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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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고독의 이야기들』은 독자로서는 처음 보는 제목의 문학작품집이다. 책 이름뿐만 아니라 저자 발터 벤야민도 생경하다. 아렌트, 아도르노, 버틀러, 이글턴, 지젝 등 유명 문인들이 모더니티의 증인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라니 독자의 짧은 문학 지식과 소양이 부끄러울 뿐이다. 다만 저자의 이름으로 낸 책이 이 한 권뿐이라니 독자로서는 최소한의 변명거리는 될 듯하다. 특히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망명을 꾀하다 체포된 유대인 출신이라니 짧은 생애를 애도하고 그가 남긴 주옥 같은 글 42편이 글들이 행운으로 다가온다. 책 속 발터 벤야민의 글은 소설, 꿈 기록, 설화 등이지만 그것도 완성본이라기보다 구상이나 후에 다시 쓸 요량으로 우선 내용만 담은 것들도 많다. 특히 한국어 번역 출간은 이 책이 최초라고 하니 보관용 책으로도 훌륭하다. 아마 출판사 측이 양장본으로 책을 낸 것도 보관본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발터 벤야민은 언어철학, 매체이론, 문예비평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사는 내내 소설, 꿈, 설화, 우화, 비유담, 수수께끼 같은 문학작품들을 썼다고 책 뒷 부분의 〈편집자 해제〉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그 벤야민 사상에 대해 누구보다 조예가 깊은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이 책을 두고 “벤야민 읽기를 놀라운 방식으로 재조정할 굉장한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이 책에 실린 마흔두 편의 이야기는 이성의 영역과 환상의 영역 사이의 문턱을 넘나드는 꿈의 세계, 대도시 생활에 감도는 성애적 긴장감, 이동과 여행 중에 발휘되는 상상력, 어린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 언어의 가능성, 유희 공간 및 유희 활동의 중요성, 도박과 점술, 소망의 독특한 관계 등을 아우르며 벤야민이 사는 내내 천착했던 주제들을 탐구한다. 이 책은 각 단편이 시작되는 책장마다 벤야민이 사랑한 모더니즘 예술가 파울 클레의 회화 작품들을 수록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한다. 〈편집자 해제〉를 쓴 분들은 샘 돌베어, 에스터 레슬리, 서베스천 트루스콜라스키 등 세 명의 문학인들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벤야민이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 다니는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조각조각 써 내려간 까닭에 생전에는 거의 발표하지 못했던 글들이라고 편집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제대로 편집이 가해지기 전까지는 의미 없이 흩어져 있는 파편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벤야민 연구자들의 충실한 편집과 분류, 벤야민의 사유와 예술론을 관통하는 해설, 마지막으로 벤야민이 사랑했던 모더니즘 화가 파울 클레의 그림을 글 한 편 한 편과 엮은 노력 덕분에 이 모음집은 벤야민이라는 신비로운 별자리를 완성해냈다고 책의 출판을 완성하기까지의 고충과 보람을 편집자들은 명시하고 있다.


'귀한 책'이기도 한 이 책은 표제어 '고독의 이야기들'은 2부의 한 장(章)의 제목을 따왔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성벽」, 「파이프」, 「불빛」 등 3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의 시작 몇 개의 문장을 인용해 본다. "내가 스페인의 어느 돌담집에 살기 시작한 것은 그 일이 있기 두어 달 전이었다. 꽤 높은 산마루와 어두운 소나무숲이 집 주변을 화환처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이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해보리라 마음먹곤 했다. 숲 사이사이로 마을들이 숨어 있었는데, 마을 이름 대부분은 성인(聖人) 이름을 딴 것이었다. 마을들은 그 이름을 가진 성인이 바로 거기에 살고 있다고 해도 될 만큼 천국 같았다.(p.183)

