판시엔은 과거시험의 이름을 확인하는 거중랑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어 조사에 착수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판시엔에게 청탁 등이 들어오지만 판시엔은 명단을 감시원에 넘긴다. 그리고 그의 일에 지지를 보내는 쪽과 반기를 들어 판시엔을 음해하려는 쪽으로 나뉜 세력에 판시엔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할 수 없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놓고 겨우 소용돌이 속을 빠져나온 판시엔은 북제의 밀정 옌빙윈과 샤오은을 교환하는 임무를 맡아 북제로 향하는 도중 쿠허의 제자인 하이탕을 만나 위험에 빠지게 되지만 무사히 샤오은을 넘긴다.



애초에 북제로 향할 때 판시엔은 옌빙윈을 구해 협상을 잘 이끈 다음 샤오은을 죽인 후 홍수초 작전까지 성공시키고 신묘까지 조사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어 북제가 시간을 끌며 옌빙윈을 빨리 넘겨주지 않자 북제의 태후와 황제를 둘러싼 권력과 내고의 비리를 조사한 판시엔은 옌빙윈을 넘겨받자 임무를 마치고 경국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판시엔을 도와주지 않는 황제, 의도치 않게 권력의 소용돌이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판시엔, 자신의 어머니인 예칭메이와 샤오은의 만남과 마지막으로 남긴 말까지 더욱 흥미진진함과 인간의 권력욕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경여년』, 권력의 중심으로 점점 다가가는 그의 앞날에 등장할 사건들이 어떻게 그려질지 이어질 시리즈가 더욱 궁금하다.



복제에서 옌빙원을 만나 내고의 비리를 조사하며 복제의 국사 제자 하이탕둬둬와의 우정을 쌓는 등 판시엔에게 닥치는 불운만큼은 아니지만 그를 지원하는 세력도 있음을 통해 서늘한 간담이 조금은 완화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경국에 돌아온 판시엔에, 아니 판씨 집안의 경사(?)를 피해 동생 뤄뤄는 징왕세자와의 혼인을 피해 도망가려 하고 이는 사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기방의 살인사건을 통해 2황자의 덫을 파악하고 친구로 생각했던 징왕세자의 흑심을 알게 되는 등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과 이유들이 한 편의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기억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황제 암살 시도의 범인을 쫓던 판시엔의 진기 폭발로 인해 정신을 잃게 되는데 암살범은 과연 누구일지?

숨가쁘게 이어지는 판시엔의 활약과 그를 제거하기 위한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음모들이 얽혀진 혼동의 권세를 익히 느끼게 해준다. 여전히 갈증으로 마무리되고기대되는 3권을 재촉하게끔 한다.



중국 인명과 지명에 대한 낯설음에 인물관계도와 등장인물에 대한 요약페이지(책 앞부분을 복사해 책갈피에 끼워놓았다)를 중간중간 다시 보긴 하지만 이해도는 더 높아진다. 작가의 상상력도 굉장하고 문학작품 쓰는 문장력도 탁월하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 모습은 쉽게 눈에 띈다. 최소한 필사를 해놓고 싶을 정도로멋진 문장도 많다. 중국 고전에 나온 말인지 모르지만 매우 인상 깊은 문장이 곳곳에 박혀 있다. 이는 읽는 즐거움에 지식욕도 채워주기 때문에 독서의 흥미는 점점 높아만 간다.


"정도란 무엇인가? 정도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때 기분은 아주 좋다. 무엇보다 강력하다."(p. 74~75)


"어느 누구도 판시엔의 고민을 알지 못했고, 그 또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먼 타국의 땅에서 우쥬 삼촌도 없고, 어느 누구와 말할 수도 없었다. 모든 일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지만, 이 일만은 말로 할 수도 말을 할 상대도 없었다."(p. 228)


"일 년에 두 번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신묘. 칠 척 정도 되어 보이는 신묘. 마치 신이 인간 세계에 던져 놓은 한 권의 책처럼 보인다. 북위국 황궁은 신묘 문의 축소판처럼 보이지만, 그 웅장함만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는 신묘의 문으로 걸어가서 손을 뻗는다. 하지만 그 거대한 문에는 손끝 하나 댈 수 없다.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수록, 문은 이상한 방식으로 뒤로 물러선다. 신묘가 눈앞에 있지만, 저 먼 하늘 끝자락에 있는 것 같다."(p. 319)



천핑핑과 스리리의 약속과 스리리의 과거를 알게 된다. 해당화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인물들이 나온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서 북제로 간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게 된다. 신묘의 행방. 또한 검객과의 대결에서 진기가 모두 빠져나가 그는 일격에 당해 쓰러지고 만다. 이렇게 상 2권의 마지막,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충격적인 배후도 드러나기도 한다. 판시엔과 친구가 되는(아니면 친구처럼 보이는 걸지도?) 여성 고수도 나타나고,

자기가 직접 구해서 부하로 만들고 싶어하는 인물등 주인공 외에 주인공과 밀접한 관계의 주변 사람들도 충분히 이야기를 즐기는 데 중요한 맥점이다.

소설은 독자의 흥미를 한껏 끌어들이고 궁금증을 남기면서 상2권은 끝난다. 다음 권을 읽게 하려는 의도인 줄 알지만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렸을 때 친구가 무협지에 빠져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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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손님 - 룹탑 불법체류자들
이재욱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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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막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던 시기, 1990년대부터이다. 당시는 IMF 이전이었고, 겉으로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OECD 가입국이었다. 국내 건설 노동자와 공장 근로자들의 임금도 기업주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젊은 층은 임금 낮고 힘든 중소기업 근로자나 건설 노등은 마다하고 서비스 업종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노동인력 시장의 왜곡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대졸자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 노동자 일을 하는 사회 인식의 눈을 피하고 급여는 적지만 힘들이지 않고 깨끗한 근로환경의 서비스 업종에 들어갔다. 힘든 건설 노동자나 공장 근로자는 대부분 기피했다. 이른바 3D 업종을 피하고 서비스 업종으로 몰려들었다. 기업주들은 좀 불편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였다. 단순 노동엔 말이 통하지 않지만 힘들고 불결하고 위험한 업종 근무를 희망하는 외국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채용했다. 그들은 높은 임금(자신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받는 임금에 약 10배에 해당된다고 한다)에 그 일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우리 노동현장에서 먹고 자는 노동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업주들도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은 신분상의 큰 약점을 안고 있었다. 산업연수 현장을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돈벌이가 되면 어려운 일이든 더러운 일이든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한 1년만 일하면 자신들 국가에서 일하는 10배에 해당하는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노동자는 더 늘어나기만 했다.

