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의 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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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키메라의 땅』의 표제어 '키메라'는 고대 그리스 전설 속 괴물의 이름이다. 사자 머리에 염소 몸통, 뱀 꼬리를 가진 괴물을 말한다. 키메라는 종(種)의 경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악의 힘'을 가진 불길한 동물로 그려진다. 현대에는 한 개체에 유전자형 이 다른 조직이 서로 겹쳐 있는 유전현상 또는 서로 다른 종끼리의 결합으로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는 유전학적인 기술을 의미한다. 세포융합 기술을 이용하여 감자와 토마토를 접목시켜 만든 포마토도 키메라로 볼 수 있고, 인위적으로 동물도 키메라를 만들 수 있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포유류의 2~8세포기의 배 2개를 하나로 합친 배를 만들면 정상 크기의 개체가 된다. 이를테면 검은털 마우스의 초기 배와 하얀털 마우스의 초기 배를 융합하여 대리모의 자궁에 옮겨 발생을 진행시키면 검은색과 흰색 털이 얼룩진 키메라 마우스가 된다. 배를 융합하는 방법 외에 마우스의 배가 속이 빈 채 부풀어 오르는 '배반포'라는 시기에 다른 배의 '배성 간세포 (ES 세포)'를 유리관으로 주입하는 식의 방법도 있다. 형성된 키메라마우스는 배반포의 세포에 유래하는 조직과 ES 세포에 유래하는 조직을 모두 가지게 된다. 같은 종 생물끼리의 키메라만이 아니라 다른 종끼리의 키메라도 만들 수 있는데, 1984년에는 양과 염소의 태아 세포를 융합시킨 최초의 키메라 동물이 나왔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는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에서 인간의 배아줄기세포 를 쥐에 이식한 '키메라 쥐'를 탄생시켰다고 하여 생명윤리 논란을 가중시켰다. 당시 윤리학계와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생명공학계 안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미래 소설 『키메라의 땅』이 출간됐다. 이 작품은 1, 2권 한 세트로, 김희진의 번역으로 출판사 〈열린책들〉이 출간했다. 저자 베르베르는 "『키메라의 땅』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과학 저널리스트였던 시절 집필했던 혼종에 대한 보도 기사에서였다."고 작품 뒷 부분에서 밝히고 있다.(2권, p.319)


베르베르는 마르지 않는 과학적 상상력으로 도발적인 미래를 예언하는,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운다. 이 작품은 파멸적인 제3차 세계대전(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그렇게 걱정했던 인류의 멸종과 모든 지구 문명이 완전히 폐허화되고 극소수 인간만 생존한다. 지구에는 인간과 동물의 혼종 신인류, 「에어리얼」, 「디거」, 「노틱」이 탄생한다. 배타적인 구인류와 탁월한 적응력을 지닌 신인류 3종족의 갈등은 불보듯 뻔하다. 더욱이 뒤늦게 등장하는 또 다른 키메라까지 속속 나타난다. 멸망한 지구의 새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이들은 어떤 운명을 개척해 나갈 것인가가 이 책의 줄거리가 되고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교훈이다.

저자는 이 작품의 맨 앞에 〈일러두기〉에서 "이 이야기는 이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는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5년 후에 일어난다."는 섬찟한 경고문으로부터 매우 어두운 분위기가 감돈다. 베르베르는 '5년 후에 인류가 멸망'하는 핵전쟁이 발발한다는 조건 아래, 독자들에게는 복잡한 심정을 드리우게 한다. 어쩌면 '5년'이란 기간보다는 '핵전쟁'이 더 무게 중심이 실린 작품이리란 추측이 가능하다. 핵전쟁으로 인류와 문명이 모두 사라진다는 가정은 그 시기가 내일이든, 5년 후든 100년 후든 아무 상관이 없다. 핵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이라는 전제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이 소설의 예언이 들어맞게 될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사라진 혼종 인류(신인류)의 세상이 될 태니까 말이다. 

혹시 살아남은 극소의 인간은 공포에 질린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쉽게 예측되는 일이다. 베르베르의 이번 책은 핵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조건을 앞세운 작품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이 책은 인류가 스스로의 과오로 인해 자멸하다시피 한 지구 위에, 유전자 실험의 결과물인 키메라들이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역사, 철학, 생물학, 유전공학, 그리고 짜릿한 모험이 한데 얽힌 『키메라의 땅』은, 인류의 생존 위기에 대비해 탁월한 적응력의 혼종 인류를 만들어 내려는 진화 생물학자 '알리스 카메러'의 위태로운 연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가 우여곡절 끝에 탄생시킨 키메라 3종족이 지구상에서 구인류와 연대하고 또 갈등하며 겪는 적응기가 웅장한 스케일로 펼쳐진다.



진화 생물학자 알리스는 극비리에 한 가지 연구를 진행한다. 그 정체는 바로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조합해 키메라 신인류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한 그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인류의 가능성이 이어지도록 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연구가 탄로 나며 그는 반대론자들에게 극심한 위협을 받게 되고, 그 연구의 든든한 지원자인 프랑스 연구부 장관 뱅자맹 웰스의 도움으로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피신하여 연구를 이어 간다.

