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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키메라의 땅』의 표제어 '키메라'는 고대 그리스 전설 속 괴물의 이름이다. 사자 머리에 염소 몸통, 뱀 꼬리를 가진 괴물을 말한다. 키메라는 종(種)의 경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악의 힘'을 가진 불길한 동물로 그려진다. 현대에는 한 개체에 유전자형 이 다른 조직이 서로 겹쳐 있는 유전현상 또는 서로 다른 종끼리의 결합으로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는 유전학적인 기술을 의미한다. 세포융합 기술을 이용하여 감자와 토마토를 접목시켜 만든 포마토도 키메라로 볼 수 있고, 인위적으로 동물도 키메라를 만들 수 있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포유류의 2~8세포기의 배 2개를 하나로 합친 배를 만들면 정상 크기의 개체가 된다. 이를테면 검은털 마우스의 초기 배와 하얀털 마우스의 초기 배를 융합하여 대리모의 자궁에 옮겨 발생을 진행시키면 검은색과 흰색 털이 얼룩진 키메라 마우스가 된다. 배를 융합하는 방법 외에 마우스의 배가 속이 빈 채 부풀어 오르는 '배반포'라는 시기에 다른 배의 '배성 간세포 (ES 세포)'를 유리관으로 주입하는 식의 방법도 있다. 형성된 키메라마우스는 배반포의 세포에 유래하는 조직과 ES 세포에 유래하는 조직을 모두 가지게 된다. 같은 종 생물끼리의 키메라만이 아니라 다른 종끼리의 키메라도 만들 수 있는데, 1984년에는 양과 염소의 태아 세포를 융합시킨 최초의 키메라 동물이 나왔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는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에서 인간의 배아줄기세포 를 쥐에 이식한 '키메라 쥐'를 탄생시켰다고 하여 생명윤리 논란을 가중시켰다. 당시 윤리학계와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생명공학계 안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미래 소설 『키메라의 땅』이 출간됐다. 이 작품은 1, 2권 한 세트로, 김희진의 번역으로 출판사 〈열린책들〉이 출간했다. 저자 베르베르는 "『키메라의 땅』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과학 저널리스트였던 시절 집필했던 혼종에 대한 보도 기사에서였다."고 작품 뒷 부분에서 밝히고 있다.(2권, p.319)

베르베르는 마르지 않는 과학적 상상력으로 도발적인 미래를 예언하는,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운다. 이 작품은 파멸적인 제3차 세계대전(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그렇게 걱정했던 인류의 멸종과 모든 지구 문명이 완전히 폐허화되고 극소수 인간만 생존한다. 지구에는 인간과 동물의 혼종 신인류, 「에어리얼」, 「디거」, 「노틱」이 탄생한다. 배타적인 구인류와 탁월한 적응력을 지닌 신인류 3종족의 갈등은 불보듯 뻔하다. 더욱이 뒤늦게 등장하는 또 다른 키메라까지 속속 나타난다. 멸망한 지구의 새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이들은 어떤 운명을 개척해 나갈 것인가가 이 책의 줄거리가 되고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교훈이다.
저자는 이 작품의 맨 앞에 〈일러두기〉에서 "이 이야기는 이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는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5년 후에 일어난다."는 섬찟한 경고문으로부터 매우 어두운 분위기가 감돈다. 베르베르는 '5년 후에 인류가 멸망'하는 핵전쟁이 발발한다는 조건 아래, 독자들에게는 복잡한 심정을 드리우게 한다. 어쩌면 '5년'이란 기간보다는 '핵전쟁'이 더 무게 중심이 실린 작품이리란 추측이 가능하다. 핵전쟁으로 인류와 문명이 모두 사라진다는 가정은 그 시기가 내일이든, 5년 후든 100년 후든 아무 상관이 없다. 핵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이라는 전제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이 소설의 예언이 들어맞게 될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사라진 혼종 인류(신인류)의 세상이 될 태니까 말이다.
혹시 살아남은 극소의 인간은 공포에 질린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쉽게 예측되는 일이다. 베르베르의 이번 책은 핵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조건을 앞세운 작품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이 책은 인류가 스스로의 과오로 인해 자멸하다시피 한 지구 위에, 유전자 실험의 결과물인 키메라들이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역사, 철학, 생물학, 유전공학, 그리고 짜릿한 모험이 한데 얽힌 『키메라의 땅』은, 인류의 생존 위기에 대비해 탁월한 적응력의 혼종 인류를 만들어 내려는 진화 생물학자 '알리스 카메러'의 위태로운 연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가 우여곡절 끝에 탄생시킨 키메라 3종족이 지구상에서 구인류와 연대하고 또 갈등하며 겪는 적응기가 웅장한 스케일로 펼쳐진다.