나중에는 밀항하거나 관광비자 등으로 입국해 눌러앉아 불법체류 신분으로 산업현장 노동일을 했다. 남성들만 아니다. 여성들은 식당 주방 청소 등 닥치는 대로 돈 버는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잡히면 강제추방 당하기 때문에 신변 안전은 늘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 신분상 문제로 악덕 고용주로부터 임금을 못 받고 심한 부상을 당해도 병원마저 갈 수가 없는 등 불법체류 노동자 숫자가 늘어나면서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부분 공장이 많은 가리봉동(옛 구로공단) 일대 등에 모여 살았다. 아마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불안 심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모여 살면 그래도 어떻게든 단속에 걸리는 횟수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또 수가 많아지면서 '외국인 노동자촌' 개념의 마을로 탈바꿈 해갔던 모양이다.

책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유입은 산업연수생 제도로 본래 대한민국의 3D 업종 인력부족을 해소하는 한편 주변 개발도상국들과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실시되었던 제도이다. 그러나 관련 법령과 인력 및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입국하면서 불법체류와 단속, 그에 얽힌 다양한 인권 유린 문제 등이 사회 전면에 부각되어 왔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룹탑'도 옥탑방을 개조해 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 책 『아내의 손님』은 '연탄 두 장의 행복'으로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빛과 어두움, 행복과 슬픔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잔잔한 화제를 모은 이재욱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1990년대 대한민국에 들어와 허가 받지 못한 불법체류 노동자로서 고향의 가족을 위해 오도가도 하지 못하고 위태한 삶을 살아가는 룹탑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르포 형식의 글로담아냈다.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부대끼며, 그들의 생생한 삶과 사랑을 담은 연작소설이다.

고국 가족의 생계 때문에 불법체류자의 낙인에도 한국을 떠나지 못하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을 듣게 된 아리엘, 가족을 두고 홀홀단신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홀몸의 여성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잔혹한 환경 속에서 보호자가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 여성 메리, 한국에 정착하여 살기 위해 한국 여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사무엘, 마음 둘 곳 없이 외로운 타국에서 동병상련을 느끼며 가까워지는 아모르와 산드라, 유달리 자신에게 잘해주는 일터의 한국인 사장님을 두고 고민에 빠지는 자스민, 한국에 있다는 남편을 찾아 간신히 입국했지만 쫒겨날 위기에 처한 훼베스의 얘기도 있다.




이 책 첫 장면은 인천공항에서부터 출발한다. 아리엘과 비센테의 이야기에서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다. 한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그들은 결심하게 되고 가족과 아내를 두고 한국행을 모험한다. 공장 내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외출조차 못한다.

그들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위장 결혼도 감수해야 하는 메리, 그러나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은 국경을 넘는 사랑일 수도 있고 가식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돈을 벌기 위해 이유를 불문하고 이들의 삶을 작가는 조명한다.



작가에 따르면 국적과 민족에 상관없이 타국에 정착하며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소통과 외로움이라고 한다. 같은 국적의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나라에 최초로 입국한 사람들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일제강점기 일본과 만주로 건너간 한국인들, 고도성장기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던 사람들, 열사의 아라비아 사막에서 고국의 가족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인 그들은 절박하고 외로운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더더욱 서로간의 소통에 매달리며 현실을 이겨내려고 하나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때로는 연대하며, 때로는 외롭게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담백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깊은 리얼리즘의 맛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내내 우리 60년대 미국에 돈 벌러 가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밑바닥에서 생활하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많은 시절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봐왔던 사람으로서 그때의 그들 모습이 이 책 내용에 오버랩되면서 연민도 생기고 공감도 많이 되었다.



룹탑 불법체류자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역시 경제력, 돈이다. 이 돈을 벌기 위해 이유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 소설의 근간이 되는 구성은 불법으로 체류하며 돈을 버는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3D 작업의 조건도 있고 언어소통의 힘든 그들에겐 이중, 삼중으로 고역이다. 배경이 되는 룹탑은 부천시 소사동을 모티브로 그려낸다.

힘든 일을 경험하는 그들의 삶을 그려가는 청사진은 머나먼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다. 고향집 아내가 바람이 나기도 하고 친절한 사장님에게 마음을 두기도 한다. 내로남불의 스토리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고 치부하게엔 슬픈 현실을 마주한다. 인간이 섞여 사는 세상이 천태만상이라든가. 룹탑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우리하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듯하다. 필리핀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들로 꾸며진 단편적인 소설 형식은 읽는 내내 가슴 저리게 한다.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것 등 룹탑의 실재하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 실상을 알고 마음이 아프다. 일하는 것도 잠시 출입국관리법에 위반되어 단속되면 추방 당하는 슬픈 현실을 마주한다.