베르베르는 그의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인용한다. 소설에서 그는 자신의 창작의 원천이라는 저서 『상대적이며~ 』를 자주 인용한다. 인용 수준이 아니라 작품 구상에도 사용하고, 작품 설명(과학적 인과 관계)에도 톡톡히 덕을 본다. 이 소설 작품 『키메라의 땅』에서는 3장에서 처음 이용한다. '대립'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자연은 제 모든 창조물들 간에 대립을 일으켜 진화를 강제한다. 창조물 하나가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면, 자연은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 약간 다른 모습을 취하게 한다. 이 새로운 방식으로는 더 잘 적응할지 보기 위해서다."(1권, p.19)

저자는 이와 함께 "이 과정에는 논리도 윤리도 없다. 자연은 옮고 그름을 따짐 없이 제 창조물들의 존재에 덧붙임을 한다. 그 후 대양과 사막과 평원과 정글의 무성함 속에서 저희들끼리의 투쟁 혹은 협력 전략을 택해 가능한 오래 살아나목 번성하는 것은 그들 몫이라고 덧붙인다. 자연과학에 우둔한 독자는 다윈의 진화론 가운데 핵심어 '자연선택'과 '생물 다양성'이라는 세밀 분류에 따른 것 같다고 느낀다.



책의 발단 부분에서 디에고 마르티네스 기자가 특종 보도한 '변신 프로젝트'라는 실체를 해명하는 뱅자맹 웰스 연구부 장관이 등장한다. "부인해 봐야 아무 소용 없겠지요. 변신 프로젝트는 실제 존재합니다. 디에고 마르티네스의 기사 내용 역시 사실입니다." 웅성거리는 기자들을 사이에서 뱅자맹은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하게 해둘 점이 있습니다. 변신은··· 프로젝트일 뿐입니다. 그저 프로젝트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점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싶었던 겁니다. 아직 마르티네스 기자의 기사를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이 자리에 담당자를 소개합니다. 변신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주도한 진화 생물학 교수 알리스 카메러는 최신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세 가지 이종으로 다양화된 새로운 인류를 개발하려 합니다. 공중을 나는 인간, 땅을 파고들어 가는 인간, 헤엄치는 인간이죠."

뱅자맹은 비밀 프로젝트가 폭로된 이유가 일부 악의적인 음모론 블로거들에 의한 확산, 그리고 조직적으로 벌인 치밀하고 흉흉한 중상모략과 비방, 야당이 가세해 한층 격화되었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밝혀진 바에야 정확하게 해명하고 설명하려고 한다고 기자들을 향해 알리스를 소개한다. 길고 검은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고 커다란 초록색 눈을 한 젊은 여성이 첫 줄의 좌석에서 일어나 연단에 오라 강대 앞에 선다. 오늘 이 자리에 그는 수수한 흰 옷차림을 했다. 흰 재킷, 흰 셔츠, 휜 치마. 알리스가 혼잣말을 하듯 좌중 앞에 선다. "이들은 하이에나야. 내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딱 맞는 말들을 찾아야 해." 

알리스는 진화 생물학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구체적 사례로써 설명해 나간다. 그리고 그의 긴 '프로젝트' 설명 겸 해명이 이뤄진다. 

"저는 생물 다양성이 대자연의 현명함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믿습니다. 한 동물은 여러 다른 형태를 늘려 감으로써 저를 둘러싼 환경 변화에 적응합니다. 한 동물은 여러 다른 형태를 늘려 감으로써 저를 둘러싼 환경 변화에 적응합니다. 개미를 예로 들어 봅시다. 개밋과에는 1만 2천 개의 종이 있습니다. 오늘날 알려진 가장 큰 개미의 몸집은 가장 작은 개미의 60배에 달하죠. 인간으로 치자면 키가 1미터인 사람이 있고 60미터에 달하는 사람도 있는 셈입니다."(1권, p.24)



기자 회견 후 연구소가 습격 당하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뱅자맹은 알리스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손을 써주었다. 프랑스령 기아나로 가서 우주 비행사 교육을 받고 유인 우주 비행 프로그램에 참가할 자격을 석 달 만에 배웠다. 알리스는 우주 정거장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계속하려 한다. 알리스는 외젠, 마리앙투아네트, 조제핀 생각을 한다. 그들은 태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희생당했어. 그가 뭐라고 불렸지? 그래, 내 '시험작들'이라고 했지. 가엾은 것들, 무덤조차 갖지 못했지. 그들은 과학의 순교자야. 내 실험의 진전을 위해 제 목숨을 대가로 치른 첫 존재들이야.

알리스는 어렸을 적 배의 통증을 느끼고 찾은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자궁 내막증'이라는 염증성 여성 질환이며, 전 세계 여성 10퍼센트에게 발생하는 흔한 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후 알리스는 과학에 몰두했고 가능성 있는 설명을 찾아냈다.

"한 이론에 따르면 자궁 내막증을 일으키는 것은 유전자 속 특정 배열, 남아 있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DNA라고 했다. 먼 옛날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서로 짝을 짓고, 사랑을 나눠 반은 사피엔스, 반은 네안데르탈인인 혼종 자식을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 두 종의 결합으로 자손을 나길 수 없는 새로운 시기가 왔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전히 남아 있으니,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 코드에는 평균적으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유전자 1.8퍼센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1권, p.62) 

우주 정거장에 로켓으로 날아가던 중 알리스의 머릿속에는 온통 '혼종' 생각뿐이다. 이제 목표 지점까지 23시간 남았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이뤄 낸 성과들을 되돌아본다. 뱅자맹 웰스 장관의 지원 덕분에 비밀리에 원숭이 혼종 셋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망할 놈의 기자가 내 연구실을 파헤치기 전까지 말이지." 그리고 지금은 유배 중이다. 태어난 행성으로부터의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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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인생수업 - 흔들릴 때마다 꺼내 읽는 마음의 한 줄 메이트북스 클래식 25
홍자성 지음, 정영훈 엮음, 박승원 옮김 / 메이트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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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채근담 인생수업』의 표제어에 나온 '채근담'(菜根譚)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홍응명(洪應明)의 어록이라고 한다. 표지에 저자로 나오는 '홍자성(洪自誠)'의 '자성'은 그의 '자(字)'로서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불리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호'는 환초((還初) 혹은 환초도인(還初道人)이라고 한다. 채근담은 상, 하 2권으로 나뉘어 있고, 모두 356조의 단문으로 이루어졌다. 출처진퇴, 처생훈, 인생의 즐거움 등을 유교를 중핵으로 도교 및 불교도 도입해서 대구(對句) 구성의 간결한 문장이다. 인생의 쓴맛을 본 저자가 심각하게 개진한 그의 인생훈은 사람들을 매료하고, 중국에서보다는 오히려 일본에서 선승을 비롯한 많은 독자를 얻어 자주 읽힌 책으로 꼽힌다.

