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세계 - 낯선 길을 걷는 법
정병호 지음 / 성안당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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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여행자의 세계』는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저자 정병호는 여행자들이 끝없이 펼쳐진 길을 홀로 또는 함께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조금씩 여행의 본질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페르소나인 '루카스'가 여행하는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고 깨닫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시간으로의 여행’ 시리즈의 여행 작가인 저자는 "여행은 시작과 끝, 떠남과 머무름, 도착과 돌아옴이 함께하는 또 하나의 삶"이라고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낯선 길을 걷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 정병호는 〈서문〉에서 "우리는 종종 여행의 목표를 목적지에 둔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의 본질은 도착지가 아니라 그 길을 견뎌 내는 데 있다."고 자신의 여행관을 밝힌다. "여행자들은 사막을 지나고 오아시스의 노랫소리에 발걸음을 멈추며 오래된 신전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거친 모래 폭풍을 맞아 휘청이기도 하고 별빛 아래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여정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발견해 나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갈림길에 선다. 익숙한 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미지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길이 옳은지 고민"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길에는 정답이 없다고···.",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 길은 비로소 우리의 길이 된다고···."

찬찬히 읽다보면 이 책의 여행자들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목적지를 향해 걷던 그들이 점차 길 자체를 받아들이고 걸어가는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모습을 보이는 걸 알아채게 된다.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 또한 어느새 각자의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 여정과 닮아 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끝없이 이어진 길 위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기도 하고 때로는 길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걸어가는 길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나침반 없이 걷기〉, 2부 〈끝없는 수평선〉, 3부 〈지도에 없는 길〉, 4부 〈끝없는 여정〉 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책의 시작은 저자의 페르소나*인 루카스가 학교에서 돌아온 후 책상 위에 놓인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크림색 종이에 단정한 필체로 쓰인 문장이 시선을 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편지를 집어든다. 발신인은 없다. 그리고 편지 속에는 오직 한 문장만 적혀 있다. '장난인가?' 웃어넘기려 했지만, 저 짧은 문장이 이상할 정도로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그는 언제나 여행을 동경해 왔지만, 여행을 단지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일쯤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 편지는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물음을 조용히 건네고 있다. 다음날 또다시 편지가 도착한다. 이번에는 좀 더 긴 문장이 담겨 있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당신이 제가 드린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시길 바란다. 나와의 여행에 동행하겠는가?"(p.15)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도대체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편지 속의 여행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이 책에는 〈서문〉 이외에 〈프롤로그〉를 따로 두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루카스를 등장시킨다. 저자의 페르소나인 루카스는 결국 저자 자신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된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이에 따라 〈프롤로그〉에서는 자연스럽게 여행의 의미부터 목적까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편지를 쓰는 '이든'의 질문에 대한 사유를 통해 루카스가 체득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페르소나: '가면'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로 심리학적으로는 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아 또는 자아가 사회적 지위나 가치관에 의해 타인에게 투사된 성격, 혹은 외부로 표현하는 개인의 이상적 측면을 말한다. 개인의 실제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은 페르소나가 그 개인의 실제라고 생각한다.(독자 주)



루카스는 누군가 보내는 편지에 적힌 내용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여행의 의미에 다가간다. 앞서 기술한 「의문의 편지」에 이어 「첫 번째 여행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루카스는 도서관에서 '여행'에 대한 책을 찾아보다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에 눈길이 멈춘다. 책 속 문장에서 "그는 단순한 탐험가가 아니었다. 그는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다리였다."는 글귀를 찾아내 읽다가 문득 또 다른 편지의 내용을 떠올린다.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 그렇다면 마르코 폴로가 여행을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루카스는 그날 밤 한 통의 편지를 더 받는다. 새로운 질문이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이 세계에 남긴 영향은 무엇인가? 그의 여행이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다면, 여행을 어떻게 정의하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루카스는 처음으로 여행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문화를 교류하며 새로운 시각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는 결론을 얻어 답장을 쓴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정말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요?(p.17)

루카스는 계속해서 편지를 받고 답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이번에는 14세기 모로코 출신의 여행자 이븐 바투타(Ibn Battuta)***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무려 30여 년간 이술람 세계를 넘어 인도, 중국, 아프리카까지 여행하며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루카스는 이든의 편지를 떠올리며 속으로 되뇌인다. 만약 여행이 그저 목적지를 방문하는 것이라면, 이븐 바투타의 여정은 왜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회자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날 저녁 도착한 또 하나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븐 바투타는 단순한 모험가가 아니라 세계를 기록한 사람이었다. 기록이 없었다면 여행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는 즉시 답장을 썼다.

"여행이란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그것을 남기고 공유하는 행위라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여행을 기록해야 할까요?" 이든의 다음 답장은 짧았다. "좋은 질문이다. 이제, 다음 여행자로 넘어가 보라."


** 마르코 폴로(Marco Polo):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여행가, 상인, 작가(1254~1324).

*** 이븐 바투타(Ibn Battuta): 모로코 지브롤터 해협 탕헤르 출신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가 가운데 한 사람(1304~1368).[이상 저자 주]



다음날 루카스는 과학 서적 코너에서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에 관한 책을 집어 들었다. 다윈의 비글호 탐험이야말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꾼 여행이었다. 그는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여행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이론을 세운 사람이었다. 

"찰스 다윈의 여행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화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여행이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고···.

"찰스 다윈의 여행은 그의 이론을 가능하게 했어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든의 답장은 예상 밖이었다.

