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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가들은 대체로 자신의 모국어로 글을 써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꼽을 수 있다. 또 세계의 전 문인들을 대상으로 주는 상은 물론 자국 내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는 사람도 많다. 그들이 외국어를 몰라서 모국어로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외국어, 심지어는 여러 나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문인들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두 개 이상의 언어에 정통해 각각의 언어로 글을 써 인정받고 수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물론 과문(寡聞)한 독자로서 아는 것이 적어 모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 책 『영혼 없는 작가』의 저자 다와다 요코는 이 두 가지 언어로 모두 책을 냈다. 일본 문학인이기 때문에 일본어로 쓰고 독어로 번역을 따로 한 작품이 아니다.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
다와다 요코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범상치 않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이중 언어 작가'라기보다는 '다중 언어 작가'로 표현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엘리〉에 따르면 다와다 요코는 얼핏 범상해 보이는 세계의 기호를 독창적인 시선으로 해독해 나가는 유심한 관찰자다. 또 모(국)어와 외국어의 문턱을 넘어 다니며 몸의 감각으로 낯선 언어의 세계를 유영하는 유목민이라고도 말한다. 그에 대한 수식어는 이뿐만 아니다. 엄격하고 절제된 사유로 신화적 상상의 안팎을 넘나드는 샤먼이라는 별명도 소개한다. 4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하며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은 그의 이름을 문학사에 알린 대표작이자, 언어와 세계에 대한 작가 고유의 사유가 집약되어 있는 작품 『영혼 없는 작가』의 개역 증보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독문학자 최윤영 교수의 기획 및 번역으로 초판본 출판됐다. 이후 오랫동안 절판 상태로 있었지만, 저자의 새 중요한 작품과 초판본 이후 발표된 작품들을 추가한 개역 증보판으로 펴냈다. 초판본에는 열네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었지만 이번 새로운 판본에는 ‘다와다 유니버스’의 중요한 조각 아홉 편이 추가되었다.

출판사에 따르면 전체 스물세 편의 글은 다와다 요코가 독일어로 처음 쓴 『유럽이 시작하는 곳』(1991), 『부적』(1996),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2002) 등 세 권에서 다와다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단편들을 가려 뽑았으며, 그중에서도 몽환적이고 에세이적인 사유가 돋보이는 초기 대표작 『부적』 열여섯 편은 전부 번역해 실었다. 최윤영 교수는 이번 개역 증보판을 작업하며 새로운 단편들을 번역하는 작업과 함께 기존 번역문도 전면적으로 다시 손질했다. 또 다와다 요코의 세계를 개괄하는 해설도 책 뒷 부분에 새로이 써 독자들에게 풍성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주었다.
독자가 저자 다와다도, 또 그의 책을 읽어본 적도 없어 잘 모르고 있었을 뿐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인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독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복간을 요청한 책이기도 하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특히 지난 5월 다와다 요코 방한 당시 많은 독자가 이 책의 절판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며 재출간을 요청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개역 증보판을 펴낸 이유를 밝히고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특별히 찾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작가인 만큼 한국에도 그의 저서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영혼 없는 작가』는 작가의 세계를 관통하는 언어-예술-세계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서 이번 재출간은 더욱 뜻깊다고 출판사 측은 덧붙인다.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최윤영은 표제어 '영혼 없는 작가'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한다. 마치 과문한 독자의 생각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듯하다. "흔히 작가를 그 나라나 문화권을 대표하는 '영혼'이라 생각한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러시아의 영혼이라 부르듯 말이다. 그런데 다와다 문학의 핵심적 특징을 보여주는 '영혼 없는 작가'의 제목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에게 영혼이 없다니, 뭔가 기구한 사정이 있는가 싶은 생각도 들고, 혹은 나라나 사회의 영혼을 대변하는 작가가 그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인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작가는 차원을 달리하여 이야기한다. 오늘날 긴 여행 중에 영혼은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 몸을 따라가지 못해 분실되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는 기발한 착상은, 사실 인디언 책에서 비롯된 것이다.(p.265)

역자는 다와다에게 일본어와 독일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경계를 넘나들며 쓰는 과정에서 한 언어에 얽매인 사고를 풀어내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유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힌다. 특히 다와다는 많은 외국어를 보고, 듣고, 인지하면서 의미를 새롭게 상상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듯하다. 이 책의 각각의 글들은 이를 증명이라 하듯 언어의 신세계는 물론, 세계의 여러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언어 비교를 하듯 글로써 풀어내는 능력을 보면 독자들이 놀랍고 신비로운 생각을 갖게 한다. 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한 깊은 사유는 말과 글의 차이점은 물론 각 나라 언어의 특징을 연결하는 공통적 의미에 대해 추출해 내기도 한다.