채근담은 그러나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꾸준히 읽혀왔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대만, 중국에서 수양과 처세, 교양의 고전으로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부터는 서구 사회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어로 번역되면서, 동양의 고전적 수양철학과 명상적 사유에 관심을 가진 서구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는 뜻으로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짧은 단문 속에 응축된 삶의 통찰과 고요한 성찰은 서구에서 『채근담』을 ‘동양의 『수상록』’이라 부르기도 할 만큼, 몽테뉴나 파스칼의 잠언적 사유와 나란히 놓이며 읽히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하고 절제된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흐름과도 맞닿아 있으며, 명상이나 자기성찰의 문구로 활용되며 서구의 삶과 정신문화 속에서도 조용한 영향을 이어가고 있다. 고전이 오랜 세월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기존의 『채근담』 완역본들은 번역의 정확성이나 고전 특유의 문체를 살리는 데 집중한 나머지, 현대 독자에게는 다소 어렵고 멀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고 이 책의 편역자인 정영훈과 박승원은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채근담』 번역본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나온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인들이 일본어로 번역한 책이 나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글로 쓰인 출판물은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한국전쟁 이후 교육용으로 번역된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특히 전후 세대는 『채근담』 문장의 뜻은 알지만 공감하거나 마음까지 움직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번역해 준 출판물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때문에 책의 이름이나 유명한 문구 몇 개 정도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 

이 편역본 『채근담 인생수업』은 그런 아쉬움에서 출발했다고 정영훈은 〈엮은이의 말〉에서 출간 취지를 밝힌다. 표제어의 '채근담'은 채소 뿌리를 씹는다는 뜻으로, 검소한 삶 속에서 도(道)를 깨닫고, 고된 일상 속에서 마음을 단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이 책이 삶의 격언집이자 마음의 거울로 읽히는 이유이다. 엮은이에 따르면 이 책은 단순히 고어를 현대어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한문 고전 특유의 어투와 번역투, 형식적인 표현을 과감히 걷어냈다. 또한 별도의 목차 없이 단순 나열식이었던 기존 원문의 구성을, 현대 독자의 삶과 연결되도록 6개의 주제별 장으로 재편했다. 원문에 없던 각 단상의 제목을 덧붙이면서, 고전의 사유가 오늘의 독자에게 감각적으로 와닿게 했다. ‘고전의 품격은 지키되, 문장은 지금의 숨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이 편역서의 의도가 독자들의 일상에 작은 울림이 되기를 기대한다.

엮은이 정영훈은 특히 "이번 편역에서 우리가 공을 들인 부분은 각 문장에 붙인 제목이다. 원문에 없던 제목을 덧붙이면서, 고전의 사유가 오늘의 독자에게 감각적으로 와닿도록 문장형 제목을 새롭게 구성했다. 지나치게 설명적이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짚고, 정서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표현의 리듬과 어감을 조율했다."(p.9)고 밝힌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혼란과 과속의 시대를 살고 있다. 빠르게 결정하고, 끊임없이 선택하며, 언제나 성과를 요구받는 시대다. 그런 현실일수록 삶의 중심을 되묻고, 마음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 책 『채근담 인생수업』은 우리에게 그 조용한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지혜를 건넨다. 지금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마음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 책은 전통이라는 외피로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삶의 핵심을 꿰뚫는 직설적 문장과 단단한 사유로 우리가 오래도록 지키고 싶어 했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 이 책의 단상들은 짧지만 깊은 전복의 힘을 품고 있다. 문장 하나가 우리가 오래도록 믿어온 관성을 뒤흔들고, 익숙했던 기준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며, 평범한 하루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게 만든다. 단 한 문장만 제대로 만나도,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마음속의 망설임과 욕망, 고정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의 결을 다듬고, 삶을 보다 단단하고 유연하게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이 책은 오래된 문장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들이 된다. 짧은 문장 안에 담긴 통찰은 지혜로운 태도와 단단한 시선을 길러주고, 흔들리는 마음을 조용히 다잡아준다.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일상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이보다 더 간결한 조언은 없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욱 깊어지고, 이 책은 그 물음에 담백하고도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필요한 한 문장을 만날 수 있도록 정리했으니 매일 조금씩 꾸준히 읽길 바란다고 세심한 도움말을 엮은이는 남긴다. 머리로 읽기보다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책, 외우는 문장이 아니라 살아가는 언어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고전이 주는 깊이와 실용, 그 둘을 모두 갖춘 책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더없이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6개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원전에는 없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독자들의 이해와 암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1장 〈마음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2장 〈사람과의 관계는 태도에서 갈립니다〉, 3장 〈원칙 있는 삶이 사람의 중심을 세웁니다〉, 4장 〈욕망과 집착을 좇다 보면 결국 길을 잃습니다〉, 5장 〈지나침 없는 조화가 삶의 균형을 만듭니다〉, 6장 〈끝을 알아 내려놓을 때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등이다. 엮은이는 각 장의 표지에 제목과 별도로 핵심 내용을 아울러 '표지말'에 압축했다. 1장의 경우 "인생의 시작은 마음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흐리고 어두운 마음은 세상을 무겁게 짓누르지만, 맑고 환한 마음은 어둠 속에서도 푸른 빛을 선사한다."고 썼다. 마음을 가다듬는 길을 안내하며, 내면의 평화가 삶을 바꾸는 진정한 힘임을 일깨우는 의미다.

