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출가(出家)'란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성자(聖者)의 수행 생활에 들어감'이라는 뜻의 불교 용어로 주로 쓰인다. 즉 일반 신도와 달리 절에 들어가 수행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세간을 떠나서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불교든 가톨릭이든 위대한 종교에 귀의한다는 것은 매우 신성한 일이다. 종교에 귀의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보다는 종교인으로서 종교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자 종교에 대한 맹세이기도 하다. 우리는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돼 삼국이 모두 불교 국가가 됐다. 이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통일신라시대뿐만 아니라 고려에 이르기까지 불교 국가로서, 불교는 나라의 이념이자 사상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성리학(유교)을 토대로 한 유교 국가로 거듭 태어남으로써 고려 왕조를 지탱했던 불교는 탄압받기 시작했다. 이때 절(사찰)은 도성은 물론 큰 도시에 있지 못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유교 국가에 대한 도피인 셈이다. 어쩌면 불교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조선 500년 간 불교는 산속에서 숨죽여 지냈다. 불교가 이어져 온 것도 신기할 정도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스님이 나라의 큰일을 맡은 적도 없고, 실제 등용하지도 않았다. 다만 임진왜란 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스님들이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 들어가 왜적과 싸웠지만 조선 조정은 특별히 불교에 대한 어떤 시혜도 베풀지 않았다. 이런 불교 배척의 국가 기본 정신은 일제 강점기에도 유지되었다. 우리와 달리 국민 대부분이 불교 신자라는 일본은 왜 한국의 불교를 해방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다소 의심스럽긴 하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불교와 기독교는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 1, 2위를 차지했다. 물론 나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불교 신자의 수를 앞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국민들 마음속에 불교는 여전히 정신 수양과 마음을 의지하는 가장 큰 종교이다.
불교에서 가장 큰일 중의 하나가 스님들의 입적(불문에 적을 올림)일 것이다. 훌륭한 스님들이 많이 나와야 불교의 계승은 물론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200년 동안 스님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과거에 급제하는 일보다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독자는 갖고 있다. 나라에서 탄압하는 종교에 누가 스스로 들어가겠는가? 스스로 나라의 근본 이념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때이니 말이다.

이런 의식은 해방 후에도 여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님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절이었지만 우리가 산업화되기 이전에는 불교 신자도 줄었겠지만 스님들의 숫자도 줄었을 것이다. 전체적 숫자는 늘었을 수도 있지만 기독교의 성장과 불교는 여전히 스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도심서 멀리 떨어진 험준한 산속에 있으니 자주 만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절에도 자주 갈 수 없는 형편에다 스님들마저 자주 만나기 어려우니 선뜻 불교 신자라고 말하기도 쑥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간혹 시주승들이라도 만나면 스님들에대 대해서 반색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어쩌다 젊은 스님이 세상에서 뜻을 펴고 잘살지 절 속으로 들어갔을까? 하는 안타까운 눈초리가 남아 있었다. 지금이야 사회의 분위기나 경제적 여건이 훨씬 좋아져 절에도 가고 싶으면 훌쩍 차 몰고 다녀오면 그만이고, 또 스님들의 활동도 활발해졌기에 그런 눈초리는 거둬들였지만...