또 독일어로 쓰인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수록된 글들이 에세이에 가까운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다와다 요코의 문학은 일본어 작품과 독일어 작품이 주제, 형식, 문체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일본어 작품이 스토리를 갖춘 본격 문학에 가깝다면, 독일어 작품은 작가가 문화 간 차이를 발견하고 이를 주제화한 에세이적 성격이 강하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조용하지만 새로운 시각에서 날카롭게 지적하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통찰로 사유의 직접적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와다의 일상적 관찰을 따라가다보면, 말 그대로 허를 찌르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이와 함께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언어에 대한 작가의 세심하고 민감하고 다정한 시선을 잘 드러낸다. 제목에서부터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을 결합해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유머러스한 방식은 다와다식 하이브리드의 원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전”과 “마을”, “사랑”과 “광물학”, “고트하르트터널”과 “생물의 배”를 연결한다. 사전에서 단어들이 빠져나와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고, 몸을 암석에 빗대어 주름진 층을 상상하고, 터널을 통과하는 것을 배에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하는 식이다.

이러한 연결과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의미를 찾는 연구”부터 “의미와 벌이는 유희”까지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특히 이중 언어 사용자로서 몸으로 체득한 언어적 사유가 도드라진다. 세계와 자신의 관계가 언어로 불가분하게 맺어져 있다는 깨달음, 언어를 이동하면 사물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는 의식, 다른 언어로 말하게 될 때 그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맛을 내는 혀에 대한 자각 등 여태껏 심상하게 느꼈던 일상의 모든 것이 다와다 요코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새롭게 인식된다.
“자, 이제 중세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여행 가이드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 도시가 중세 땐 실제로 존재했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내 질문에 가이드는 다소 놀란 듯했지만 곧바로 바른 답을 내놓았다. “이 중세도시가 아직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스스로 알아내셔야 해요. 어쨌든 이 도시는 마치 중세를 연출한 무대 세트 같아요.”
“무대 세트”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중세를 한때 존재했다가 영원히 사라진 과거의 시대로는 상상할 수 없었다. 오히려 중세는 반복해서 무대에 올려지는 연극처럼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어떤 것이었고, 매번 새롭게 재현되는 무엇이었다.(p.67) -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 독일 수수께끼」 중에서
이렇게 인식된 모든 것은 다와다를 통해 인류학적 현상, 신중히 해독해야 할 세계의 암호로 바뀐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불가사의를 문학적으로 파고드는 일종의 민족지인 셈이다.
이 책은 형식 면에서 에세이로 분류되지만, 작가는 전통적 장르 구분의 구속에서 벗어나 언어와 사유와 장르의 경계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덕분에 이 책의 글들은 픽션과 에세이가 서로 몸을 바꿔가며 단어와 문장, 글이라는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향연을 눈부시게 선보인다. 작가가 유심히 포착하는 대상들도 그 스펙트럼이 넓은데, 시베리아 횡단 열차부터 연필, 타자기, 중세도시, 통조림, 전철, 배우, 알프스 터널, 일요일, 음악, 파울 첼란까지 실로 다양해서, 소재별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밖에도 다와다의 문학 세계 초기부터 일관되게 흐르는 언어와 정체성, 국가주의의 폭력성을 문제 삼는 비판적 인식은 장르와 언어에 대한 경계적 사유 너머를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귀신들의 소리」에서 어느 독일인이 바흐를 독일 음악이라고 무심히 주장한 사례는 “우리”라는 범주를 암묵적으로 전제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 타자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모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텅 빈 수사에 대한 “구역질” 역시 단일한 언어를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 집단주의를 향한 일침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어떤 귀신들이 공기 중에 특별한 떨림을 불어넣었을 수 있다. 내 몸은 이 쓰레기들을 질료화하기 위해 사용된 것일 뿐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때조차 나는 문장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상상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문학을 쓰는 것이 한층 더 큰 위안이 된다. 적어도 문학에서 나는 무언가 의미 있는 사명을 전달하겠다는 의도를 갖지 않는다. 문학의 단어들은 그저 하나의 그물망을 만들고 이 망은 떨림의 쓰레기들을 잡아낸다.
