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서윤빈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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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유례없는 폭우와 기록적인 폭염. 인류 존속의 위기라고 구호처럼 외치던 일들이 지구촌을 덮치고 있다. 가끔 벌어지는 이상 기후가 아니다. 나라 안팎이 온통 기후 재앙으로 지구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현실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젠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계절의 구분도 무색하다. 기후 재앙이 일상이 된 세상이다. 그래도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처절한 각오로 지구촌 인류는 삶을 영위하는 형국이다. 이 책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는 Cli-fi SF(기후 소설)로 새로운 장르로 분류된다. 기존의 '기후 재난'이란 과학 소설(SF) 가운데 가장 핫한 장르가 된 듯하다. "기후 위기는 지금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최대 재앙이다"는 경고를 수십 년 전부터 지적되었지만 정작 마땅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 기후변화협약 등 수많은 기후 위기를 대처해 어느 정도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다. 특효약 없는 질병처럼 느껴진다.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란 예측에 아연실색하면서도, 인간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을까?란 질문에 '할 수 있다'는 답변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미 해수면 상승으로 도시의 절반이 물에 잠기고 있는 도시들이 현실에도 있다. 인도양의 휴양지 '몰디브'와 태평양의 투발루·나우루·키리바시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조금씩 그 면적은 넓어진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내린 것뿐만 아니다. 태평양의 비는 훨씬 더 자주, 오래, 거세게 내린다. 수증기 양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제 장화를 신고 걷기보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쪽을 더 자주 택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렇게 '조금 더' 심각해진 현재가 되어버린 세상은 당연하다는 듯 재난을 일상처럼 받아들인다. 저자 서윤빈은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연작소설이면서 풍자소설처럼 현실을 찌르는 묘사가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지구촌 마지막 남은 도피처에서 아직은 숨쉬는 인간들이 살아 있지만, 검게 변해 버린 해변의 모습은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질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은 검은 모래사장의 재앙 속에서도 서로를 향해 손 내미는 ‘모래알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아픈 엄마를 돌보며 정체불명의 생선을 배달하고, 누군가는 수장된 아이의 관이 다시 떠오르는 걸 지켜본다. 또 누군가는 기이한 생물이 드나드는 집에서 오래전 할머니와 어머니가 남긴 일기를 읽는다. 검게 변한 해변은 사람들의 피부를 녹이고, 젊은이들은 그 안에 매장된 희망을 캐러 향한다. 

모든 구분이 무화되고 일종의 순환이 가속화되는 세계에서 누군가는 실종된 이의 이름을 간절하게 외친다. 이들의 서사는 “당신의 일이었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진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파국 속에서도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인물들의 감각에 집중한다. 종말은 더 이상 먼 미래의 파국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밀려오는 파도처럼 우리 곁에 '차오르고' 있다. 

삶은 끝을 지나 또 다른 끝을 향해 나아가며, 흩어진 감각들은 서로를 건너다보는 법을 배운다. 이 소설 작품집은 기후 재난과 불평등, 그리고 그 안에서 생존을 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비현실적인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끝까지 견딜 수 있을까.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서윤빈이 낸 첫 연작소설집이다. 이 작품집은 기후 위기 이후 대한민국 사회를 배경으로, 재난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단면을 피카레스크 형식으로 엮어 낸다. 모두 7편의 소설이 서로 서로 연결되는 내용이 등장한다. 편지, 공문, 일기, 르포르타주 등 각기 다른 형식을 취하면서도, 재난 이후의 일상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균열을 중심에 둔다.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라는 이름을 가진 정체 모를 생선, 발코니에 가득한 날치 사체의 비린내, 다코야끼 반죽처럼 흘러내리는 피부, 집이 떠오를까 봐 집 곳곳을 밟으며 돌아다니는 가족, 죽은 아이가 든 관에 몸을 묶고 항해를 떠나는 남자, 무엇이든 분해해서 신이라고까지 불리는 청소부 등 과장된 재난의 장면들을 현실적으로 겪어 내야 하는 인물들이 이곳에 있다. 배달 노동자가 폭우를 무릅쓰고 물을 헤치며 도착한 고급 아파트 단지는 높은 담 안에서 무심하고 평화롭다.