작가의 소설은 서울 도서관에서도 대출 베스트에 오른 독자들이 찾는다고 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 못한 독자지만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아채기에는 이 한 권의 책으로도 충분하다. 이 소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작가의 문장 능력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많이 알려진 사실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는 심리묘사나 짧은 문장이 필수적이다. 독자들이 단숨에 읽어가야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이다. 느슨하고 뭔가 메시지도 없다면 누가 읽겠는가. 이 책은 불법체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실제로 그들이 있는 장소에 가서 그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 구성하여 글을 썼다고 한다. 작가에 따르면 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룹탑'이라는 한 건물의 옥탑은 그들(불법체류자)만의 아지트처럼 사용하는 곳이고 그들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다 읽고나면 마치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생생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앞서 언급한 단문 형식의 문장을 주로 사용하는 작가의 센스에 기인한 것 같다.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명의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쓴 연작소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불법체류자들의 국적은 필리핀이다.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이유는 각자 다양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은 돈을 벌기 위한 곳이라는 그들의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고국에서는 교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퇴사를 하고 한국에 돈을 벌러 온다는 것만 해도 묘한 심정이고, 그들의 대부분은 매달 받는 월급을 고향에 보낸다고 한다. 고국의 가족들은 그 돈을 모아 집도 사고 가게도 사고 아이들 학비도 낸다고 하니 불법체류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옛날 우리들 60년대 미국 불법체류 노동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인종차별과 성희롱은 그들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일상 같은 것이라고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연민이 발동해 책을 놓기가 어렵다. 그래도 지금은 관련 법들이 많이 개선됐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말로만 외치지 않고 아직 약하고 어려운 나라 국민들이 우리가 과거 걸어오는 길로 오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격려하고 위로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끓어오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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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 수업 -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대니얼 클라인.토마스 캐스카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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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자는 학교 다닐 때 철학책을 읽은 적이 없다. 철학 전공이 아닌 데다 철학은 머리 아픈 것이고, 취직할 때나 앞으로 살아나가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해 얻은 결론이 아니라 기성 세대나 입시 준비할 때 우리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에게 배운 말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다. 그렇게 철학은 1980년대까지 우리 사회와 학교로부터 냉대를 받았다. 공대, 상대, 법대는 상대적으로 취직이나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대우가 달랐다. 왜 철학을 삶에 도움이 안 되는 학문으로 생각했을까. 덕분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교양과목 중 선택해 수강한 '철학개론' 책 한 권만 읽었다. 인문계인데도 그랬으니 이과 계열은 말할 것도 없다. 철학자나 사상가의 이름은 교과서에서나 신문에 자주 나와 줄줄 외우고 있는데도 철학은 사회에서 도무지 발 붙일 곳이 없는 학문으로 받아들여졌다. 의식주 해결을 위한 경제발전에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는 학문을 중요시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철학은 우리 삶에 매우 도움이 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많은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점에 가서도 철학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것부터 손에 잡고 훑어볼 정도는 읽었다. 뭔가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학문이라는 생각은 그때 바로 세웠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생활에 당장 필요점을 배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사고방식이 몸에 배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철학 관련 책을 읽었는데 나에게 어떤 것을 주었을까는 생각해보면 내세울 게 없다는 것도 좀 의아스럽긴 하다. 그러나 한 가지 세상을 보는 눈, 인생을 보는 눈은 이때 정립된 것 같다.



이 책 『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 수업』은 나에게 어떤 철학을 가르쳐줄까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제목처럼 하버드 철학과 학생이 된 듯한 느낌으로 읽었다. 80세 하버드 철학자들이 지금까지 살아본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줄까 해줄까도 궁금했다. 또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명쾌하게 알려 줄 것 같았다. 독자의 예상이 맞다면 앞으로 내 삶도 더 향상될까?라는 우려도 가진 채. 처음 머리말을 읽는 순간부터 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웬 만화가 나오지? 하며 의아해 했는데 삽화다. 짤막한 주제 하나에 하나의 삽화를 통해 글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해준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아마 글의 이해를 돕고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저자가 글을 쓴 것 같다.


현대 분석주의 철학자들은 ‘삶의 의미’를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이렇게 반문한다.

“어이, ‘의미’의 의미가 뭔데? 이 멍청아!”

좋은 질문이다. 분석주의 철학자들에게 ‘멍청이’ 소리를 듣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을 뿐.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사뮈엘 베케트는 삶이 무의미하고 부조리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삶은 하나의 커다란 ‘우주적 장난’이다. 우리는 이 장난에 웃다가 숨이 막히기도 한다.

- p.10, 「반드시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중에서





컵 속의 물고기들의 그림을 보는 순간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명제인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생각해보니 친구들과 술 마시며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대화를 했을 때 인용했던 그 말이다.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와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는 차이. 그때 대화 이후 술자리 안주 삼아 한 농담으로 하고 잊어버렸기 때문에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기발한 발상이라고 감탄했으니까.

가끔은 공감하기 어려운 그림도 있었지만 그림 하나가 글이나 말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도 있다. 인생을 만화 한컷에 비유해 설명을 하는 방법은 꽤 유쾌한 발상이고 기억에도 오래 남을 듯하다.

삶 철학이 만화 한 컷에 담길 정도로 우리 인생은 가벼운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해봤지만 이내 다른 점도 생각이 났다. 주위의 모든 것, 사물이든 사람이든 삶의 선생으로 받아들이면 배울 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자기가 보는 대로 생각대로 말을 한다. 자기만의 관점이다. 그런데 로마 역사의 영웅 카이사르가 그런 말을 했다던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그렇다면 나의 의견을 바꾸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결국 자기 안에 스스로 같히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는 두 분이지만 이 책 안에는 서양철학의 시초라는 소크라테스부터 니체까지 모두 담겨 있다. 그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남긴 철학을 세상에 적용되는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재미 있게... 정말 이런 게 하버드 철학자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 방식일까라는 의문은 조금 있지만 아무튼 실생활이나 옛날 일이나 인간의 행동과 심지어 사물에게서도 인생을 배울 수 있고, 실제 삶에 반영하듯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철학인 것 같다.


마르쿠제는 대표작인 《일차원적 인간》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일상인을 위해 생산하는 상품의 한 부분으로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자신이 소비하는 재화와 자신을 동일시한다고도 보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물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그들은 자동차, 오디오, 복층 주택, 최신식 주방 설비 따위에서 자신의 영혼을 발견한다.”

- p.83, 「당신은 어디에서 영혼을 발견하는가」 중에서




인생은 우리에게 계속 거짓말을 한다. 행복은 과정에 있다고 하는데, 정작 삶의 모습을 보면 결과에 있는 것 같다. 지혜는 항상 경험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그를 믿고 권위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상처입힌다. 영원한 것은 없다면서 시련과 고난은 끝없이 주고, 행복을 손에 쥐여주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흔들린다. 알겠다 싶으면 뒤통수를 때리는 인생 때문에.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위험은 인간의 불안, 절망, 소외의 뿌리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말한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위험에 직면해야 한다. 진실한 삶은 우리 자신이 선택하는 삶, 우리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이다.

