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네 안에 숨겨진 힘을 발견하고, 삶을 스스로 창조하라." 19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한 말이다. 현대 서양철학의 문을 연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란 명저에서 "신(神)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버멘쉬(Übermensch)란 독일어로서, 그가 『차라투스트라~』에서 주장한 '초인(超人)'을 이른다. '초인'이란 한자말은 독일어의 뜻을 그대로 직역한 풀이가 아닌가 싶다. 초인이란 말 그대로 '뛰어넘은 인간','인간을 뛰어넘은 인간'이란 뜻인데 형용모순의 모습을 보이지만 마땅한 말이 없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자어이긴 하지만 니체 철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제 강점기였기에 일본 철학계에서 번역한 용어인지도 모르겠다. 순우리말로는 '한사람' 혹은 '큰 사람'이란 뜻이라면 무난하지 않을까? 영어로는 'overman' 'superman' 등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서 니체의 신조어임이 분명해 보인다.
“신은 죽었다”라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공격이나 논박이 아니라 서구의 지성사를 꿰뚫는 선언인 동시에 유럽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것에 가까웠다는 것이 니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으로 독자는 이해하고 있다. 『즐거운 학문』(1882)에서 신의 죽음을 설명하는 한 대목을 인용한다. “사람들은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그의 그림자를 동굴에서 보여주었다.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이 지금 상태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신의 그림자가 떠도는 동굴들은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그림자 역시 정복해야만 한다.” 니체의 이 말은 그가 특정한 종교를 공격하려 했던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이 책 『위버멘쉬』는 니체가 장한 ‘초인’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고 역자 어나니머스(annonimous, 익명)는 밝힌다. 위버멘쉬란 기존의 도덕과 사회적 관습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존재를 의미한다고 책 앞 부분의 〈옮긴이의 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역자는 "위버멘쉬는 외부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모든 고통과 시련을 넘어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초인'"이라고 말한다.
역자에 따르면 『위버멘쉬』는 니체의 대표작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Human, All Too Human)』을 기반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한 고민과 삶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단순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니체의 날카로운 사상을 현대적 언어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 이책은 자기 극복, 인간관계, 감정 조절, 삶을 대하는 태도 등 현실적인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며, 독자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책의 가장 앞에 위버멘쉬의 뜻이 자세하게 적혀 있어 여기에 옮겨본다. "위버멘쉬는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스스로 뛰어넘고, 주어진 모든 고통과 상황을 의지로 극복하면서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최고의 자신을 꿈꾸는 존재다. 그는 낡은 도덕과 관습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자신만의 법칙을 세워 삼을 주도한다. 어떤 고난에 부딪쳐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하면서 모든 한계를 과감히 뚫고 나아간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해 멈추지 않고 도전하는 이, 그가 바로 위버멘쉬다." 니체가 주장하는 초인 사상의 골자는 우리가 철저히 자기 힘으로 삶을 개척하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 『위버멘쉬』는 니체의 정신을 반영해 실천 가능한 조언과 질문을 곳곳에 배치했다.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삶의 선택, 관계 속에서의 갈등, 사회적 기준에 대한 의문을 니체의 시선으로 풀어보며, 이를 어떻게 자기 삶에 적용할 것인지 고민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고 역자는 밝힌다. 이를 위해 니체가 던지는 메시지를 3부 나누어 관련 질문을 메시지와 함께 적었다.. ①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② "당신이 만나는 모든 얼굴이 당신을 만든다" ③ "그대의 시선이 삶의 크기를 정한다" 등이다. 특히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할 준비를 하라고 조언한다. 이 책 『위버멘쉬』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을 뛰어넘는 길을 찾기를 역자는 바란다고 적었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살아가며 수도 없이 무너지고 흔들린다. 하지만 니체는 "진정으로 나를 파괴하지 못한 고통은 결국은 더 큰 힘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왜 이런 아픔이 내게 찾아왔을까?"라는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시련이 내 안에 숨겨진 힘을 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보는 것. 바로 이것이 1부(Part 1)의 핵심이다. 여기서는 자기 극복을 중심으로 실패와 좌절이 어떻게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지 살펴본다. 니체는 단순히 '극복하라'는 강요를 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런 순간만다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2부는에서는 인간관계와 감정을 다룬다.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기쁨과 동시에 겪게 되는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니체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관계가 때로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이 가진 가치를 다시 발견하근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사랑, 분노, 복수심, 연민처럼 우리가 자주 마주하는 감정을 니체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며, '결국 내 감정과 행동의 주인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이 장의 핵심이다.