홀로 남겨진 남자를 찾아오는 것은 사이비를 포교하려는 남녀뿐이다. 오염된 것이 분명한 악취 가득한 해변은 멋진 사진이 찍힌다는 이유로 명소가 된다. 도시가 물에 잠기자 집값을 형성하는 중요 요인은 땅의 높이가 된다. 무력한 청년들은 도박에 빠지거나 스스로 실험체가 되어 시간을 죽이고자 한다. 모든 걸 분해할 수 있다는 ‘청소부’의 메커니즘은 베일에 싸여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계속해서 어디선가 읽었거나 들은 이야기 혹은 지식을 중얼거리지만, 그 공허한 말들은 유기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미끄러지며 아무것도 바꾸어 놓지 못한다. 이야기는 재난의 원인을 추적하기보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그것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택과 감각에 주목한다. 

기후 재난 서사 속에서도 일상적으로 파고드는 감정, 접촉, 기억의 흐름을 따라간다. 이 인물들은 어떤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익숙한 일을 계속해 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손을 내밀고, 망각된 이름을 부르며, 이어질 수 없는 것을 잠시나마 이어 본다.

저자는 재난 이후의 세계를 단지 인간 중심으로 그리지 않는다. 사물과 목소리, 기억과 죽음까지도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는 이 풍경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이미 달라졌음을 말해 준다. 게다가 작가는 이 연작소설을 통해 재난의 위협이 동등하지 않게 다가오는 현실을 보여 준다. 어떤 이에게는 생존이 가능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것마저 불가능하다. 


그날 이후로 이미지 씨는 틈날 때마다 해변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남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막상 해변을 계속 바라보면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예상한 것보다 더 기이한 현상이었다. 여태까지는 단지 사람이 많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늘 같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나와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관목이 되고 싶기라도 한 걸까. 여름이었는데도 이미지 씨는 목덜미를 스치는 서늘함에 두 손으로 목을 감쌌다.(p.99)


그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연결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의 흔적을 조용히 따라간다. 세계는 이미 달라졌고, 이 책은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을 기록한다. 이것은 생존을 감행하는 이들의 이야기이자, 세계가 끝나고도 남아 있는 감각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는 이 소설집을 통해 지금-여기의 재난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통과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건져 올린다.

이 책은 7개의 단편 소설이 연작으로 이어져 있다. 각 단편마다 따로 제목이 있으며, 내용은 서로 연관성이 있다. 각 소설마다 한 장(章)씩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게」, 2장 「농담이 죽음이 아니듯 우리는 땀 대신 눈물을 흘리는데」, 3장 「트러블 리포트」, 4장 「애로 역설이 성립할 때 소망의 불가능성」, 5장 「리버사이드 아파트 여름맞이 안전 유의 사항」, 6장 「생물학적 동등성」, 7장 「생물학적 동등성」 등이다. 

「게」는 폭우 속에서 정체 모를 생선을 배달하는 라이더의 모습이 눈에 띈다. 

".내게는 눈도 없고 귀도 없으나 그렇기에 온몸으로 세계를 받아들인다. 내 세계는 당신의 기억이다. 당신이 잊었거나 꿈이라고 여길 뿐인 기억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와 뒤섞여 이제는 당신의 일이었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진 기억들. 그것들을, 나는 당신을 대신해 기억한다."(p.9) 2장 「농담이 죽음이 아니듯 우리는 땀 대신 눈물을 흘리는데」에는 발코니에서 떠나보낸 아이의 관이 계속해서 되돌아오고, 그 관을 계속해서 다시 떠내려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아이를 보내신 분께. 협박인지 무단 투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이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두 번이나 보내신 걸 보면 뭔가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저로서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다시 보내신다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현명하게 처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TA 드림.(p.51)



3장 「트러블 리포트」에는 숨이 멎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검은 해변 '블랙번'. 그런 해변에 중독된 사람들과 녹아내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슈슈가 블랙번 해변에 터를 잘 잡았다고 여길 무렵 인간들이 나타났다. 인간들은 훌륭한 번식의 매개체이긴 했다. 인간을 타고 포자들은 해변을 넘어 더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슈슈를 밟아 죽이는 폭력적 존재이기도 했다. 밝힌 슈슈는 터져 죽었다. 인간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슈슈들의 시체가 공기 중에 흩날렸다. 슈슈의 터진 사체에 사람의 피부를 녹일 정도의 유독성이 있는지까지는 샤오밍도 아는 바가 없었다. (중략) 자연에 조화 따위는 없습니다. 모든 건 생존 투쟁일 따름이지요. 상대를 미워하든 말든 아무 상관 없습니다. 무릇 미움 없이 죽고 죽일 때 더 많이 죽이기 마련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땅에는 끝날 때까지 투자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겁니다."(p.107~108) 