저자 벤야민은 문학적 글쓰기와 비평적 글쓰기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껏 알려진 그의 많은 문장에서 문학적 섬광이 엿보이고, 나아가 그의 글 자체가 시문학 없이 생겨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알려진다. 에에 따라서 벤야민의 글을 접해본 독자들이라면 한 번쯤 문학작품을 쓰는 벤야민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을 수도 있다. ‘벤야민이 픽션을 쓴다면 어떤 작품들을 창조해냈을까?’ ‘벤야민이라면 자신이 상상한 이야기를 어떤 종류의 문학으로 빚어내고 싶어했을까?’ 노벨레, 꿈 기록, 철학적 우화, 비유담, 설화, 수수께끼 문제 등을 묶은 이 문학작품집은 그 오랜 궁금증을 매력적으로 해소해준다고 해제를 쓴 편집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벤야민 생전에는 대부분 발표되지 않았던,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텍스트들이기에 출간이 더욱 특별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 책이 지닌 또 한 가지 특별한 면모는 여기 실린 작품들이 벤야민의 아이디어, 사유의 움직임을 앞서 공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네 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차르의 말단 관리 슈발킨과 유대교 경건파 걸인은 프란츠 카프카에 관한 에세이에 다시 등장한다. 〈두 번째 자아〉에 등장하는 ‘카이저파노라마’는 『일방통행로』 속 글을 되비추는 한편으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그리고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에 배치된 자서전적 콩트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렇듯 이 책은 밴야민이 자신의 이론적 관심사들을 어떤 형식으로 연출하고 연기하고 선보였는가를 예시한다


「경고」, 「서명」, 「소원」, 「감사」 등 4가지 소재로 이루어진 〈네 가지 이야기〉 속 「경고」의 몇 문장을 인용한다. "칭다오에서 멀지 않은 유명한 당일치기 여행지의 관광 장소 중에 낭만적인 분위기와 가파른 절벽으로 인기를 끄는 바위 언덕이 있었다. 사랑을 쟁취한 남자들이 행복한 시기에 데이트를 하러 오는 곳이어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가 데려온 여자와 팔짱을 끼고 풍경을 보며 감탄하다가 둘이 함께 근처 식당에 들러 배를 채우곤 했다. 식당은 성업 중이었다. 명 선생은 그 식당의 주인이었다."(p.261)

벤야민이 문학적 글쓰기를 계속해나간 배경에는 자신만의 이야기 이론이 있다. 그는 ‘이야기 들려주기(구술,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론을 여러 텍스트에서 다루었는데, 「이야기꾼」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다. 여기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경험은 민담과 동화의 형태로 대대로 전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대를 대대로 이어주었던 “경험이라는 붉은 실”은 전쟁과 함께 끊어졌다. 생존자들의 “연약한 육체”는 “사방을 초토화시키는 유출과 폭발의 역장”에 휘말렸던 경험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는 것. 경험의 전달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사라지고 있는 경험의 전달 가능성을 다시 새롭게 상상한다.

벤야민이 찾은 방법은, 경험을 휘발시키는 ‘저널리즘’ 언어 대신 구술 전통을 모방해 이야기를 들려주어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텍스트들에서 구술 전통을 모방해 목소리를 겹겹이 쌓는다. 이를테면 한 선장이 한 승객에게 썰을 풀고,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자기가 겪은 신기한 일을 들려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 지인 이야기를 전하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식이다. 

〈해제〉에 따르면 이런 이야기는 인용, 수수께끼 같은 말, 시점들이 쌓인 세계를 창조한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의 채록과 재구술이라는 긴 전통을 연장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경험은 새로운 지반을 찾는다. 말하자면, 벤야민이 시도했던 것은 변화된 조건들 아래에서 스토리텔링의 구술성을 재활성화하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참호에서 필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이야기일까? 어떤 글을 써야 이 시대가 들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벤야민의 문학적 작업물을 꿈과 몽상, 여행, 놀이와 교육론 등 3부(部)로 나눈다.