진화 생물학자 알리스는 극비리에 한 가지 연구를 진행한다. 그 정체는 바로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조합해 키메라 신인류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한 그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인류의 가능성이 이어지도록 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연구가 탄로 나며 그는 반대론자들에게 극심한 위협을 받게 되고, 그 연구의 든든한 지원자인 프랑스 연구부 장관 뱅자맹 웰스의 도움으로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피신하여 연구를 이어 간다.
베르베르는 그의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인용한다. 소설에서 그는 자신의 창작의 원천이라는 저서 『상대적이며~ 』를 자주 인용한다. 인용 수준이 아니라 작품 구상에도 사용하고, 작품 설명(과학적 인과 관계)에도 톡톡히 덕을 본다. 이 소설 작품 『키메라의 땅』에서는 3장에서 처음 이용한다. '대립'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자연은 제 모든 창조물들 간에 대립을 일으켜 진화를 강제한다. 창조물 하나가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면, 자연은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 약간 다른 모습을 취하게 한다. 이 새로운 방식으로는 더 잘 적응할지 보기 위해서다."(1권, p.19)
저자는 이와 함께 "이 과정에는 논리도 윤리도 없다. 자연은 옮고 그름을 따짐 없이 제 창조물들의 존재에 덧붙임을 한다. 그 후 대양과 사막과 평원과 정글의 무성함 속에서 저희들끼리의 투쟁 혹은 협력 전략을 택해 가능한 오래 살아나목 번성하는 것은 그들 몫이라고 덧붙인다. 자연과학에 우둔한 독자는 다윈의 진화론 가운데 핵심어 '자연선택'과 '생물 다양성'이라는 세밀 분류에 따른 것 같다고 느낀다.

책의 발단 부분에서 디에고 마르티네스 기자가 특종 보도한 '변신 프로젝트'라는 실체를 해명하는 뱅자맹 웰스 연구부 장관이 등장한다. "부인해 봐야 아무 소용 없겠지요. 변신 프로젝트는 실제 존재합니다. 디에고 마르티네스의 기사 내용 역시 사실입니다." 웅성거리는 기자들을 사이에서 뱅자맹은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하게 해둘 점이 있습니다. 변신은··· 프로젝트일 뿐입니다. 그저 프로젝트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점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싶었던 겁니다. 아직 마르티네스 기자의 기사를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이 자리에 담당자를 소개합니다. 변신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주도한 진화 생물학 교수 알리스 카메러는 최신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세 가지 이종으로 다양화된 새로운 인류를 개발하려 합니다. 공중을 나는 인간, 땅을 파고들어 가는 인간, 헤엄치는 인간이죠."
뱅자맹은 비밀 프로젝트가 폭로된 이유가 일부 악의적인 음모론 블로거들에 의한 확산, 그리고 조직적으로 벌인 치밀하고 흉흉한 중상모략과 비방, 야당이 가세해 한층 격화되었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밝혀진 바에야 정확하게 해명하고 설명하려고 한다고 기자들을 향해 알리스를 소개한다. 길고 검은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고 커다란 초록색 눈을 한 젊은 여성이 첫 줄의 좌석에서 일어나 연단에 오라 강대 앞에 선다. 오늘 이 자리에 그는 수수한 흰 옷차림을 했다. 흰 재킷, 흰 셔츠, 휜 치마. 알리스가 혼잣말을 하듯 좌중 앞에 선다. "이들은 하이에나야. 내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딱 맞는 말들을 찾아야 해."
알리스는 진화 생물학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구체적 사례로써 설명해 나간다. 그리고 그의 긴 '프로젝트' 설명 겸 해명이 이뤄진다.
"저는 생물 다양성이 대자연의 현명함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믿습니다. 한 동물은 여러 다른 형태를 늘려 감으로써 저를 둘러싼 환경 변화에 적응합니다. 한 동물은 여러 다른 형태를 늘려 감으로써 저를 둘러싼 환경 변화에 적응합니다. 개미를 예로 들어 봅시다. 개밋과에는 1만 2천 개의 종이 있습니다. 오늘날 알려진 가장 큰 개미의 몸집은 가장 작은 개미의 60배에 달하죠. 인간으로 치자면 키가 1미터인 사람이 있고 60미터에 달하는 사람도 있는 셈입니다."(1권, p.24)

기자 회견 후 연구소가 습격 당하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뱅자맹은 알리스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손을 써주었다. 프랑스령 기아나로 가서 우주 비행사 교육을 받고 유인 우주 비행 프로그램에 참가할 자격을 석 달 만에 배웠다. 알리스는 우주 정거장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계속하려 한다. 알리스는 외젠, 마리앙투아네트, 조제핀 생각을 한다. 그들은 태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희생당했어. 그가 뭐라고 불렸지? 그래, 내 '시험작들'이라고 했지. 가엾은 것들, 무덤조차 갖지 못했지. 그들은 과학의 순교자야. 내 실험의 진전을 위해 제 목숨을 대가로 치른 첫 존재들이야.
알리스는 어렸을 적 배의 통증을 느끼고 찾은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자궁 내막증'이라는 염증성 여성 질환이며, 전 세계 여성 10퍼센트에게 발생하는 흔한 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후 알리스는 과학에 몰두했고 가능성 있는 설명을 찾아냈다.
"한 이론에 따르면 자궁 내막증을 일으키는 것은 유전자 속 특정 배열, 남아 있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DNA라고 했다. 먼 옛날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서로 짝을 짓고, 사랑을 나눠 반은 사피엔스, 반은 네안데르탈인인 혼종 자식을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 두 종의 결합으로 자손을 나길 수 없는 새로운 시기가 왔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전히 남아 있으니,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 코드에는 평균적으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유전자 1.8퍼센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1권, p.62)
우주 정거장에 로켓으로 날아가던 중 알리스의 머릿속에는 온통 '혼종' 생각뿐이다. 이제 목표 지점까지 23시간 남았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이뤄 낸 성과들을 되돌아본다. 뱅자맹 웰스 장관의 지원 덕분에 비밀리에 원숭이 혼종 셋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망할 놈의 기자가 내 연구실을 파헤치기 전까지 말이지." 그리고 지금은 유배 중이다. 태어난 행성으로부터의 유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