또 2장은 "관계의 근본은 태도에 있다. 작은 마음씀씀이와 배려가 깊은 신뢰와 덕을 쌓고, 오해와 분노는 금세 멀어지기 마련이다."는 문장을 기록하고 태도를 통해 인연을 바꾸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전한다. 3장은 '원칙 있는 삶'을 강조한다. "삶의 기둥은 흔들리지 않는 원칙에서 시작된다. 바람 부는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 그것이 곧 인격과 품격을 완성하는 토대이다." 흔들림 없는 삶의 자세를 제시함으로써 진정한 나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설명한다. 

4장에서는 '욕망과 집착'을 버릴 것을 권유한다. "욕망의 바다는 끝없이 넓고 깊다. 그 속에서 우리가 길을 잃지 않으려면 집착을 내려놓고 본질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절제의 길을 말하며, 마음의 자유를 찾는 여정을 돕는다. 5장은 조화와 균형을 역설하는 문장들을 모았다. "모든 것은 조화롭고 균형을 이룰 때 빛난다. 과함도 모자람도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삶은 비로소 제 모습을 찾는다." 조화와 절제를 통해 건강한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치는 문장들이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언제 '놓을 것인가'에 대한 사유의 변이다. "우리는 인생의 끝자락에 가서야 비로소 무엇을 놓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 '내려놓음'은 결코 포기가 아니라 더 깊은 아름다움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성숙한 삶의 완성을 이야기하며, 평온하고 담담한 마무리를 준비할 것을 강조한다.



각 장에서 독자 임의로 한 문장씩 뽑아 여기에 열거한다.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원전의 한자는 일절 다루지 않았다. 또 마음 수양을 하는 분들에게 귀띔하기 위해서다. 

① 가난은 막기 어려워도 걱정은 다스릴 수 있습니다

더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더위를 괴로워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몸은 언제나 시원한 누대 위에 있는 듯 편안할 것입니다. 가난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가난을 걱정하는 마음만 없앴다면 마음은 늘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지내는 듯할 것입니다.(p.50)

② 지나친 호의보다는 작은 정성이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천금을 써도 잠깐의 환심을 사기 어려울 때가 있는가 하면, 한 끼 밥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지나치면 오히려 원한으로 돌아갈 수 있고, 아주 각박하게 대했어도 오히려 고마움으로 남을 때도 있습니다.(p.67)

③ 겉은 투명하되 속은 절제된 태도여야 합니다

마음을 바르게 세우려는 사람의 자세는 하늘처럼 푸르고 해처럼 맑아야 하니, 남들이 알지 못하게 숨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재능은 옥이나 구슬처럼 감춰야 하니, 남들이 쉽게 알아차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p.141) 

④ 즐거움도 과하면 독이 되고, 절제가 나를 지켜줍니

입에 달고 상쾌한 맛은 모두 창자를 상하게 하고 뼈를 썩게 하는 독약이지만, 절반쯤에서 멈추면 탈이 없습니다.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일은 모두 몸을 망치고 덕을 잃게 하는 함정이지만, 절반쯤에서 멈추면 후회가 없습니다.(p.159)



⑤ 세상이 괴로운 게 아니라 마음이 괴로움을 만들 뿐입니다

사람들은 영예와 이익에 얽매여 쉽게 말하곤 합니다. "세상은 티끌 같고, 인생은 괴로움의 바다다." 하지만 구름은 여전히 희고, 산은 푸르며, 냇물은 흐르고, 돌은 그 자리에서 서 있습니다. 꽃은 피고, 새는 지저귀며, 골짜기는 메아리치고, 나무꾼은 콧노래를 부릅니다. 세상이 본래 티끌도 아니고, 바다가 괴로움도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가 제 마음에서 티끌과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입니다.(p.209)

⑥ 괴로움과 즐거움이 어우러져 한 사람의 복을 만듭니다

한 번의 괴로움과 한 번의 즐거움이 서로를 비추고 다듬어주기에, 그 모든 과정을 겪어낸 뒤에 얻는 복이라야 비로소 오래도록 머뭅니다. 한 번의 의심과 한 번의 믿음이 서로를 견주며 균형을 잡아주기에, 그 깊은 되새김 끝에 얻은 지식이라야 비로소 참된 자리에 이릅니다.(p.264)


지은이 : 홍자성(洪自誠, 본명: 홍응명, 자: 자성(自誠), 호: 환초(還初))

명나라 만력제 연간의 문인이다. 본명은 홍응명(洪應明)이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자성(自誠)이란 자(字)로 불렸다. 호는 환초도인(還初道人)이다. 안휘성(顔徽省) 휘주(徽州) 흡현(?縣)의 부유한 상인 가문 출신이며, 그 고장의 저명한 문인 관료인 왕도곤(汪道昆, 1525~1593)의 제자로 추정한다. 대략 1550년 전후한 시기에 출생하여 청장년 때에는 험난한 역경을 두루 겪고 늦은 나이에는 저술에 종사했다. 1602년에는 도사와 고승의 행적 및 명언을 인물 판화와 곁들여 편집한 『선불기종(仙佛奇?)』 4권을 간행했고, 1610년 무렵에는 청언집 『채근담』을 간행했다.


엮은이 : 정영훈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상담과 심리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에 줄곧 출판기획자의 길을 걸어왔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기획하고 있으며,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엮은 책으로는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가족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의 크리톤』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하루에 5번 감사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세네카의 행복론』 『생텍쥐페리, 인생을 쓰다』 등이 있다.


