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 짓눌린 영혼에게 길은 남아있는가
헤르만 헤세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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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이 책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의 고전 명작으로 손꼽히는 성장소설이다. 한 재능 있는 소년, 한스를 통해 가정과 사회의 강요된 기대 속에서 점차 무너져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주인공 한스가 모범생이라는 이름 아래 짓눌린 감정을 스스로 억누른 채 제도권 교육의 틀 속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모습을 그려내 당시 고정화된 독일 사회와 교육에 메스를 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스는 제도권 틀 속에서 가정과 사회에서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당시 독일 사회와 교육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저자인 헤르만 헤세가 지방 소도시에서 학교 다닐 때 겪었던 부조리한 사회나 제도를 들춰내 메스를 가한 비판적 소설이기도 하다. 신학교에 입학한 한스 기벤라트는 학문의 길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자유를 포기하고, 어른들이 원하는 삶을 살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결국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간다.

이야기는 한스의 열정과 희망으로 시작되지만, 차가운 현실은 그를 순식간에 삼켜버린다. 한때는 강가에서 낚시를 하며 자유를 만끽하던 소년이 어느새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 속에 갇히고, 오직 성적과 학문적 성취만이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세계에서 점차 길을 잃는다. 친구 하일너와의 관계는 유일한 위안이 되지만, 그마저도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 앞에서 끝내 멀어지고 만다. 남겨진 것은 피로와 허무, 그리고 조용한 절망뿐이다.


가 수록되어 독자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꾸몄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소년이 책상 앞에서 몰두하는 모습, 신학교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의 긴장감, 낚싯대를 드리우며 마지막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 마울브론 신학교의 차가운 풍경, 호숫가에서 나눈 친구와의 대화, 교실에서 터져버린 감정, 착즙기를 돌리며 피어오른 감각, 그리고 공방에서 홀로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까지···. 섬세하게 그려진 장면들은 한스의 성장과 붕괴, 그리고 그의 마지막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 소년의 모습은 그가 끝내 도달한 곳이 어디인지 묻게 만든다. 출판사 측은 이 작품은 단순한 성장 소설이 아니러고 설명한다. 이것은 사라지는 한 인간에 대한 기록이며, 우리가 쉽게 놓쳐버리는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 분석은 헤르만 헤세가 유대인 탄압을 피해 독일에서 스위스로 망명한 사실에서 추론해 낸 것으로 독자는 이해하고 있다. 당시 독일은 과학기술의 최고 위치에 있어 이른바 '독일 전성시대'를 열려는 시기였다. 그러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모두 패함으로써 세계 패권은 미국에게 넘겨주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아인슈타인 등 많은 독일 학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 등으로 망명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때 망명한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는 공통점에서도 일치한다. 세상이 기대하는 대로 살아가던 한 소년이 끝내 무너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이 고전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라면 한스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또 다른 한스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성찰해 볼 때다. 

이 소설은 헤르만 헤세가 신학교에 들어가 교육받았은 경험을 통해 당시 받았던 내면의 상처를 바탕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촉망받는 인재로 아버지의 기대와 지역 어른들의 기대주로 촉망받았고, 아버지의 뜻대로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이후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헤르만 헤세는 총명하고 성실한 학생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삶은 ‘재능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삶’이었다. 작중 주인공 한스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재현해 낸다고 풀이된다. 당시 유럽 사회는 어린이들과 청소년 교육에 구시대적 관습을 따랐으며, 종교와 정형화된 사회 구조로 재능 있는 청소년들에 대한 기대는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존 사회에 결국 융화되지 못하고 내면은 점차 피폐해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해 경쟁 중심의 교육, 폐쇄적인 학교 시스템, 자율성과 감정이 억압된 청소년기를 신랄하게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한스는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삶의 기쁨을 잃어가고, 낚싯대를 드리우며 자연과 교감하던 시절의 행복했던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신학교라는 거대한 체제 속에서 소년은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 하일너와의 관계마저 사회의 잣대에 의해 멀어진다. 결국 한스는 세상의 ‘기대에 부응한 죄’로 서서히 무너져간다.

이 때문에 출판사 측에서는 이 작품이 단지 성장의 실패를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는 제도적 폭력 앞에 무력하게 희생되는 영혼에 대한 애도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도 우리 삶과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유교적 폐습을 발전적 변화로 풀어내지 못하고 답습한 결과 나라를 빼앗기는 설움을 당했다고 풀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유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유교의 악습이나 변화되는 사회에 맞지 않는 구습을 떨쳐내지 못한 조선과 구한말 우리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렇다면 산업화와 민주화된 사회에서 경제 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과연 아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있는가? 진정으로 아이의 삶을 위한 교육이 존재하는가?를 되돌아볼 때라고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느끼고 있다. 왜 세대 갈등이 사회의 문제로 떠올랐는가에 대해 기성 세대들의 반성이 필요한 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작품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의 이야기는 지나간 시절의 것이 아니다. 한스의 고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으며, 여전히 누군가는 그 ‘기대’ 속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판단하고 있다. 이 책은 한 소년이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하며, 동시에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라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거에 하지 못햇다면 과연 지금은 할 수 있을까? 중년의 나이이자 기성 세대인 독자가 청소년 성장소설로 알려진 이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느낀 감정이다. 