이 책 『우리는 왜 스님이 되었을까』란 표제어에서도 사뭇 불교나 스님에 대한 '안타깝고 비밀스러운 과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요즘은 시대가 달라졌는데 왜 스님들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불교 신자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세상인데 표제어를 보는 순간 당연히 '스님에 대한 비밀스러움'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를 테면 비구에 대해서는 집안이나 개인적 불행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도피처로 택했다는 의문이다. 또 비구니에 대해서는 실연의 아픔이라든지 집안의 폭력 등 '말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독자도 얼마 전까지 스님들은 뭔가 개인적인 비밀스러운 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두 스님의 말을 통해 '출가'나 '스님', 나아가 불교에 대한 기존의 안타까운 의혹을 풀어준다. 인해 스님(이하 인해)과 명오 스님(이하 명오)이 같은 주제로 자신들의 불교 입문부터 현재의 위치까지 사생활들뿐 아니라 불교에 대한 당초 인식도 남김없이 풀어놓음으로써 아직도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편견의 대상이 되는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준다. 독자 역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스님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바꾸었다. 불교계는 여러 스님들이 책과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해 자주 얼굴을 내밀고 부처의 말을 전하는 등 세계의 위대한 종교다운 면모를 보여주기에 한 점의 의심도 없었지만 스님 개개인에 대한 희미한 의혹들은 말끔하게 지워지지는 않았었다. 저자인 두 스님은 출가는 자신을 찾고, 나아가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한 수행의 길이다. 선택받은 자들만이 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용기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열린 길이라고 말한다. 독자의 가슴 한쪽에 남아 있던 불교와 스님에 대한 편견이 해소된 계기가 됐다.

책을 펴낸 출판사 측도 독자들에게 낸 소개글에서 그 옷의 무게는 무겁고 그 길은 외롭고 쉽지 않아 보여, 보통 사람들은 스님을 보면 “왜 출가하셨어요?”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나온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대체 어떤 우여곡절이 있어서,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있어서, 머리를 깎고 그 외로운 길을 걷게 되었을까 궁금해한다고 말한다는 것. 아마 사회적 시선이 아직 독자가 인식하는 것처럼 완전히 편견이 가시지 않은 듯하다. 지금 인해는 통도사 승가대학 학장, 경오는 동힉사 승가대학 학장이다.
이들 통도사와 동학사 승가대학 학장들이 직접 전하는 출가의 길이 이 책 『우리는 왜 스님이 되었을까』의 주제이다. 이 책은 출가의 의미와 과정, 그리고 수행자의 삶을 담은 감동적인 이야기다. 출가자의 진솔한 고민과 성장,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수행 속에서 발견한 행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통도사 학장 인해와 동학사 학장 명오의 경험을 통해 독자들은 ‘출가’라는 특별한 선택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통도사 승가대학 학장, 인해의 출가는 ‘나에게 꼭 맞는 옷’이었다고 자신의 출가에 대해 말한다. 맞춤옷을 지어 두고 기다린 듯이, 옷감을 잘 재단해서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 스님에게 아주 잘 맞는 출가라는 옷을 입었다. 인해는 출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출가는 단순히 머리를 깎고 사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선택의 과정이며, 나아가 모든 중생을 위한 깨달음의 길을 여는 위대한 첫걸음입니다. 세상의 번뇌와 미혹에서 벗어나 ‘나는 누구인가’를 간절히 찾는 길입니다. 출가의 길은 보살도를 실천하는 길이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참된 수행의 여정입니다. 길 잃은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찾아 나서듯, 망설임 없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출가의 본질입니다."
인해는 「출가는 무엇일까?」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깨끗한 마음과 생각으로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면 자연스럽게 깊은 행복이 따라 옵니다. 늘 법과 하나 되어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볼 수 있게 될 때, 출가는 열매를 맺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씨앗을 뿌릴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인다. 초등학교 때 당시 고등학생이던 큰누나를 따라 마산 정법사 불교학생회에 다녔다고 한다. 누나 친구와 선배들의 유일한 간식이었던 빵과 과자가 맛있어 어린이 여름학교에 다닌 게 큰 출가의 동기가 되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부처님 말씀보다 빵이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솔직·순수함은 독자들의 미소를 드러내게 한다.

