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
리프레시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며, 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때론 삶의 추진력이 되지만, 끝없는 갈망은 결국 불안과 고통을 남긴다. 현대 사회는 단순함의 미니멀리즘과 욕심을 버리는 무소유 정신으로 아타락시아(평정함)를 추구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
리프레시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는 삶을 돌아보고 중심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을 추천하고 싶다. 책 표제어 중 '쾌락주의'가 먼저 눈에 띈다. '쾌락'이란 단어는 감각적이고, 인간 본연의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니멀리즘'이란 단어를 왜 수식어로 사용했을까? 먼저 용어의 의미 규정이 필요해 보인다. 쾌락(快樂)은 ①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 ② 심리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이라고 국어사전은 풀이한다. 사전이기에 다소 절제되고, 적확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독자의 의견으로는 '극한의'라는 단어로 수식어를 쓰고 싶다. 쾌락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극한의 즐거움이나 기쁨으로 규정되는 느낌이어서다. '극한'은 '끝'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이 극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본능과 잘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왜 이 책은 '미니멀리즘적'이란 수식어가 필요했을까? 많은 최근 현대인들에게 급속히 확산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지난 20세기에 대세를 이룬 적이 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화가나 조각가들이 최소한의 색상을 사용해 기하학적인 뼈대만을 표현하는 단순한 형태의 미술을 추구했다. 미술비평가이자 미술가이기도 한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는 그의 작품에서 하나의 기본 단위 또는 모듈을 적게는 2번에서 많게는 120번까지 반복 표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반복은 별다른 기교가 없으며 그저 하나 다음 다른 하나를 놓는 식이다. 그 단순한 형태는 다이내믹하고 불안정한 배열로 복잡하지도 장식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도 않는 ‘부분의 합’이라 할 수 있다고 백과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 용어는 ‘최소 한도의, 최소의, 극미(極微)의’라는 'minimal'에 ‘ism’을 덧붙인 ‘최소한주의’라는 의미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현대 사회의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심미적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장식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만을 표현했을 때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앞서 언급한 쾌락주의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이루어진 것인가? 형용 모순처럼 보이는 이 표제어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자의 독서욕을 자극했다.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지만, 동시에 지치게도 한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며,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삶의 추진력이 되지만, 그 끝없는 갈망은 결국 불안과 피로를 남긴다고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도 나와 있다. '최소' '극소'의 개념인 미니멀리즘과 '최다' '극한'이란 개념의 쾌락과는 분명 어울리지 않은, 어찌 보면 모순적 조합이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는 이 시대의 끊임없는 욕망에 질문을 던진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덜어낼수록 삶은 깊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책은 단순한 철학 해설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철학적 언어로 안내하는 실천서이자, 현대를 위한 치유의 문장들로 구성된 삶의 재설계 도구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최고의 선이라 말했지만, 그가 말한 쾌락은 감각적 향락이나 방종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이 없는 상태, 영혼이 흔들리지 않는 평온의 상태, 즉 '아타락시아'였다. 이 책은 그 철학을 현대인의 언어로 재구성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불안과 비교, 과잉 자극에서 벗어나는 법을 보여준다.

저자 제이한은 에피쿠로스의 핵심 개념인 욕망의 3분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생존에 필요한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망, 자연스럽지만 없어도 되는 욕망, 그리고 부자연스럽고 해로운 욕망. 이 구분은 우리의 소비습관, 인간관계, SNS 사용, 사회적 야망까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인식의 틀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욕망이 진짜 나의 필요가 아니라 사회의 기준과 타인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미니멀리즘’을 물질적 정리 그 이상으로 확장한다. 감정, 루틴, 관계까지 정리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삶의 주도권을 다시 자신에게 되돌리는 철학적 미니멀리즘. ‘무엇을 버릴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이 책은, 단순한 삶을 통해 진짜 자유와 기쁨에 도달하는 여정을 제안한다.


이 책에는 고대 그리스에 어원을 두고 있는 아타락시아(ataraxia)란 중요한 단어가 언급되고 있다. 아타락시아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말한 정신적 평정의 상태를 뜻한다.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등은 우주를 잘 인식하여 일체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것에 의해 이것을 획득할 수 있다고 했으며, 현자가 이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에피쿠로스는 일체의 종교적 미신을 척결하고 이성의 인식에 입각한 곳에 아타락시아가 있다며, 이것을 쾌락이라고 불렀다. 회의론자인 피론 등은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모든 것에 무관심하게 되면 이러한 상태가 회득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또 스토아 학파가 말한 아파테이아(그리스어 apatheia, 영어 apathy)와도 통한다. 

『철학사전』(2009)에는 스토아 학파에서는 모든 감각에서 야기된 격정과 욕망을 탈피하여 이성적인 냉정을 유지하는 것을 아파테이아라고 하고 이러한 상태에 이르도록 권장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이러한 상태는 행동을 억누르고 정관(靜觀)에 가치를 두는 견해에 불과하다는 풀이도 덧붙이고 있다.