"당신은 직접 답을 찾아야 한다. 다음 여행을 준비하라." 그는 고민에 빠진다. 이든은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었다. 이든은 루카스를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사람이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이제야 본격적인 본론의 장으로 넘어간다. 루카스는 이든의 편지를 받은 후 자신이 직접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각을 얻는 과정'이었다. 그는 배낭을 꾸리고 노트를 챙겼다. 첫 번째 목적지는 낯선 도시의 오래된 골목이다. 그는 낯선 도시의 한 골목길을 걸으며 과거의 여행자들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했듯이 자신의 여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골목길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여행은 나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주변을 돌아본다. 낡은 벽돌 건물이 늘어서 있었고 가로등이 부드러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그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의 풍경은 낯설지만, 그들의 삶은 내 삶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같은 태양 아래 살아간다." 테이블 위의 작은 쪽지를 발견한다. 익숙한 필체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당신은 낯선 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답장을 쓴다. "여행이란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나와 다르지만, 동시에 같습니다."


****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진화론에 크게 기여한 영국의 생물학자, 지질학자(1809~1882).



루카스의 여행은 계속된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사막을 걷는다. 걷다가 지치면 끝없는 모래 언덕이 펼쳐진 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다. 사막의 밤은 차갑고 별들은 끝없이 빛나고 있다. 그는 모닥불 옆에서 베두인 부족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바람과 별을 길잡이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길을 걷다가 지쳐 멀리 반짝이는 불빛을 발견하고 오아시스임을 알아낸다. 발걸음을 재촉해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곳을 찾는다. 그는 이곳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오아시스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노인이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그는 대답했다.

"저는 여행의 의미를 찾고 있어요. 그리고 저 자신도요."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행이란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오아시스를 찾아가고 있다." 

루카스의 여행은 끝이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을 찾아 걷고 이동한다. 다음 목적지를 찾아 스스로의 내면에서 답하는 대로 걷는다.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에세이는 끝나지 않는다. 길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p.231)


저자 : 정병호


유럽 26개국을 자동차 투어 하였으며 여행 벤처 프로젝트 설계, 앱 여행 콘텐츠 설계에 참여했다. 해군사관학교 전임강사를 역임하였고 현재, 하나투어 Tour Conductor로 재직 중이다.

[저서]

『시간으로의 여행―스페인을 걷다』(성안당, 2015)

『시간으로의 여행―오스트리아, 동유럽을 걷다』(성안당, 2017)

『시간으로의 여행―유럽을 걷다』(성안당, 2018)

『시간으로의 여행―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성안당, 2019)

『시간으로의 여행―이탈리아를 걷다』(성안당, 2024), 「프랑스, 역사의 길을 따라 도시를 만나다」(하나투어,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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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컬처블룸 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6월 11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국가수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검찰개혁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내 강경파로 꼽히는 김용민·강준현·민형배·장경태·김문수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개혁을 이번에는 제대로 완수하겠다"며 "이제 국민의 요구를 완수할 때로 더 미룰 수 없고 늦어져서도 안된다"고 밝혔다. 검찰개혁 법안은 「검찰청법 폐지법률안」, 「공소청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안」,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안」, 「국가수사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안」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법안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행정안전부 산하에 중대범죄수사청, 법무부 산하에 공소청을 각각 신설하며, 국무총리 직속 국가수사위원회를 두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9월 25일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핵심으로 하는 새 정부의 검찰 개혁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서 법안통과를 막아섰는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여권이 스물 네 시간이 지나 표결로 필리버스터를 중단시켰다. 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아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고, 검찰 개혁 법안은 여권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만 검찰청의 수사·기소 분리는 1년의 유예 기간을 뒀기 때문에, 검찰청이 실제로 문을 닫는 건 내년 9월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조용히 감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검찰의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라는 느닷없는 결정을 책임자급 검사들이 집단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 정부의 더 강력한 처분이 뒤따르고 있다. 

    「검사 파면법」을 발의한 민주당이 '집단 항명·조작 기소 국정조사'까지 띄우는 것은, 자칫 여권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검찰의 '대장동 항소포기' 후폭풍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11월 14일 「검사징계법 폐지법률안」과 「검찰청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검사징계법을 폐지하고, 검사도 일반 공무원처럼 '공무원 징계령'으로 징계받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두 법안이 통과되면 탄핵 절차 없이 검찰총장을 포함한 검사를 파면 징계할 수 있다.



    민주당은 두 개정안의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두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법사위 의석수 절반 이상을 범여권 위원들이 차지하고 있어 법사위 통과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당 지도부는 속도감 있는 처리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정청래 대표는 "법무부에서는 보직해임, 인사조치, 징계 회부 등을 신속히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터진 검찰 내부 반발을 두고, 여야는 각각 '집단 항명'과 '대통령실 개입 의혹'을 주장했다. 여야 간 전선이 다시 민주당의 검찰개혁이 정당한지 따져보자는 쪽으로 흐르자, 10∙15대책, 대통령실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의혹 등 여권의 기존 악재들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모양새다. 지금 대한민국 정가는 그야말로 극한 대치 정국이다. 다른 여러 가지도 있지만 검찰개혁 부분이 가장 첨예하고 중대한 사안으로 보인다. 검찰청 폐지가 여당의 무리한 밀어붙이기라는 반발은 소수의 야당 국민의힘의 주장일 뿐, 실제 큰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 여론이 여전히 국민의힘에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검찰개혁'이란 말이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1948) 때부터 검찰의 주요 임무는 형사 사건과 정치·이념적 대립 상태였던 북한 공산주의자와 간첩 색출 및 처벌이었다. 특히 북한의 공산주의자를 처벌하는 최일선의 조직으로 검찰은 자신들의 몸집을 키우는 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남한에 들어선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은 국시로, 또는 정권 획득의 목적으로 '공산주의 타도'에 앞장섰다. 검찰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제1정책으로 ‘공산당 간첩’을 때려잡는 일이었다. 이승만에서부터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은 이들을 기꺼이 도구로 권력을 휘두르고 정권을 유지했다. 권력의 도구로 쓰이면서 검찰은 당초의 목표이자 목적인 정권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용공 조작 사건을 기꺼이 떠맡았다.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 검찰과 중앙정보부를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용공 조작 사건이 벌어졌다. 