사실 전쟁으로 유럽 사회를 손아귀에 넣으려 했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완전히 무너졌고, 영토마저 분단됐다. 로마 제국의 영광을 다시 세우려는 꿈을 꾼 독일의 도전 방식은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변화된 사회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마치 아시아를 제패하려던 일본의 꿈과 너무나 닮았기에 독자로서 독일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러나 패전 후 독일은 철저한 반성의 태도를 보였다. 소련의 경제 체제가 무너지면서 독일은 다시 통일됐다. 세계대전 후 강대국에 의해 분단된 나라 중 이제 우리 한반도만 남았다. 독일은 이 작품의 주인공 한스의 내면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지금도 무너지고 있을까? 아니면 철저한 반성으로 재도약의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을까 사뭇 궁금하다. 


그가 어떻게 강에 빠졌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길을 잃고 경사진 곳에서 미끄러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갈증을 해소하려다 중심을 잃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강물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몸을 기울였고, 그 순간 달빛과 밤의 고요함이 주는 평 온함이 그를 감싸자, 극도의 피로와 두려움이 조용한 충동으로 그를 죽음의 그림자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p.279}


저자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으며,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1904년《페터 카멘친트》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06년 자전적 소설《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데미안》을 출간했다.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1920년에는《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클라인과 바그너》《방랑》《혼란 속으로 향한 시선》을 출간했다. 1946년《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소설과 시, 수많은 그림을 남겼고, 평생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역자 : 랭브릿지


Bridge of Language, 랭브릿지는 언어의 다리를 연결하자는 모토를 가진 전문 번역그룹으로,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글로벌 소통을 지향합니다. 다양한 전문 번역가로 구성되어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읽기에 편안한 번역을 제공합니다. 언어의 다리를 통해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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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 - 아픈 마음과 이별하고 나와 소중한 이를 살리는 법
백종우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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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상처를 마주하고 나를 다시 살게 하는, 우울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자신의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담았다. 또 사회적 관심과 연대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을 예방하고 환자는 치료하는 제도적 시스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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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 - 아픈 마음과 이별하고 나와 소중한 이를 살리는 법
백종우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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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정신질환 명칭들이다. 정신질환은 예부터 밝히기도, 알려지기도 꺼리는 질환이다. 의사로부터 정신질환 판단을 받아도 치료가 쉽지 않다. 물론 정신질환 치료의 역사가 무척 짧은 데다 뇌의 이상으로 생기는 정신질환은 아직까지 이른바 '신의 영역'이라고 일컬어지며 치료가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 질환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겨우 '치매 치료 국가책임제'가 도입돼 뇌 질환의 사회적 책임에 나섰지만 아직 완전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것 같다. 정신질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는 정신질환자가 사건 피의자로 중대 범죄를 저질렀을 때뿐이다. 의료계에서는 정신질환이 중대 범죄의 요인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시민들은 중대 범죄가 특별한 이유 없이 벌어진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불안 요인이고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의 저자는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우리나라 정신건강 치료 현황이나 사회적 책임, 국민건강보건 차원의 국가책임제 등을 살펴보고 대책을 추진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저자 백종우는 2012년 정신질환자 치료 중 내원한 환자의 불의의 공격으로 고인이 된 고 임세원 교수의 2년 후배라고 한다. 이 책 표제어 '처음 만나는~'이란 문구는 신입 정신과 의사로 일을 시작할 때 들었던, 평생 잊히지 않는 2년 선배의 독려의 말이었기에 이 책의 제목이 된 것 같다. "이 환자분께는 네가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잖아. 인생의 결정적 시기에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가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라는 지적의 말이었다. 저자는 그 말을 듣고 있을 때 소름이 돋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응급실 환자를 처음 배정받아 첫 보고를 하던 날의 일이다. 내가 배정받은 환자는 정신과 의사를 처음 만나보는 초진환자였다. (중략) 당연히 신입 의사도 초짜들이다. 가운에 달린 '정신과 의사'라는 명찰에 설레면서도 매일 실수와 지적의 연속인 날들이다. 그날 2년 차 선배 임세원은 내가 작성한 의무 기록에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며 한 말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책임의 무게에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고 털어놓는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당신이 우울한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2장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3장 〈트라우마, 산산조각이 된 마음〉, 4장 〈정신질환 치료의 장벽, 몰라서 또는 알고도〉, 5장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것들〉 등이다. 신입의사로서 '응급실 100일 당직'이 끝나기까지 저자가 처음 만나게 된 많은 환자는 그 병원 진료 문턱을 넘는 데 많은 사연을 겪은 분들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그 문턱을 넘는 것을 주저했다는 것. 특히 응급실에 온 분들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정신과 환자들은 자신은 환자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집안에서는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병원을 스스로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뜻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사회에서는 환자에게 배타적이고, 학교에서는 친구가 되기를 꺼린다. 결국 학교도 사회에도 삶을 이어갈 곳이 없게 된다. 이 분들을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의 마음도 갈렸다고 말한다. 그간 이 환자의 삶을 이렇게까지 힘들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환자가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뿌듯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 '나는 이 환자를 돕고 싶은데 이분은 왜 이렇게 마음을 정하기가 힘든 걸까?' 싶은 마음에 환자와 이 사회가 답답할 때도 있었다고 속내를 밝힌다. 책에 따르면 2010년 정신과가 정신건강의학과로 명칭을 바꾸었다. 어느새 매년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국민이 400만 명이 넘었다. 편견과 차별도 줄었지만, 아직도 문턱을 넘는 데는 때로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은 처음 정신건강의학과 문턱을 넘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물론 옆에서 이들을 도우려는 선의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저자는 집필 취지를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고도 산업사회에 진입해 핵가족화되었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이루어졌던 공동체의 힘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고민이 훨씬 많아진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자살률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증가한 자살률은 지금까지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1위로 가장 높다. 쉼 없이 달려온 대한민국이 넘어지지 않게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마음 건강에 관심을 가질 때다.