책에 따르면 삶의 본질은 단순하다. 햇살 좋은 날의 산책, 친구와 나누는 조용한 대화, 반복 가능한 소박한 루틴, 그리고 자기 욕망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을 내포한다.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는 이런 평범해 보이지만 강한 삶의 기술을 하나씩 펼쳐 보이며 독자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가진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선택한 삶의 리듬은 정말 나다운가? 책의 말미에는 ‘에피쿠로스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철학 대담’이 수록되어 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공통적으로 단순하고 본질적인 삶을 추구한 두 사상가의 상상 대화를 통해, 독자는 철학이 삶의 기술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는 철학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철학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책이다. 독자가 스스로 질문하게 만들고, 고요한 평온의 길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책. 삶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이 시대에, 단순함이 주는 기쁨과 쾌락을 되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디지털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 시대로 불리우는 현대 사회는 불안하고 복잡하고 정신을 차릴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을까?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성공이고, 더 자극적인 경험이 행복이라고 믿는 사회에서, 마음의 평온은 점점 더 멀어진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삶의 경로에 의문을 던진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를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이 책은, 불필요한 욕망을 줄이고 내면의 평온을 회복하는 철학적 삶의 안내서다. 에피쿠로스는 오랜기간동안 오해받아온 철학자다라고 저자는 선언한다. 그가 말한 쾌락은 결코 방종이나 감각적 향락이 아니라는 저자의 설명이다. 오히려 고통이 없는 상태,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상태, 즉 '아타락시아'에 도달하는 것을 최고의 선이라 보았다는 것. 그는 절제된 삶을 통해 불필요한 욕망과 불안을 걷어내고, 단순하고 평온한 일상을 지향했다. 이 책은 그런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미니멀리즘적 관점과 연결해 현대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는 단지 철학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독자의 일상에 적용 가능한 실천적 도구로서 기능한다. 책은 욕망을 세 가지로 분류하며, 각각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망은 충족되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고통은 자연적이지 않고 사회적으로 학습된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짚어낸다. 이 구분은 우리가 삶의 기준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옮겨가는 데 매우 효과적인 철학적 도구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미니멀리즘을 넘어서 감정, 관계, 루틴, 생각까지 포함한 깊이 있는 정리를 제안한다. 비우는 삶은 가난한 삶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더 가지려는 상태야말로 진짜 결핍이며, 그것은 욕망의 덫에 걸린 상태라고 책은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더 많은 선택지가 있는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 혼란 속의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SNS의 비교, 끝없는 업무, 소비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살도록 돕는 ‘덜어냄의 철학’을 제시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단순한 절제나 무소유가 아닌,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남기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가장 즐겁게 사는 사람은 가장 적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그 문장을, 오늘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풀어내며 묻는다. 당신의 쾌락은 평온한가, 아니면 불안한가?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쾌락이라는 단어가 불편한 당신에게」, 2장 「고통을 피하는 것이 먼저다」, 3장 「욕망을 세 가지로 분류하라」, 4장 「덜어내야 보인다」, 5장 「마음의 평온, 아타락시아」, 6장 「함께 나누는 쾌락, 우정」, 7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8장 「단순한 삶이 주는 기쁨」, 9장 「쾌락을 지켜내는 기술」, 10장 「나만의 쾌락 철학을 세운다는 것」 등이다. 각 장의 제목만을 따라가다 보면 쾌락과 미니멀리즘은 서로 다른 개념의, 정반대의 개념이 아니다. 쾌락을 의미하는 '아타락시아'는 평온함, 평정의 의미로 절제라는 개념의 미니멀리즘은 잘 어울리는 철학적 이상이다. 또 독자는 이 책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개념과도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물건을 많이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흔드는 요소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 옷이 많아지면, 그날의 선택이 더 어려워진다.

· 책이 쌓이면, 읽지 못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이 생긴다.

· 전자기기가 늘어나면, 충전관리에 시간이 더 들어간다.

그 무엇보다, 그 모든 것들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끊임없이 뒤따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나 갖고 있느냐’보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유발하느냐’이다. 물건은 도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물건의 하인이 되어 살아간다. 그때부터 쾌락은 시작되지 않고, 불안이 생겨난다(p.65)


저자 : 제이한(J. Han)


광고 및 마케팅 업계에서 브랜드 전략과 소비자 심리를 연구하며 변화하는 트렌드를 분석해왔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깊이 탐독했고, 특히 인문학과 자기계발에 관심을 두고 사유의 폭을 넓히고, 글쓰기를 통해 복잡한 개념을 명확하고 세련된 언어로 풀어내는데 강점을 지니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을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리프레시 기획팀에서 공저로 참여한 ‘군주론’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디어 만나는 천문학 수업 - 블랙홀부터 암흑 물질까지, 코페르니쿠스부터 허블까지, 인류 최대의 질문에 답하는 교양 천문학 드디어 시리즈 8
캐럴린 콜린스 피터슨 지음, 이강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자는 우주에서 왔으며 우리가 다른 행성, 나아가 생명체를 만드는 데 일조한 별빛을 올려다보며 진화했다는 것은 아주 낭만적이고 시적이며 놀라운 일입니다. 별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은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주와 우리의 DNA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비롯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빅뱅의 순간을 거쳐 넓은 우주가 형성되고 별이 서로 충돌하고 생성되고 파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원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즉 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존재, 별의 아이입니다."(p.15)

이 책 『드디어 만나는 천문학 수업』의 〈서문〉(〈들어가며〉)의 일부이다. 우리는 누구나 하늘에 별이 떠 있고 달이 있고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웠다. 우주의 일부인 태양계, 그리고 태양계의 하나인 지구가 우리가 사는 곳이다. 태양은 빛이 너무 강해 직접 보기 어려웠지만 달과 별은 늘 밤 하늘에 있었다. 독자가 '있었다'란 과거형 시제로 표현했지만,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대도시 등 대기 오염이 극심한 곳은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이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젠 굳이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들은 달과 별을 집안에 들여놓았다. 인터넷을 통해 찾으려면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이든 상상이든 영상이든 예전처럼 늘 하늘을 보고, 별과 달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우주’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우주의 문을 열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정보 모음에 그치지 않는다. 태양계, 항성, 블랙홀, 은하, 외계 생명체, 암흑 물질, 빅뱅 우주론까지···. 저자 캐럴린 콜린스 피터슨은 이 책이 "천문학의 핵심 주제를 체계적이면서도 대중적으로 엮은, 쉽고도 밀도 높은 입문서"라고 말한다. 집필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방대한 우주의 흐름을 여행하듯 흥미롭게 풀어내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부터 가장 먼 은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궁금증에 과학적이면서 시적인 언어로 답한다. 수십 년간 천문학의 대중화에 힘써온 저자는 미국 천문학회와 과학작가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과학은 좋아하는 것이 먼저’라는 철학 아래 우주를 시처럼 설명하고 과학을 이야기처럼 풀어낸다.