옮긴이 : 박승원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철학과에서 주희(朱熹)에 관한 연구로 문학석사, 정이(程?)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명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경인교육대학교, 대전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등에 출강했으며, 재단법인 성균관 학술교육팀장, 다산학술문화재단 정본여유당전서 출간팀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심경 철학 사전》(공저), 《논리학》(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명심보감》, 《채근담》, 《류성룡의 말》, 《혼자가 되면 보이는 것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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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걸
해리엇 워커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시멜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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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먼저 이 책 『뉴 걸』의 저자 해리엇 워커는 10년 넘게 신문 기자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는, 〈더 타임스(The Times)〉의 현직 패션 에디터다. 이 소설 작품은 저자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패션 업계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 수작(秀作)으로 꼽힌다. 작중 마고 존스가 저자의 대역인 소설 작품인 셈이다. 소설 속 마고는 글로벌 패션 매거진 〈오트〉의 잘나가는 패션 에디터다. 소설에서 패션업계에서 10년 넘게 인정받는 에디터로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온 마고가 결혼 후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매우 세심하게 계획된 듯한 그녀의 삶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대상이었다. 성공적인 커리어, 다정한 남편 닉,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집, 세련된 취향과 패션 센스까지 그녀가 가진 걸 부러워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출산 휴가에 들어가기 전 자신을 대신할 후임을 뽑을 기회가 생기자 마고는 자신에게 가장 위협이 되지 않을 만만해 보이는 존재, 이전에 자신과 약간의 친분을 쌓았던 '매기'를 떠올린다. 출산을 위해 장기간 자리를 비울 때 혹시라도 새로운 사원이 자신의 자리를 꿰찰지도 모른다는 불안 심리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표제어 '뉴 걸'은 신입사원, 혹은 계약직 사원을 말한다. 


"나는 편집장 모프에게 지원자 둘이 누구인지 대충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주 잘 알았다. 훗날 내가 복직해서 아기 맡길 사람을 알아볼 때와 같은 정성으로 내 업무를 대신할 사람을 물색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일이 아기처럼 배 속에서 태동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틀림없이 내 일부였다.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고 가끔은 화도 치밀었지만, 재미있고 진행 속도가 빨랐다. 나는 내 일을 사랑했다. 다만 능력 있는 자만이 즐길 수 있는 일이었다. 모프의 명령을 잘 수행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1년이 지나면 꺼져 줄 여자를 찾아야 해."(p.24)


선망의 대상이었던 마고의 배려로 뜻밖의 좋은 기회를 잡게 된 뉴 걸 매기. 젊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세울 만한 학력도, 경력도 없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였던 매기는 객관적으로 볼 때 자신이 〈오트〉의 책임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년간의 임시 계약직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이 꿈꾸던, 게다가 화려한 삶까지 덤으로 살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녀는 어떻게든 마고의 빈 자리를 채우며 인정받으려고 노력하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뛰어난 능력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소설은 이처럼 각자의 입장을 가진 두 여성의 시각이 교차되며 시작, 전개된다. 같은 상황에 대해 서로가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는 두 여성의 감정 변화가 불러오는 팽팽한 긴장감은, 시간이 가면서 세 명의 여성의 시선으로 합쳐지고, 베일에 싸여 있던 과거의 사연까지 드러나며 읽는 긴장감과 재미를 선사한다. 

이 작품은 저자가 등장인물의 행동과 태도는 물론 그의 내면세계까지도 분석 설명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된다. 완벽한 듯 보이지만 불안정한 내적 결핍을 갖고 있는 인물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사건 전개, 읽을수록 빠져드는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잘 짜여져 유기적 구성으로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저자 해리엇 워커는 작품을 통해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심리와 내적 갈등, 즉 ‘여성의 적은 과연 진짜 여성일까? 동료과 적, 친구와 라이벌은 정말 한 끗 차이일까? 삶에서 결혼과 출산, 커리어와 육아는 양립할 수 없는 걸까?’와 같은 사회적 문제와 인간 관계에 대해 현실과 부딪치며 갈등하고 흔들리는 여성들의 심리를 파고든다. 심리적 변화를 마고라는 여성을 캐릭터를 창조한다. 저자가 창조한 마고는 여성 독자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법한 고민들을 살아있는 생생하게 엮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상류층 여성이지만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지위를 향한 끝없는 욕망이 내면적 심리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밀도 높게 그려낸다. 당연하게도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나아가 오늘날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여성 문제를 작품 속에 형상화시킴으로써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육아 휴직에 들어간 마고는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이라 믿었던 20년 지기 친구의 아이가 돌연 사고로 죽게 되면서 오랜 우정에 금이 가자, 어쩐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의심의 소용돌이 속에 그녀를 몰아넣고, 자꾸만 밀려드는 부정적인 생각은 편집증적으로 바뀌어간다. 게다가 눈이 돌아가게 휙휙 달라지는 패션 업계에서 자신의 대타일 뿐인 매기가 편집장의 인정을 받으며 잘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자, 자신만 도태되는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자신보다 더 젊고 빛나는 매기가 점점 신경 쓰이는 마고. 시간이 갈수록 화려한 패션쇼, 글로벌 여행, 독점적인 특권을 누리는 마고의 자리가 탐나는 매기. 급기야 매기는 마고 남편의 친구와 연애를 시작하고 점차 마고의 일상으로 깊게 파고든다.

때마침 마고의 완벽함을 조롱이라도 하듯, 그녀가 수년 동안 숨겨온 과거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는 사악한 온라인 트롤(북유럽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까지 나타난다. “나는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혹시 이 모든 것이 다 매기의 짓일까? 매기는 마고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매기가 품은 새로운 야망과 용감한 열정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순진할까? 마고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을 때, 매기가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과연 그녀는 믿어도 되는 순진한 동료일까, 자신의 삶을 빼앗으러 온 적일까?