1장의 첫 글은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이란 제목으로 쓰였다. 독자는 우울증의 정확한 증세를 모르지만, 일부 의사들은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했다는 말도 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커다란 위기를 겪은 세계 사람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대면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고 한다.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유행했던 기억이 독자에게도 있다. 그만큼 누구나 쉽게 우울증이 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도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현대인에게 우울증은 감기처럼 흔한 증상이다. 현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지만, 마음 기댈 곳이나 마음 나눌 사람 하나 없다면 더 힘들 수 있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살 충동, 조현병, 공황장애 등으로 악화되며, 치료 시기를 놓치면 몇 년 이상 장기 치료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울증은 조기에 치료받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정신과를 방문하고 싶어도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치료받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마음의 병을 질환으로 인식하기보다 의지가 약하거나 성격이 예민해서 생기는 것으로 보는 시선, 정신과를 방문하면 기록이 남아 취업이 어려울 거라는 편견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년 남성들은 남성의 성 역할에 대한 기대 때문에 상담을 받거나 정신과 문을 두드리기는커녕 자신의 속내를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기도 쉽지 않다. 저자가 책에 쓴 미국 연수 기간에 경험해 전해주는 한 에피소드가 오래 남는다. "미국에서 연수할 때 흥미로운 일이 하나 있었다. 취업 면접을 앞둔 대학생들이 병원에 우울증 진단서를 받겠다고 온 것이다. 너무 의아한 일이라 그게 취업 면접을 하는 데 도대체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인즉 우울증을 겪었는데 그것을 치료하고 극복했다는 점을 면접관에게 어필하면 취업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취약한 시기를 겪을 수 있음을 인정해주고 그것을 발판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한 이야기에 박수를 쳐주는 사회적 풍토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무척 부러웠다.(p.35)


정신질환은 어느덧 사회의 '금기어'가 될 정도로 기피했다. 사실 증세가 가벼운 질환은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치료하지 않은 채 방치하거나, 남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심각한 증세로 악화될 수 있다. 요즘도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공황장애, 조울증, 조현병 등은 치료하지 않을 경우 급작히 병세가 악화되거나 급성 발작 증세도 일으킨다고 의사들은 경고하고 있다. 중대 범죄의 피의자로 정신질환자가 지목될 경우 더욱 편견과 혐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도 우울증이 심해진 조울증, 혹은 심각한 공황 장애, 조현병의 발작으로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잦다. 이 경우 자살의 원인은 모두 정신질환에 의한 것으로 일반 국민들은 생각할 것이다. 자살할 이유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 대부분이 정신질환을 원인으로 꼽는 경우도 많다. 

자살은 앞서 언급한 대로 수십 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지키고 있다. 사회적 원인이 크겠지만 실제 자살자들 중 절반은 청년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이들 자살한 사람들은 대개 정신질환자라고 단정하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우선일 것 같다. 내놓고 분석하고, 잘 알려질수록 정신질환이 범죄나 자살의 원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란 인식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정신과 병원을 찾는 일을 기피하거나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숨기려 노력할 필요도 없어질 것 아닌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는 사회적 원인이 큰 경우가 많아 치료나 병원 가기를 크게 기피하지는 않겠지만 쉽게 치료되지 않는 질환임은 분명한 듯하다. 

사회적 문제가 된 질환은 또 조현병이 있다. 조현병은 예전에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을 갖고 있었지만 차별적·혐오적 용어라고 해서 '조현병'으로 바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조현병(schizophrenia)이란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정서적 둔마 등의 증상과 더불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정신과 질환을 말한다. 조현병은 일부 환자의 경우 예후가 좋지 않고 만성적인 경과를 보여 환자나 가족들에게 상당한 고통을 주지만, 최근 약물 요법을 포함한 치료법에 뚜렷한 발전이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에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질환이다. ‘조현병(調絃病)’이란 용어는 2011년에 정신분열병(정신분열증)이란 병명이 바뀐 것이라고 저자도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또 '치매' 역시 '인지흐림증' '인지장애'로 순화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개정법안이 발의된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훨씬 이전 '한센병'도 마찬가지 이유로 순화된 병명이다. 의료계에서 사회적인 이질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편견을 없애기 위하여 개명한 것으로 독자는 이해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조현(調絃)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으로,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마치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이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현재 조현병의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조현병은 뇌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하는 생물학적 질환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고혈압,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들과 마찬가지로 조현병의 원인을 한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생물학적인 원인 및 유전적인 원인, 스트레스 등 심리학적 원인들 또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는 가정과 직장 문제, 경제 상황 등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는 사회환경적 상황에 주목해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사회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청소년과 청년 우울증, 산후우울증, 중년 남성 우울증, 노인 우울증과 같이 생애주기별로 겪을 수 있는 우울증뿐 아니라 수면장애, 코로나, 경제 문제로 인한 우울증 등 다양한 우울증의 원인과 그 양상을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소중한 사람을 잃은 마음의 상처, 왕따, 또는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그로 인한 자살 충동, 조현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어떻게 해야 극복하고 예방할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한다. 특히 책에 나오는 ‘자가 진단 테스트’를 통해 나의 현재 마음 상태를 진단할 수 있으며, 정신과를 처음 방문할 때 알아두면 좋은 정보를 부록으로 실어 정신과를 선뜻 방문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현대 의학 수준으로 우울증 같은 질환은 조기에 치료하면 회복될 수 있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자살 같은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을 넘어서는 국가적 차원의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가족이나 소중한 이를 자살로 잃은 자살생존자들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 조현병 역시 정기적으로 진료받으며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충분히 관리가 가능함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조현병 환자라고 하면 예비 범죄자로 낙인을 찍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묻지 마 범죄나 진주 아파트 방화 및 흉기난동 사건의 비극은 조현병 환자가 사회에서 방치된 결과로, 조현병 환자와 관련된 강력 범죄의 발생 비율이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낮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본적으로 환자와 보호자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환자의 병을 낫게 하기 힘든 상황도 분명 있다. 이럴 땐 환자와 보호자 옆에 버팀목처럼 있어 주는 것이 최선이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곁에서 이들을 지지해주고 함께하는 동안 기적 같은 일들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미래가 올지 인간인 우리는 알 수 없다. 이것이 25년간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과 함께하면서 얻은 교훈이다.(p.189)