복잡한 수식 없이 천문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책에는 나사(NASA, 미 항공우주국)이 제공한 공식 이미지를 포함해, 사진 50여 점과 실제 관측 팁까지 담겨 있다. 독자들은 책을 덮는 순간 고개를 들여 별을 보게 될 것이다. 지적 호기심이 깊어질수록 밤하늘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주에 대해 한 번이라도 궁금증을 품은 적이 잆다면, 이 책은 더없이 완벽한 첫걸음이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서문〉 중 「우리는 모두 별의 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세계적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이 위대한 저서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별의 잔해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 부분을 인용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별에서 만들어진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의 몸 또한 별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천문학은 가장 오래된 과학이자 동시에 기술의 최전선에 위치한 놀라운 학문임을 굳게 믿는다. 어린 시절 저자는 미국 작가 막스 에르만의 시 「간절히 바라는 것」에 매료됐다고 밝히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적었다.


너는 수많은 나무와 별들처럼

이 우주에 마땅히 속한 존재란다.

너는 이 우주에서 온 아이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우주와 우리의 DNA는 연결되어 있다. 모든 생명은 빅뱅의 순간을 거쳐 넓은 우주가 형성되고 별이 서로 충돌하고 생성되고 파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원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자는 우주에서 왔으며 우리가 다른 행성, 나아가 생명체를 만드는 데 일조한 별빛을 올려다보며 진화했다는 것은 아주 낭만적이고 시적이며 놀라운 일이라는 저자의 믿음에 독자도 공감한다. 사실 독자는 인류의 진화를 명쾌하게 주장한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생명의 기원'은 밝히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었다. 현대 천문학에서 생명의 기원을 확장해 우주로부터 왔다는 저자 피터슨의 주장이 설득력이 크다는 생각에서 이 책에 대한 신뢰감을 높게 갖는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가장 먼저 만나는 우주, 태양계〉, 2부 〈태양계 너머의 광활하고 놀라운 세상〉, 3부 〈천문학의 흐름을 바꾸고 놀라운 업적을 남긴 인물들〉, 4부 〈우주를 떠다니는 망원경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천문학의 내일〉 등이다. 에필로그 〈별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천문학자입니다〉로 앞 글에서 펼쳐놓은 내용을 더 간단하게 압축하고 특별히 부각시킴으로써 천문학 입문서로의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개념 설명을 넘어 왜 인류가 하늘을 바라보며 존재의 의미를 고민해왔는지, 어떻게 우주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왔는지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들려준다. 저자는 천문학의 기초 개념뿐 아니라 빅뱅의 순간과 블랙홀의 탄생, 항성의 진화와 소멸, 망원경의 발명과 관측 기술의 발전, 학계를 뒤집은 천문학자들의 놀라운 인사이트까지, 천문학이라는 낯선 학문을 한결 가까이 느끼도록 돕는다. 현대 우주 탐사의 최전선 소식을 전달하는 구성도 눈에 띈다. 스페이스X, 제임스웹 우주망원경, 한국 우주항공청 설립 등 동시대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단순히 밤하늘을 연구하는 우주 과학으로서의 천문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꿰뚫어보게 된다. 138억 년 시간과 930억 광년 공간이라는 우주 공간에 대한 설명은 많은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천문학의 발달을 정리하는 듯하다. 

“우주에 생명은 우리뿐일까?”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이 질문은 더 이상 상상이나 공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밝히려는 천문학자들의 탐사와 연구는 실재하는 과학의 최전선에서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SETI 프로젝트부터 드레이크 방정식, 우주생물학, 케플러 미션에 이르기까지 외계 생명체를 향한 과학계의 수십 년간의 여정을 생생한 사례와 함께 따라간다. ‘외계인의 존재’라는 천문학계의 오래된 질문이 단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가 아니라, 지금도 진지하게 탐구되고 있는 현실적인 과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한 웜홀, 시간 여행, 다중우주 등 SF에서 익숙한 개념들을 과학의 언어로 다시 들여다보며, “어디까지가 가능하고, 어디서부터가 환상인가?”라는 질문에 과학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공상과학 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상상이 과학이 되고 과학이 상상이 되는 경계 위에서 펼쳐지는 흥미로운 사고 실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던지는 질문 하나하나는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먼 우주의 어느 지적 생명체와 나누게 될 대화의 주제가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천문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더 멀리, 더 깊은 곳까지 확장시켜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 『드디어 만나는 천문학 수업』은 우주가 멀고 어려운 영역이라는 선입견을 지우고, 호기심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관측의 즐거움을 안내한다. 실전 파트에서는 망원경이 없더라도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관측 팁을 제시한다. 대낮 하늘에서 금성을 찾는 방법, 초보용 망원경으로 목성과 토성의 고리·위성을 관찰하는 요령, 사분의·쌍둥이·페르세우스자리에서 관측할 수 있는 유성우와 일식·월식 일정을 손쉽게 확인하는 법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망원경이 ‘우주의 타임머신’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며 먼 천체를 관측할수록 더 오랜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각인시킨다.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독자로서는 매우 귀중하고도 영감으로도 이어질 매우 구체적 지식의 기초로 판단된다. 

더불어 별을 색·온도·밝기로 분류하고, 헤르츠스프룽-러셀 도표로 항성의 일생을 한눈에 이해하도록 이끈다. 설명은 짧지만 핵심을 놓치지 않아 복잡한 천문학 지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우주 거리와 항성 분류를 빠르게 이해하고, 장비 없이도 하늘을 즐길 배경 지식을 갖추며, 계절별 천체 관측 여행 계획을 미리 세울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시작과 말미에서 우리가 별의 잔해로 이루어진 존재, 곧 ‘별의 아이’임을 부각시킨다. 오래전부터 인류를 비추어 온 별빛이 여전히 우리 삶을 비추고 있다는 메시지는, 독자의 일상에 새로운 경이를 불러일으킨다.


출판사 측에서 책에 담은 〈추천사〉와 〈옮긴이의 말〉도 천문학 입문자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준다. 첫 번째 〈추천사〉는 역자 이강환의 〈옮긴이의 말〉을 대신한다. "최근 스페이스X의 도전과 우리나라 우주항공청의 출범은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인류가 새로운 우주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신호탄입니다. 이제 우주는 몇몇 과학자나 공상가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무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늘을 향할수록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는 더 넓어지고,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더 근원적이고 깊어집니다. 태양계를 넘어 외계 행성과 은하, 블랙홀과 암흑물질, 우주의 기원과 종말까지 우주를 향한 우리의 궁금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습니다.