- p.120, 「모든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중에서



이 책은 그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세계 최고의 명문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공부한 철학자들이 80살의 인생 경험을 녹여 썼다. 인생에 여러 번 속았던 그들의 가르침은 신랄하면서도 생생하다.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의 삶에 유의미한 가치가 있다는 세계관에는 이의를 제기한다.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로는 니체처럼 위험을 감수하는 삶을 옹호하기도 한다. 게다가 인간이야말로 완전한 선택의 자유를 누린다고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한 객관적인 지침이 없다고 꼬집는다. 백수가 되는 게 나을지 변호사가 되는 게 나을지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저자들은 삶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삶의 의미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불가피한 책무라고 말한다.”



이 밖에도 ‘나는 누구인가?’ ‘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급변하는 세상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 다룬다. 모두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답이 절실한 인생의 빅퀘스천들이다. 그리고 이에 관한 두 저자의 대답은 80년 인생의 단단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는 점에서 신뢰할 만하다. 당신의 인생이 흔들릴 때에도 80년의 경험치가 녹아 있는 두 저자의 가르침은 도움이 될 것이다.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헤겔의 이론은 인간이 일상에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지를 알아내는 데는 도움이 못 된다.

인간은 유한한 개인으로서 이런저런 결정을 내리느라 너무 바쁘다. 그 결정들 중에는 현재와 미래를 모두 걸어야 하는 것도 있다. 절대정신이 장기간에 걸쳐 역사를 발전시키는 모습에 헤겔이 주목하는 동안, 우리는 ‘공장 일을 때려치우고 선교사로 베네수엘라에 가면 삶이 더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것이 될까’를 고민한다. 우리가 역사의 변증법을 이해한다 해도 인생의 결정을 내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표현에 따르면 “인생을 이해하려면 과거로 돌아가야 하지만,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 p.126,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중에서



오늘도 철학 관련 서적 한 권 읽기를 마쳤다. 쉽게 써서 이해가 쉬웠고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 이외에는 머리 쓸 일 없이 따라만 가면 되었다. 덕분에 생각도 좀 하고, 무사히 철학책 한 권 읽기를 마쳤다고 행복감에 잠시 젖어본다. 머릿속으로 읽은 것 중 중요한 것을 한 번 되뇌어 본다.

인생은 무엇인가?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 신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없다. 목마를 때 물 한 모금 얻어 마신 느낌이다. 옆구리에 잔뜩 숙제를 안고 다시 생활로 돌아간다.

“삶을 ‘살 가치가 있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어떤 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 수 있다는 자각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은 어떤 사실에 관한 의문에서 절대적으로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다.” - 찰스 샌더스 퍼스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물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그들은 자동차, 오디오, 복층 주택, 최신식 주방 설비 따위에서 자신의 영혼을 발견한다.” - 허버트 마르쿠제

“삶을 창조하는 것은 하나의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것과 비슷하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은 예술가들이 자유를 행사한 결과물이며, 그 작품에 대한 책임은 예술가들이 져야 한다.” - 장 폴 사르트르

그래도 또 재미 있는 철학책이 나온다면 또 읽을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저자 : 대니얼 클라인


1940년생.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대니얼 클라인과 함께 수십 년 동안 깊은 철학적 사고와 유쾌한 농담을 버무려 《워싱턴에 간 아리스토텔레스와 땅돼지Aristotle and an Aardvark Go to Washington》 《시끌벅적한 철학자들 죽음을 요리하다Heidgegger and a Hippo Walk Through Those Pearly Gates》 등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그중 《술집에 들어간 플라톤과 오리너구리Plato and Platypus Walk into a Bar》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 : 토마스 캐스카트


1939년 델라웨어 생. 미국인이 사랑하는 작가이자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된 교양 철학 저술가이다. 하버드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방송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술집에 들어온 플라톤과 오리너구리 한 마리 Plato and Platypus Walk into a Bar』와 같은 대중 교양서를 주로 집필하였으며, 지난 2009년에는 소설 『현재의 역사 The History of Now』로 「포워드 매거진」선정 올해의 책 은메달을 수상하였다. 현재 아내와 함께 매사추세츠 주에서 살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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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의 사랑 이야기 - 사랑을 찾아 떠나는 시간 그리고 삶 Love3-way 1
스탠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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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 인간이 행한 일 중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한마디로 쉽게 응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삶의 최고 무기가 되는 것은? 이 질문에는 많은 사람이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인간이 읽은 책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무엇일까. 읽은 책이 각각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랑은 아마 인류 최고의 가치이자 삶의 근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왔다. 그래서 철학에서도 많이 다루고, 예술의 주제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것 아닐까.

독자는 가끔 자아성찰을 할 때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떠오른다. 특별히 '사랑'이라는 단어는 왜 가장 자주 떠오를까. 책에서도 가장 많이 본 단어는 '사랑'인 것 같다. 이처럼 사랑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선에 머물러 사유한 독자의 입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오늘도 '사랑'에 대한 책을 읽으며 부족한 사랑의 욕망을 충족시킨다.

읽어도 읽어도 채워지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독자는 조심스럽게 되뇌어본다. '"사랑은 인간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고, 잊어서도 안 되고, 버려서도 안 되는 인간의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를 높이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스탠리의 사랑 이야기』 이 책의 스탠리 저자는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의대와 한의대에서 의술을 익히고 철학과 종교, 영성과 사랑, 사람의 본질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한다. 많은 선인의 말과 철학적 지식, 영적 각성을 통해 깨달은 해답은 신기하게도 사랑이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삶의 진한 내음이 풍기는 그 사랑을 차츰 알게 됐다. 자신의 내면 안에서 울리고,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퍼져 나오는 사랑을 알면서 꼬인 매듭은 풀어졌다. 사랑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을 저자는 이제야 깨달았다고 한다. 그 사랑을 아는 데는 많은 철학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서 사랑으로 바로 가는 길, 사랑이 어떻게 나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절대적인지 알리려고 한다. 자신 속의 사랑으로의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여행은 즐겁고 행복한 여정이다. 저자의 경험과 사색의 결과를 따라 천천히 들어간다.