저자 :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를,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했으며,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트라우마 분야의 다학제 전문학회인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3대 회장,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장과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회자살예방포럼 자문위원장, 2024년부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신경정신의학 정책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2012년 고 임세원 교수, 서울대학교 김재원 교수와 함께 500만 명 이상이 수료한 한국자살예방협회의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 개발간사로 일했으며, 해군과 소방관 버전의 개발 책임을 맡았다. 또한 한국형 재난 정신건강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개발했다.

우울증과 트라우마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임상에서 만나면서 진료실 안에만 머물러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사회정신의학자로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중증 정신질환자와 가족, 사회적 재난 피해자, 천안함 생존 장병, 자살유가족을 만나 관련 연구와 정책 개발에 참여했고 자살 고위험군에 관한 사례관리 임상연구, 코로나 등 감염재난 정신건강 솔루션 개발, 인공지능을 통한 자살·자해 예방 등 국책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동료 의사 고 임세원 교수의 꿈이었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는 마음의 아픔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국민의 마음에 닿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믿고,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이사 등으로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핵가족화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에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사회는 마음건강을 챙기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KBS1 <아침마당>, MBC <100분 토론> 등 방송 매체와 뉴스에 출연했으며, 서울신문에 칼럼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을 연재 중이다.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관한 논문 200여 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공저),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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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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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네 안에 숨겨진 힘을 발견하고, 삶을 스스로 창조하라." 19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한 말이다. 현대 서양철학의 문을 연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란 명저에서 "신(神)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버멘쉬(Übermensch)란 독일어로서, 그가 『차라투스트라~』에서 주장한 '초인(超人)'을 이른다. '초인'이란 한자말은 독일어의 뜻을 그대로 직역한 풀이가 아닌가 싶다. 초인이란 말 그대로 '뛰어넘은 인간','인간을 뛰어넘은 인간'이란 뜻인데 형용모순의 모습을 보이지만 마땅한 말이 없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자어이긴 하지만 니체 철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제 강점기였기에 일본 철학계에서 번역한 용어인지도 모르겠다. 순우리말로는 '한사람' 혹은 '큰 사람'이란 뜻이라면 무난하지 않을까? 영어로는 'overman' 'superman' 등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서 니체의 신조어임이 분명해 보인다. 

“신은 죽었다”라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공격이나 논박이 아니라 서구의 지성사를 꿰뚫는 선언인 동시에 유럽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것에 가까웠다는 것이 니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으로 독자는 이해하고 있다. 『즐거운 학문』(1882)에서 신의 죽음을 설명하는 한 대목을 인용한다. “사람들은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그의 그림자를 동굴에서 보여주었다.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이 지금 상태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신의 그림자가 떠도는 동굴들은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그림자 역시 정복해야만 한다.” 니체의 이 말은 그가 특정한 종교를 공격하려 했던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이 책 『위버멘쉬』는 니체가 장한 ‘초인’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고 역자 어나니머스(annonimous, 익명)는 밝힌다. 위버멘쉬란 기존의 도덕과 사회적 관습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존재를 의미한다고 책 앞 부분의 〈옮긴이의 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역자는 "위버멘쉬는 외부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모든 고통과 시련을 넘어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초인'"이라고 말한다. 

역자에 따르면 『위버멘쉬』는 니체의 대표작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Human, All Too Human)』을 기반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한 고민과 삶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단순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니체의 날카로운 사상을 현대적 언어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 이책은 자기 극복, 인간관계, 감정 조절, 삶을 대하는 태도 등 현실적인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며, 독자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책의 가장 앞에 위버멘쉬의 뜻이 자세하게 적혀 있어 여기에 옮겨본다. "위버멘쉬는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스스로 뛰어넘고, 주어진 모든 고통과 상황을 의지로 극복하면서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최고의 자신을 꿈꾸는 존재다. 그는 낡은 도덕과 관습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자신만의 법칙을 세워 삼을 주도한다. 어떤 고난에 부딪쳐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하면서 모든 한계를 과감히 뚫고 나아간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해 멈추지 않고 도전하는 이, 그가 바로 위버멘쉬다." 니체가 주장하는 초인 사상의 골자는 우리가 철저히 자기 힘으로 삶을 개척하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 『위버멘쉬』는 니체의 정신을 반영해 실천 가능한 조언과 질문을 곳곳에 배치했다.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삶의 선택, 관계 속에서의 갈등, 사회적 기준에 대한 의문을 니체의 시선으로 풀어보며, 이를 어떻게 자기 삶에 적용할 것인지 고민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고 역자는 밝힌다. 이를 위해 니체가 던지는 메시지를 3부 나누어 관련 질문을 메시지와 함께 적었다.. ①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② "당신이 만나는 모든 얼굴이 당신을 만든다" ③ "그대의 시선이 삶의 크기를 정한다" 등이다. 특히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할 준비를 하라고 조언한다. 이 책 『위버멘쉬』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을 뛰어넘는 길을 찾기를 역자는 바란다고 적었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살아가며 수도 없이 무너지고 흔들린다. 하지만 니체는 "진정으로 나를 파괴하지 못한 고통은 결국은 더 큰 힘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왜 이런 아픔이 내게 찾아왔을까?"라는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시련이 내 안에 숨겨진 힘을 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보는 것. 바로 이것이 1부(Part 1)의 핵심이다. 여기서는 자기 극복을 중심으로 실패와 좌절이 어떻게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지 살펴본다. 니체는 단순히 '극복하라'는 강요를 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런 순간만다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2부는에서는 인간관계와 감정을 다룬다.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기쁨과 동시에 겪게 되는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니체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관계가 때로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이 가진 가치를 다시 발견하근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사랑, 분노, 복수심, 연민처럼 우리가 자주 마주하는 감정을 니체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며, '결국 내 감정과 행동의 주인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이 장의 핵심이다.