    기득권의 눈 밖에 난 정적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예술인을 비롯한 무고한 일반 시민 역시 ‘간첩 사냥’의 표적이 되어 극심한 고문 끝에 유죄를 인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검찰이 독립되지 못한 채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80년이 다 되어 가도록 검찰의 정권 지향적 조직 행태를 계속됐다. 그동안 검찰 출신의 많은 인사가 정권에 잘 보인 덕에 수많은 검사들이 국회의원 등 정계로 들어섰다. 검찰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고급 두뇌 집단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도 짚고 있듯이, 이러한 “조작의 뒤에는 반드시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목표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 책 『검사열전』에서 소개하는 사건은 용공 조작 사건이라고 할 만한 사건 중 진실화해위원회와 그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재심 결정이 난 사건, 그리고 그 재심 결정에서 무죄로 뒤집히는 결정이 난 사건, 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온 사건들만 고른 것이다. 이외에도 아직 많은 사건이 시시비비가 가려지기만을 기다리며 여전히 암흑 속에 묻혀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명백히 조작된’ 사건들 역시 오랜 기다림 끝에 국가폭력임이 인정되었으나 제대로 처벌받은 가해자는 없는 형편이다. 지난 80년간의 용공 조작 사건들을 다시금 불러내 잊힌 국가폭력의 희생자와 가해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고 부패한 집단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 아래에서 검찰이 권력을 지키는 하수인 행세를 했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군사정권의 종식과 중정의 해체로 생긴 공백을 파고들어 검찰 자신이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본격적으로 권력의 도구에서 주체로 움직여간 것이다. 그렇게 공고해진 검찰 권력은 오늘날까지 대물림되고 있다.

    1999년 조폐공사가 일방적으로 옥천 조폐창을 경산과 통폐합하자 옥천창 노동조합은 파업을 개시했다. 강경 진압으로 노조의 뜻이 꺾인 후, 조폐공사 파업 당시 대검찰청 공안부장이었던 진형구 대전고검장이 술자리에서 사실 공안팀이 옥천창 파업을 조장한 것이며, 공기업 파업 시 본보기를 보이려는 목적이었다고 발언했다. 이것이 이른바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이다. 그 과정에서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에게 무리한 통폐합 계획을 발표하라고 강요했음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전국적인 분노를 불러와 특검까지 꾸려졌으나, 책임자였던 김태정 법무부 장관이 해임되고 진형구 개인이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의 주범 진형구의 아들은 검사로 지내다 성추행으로 논란이 되자 징계 없이 사직했으며, 그 사위는 법무장관을 거쳐 집권 정당의 대표까지 지냈다. 권력을 대물림하려는 움직임은 이외에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검찰개혁이 처음 시작된 시기는 바로 김영삼 정부 때라고 한다. 공수처 설립에 대한 논의 역시 이때 공론화 되었다는 것. 하지만 구체적인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문민정부에게는 검찰개혁보다 하나회 숙청 등 군 개혁이 더 큰 과제였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호남 출신의 검사 수뇌부를 내세우며 검찰개혁에 대한 논의를 전 정부 때보다 더욱 심화시켰다. 이때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특별검사제도', 즉 특검이 처음 도입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특검은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당시 김태정 법무부 장관이 취임 15일 만에 사퇴하면서 김대중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결국 이때 검찰개혁 동력을 상실하면서 검찰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이로 인해 검찰과 검사들의 앙숙 같은 존재였다. 참여정부 시기 검찰개혁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들이 대면해 대화를 나눈 검사와의 대화를 꼽을 수 있다.

    2004년 1월 20일 법 개정을 통해 검사동일체 원칙을 법적으로는 폐지했다. 검사동일체는 상관인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검사들의 상명하복을 요구하는 법률이었는데, 이로 인해 기수열외 및 왕따가 자주 발생하고 기소독점주의의 부작용이 우려되자 이를 없애버린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만 폐지됐을 뿐 여전히 검찰 내부에서는 이 원칙이 남아있다고 한다. 당시에도 경찰의 수사권 독립,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등의 논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판사 출신의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서열 파괴 인사로 검찰개혁을 시도했는데, 이때 검찰의 반발이 강했다. 또한 공안통, 기획통들이 차지했었던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자리에 강력통 출신인 서영제 대검 마약부장을 임명한 것도 파격 인사로 꼽혔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는 게 주된 평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검사열전』에서 소개하는 사건들의 피해자는 다양하다. ‘조봉암 사법살인 사건’이나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의 피해자들은 당시 정권에게 위협이 되는 정적이었기 때문에 조작된 죄를 덮어썼다. ‘동백림 사건’의 피해자 천상병, 윤이상, 이응노는 낮은 지지율을 타개하고자 한 박정희 정권의 희생양이었다.



    ‘제1차 진도 간첩단 사건’과 ‘제2차 진도 간첩단 사건’은 모두 무고한 국민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과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을 하게 만든 사건이다. 1981년 1월, 중앙정보부(중정)는 진도 일대에 10년간 암약하던 간첩단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1980년 8월 중정이 입수한 한 건의 첩보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때 지목된 공작원의 외조카 김정인을 비롯해 그의 외가 친척, 먼 친척, 마을 주민, 친구까지 모두 간첩 혐의 및 간첩 방조 혐의로 체포되었다. 혐의의 근거가 허술했음에도 결국 1985년 10월 31일 ‘주범’ 김정인이 사형당하면서 무고한 국민이 국가권력에 의해 목숨을 강탈당한 부끄러운 역사로 남았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을 했다는 사실이 후일 밝혀졌고, 관련인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이 ‘제1차 진도 간첩단 사건’이다. ‘제2차 진도 간첩단 사건’ 역시 진도의 한 가족을 간첩으로 몰아 풍비박산 냈다. 두 사건 모두 남파 간첩의 존재를 내세워 반공 의식을 북돋고, 신군부의 위세를 유지하려는 정치적 목적하에 교묘히 조작된 사건이었다. 법적 절차에 밝지 않고 변호사 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힘든 ‘절해고도의 시골 사람들’이 주로 표적이 되었다는 점이 특히 악질적이다.