쓰레기-단어들은 마치 유성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다. 유성들은 일단 떨어지면 더 이상 별자리에 속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저 파편들, 단편들, 조각들일 뿐이다. 한 그물망 안에 있는 조각들 사이에는 부조화가 지배한다. 사실 나는 이전에 별자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망 안에서 스스로 새로운 선을 긋고 새로운 별자리를 그려 넣는다.(p.181) - 「귀신들의 소리」 중에서

이 책 『영혼 없는 작가』에 배음(倍音)처럼 깔려 있는 이런 식의 섞임과 깨짐, 비판과 거리 두기의 사유는 일차적으로는 낯선 언어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무엇보다 몸이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공간상으로 보면 이 책은 모스크바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시작해 독일, 일본, 미국을 거쳐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서 끝을 맺는데, 이 여정 또한 내용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흥미롭게 읽힌다. 『영혼 없는 작가』와 더불어 몸의 여행, 장소의 여행, 언어의 여행을 함께하는 독자들은 나라와 도시, 현실과 환상, 언어와 사물을 이동하며 경계의 흩뜨림이 열어주는 환상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저자 : 다와다 요코 (Yoko Tawada, たわだ ようこ, 多和田 葉子)
독일 베를린에 살면서 독일어와 일본어로 소설, 시, 희곡, 산문을 쓰는 작가다. 1960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1982년 와세다 대학 제1문학부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이주했다. 1990년 독일 함부르크 대학 대학원에서 독문학 석사 학위를, 2000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홀로 독일로 건너갔던 열아홉 살의 경험은 삶의 지축을 뒤흔들었다. 기나긴 기차 여행 동안 물을 갈아 마시며 서서히 낯선 세계에 가까워진 그녀는 독일에 도착하여 전혀 알지 못했던 언어를 새로 익히면서 그때까지 알았던 세상과 사물을 송두리째 다시 보는 전율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언어’ 자체에 천착하도록 했고, 언어가 지닌 ‘매체’로서의 불안한 혹은 불편한 속성은 다와다 문학의 일관된 주제가 되었다.
다와다에 따르면 언어는 자아와 세계를 매개하는데,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하다가 새로운 언어를 새로운 매개로서 사용할 때 비로소 우리가 이 언어(매개)를 통해 생각하고 발화해 왔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머릿속에서 아무런 성찰의 과정 없이 흘러나오는 말들은 세계의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므로, 그녀는 이에 안주하려는 인식의 자동화에 제동을 걸고 세상의 잊히고 버려진 또 다른 측면을 다른 방식으로 다르게 보고자 부단한 문학적 시도를 아끼지 않는다.
1987년 시집 『네가 있는 곳에만 아무것도 없다』로 데뷔했는데, 일본어로 쓰인 시가 번역되어 책에 일본어와 독일어가 나란히 실렸다. 이듬해 독일어로 처음 쓴 단편소설 『유럽이 시작하는 곳』이 출간되었고, 1991년에는 일본어로 쓴 단편 「발뒤꿈치를 잃고서」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받았다. 다와다 요코는 독일에서 샤미소상, 괴테 메달, 클라이스트상 등을, 일본에서 아쿠타가와상, 이즈미 교카상,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요미우리 문학상 등을 받는 한편 독일 문학을 공부해 1990년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2000년 취리히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작가가 30여 년간 쓴 작품은 약 30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1천 회 이상 낭독회가 열렸다.
작품으로 『눈 속의 에튀드』, 『여행하는 말들』, 『헌등사』, 『용의자의 야간열차』, 『영혼 없는 작가』, 『목욕탕』,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다. 그 밖에 중편집 『세 사람의 관계』, 『개 신랑 들이기』, 단편집 『고트하르트 철도』, 『데이지꽃 차의 경우』, 『구형 시간』, 장편소설 『벌거벗은 눈의 여행』, 『보르도의 친척』, 『수녀와 큐피드의 활』, 『뜬구름 잡는 이야기』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3부작 중 『지구에 아로새겨진』과 『별빛이 아련하게 비치는』, 시집 『아직 미래』 등이 출간되었다.
역자 : 최윤영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와다 요코를 한국에 처음 소개했으며, 관련 연구서인 『엑소포니, 다와다 요코의 글쓰기』를 펴냈다. 지은 책으로 『한국문화를 쓴다』 『서양문화를 쓴다』 『카프카, 유대인, 몸』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영혼 없는 작가』 이외에 『목욕탕』 『눈 속의 에튀드』 『어느 아이 이야기』 『이상한 물질』 『문화와 문화학』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