이 책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사무실을 배경으로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고충, 직장에서의 은밀한 경쟁과 질투, 친구 사이의 잘못된 우정이 불러온 갈등 등 복잡 미묘한 여성 내면의 변화를 매우 섬세하게 포착한 심리 스릴러로, 유행과 가십에 민감한 패션 업계의 볼거리까지 더해져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제로도 읽는 내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떠올리게 하는 매력적인 책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일상의 틈에서 미세하게 벌어진 불협화음을 포착하여 그 안에 감춰진 인간의 심리를 현실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파헤친 소설 『뉴 걸』. 당신의 일을 대신하러 온 누군가가 당신의 자리는 물론 당신의 인생까지 침범하려 한다면? 깊었던 우정이 한 순간에 금이 가고, 믿었던 동료가 내 뒷담화를 하고 뒤통수를 치는 배신을 한다면?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내 비밀을 온라인상에서 노출시키고 은밀히 폭로하려 한다면? 읽다보면 누구라도 내 문제가 아니라고 방심할 수 없을 것이다.

패션 잡지사에서는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새로운 스타일이 늘 하나의 사건이라고 저자는 지문을 통해 서술한다. 애초에 스타일을 뜯어보고 칭찬하기 위해 모인 여자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리우드 배우 뺨치는 변신은 그 자체로 축제였다. 매기의 헤어스타일이 변화에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물론 두 여자의 심리적 변화를 묘사한다. 

"나는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SNS에서 마고의 과거를 폭로하겠다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편집증 증세까지 보이는 마고, 마고 남편의 친구와 연애까지 시작하며 마고의 일상으로 깊이 파고드는 매기.⠀매기의 주위를 맴돌다⠀의도적으로 접근해 매기와 친구가 되는 위니. 세 여성의 시선이 교차되며 펼쳐지고⠀과거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면서⠀점차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어 간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서점 분류상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답게 각 인물들 시점에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가까운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하고, 기쁜 동시에 불안한 모순적이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곁들여진다. 독자들은 읽는 내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인공들과 같이 내달릴 수밖에 없다. 육아, 일, 친구, 남편과의 관계까지, 소설 전반적으로 한두 가지 비극적이고 비범한 사건들을 제외하면 우리 모두가 겪는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과 감정들이어서 더 공감이 된다. 

후반부에 반전이 시작된다. 결말까지는 독자들의 심리도 꽤 감정적으로 격해질 수도 있다. 스릴러 장르 소설에서 보이는 비극적 결말보다는 오히려 등장 인물들이 한층 성장하면서 심리적 불안정, 상대에 이해와 배려를 깨닫게 되는 훈훈한 느낌을 주기에 더욱 문학적이다.


"저 사진은 분명히 지웠다. 닉이 삭제했다. 나는 여전히 어지러운 머리로 이 사진이 여기 있는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려 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 컴퓨터를 쓰는 사람은 닉뿐이고, 지난 몇 주 동안 나 말고 위층에 올라온 사람 역시 닉뿐이었다. 매기만 제외하고. 매기는 오후 내내 혼자 우리 집에 있었고, 특히 저녁에 라일라를 데려온 뒤에 위층에 올라왔다. 내가 위니에게 메시지를 받은 직후에. 나는 위니에게 사진을 받기 직전의 몇 분을 떠올렸다. 매기는 필요 이상으로 위층에 오래 있었다. 분명 이건 매기의 짓이다. 내 일자리를 빼앗고, 내 친구들을 빼앗고, 내 삶을 빼앗은 매기가 이제는 내 온전한 정신까지 빼앗으려 하고 있다."(p.219-220)


저자 : 해리엇 워커(Harriet Walker)


10년 이상 신문 기자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는 <더 타임스(The Times)>의 패션 에디터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태어나 셰필드에서 자란 그녀는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영어를 공부했으며, <보그(Vogue)>, <엘르(Elle)>,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등에 글을 기고해왔다. 《뉴 걸》은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패션 업계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 그녀의 강렬한 첫 소설 데뷔작으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현재 남편과 딸과 함께 런던 남부에 살고 있다.