    군사독재정권 시대, ‘반공’은 권력을 공고히 하고 정적을 약화하는 무적의 수단이었다. 증거가 조작되었음이 명백한 사건도 ‘간첩’의 혐의를 쓰면 물 흐르듯이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대공 수사 조작은 멈추지 않았다. 2013년 발생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은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국정원과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사진은 조작의 흔적이 역력했을 뿐만 아니라 증인의 증언 역시 절차를 따르지 않아 증거로써 효력이 없었다. 결국 국정원의 강압적인 개입이 인정되었고 피고인 유우성 씨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담당 검사가 윤석열 정부의 대토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영전하는 등 제대로 책임을 진 사람은 없었다.

    “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서 몇 년 동안 재판을 받고 결국 대법원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이 절단난다. 판사가 마지막에 무죄를 선고해서 여러분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1년 11월 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평생 검사로 살아오며 검찰총장까지 지냈고,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임을 생각하면 그의 이런 발언은 더욱 섬뜩하다.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를 위해 공소권을 남용하는 사례들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1부 ‘야만의 시대’는 목적 없는 조작과 억압으로 점철되었던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의 국가폭력 시대 때 있었던 용공 조작 사건들을 다룬다. 2부 ‘제물의 시대’에서는 독재 체제를 굳건히 다지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희생한 전두환 정권과 공안검사들의 만행을, 3부 ‘공포의 시대’에서는 노태우 정권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검찰이 나서서 주도한 조작 사건들을 살펴본다. 사건은 시대별로 정렬하여 검찰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에서 권력의 주체로 변화해왔는지를 책을 읽어가며 자연스럽게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검사의 역할과 그 변질 과정에 집중하기 위해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에 있었던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 두 건도 부록으로 함께 수록했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상식적인 사회’를 강조한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형사 사건이 하나 터지면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이를 바탕으로 기소 여부를 따지며, 법원이 유무죄와 형량을 정하는” 순서로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검찰 역할이 비상식적으로 증대하면서 수사부터 기소, 판결까지의 과정을 신뢰할 수 없게 된 형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사건들을 되짚어보는 작업을 수행하는 동시에, 미래의 검찰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저자 : 배기성


    일체 ‘빽’ 없이 학연, 혈연, 지연 아무것도 없이 자기 콘텐츠만으로 조금 떠버린 존재,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한 명을 골라, 선거캠프 상황실장을 뛰면서 당선시킨 뒤, 그냥 국회 공무원으로 들어가 한 6개월 있다가 국회의원이 나가라고 해서 미련 없이 나왔다. 전부터 한국 역사학계의 근본 문제점이 사도세자와 영조의 갈등 국면에서 사도세자파派가 일방적으로 패배한 후 벌어진 사태라는 점을 깨닫고, 사설 세미나에서 [사도세자와 영조]라는 강의를 찍은 후, 유튜브에 올렸는데, 이게 시쳇말로 ‘대박’을 친다.

    기존 ‘사도세자’라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그는 훌륭한 임금감이었으며, 너무나도 부족한 인격의 소유자인 아버지 영조가 자신의 정치 세력인 노론과의 결탁으로 소론과 결탁한 사도세자를 죽이고 소론 세력을 700여 명이나 죽였다는 강의였다. 이 콘텐츠가 당시 유튜브로 450만 조회를 기록한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비서였던 할머니와 부산항일학생의거(일명 노다이 사건)에서 주동자였던 할아버지 사이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에서 국사학을 전공했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근현대사를 전공했다. 태국 방콕국제학교(ISB)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여러 문화 재단과 공공 기관에서 강연을 하며 활발하게 대중과 만나 왔다. 시사·문화 인기 채널 <매불쇼>에 출연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근현대사의 뒷이야기를 들려주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류에 존재하는 민중의 열망이야말로 시대적 과제를 읽어 내는 도구라고 믿고 있으며, 끊임없이 민중을 주체로 한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다

    <매불쇼>의 매주 월요일 [나만 말하는 한국사] 코너에 출연하면서, 128만(2023.10.6. 기준) 유튜버 채널의 위력을 매주 느꼈다. MBC 라디오와 목포 MBC 라디오에서도 매주 얼굴을 내민다. <매불쇼>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아 횟수로는 두 번째, 공식적으로는 첫 책을 출간한다. 주 1회 30분의 역사 이야기에서 채 풀리지 않은 갈증도 풀고, 한국사의 씨줄과 날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엮었다.

    유튜브_ youtube.com/@Baeki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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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 - 개정판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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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모든 알이 성체로 자란다면 우리는 발을 적시지 않고도 대구의 등을 밟으며 대서양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자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père, 1802-1870)의 말이다. 물론 이 책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의 저자 오치 도시유키가 물고기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단 말을 하기 위해 인용했지만, 뒤마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저자 오치 도시유키는 또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국가의 운명을 바꾸고 유럽사와 세계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고?」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영어의 '스톡피시(stockfish)'란 단어도 언급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작품 『템페스트』의 한 문장을 인용해서다. "I'll turn my mercy out o'doors and make a stockfish of thee."("너를 절여 만든 대구로 만들어버리겠다.") 스톡피시란 북유럽 말린 대구의 일종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스톡피시는 수분이 없고 딱딱하다. 한랭한 기후에서 소금을 사용하지 않고 오랫동안 건조하는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나무막대기로 수십 번 두드려 하룻밤 내내 물에 불려야 겨우 요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말린 대구로 만들어버리겠다'라는 표현은 흠씬 두들겨 패서 패디기치겠다고 으름장 놓는 말이다.

    서양 음식문화의 중심에 '고기'가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농업혁명 이후다. 그 무렵부터 일 년 내내 육류를 사시 공급하는 시스템이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육류 소비량보다 생선 소비량이 훨씬 많았다. 실제로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는 일 년의 절반 정도 기간에 생선을 먹고 살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왜 그랬을까? 당시 가톨릭교화가 한 해의 반 가까이 되는 기간을 단식일로 지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식사를 하지 않는 날인 단식일 기간조차 생선 먹는 일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선 먹기를 허용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생선 소비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렇게 단식일이 '피시 데이(Fish Day)'로 재탄생했다.



