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보지 말 것 - 미니어처 왕국 훔쳐보기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 그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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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열어보지 말 것』에서 가장 중요한 물상인 '상자 속 미니어처 왕국'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어릴 때 많이 읽었던 동화 속 세계를 그리는 소설 같은 느낌이다. 요즘은 우리가 읽었던 동화 중 상당수가 '잔혹 동화'였다는 사실이 동심의 세계를 와장창 깨뜨렸지만···, 판타지 소설로 멋진 세상을 그리는 것은 동심이 아직 남아 있어서일까? 여전히 독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판타지가 아니더라도 독자 입장에서는 관계 없다.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처럼 신비감은 오히려 증폭되니까.

이 소설 작품은 현실과 환상이 맞닿는 문턱에서 시작된다. 폭우 속에서 주운 상자 속 ‘미니어처 왕국’을 들여다보는 소년의 이야기부터 흡혈귀의 기억, 멈춰버린 평원, 기묘한 로봇과 불사의 약, 그리고 알 수 없는 대륙 너머로 떠나는 여정까지···. 세계관을 공유하는 소설 속 여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독립적인 서사를 품고 있지만 정교하게 맞물리며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시작은 작은 상자 하나이지만, 현실과 비현실, 관찰과 개입, 성장과 상실이라는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세계관을 밀도 있게 쌓아 올리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일본의 스타 소설가이자 이 작품의 저자 쓰네카와 고타로는 마치 정교한 축소 세계를 조립하듯 판타지적인 상상력과 심리적 섬세함을 오가며 다층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단순히 환상이나 탈출의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계를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라는 평가는 이미 출판사 소개글에도 있다. 여섯 편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연결하는 서사의 조각들은 현실의 답답함을 해결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묻는다. ‘관찰자’로 머물 것인가, ‘변화’의 일원이 될 것인가?

이 책은 6장(章)과 다섯 개의 '이야기의 조각'이 연속적으로 되풀이되며 전개된다. 이러한 형식은 신비감이나 환상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소설의 끝까지 이어 나가는 데 매우 유용하다. 책 표지는 물론 앞 부분의 일러스트는 환상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매우 간단한 표제어 '열어보지 말 것' 역시 신화적 요소와 맞물리며 궁금증을 한껏 끌어 올린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여섯 개의 장은 〈상자 속 왕국〉, 〈스즈와 긴타의 은시계〉, 〈단시간 접착제〉, 〈통찰자〉, 〈내추럴로이드〉, 〈끝없는 대륙, 불멸의 야차〉라는 제목으로 더욱 신비로운 느낌이다. 각 장의 끝 부분에 이어지는 다섯 개의 '이야기의 조각' 역시 각각의 제목을 갖고 있다. 「흡혈귀의 여행」, 「정지된 평원」, 「가이다 사이이치로의 아침」, 「팬레터」, 「땅끝에서 미지의 세계로」 등이다. 

소설은 작고 평범한 상자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소년은 어머니를 잃었던 어느 폭우의 날, 진흙더미 속에서 나무 상자를 하나 줍는다. 그런데 그 상자 속에는 정교하게 움직이는 세계가 하나 존재한다. 숲과 마을, 사람, 성, 그리고 용과 흡혈귀까지. 미니어처 왕국처럼 보이는 그 세계는 실제처럼 살아 숨 쉰다. 처음에 단순한 관찰의 대상에 불과했던 그 세계는 점차 소년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고, 곧이어 다른 인물 ‘에카게 구미’를 통해 진짜 전환점을 맞는다. 과 연… 우리는 상자 속 세계로 들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서사를 풀어낸다. 그리고 다섯 개의 조각 이야기들이 이 모든 서사를 엮어 하나의 세계관으로 완성해 낸다. 각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읽히나 서로의 파편을 반사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구성한다. 독특하면서도 유기적 구성이다. 특히 상자 속 세계의 흥망과 혁명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마치 우리가 사는 사회의 구조나 윤리, 권력을 반영하는 듯하다. 어쩌면 저자가 현실감을 불어넣기 위해 집어넣은 듯하다. 일본의 스타 작가이자 이 소설의 저자 쓰네카와 고타로는 이 모든 것을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관찰만 하던 인물이 결국 변화에 개입하고, 상자 속 미니어처 왕국은 더 이상 모형 세계가 아닌 거대한 서사의 무대로 확장된다.