과연 우리는 사랑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달콤하게 나누는 연인의 사랑 말고도 삶의 곳곳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입에 올린다. 지독한 아픔과 극단의 갈등이 벌어지는 곳에서도 간절히 사랑을 외친다.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 혐오와 차별이 벌어지는 갈등의 현장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p. 17)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에 관한 사랑을 소개한다.

1부에서는 저자에 관해 설명으로 시작한다. 괴테는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사랑하지 않으면 인생을 모르거나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사랑, 그리고 사랑으로 인한 고통의 뿌리를 더듬다 보면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좀 더 알게 된다.(p. 17)

살아가는 이유를 돌아보면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행복을 지탱하는 큰 기둥 중 하나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랑을 바탕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저자는 동양의 유교에서 사랑을 정신을 발견하고 서구의 기독교 역시 사랑의 종교라 생각한다. 사랑에 관한 많은 경구는 많은 문학 작품 속에서도 발견된다.


카뮈의 소설《페스트》를 보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재앙이 덮쳤더라도 함께 살아남으려면 서로 손을 잡고 각자 할 일을 묵묵히 하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다른 도시에서 온 기자는 전염병 때문에 폐쇄된 도시 오랑을 탈출하려다가 돌아선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페스트는 우리 모두에게 관련된 것이니까요”라고 말하며 재앙을 이겨내는 인간의 실존을 보여준다. 그 실존의 바탕은 연대이고, 연대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p. 239)



저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좇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참된 자신의 모습이 ‘허물을 덮는 자’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허물을 덮는 자’로서 사랑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부정이 긍정으로 바뀌고, 좌절이 도약의 발판으로 바뀌는 변화는 ‘삶을 사랑할 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새로운 삶을 여는 열쇠라는 것을 알고 이 강력한 사랑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랑을 아는 것, 사랑으로 가는 것, 사랑이 어떻게 나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절대적인지 알리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이 ‘사랑’을 이야기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많은 선인의 말과 철학적 지식, 영적 각성을 통해 깨달은 해답은 신기하게도 사랑이었다. 삶의 진한 내음이 풍기는 그 사랑을 차츰 알게 됐다. 자신의 내면 안에서 울리고,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퍼져 나오는 사랑을 알면서 꼬인 매듭은 풀어졌다. 사랑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돈을 벌면서 알게 된 게 있다. 돈이 목적일수록 똑똑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멍청해진다. 요리조리 돈 버는 구석을 찾아가는 게 제법 똑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헛똑똑이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것처럼 굴지만,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볼 수 있는 시야도 좁다. 바로 옆에서 위험신호가 울려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망한다.

한창 잘 나가다가 거꾸러지면, 그동안 쌓아 올린 부와 명예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도 옛말이다. 지금껏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질주했던 모든 것이 신기루와 같다. 이제 오아시스에 거의 다 다랐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손을 뻗어보니 신기루처럼 사라진다.(p. 85)



1885년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책 『스탠리의 사랑 이야기』는 130여년 전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질문에 이 시대 우리가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을 연이어 졸업하고 강남에서 유명 피부과를 운영하며, 화장품 기업을 경영하고 다섯 개의 특허까지 가진 저자의 커리어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크게 성공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직업과 환경이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며 스스로가 견고한 벽 안에 갇혔다고 느꼈다. 돈과 명예는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뿐만 아니라 현대의 많은 이들이 인정 욕망, 생존경쟁, 각자도생의 틈바구니에 갇혀 있다. 사람들은 고립과 절망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열심히 자기계발을 한다. 부와 명예, 경쟁에서의 승리가 행복을 보장해준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로 그토록 바라는 성공을 하고 명예를 얻으면 행복과 안정에 이르게 될까?



앞서 말한 대로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소설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은 우리가 평소 한 번쯤 품어봄 직한 물음이다.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가난한 구두장인 세묜이 벌거벗은 거지 미하일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세묜은 자신도 형편이 어려운 지경인데 미하일을 집으로 데리고 간다. 세묜의 아내는 외상값도 받아오지 못한 세묜이 못마땅하지만, 미하일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없는 살림에 음식을 대접한다.(p. 24) 소설 속에서 불쌍한 아이를 돕느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바람에 벌을 받고 있는 미하일은 세 가지 질문을 받고 그에 관한 대답을 찾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관한 대답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랑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던 걸 떠올린다. 사랑의 결실로 생명이 탄생했고, 부모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성장한다. 매 순간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



저자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내면의 사랑을 일깨우며, 이 책을 통해 사랑의 삶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으로 ‘사랑의 3-way’를 알려준다. 저자는 ‘사랑의 3-way’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사랑으로 변화시키기를 희망하며 사랑으로 변화된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향후 2편과 3편으로 이 책 ‘Love 3-Way’ 시리즈를 완성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여기서 강조하는 '3-way'룰 ‘사랑의 삼도’라 명명한 저자는 3단계에 걸쳐 사랑을 이루는 원리를 설정한다.

1단계는 내면의 ‘참 나’를 인식하는 단계이다. 자신을 아는 단계로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 과정이다.

2단계는 인식한 ‘참 나’를 현실에 발현하는 단계이다. 사랑의 눈으로 나와 주위를 바라보는 단계이다. 비전 보드를 만들고, 나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퍼스널 브랜딩의 과정으로 ‘참 나’를 세상에 표현한다.

3단계는 사랑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고 그 위대함과 절대성을 인식하는 단계이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밀어주고 이끌어온 존재가 사실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는 단계이다.

사랑의 눈으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그저 어느 한순간 담담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잠시 리셋을 하듯 나를 바라보는 것은 명상시간만큼이나 일상에서도 할 수 있다. 자신을 발견한 후에는 이제 사랑이 정의하는 자신의 이름, 자신의 본질의 이름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는 누구냐?” 하고 묻는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인물이 “Who am I?”를 외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 이름 석 자를 알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전부 기억하고 있어도 ‘나는 누구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질문은 쉬워도 대답은 어려운 이 명제는 사실 자아 성찰을 뜻한다. 성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자아 성찰을 위해 어려운 철학서를 파고들고 종교적 명상에 빠져들어도 깨달음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도 공부할 때처럼 답을 구하는 공식과 같은 게 있다. 그 공식은 점을 보는 것처럼 무언가 미신에 기대는 것도 아니고, 나에 대해 타인이 평가해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책에 따르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볼 때는 아무런 계산이나 기대가 없어야 한다. 담백하게 나를 바라보는 게 우선이다. 자신을 바라보며 내가 누구인지 찾는 방법은 네 가지 도구가 있다.