    이처럼 중세 기독교가 만든 '피시 데이' 관습은 막대한 생선 수요를 창출했고 확대된 시장 형성으로 이어졌다. 책에 따르면 거대한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업이 발달했으며 어업 장려 운동도 일어났다. 또 복합적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그 시스템을 장악한 상인연합세력(한자동맹, Hanseatic League)과 헤게모니 국가(네덜란드)가 등장했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 '청어'와 '대구'가 있었다. 13~17세기에 청어와 대구는 유럽 국가들의 부의 원천이자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으며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조금 생뚱맞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물고기 ‘청어’와 ‘피시데이’가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바꾼 아이러니한 이야기를 이 책은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먼저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자고 운을 뗀다. ‘만일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약 그랬다면 인류가 번성하고 번영하기는커녕 생존 자체도 녹록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으로 읽힌다. 만일 그랬다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찬란한 문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의미와 원인을 확장시킨다.

    ‘몸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의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 변화가 어떻게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이 책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 논지 중 하나다. 책을 찬찬히 읽으며 위의 질문에 관한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주제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나온다.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식량이자 도구로 중세 기독교가 사용한 물고기 청어가 오히려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바이킹이 청어의 이동 경로에 발맞추어 유럽의 많은 국가를 침략하고 거대 제국을 건설한 이야기, 15세기 말 황금 섬 '지팡구'를 찾아 항해하던 존 캐벗이 실수로 도달한 섬에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를 발견해 신항로 개척 시대를 촉발한 이야기, 평범한 생선 대구가 미국 독립전쟁 자유정신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된 이야기 등 흥미롭고도 통찰력 넘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꾼 작지만 위대한 물고기, 청어 이야기〉, 2장 〈청어,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운명을 바꾸다〉, 3장 〈신항로 개척시대를 열어준 주인공, ‘스톡피시’와 ‘소금에 절인 대구’〉, 4장 〈식민지 미국이 잉글랜드에서 독립하고 강대국이 된 원동력, 대구〉, 5장 〈청어와 대구는 중세 유럽의 기독교 사회를 어떻게 지배했나〉, 6장 〈물고기는 어떻게 기독교에 스며들고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까〉 등이다. 각 장에는 4~10개의 작은 제목에 따른 글들이 아름답고 생생한 감으로 사진보다 더 멋진 삽화와 함께 뒤따르고 있다. 

    먼저 '청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꾸고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육류를 ‘뜨거운 고기’라 하여 엄격히 금지했다. 인간의 마음속에 성욕이 불같이 일어나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연장선에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도록 일 년 중 거의 절반을 ‘단식일’로 정해 엄격히 시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일 년의 절반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 단식일에도 적은 양이나마 먹을거리는 필요했다. 그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생선’이었다. 생선은 ‘차가운 고기’로 분류되어 성욕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단식일에도 생선만은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식일은 단순히 ‘먹는 것이 허용된 날’에서 ‘적극적으로 생선을 먹는 날’로 바뀌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결국 ‘단식일’은 ‘피시 데이(Fish Day)’로 자리 잡으며 엄격히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일 년의 절반 가까이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가 하루 세 끼를 생선으로 해결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종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이 생선 위주의 식문화가 당시 유럽 사회 전반을 어떻게 바꿔놓았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가 만든 ‘피시 데이’ 관습은 거대한 생선 수요를 창출했고, 이는 거대한 시장 형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막대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어업이 발달했고, 각지에서 어업 장려 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복합적인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며, 그 시스템을 장악한 상인 연합 세력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과 신흥 패권국 네덜란드가 등장했다.



    이처럼 상업동맹이 등장하고 신생 강대국이 출현하는,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청어’와 ‘대구’가 있었다는 점을 저자가 분석해 냈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 두 물고기는 유럽 국가들의 부의 원천이자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으며, 흥망성쇠를 좌우했다. 회유어(回遊魚)인 청어는 오늘날에도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회유 경로를 바꾸는 때가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그 경로가 바뀔 때마다 도시와 국가의 운명이 달라진 것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바로 바이킹이 고향을 떠나 브리튼섬을 침략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청어의 이동 경로 변화는 13~17세기 유럽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13세기 초, 발트해 연안의 도시 뤼베크(Lubeck) 근해에서 어부들이 거대한 청어 떼를 발견했다. 곧 인근 도시 어부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청어잡이에 나섰고, 청어 무역이 활발해졌다.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지자 발트해 연안의 상인들은 더 큰 이익을 위해 동맹을 결성했다.

    1241년 뤼베크와 함부르크(Hamburg) 간 동맹이 그 시초였으며, 이는 훗날 유럽을 지배한 상업 동맹체 한자동맹의 원류가 되었다. 한자동맹은 눈덩이처럼 성장해 수십 개 도시가 참여하는 거대 조직으로 발전했다. 마침내 한자동맹은 유럽의 경제 패권을 장악했고, 그 영향력은 2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고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서 영원할 것만 같던 한자동맹의 경제적 패권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결정적 원인은 청어 떼가 갑작스레 산란지와 회유 경로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 작지만 거대한 변화로 한자동맹은 급격히 쇠퇴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곳은 북해 연안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였다. 그전까지 강대국 스페인의 지배 아래 존재감이 미미했던 네덜란드는 족쇄를 벗고 신흥 강국으로 부상했다. 네덜란드가 청어를 중심으로 유럽 최대의 어업 강국이자 17세기 세계 패권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부 빌럼 벤켈소어(Willem Beukelszoon)가 개발한 ‘소금에 절인 청어(pickled herring)’가 있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 해양을 지배하는 최초의 헤게모니 국가(hegemony state)로 자리매김했다. 이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는, 몸길이 30센티미터 남짓한 흔한 생선 청어가 있었다.