분노는 위험하고 파괴적인 감정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스스로의 한계를 깨뜨리는 강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반면, 공감은 상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능력이지만, 지나치게 몰입하면 오히려 내 삶의 중심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 니체는 감정은 그 자체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며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느냐이다. 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 타인의 기대가 아니라 내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 장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고 역자는 안내하고 있다. 마지막 3부에는 개인과 타인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해 보자는 제안이 담겨 있다. 우리는 도덕, 법, 관습, 선과 악 같은 것들을 마치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니체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것이 절대적인 진실인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시대와 환경이 만들어낸 규칙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 질문들은 결국 우리가 세상을 더 유연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3부에서 강조하는 "내 시선이 곧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메시지는, 스스로 가능성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역자는 말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할 것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순간, 삶의 방향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니체의 사상은 흔히 강하고 날카롭고 때론 가혹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메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독설과 도전은 결국 인간이 더 자유로워지고, 더 멀리 나아가길 바라는 강렬한 열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고 역자는 강조하고 있다.

"절망과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니체는 결코 쉽고 달콤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내 안에 있는 힘을 직접 발견하고, 그 길을 열어 보라"고 권유한다는 것이다. 그 길은 언제나 고독과 시련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진 고통과 상황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반드시 길이 있다고 믿는다면, 넘어서는 순간 원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역설하는 니체가 보인다고 역자는 말한다. 이 책이 삶이 주는 모든 경험을 내 편으로 만들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독자가 이 책 『위버멘쉬』를 읽고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경이롭다'이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니체의 철학 사상은 한 마디로 정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독자 나름대로 핵심어로 표현한다면 '극기' '도전' '포용'이다. 니체의 저서에서도, 해제 글에도 잘 등장하지 않은 단어를 채택한 이유는 이 책의 분류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니체는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는 쇼펜하우어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실제 니체는 자신의 저서에서도 언급했다. 인간에게는 삶을 지속하는 동안 어차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며, 이에 맞서 이겨내는 힘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강한 나'를 만든다는 내용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고통들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강한 나'여야 가능하다. 그런데 강한 나를 만들려면 우선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부정적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극기'다. 니체의 해설서에는 자기 극복, 인간관계, 감정 조절,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주제로 나누어 니체를 설명한다. 이 책 『위버멘쉬』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우리가 흔들릴 때, 고통을 마주할 때, 타인의 시선에 얽매일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니체의 사상을 통해 조명한다. 특히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유명한 문장을 강조하며,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를 초월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최종적인 결론은 독자가 직접 내리도록 유도한다. 이는 니체 철학의 핵심인 자신만의 가치 창조와도 연결되며, 『위버멘쉬』가 단순한 철학서가 아닌 삶을 위한 안내서로 기능하는 이유다. 철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역자의 말도 이해된다. 『위버멘쉬』는 우리 삶 속에서 니체의 사상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기존 철학서를 어려워했던 독자들에게도, 자기 자신을 넘어 더 높은 곳을 향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강력한 영감을 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면, 『위버멘쉬』가 그 첫걸음이다. 이 책의 내용이 답이라는 의미다.


이 책에 있는 몇 개의 내용을 여기에 적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11번째 「인생은 태도에 달려 있다」는 아주 간단한 문장이다. "우리는 종종 사소한 일에도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이 일이 벌어진 게 무슨 뜻일까. 혹시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걸까 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삶은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다. 당신이 어떤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우연히 길에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서, 그 만남이 무조건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소중하게 만드는 건 당신의 선택이다. 그렇다고 너무 깊이 고민하지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 보내지도 마라. 세상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당신의 태도에 따라 끝없이 변화한다."(p.42)