분노는 위험하고 파괴적인 감정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스스로의 한계를 깨뜨리는 강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반면, 공감은 상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능력이지만, 지나치게 몰입하면 오히려 내 삶의 중심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 니체는 감정은 그 자체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며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느냐이다. 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 타인의 기대가 아니라 내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 장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고 역자는 안내하고 있다. 마지막 3부에는 개인과 타인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해 보자는 제안이 담겨 있다. 우리는 도덕, 법, 관습, 선과 악 같은 것들을 마치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니체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것이 절대적인 진실인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시대와 환경이 만들어낸 규칙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 질문들은 결국 우리가 세상을 더 유연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3부에서 강조하는 "내 시선이 곧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메시지는, 스스로 가능성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역자는 말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할 것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순간, 삶의 방향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니체의 사상은 흔히 강하고 날카롭고 때론 가혹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메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독설과 도전은 결국 인간이 더 자유로워지고, 더 멀리 나아가길 바라는 강렬한 열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고 역자는 강조하고 있다.
"절망과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니체는 결코 쉽고 달콤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내 안에 있는 힘을 직접 발견하고, 그 길을 열어 보라"고 권유한다는 것이다. 그 길은 언제나 고독과 시련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진 고통과 상황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반드시 길이 있다고 믿는다면, 넘어서는 순간 원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역설하는 니체가 보인다고 역자는 말한다. 이 책이 삶이 주는 모든 경험을 내 편으로 만들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독자가 이 책 『위버멘쉬』를 읽고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경이롭다'이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니체의 철학 사상은 한 마디로 정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독자 나름대로 핵심어로 표현한다면 '극기' '도전' '포용'이다. 니체의 저서에서도, 해제 글에도 잘 등장하지 않은 단어를 채택한 이유는 이 책의 분류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니체는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는 쇼펜하우어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실제 니체는 자신의 저서에서도 언급했다. 인간에게는 삶을 지속하는 동안 어차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며, 이에 맞서 이겨내는 힘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강한 나'를 만든다는 내용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고통들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강한 나'여야 가능하다. 그런데 강한 나를 만들려면 우선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부정적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극기'다. 니체의 해설서에는 자기 극복, 인간관계, 감정 조절,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주제로 나누어 니체를 설명한다. 이 책 『위버멘쉬』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우리가 흔들릴 때, 고통을 마주할 때, 타인의 시선에 얽매일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니체의 사상을 통해 조명한다. 특히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유명한 문장을 강조하며,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를 초월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최종적인 결론은 독자가 직접 내리도록 유도한다. 이는 니체 철학의 핵심인 자신만의 가치 창조와도 연결되며, 『위버멘쉬』가 단순한 철학서가 아닌 삶을 위한 안내서로 기능하는 이유다. 철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역자의 말도 이해된다. 『위버멘쉬』는 우리 삶 속에서 니체의 사상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기존 철학서를 어려워했던 독자들에게도, 자기 자신을 넘어 더 높은 곳을 향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강력한 영감을 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면, 『위버멘쉬』가 그 첫걸음이다. 이 책의 내용이 답이라는 의미다.

이 책에 있는 몇 개의 내용을 여기에 적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11번째 「인생은 태도에 달려 있다」는 아주 간단한 문장이다. "우리는 종종 사소한 일에도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이 일이 벌어진 게 무슨 뜻일까. 혹시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걸까 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삶은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다. 당신이 어떤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우연히 길에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서, 그 만남이 무조건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소중하게 만드는 건 당신의 선택이다. 그렇다고 너무 깊이 고민하지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 보내지도 마라. 세상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당신의 태도에 따라 끝없이 변화한다."(p.42)
「우리에게 중요한 건」이라는 113번째 글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랍ㅁ은 없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고, 실수하고, 후회하며 산다. 하지만 중요한 건 흠 없이 사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것이다. 남과 비교해 가치가 정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빛날 수도 있고, 흐려질 수도 있다. (중략) 때론 넘어지고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오직 나만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삶의 방식을 지켜나가는 게 무엇보다 소중하다."(p.253~254)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