역자 : 노진선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소설 창작 과정을 공부했다. 잡지사 기자 생활을 거쳐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메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라이프 임파서블》,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 《리디머》, 할런 코벤의 《아이 윌 파인드 유》, 샐리 페이지의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니타 프로스의 《메이드》, 캐서린 아이작의 《유 미 에브리싱》, 엘리자버트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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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맥공주
    이지연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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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의 황량한 장르 소설 분야에서 누구보다 먼저 장르 소설 작가를 발굴해 100만 부 판매를 시작으로, 10여년 간 장르 소설을 개척해 기반 위에 올려놓고 2024년 홀연히 지구별을 떠난 작가 이지연. 그의 열정과 혼을 실어 직접 쓴 단편소설로 그가 몸담은 출판사에서 유작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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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맥공주
    이지연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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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는 학교 다닐 때까지는 꽤 책을 읽었지만 사회 생활하면서 책과 멀어졌다. 흔히 핑계로 내세우는 "시간이 없어서"였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한참 책을 좋아할 때 읽었던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이 대부분이고 가끔은 에세이도 읽었다. 어쩌다 한 번씩 시집도 사서 읽기도 했다. 소설도 분야별(장르별)로도 편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나이 때는 사실 러브 스토리라는 연애 소설 혹은 로맨스 소설을 주로 읽었다. 그러나 SF판타지라는 장르로 분류되는 소설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 유명한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내용이 공상(空想)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인터넷이 보편화된 뉴 밀레니엄 들어서는 그야말로 작가 지망생도 인쇄된 책을 쓰는 대신 인터넷에 소설을 발표하는 일이 많았을 무렵, SF 소설이 대세인 듯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 젊은 작가들이 주로 많이 쓴다는 말도 매스콤을 통해 들은 적도 있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 소설의 대부분은 이른바 '장르 소설'이 대세를 이뤘다고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 근무가 실시되면서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독자로서는 이때도 대부분 예전의 취향대로 선택했다. 그러나 온라인 서점을 자주 들러 책을 구매하곤 했는데 놀랍게도 장르소설은 이미 베스트셀러 순위에 늘 끼어 있었다. 몇 권을 사서 읽은 적도 있다. 그러나 독자가 읽은 소설에는 여전히 쉽게 공감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팬데믹 상황이라 일본이 강세를 보인다는 추리소설이 우리 국내 작가들도 적잖게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온라인 서점에서는 추리, 미스터리, 심리스릴러, 판타지, 과학, 공상 등을 거의 '장르소설'로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무렵 김초엽 작가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으로 많은 상을 수상했다고 알려졌다. 누군가가 김초엽 작가의 작품을 평해 놓은 기사도 읽었다. “김초엽은 심도 깊은 질문을 제시하는데 능숙하여,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다다르는 정교한 퍼즐을 과학과 인문학적 기초 위에 구축한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여성들은 역사에서 잊혀진 여성을 대표한다. 우리는 그 여성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이 윤리적 도착 지점에 다다르는 아름다운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예전에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별이 없을 때는 이런 평이 나오지 않았을 터다.


    독자가 뒤늦게 파악한 김초엽 작가는 과학도였다. 포항공과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인간은 사실 자연 세계와 동떨어진 채 인간만의 세계에서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인간에 대해 정의할 때 우리는 그동안 인간에 관해서만 이야기했죠. 그게 철학이 되고 사회과학이 되었는데, 그것만으로 우리 삶과 인간 자체에 관해 설명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자연과 공간, 인공물, 기술, 과학 같은, 인간이 아닌 비인간적인 것들도 사회의 핵심적인 구성원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배경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김초엽 작가는 어느 책을 읽으면서 SF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관점을 내재하고 있는 장르라고 말했다고 〈밀리의 서재〉는 밝혔다. 김초엽 작가는 SF는 인간도 중요하게 보지만, 인간을 둘러싼 세계, 구조,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학기술 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인간과 사물을 동등하게 다루는 장르라는 말했다는 것.

    또 "SF는 항상 우리가 지구환경, 우주, 우리 몸이 기술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유전적 공학을 통해 어떤 괴물들이 만들어졌는지를 다뤄왔다. 그래서 SF는 '얽힘'을 다루기 좋은 장르다. SF를 통해서 현재의 얽힘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을 한다.

    그리고 독자가 가장 공감 가는 인터뷰 내용이 마지막에 나온다. "SF에 나오는 과학이 진짜 과학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오해다. SF 작가들이 흔히 쓰는 기법의 하나가 진짜 과학처럼 지어내는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들을 써놓고 진짜처럼 설명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예 없는 엉터리도 많다. 과학과 SF가 연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실제 과학보다 엉터리 과학이 범위가 좀 더 넓다. 과학을 잘 아는 것도 물론 좋지만, SF 작품을 많이 읽는 게 SF를 쓰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일상적인 것만 알아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독자와 작가 지망생들에게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밀리의 서재〉는 SF를 순수 문학으로부터 단절시켜온 벽이 허물어졌고, 순수문학 / 장르문학이라는 상투적인 구분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변화를 이끄는 주인공은 김초엽 작가라고 단언한다.


    독자가 이 책 『산맥공주』를 서평하면서 갑자기 김초엽 작가의 장르소설, SF 소설에 관한 최근 강연 내용을 여기에 적은 이유는 '장르 소설'이라면 빠질 수 없는 저자 이지연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이지연은 특유의 섬세한 필치와 깊이 있는 상상력, 긴 시간 쌓아온 장르 문학에 관한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가였다고 이 책 뒷 부분에서 출판사 측은 말하고 있다. 김준혁 황금가지 편집주간은 「장르라는 텃밭을 일구려 한 지구별 여행자」로 저자와의 인연을 회고한다. 김 주간은 자신이 출판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지연 저자가 직장 선배였고, 퍽이나 힘든 사수였다고 말한다. 김 주간에 따르면 이지연 작가는 그야말로 황무지와 같은 한국 장르 텃밭에 수많은 씨를 뿌려온 장인이었다. 1997년 PC 통신 하이텔에서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를 세상에 선보인 게 그 첫 시작이었다. 지금이야 서점에서 SF나 추리,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출판소설을 만날 수 있지만, 1997년 당시에는 신춘문예나 문예지로 등단한 작가 외에는 신인 작가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서점 매대에 비치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판타지라는 장르로 구분된 소설이라면 당연하듯 도서대여점으로 직행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영도 작가의 역량을 일찌감치 알아본 그녀는, 12권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장편소설을 자신의 직을 걸고 출판하고 홍보에 물두했다. 한 편집자의 열정적 의지는 회사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영도 작가 인터뷰와 소개가 이례적으로 주요 일간지에 사진과 함께 동시에 담겼고, 당시 신문지면에선 낯선 광경인 판타지 소설 광고가 연거푸 실렸다. 책은 100만 부가 훌쩍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그야말로 한국 판타지 문학의 전설이 되었다. 

