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6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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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육체노동자』는 표제어에서 드러나는 이른바 '블루컬러'로서의 노동자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프랑스 소설인 데다 저자 클레르 갈루아의 가 해온 일과 그가 쓴 작품들의 성향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문장 속에서 건축노동자처럼 힘든 육체노동을 의미하지 않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주인공 크리스틴이 사랑하는 남자인자 동성애자인 빅토르 때문에 표제어에서 나타나는 '육체'는 사랑의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크리스틴은 10년을 빅토르만 바라보고 살지만 27명의 애인을 만난다, 그럼에도 빅토르를 사랑했고, 지금도 돈만 많은 중년의 남자를 만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빅토르는 죽게 되고 그를 묘지에 안장하기 위해 크리스틴은 길을 떠난다. 그러다 밤이 오면 그가 추울까 관 옆에서 밤을 보낸다. 10년동안 그를 사랑했지만 죽고난 후 처음으로 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크리스틴은 손수레 위에 앉아, 빅토르 옆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 추위를 꾹 참고 견디리라 마음먹는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을 혼자 내버려두지는 않을 테니까, 절대로."

그러고 나자, 어떤 한 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나는 갑자기 웃고 싶어였다.

- 우리가 함께 보내는 최초의 밤이군요.(p.243~244)

이 소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프랑스에서의 남녀 혹은 동성간 사랑에 대한 사회적 눈길과 또 법률적 판단,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사랑'의 개념이 충돌함을 느낀다. 소설이 결코 길지는 않지만 전개되는 내용에서 쏟아내는 마음의 방황은 길고 길다. 복잡하다는 뜻과도 같은 맥락이다. 자칫 프랑스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동성애에 거리낌없는, 또 이상한 연애로 생각지도 않는 사회 분위기 탓일까 하는 의심도 가져본다.


앞서 언급한 크리스틴의 독백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을 표현하는 내용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에서의 연애는 굉장히 개방적이고 한없이 자기 주관적이라는 독자의 개인적인 선입견 때문일까? 아니면 당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 탓일까? 사랑이 노동이라고 해석하는 저자 클레르 갈루아의 사랑관(觀) 때문일까? 프랑스 소설을 많이 읽지 못한 독자가 프랑스 문화에 서툰 탓일까? 작품의 전개에도 어렵고 관념적인 내용의 단어, 우리와는 다른 사랑관(觀), 또 독자와 저자의 다른 성별 때문일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난해하다는 느낌이다. 책의 뒷 부분에 이 책의 역자 오명숙의 〈옮긴이의 말〉에 눈길이 간다. 

"몇십 년 만에 눈이 쏟아지기 시작한 파리의 이른 아침, 크리스틴은 빅토르와 여행을 떠나기 위해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하지만 그 여행은 멋진 차를 타고 아름다운 고장으로 향하는 여행이 아니다. 다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영원한 이별을 향한 여정이다. 이 소설은 크리스틴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코르뒤레에 도착하기까지 하루동안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하루 안에는 그녀가 빅토르를 사랑해 온 10년의 시간이 오롯이 녹아 있다. 이미 예술가의 손을 떠난 그림처럼, 더 이상 덧칠할 수 없는 남자 빅토르. 그녀는 그를 사랑했지만 한 번도 그의 시선을 온전히 독차지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 크리스틴은 사랑이든 아니든 간에 스물일곱 명의 애인을 만났고, 현재는 아쉴이라는 중년의 남자와 함께하고 있지만, 빅토르는 여전히 견디고 싶은 무게, 살갗을 벗겨 내야만 지울 수 있는 아름다운 문신처럼 그녀 안에 남아 있다."(p.245~246)

역자에 따르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빚어 내는 상처투성이 감정들의 파노라마는 감동적이다. 상처가 많아 위험하지만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사랑과 배려와 안타까움과 믿음은 물론이고 시기와 원망과 비웃음과 분노까지도 그렇다. 심지어는 죽음으로 가는 길마저 아름답다.