「우리에게 중요한 건」이라는 113번째 글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랍ㅁ은 없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고, 실수하고, 후회하며 산다. 하지만 중요한 건 흠 없이 사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것이다. 남과 비교해 가치가 정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빛날 수도 있고, 흐려질 수도 있다. (중략) 때론 넘어지고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오직 나만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삶의 방식을 지켜나가는 게 무엇보다 소중하다."(p.253~254)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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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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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고독의 이야기들』은 독자로서는 처음 보는 제목의 문학작품집이다. 책 이름뿐만 아니라 저자 발터 벤야민도 생경하다. 아렌트, 아도르노, 버틀러, 이글턴, 지젝 등 유명 문인들이 모더니티의 증인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라니 독자의 짧은 문학 지식과 소양이 부끄러울 뿐이다. 다만 저자의 이름으로 낸 책이 이 한 권뿐이라니 독자로서는 최소한의 변명거리는 될 듯하다. 특히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망명을 꾀하다 체포된 유대인 출신이라니 짧은 생애를 애도하고 그가 남긴 주옥 같은 글 42편이 글들이 행운으로 다가온다. 책 속 발터 벤야민의 글은 소설, 꿈 기록, 설화 등이지만 그것도 완성본이라기보다 구상이나 후에 다시 쓸 요량으로 우선 내용만 담은 것들도 많다. 특히 한국어 번역 출간은 이 책이 최초라고 하니 보관용 책으로도 훌륭하다. 아마 출판사 측이 양장본으로 책을 낸 것도 보관본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발터 벤야민은 언어철학, 매체이론, 문예비평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사는 내내 소설, 꿈, 설화, 우화, 비유담, 수수께끼 같은 문학작품들을 썼다고 책 뒷 부분의 〈편집자 해제〉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그 벤야민 사상에 대해 누구보다 조예가 깊은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이 책을 두고 “벤야민 읽기를 놀라운 방식으로 재조정할 굉장한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이 책에 실린 마흔두 편의 이야기는 이성의 영역과 환상의 영역 사이의 문턱을 넘나드는 꿈의 세계, 대도시 생활에 감도는 성애적 긴장감, 이동과 여행 중에 발휘되는 상상력, 어린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 언어의 가능성, 유희 공간 및 유희 활동의 중요성, 도박과 점술, 소망의 독특한 관계 등을 아우르며 벤야민이 사는 내내 천착했던 주제들을 탐구한다. 이 책은 각 단편이 시작되는 책장마다 벤야민이 사랑한 모더니즘 예술가 파울 클레의 회화 작품들을 수록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한다. 〈편집자 해제〉를 쓴 분들은 샘 돌베어, 에스터 레슬리, 서베스천 트루스콜라스키 등 세 명의 문학인들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벤야민이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 다니는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조각조각 써 내려간 까닭에 생전에는 거의 발표하지 못했던 글들이라고 편집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제대로 편집이 가해지기 전까지는 의미 없이 흩어져 있는 파편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벤야민 연구자들의 충실한 편집과 분류, 벤야민의 사유와 예술론을 관통하는 해설, 마지막으로 벤야민이 사랑했던 모더니즘 화가 파울 클레의 그림을 글 한 편 한 편과 엮은 노력 덕분에 이 모음집은 벤야민이라는 신비로운 별자리를 완성해냈다고 책의 출판을 완성하기까지의 고충과 보람을 편집자들은 명시하고 있다.


'귀한 책'이기도 한 이 책은 표제어 '고독의 이야기들'은 2부의 한 장(章)의 제목을 따왔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성벽」, 「파이프」, 「불빛」 등 3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의 시작 몇 개의 문장을 인용해 본다. "내가 스페인의 어느 돌담집에 살기 시작한 것은 그 일이 있기 두어 달 전이었다. 꽤 높은 산마루와 어두운 소나무숲이 집 주변을 화환처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이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해보리라 마음먹곤 했다. 숲 사이사이로 마을들이 숨어 있었는데, 마을 이름 대부분은 성인(聖人) 이름을 딴 것이었다. 마을들은 그 이름을 가진 성인이 바로 거기에 살고 있다고 해도 될 만큼 천국 같았다.(p.183)

저자 벤야민은 문학적 글쓰기와 비평적 글쓰기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껏 알려진 그의 많은 문장에서 문학적 섬광이 엿보이고, 나아가 그의 글 자체가 시문학 없이 생겨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알려진다. 에에 따라서 벤야민의 글을 접해본 독자들이라면 한 번쯤 문학작품을 쓰는 벤야민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을 수도 있다. ‘벤야민이 픽션을 쓴다면 어떤 작품들을 창조해냈을까?’ ‘벤야민이라면 자신이 상상한 이야기를 어떤 종류의 문학으로 빚어내고 싶어했을까?’ 노벨레, 꿈 기록, 철학적 우화, 비유담, 설화, 수수께끼 문제 등을 묶은 이 문학작품집은 그 오랜 궁금증을 매력적으로 해소해준다고 해제를 쓴 편집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벤야민 생전에는 대부분 발표되지 않았던,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텍스트들이기에 출간이 더욱 특별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 책이 지닌 또 한 가지 특별한 면모는 여기 실린 작품들이 벤야민의 아이디어, 사유의 움직임을 앞서 공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네 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차르의 말단 관리 슈발킨과 유대교 경건파 걸인은 프란츠 카프카에 관한 에세이에 다시 등장한다. 〈두 번째 자아〉에 등장하는 ‘카이저파노라마’는 『일방통행로』 속 글을 되비추는 한편으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그리고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에 배치된 자서전적 콩트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렇듯 이 책은 밴야민이 자신의 이론적 관심사들을 어떤 형식으로 연출하고 연기하고 선보였는가를 예시한다


「경고」, 「서명」, 「소원」, 「감사」 등 4가지 소재로 이루어진 〈네 가지 이야기〉 속 「경고」의 몇 문장을 인용한다. "칭다오에서 멀지 않은 유명한 당일치기 여행지의 관광 장소 중에 낭만적인 분위기와 가파른 절벽으로 인기를 끄는 바위 언덕이 있었다. 사랑을 쟁취한 남자들이 행복한 시기에 데이트를 하러 오는 곳이어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가 데려온 여자와 팔짱을 끼고 풍경을 보며 감탄하다가 둘이 함께 근처 식당에 들러 배를 채우곤 했다. 식당은 성업 중이었다. 명 선생은 그 식당의 주인이었다."(p.261)

벤야민이 문학적 글쓰기를 계속해나간 배경에는 자신만의 이야기 이론이 있다. 그는 ‘이야기 들려주기(구술,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론을 여러 텍스트에서 다루었는데, 「이야기꾼」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다. 여기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경험은 민담과 동화의 형태로 대대로 전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대를 대대로 이어주었던 “경험이라는 붉은 실”은 전쟁과 함께 끊어졌다. 생존자들의 “연약한 육체”는 “사방을 초토화시키는 유출과 폭발의 역장”에 휘말렸던 경험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는 것. 경험의 전달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사라지고 있는 경험의 전달 가능성을 다시 새롭게 상상한다.