    3장에는 '말린 대구' 스톡피시 이야기가 펼쳐진다. 베네치아 출신의 항해가 존 캐벗(John Cabot)은 헨리 7세로부터 특허를 받아 1496년 3월, 브리스틀에서 서쪽을 향해 출항했다. 그가 다른 항구가 아닌 브리스틀을 출발지로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브리스틀에는 ‘하이브라질(Hy-Brasil)’이라는 대륙이 존재하며, 브리스틀 선원들이 그곳에 도달했다는 전설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벗은 그 전설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리하게 이용했다. 저자는 그의 진짜 목적지는 하이브라질이 아닌 서쪽으로 도는 아시아 항로, 좀 더 정확히는 황금의 섬 ‘지팡구(日本, 일본)’로 가는 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지팡구’로 향한 이유는 무엇일까? 황금과 보석, 그리고 향신료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는 것. 이 책이 일본의 학자가 쓴 것이고, 그때 유럽에서 일본의 존재에 대해 그렇게 잘 알았는지는 의문이고, 또 일본이 어떻게 황금의 도시로 알려졌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는지 언급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캐벗의 첫 항해는 실패로 끝났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곧바로 두 번째 항해를 감행했고, 귀환 후 밀라노 공국의 외교관 라이몬도 디 손치노(Raimondo di Soncino)에게 자신의 항해담을 전했다. 손치노가 밀라노 대공에게 보낸 보고서의 일부에는 “존 캐벗은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있습니다. 상륙한 지점에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항해해서 가다 보면 ‘지팡구’라는 섬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존 캐벗에 따르면 그 섬은 적도 지역에 있고 금?은 보석이 넘쳐나며 다양한 향신료의 원산지라고 합니다.”고 적혀 있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책에 따르면 존 캐벗은 그러나 ‘지팡구’에 도달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배는 북아메리카 대륙 인근의 어느 섬, 어느 항구에 닿았다. 항해 중 항로가 잘못 잡힌 탓이었다. 정확한 상륙 지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수의 학자는 뉴펀들랜드섬(Newfoundland)의 보나비스타(Bonavista) 항으로 추정한다. 결국 그는 그토록 찾아 헤맨 금과 보석, 향신료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른 것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cod shoal)였다는 것. 손치노가 밀라노 대공에게 보낸 편지의 또 다른 구절에 이 말이 적여 있다고 한다.



    “그들은 그 바다에 물고기가 차고 넘친다고 말합니다. 물고기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걸 잡기 위해 그물을 칠 필요도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에 가라앉도록 돌을 매달아 내린 바구니로도 양껏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을 정도니까요··· 캐벗의 동료인 잉글랜드인들은 그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잉글랜드에 아이슬란드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대신 아이슬란드에서는 스톡피시라고 부르는 생선을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말하는 물고기는 다름 아닌 대구(cod)였다고 단언한다. 캐벗이 이끄는 선박이 원래의 항로를 벗어나 우연히 다다른 뉴펀들랜드 연안에서 발견한 이 거대한 대구 떼는, 훗날 신항로 개척 시대의 물줄기를 돌려놓으며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현재 매사추세츠주 의회당에는 ‘대구상’이 걸려 있으며,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본다고 한다. 이 대구상은 1895년 의회당을 이전할 때 예전에 걸려 있던 것을 정중히 국기로 감싼 뒤 함대에 실어 수많은 사람의 우레 같은 박수를 받으며 새로 지은 의회당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후 이 대구상은 지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The Boston Globe)〉에 ‘성스러운 대구(Sacred Cod)’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 ‘성스러운 대구’는 세 번째로 만들어진 ‘3대 대구상’이라고 한다. ‘1대 대구상’은 1747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2대 대구상’은 1775~1776년 독립전쟁 당시 잉글랜드군이 의회당을 파괴할 때 함께 사라졌다. ‘2대 대구상’은 당시 상인이자 부동산 개발업자이며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에 연루된 인물로 알려진 존 로(John Rowe)의 제안에 따라 설치되었다.


    저자 : 오치 도시유키


    1962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대학원 문학 연구과 영문학 전공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지바공업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전공은 셰익스피어와 미국 사회다. 저서에 『미국 최신 히트 상품&트렌드』『영어로 말하면 이렇게 됩니다!』등이 있고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공동 번역하기도 했다.


    역자 : 서수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회사 생활에서 접한 일본어에 빠져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출판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를 삶의 모토로, 더 많은 책을 읽고 알리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책을 읽고 옮긴다. 옮긴 책으로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랑과 욕망 세계사』『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엽기인물 세계사』『한 권으로 읽는 미생물 세계사』 『과학잡학사전 통조림 - 일반과학편』 『과학잡학사전 통조림 - 인체편』 『과학잡학사전 통조림 - 우주편』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1가지 심리실험 - 인간관계편』『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8가지 심리실험 - 자기계발편』『소수는 어떻게 사람을 매혹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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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이룬다 - 클라우제비츠에게 배우는 국가안보전략
    류제승 지음 / 지베르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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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안보의 책임자들이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모든 지성인이 전쟁의 본질을 파악하고 평화를 지키는 지혜를 얻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시대의 전략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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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이룬다 - 클라우제비츠에게 배우는 국가안보전략
    류제승 지음 / 지베르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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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인 AI(인공지능)는 이미 전쟁에 등장했다. 3년째 지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는 AI가 장착된 드론전이 한창이다. 이젠 전쟁의 양상이 드디어 인공지능이 탑재된 무인의 무기들이 속속 등장하는 전쟁으로 바뀌는 양상이다. 기계의 진보가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는 시대, 이 책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이룬다』는 국가와 군사 차원의 안보 정책을 설계하고, 야전 작전 부대를 직접 지휘한 저자 류제승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바탕으로 국가안보전략으로서의 전쟁에 대해 기술했다. 『전쟁론』은 프로이센의 전쟁 이론가인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가 쓴 책으로 1832~1834년에 세 권으로 출판되었다. 서양의 정치사상, 국제정치, 전쟁철학, 군사학 분야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전쟁론』은 클라우제비츠가 살아있을 당시에 유행한 이른바 실증적인 전쟁 이론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즉 전쟁을 물리적·기하학적인 요소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그래서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의 정신과 심리를 고려한 전쟁 이론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저서라고 평가받았다. 현대의 전쟁에 나타나는 공격과 방어, 전술과 전략의 형태는 200년 전과 크게 달라졌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의 정신은 여전히 중요하며 앞으로도 결정적인 요소로 남을 것이란 평가 속에서 저자 류제승의 이 책은 군사전략가로서의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군의 전쟁 수행에 대한 텍스트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술의 진보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인간의 도덕과 책임의 퇴화를 지적한다. AI가 전쟁의 판단을 대신하게 될 때, 인간은 더 이상 주체가 아니라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인간이 AI의 운용자로서 지속 가능한 권위를 유지하려면 이성·감성·사회·운동 지능을 갈고닦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문장은 기술의 시대에 인간이 지켜야 할 철학적 태도를 압축한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저자는 평생의 군사 경험을 바탕으로 ‘직업적 소명’이라는 개념을 군의 윤리로 확장한다.