각 부의 테마를 다루는 서평도 여러 편 포함돼 있는데, 이런 종류의 글에서 벤야민은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형식을 놀라운 방향으로 (형식이 스스로 허물어질 수도 있을 지점까지) 밀어붙인다. 1부의 글들은 꿈과 몽상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벤야민이 가장 초기에 쓴 글들과 나란히 그가 꾸고 기록한 꿈들이 실려 있다. 그가 밤에 꾼 꿈이 이 세계의 고통을 반영하고 과장한다면, 그가 가장 초기에 쓴 공상 작품들은 '고통 없는 세계'의 비전을 그려 보인다. 여행을 다루는 2부의 환승 이야기는 지상과 해상의 지상과 해상의 풍경을 지나는 이야기들과 크고 작은 도시를 지나는 이야기들로 나뉘어 있다. 외로워하는 여행자도 있고, 낯선 만남에서 경험을 주워 모아 나중에 누군가에게 다시 들려주고자 하는 여행자도 있다. 〈이야기꾼〉에서 지인이 장인이 되어 공방에서 지혜를 전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대 도시인의 삶의 성애적 긴장 상태는 여기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것은 벤야민의 글이 가장 초기부터 탐색한 테마다.) 3부는 놀이와 교육론을 벤야민의 사유에서 서로 얽혀 있는 두 측면으로 제시한다. 여러 편의 글이 말장난을 탐색하고 있는데, 마치 단어들이 "자석이 되어 다른 단어들을 불가항력적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기도 하다.(벤야민이 프란츠 헤셀의 『내밀한 베를린』에 대한 서평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이 책은 티어가르텐 지역 저택들의 짧은 계단, 주랑 현관, 프리즈, 아키트레이브를 단어 그대로 받아들인다. "구(舊)" 서구(西區)는 고대 그리스 로마가 되었으니, 거기서 서풍이 불어오면 사공은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실은 배를 란트베르 운하에 띄우고 느릿느릿 노를 저어 헤르쿨레스 다리까지 간다. 베를린의 다른 주거 구역들과 비교해볼 때 이 동네는 문턱들과 성문들을 통과해야 진입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도드라져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어느 모로 보나 이런 문턱에 일가견이 있다.9단, 그가 좋아하지 않는 실험 심리학이 내세우는 미심쩍은 문턱[임계점]은 제외다.)"(p.155)

벤야민의 사유에서는 말장난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자명한 원칙이다. 3부에는 〈행운의 손〉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도박에 관한 대화」란 부제가 붙어 있다. 주제는 '도박의 탈을 쓴 놀이'라고 편집자는 말한다. 현대인의 도덕 이야기일까? 이에 대해 편집자는 벤야민은 본능 및 직관에 대해서, 몸이 모방을 통해 얻는 앎에 대해서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을 갖는다. 바로 앞글 〈1분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에서는 새로운 과학기술들, 그중에서도 특히 라디오와 상호 작용하는 법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마찬가지로 놀이하듯 다뤘다고 언급하면서다.(덧붙이면 벤야민이 듣는 사람들과 입말로 관계 맺는 능력을 연마한 것은 라디오 매체에서였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 책에 실린 글들에서 벤야민은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형식을 놀라운 방향으로, 형식이 스스로 허물어질 수도 있을 지점까지 밀어붙인다고 편집자들은 〈해제〉를 통해 강조한다. 1부의 글들은 꿈과 몽상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그가 밤에 꾼 꿈이 지금 이 세계의 고통을 반영하고 과장한다면, 그가 쓴 공상 작품들은 ‘고통 없는 세계’의 비전을 그려 보인다. 꿈결 같은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으스스한 배회라는 단골 테마가 그런 고통의 반영과 과장을 보여주고, 〈어느 크고 오래된 도시에서〉나 〈저녁의 목신〉에서 묘사되는 색채는 ‘고통 없는 세계’의 비전을 배경으로 생동감을 얻는다.

여행을 다루는 2부는 지상과 해상의 풍경을 지나는 이야기들과 크고 작은 도시를 지나는 이야기들, 그리고 거기서 자극받은 성애적 동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행한다는 것은 친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뜻이다. 여행은 새로운 규칙과 새로운 생활을 열어낸다. 이를테면 〈마스코테호의 항해〉에서 선상은 바다 위의 마법 도시다. 광란이 규범이고 선장은 아무 권위도 없다. 또 여행은 문턱을 가시화한다. 기차역과 항구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이다. 〈북유럽 바다〉(여행담)에서는 합리적 이성의 세계와 망상의 세계를 나누는 문턱이 낮아진다. 무엇보다 여행-이동은 어딘가로 인도한다. 〈숨기고 있던 이야기〉처럼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유인하기도 한다. 여기서 사건은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에 가게 된 사람은 가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많은 것을 목격하게 된다.

3부는 벤야민의 사유에서 서로 얽혀 있는 두 측면으로 놀이와 교육론을 제시한다. 여러 편의 글이 말장난과 놀이를 탐색하고 있다. 벤야민의 사유에 비추어보면, 어른들은 말장난과 놀이의 즐거움을 아이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 연장선에 도박과 점술도 있다. 「행운의 손」의 주제는 도박의 탈을 쓴 놀이다. 놀이하듯 배우는 것은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데서도 마찬가지여서, 〈1분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에서는 라디오 매체와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놀이하듯’ 다룬다.