    그녀는 기세를 몰아 당시 막 꽃피우던 여러 판다지 소설가들을 끊임없이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선뵈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황금가지가 선두에 서서 물꼬를 터뜨리자 다른 출판사도 경쟁적으로 작가 물색에 참여하였다. 신춘문예에선 장르문학 부문이 도입되기까지 했다. 서점에는 장르 분야의 매대가 비치되었으며, 각자의 분야에서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는 작가들이 나타났다. 이런 대중적 흥행은 현재의 웹소설 플랫폼이 자리잡는 기반이 되었다.(p.308~309)



    1997~2007년 국내 창작물 외에도 해외의 고전 장르 소설을 적극적으로 찾아 정식 출판을 밀어부쳐 『듄』, 『반지의 제왕』, 『어스시의 마법사』, 『스타십 트루퍼스』, 〈러브 크래프트 전집〉, 〈링 시리즈〉, 〈해인 시리즈〉 등 SF와 판타지, 호러 소설 기획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김 주간은 말한다. 이후 자신만의 글을 쓰겠다고 편집 책임자 자리를 물려주고 소설도 쓰고, 번역과 평론가로서 활동하고 황금가지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인연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리고 이지연 작가는 2024년 8월, 지구별 여행을 마쳤다. 향년 52세. 출판사 황금가지는 그녀의 공로에 보답하는 의미로 이 책 『산맥공주』를 출판했다. 

    이 단편집은 저자가 생전에 애정을 가지고 다듬었던 미발표작과 기발표작을 한데 엮은 것으로, 「생일을 축하」, 「눈 속의 요정」 등 타자와의 관계를 탐구하는 초기작들에서부터 「산맥공주」, 「역표절자」 등 작가의 사변적 깊이에 더해 사건의 플롯을 능숙하게 다루는 변화된 스타일을 선보인 최근작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저자와 오랜 지기였던 소설가 송경아 씨가 직접 여덟 작품을 엮었으며, 저자의 가족 및 지인, 그리고 작가들의 1주기 추모글이 전자책으로만 별도 수록되어 발매될 예정이다.

    표제어로 선정된 「산맥공주」는 고아로 자란 보르후가 한 여인과 결혼하지만, 곧 아내가 죽자 깊은 슬픔에 잠긴다. 무당은 '죽은 아내의 옷에서 나온 씨앗을 심고 잘 보살피면 왕이 될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 일러주자, 보르후는 그 말대로 씨앗을 심고 정성껏 돌보아 출룬체첵이라는 아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 아이는 비범한 괴력을 가진 채 빠르게 성장하며 세상을 뒤흔들게 된다.

    「눈 속의 요정」은 폭설로 마비된 도시에서 발견한 작은 요정이다. 인형처럼 생겼지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근처 편의점으로 급히 요정을 데려가지만, 요정을 본 사람들로 곧 소동이 일어난다. 과연 요정을 살려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공녀님은 기사가 되고 싶어서」에서는 황위 후계자의 친우를 선발하는 과정에 미드라코 가문의 17공녀 엘이 지원한다. 하지만 경쟁자인 데레의 예상치 못한 실력 발휘와 자신의 성적 하락으로 혼란을 겪게 된다. 더군다나 데레의 가문에 관련된 숨겨진 비밀까지 알게 되자, 엘은 복잡한 심경에 빠지고 마는데··· 「역표절자들」에서는 자신이 남긴 미스터리한 메모가 다이어리에 남아 있다. 메모에는 특정 기억이 삭제될 것이며, 친구나 지인의 모습으로 나타날 누군가를 경계하고 어떤 행동도 취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사라진 기억을 되짚는 와중에, 정말로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난다.


    독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작품은 「만찬: 콴 행성 라마 지역 상층부, 우위디야마구」이다. 주인공은 세즈.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콴 행성이고, 콴 행성에 거주한 이들은 조금 특이한 식성을 가지고 있다. 죽은 사람을 먹는다. 세즈는 이런 식성에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 반면 세즈의 친구인 맥다이는 별로 거리낌이 없다. 인간이 죽은 후 음식의 형태로 재생되어 다른 인간들에게 제공된다. 이 작품은 인간이 항상 이야기하는 '존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은 존엄한가? 모든 생명은 살기 위해 태어나고, 죽기 전까지는 생명 운동을 지속한다. 인간만 존엄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맥다이가 세즈에게 던진 말이 이 문제를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사람에게 존엄성 같은 건 없어. 살아가는 거지. 그뿐이야."(p.251)

    지구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타인이 먹는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죽음 이후 타인의 음식으로 재활용된다면 존엄성을 해치는 것인가? 지구에서는 예부터 식량 부족으로 전쟁을 했다. 전쟁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먹을 것이 부족해서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얻은 존엄성이라면 동물을 죽여 먹이로 사는 인간은? 끔찍한 상상을 해야 하지만 흥미로웠다. 


    「진화 혁명: 디벤둑 상급지식체화소의 강의 소묘」에는 '신인류'가 등장한다. 최근 출판된 베르베르의 작품 『키메라의 땅』에도 신인류가 등장한다. 구인류와 신체 구성요소가 다르며 정신적으로 더 완전하다. "의식과 유전자가 의식 우위로 통합을 이루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100% 이성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없다. 가정적이지만, 이들은 '진화했다'라고 표현한다. 이성이 감정을 완전히 조절하는 것, 이걸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구인류에 대해 배우던 카인은 교수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감정을 이성 아래 복속시키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p.215)


    저자 : 이지연


    책과 동물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가 책과 동물과 한문과 과학을 좋아하는 청소년기를 거쳐 더 더 많은 것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세상에 좋은 것을 한 톨만큼씩 더해 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당 기간 단행본 편집자 및 번역자로 일해 왔으며, 옮긴 책으로 어슐러 K. 르 귄의 「어스시 연대기 6부작」을 비롯하여 『무한의 경계』,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1인분 프렌치 요리』, 『빈티』 외 다수가 있다. 2024년 8월, 향년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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