『드디어 만나는 천문학 수업』은 우리가 몸담은 태양계부터 블랙홀과 안드로메다은하 등 심우주까지, 천문학의 역사부터 현대의 최첨단 우주망원경까지 폭넓은 내용을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풀어냅니다. 우주에 막 호기심을 품은 독자에게 꼭 맞는 친절한 안내서이자 여행서입니다. 그럼, 이 책과 함께 더 먼 우주로 함께 떠나볼까요?"

또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과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 궤도는 "이 책은 겹겹이 쌓인 호기심의 담벼락을 넘기 위한 디딤돌 같은 책이다. 과학의 언어로 우주의 신비를 풀어내고 시인의 시선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한다. 천문학자들의 오랜 사유가 어떻게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머나먼 외계 은하로 나아갔는지, 우주에 대한 인류의 지평은 얼마나 정교하게 확장되었는지 어려운 공식 하나 없이 안내하는 동시에 공들여 잘 만든 다큐멘터리처럼 독자가 천문학이라는 세상을 향해 스스로 걸음을 내딛도록 돕는다.

밤하늘의 빛 하나가 망원경을 통과하며 은하로 확장되는 것처럼, 주변에서 시작된 짧은 궁금증은 이 책을 통해 끝없는 중력 너머의 세계로 펼쳐질 것이다. 천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별을 바라보며 품는 모든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응답이 될 테니까."라며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윌리엄 허셜은 태양 광선을 피해 주변보다 차가운 영역인 흑점을 안전하게 관측할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붉은 필터를 사용한 태양 광선 실험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필터를 통과한 빛을 분광기에 비추어 보니 빛이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열이 느껴졌고, 온도계로 이 ‘보이지 않는’ 빛이 꽤 따뜻하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지요. 이 빛은 스펙트럼의 붉은 빛 너머에 위치했기에 ‘적외선’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p.251) - 「천문학에 일생을 바친 허셜 가: 윌리엄, 캐럴라인, 존 허셜의 삶」 중에서


밤하늘을 관측하기 위해 갑자기 조명을 없애고 암흑 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밤에도 전등과 가로등을 밝혀야지요. 다만 과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필요한 곳에만 조명을 밝히고, 인적 드문 거리의 가로등은 끄는 것도 방법입니다. 불필요한 조명을 끄면, 저 멀리서 아름답게 우리를 밝히는 새로운 조명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인류사를 밝혀온 가장 오래된 조명이지요.

기억하세요,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는 사실을요.(p.362) - 「나가며(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캐럴린 콜린스 피터슨(Carolyn Collins Peterson)


천문학을 수식 없이,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평생을 바쳐온 과학 커뮤니케이터. 미국 천문학회와 과학작가협회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어린 시절부터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먼 우주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키워왔다. 콜로라도대학교에서 천문학, 천체물리학,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대기우주물리학연구소 허블우주망원경 고다드 고해상도 분광기팀에서 8년간 혜성을 연구했다. 그리피스천문대, NASA 등과 협업하며 천체를 관측하고 분석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우주 관련 콘텐츠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로크네스 프로덕션Loch Ness Productions 공동대표를 맡아 각종 과학 다큐멘터리와 팟캐스트를 제작하면서 사람들이 ‘과학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좋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쓰고 있다.


역자 : 이강환


천문학자, 우주기술 기업 ㈜스펙스 이사.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영국 켄트대학교에서 로열 소사이어티 펠로우로 연구를 수행했다. 국립과천과학관 천문우주전시팀장,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정책보좌관을 역임했다. 지금은 천문학 기반의 우주기술 회사를 창업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빅뱅의 메아리』, 『우주의 끝을 찾아서』, 옮긴 책으로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 『아주 위험한 과학책』, 『더 위험한 과학책』 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악의 역사 - 소리로 말하고 함께 어울리다
로버트 필립 지음, 이석호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는 예술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책 읽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면서 누구나 예술에 접근한다. 그러나 독자는 독서와 그림에는 약간의 재주를 보였기에 꽤 관심이 있었지만, 음악은 별로 잘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학문과 예술이란 개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개인적으로 학원 등을 다니면서 따로 배운 사람도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 '공부'라고 생각하고 익혔을 뿐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예술이란 말의 이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이 미술 선생님이어서 그 선생님과 꽤 친했고, 독자가 그린 그림을 칭찬해 주시는 덕에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이 혼자 학교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 옆에서 그림 그리시는 모습을 보고 그림을 조금 더 익혔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음악·미술·문학 등 분야별로 나뉘어 각 담당 선생님에게 각각 따로 배우면서 '예술'의 개념을 비교적 정확하게 인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음악만은 집안 분위기 때문(독자의 부모님은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노래 부르시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것 같다)인지 노래 부르는 것은 늘 친구들에 비해 뒤떨어졌다. 교실에서 합창을 할 때도 입만 달싹거릴 뿐 도무지 자신이 없었던 씁쓸한 기억도 있다. 독자와 음악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어울릴 때 자리는 지키지만 스스로 나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잘 다루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음악 시간(1학년 때 주 1시간)에 5곡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셔서 합창하면서 부르다 보니 조금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2~3학년 때 대학입시를 위해 음악·미술 시간이 빠지는 바람에 다시 멀어지게 됐다. 이처럼 고1때 클래식이라는 서양 음악을 몇 곡 배워 부를 줄 알게 된 것은 대학과 사회에서 매우 유용했다. 서양 음악 몇 곡을 알고 있는 것은 사회 생활에서는 또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젊은 시절엔 유행가를 누구나 듣고 또 부르기도 한다. 유난히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기타를 다룰 줄 알았다. 그러나 친구들과 부르는 노래는 모두 유행가이지 '성악'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즉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술 전공이 아닌 사람이 친구들과 음악을 접하는 것은 대개 대중 음악이다. 고1때 배웠던 5곡의 서양 음악을 안 것은 개인적인 품격을 높여주는 좋은 판단 요소로 작용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사회 생활을 하면서 세계적 화가나 음악가에 대한 책을 가끔 읽었지만 체계적으로 읽지는 않았다. 몇 권 읽었다고 예술의 역사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서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었다. 이때 온라인 서점가에 음악, 미술, 문학 책과 정신의학, 심리학 책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로 화가의 생애나 작품의 해설 등이 많았다. 또 작곡가도 마찬가지다. 가끔 '서양 미술사'나 '서양 음악사'에 대한 책이 있었지만 독자로서는 거기까지 수준을 높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예술 관련 구매한 책이 권수가 한 권, 두 권 늘어가면서 클래식 해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이때는 클래식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읽고 듣다 보니 위대한 음악가들을 다룬 책은 무척 재미가 있었다. 그들의 생애와 작품은 세계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물론 미술이나 문학도 마찬가지다. 