    장교의 삶은 직업적 소명 의식을 체화하고 군사 전문 직업주의 문화를 창달하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가파른 격랑의 시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군사 전문 직업주의’로 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비록 출간된 지 200년이 다 된 '군사 고전'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전쟁에 관한 진리를 깨닫고 ‘군사 전문 직업주의’의 철학적 명제를 파악하도록 이끌어주고 자극해 주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저자는 믿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론』은 현재적 의미를 지닌 전쟁 이론서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클라우제비츠가 정립한 본래적 명제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핵무기 시대의 복잡한 성격을 띤 전쟁의 구조와 전쟁술에 관한 논리를 나누며 해법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전쟁론』은 전쟁의 물리적 현상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한 정신적 원인과 결과를 철학적 사유의 논리로 통찰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시대의 유명한 군사이론가였던 조미니(Antoine-Henri Jomini)가 저술한 『전쟁술』이 이론적 간결성과 명확성 면에서 평가를 받는 것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왜냐하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당대 철학·역사학·정치학·물리학·군사학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전쟁의 구조와 본질을 밝혀낸 최초의 전쟁 이론서이기 때문이다.

    이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어떤 명제들이 현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어떤 명제들이 현재는 물론 미래 전쟁에서 적용해야 하는 국가정책·군사전략·작전술·전술의 원형적 원리인가? 그리고 현재적 가치를 지닌 일련의 명제와 원리를 어떻게 미래 전쟁 억제와 전쟁 수행 과정에서 응용할 것인가? 그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 우리 군대와 사회에 ‘군사 전문 직업주의’를 정착시키는 노력의 근간을 형성할 것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군은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윤리적 주체다." 저자는 막스 베버의 정치 윤리를 인용하며, 신념과 책임의 균형을 리더의 덕목으로 제시한다.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변증법적으로 조화시켜야 한다”는 베버의 주장은, 오늘의 국방 리더십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한다.



    독자가 군인도 아니고, 군사학이나 무기체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반 사람으로서 전쟁에 대해 논한 책을 읽고 소화하기에는 벅차지만 언제든 전쟁이 터질 수 있는 한반도의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마친 한 사람으로서 관심은 당연히 가져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이 책을 읽는다. 책에 따르면 『전쟁론』은 클라우제비츠의 유작으로서, 1832년에 처음으로 햇빛을 보았다. 클라우제비츠는 국가 안위를 지키는 책무를 다하면서 전쟁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전쟁론』은 그의 치열한 삶의 기록이다. 『전쟁론』은 전체적으로 8개 편 12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클라우제비츠가 유일하게 완성했다고 간주한 ‘제1편 전쟁의 본성 1장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제외한 다른 편(篇)과 장(章)들은 개작을 통해 논리와 표현을 더 보강하고자 했던 미완성 유작이다. 클라우제비츠가 자신의 삶 전체를 바친 역작 『전쟁론』을 통해 그가 직면했던 국가 경영의 현실과 전쟁 현장 감각이 깃든 문장들의 의미를 음미하다 보면 그의 군사적 천재성을 확인하고도 남는다. 또한 우리는 클라우제비츠에게서 미래 전쟁에서 관찰하고 체험하게 될 일련의 현상들과, 그 속에 내재한 인과의 본질을 추론할 수 있는 혜안(꾸데이, coup d’oeil)*를 배우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전쟁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재해석이다. 전쟁을 알아야 평화가 보이고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사병 출신인 독자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정훈 시간이나 교육을 통해 자주 듣던 말이기 때문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장교들은 "전쟁에 이길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해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저자 류제승은 전쟁을 단순한 폭력이 아닌, 인간 의지와 정치의 연속으로 본다. “전쟁의 본성을 알고 대비해야 전쟁을 억제하여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하며 평화는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전쟁을 통제할 이성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ㅈ자는 “평화만을 추구하며 전쟁 전략적 사고를 경시하는 풍조는 위험하다”라고 경고한다. 오늘날 현실 외교와 국방 담론에 던지는 일침이다.