또 4장 「애로 역설이 성립할 때 소망의 불가능성」 주변이 전부 물에 잠겨버린 빌라에서 3대째 살아가는 한 가족의 기록을 담았다. 5장 「리버사이드 아파트 여름맞이 안전 유의 사항」은 4월 평균 기온 35℃를 넘는 시대에 한 아파트의 공고문으로 붙어 있는 내용이다. 이밖에 6장 「생물학적 동등성」과 7장 「생물학적 동등성」은 동명 제목이지만 내용은 다르다. 6장엔 석유가 나온다는 블랙번에 가고 싶어 하는 생동성 실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가 나오고, 7장은 실종된 남편을 찾아다니는 '지연'. 도시의 쓰레기를 먹고 다니는 거대한 거머리처럼 생긴 덩어리의 청소부가 각각 등장한다.

연구원의 태도에는 정확히 어떤 종류라고 콕 짚기 힘든 무심함이 배어 있었다. 세상의 안전한 테두리를 피부처럼 받아들여 한 번도 그 영역 바깥으로 나가거나 곤란함에 처해 본 적 없는 듯한 무구함이랄까. 그에게는 늘 어디선가 보호받고 있다는 기색이 묻어났다. 사람에 따라 거기에 순수함이나 쾌활함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연이 느낀 건, 일종의 담장이었다.(p.230)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집은 대한민국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기후 재앙 SF 연작소설'이다. 책 속 일부 내용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인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기도 한다. 어쩌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현실의 이야기를 끼워넣었을지도 모르겠다. 기후 재앙은 올 여름 우리나라 전부를 폭염과 폭우로 마치 지옥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더욱 실감이 간다. 현실을 찌르는 묘사가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책을 읽어 갈수록 '2025년 대한민국의 기후는?'라는 생각이 계속됐다. 기온이 39도까지 오르고 도로가 잠기고 물이 역류하는 뉴스가 매일같이 들리는 요즘이다. 지구 어딘가에서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고, 또 어디선가는 폭염으로 수십 명씩 죽어나가고... 예전에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보았던 폐허과 감염병, 그리고 동식물이 보이지 않는 도시의 모습. 현실과 가까운 미래의 경계선에 선 듯한 모습이다. 때문에 책 속의 각종 장치나 표현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하다. 들이 허구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즐겁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대부분 생존을 위한 버티기인 것처럼 보인다. 

독자의 상상력으로는 소설 속 인물과 현실 속 독자들이 혼동해도 좋을 만큼 비슷한 생각이어서 소설 속 문자는 생생하고 꿈틀거린다. 생존을 위해 빗속을 뚫고 배달을 하거나 생체 실험의 피험자가 되거나, 오래된 아파트 안에서 죽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우리들의 현실과 너무나 닮아 있다. 이들은 우리 주위의 평범하고 소시민적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이웃이기도 하다. 예견된, 가까운 미래의 고통을 미리 알고 대비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글 속에 감춰져 있는 듯하다. 


밝아서 보이지 않는 빛. 세상은 시작과 동시에 끝났다. 박수를 치는 것처럼. 남은 소리가 메아리쳐 돌아오는 시간. 우주. 고요한 우주. 사진과 영상이 구분되지 않는 우주. 단 한 번의 두드림. 그것은 시간. 약한 두 번째 두드림. 그것은 방향. 영원이 끝나고도 남아 있는 것. 어머니 슈슈. 모든 그림자의 기원.(p.257)


저자 : 서윤빈


고려대학교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전깃줄이 하늘을 일곱 조각으로 잘라놓은 걸 보다가 문득 소설을 쓰게 되었다. 완전 힙합 같은 글을 쓰고자 하며, 유머를 잃지 않기 위해 늘 수련하고 있다. 특별히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도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기억에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되었다.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면 좋겠다. 2022년 「루나」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파도가 닿는 미래』 『날개 절제술』, 장편소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유니버셜 셰프』, 동화 『장난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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