역자의 시선은 이어진다. 그리고 작품을 보고 느낀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사랑하는 남자의 마지막 편지를 가슴 위에 반창고를 붙여 고정시킨 한 여자가 그를 땅에 묻기 위해 눈덮인 길을 달린다. 그리고 그를 만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온밤을 꼬박 지낸다. 그의 주검과 함께." 역자는 주인공 크리스틴의 10년을 충분히 이해한 듯하다. 앞서 언급한 빅토르의 주검과 마지막 밤을 함께 지내는 크리스틴의 심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며 충분히 공감한다.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크리스틴의 마음 상태에 동화된 듯하다. 역자는 책을 읽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들이 책을 덮는 순간 모두 이해한 듯하다. 

"책을 읽는 동안 짧지만은 않은 삶의 순간순간들을 되짚어본다. 많은 것들이 기억난다. 좀 헐값에 샀다 싶은 것도 없고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치렀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다. 현재의 삶을 무차별 공격하며 인기척 한번 없이 다가와 슬며시 팔짱을 끼는 추억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니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르고 나서야 얻어 낸 값비싼 녀석이었다. 살아가는 데 공짜란 없다. 크리스틴의 할머니 말처럼. '인생이란 일종의 대형 백화점과 같다. 일단 그 안에 들어서면 물건을 구입하고 값을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 클레르 갈루아의 『육체노동자』는 열림원이 기획한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이 소설작품은 “사랑이라는 거대한 착시 안에서 겨우 간신히 버티는 자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글에 적었다. “절망적인 특권”으로 주어진 관계 속에서 “파괴로 완성된 사랑”을 끝내 사랑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인물, 크리스틴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빅토르라는 단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조롱하며 다른 애인들의 목록을 계속해서 늘려나간다. 크리스틴의 빅토르를 향한 모든 몸짓들은 모순된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진실한 감정이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육체노동자』가 실패한 방식으로만 사랑할 수 있는 어떤 여성의 절규라면, 자신의 몸을 기억과 고통의 형식으로 보존하는 그녀에게 육체는 사랑을 향한 노동이자 증언의 매체이라는 출판사 측의 서술은 독자들에게 이해를 줄까? 혼동을 가져올까?


이 소설 작품 소개글에 따르면 사랑과 증오, 예술과 노동, 숭배와 모욕의 은밀한 경계를 통과하여 “비로소 춥고 깊은 밤에 도달한 이야기”는 “아이러니로 가득한 인생의 기억과 헐벗은 듯 진실한 내면”을 파헤친다. 『육체노동자』는 아름다움과 파괴, 집착과 애도의 감정이 어떻게 한 사람의 몸과 언어를 변형시키는지에 대한 치열한 기록이자, 규범 바깥에서 말해지는 사랑, 그 해체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놓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한 비문법적인 고백이다." 사랑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 “다만 깨닫게 될 뿐이다. 그녀를 지켜보는 불안과 초조함마저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크리스틴이 빅토르에게 그랬듯 나 역시 기꺼이 그녀의 ‘명예스럽지 못한 증인’이 될 것임을.” 출판사 측의 소개글을 읽으면 서서히 작품 이해에 가까워진 듯하다. 