먼저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돌이켜본다. 심지어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괴로운 과거라도 무덤덤하게 남의 일인 양 마주한다. 그래야 제3의 눈으로 볼 수 있다. 제3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마치 나를 아끼는 친구가 나도 미처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야기해주는 것과 같다. 잘났든 못났든 나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과거를 본다는 건, 다시 과거의 굴레에 스스로 얽어매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지나온 궤적을 살펴보라는 의미다. 그 궤적을 따라 살피면서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

두 번째로는 자신의 현재를 보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봤으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재를 본다. 거울 앞에서 독백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과의 대화가 어색하고 쑥스럽다.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다. 이때 독백의 의도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나를 알겠다는 의도에서 시작한 문답이다. 이제껏 그 어려운 철학책의 화두를 붙잡고 있느라 애를 먹었다면, 아주 간단한 기초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세 번째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떠올린다. 단순한 기쁨이나 슬픔을 넘어선 뭔가를 느꼈던 순간을 되살려본다. 인생에서도 희로애락으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는 극적인 순간이 있다. 그때의 특별한 감정을 떠올려보면, 아무래도 가장 자신의 본질에 가까운 순간을 대면한 것일 수 있다.

네 번째로는 어린아이로서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이다. 먼저 ‘사랑해’라고 고백한다.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물어보는 것이다.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대답도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가장 순진하고 인간 본성에 가장 가깝다. 이유나 목적을 따지지 않고 지금의 이 순간에 충실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가 돈을 따지고 노후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일부러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내라는 이유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극적인 순간의 나, 어린아이로서의 나를 돌아보았다. 이 네 가지 도구를 통하여 많은 질문과 대답이 적힌 리스트가 있을 것이다. 이 리스트를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지어보자. 이 긴 리스트를 들고서 어떻게 내 이름으로 정할 수 있는지 의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어렵지 않다. 리스트에서 하나씩 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1. 생존 본능에 해당하는 것을 지워본다.

2. 사회적인 자아인 에고로 인한 모습을 지운다. 내가 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서 쓴 가면이다.

3. 순수한 어린아이의 짧은 말로 표현해본다.

4. 자신의 삶에서 영속적으로 관통하는 한 가지 특징, 가슴에 사랑으로 울리는 그 신성한 부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 하는 자’라고 정의해보자. 이것이 자신의 사랑의 이름이다. 자신의 삶에 흐르는 사랑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하는 자’의 형식, 현재진행형으로 이름을 짓는 이유가 있다. 이 이름이 영속하는 나의 존재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영속한다면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을 통하여 나의 존재를 규정하면, 앞으로 내가 갈 길이 보인다. 그 이름이 나의 두려움을 없애고 불안해하며 흔들리는 나를 잡아 세울 수 있다. 사랑을 선택한 그 용기가 삶을 꾸려갈 용기로 바뀌어 한층 더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내가 누구인지 찾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만큼이나 진지하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처음 놀이동산에 갔을 때처럼 즐거워진다. 처음에는 더하는 과정으로 여겨져 진지하고 무겁게 여겨지겠지만, 결국은 빼는 과정으로 즐겁고 가벼워진다.



저자 : 스탠리


한국 이름은 이은석이다. 현재 서울 강남 역삼동에서 스탠리 피부과를 운영한다. 의사이자 한의사로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수련을 거친 후 다시 경희대 한의과 대학을 졸업했다.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의대와 한의대에서 의술을 익히고 철학과 종교, 영성과 사랑, 사람의 본질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를 이어가는 중이다. 한때는 팝핀을 추는 의사로 알려질 정도로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 도전은 사람들의 허물을 덮는 애정으로 이어져서 피부과 진료뿐만 아니라 주름커버를 위한 화장품을 개발하여 특허를 받고, 생산과 판매를 위한 「스탠리스마트커버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을 좀 더 많은 이에게 알리고 나누고자 낯선 책쓰기에 나섰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이 ‘허물을 덮는 자’라는 자신의 본질의 이름을 세상에 표현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본질의 이름을 찾을 수 있으며, 그 이름은 사랑으로 가는 시작점과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정말로 위대하며 절대적이라고 말하고, 모두의 가슴속에 있다고 강조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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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
이광식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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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공자는 약 2500년 전의 사람이다. 동양에서는 그의 학문을 최고의 학문으로 해 꾸준히 계승 발전시켜 왔다. 그의 학문의 깊이는 그만큼 심오하고 현실 생활에 잘 맞는 '실학문'이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그의 학문적 업적은 높이 받들어져 왔고, 그를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가 천하를 떠돌며 제자들을 통해 그의 학문을 널리 알리고 고향에 돌아온 것은 그의 나이 74세 때였다. 지금도 74세면 적지 않은 나이인데 그때로서는 천수를 누린 셈이다. 그가 남긴 말 중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오십 지천명'이다. 나이 50이 되어 '하늘의 명'을 알았다고 술회한 내용이다. 하늘의 명이란 무엇인가. 독자는 학문이 앝아 그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아마 '천리(天理), 순리(順理)'를 뜻하는 게 아닌가싶다. 즉 우주의 순리나 하늘의 진리를 비로소 알게 됐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금과 달리 우주의 구성이나 생멸은 물론 하늘의 기상 관측도 제대로 하지 못할 때인데 어떻게 하늘의 명을 알고, 알았다면 어떻게 알아냈을까는 궁금하지만 아직 독자는 모른다. 더 이상 하늘이나 우주 또는 공자에 대해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분야, 철학이나 정치, 또는 각종 인문 사회 분야에서도 그의 학문이 인용되고 이해되기 때문에 언급될 때마다 조금씩 더 알아온 것뿐이다.