이 소설 작품은 작은 것을 열었을 때 일어나는 세계의 균열과 진화를 담아내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진정한 울림은 단지 환상적인 설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책의 제목은 ‘열지 말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곧 알게 된다. 상자를 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결국 모든 이야기는 작게 열린 틈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작은 상자로부터 하나의 세계가 태어나고, 발전하고, 붕괴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그려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정교하게 꾸며진 상자 속 모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 권력 구조와 계급 질서, 저항과 억압이 자리한다. 미니어처처럼 보였던 세계는 곧 ‘살아 있는 왕국’이 되고, 우리는 그 흥망성쇠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 상자를 통해 문명 단위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환상 세계를 마치 역사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설계해 낸다. 판타지 장르에서 보기 드문 ‘세계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은 서사’다.

작품의 주요 전환점은 에카게 구미라는 인물을 통해 발생한다. 관찰자였던 주인공의 시선은 그녀의 행동을 따라 적극적인 개입의 방향으로 바뀐다. 현실에서 폭력과 외면에 시달리던 에카게는 상자 속 세계로 들어가 민중을 조직하고, 왕권을 몰아내며, 결국 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봉기에 앞장선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움직이지 못하니 불쌍하다, 삶을 살아갈 수 없으니 불쌍하다, 저들도 움직이고 싶을 텐데, 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시간이 정지된 자들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뇌파도 사고도 없으니까요. 저들의 입장에서는 고통도 불행도 없는 셈이죠.”(p.169)


붕괴는 우리가 흔히 비슷한 구조의 소설에서 보아왔던 영웅 서사라기보다 문명의 재구성에 가까운 느낌이다. 이와 유사한 감각은 마지막 장 「끝없는 대륙, 불멸의 야차」에서도 반복된다. “문명이 정점에 달했을 무렵, 세계의 종말이 가까워졌다. (중략) 음악도, 문학도, 건물도, 조각도. 유일하게 기계 생명치엔 시그마만이 그 모습을 관망했다.” 

이 문장은 인간이 구축한 세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걸 덤덤하게 바라보는 소설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 책은 결국 작은 상자 안에서 하나의 문명을 일으키고, 해체하고, 다시 쓰는 이야기다. 작가는 단지 인물을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자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멈추는지를 거시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상자는 유한적인 공간에 불과하지만, 동시에 구조이며, 그 안의 변화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비춘다. 왕국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는 작은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완성된 세계의 흥망사라는 것을 말이다.

이 책 『열어보지 말 것』은 표면적으로 이세계 판타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보는 자’와 ‘믿는 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섯 편의 단편에는 각기 다른 기묘한 물건이 등장한다. 

상자 속에는 친절한 흡혈귀와 용이 사는 왕국이 펼쳐진다. 시간을 이동하는 시계, 자아를 가진 로봇, 불사의 묘약. 신들이 잃어버린 왕국 속 물건이 우리의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스위치를 가진 자만이 볼 수 있는 상자 속 미니어처 왕국. 연결된 세계관을 따라 맞춰지는 이야기의 조각! 미지의 세계, 끝내 단 한 곳을 가리키는 여섯 편의 모험담! 이 물건들은 단순한 환상 장치가 아니라 ‘인간’에게 경계 너머의 세계를 ‘보는 능력’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은 마냥 축복이라고만 할 수 없다. 오히려 질문에 더욱 가까울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은 무언가를 본다는 관점보다는 행동이 더 깊은 윤리적 혼란을, 그리고 세계의 질서를 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은 신의 선물처럼 보이는 물건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보았는가?’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보다는 '이세계'의 작동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믿는 자들은 물건을 쟁취할 수 있고, 그것을 쟁취하여 '이세계'의 그림자를 본 자만이 흔들린다. 이 소설 작품이 무섭도록 집요하게 파고드는 건 보는 자, 그리고 믿는 자의 불안정한 마음이다.