벤야민이 찾은 방법은, 경험을 휘발시키는 ‘저널리즘’ 언어 대신 구술 전통을 모방해 이야기를 들려주어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텍스트들에서 구술 전통을 모방해 목소리를 겹겹이 쌓는다. 이를테면 한 선장이 한 승객에게 썰을 풀고,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자기가 겪은 신기한 일을 들려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 지인 이야기를 전하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식이다. 

〈해제〉에 따르면 이런 이야기는 인용, 수수께끼 같은 말, 시점들이 쌓인 세계를 창조한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의 채록과 재구술이라는 긴 전통을 연장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경험은 새로운 지반을 찾는다. 말하자면, 벤야민이 시도했던 것은 변화된 조건들 아래에서 스토리텔링의 구술성을 재활성화하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참호에서 필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이야기일까? 어떤 글을 써야 이 시대가 들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벤야민의 문학적 작업물을 꿈과 몽상, 여행, 놀이와 교육론 등 3부(部)로 나눈다.



각 부의 테마를 다루는 서평도 여러 편 포함돼 있는데, 이런 종류의 글에서 벤야민은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형식을 놀라운 방향으로 (형식이 스스로 허물어질 수도 있을 지점까지) 밀어붙인다. 1부의 글들은 꿈과 몽상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벤야민이 가장 초기에 쓴 글들과 나란히 그가 꾸고 기록한 꿈들이 실려 있다. 그가 밤에 꾼 꿈이 이 세계의 고통을 반영하고 과장한다면, 그가 가장 초기에 쓴 공상 작품들은 '고통 없는 세계'의 비전을 그려 보인다. 여행을 다루는 2부의 환승 이야기는 지상과 해상의 지상과 해상의 풍경을 지나는 이야기들과 크고 작은 도시를 지나는 이야기들로 나뉘어 있다. 외로워하는 여행자도 있고, 낯선 만남에서 경험을 주워 모아 나중에 누군가에게 다시 들려주고자 하는 여행자도 있다. 〈이야기꾼〉에서 지인이 장인이 되어 공방에서 지혜를 전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대 도시인의 삶의 성애적 긴장 상태는 여기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것은 벤야민의 글이 가장 초기부터 탐색한 테마다.) 3부는 놀이와 교육론을 벤야민의 사유에서 서로 얽혀 있는 두 측면으로 제시한다. 여러 편의 글이 말장난을 탐색하고 있는데, 마치 단어들이 "자석이 되어 다른 단어들을 불가항력적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기도 하다.(벤야민이 프란츠 헤셀의 『내밀한 베를린』에 대한 서평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이 책은 티어가르텐 지역 저택들의 짧은 계단, 주랑 현관, 프리즈, 아키트레이브를 단어 그대로 받아들인다. "구(舊)" 서구(西區)는 고대 그리스 로마가 되었으니, 거기서 서풍이 불어오면 사공은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실은 배를 란트베르 운하에 띄우고 느릿느릿 노를 저어 헤르쿨레스 다리까지 간다. 베를린의 다른 주거 구역들과 비교해볼 때 이 동네는 문턱들과 성문들을 통과해야 진입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도드라져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어느 모로 보나 이런 문턱에 일가견이 있다.9단, 그가 좋아하지 않는 실험 심리학이 내세우는 미심쩍은 문턱[임계점]은 제외다.)"(p.155)

벤야민의 사유에서는 말장난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자명한 원칙이다. 3부에는 〈행운의 손〉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도박에 관한 대화」란 부제가 붙어 있다. 주제는 '도박의 탈을 쓴 놀이'라고 편집자는 말한다. 현대인의 도덕 이야기일까? 이에 대해 편집자는 벤야민은 본능 및 직관에 대해서, 몸이 모방을 통해 얻는 앎에 대해서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을 갖는다. 바로 앞글 〈1분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에서는 새로운 과학기술들, 그중에서도 특히 라디오와 상호 작용하는 법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마찬가지로 놀이하듯 다뤘다고 언급하면서다.(덧붙이면 벤야민이 듣는 사람들과 입말로 관계 맺는 능력을 연마한 것은 라디오 매체에서였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 책에 실린 글들에서 벤야민은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형식을 놀라운 방향으로, 형식이 스스로 허물어질 수도 있을 지점까지 밀어붙인다고 편집자들은 〈해제〉를 통해 강조한다. 1부의 글들은 꿈과 몽상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그가 밤에 꾼 꿈이 지금 이 세계의 고통을 반영하고 과장한다면, 그가 쓴 공상 작품들은 ‘고통 없는 세계’의 비전을 그려 보인다. 꿈결 같은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으스스한 배회라는 단골 테마가 그런 고통의 반영과 과장을 보여주고, 〈어느 크고 오래된 도시에서〉나 〈저녁의 목신〉에서 묘사되는 색채는 ‘고통 없는 세계’의 비전을 배경으로 생동감을 얻는다.