이 책 『음악의 역사』는 세계의 음악사를 의미한다. 클래식에 관심이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이 책은 음악의 기원부터 현대 음악까지 다룬다. 특히 우리가 말하는 클래식은 물론, 재즈와 록, 힙합, 케이팝 등 대중 음악까지도 모두 망라한다. 음악 이야기를 모두 40장(章)에 걸쳐 다루고 있다. 저자 로버트 필립은 1장 「음악의 '무엇'과 '왜'」에서 '음악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우리 인간의 삶에서 '음악'은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 서술한다. 

"우리는 어머니 자궁 안에서부터 이미 음악의 여러 요소를 처음 접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도 태내 15주 무렵부터 듣기 시작한다. 어머니 배 속에 든 아기의 삶을 지배하는 소리는 어머니의 심장이 튀는 소리다. 어머니가 숨 쉬는 소리와 더불어 어머니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언제나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언제나 진행 중인,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활동량에 따라 빨라졌다가 느려지는 두 가지 리듬을 인식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사람들 대부분이 어떠한 종류는 리듬감을 갖고 태어나는 것도 놀랍게 여길 일은 아니다."(p.13~14) 

이어 저자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움직이는 음악은 어떤 힘을 갖고 있을까?를 묻는다. 이렇게 시작한 '음악의 역사'는 세계 각지의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악기와 음악 전통의 특징,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음악의 변화 등으로 확대해 나아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음악이라는 예술 형태를 둘러싼 궁금증은 무척 다양하고 그 범위가 방대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음악의 역사를,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간추려 정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전제한 뒤 지역과 인물, 형태, 악기, 장르 등을 넘나들면서 세계 음악의 역사를 간결하고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이 책은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전통음악부터 중세 성가,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그리고 힙합, 케이팝 같은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변화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또 ① 여러 역사적 사건과 시대 상황이 음악의 발전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② 유명 작곡가들의 삶과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③ 현대의 음악 장르와 그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등을 분석하고 가늠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따르면 전 세계의 청년 인구 중 10억 명 이상이 헤드폰과 콘서트장에서 접하는 시끄러운 팝 음악 때문에 심대한 청력 상실을 겪을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 오늘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늘 자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직간접적으로 음악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 각종 방송매체를 비롯해 매장과 커피숍, 길거리 등 어디를 가도 음악 소리가 들려오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현대인들은 너무 고요하면 오히려 불안해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리듬이 빠른 노래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들썩인다. 그것이 '음악의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에 대해 역자 이석호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기술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중류의 음악사 입문서를 읽고 접해보았지만, 로버트 필립이 쓴 이 책이 유독 빛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비유럽권 음악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 미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특별히 반가울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시장에는제목에 '음악사' 운운해놓고 정작 책장을 펴보면 내용은 '서양 음악의 역사' 혹은 '유럽 음악의 역사'인 책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역적으로 아프리카 대륙, 아랍 문명권, 인도, 동아시아 음악뿐만 아니라, 장르 면에서도 클래식과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록과 재즈, 케이팝까지 흡수합니다."(p.399)


이와 관련 저자가 주목한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 세기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연속성과 문화 간 교류이다. 아랍-이슬람 세계의 마캄, 인도 음악의 라가와 탈라, 중국의 편종과 금(琴),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아프리카의 폴리포니 등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 전통이 다른 지역으로 어떻게 전파되거나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이 책은 아메리카와 유럽 음악의 전통과 변화 양상을 살피는데, 특히 지중해 주변 문화권과 종교적 영향, 그리고 규칙에 따라 기호로 악곡을 기록하는 기보법이 발전하면서 유럽 음악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책에 따르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 열강이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의 찬송가와 아프리카의 노래 및 춤이 뒤섞여 새로운 문화적 혼종 장르로 발현될 기회도 생겨났다. 이는 훗날 형식에 얽매인 유럽 음악의 주도면밀함을 버리고 대중음악에 좀 더 가까워지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이탈리아에서 악기 반주에 맞춰 시를 즉흥적으로 노래로 바꿔 부르는 오페라(극음악)가 성장하여 독일과 영국으로 퍼져나가며, 여러 악기가 개량되고 전문 연주자가 등장하면서 오케스트라라고 부름직한 최초의 앙상블이 구성된다.

17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는 음악가와 관객의 관계, 그리고 음악에 자금을 대는 방식이 크게 변화한 시기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본주의와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후 교회의 권력이 약화되었고, 음악가들은 귀족 궁정을 비롯해 교회 담장 바깥의 후원자를 물색하게 되었다는 것. 또한 상인 계급과 전문 직업인 계층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극장과 연주회장이 늘어났다. 이러한 사회 변화의 바람을 타고 오페라계에는 스타 성악가가 등장했고 카스트라토라는 남성 소프라노까지 양성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이는 변성기에 접어든 노래 잘하는 소년을 거세해 고음역 목소리를 간직한 채로 성인이 되게 하는 잔인한 과정이었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새로운 악기의 등장과 발전, 그리고 기악 레퍼토리의 증가는 연주회 및 가정 음악의 성장과 함께 18세기 후반을 거쳐 19세기까지 이어졌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공공 행사용 관현악곡의 수요가 꾸준했고, 사사로운 목적을 위한 실내악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 그리고 나중에는 피아노를 위한 독주 건반 레퍼토리도 늘어났다.