『50, 우주를알아야 할 시간』 이 책은 우주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낸 책이다. 내용적으로는 어느 우주 입문서 못지않게 많은 천문학 정보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았고, 우주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까지 컬러사진과 함께 선명하게 담아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읽는 책이기도 하면서 ‘보는’ 책이기도 하다. 전 연령층이 봐도 좋을 우주 입문서이지만 제목에서 보다시피 특히 50대가 보면 더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백세 인생이라면 절반의 삶을 산 오늘날의 50대의 인생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우리 인생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찾아낼까는 궁금하지만 우주에 대한 독자의 무지만 드러낼 것 같아 꾹 눌러 참는다.

이 책 이광식 저자는 '마음에 꽂히는 우주 풍경 하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현실에서의 크고 작은 고민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드넓은 우주 속 티끌만한 지구 위에 사는 작은 존재인 우리 인생사 부침을 조금은 멀리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로 읽힌다. 우주를 모르지만 저자의 안내를 따라 경청하다 보면 우주의 신비로움에 만사 잊고 몰입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삶이 버겁고 지칠 때마다 이 책을 펼치고 우주를 구석구석 뜯어보다 보면 삶의 지혜까지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살만큼 산' 인생이 아니라 '아직 절반밖에 안 산' 삶이라는 희망도 생긴다.



저자는 책에서 이같이 말한다. “땅만 내려다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보라.” 몇 해 전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말이다. 일찍이 공자는 “나이 쉰이면 천명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공자 시대의 쉰 살과 지금의 쉰 살은 얼핏 생각해도 많은 차이가 있다. 이 시대의 50대는 자녀가 있다면 대학에 갈 나이로, 자식 뒷바라지에 큰돈이 들어갈 나이이면서, 한편으로는 곧 닥칠 자신의 은퇴를 대비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지나온 삶도, 가야 할 삶도 모두 만만찮은 나이로, ‘공사다망’하여 마음만 급해지는 시기가 50대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의 쉰 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볼 새가 없이 앞만 보며 살기 바쁘다. 저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어렸을 때 하늘을 올려다 본 이후로 밤에 별 보이는 하늘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서울의 하늘이 오염돼 안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의 20세기 후반과 지금 21세기의 전반은 모두가 엄청나게 바쁘게 살았다.

그것은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습관적으로, 유전적으로 바쁘게 사는 삶에 중독돼 있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지금 50~60)는 정말 바쁘게 살았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그게 삶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희생'이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지만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정치 등의 시대에 살다 목숨을 바친 선열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행복한 삶이라고 위안 삼기도 했다. 또 그렇게 키운 우리 다음 세대가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많은 것들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것을 보면 희생이 보람으로 바뀌기도 한다. 나라 살림도 꽤 괜찮은 '기적'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좋아졌으니...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 대표 천문학 작가라는 사실도 책을 읽다 알게 됐다. 저자는 원래 천문 잡지와 책을 주로 내던 출판사 대표였는데, 어느 날 야근을 하고 밤늦게 퇴근을 하다가 어느 아파트 고층 집 베란다에 걸린 조(弔)등을 보고 정신이 퍼뜩 났다고 한다. 밥벌이에 파묻혀 바쁘게 살다가 아파트 안방에서 어느 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고. 그 길로 유년시절부터 가슴에 품었던 별을 원 없이 보고자 강화도로 터를 옮기고 집 베란다에 천체망원경을 걸었다. 그리고 천문학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극적이면서도 충동적인 그의 행동은 그의 삶을 바꾸어놓았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그리고 아직 바쁘게만 살았던 세대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 집필했다. 이 책은 그래서 천문과학서나 우주공학서가 아니라 에세이, 혹은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것 같다. 이 책은 ‘우주의 탄생부터 종말까지’, 다양한 별과 우주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줄 뿐만 아니라 우주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삶과 업적을 담았다. 1강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에서는 우주와 별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팽창우주를 주창한 조르주 르메트르, ‘허블의 법칙’을 찾아낸 에드윈 허블과 밀턴 휴메이슨의 이야기가 나온다. 2강 ‘만물의 근원인 수소가 맨 처음 한 일’에서는 별이 반짝이는 이유인 ‘핵융합’을 알아낸 한스 베테, 별의 죽음인 ‘초신성 폭발’과 생명의 시작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3강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에서는 별이 모여 사는 은하를 다룬다. 4강 ‘우주는 얼마나 클까?’에서는 우주의 광활함을 알아본다.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유명한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해, 태양계 너머로 항해를 떠난 보이저 1호의 경로를 추적해본다. 그러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얼마나 거대하고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프리드리히 베셀, 헨리에타 리비트 등 일반은 잘 모르지만 천문학사에 이름을 깊이 새긴 이들의 삶들도 곁들인다. 5강 ‘우주는 끝이 있을까?’에서는 유한하나 끝이 없는 우주에 대해 알아본다. 6강 ‘우주에서 가장 기괴한 존재, 블랙홀’에서는 블랙홀, 화이트홀, 웜홀 등을 알아본다. 7장 ‘알수록 신기한 태양계 동네’에서는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본다. 8강에서는 ‘다정한 형제, 지구와 달 이야기’를 알아본다.


독일 물리학자 막스 보른(1882~1970)은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는 우주의 개념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세계의 본질에 대한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의 하나”라고 평했다. 현재 우주의 크기는 약 930억 광년이라는 NASA의 계산서가 나와 있다. 138억 년 전에 태어난 우주가 이처럼 큰 것은 초기에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팽창했기 때문이다. 이를 인플레이션이라 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하지만, 우주는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쨌든 현대 우주론은 우주의 끝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

“우주는 유한하나 그 경계는 없다.”(p. 158)



우주가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질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빅뱅'이다. 빅뱅은 '큰 꽝'이란 뜻으로 빅뱅 이론의 반대진영인 정상우주론자인 호일이 한 방송에서 빅뱅 이론을 비꼬기 위해 빅뱅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우주의 시작은 아름다운 불꽃놀이에 비유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빅뱅은 왜 일어났냐는 질문에 과학자들은 무에서 저절로 일어난 일이라 빅뱅의 원인은 관측될 수 없고, 따라서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알고 싶어하는 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별도 사람처럼 생로병사를 거친다고 한다. 별들도 사람처럼 태어나고 살다가 늙어서 죽는데 그 수명이 수십억, 수백억 년이다. 은하 탄생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수없이 많은 초신성 폭발의 찌꺼기들이 태양과 행성, 지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 등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전부 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별에서 몸을 받아 태어난 별의 자녀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물질들이 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 몸이나, 흙, 나무, 공기, 물 등등 원자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과학지식을 단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자의 종류가 100여 가지 되는데, 양성자 1개를 가진 원자번호 1번인 수소에서부터 시작해 94번인 플루토늄까지 94종이 자연에서 발견되며, 나머지는 실험실에서 합성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이런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얘기다.(p. 60)