위로 언니 두 명이 비구니스님인 명오의 어릴 적 ‘장래희망은 스님’이었고, 출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인연이었다고 한다. 출가를 방해하는 여러 핑계를 스님의 발심(發心)이 이겼고, 자유로운 출가 수행자의 삶을 선택했다. 명오는 「출가는 무엇일까?」란 제목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출가 생활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절은 상상 이상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곳이었고, 스님들은 멋스러웠다. 출가 수행자의 본(本)이 되어준 많은 스님이 그랬다. 속가를 떠나온 나를 구속할 사람은 누구도 없고, 나 자신과 대면할수록 성장하는 나를 느꼈다. 자유와 행복, 출가의 백미이다. 참 좋다. 수행법은 다양하고, 내가 선택해서 잘하든 못하든 묵묵히 가면 된다. 싫으면 싫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불법(佛法)에서는 모두 다 공부 아닌 것이 없다. 손해가 미덕이고, 가난이 공부의 살림살이가 되는 것이 출가 수행자의 삶이다."(p.5)
명오의 가족관계는 독특하다. 언니 셋과 귀한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이 책 「언니들의 출가」란 제목의 글에서 큰언니를 언급하고 있다. 굉장히 엄격한 유교적 분위기의 집안에 시집 온 엄마가 위로부터 연달아 딸을 셋 출산한 모양이다. 남편이자 명오의 아버지가 집안의 종손이다 보니 제사만 해도 일년에 열한 번, 제사를 지내면 동네 사람들에게 식사를 베풀었다. 엄마의 고된 시집살이를 가장 가까이서 보며 자란 큰언니는 일치감치 책에서 부처님을 만났고 수행자의 삶을 동경했다. 언니는 출가를 꿈꾸면서, 오직 남동생이 태어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큰언니가 열일곱 살 때, 엄마는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 삼 년 후, 언니는 설날을 코앞에 두고 책상 서랍에 편지 한 장 남기고 입산했다.
가족의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더욱이 유교 분위기 집안에서 스스로 입산해 절로 가버렸으니, 충격보다 오히려 집안 망칠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전국의 비구니 도량으로 맏딸을 찾아 나섰지만, 허탕 쳤다고 한다.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슬픔을 토해내던 아버지의 노랫가락과 젖은 눈에 온 가족은 함께 울었다. 큰언니가 비구니가 된 것이 그토록 슬퍼할 일인지 생각할 새도 없었다고 명오는 적고 있다. 남은 가족들은 모두 세상을 잃은 듯, 딸이 죽기라도 한 듯 상실감에 빠졌다. 그 비통함은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슬픔이었다고 명오는 책에서 회고하고 있다. 사실 어렸던 명오가 출가할 때는 반드시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홉 살에 알았다고 한다.

이들 두 스님이 각자 다른 이유로 출가해 학장 스님이 되었지만, 이들은 ‘출가 수행자’의 길을 일찍이 고민하여 알아차리고, 기꺼이 즐겁게 행복하게 수행자로서의 대자유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책은 기록하고 있다. 출판사 측에서 '출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는 이유는 이 책의 표제어와 무관치 않다는 점을 명오의 출가 이유에 대해 말할 때 뚜렷이 드러난다. 출가는 폭탄처럼 가족에게 슬픔과 충격을 주었지만 나중엔 유교 집안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는 역할을 했다. 물론 스스로 불교 수행자가 된 스님 자신이 우수한 수행자였기에 가능했겠지만 가족 관계와 집안의 분위기를 바꿔놓기도 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출가는 가족 관계의 변화의 시작이다. 한 가정의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딸’에서, 부모가 지어준 이름과 부모가 준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선택한 출가 수행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집을 떠나 진리를 찾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불교 수행자의 마음가짐과 출가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 책은 두 스님의 출가에 대한 솔직한 고백으로 막연한 거리감을 해소하고,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단순히 종교적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본질을 찾는 두 스님의 이야기이다. 수행자의 삶을 통해 발견한 자유와 행복, 그리고 세상에 대한 헌신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책에서도 두 스님의 수행 과정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담담하고 꾸밈없이 진솔한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과장되거나 화려한 이야기는 없다. 오로지 수행하고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독자들의 감동이 나온다. 불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게 절에서 주는 빵이 맛있어서 큰누나를 따라다니다 멀쩡하게 대학까지 잘 졸업한 인해가 출가를 결정하고 어머니에게 결심을 말하려고 찾았을 때 어머니의 반응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오히려 차분히 반기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다른 집은 아들이 출가한다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는데, 난리(?)는커녕 오히려 출가를 권장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는데 독자 또한 놀랍다. 인해는 삭발하던 날 감정을 글로 남겼다. 눈물을 펑펑 쏟은 사람이 많다는데 자신은 아쉬움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이었다고 술회한다. 다만 삭발을 마치고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인 세숫대야를 들고 세면장으로 가서 거울을 볼 때 깜짝 놀랐다고 한다. 웬 비구니가 있었다고 말해 독자들을 빙그레 웃음 짓게 한다.