그러니 결국 이 세계라는 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결핍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기묘한 물건들이 열어젖히는 세계는 환상적이라기보다 해석 불가능한 현실의 거울에 가깝다. 상자, 시계, 로봇, 묘약 등은 모두 인간의 결핍을 확대할 뿐이다. 기묘한 신의 물건들은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 보는 자는 점점 말을 잃고, 믿는 자는 끝내 자신을 잃게 되는 이야기의 장이 여기에 있다. 

이 소설은 무언가를 초월하는 판타지적인 서사라고만 단정 지을 수 없다. '이세계'는 멀리 있는 미지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끝내 이해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뒷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장을 덮을 때쯤, 이 책은 질문을 한 가지 남긴다. “당신은 그것을 믿는가? 아니면 단지, 보고만 있는가?”


“시간은 지금부터 일주일 주겠네. 일주일이 지나면, 상금 이야기는 없던 일이 되는 거야. 그리고 그 뒤에 내가 자네의 방이든 어디든 상자를 발견한다면, 그땐 어떤 핑계를 대도 소용없어. 자네는 범죄자니까. 나는 ‘발견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보상을 할 테지만, ‘훔친’ 사람에게는 아주 지독하게 대할 셈이거든. 만일 경찰이 개입한다면 고등학교는 꿈도 못 꾸겠지. 자넨 퇴학이야. 그러니 신중하게 선택하게. 모두가 불행해질 선택은 나도 바라지 않아.”(p.46)


“모든 생물이 죽음을 맞이하고 세계가 어둠에 잠기고 나면, 파괴의 혼돈기가 시작돼. 지각 변동이 일어나지. 땅이 갈라지고, 산은 무너지고, 생물은 이미 멸종되고 없는 상태에서 문명 역시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미증유의 지각 변동과 폭풍이 계속될 거야.”(p.401)


저자 : 쓰네카와 고타로


1973년 도쿄에서 태어나 다이토분카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여행을 하면서 프리터 생활을 했지만, 데뷔작인 『야시』로 '놀라운 발상 전환의 재능을 가진 작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2005년 제12회 일본호러대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 2005년 데뷔작 『야시』는 제134회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는가 하면 제12회 일본호러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짧은 소설은 호러 소설보다는 환상소설에 가깝다는 평가를 들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가 소설 속에 담고 있는 세계는 무엇인가를 사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기괴한 공간임과 동시에 현실과는 너무도 다른 신비로운 세계이다. 그래서 책을 놓은 후에도 그 기이한 세계에 대한 깊은 이미지를 각인하게 되는 그만의 상상력과 그것을 펼쳐내는 전개력에 독자들은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도 다른 이야기, 그것을 통하여 미로처럼 헤메이는 우리의 욕망과 운명을 그려내고 있는 작가이다. 

스티븐 킹과 미야자와 겐지를 좋아하는 그는 두 번째로 쓴 장편 『천둥의 계절』로 2006년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가을의 감옥』은 2007년 제29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에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고독'을 테마로 다룬 작품집으로, 작가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다층적인 시공간으로 확장되며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초제』는 제22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후보에 오르는 등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금색기계』는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거쳐간 미스터리 분야 최고 권위상인 2014년 제6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완벽하게 새로운 세계의 판타지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멸망의 정원』은 한 해 동안 출간된 문학 작품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에 시상하는 2018년 제9회 야마다 후타로상 최종 후보로 선정된 작품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놀라운 세계관을 보여주며, 평단의 인정과 독자의 지지를 동시에 끌어냈다. 대조적 세계관을 제시한 것은 물론, 긴장감과 감동까지 더한 전례 없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현재, 호주 여행에서 만난 아내와 함께 오키나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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