저자에 따르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여 음악 산업이 본격화되었다. 상설 오페라 극장과 음악학교가 생겨나고 음악 출판업의 규모도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20세기 들어서는 세계사의 격변, 즉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음악의 역사를 새로운 방향을 돌려놓았다. 많은 모순과 적대적 견해가 가득한 가운데 해방된 흑인 노예들(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의해 대중음악 장르가 배태되고 분화되었다. 1900년경 미국과 유럽 전역을 휩쓴 래그타임부터 끈질긴 저항의 느낌을 전달하는 블루스, 약동적이고 즉흥적 연주를 중시하는 재즈까지. 흑인 음악 전통으로 대표되는 20세기의 음악은 저항의 이면에 놓인 분노, 애도, 어리석은 인간의 폭력성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소망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기능했다.

지난 50년간 대중음악의 성장세는 거침이 없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집 안팎에서 언제든 원하는 음악을 즐길 수 있고 인터넷의 스트리밍 채널에 자신이 만든 음악을 업로드할 수 있는 시대다. 기업 가치가 수십억 파운드에 달하는 음악 회사들이 생겨났고, 레코딩 아티스트로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구조도 확립되었다. 음악 양식뿐만 아니라 뮤지션도 가지각색인데다 팝 음악을 즐기는 대중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오늘날의 음악계를 ‘용광로’라고 표현하는 것도 당연하다. 전 세계의 문화가 서양 클래식, 재즈, 팝 음악과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어우러지고 교류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이 건축되고 있으며, 중국부터 베네수엘라까지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서양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 있다. 음악 페스티벌은 전 세계 모든 대륙 출신의 뮤지션들을 초빙하는 것이 기본값이며, 여러 문화권 출신의 뮤지션들이 서양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도 일상화되었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음악을 만들어왔고,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낼 방법을 탐구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건강과 안녕의 본질적인 요소인 음악은 인간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근본적인 형식이길 멈춘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저자는 이에 따라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음악은 늘 우리와 함께 진화해나갈 것이라고 역설한다.


28장 「가정에서, 해외에서 연주하는 여인들」에서 저자는 음악 활동에서 여성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꺼내든다. 독자가 서양 음악에서 여성들은 왜 위대한 음악가와 미술가들은 이름이 별로 없을까?라고 의문을 가진 부분에 대한 답이 나온다. 이 장에서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집단에서는 남성이 전통적인 노래와 연주를 맡고 여성은 애가(哀歌)를 불렀다고 구분한다. 15세기에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여성들은 신분이 높은 빈객을 접대하기 위해 노래를 하고 오르간을 연주했다고 한다. 당시 부유한 상인들도 딸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쳤는데, 단순히 여흥과 교육 차원뿐만 아니라 남편감을 구하는 데 음악이 도움되었기 때문이란다. 유럽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음악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이를 표적 삼아 음악의 잠재적 위험성을 논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 : 로버트 필립(Robert Philip)


음악가이자 작가. BBC 예술 프로듀서로서, 그리고 선임 교수로서 다년간 오픈 대학교와 함께 일해왔다. BBC의 제3라디오와 월드 서비스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면서 진행까지 맡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코렐리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작곡가 68명의 400곡을 흥미롭게 분석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관현악곡 안내서(The Classical Music Lover’s Companion to Orchestral Music)], 20세기 초의 음악 공연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탐구한 [초기 녹음과 음악 양식(Early Recordings and Musical Style)], 오케스트라 음악에 대한 서사시적 연구서인 [녹음 시대의 음악 연주(Performing Music in the Age of Recording)] 등이 있다.


역자 : 이석호


보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을 졸업한 뒤 그라모폰 코리아의 편집 기자를 거쳐 EMI 뮤직의 클래식 부서에서 일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옮긴 책으로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지휘의 발견』,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슈베르트 평전』, 『스타인웨이 만들기』, 『라흐마니노프』 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밭의 파수꾼
도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소설 작품 『마늘밭의 파수꾼』은 마늘밭에 거액의 돈(4억원 정도)의 주인을 둘러싼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늘밭에서 수상한 돈뭉치가 발견됐다면 분명 불법 취득한 돈을 숨겨놓은 것일 가능성이 많다. 아마 궁금해 할 독자들도 있겠지만 '마늘밭의 돈뭉치'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포털사이트에 관련 기사가 엄청나게 많이 뜰 정도로 화제가 된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적 있다. 2011년 4월 10일 전북 김제시의 한 마을의 마늘밭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엄청난 현금(5만원권) 110억 원 가량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신문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해 떠들썩했던 사건이라 한 번 접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현금 규모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였기에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한층 더 호기심을 끌었다. 국민들의 관심도 처음에는 정치적 불법 헌금이나 재벌의 비자금, 아니면 범죄 수익금 등 당시 여러가지 이유로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경찰의 추적 결과 이 사건의 마늘밭은 꽤 넓은 면적이어서 당시 가격인 1억원 정도에 새 주인 부부가 현금으로 매입해 마늘밭으로 일구었다고 알려졌다. 부부는 10개월 간 하루 종일 마늘밭을 일구면서 마을 사람들과도 접촉을 하지 않고 하루종일 열심히 일만 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새 주인의 두 처남과 일당들이 2008년 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불법 도박사이트를 통해 벌어들인 범죄 수익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들은 2008년 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서버를 개설하고 중국 칭다오에 충·환전 사무실을 차린 뒤 홍콩에 서버를 두고 형이 한국에서 기획, 동생이 중국에서 콜센터를 운영하여 자금을 모았다. 확인된 규모만 매출액 1540억 원, 부당이득금은 17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사건 발생 후 대법원은 당시 밭 주인에 대해 징역 1년, 부인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하고 4100만 원을 추징했다. 불법 도박 수익금 110억 원은 전액 국고로 환수되었다. 검거된 작은 처남은 도박장 개설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이미 수감 중이었는데 출소를 단 3개월 앞두고 숨겨놓은 돈을 다 잃은 것이라고 국민들의 묘한 관심과 사사로운 돈 욕망을 드러내는 등 한동안 사건의 후속기사가 따르고, 재판 결과가 대법원에서 확정된 후 거의 국민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붙잡히지 않고 도주한 큰 처남은 출국금지와 더불어 수배된 상태지만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기소중지)고 한다. 사건 직전까지 이씨 부부에게 중국에서 국제전화를 건 기록이 있어 중국에 이미 밀입국한 상태가 아닌가 추정될 따름이다. 환수하지 못한 60억 원의 행방도 아직 알 수 없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사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중장비 기사인데 사건으로부터 10년 후에 나온 후속보도에서 "마늘밭 사건 때문에 삶이 몰락했다"고 토로했으며 경찰이 돈을 유실물이 아닌 범죄수익금으로 봤기 때문에 신고 포상금으로 200만원을 받았을 뿐이고 '조폭이 개입됐다'는 소문 탓에 수년간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한다. 2022년 한 방송사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증인으로 나와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였다. 가족까지 피해를 입을까봐 집을 떠나 외딴 여관을 전전하며 팔자에도 없는 '도망자 생활'을 한참 하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신변보호를 위해 사복 경찰들이 그의 집 주위에서 잠복했고 수화기만 들면 파출소로 연결되는 핫라인도 설치됐다. 개명까지 했으며 총포소지허가증을 받아 산 가스총을 머리맡에 항상 두고 자고 마당에는 도베르만 등 맹견 서너 마리를 풀어 놨다고 한다. 