이 책에 실린 마흔두 편의 글은 대개 짧다. 벤야민은 이야기 형식을 실험하며 이야기가 품은 에너지를 짧은 분량으로 압축했는데, 덕분에 에너지는 최대한 강력한 상태로 집약된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들과 언젠가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를 현실들의 농축물을 만들어 삼투시킨다. 그런 글들은 만질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세계의 무언가를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한편으로, 우리가 마주하고 우리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이 때로 마법처럼 판타지처럼 압도적이고 신비한 경험이 되도록 부려놓는다.


시간 창고 안에 들어가보면 사용되지 않은 하루하루가 쌓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수천 년 전 지구가 얼려둔 나날이. 사람은 스물네 시간마다 하루를 소모하지만, 지구는 하루를 이렇게 반년에 한 번씩 소모할 뿐이다. 이곳이 아직 무사한 것은 그 덕분이다. 시간은 바람 없는 고요한 정원의 키 작은 나무에 가 닿지 못했고, 선원들은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에 당도하지 못했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그것들 위에서 두 미광이 만나 구름을 나누어 가지듯 그것들을 나누어 가지고는 당신을 빈손으로 집으로 돌려보낸다.(p.175~176) - 「북유럽 바다」 중에서


저자 :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집필하지만 아카데미 세계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같은 해에 알게 된 연인 아샤 라치스 이외에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유물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평, 번역, 방송활동을 펼쳐나간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유럽에서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한 그가 택한 길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거리를 두고, 유대 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통해 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었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자결한다. 그로써 그가 13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 즉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의 구상을 상부구조(문화) 전체에 적용하여 19세기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려던 필생의 저작 『파사젠베르크』(Das Passagen-Werk)는 미완으로 남는다. 스탈린-히틀러의 밀약을 접한 충격에서 쓴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결정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는 그가 남긴 최후의 글이다.


그림 :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스위스 화가이다. 국적은 독일이다.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 베른 근처 뮌헨부흐제 출생. 어려서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바이올린 연주에 뛰어났다. 스물한 살에 회화를 선택한 후에도 W. R. 바그너와 R. 슈트라우스, W. A. 모차르트의 곡들에 심취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98~1901년 독일의 뮌헨에서 세기 말의 화가 F. 슈투크에게 사사하기도 하였다. 1911년 칸딘스키, F. 마르크, A. 마케와 사귀고, 이듬해 1912년의 ‘청기사’ 제2회전에 참가하였으나 1914년 튀니스 여행을 계기로 색채에 눈을 떠 새로운 창조세계로 들어갔다. 동료 화가들인 루이 무아예와 아우구스트 마케와 함께 아프리카 튀니지로 여행을 떠났던 클레는 여행 중에 느낀 감상을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구상적인 미술양식과 추상적인 미술양식 모두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 미술 사조에 속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클레는 작품에서 엄격한 입방체와 점묘법, 그리고 자유로운 드로잉을 실험했으며, 그가 접했던 모든 미술 사조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특히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그의 미술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빨강의 푸가」(1921)와 「A장조 풍경」(1930) 같은 많은 작품들은 음악적인 구조로 정돈되어 있는데, 마치 악보 위에 음표들을 배열하듯이 색채도 정확히 배열되어 있다.

저술로는 바우하우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조형사고(造形思考, Das bildnerische Denken)』(1956), 『일기(Tagebucher)』(1957)가 있으며, 작품수장집은 스위스의 베른미술관 내 클레 재단에 약 3,000점이 소장되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새의 섬」, 「항구」, 「정원 속의 인물」, 「죽음과 불」 등이다.


역자 : 김정아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비교문학과에서 「모든 매체는 영매다: 소설의 재현과 영화의 복제에 나타난 주-객 매개 비교」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문학, 이론, 번역 강의를 하고 있다. 「정확하고 유려하게 : 『오만과 편견』의 번역을 중심으로」, 「학교엔 귀신이 산다」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옮긴 책으로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 『죽은 신을 위하여』, 『감정 자본주의』, 『눈과 마음』,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슬럼, 지구를 뒤덮다』,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동물들의 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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