    *혜안(꾸데이, coup d’oeil): 군사적 천재가 갖추는 자질로 '꾸데이'는 우리말로 '혜안'이라는 뜻이다.(독자 주)



    이 책은 이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대가 지켜야 할 정신을 제시한다. 국가다운 국가, 군대다운 군대에는 군사 전문 직업주의 문화가 살아 숨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군의 윤리를 헌법적 가치와 결합시켜, 문민통제와 인권 존중이 군의 전문성과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상은 전쟁과 평화를 잇는 다리이자, 군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진가는 고전 『전쟁론』의 현대적 해석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론』(클라우제비츠)은 전쟁의 물리적 현상뿐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한 정신적 원인과 결과를 철학적 사유의 논리로 통찰한다.” 저자는 이 『전쟁론』이 여전히 “전쟁의 진리를 깨닫고 군사 전문 직업주의의 철학적 명제를 파악하도록 이끌어주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말한다. 결국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전쟁은 피해야 하지만, 피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전쟁을 연구하는 것은 폭력을 준비하기 위함이 아니라, 폭력을 제어하기 위한 이성의 훈련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전쟁을 하지 않으려면 전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역설적인 이 표현은 저자의 군사 전략 지휘관으로서의 전쟁에 대한 오랜 사유와 연구로 압축된 말이라고 독자는 이해한다. 이 역설은 인간의 조건이자, 문명의 윤리적 차원에서 "참"이다. 그러나 이 책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이룬다』는 단순한 군사학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책임, 정치의 도덕, 그리고 평화를 지탱하는 이성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내재해 있다. “진리의 본질은 자유”라는 마지막 문장은 저자의 평생의 결론이자, 우리 시대가 다시 새겨야 할 문명적 신조라고 독자는 판단한다.



    이 책은 이밖에도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안보 딜레마에 명쾌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특히 “전쟁은 단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문민통제의 원칙과 한미동맹의 외교·군사적 운용을 조명하고, ‘경이로운 삼위일체(국민-군대-정부)’ 개념으로 국가적 위기 대응 역량을 진단한다. 이 책이 돋보이는 것은 모든 논의가 최종적으로 ‘군사 전문 직업주의’와 ‘임무형 지휘’라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강한 국가가 되려면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하고, 강한 군대의 비결은 장교단의 판단력에 있다”는 클라우제비츠의 통찰을 인용하며, 장교 교육 시스템의 전면적 개혁과 상급자의 의도 안에서 자율성을 발휘하는 ‘임무형 지휘’ 철학의 정착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일은 가장 중요한 국가의 책무이며, 그 책무 완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집단이 군대이고 그 중심에 장교단의 역할이 있다. 만일 이렇듯 중요한 조직을 솔선수범하며 이끌 우수한 장교들을 선발하고 관리하는 제도가 부실하다면 군인 스스로는 물론 국민은 우리 국방을 신뢰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군사 전문 직업주의’와 임무형 지휘는 클라우제비츠의 군사적 천재론과 무덕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 철학과 가치를 구현하고 체화하도록 장교단의 교육체계와 인사관리 체계를 최적화한다면, 투철한 국가 의식, 전장에 대한 뛰어난 상상력, 진정한 용기로 충만한 군사적 천재들이 중심을 이룬 장교단을 육성하여 ‘군사 전문 직업주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 가장 절실한 지적 처방전으로 불리워도 될 듯하다. 저자는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독일어 원전 최초 번역가이자 전 국방정책실장, UAE 대사 등 군사, 정책, 외교를 아우른 문무겸전(文武兼全)의 경험이 이 한 권에 응축되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저자는 “전쟁을 하지 않으려면 전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역설적 진리를 기반으로, 냉철한 전략적 현실주의를 추구하는 예리한 통찰력도 보여준다.



    이 책의 핵심은 결국 현대의 전쟁에서 핵무기, AI, 인지 전쟁 시대의 전략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군사전략과 외교전략은 2인용 자전거”이며, 승리가 수단, 평화가 목적이라는 배합의 지혜를 강조한다. 특히 “전쟁술은 억제술”이라는 명제를 통해, 북핵 위협에 대한 정교한 억제력 관리와 ‘최초 사용’과 같은 첨예한 전략 개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 책은, 국가안보의 책임자들이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모든 지성인이 전쟁의 본질을 파악하고 평화를 지키는 지혜를 얻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시대의 전략필독서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류제승(柳濟昇)


    군인 류제승은 전략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대한민국 최고의 군사전략가이다. 현재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 Korea Research Institute for National Security의 원장 겸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전쟁의 본질을 탐구하는 뛰어난 이론가이자, 국가와 군사 차원의 안보 정책을 설계하고 야전 작전 부대를 직접 지휘한 실천가로서 경륜이 깊은 장군이다. 저자의 전문성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우수 사관생도에게 주어진 독일 유학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클라우제비츠를 낳은 독일의 전략적 사고와 군사 문화를 현장에서 체득했으며, 이것이 훗날 그의 학문과 경력 형성에 밑거름이 되었다. 독일 육군청 교환교관 재직하던 시기, 그는 보쿰Bochum 소재 루르Ruhr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 여정을 한 단계 넓혀 갔다. 그 과정에서 6·25 전쟁을 둘러싼 치열한 분석과 성찰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연구는 그의 또 다른 저서 『6·25,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에 집약되어 있다.

    그의 빛나는 업적 중 하나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독일어 원전을 처음 번역 소개해 군과 학계의 전략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 번역서는 출간된 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9쇄에 이르는 증쇄를 거듭하며, 장기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저자는 단순히 이론적 논의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가안보의 최전선에서 국가·국방·군사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했다. 그는 합동참모본부 군사전략과장과 전략기획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기획참모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등 군사전략과 국방정책 분야의 핵심 직위를 두루 거쳤다. 전역 후에는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으로 보임되어 군사와 정치를 조율하며 국가안보의 중대한 과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이론과 현실을 실용적으로 접목하는 탁월한 역량을 입증했다. 육군교육사령관으로서 육군의 교육훈련, 교리 발전, 전력 개발을 이끌었으며, 전역 후에는 국방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초빙교수로서 후학들에게 『전쟁론』을 직접 강의하며 자신의 지식과 통찰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주아랍에미리트UAE 한국 대사로서 봉직하는 동안, 양국의 정상회담 개최,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CEPA 체결, 군사·방산과 에너지산업의 전략적 협력 등을 증진하고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의 관계를 신뢰의 단계에서 신념의 단계로 격상시키는 데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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