스님 중에서도 승가대학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을 '학승(學僧)'이라고 통칭한다는 말을 TV에서 들은 바 있다. 이 책의 저자 두 스님은 학장이니만큼 성적이 우수했을 것이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인해의 경우 불교 공부를 위해 '유학기'의 에피소드도 곁들여져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계보를 잇고 잇는 뉴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와의 만남 ,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학원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주거지 전화벨 소리에 가서 받아보니 다급했던 저쪽의 목소리. "스님, 다행입니다. 어서 TV를 틀어보세요." TV를 켜니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비행기 충돌로 불타고 있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중계된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날 TV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그랬듯,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장면이다. 2001년 9월 11일. 뒤늦게 자신의 행선지가 바로 사건 현장이었음을 깨닫고 갖가지 생각이 흘러간 다음 자신도 모르게 되뇌인 말 "나무 관세음보살"이었다.
동학사 학인들은 공부를 좋아한다. 책 보기가 싫었어도 동학사만 오면 변한다는데 문필봉의 마법 같은 전설 때문일까. 오후 4시 방선을 하고, 대방 문을 열고 댓돌의 고무신을 신으려는 찰나 경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광경을 보는 그 순간, ‘문리(文理)가 트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큰 소리로 열심히 경책을 읽으면 문필봉에 닿아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면서 ‘문리가 트인다’는 것이다. 나는 빨래터에 올라가 문필봉과 정면인 포인트를 찾아 화답을 고대하며 〈치문(緇門)〉을 읽고 〈서장〉을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그랬더니 목이 쉬고 또 쉬더니 목소리만 점점 커졌다. 오후 4시 방선 죽비소리에 떨리는 가슴으로 대방을 나가 보면, 가지런히 놓인 ‘조선 나이키’ 흰 고무신에는 빨간색 ‘태화 고무 말표’만 선명했다. 문필봉과 고무신의 화답은 일어나지 않았다.(p.199)
저자 : 인해
통도사 승가대학 학장. 통도사에서 요산 지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해인사 강원과 조계종립승가대학원을 졸업, 국사편찬위원회 사료과정을 수료했다. 이어 동국대학교 선학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요산 지안 대강백으로부터 전강傳講을, 관허 수진 대율사로부터 전계傳戒를 받았다. 사단법인 가야문화진흥원 초대 이사장, 동국대학교, 해인사, 수덕사, 동화사 승가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통도사 김해포교당 바라밀선원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는 《달마대사의 소실육문》, 《우리말 법화경》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남종의 선사상 연구〉, 〈혜능의 좌선관〉 외 다수가 있다. 제31회 대한불교조계종 포교대상 원력상을 수상하였으며, ‘쉬운 경전 편찬 작업’을 통해 관심 있는 이들이 어렵지 않게 경전을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번역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자 : 명오
동학사 승가대학 학장. 동학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이어 동국대학교에서 선학과·영문학과(학사), 호주 시드니대학교 종교학과 석사, 은해사 조계종립승가대학원 수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요산 지안 대강백으로부터 전강, 관허 수진 대율사로부터 전계 받았다. 동학사 승가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강사이다.
역서 《대승기신론열망소》로 제1회 반야학술상 저역상, 저서 《붓다의 입멸 에피소드 연구》로 제19회 불교출판문화상에서 올해의 불서 10 선정 및 붓다북 학술상을 수상했다. 논문은 〈초기불교 병인론과 대승불교 사경 공덕 및 심신치유에 관한 연구〉,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열반경》에 나타난 재가불자의 계율 사상 연구〉 등 다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