사람들이 틈만 나면 '포상금으로 수억 원 챙겼냐', '마늘밭에서 빼돌린 돈은 얼마냐'고 묻는 등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고 ‘저 사람 돈을 빼 왔을 거다’, ‘어딘가에 은닉해놨을 거다’, ‘나누어 쓰자’는 시선에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술회했다. 그의 부인도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운영하던 식당도 문을 닫아야 했다. 굴착기 기사도 원래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한 달에 700만원씩 벌었지만 사건 이후 생업을 포기했으며 굴착기는 집 마당에 녹슨 채 방치돼 있다고 한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사건은 대중의 뇌리에서 잊혔지만 그는 스트레스와 분노로 매일 술을 마신 탓에 간암과 대장암에 걸려 투병하는 등 고통받을 뿐이었다. 그를 아는 주변 지인들은 여전히 전술한 질문을 해대곤 하고 심지어 신고하지 말고 그냥 입 다물고 있지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느냐는 말도 심심찮게 한다고 전해졌다. 


밭 주인 부부는 돈 주인 처남으로부터 허락받은 생활비 이상의 개인적인 지출을 2억 4000여만원 더 썼고 이 사실을 처남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워 꾀를 냈다. 바로 그해 초 마늘밭에서 예전 땅주인이 심었던 나무들을 옮기는 일을 해준 굴착기 기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한 것이다. 자작극을 벌이던 중 자기가 쓴 돈 이상의 금액이 모자라다는 것을 안 밭 주인은 굴삭기 기사가 돈을 파갔다고 확신하고 "최근 땅에 묻어둔 17억 원 중 7억 원이 없어졌다. 작업 중 못 보았느냐?"며 그를 불러 협박했다.

허나 알지도 못하는 거액의 돈을 내놓으라는 밭 주인의 협박에 굴착기 기사는 경찰을 불러서 해결하자고 했고 이에 어이없게도 이씨가 응하면서 일이 커졌다. 처음엔 경찰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이들의 얘기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굴착기 기사가 돈이 담긴 페인트통의 위치를 기억해냈고 밭 가장자리의 쓰레기 더미에서 진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돈들도 찾아낸 데다 밭 주인 아들의 차와 금고에서 거액을 추가로 발견한 뒤 뭔가 낌새를 느끼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이 사건의 시작은 마늘밭의 주인 부부가 기사에게 굴착기 공사를 맡기고 일하던 굴착기 기사가 땅속에서 발견된 몇 겹의 비닐 봉투에 쌓인 것을 발견하고, 누군가 몰래 묻은 폐기물쯤으로 생각해 인근 쓰레기장에 버리고 퇴근했다고 한다. 

굴착기 기사를 다시 마늘밭 주인이 찾아오면서 사건의 진상이 서서히 떠오른다. 폐기물인 줄 알고 버렸던 비닐봉투에 4억원이 들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사건이 『마늘밭의 파수꾼』의 저자 도직에게 영감을 준 듯하다. 도박 수익은 아니지만 마늘밭에서 거액의 현금이 발견된다는 점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밭에서 재배하던 작물이 '마늘'로 같다. 이 소설 역시 마늘밭에서 밭을 일구던 유민에게 우연히 발견되면서 사건의 발단이 된다. 저자가 돈의 주인을 추적하는 경찰이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추적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조용한 시골 마을, 마늘밭 한가운데서 주인공 유민은 의문의 돈뭉치를 발견한다. 놀랍게도 그 돈의 주인은 과거에 죽은 줄 알았던 연쇄살인범 장수혁이다.