우주에 관해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과연 우주는 끝이 있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이 우주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우주의 끝이라고 할 만한 게 있기는 한 것일까? 우리의 경험칙에 비추어보면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우주에 적용하면 ‘에러’가 뜬다. 끝이 있다는 것은 그 바깥으로 다른 무언가가 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주에 끝이 없다면 크기가 무한대라는 뜻인데, 일찍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무한대는 상상의 산물일 뿐 실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삼단논법으로 멋들어지게 증명한 바 있다. “무한대라 하더라도 유한한 것들의 집합일 수밖에 없다. 유한한 것들은 아무리 합쳐봐야 그 결과는 유한하다. 그러므로 무한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 물리학자 막스 보른(1882~1970)은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는 우주의 개념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세계의 본질에 대한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의 하나”라고 평했다. 현재 우주의 크기는 약 930억 광년이라는 NASA의 계산서가 나와 있다. 138억 년 전에 태어난 우주가 이처럼 큰 것은 초기에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팽창했기 때문이다. 이를 인플레이션이라 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하지만, 우주는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쨌든 현대 우주론은 우주의 끝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

“우주는 유한하나 그 경계는 없다.”(p. 158)




동요 가사에도 나오는 '은하수'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옛날 사람들은 은하수가 많은 별들이 만든 별들이 만든 띠라는 것을 몰랐는데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 위 오작교를 건너는 설화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은하들도 성장과 진화를 하고 여러 가지 모양을 띠는데 나선은하나 타원은하 등이 있다.

우주에 대해 가장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일 것이다. 우주의 끝은 있을까? 우주의 끝도, 시작도 어뵤다는 것이다. 우주는 무한하다는 것인데 안팎의 경계가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시공간이라는 근본적인 천으로 짜인 것으로 위어져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블랙홀은 엄청난 질량을 갖고 있지만 덩치는 아주 작아서 그만큼 물질밀도가 극도로 높다고 할 수 있다. 블랙홀은 그 중심에 중력의 고유 세기가 무한대로 발산하는 시공간의 영역으로 여기서는 물리법칙이 성립되지 않는다. 블랙홀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반대 개념인 화이트홀이라는 용어도 만들어졌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우주 시공간의 구멍을 웜홀이라 하고 두 시공간을 잇는 좁은 통로로 우주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블랙홀에 관해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만약 내가 블랙홀 안으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문제다. 일견 무시무시한 상상이긴 하지만, 이 문제는 변함없이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이 바로 ‘스파게티화spaghettification’다. 블랙홀 가까이 접근하자마자 모든 사물은 가락국수처럼 길게 늘어져버린다는 얘기다. 이유는 이렇다. 블랙홀의 가공스런 중력이 당신 몸의 각 부분에 작용하면서 그 힘의 차이로 인해 몸이 길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중력의 크기가 당신의 지금 키만큼 유지되게 해주고 있는 정도지만,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먼저 당신의 발이 블랙홀로 접근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블랙홀의 엄청난 조석력이 머리보다는 발쪽에 더 강하게 작용한다. 발끝과 머리에 가해지는 중력의 차이는 이윽고 지구의 총중력과 동일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는 마치 두 대의 크레인이 당신의 머리와 발을 잡고 힘껏 끌어당기는 형국이나 같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 km다. 이걸 1천문단위 AU라 하여 태양계를 재는 잣대로 쓰인다. 이게 대체 얼마만 한 거리일까? 천문학은 감수성과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가장 간단한 답으로는, 1초에 지구 7바퀴 반을 도는 초속 30만 km인 빛이 8분 20초 걸려 주파하는 거리다. 초로는 약 500초인데, 달까지의 거리의 약 400배에 달하며, 시속 100km의 차로 달리면 무려 170년이 걸린다. 우리가 해바라기처럼 올려다보는 태양이 실제로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먼 거리에서 내뿜는 별빛이 이리도 뜨겁다니 참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이것이 태양 표면 온도 6천도의 위력이다. 태양이 만약 10%만 지구 가까이에 위치했다면 지구상에는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부디 태양이 그 자리를 지켜주기만을 기도해야 한다.(p. 121)



저자 : 이광식


‘별과 우주’를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들려주는 국내 대표적인 천문학 작가. 젊은 시절 우주에 대한 호기심에서 헌책방을 순례하고,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 출판사를 차려 한국 최초의 천문 잡지 [월간 하늘]과 교양 천문학 책 등을 펴냈다. 일에 파묻혀 살다가 사라지기 전에 우주를 더 알고 사색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찌감치 강화도 퇴모산으로 들어가 낮에는 텃밭 일을 하는 한편, 밤에는 망원경으로 별 보고 천문학 책 읽는 생활을 계속했다.현재 '원두막 천문대'라는 개인관측소를 운영하면서 과학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천문학 콘서트』, 『십대, 별과 우주를 사색해야 하는 이유』, 『내 생애 처음 공부하는 두근두근 천문학』, 『잠 안 오는 밤에 읽는 우주 토픽』, 『별아저씨의 별난 우주 이야기』(전3권), 번역서로는 『우주에서의 삶: 우주인에게 묻다』 등이 있다. 『천문학 콘서트』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교육과학기술부 우수과학도서, 청소년 추천도서 등으로, 『잠 안 오는 밤에 읽는 우주 토픽』, 『별아저씨의 별난 우주 이야기』(1,2권)는 미래창조과학부 우수과학도서 등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강화도에서 개인 관측소 ‘원두막 천문대’를 운영하며, 일간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기사와 칼럼 등을 기고하는 한편, 사회단체와 학교 등을 다니며 우주 특강을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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