여행을 다루는 2부는 지상과 해상의 풍경을 지나는 이야기들과 크고 작은 도시를 지나는 이야기들, 그리고 거기서 자극받은 성애적 동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행한다는 것은 친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뜻이다. 여행은 새로운 규칙과 새로운 생활을 열어낸다. 이를테면 〈마스코테호의 항해〉에서 선상은 바다 위의 마법 도시다. 광란이 규범이고 선장은 아무 권위도 없다. 또 여행은 문턱을 가시화한다. 기차역과 항구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이다. 〈북유럽 바다〉(여행담)에서는 합리적 이성의 세계와 망상의 세계를 나누는 문턱이 낮아진다. 무엇보다 여행-이동은 어딘가로 인도한다. 〈숨기고 있던 이야기〉처럼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유인하기도 한다. 여기서 사건은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에 가게 된 사람은 가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많은 것을 목격하게 된다.

3부는 벤야민의 사유에서 서로 얽혀 있는 두 측면으로 놀이와 교육론을 제시한다. 여러 편의 글이 말장난과 놀이를 탐색하고 있다. 벤야민의 사유에 비추어보면, 어른들은 말장난과 놀이의 즐거움을 아이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 연장선에 도박과 점술도 있다. 「행운의 손」의 주제는 도박의 탈을 쓴 놀이다. 놀이하듯 배우는 것은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데서도 마찬가지여서, 〈1분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에서는 라디오 매체와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놀이하듯’ 다룬다.

이 책에 실린 마흔두 편의 글은 대개 짧다. 벤야민은 이야기 형식을 실험하며 이야기가 품은 에너지를 짧은 분량으로 압축했는데, 덕분에 에너지는 최대한 강력한 상태로 집약된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들과 언젠가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를 현실들의 농축물을 만들어 삼투시킨다. 그런 글들은 만질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세계의 무언가를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한편으로, 우리가 마주하고 우리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이 때로 마법처럼 판타지처럼 압도적이고 신비한 경험이 되도록 부려놓는다.


시간 창고 안에 들어가보면 사용되지 않은 하루하루가 쌓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수천 년 전 지구가 얼려둔 나날이. 사람은 스물네 시간마다 하루를 소모하지만, 지구는 하루를 이렇게 반년에 한 번씩 소모할 뿐이다. 이곳이 아직 무사한 것은 그 덕분이다. 시간은 바람 없는 고요한 정원의 키 작은 나무에 가 닿지 못했고, 선원들은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에 당도하지 못했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그것들 위에서 두 미광이 만나 구름을 나누어 가지듯 그것들을 나누어 가지고는 당신을 빈손으로 집으로 돌려보낸다.(p.175~176) - 「북유럽 바다」 중에서


저자 :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집필하지만 아카데미 세계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같은 해에 알게 된 연인 아샤 라치스 이외에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유물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평, 번역, 방송활동을 펼쳐나간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유럽에서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한 그가 택한 길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거리를 두고, 유대 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통해 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었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자결한다. 그로써 그가 13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 즉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의 구상을 상부구조(문화) 전체에 적용하여 19세기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려던 필생의 저작 『파사젠베르크』(Das Passagen-Werk)는 미완으로 남는다. 스탈린-히틀러의 밀약을 접한 충격에서 쓴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결정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는 그가 남긴 최후의 글이다.


그림 :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스위스 화가이다. 국적은 독일이다.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 베른 근처 뮌헨부흐제 출생. 어려서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바이올린 연주에 뛰어났다. 스물한 살에 회화를 선택한 후에도 W. R. 바그너와 R. 슈트라우스, W. A. 모차르트의 곡들에 심취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98~1901년 독일의 뮌헨에서 세기 말의 화가 F. 슈투크에게 사사하기도 하였다. 1911년 칸딘스키, F. 마르크, A. 마케와 사귀고, 이듬해 1912년의 ‘청기사’ 제2회전에 참가하였으나 1914년 튀니스 여행을 계기로 색채에 눈을 떠 새로운 창조세계로 들어갔다. 동료 화가들인 루이 무아예와 아우구스트 마케와 함께 아프리카 튀니지로 여행을 떠났던 클레는 여행 중에 느낀 감상을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구상적인 미술양식과 추상적인 미술양식 모두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 미술 사조에 속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클레는 작품에서 엄격한 입방체와 점묘법, 그리고 자유로운 드로잉을 실험했으며, 그가 접했던 모든 미술 사조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특히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그의 미술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빨강의 푸가」(1921)와 「A장조 풍경」(1930) 같은 많은 작품들은 음악적인 구조로 정돈되어 있는데, 마치 악보 위에 음표들을 배열하듯이 색채도 정확히 배열되어 있다.

저술로는 바우하우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조형사고(造形思考, Das bildnerische Denken)』(1956), 『일기(Tagebucher)』(1957)가 있으며, 작품수장집은 스위스의 베른미술관 내 클레 재단에 약 3,000점이 소장되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새의 섬」, 「항구」, 「정원 속의 인물」, 「죽음과 불」 등이다.


역자 : 김정아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비교문학과에서 「모든 매체는 영매다: 소설의 재현과 영화의 복제에 나타난 주-객 매개 비교」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문학, 이론, 번역 강의를 하고 있다. 「정확하고 유려하게 : 『오만과 편견』의 번역을 중심으로」, 「학교엔 귀신이 산다」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옮긴 책으로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 『죽은 신을 위하여』, 『감정 자본주의』, 『눈과 마음』,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슬럼, 지구를 뒤덮다』,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동물들의 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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