그는 유민의 연인인 이한의 큰아버지이자, 이한의 아버지를 살해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한에게는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이 큰아버지인 셈이다. 절대 마주쳐서는 안 될 인물과의 조우는 유민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장수혁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이한이 오히려 그와의 대면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촌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이한의 삶도 평탄치 않다. 의사 아버지와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과 수려한 외모로 일약 청춘 스타로 떠오르는 배우였다. 그러나 아버지를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큰아버지 장수혁이어서 매스컴, 특히 사이비 기자들의 먹잇감이 된다. 떠오르는 스타 이한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연쇄살인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큰아버지이니 여론이나 팬들의 열광이 한순간에 비난으로 바뀐다. 방송 출연이 막히고, 그것으로 그의 배우 생명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사건은 잊혀져 가지만, 이한은 다시 유능한 감독의 캐스팅으로 화려하게 컴백한다. 복귀는 했지만 어떤 스캔들에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또 기획사에서도 그의 스캔들 예방을 철저하게 관리하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배우로 재기한 삶도 끝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민을 사랑하는 이한은 유민이 연쇄살인범의 조카인 이한과 연애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다시 큰아버지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추락한다면 다시는 재기하기 힘들다는 기획사의 판단과 이한의 순응으로 유민과의 관계를 철저히 숨긴 채 두 사람의 연애는 지속된다. 아버지를 살해한 큰아버지 장수혁은 추적하던 경찰(재범)에 덜미를 잡혀 극한 격투 끝에 다리에 총상을 입는다. 도주하다 물속으로 떨어져 결국 죽었을 것이란 형사 재범은결국 범인의 사체가 확인되지 않자 경찰 옷을 벗게 된다. 범인을 놓친 것을 원망하고, 큰아버지를 혐오해야 할 이한이 큰아버지에게 보이는 이한의 집착은 도대체 유민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유민이 흔들리는 심리에 따라 사건은 전개되어 나간다. 그의 연인인 유민은 그를 믿고 싶은 마음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의심 사이에서 몹시 혼란하고 집중력을 가질 수 없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나를 이만큼이나 좋아한다니’와 ‘이 사람과 같이 있기엔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라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가 옆에 있기 때문에 더 빛이 나는 기분과 더 초라해지는 기분을 동시에 느껴야 한다니. 너무 잔인하고도 슬픈 일이었다. 나름대로 견고한 유민의 에고를 서서히 갉아먹어 갈 만큼.(p.10)



유민은 이한의 수상한 행적과 장수혁의 생존 등 여러 상황이 겹쳤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과거 장수혁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신재범에게 연락한다. 장수혁 연쇄살인 사건의 진실을 집요하게 추적했지만 끝내 정리하지 못한 찜찜한 결말만 남긴 채 떠났던 그는, 유민의 연락을 받고 마을로 내려와 숨겨진 그날의 비밀을 다시 추적한다. 단순한 우연이라기엔 석연치 않은 정황들이 겹치고, 이 흔적이 드러날수록 유민은 점차 이한이 숨기고 있는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믿고 싶은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유민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한과 장수혁 사이에는 단순한 원한 이상의 어떤 감정이 있는 걸까?

사실 유민은 이 작품의 화자나 다름없다. 이어 벌어지는 사건이 모두 유민의 시선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유민이 밭의 주인이기 때문이지만, 수상한 돈이 발견됨으로써 유민과 그의 집에 얹혀 살던 사촌 동생의 돈에 대한 욕심이 발동한다. 유민의 순간적인 욕심은 인간의 돈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망이기도 하다. 자신이 물려받은 밭에서 갑자기 거액의 현금이 발견된다면 밭의 주인인 만일 주인이 따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당연히 유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욕망 차원에서 본다면 돈의 주인이 유민이 된다는 것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다만 돈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범위 내에서... 신고를 한다는 것 또한 인간의 양심이다. 법적 책임은 주인이 나타난다면 유민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 또한 법으로서도 규정되어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몰래 숨겨놓았다는 것은 떳떳하게 번 돈은 아닐 터 유민은 잠시 욕망과 싸우다 결국 신고할 것을 내심 마음먹는다. 

감정의 균열과 서늘한 진실을 오가는 이 소설은 사랑과 불안, 신뢰와 의심이 교차하는 한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심리 스릴러이다. 집필 슬럼프에 빠지고 완벽한 톱스타 남자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자존감이 무너져 가던 작가 유민이 가진 감정선이나 심리를 좇다보면 연쇄 살인범이 돈의 주인으로 나타나면서다. 유민은 죽은 줄 알았던 연쇄살인범과 마주친다. 유민과 연인 이한, 그리고 이한의 아버지를 죽인 연쇄 살인범은 이한의 큰아버지... 긴장과 반전이 잇따르면서 독자의 시선은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연기하는 거 안 힘들어? 그때 이후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거 별로 안 좋아했잖아.”

아주 예민한 문제다 보니 유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라도 그가 무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됐다.

“이젠 괜찮아. 오히려 연기할 때가 더 편해. 그 시선은 사실 나를 향한 게 아니거든. 배우 차이한을 보고 있는 것뿐이지.”(p.176)



이 소설은 그 사랑의 깊이만큼 커져버린 두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고립된 공간에서의 긴장감, 진심과 거짓 사이에서 오가는 심리 묘사는 마지막 장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한 편의 영화처럼 감정과 진실의 틈을 파고든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마늘밭의 파수꾼』은 장르의 외피를 입은 철학적 질문이자, 사랑이라는 감정의 어두운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심리 스릴러 특유의 서늘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인간 내면의 감정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놓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우리는 비밀의 베일을 잡고 벗겨내려는 유민의 시선을 통해 사랑이라는 경계가 불분명한 감정을 탐구한다. 또한 이 소설은 범죄와 복수, 용서라는 소재를 넘어서 인간관계의 근원적 불안과 사랑의 다층적 면모를 조망한다. 독자들은 숨 막히는 전개 속에서 사건의 진상을 좇으며, 동시에 두 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저자 도직은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해부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연민으로, 그리고 다시 자기기만과 공범의식으로 변질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가족과 사랑이라는 가장 단단해야 할 연결 고리가 의심과 불신으로 균열될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고립되고 상처받는지 세세하게 풀어낸다. 이 책을 덮는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는 한 질문만 남을 것이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파괴하고,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유민아, 진짜 아무것도 묻지 말고 나 한 번만 믿어줘. 내가 이 모든 일 다 수습할게.”

“이 일에 수습을 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는데. 설마 내가 모르는 일이 더 있는 거야?”

“내 개인적인 문제야.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잖아.”

이한은 울컥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눈을 부릅떴다. 습기 찬 목소리와 달리 커다란 눈엔 물방울 하나 맺혀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한은 세상에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 혹은 버거운 자신의 운명에 대해 화가 나있거나.(p.305)


저자 : 도직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

세상 모든 일은 전부 다 사람이라서,

그리고 사랑이라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