저자 갈루아는 1965년에 발표한 『나의 유일한 욕망』 이후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온 1970년부터 20년간 〈마리 클레르〉, 〈엘르〉, 〈르 피가로〉 등 잡지에서 활발한 문학 비평을 했다. 1986년부터는 페미나 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작품에서 갈루아는 병으로 고통받는 어느 동성애자 빅토르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 크리스틴, 그리고 이 두 사람을 둘러싼 복잡 미묘한 인물들의 관계를 간결하고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다. 『육체노동자』는 예민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정상 범주 바깥에 자리한 욕망과 여성의 시선을 포착하며, 프랑스 문단에서 클레르 갈루아를 독보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사실 독자로서 느낀 감정은 "감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이 고통스러운 실험"을 고백한다. 독자와 프랑스, 독자와 저자, 독자와 사랑관이 다른 탓인지 매우 난해했다. 그러나 독자 스스로의 선입견을 배제한다면 이 소설은 깊은 사랑의 감정에 대한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크다. 한마디로 독자에게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빅토르는 신경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에 걸렸을 뿐 아니라 고집스럽고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크리스틴에게 헌신적이고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하지만, 크리스틴에게 그는 “감당하고 싶은 무게, 살갗을 벗겨내야만 지울 수 있는 아름다운 문신”(〈옮긴이의 말〉) 같은 존재다. 두 사람을 둘러싼 세베로, 라이오넬, 아쉴, 자크 등의 비규범적인 관계는 세간의 시선으로는 쉽게 인정하기 어렵지만, 그들만이 만들어 나가는 복잡한 사랑을 통해 우리는 상징과 은유가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프랑스 소설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빅토르의 죽음을 앞두고, 그가 머물던 장소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공간을 따라가는 크리스틴의 짧은 여정은 “다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영원한 이별을 향한” 움직임이 된다. 이 여정은 과거와 현재, 사랑과 상실, 욕망과 체념이 끊임없이 겹쳐지는 기억의 궤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은 크리스틴이 이른 아침 집을 나선 것으로 시작해, 늦은 밤 목적지인 코르뒤레에 도착할 때까지, 하루 동안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두 사람 사이의 10년을 병치시킨다. 살아 있음과 죽음 사이, 관계의 유효성과 무력함 사이, 말해지는 것과 끝내 말해지지 못하는 것들 사이에서 이 이야기는 열린 문턱 위에 선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빚어 내는 상처투성이 감정들의 파노라마는 감동적이다.”(p.246) “사랑과 배려와 안타까움과 믿음은 물론이고 시기와 원망과 비웃음과 분노까지도 그렇다. 심지어는 죽음으로 가는 길마저 아름답다.”((p.246) 이 소설 『육체노동자』는 사랑을 말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랑 소설과도 다르다. 이 작품은 감정의 심연에 침잠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사랑을 사랑이게 하는가? 누군가를 욕망하고 동시에 증오하며,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감정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크리스틴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 자체를 온몸으로 살아낸다. 그녀의 서사는 균질적인 언어로는 번역되지 않으며, 그녀의 고백은 잔혹하리만치 솔직하고, 절망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단지 육체로 겪어야만 했던 어떤 사랑의 방식, 그리고 그것이 남긴 흔적의 무게를 이야기하며, 이 소설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감당하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그곳엔 잿빛의 거리도, 도시도, 세간의 쑥덕거림도, 비굴한 타협도, 성가신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창백한 흐린 하늘 끝엔 언제나 고운 먼지가 깔린 꼬불꼬불한 작은 길과 푸른 언덕이 끝없이 펼쳐졌다. 타는 듯 대기가 뜨거워지면서 축축한 습기가 몸을 감싸면 우리는 그 길을 달렸다. 그 작은 길은 잿빛 그림자를 드리우는 포도밭과 올리브밭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며 노송나무 숲을 감아 돌았고, 노송나무 숲은 큼직한 돌들로 눌러 고정시킨 붉은 기와지붕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등나무가 자라는 작은 기와 벽을 가벼운 화장이라도 시킨 듯 뿌옇게 만들었다.(p.108~109)


어리석은 일이긴 하지만 내겐 타인들에게 내 삶에 관해 주절주절 떠드는 버릇이 있다. 그러고 나면 언제나 궁지에 몰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도 말이다. 날 잘못 판단하고 있는 그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빅토르는 닮은 구석이 아주 많다. 우리는 어떻게 손써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미지의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얘기를 털어놓으며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면서, 그들의 난처함에 대해선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증인을 찾아 헤매는 일종의 유희이다. 우리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가지고 훈련을 시키긴 하지만 결코 우리를 속박하지는 않을 그런 증인들을 찾는 유희. 사람들은 우리가 모든 것을 얘기하고 있다고 믿지만, 정작 우리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진정한 비밀은 슬픔이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은 척할 뿐이라는 것을.(p.128)


저자 : 클레르 갈루아


1937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965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0년부터 1990년까지 20년간 『마리 클레르』 『엘르』 『마리 프랑스』 『르 피가로』 『파리 마치』 등 여러 잡지에서 문학 비평을 집필했다. 또한 페미니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주요 작품으로 『나의 유일한 욕망』 『양팔 가득 장미꽃을』 『흰 실로 수놓는 소녀』 『예레미야의 밤』 『인생은 소설이 아니다』 『네 개로 조각난 가슴』 『만약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라면』 『위험한 시간들』 등이 있다.


역자 : 오명숙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시적 모험』 『폭력적인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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